한겨레21 기사: "상속계급사회"
한국 사회에서 세습자산의 중요성이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커지고, 점점 상속계급사회로 되어가면서, 많은 젊은이들이 "계급통"을 앓고 있다는 기사. 이 기사에 여러 분들이 공감을 표하더라.
이 기사 말미에 보면 도움을 준 분들의 명단이 있는데 저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약 90분 인터뷰를 했는데, 인터뷰를 하기 전에 제가 했던 얘기가 저는 이 진단에 동의하지 않고, 왜 동의하지 않는지 들어볼려면 인터뷰를 하자는 것이었다. 크게 기대했던 건 아니지만, 기사에서는 그런 뉘앙스가 전혀 전달이 안되었다.
저는 한국에서 불평등이 커지고 있어서 심각한 문제라는 진단이 일종의 아세, 세상에 대한 아부라고 생각한다. 기자만 그러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의 학자,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많은 기사와 논문이 객관적 상황과 관계없이, 일부의 사례와 통계를 들어 많은 사람들이 듣고 싶은 얘기를 해준다.
한국에서 "헬조선" 담론이 시작되고 크게 유행한게 대략 2015년 전후다. 비슷한 시기에 담론을 휩쓸었던게 "수저계급론"이다. 이 때 자산불평등은 어땠을까? 아래 그래프가 가금복에 기반한 순자산의 지니계수다. 보다시피 그 때가 가금복 조사 시기 전체에서 자산불평등이 가장 낮을 때고, 2012년 조사 이후 2017년까지 자산불평등이 꾸준히 줄어들때다. 소득불평등도 이 때 지속적으로 줄었다. 그런데 한국의 담론은 모두 헬조선과 수저계급론이었다.
지금은 2017년 이후 (주택가격의 상승이 가장 큰 이유일텐데) 자산불평등이 7-8년간 증가하였다. 그렇다고 폭발적 증가인건 아니고 2013년 보다 살짝 높고, 2012년보다는 낮다. 그런데 이제는 한겨레21 기사에서도 얘기하듯 자산불평등이 계속 늘었고, 가금복 조사이후 (2012년을 제외하고) 최대치를 기록했단다. 자산불평등 증가 때문에 큰 일이라는 식이다.
지금의 자산 불평등 증가폭은 2012-17 사이의 감소폭보다 작다. 줄어들 때는 대폭 감소라고 아무도 말하지 않고 헬조선과 수저계급론을 얘기하더니, 비슷한 수준으로 늘어나니 불평등이 늘어서 문제라고 기사도 쓰고 논문도 쓴다. 몇 년 전 불평등에 대한 논문 작업을 같이하면서 이거 때문에 다른 교수 분들과 꽤 부딪쳤다. 겨우 몇 년 그것도 전고점을 돌파한 것도 아닌데 자산불평등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고 얘기할 수 없다고 아무리 말해도 받아들이지 않더라. 그 때나 지금이나 불평등이 문제라고 호들갑이다. 객관적 지표가 줄어도 늘어도, 결론은 동일하다. 소득에서 자산으로, 빈곤율 경향에서 절대치로, 객관적 수치에서 주관적 수치로, 골포스트를 옮기며, 늘상 동일한 결론을 내린다. 불평등이 늘고있고, 문제가 심각하다. 얼마전 경향신문에서 제시했던 여러 수치도 마찬가지다. 잣대를 바꿔서 불평등이 늘어난 통계를 인위적으로 늘려놨더라.
개인적 얘기를 또 하자면, 2010년 정도에 한국에서 소득불평등이 줄어들고 있다는 통계청 결과가 나왔을 때다. 충분히 그럴 수 있고, 이명박 정부의 4대강 등의 재정확대가 소득불평등을 줄일 수 있다고 얘기하니, 정말 많은 분들이 핏대를 세우며 비판하더라. 국회에서 간단한 강연을 한 적이 있는데, 흥분해서 비판하던 그 분의 표정이 아직도 기억난다.
한국에서 교육과 직업의 세대간 이동의 측면에서 계급이동이 줄어들기 보다는 오히려 늘었다고 여러 사회학자들이 논문을 발표했지만, 이거 받아들이는 분들 많지 않다. 어떤 분은 이와 다른 결과가 조만간 발표될거라고 아무런 근거도 없이 신문 칼럼도 쓰더라.
왜 이러는걸까?
한겨레21에서 제 말을 딴 "폐쇄(closure)"가 그 이유에 대한 저의 진단이었다. 불평등이 커지고, 계급이 세습되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계급이동의 유동성이 커지다보니까, 중상층이 자기 이익을 지키기 위한 투쟁에 나선게 한국 사회 계급갈등이 불거지는 가장 큰 이유라는거다. 중상층의 자기 이익 지키기 방식으로 계급 간 "폐쇄"를 구축하려다보니 삐걱거린다는 것.
몇 년 전 있었던 "인국공", 시험보지 않고 들어왔던 인천공항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대한 반발, 의사들의 파업 모두 일관된 경향이 있다. 능력주의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계급의 담쌓기, 계급의 공고화다. 계급이 공고화되어서 문제가 아니라, 정반대로 계급이 공고화되지 않고 오히려 유동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에 이를 공고화하기 위해 여러 수단을 동원하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계급투쟁은 하위계층의 저항이 아니라, 기득권 중상층의 기득권 지키기 투쟁이다. 중상층이 기득권을 지키기 어려워서 생기는 삐걱거림이 한국 사회의 계급 갈등이다.
한국에서 재벌 등 순수하게 상속재산으로 계급을 대물림할 수 있는 극소수의 집단은 이미 그런 폐쇄를 구축했다. 자산불평등과 상속을 문제삼으려면 이 집단이 타겟이어야하지만, 요즘 재벌 비판하는 사람 아무도 없다. 그런데 다른 사회에 달리 그 밑에 있는 상층, 우리가 "중상층"이라고 불리는 상위 대략 10-20%의 계층은 계급 폐쇄를 구축했다고 하기 어렵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학에 가게 되면서 대학진학을 통한 폐쇄도 약해졌다. 그럼 대학 내에서 차별화해야 하는데, (이 번 7월에 한국에 가서 발표할 내용인데) 괜찮은 일자리를 얻는데 끼치는 엘리트 대학의 영향력도 지속적으로 약화되었다. 고상하게 얘기하면 vertical stratification도 horizontal stratification도 약화되었다. 그 결과 학력과 학벌을 통한 계급 형성 경로가 약화되었다. 중산층 재생산의 가장 큰 기제인 교육세습을 통한 계급 폐쇄가 공고화되기 보다는 오히려 약화되었다. 이를 뒤바꾸고 계층/계급을 공고화하기 위해, 언론과 학계를 장악한 중상층이 벌이는 투쟁이 현재 한국 사회 계급 투쟁의 가장 큰 단면이라고 저는 생각한다. 물론 이게 다라는 것은 전혀 아니고, 극단적으로 단순화하면 그렇다는 거다.
달리 말해, 최상층과 중상층의 격차는 공고화되는데, 중상층과 중산층의 격차는 약화되서 발생하는 지위불안정을 "상속계급사회"로, 헬조선으로, 수저계급론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담론의 측면에서 중상층 아래의 모든 계급/계층을 자신의 이익에 복무하도록 배치한다. 세금을 늘리면 중상층의 세금도 당연히 늘려야하지만, 중상층도 커지는 불평등의 희생자이기 때문에 중상층의 세금을 줄여야 한다. 커지는 불평등 담론 때문에 세금에 대한 저항이 커지고 광범위한 과세라는 해결책이 사라진다. 이게 불평등 담론은 커지면서, 세금은 줄이는 기적의 작용법이다. 최성수 교수가 페북에서 잘 지적하고 있듯, 서울대10개 만들기도 마찬가지다. 중상층 자녀들을 안정적으로 괜찮은 대학에 보내기 위한 수단이지, 그 이하 계층에게 큰 혜택이 돌아가기 어렵다. 그런데도 중상층의 이익에 복무하니 진보 중상층이 덥석 받아들인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나타나는 현상이 날 것 그대로는 하위계층에 대한 경멸이고, 점잖은 겉치례로는 불평등이 커지고 있다는 걱정이다.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일어난다. 그러면서 이미 폐쇄를 구축한 최상층에 대한 비판은 어느새 사라졌다. 30억 자산을 받은 한겨레21의 한 상속인도 계급통을 앓고 있지 않나. 다같이 동변상련해야지 않겠나.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중상층의 계급형성 투쟁이 현재 한국 사회의 계급 투쟁이다. 그리고 그 방식은 자신들에게 도전하는 경쟁을 줄이는 "폐쇄(closure)"다. 최상층이 구축한 장벽을 중상층도 구축하겠다는 것.
아래는 어제 트위터에서 본 조선일보 김대중 기자의 칼럼이다.
"윤석열의 등장이 갖는 또 다른 의미는 정상적이고 보편적인 가정 환경과 전문 교육을 바탕으로 한 엘리트들이 리더로 부상(浮上)한 일이다. 전통적 체계를 갖춘 나라에는 예외 없이 지도자 교육 루트가 있고 과정이 있다. 영국은 고등학교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지도자를 양성하는 교육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미국도 하버드·예일·프린스턴 등 동부의 명문 대학이 지도자의 산실이다. 일본도 그 학교를 나와야 지도자로 출세하는 전통이 있다. 윤 대통령은 대학교수 집안에서 태어났다. 70년 건국 역사에서 처음으로 서울대를 제대로 나온 대통령이 됐다(YS가 있다지만 그것은 6·25전쟁 혼란 중의 상황). 이것은 우리나라의 지도자상(像)을 정상화하는 의미가 있다. 우리는 비천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최고에 이르는 것을 두고 ‘개천에서 용(龍) 난다’고 한다. 과거에는 통했다. 이제는 아니다. 이제 용은 개천을 뚫고 솟아나는 것이 아니고 시스템에 따라 교육받아야 한다. 자기만 잘나고 똑똑하면 되는 것도 아니다. 주변이 모두 똑똑한 환경에서 같이 자라야 부정(不正)을 배격하고 공정을 배운다. 이제 대한민국도 그런 시스템을 가질 자격이 있다."
요지인즉, 대한민국도 중상층 계급을 공고화하고 대물림하는 사회를 만들 자격이 있다는거다. 달리 말해 안그래서 문제라는거다.
Ps.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혁명을 하지 않는 이상, 경제가 성장하면서 자산축적이 늘고 부의 상속이 증가하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다. 한겨레21기사에서 주목할 것 중의 하나는 총상속액은 줄어드는데, 총상속자는 증가하는거다. 이제 상속이 최상층이 아니라 중상층의 이슈가 되었다는 것. 그러니 이런 식의 기사도 인기를 끌게된다. 그런데 극소수를 제외한 대다수에게 상속은 주택 문제다. 정책적으로 주택의 구입과 임대를 용이하게 하는게 상속문제의 실질적 해결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