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한국에서 문화 자본이 학업 성취도에 끼치는 영향

sovidence 2020. 11. 16. 04:11

네이트판의 요즘 흙수저 집안에서 애 낳으면 생기는 일에 대한 많은 개인적 경험과 분석이 보인다. 그 중에서도 사회학자 Annett Lareau의 중산층과 하위계층의 양육 방식 차이를 나타내는 concerted cultivation과 natural growth 개념을 적용하여 해당 글을 분석한 dennoch님의 트윗이 인상적이다. 

 

아래 기린아님이 댓글에서 한국에서 문화자본이 질적차이를 통해서가 아니라 양적차이를 통해서 드러난다는 지적도 타당하게 들린다. 중산층은 에버랜드 방문이 맘먹으면 언제든지 갈 수 있는 곳이지만, 하위계층은 그렇지 않다는 것. 

 

문화자본이 학업성취와 계층형성에 끼친다는 사회학 연구는 많다. 모든 학자들이 일치된 문화자본의 정의와 적용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문화자본이 많은 가정에서 자란 자녀들의 학업 성취도가 높고 계층지위도 높아진다.

 

예를 들어 Evans 등은 27개 국가를 비교해보니, 책이 많은 가정에서 자란 자녀가 책이 전혀 없는 집에서 자란 자녀보다 3년 정도 교육 연수가 많았다. 이 효과는 부모의 교육수준, 직업, 계층지위를 통제한 것이다. 문화자본이 소득의 대리지표가 아니라 독립적인 영향이 있다는 것. 이 영향력이 국가의 발전 수준에 관계 없이 나타났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문화자본의 영향력은 어느 정도인지 당연히 뒤따르는 질문이다. 

 

흥미롭게도 지금까지의 연구에 따르면 "문화활동"으로 규정된 문화자본은 한국에서 학업성취도에 오히려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 문화활동을 많이 하는 상위계층 자녀의 성적은 올라가는게 아니라 내려간다. 얼마 전 소개했던 정인관 외 (2020)의 한국의 세대 간 사회이동과 교육 불평등에 대한 리뷰 논문에 잘 정리가 되어 있다. 37~38쪽의 내용을 따오면 다음과 같다 (참고문헌 인용은 모두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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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소유한 문화적 소유물, 독서 향유 정도, 문화적 소통 등으로 정의된 문화자본은 자녀의 학업성취에 정적인 영향을 주는 반면, 자녀의 문화 활동 참여로 정의되는 문화자본은 일관되게 부적 영향을 가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런 결과는 한국 교육제도의 특징(표준화된 커리큘럼, 시험 중심의 평가제도, 사교육) 및 문화 활동과 공부가 가진 시간 배분에서의 경쟁 관계로 설명된다. 이런 한국의 양상은 서구 사회에서 관찰되는 일반적 양상과는 다른 독특한 점이다. 

이런 문화자본의 발현 방식은 한국에서 문화적 체험, 경험이 자본으로서 작동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지만 한편 고도로 전략적이고 계층화된 형태 로 문화자본 활용이 이뤄지고 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 예를 들어, 문화 체험의 빈도가 부모의 문화 체험 빈도에 따라 선형적으로 증가하지 않고 일정 수준부터는 감소하는 대신 독서 향유로 전환되는 양상이 나타나는데 이는 각 유형의 문화자본의 한계 효과를 이해한 전략적 행위일 수 있다. ... 이는 한국에서 문화자본이 교육 불평등을 악화시키는 역할을 하되 그 방식이 무의식 혹은 반의식적 사회화 과정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고도의 전략적 고려를 매개로 이뤄지고 있을 가능성을 확인시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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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한국의 계층이동, 교육불평등에 관심있는 모든 분들에게 이 논문을 읽을 것을 권하고 싶다.)

 

 

 

문화자본의 영향력이 이렇게 미묘한 이유 중 하나는 한국에서 계층별 문화 격차가 질적 차이가 아니라 양적 차이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인이 공유하는 문화적 동질성이 문화자본이 학업과 계층 성취와 보다 직접적인 상관관계를 맺는걸 방해한다.  

 

예를 들어, 모든 계층의 자녀가 사교육을 받는다. 계층에 상관없이 같은 학원에서 사교육을 받으면서 교우 관계를 맺는게 계층별 문화 자본의 영향력을 낮추는 아이러니를 일으킬 수 있다. 지난 10여년간 하위계층의 사교육 투자가 늘어났다는 것을 기억하라. 

 

문화자본의 이러한 미묘한 영향에 비해 가족배경의 계층지위는 확실히 좋은 대학 진학 확률에 영향을 끼친다. 

 

그런데 한국의 하위계층은 소득 수준이 올라가면 자녀 교육 투자가 늘어난다. 소득이 올라갔을 때 자녀 교육 투자를 우선시하는 한국의 교육열은 계층 재생산의 가족배경 효과는 낮추는 면에서 엄청난 장점이다.

 

이 때문에 하위계층의 소득 수준 개선에 집중하는 정책으로 하위계층 자녀의 학업 성취도도 개선할 수 있다. 아래 포스팅에서 얘기했듯, 소득 재분배 정책이 기회 평등 정책보다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