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주도 "성장"은 가능한가?
아래 최저임금 관련 포스팅에 한 분이 최저임금 인상이 성장으로 이어지는 메카니즘을 도저히 모르겠다고 말씀하셨다. 조선일보 논설주간은 "소득 주도 성장, 허장성세로 끝나야"라는 칼럼도 썼다.
소득 주도 "성장"은 가능한가?
비록 매크로 경제학의 문외한이지만, 주워들은 바로 내가 아는 답은 모른다는거다. 더 정확한 답은 장기 성장이 어떻게 가능한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소득주도성장이 실제로 가능성 높은 성장 대책이냐고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아무도 모르는 장기 성장의 비결을 소득주도성장이 제대로 제시하지 않는다고 다른 경제정책 대비 특별히 더 비판 받을 이유는 없다.
한 번 더 뒤집어서 말하면 "소득주도" 정책을 핀다고, 장기 성장에 해를 끼친다는 아무런 증거도 없다. 성장이론으로 소득주도성장론이 의심될지라도, 분배논리로 소득주도성장론은 유효하다.
특히 세계적으로 장기 성장이 정체된 현재의 상황에서 분배의 중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경제 성장률이 높을 때에는 분배 정책이 미비해도 다수의 경제적 웰빙이 꾸준히 개선되지만 경제 성장률이 낮아지면 적극적 분배 정책 없이는 경제적 웰빙의 개선이 소수에서만 일어난다.
소득주도성장이 성장론이냐 아니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경제 성장이 가능한지를 알아야 한다. 가장 쉬운 경제성장 정책은 베끼는 것이다. 후진국이 선진국의 기술, 제도를 베끼는 catch-up이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쉬운 방법이다. 한국은 이 단계는 거의 끝났다.
그 다음으로 알려진 방법이 요소투입량을 늘리는 것이다. 자본, 노동력을 더 투입하는 것이다. 인구가 늘면 경제가 성장한다. 노동 투입량이 늘어나니까. 투입 노동력의 질을 높이는 것도 잘 알려진 방법 중 하나이다.
그런데 경제성장에 제일 중요한 것은 요소투입량이 아니라 총요소생산성이라고 명명된 요인인데, 이 총요소생산성은 보통 잔차로 계산한다. 무슨 말인고하니 GDP 성장 분 중에서 설명 가능한 모든 요인을 다 빼고 그래도 설명안되고 남는 부분이 총요소생산성이다. 한마디로 잘 모르는 경제성장 요인이다.
20세기 이후 세계적으로 경제성장률이 높았던 시기는 총요소생산성이 높게 증가했던 시기이고, 요즘 들어 경제성장률이 낮아진 시기는 총요소생산성이 낮아진 시기다.
총요소생산성은 기술발전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는데, 몇 가지 기술만으로 설명되는 것도 아니다. 20세기 중반에 전기, 내연기관 등이 보편적으로 사용되면서 생산성이 급등하고, 1990년대 중반에 기술정보통신이 광범위하게 사용되면서 생산성이 일시적으로 증가한다. 그런데 이 요인들을 고려해도 설명안되고 남는 총요소생산성이 여전히 경제발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현재 세계적으로 경제발전이 안되는 이유는 총요소생산성 증가율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총요소생산성 발전이 최근 들어 낮아진 이유에 대한 설명은 대략 3가지 입장으로 대별된다. 하나는 구조적 문제로 인식하는 입장으로, 요즘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는 서머스의 secular stagnation 같은 주장이나, Robert Gordon의 <미국의 성장은 끝났는가?>같은 주장들이다. 가까운 미래에 총요소생산성의 증대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다음은 현재의 침체는 일시적 문제일 뿐 가까운 미래에 총요소생산성이 폭발적으로 증대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브린욜프슨이 중심이 되어 하는 주장인데, 4차산업혁명이니 뭐니 하는 얘기는 모두 이 계열의 주장이다.
마지막은 지금도 총요소생산성은 끊임없이 증대하고 있는데 현재의 GDP 계산 방식이 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GDP 측정 오류로 총요소생산성 증가의 침체를 인식하는 주장이다. 예를 들어 Youtube로 듣고 싶은 음악 마음대로 음악듣는 것도 경제적 웰빙의 큰 개선인데 GDP에는 이게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브린욜프슨은 두 번째 주장과 세 번째 주장 사이에 왔다갔다 한다.
각각 구조론, 시기론, 측정오차론으로 칭할 수 있다. 각각의 입장에서 성장에 대한 대안은 첫번째는 당분간 성장은 틀렸으니 확장적 재정으로 총수요나 관리하자, 두번째는 조금만 기둘려라, 경제 성장은 곧 온다. 4차 산업혁명 와중에 희생될 미적응자에 대한 케어를 준비하자. 세번째는 우리의 인식을 바꾸자.
어떤 입장이든 최근 수치로 측정된 경제성장률이 낮아졌다는데는 동의한다. 이 중 경제발전에 가장 중요한 총요소생산성을 높이는 확실한 정책적 방법은 아무 것도 없고 (뭐 당연하지 않은가. 아무도 모르니까), 그나마 정책이라고 제시된 것은 구조론에 기반한 확장적 재정이다.
그런데 이런 소득주도성장론은 이 중에 어떤 입장이고, 어떤 답을 제시하는가?
명시적으로 얘기는 안하지만 확장적 재정정책을 제시하는 구조론과 친화적이다. 시기론과도 딱히 괴리되어 있지는 않다.
왜 확장적 재정정책이 정반대의 입장인 시기론과 반드시 괴리되어 있지 않는가? 예를 들어 보자. 20세기 중반의 경제발전의 큰 요인 중 하나가 전기의 광범위한 사용인데, 전기의 발명은 19세기 중반이다. 산업 생산과 일상 생활에 전기가 보편적으로 사용된 시기가 미국은 20세기 초반, 유럽은 2차 대전 이후다. 발명서부터 광범위한 사용까지 1세기가 걸렸다.
즉, 설사 시기론이 맞아서 궁극적으로 폭발적 경제성장을 겪는다 할지라도 4차 산업 혁명의 실현까지 앞으로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면, 시기론은 구조론과 다를 바가 없어진다. 100년동안 손가락 빨면서 혁명의 시기를 기다릴건가? 그 사이에 확장적 재정정책을 피는게 낫지.
(MB의 4대강 사업에 대해 다른 진보 분들보다 내가 긍정적으로 얘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꼭 4대강에 돈을 퍼부었어야 하느냐고 질문할 수 있지만, 안하는 것보다는 이거라도 해서 돈을 붓는게 낫다.)
이렇게 해서 소득이 늘어 총수요가 늘어나면 설사 총요소생산성이 높아지지 않더라도 경제가 수요부족으로 침체를 겪지는 않을 것이라는게 소득주도성장이다. 장기 성장의 답은 제시 못하지만 수요 부족으로 인한 장기 침체는 피할 수 있다는 논리다.
장기 성장은 이렇게 버티다 보면 언젠가는 되겠지라는게 사실상 소득주도성장이 제시하는 논리라면 논리다. 허접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거말고 소득주도성장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다른 뾰족한 수가 없다.
소득주도성장론의 장기 성장 대책이 명확하지 않다고 비판하는 건 아무도 모르는 답을 소득주도성장론도 제시하지 못했다고 비판하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야당은 여당의 정책을 반대하는 것으로 충분하니까 그럴 수 있는데, 학자들이, 특히 평소 진보적이라고 자부하던 분들이 이에 대해 비판하는 건 좀 그렇다. 그렇다고 이 분들이 장기 침체는 없고 곧 노말한 상태로 돌아올 것으로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면 이렇게 장기 성장의 비젼도 제대로 없으면서 소득주도"성장"이라고 마치 분배 정책을 성장 정책으로 포장해서 팔아도 되는건가? 이거 정책적 사기 아닌가?
아래 최저임금 포스팅에서 한 분의 반론은 다른 정책은 경제 성장 요인에 대한 논리는 제시한다는 것이다. 나는 총요소생산성은 모르겠지만 요소투입의 측면에서 최저임금 인상과 소득주도성장론이 그 정도는 충분히 고려했다고 생각한다.
소득주도성장론이 총 수요를 증가시켜 기업의 자본투입을 높일거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얘기한 바다. 자본투입 외에 경제성장률을 높이는 방법 중 하나는 노동력 투입을 높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투입노동력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이를 달성하는 가장 가능성 높은 방법은 고학력 여성노동자를 노동시장에 투입하는 것이다. 한국은 젊은층의 상식과 달리 전체 노동자의 평균 교육수준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 낮다. 그 이유는 고연령층의 노동시장 참여율은 다른 선진국보다 높은데 이들의 학력수준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많이 낮기 때문이다. 동시에 한국은 고학력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은 다른 국가보다 낮다. 남성노동자도 마찬가지다. 고학력 청년노동자의 실질 실업률이 높고, 저학력 고령 노동자의 노동시장 참여율이 높다.
고학력 여성노동자를 산업현장에 투입하면 한국은 요소투입량이 증가한다. 총노동 수요가 부족해서 이것이 불가능하다 할지라도, 저학력 고연령 노동자를 고학력 여성노동자로 대체하면 노동력의 질이 높아진다. 어떤 형태가 되었든 이는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요인이다. 최저임금 인상이 설사 1~2년 내 단기효과로 일자리의 감소를 초래할지라도 장기적으로 이러한 대체를 촉진하는 경제성장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Reservation wage가 높을 고학력 여성 노동자의 노동시장 참여 유인 요인으로, 생산성이 낮은 고연령 저학력 노동자의 퇴출 요인으로 말이다.
총요소생산성의 측면에서도 소득주도성장이 해를 끼칠 가능성은 낮다. 요소생산성 향상 측면에서 현재 주목하는 것은 정보통신기술(ICT)인데, 저학력 노동자로는 이 기술을 제대로 도입할 수 없다. 노동시장의 문턱을 높임으로써 노동자의 질을 제고하면 ICT를 이용한 총요소생산성 향상을 꾀하기 용이해진다.
실제로 일부 연구에 따르면 선진국에서 선도기업의 생산성은 빠르게 증가하는데 비해 그렇지 않은 기업의 생산성은 정체되고 있다. 선도기업의 혁신이 정체기업의 혁신으로 전파되지 않고 있다. 한국에서 투입노동력의 질 향상은 혁신의 전파를 용이하게 할 것이다.
그래서 결국 소득주도성장은 성장론인가? 내가 이해하는 한 검증된 성장론은 아니지만, 현재의 생산성 정체 상황에서 충분히 시도해볼만한 성장론이라고 생각한다. 설사 소득주도성장이 장기 성장에 실제로 도움을 주지는 못하더라도, 지금보다 크게 나빠질 가능성도 높지 않다. 소득주도성장이 한국의 경제모델인 수출산업을 망친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이상 경제성장을 방해할 것으로 기대되지 않는다.
자, 소득주도성장은 이 정도 방어하고, 그렇다면 소득주도성장이 아니면 뭐가 남는가? 사람들이 얘기를 안하지만 소득주도성장의 반대 논리는 "이윤주도성장 (profit-led growth)"이다.
이윤주도성장도 총요소생산성은 할 얘기가 별로 없어 보이고, 요소투입의 측면에서 이윤이 많이 남으면 자본은 투자량을 증가시켜 경제를 발전시킨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GDP의 노동지분은 꾸준히 감소하고 자본지분은 꾸준히 증가했다. 그래서 자본 투자가 증가하고 생산성이 높아지고, 경제성장률이 높아졌나?
소득주도성장이 검증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이에 반대되는 이윤주도성장은 별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미 전세계적으로 검증된 것 아닌가? 1997년의 IMF 사태 이후 20년간 진보, 보수정권 모두 이와 유사한 정책을 폈는데, 성장률은 낮아졌고, 분배는 악화되었다. 해봤는데 작동하지 않은 정책을 반복할 필요는 없다.
여러 국제기구에서 소득주도정책을 권고하지만 많은 국가에서 이 정책을 추진할 세력의 미비로 그렇게 못하고 있다. 한국은 전세계에서 촛불혁명이라는 세계사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체제 내 혁명"을 이룩하고 정권을 교체한 국가다. 전세계에서 소득주도정책을 실행해볼 수 유일한 국가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