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트 판: 요즘 흙수저 집안에서 애 낳으면 생기는 일

 

다들 이 글을 보고서 느끼는 점이 많으실 것. 진짜 흙수저와 가짜 흙수저인 중산층이 이렇게 다르구나 하는 것도 알게되고. 흙수저가 어렵다는걸 알려주는걸 넘어, 문화자본, 경험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성찰이 보인다. 

 

"힐빌리의 노래"라는 책을 읽으신 분들은 Sparkling Water에 대한 J.D. Vance의 회고가 기억날 것이다. 문화와 경험은 그렇게 물 한 잔 마시는 것에서도 차이가 난다. 

 

그런데 이 글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부모님에 대한 묘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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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본인들은 동네 주민들이랑 술도 마시러 다니고 친목 모임도 조금씩 하고 다님.  
못 사는 동네여도 어른들의 자존심을 건 친목 문제는 중요하게 여기면서 
자식들의 사회적 관계는 전혀 중요하게 생각 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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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인생을 통틀어 
가난하기만 한 부모님 밑에서 태어난 애들은  
평균 소득이 오른 세상에서 부모의 무능함을 함께 제대로 체감하게 됨.  
...

부모님 세대는 정시 기회도 더 열려 있어서 
무식할 정도로 언수외탐만 파고 있으면 명문대 진학하기는 더 좋았고 
학벌이 좋으면 취직도 잘하고  
심지어 집값도 지금보다 훨씬 싼 시대였는데  

낳은 자식이 자라는 20년 동안  
자기 명의로 된 집 한 채도 마련해본 경험이 전혀 없고  
기초생활수급자 생활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 시대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밀려나 도태된 인간이란 뜻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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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묘사는 불평등과 사회이동에 대한 매우 중요한 진실을 담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불평등 자체가 아닌 공정성 이데올리기가 지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배 이데올로기는 많은 경우 단순히 허위의식이 아니라 어떤 객관적 사회 현실에 기초한다. 불평등과 사회이동에 대한 사회적 태도가 공정성 위주로 달라지는 원인이 바로 부모님--보다 정확히는 기성세대의 계층위치--에 대한 이러한 태도 변화에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가족의 빈곤은 사회적 구조의 결과이거나 운이 없기 때문으로 여겼다. 대부분 농민 출신이었던 부모의 빈곤이 부모 세대의 노력의 결과로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청년층의 부모 세대인 현재의 50~60대 계층 지위는 위 글에서 묘사되었듯 자신들의 노력의 결과로 여긴다. 부모 세대의 가난이 그래도 마땅한 그들 삶의 결과라는 것이다. 

 

이 글에서 묘사된 하위계층 기성세대는 <돈없어도 자기 친목은 즐기는 도태된 인간>이다. 기회가 주어졌지만 현재의 즐거움을 위해 미래를 생각하지 않아서 현재 가난하게된 루져다. 당신들이 젊었을 때  주어졌던 기회를 근시안적으로 노력안해서 날렸고, 자식들의 기회도 당신들의 현재 즐거움을 위해 날리고 있다. 

 

이러한 묘사가 전면적인 진실은 아니더라도 상당부분의 진실을 담고 있다. 산업화세대, 민주화세대를 거치면서 부모 세대의 기회 제공과 sorting이 이루어졌다. 모두가 농민이라 구조적 제약이 경제적 성취의 대부분을 설명하는 시대가 지났다. 현재의 자식세대 뿐만 아니라 부모세대에서도 생득지위(ascribed status)의 시대가 가고 획득지위(achieved status)의 시대가 온 것이다. 

 

사회학에서 사회이동 연구할 때 일단 산업사회로 넘어오면 계층 이동의 변화가 없다는 constant fluidity 가설은 이렇게 산업사회가 완성된 후에 변화하는 사회이동 관계를 아카데믹하게 담아낸 용어다. 

 

기성세대의 사회적 지위는 그들이 획득한 것이고, 이 획득 과정은 대체로 공정하였다. 기회가 완전히 평등한 것은 당연히 아니지만, 기회가 전혀 주어지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기성세대의 현재지위는 그들의 생을 봤을 때 많은 경우 그래 마땅하다.

 

그런데 여기서 도덕적 딜레마가 생긴다. 공정한 경쟁의 결과로써의 기성세대의 불평등한 지위는, 전혀 공정하지 않은 다음 세대의 불평등한 기회로 연결된다. 마땅하다고 여기는 부모 세대의 결과 불평등이 다음 세대의 기회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이전세대 결과 불평등이 다음 세대 기회불평등으로, 결국 다음 세대의 결과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현실을 칭하는 용어가 "불평등의 기계적 결과 (mechanical consequences of inequality)"다.

 

좀 아카데믹하게 얘기하자면, 아래 단순 회귀식에서 부모세대의 소득(=X)과 자식세대의 소득(=Y)이 b로 연결되어 있을 때, 부모 세대의 불평등 (= Var(X))가 커지면 설사 부모-자식의 기회불평등(=b)에 아무런 변화가 없어도 자식 세대의 불평등(= Var(Y))은 자동으로 커진다. (1)은 부모와 자식 세대의 소득/자산의 관계에 대한 것이고, (2)는 (1)을 불평등으로 바꾸면 유도되는 아주 간단한 식이다. 

 

(1) Y = a + b*X + e

(2) Var(Y) = b^2*Var(X) + Var(e)

 

부모세대와 자식세대의 소득관계(=b)를 완전히 0으로 만들지 못하는한, 부모세대의 결과 불평등은 자식세대의 결과 불평등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현재의 불평등이 미래의 불평등으로 필연적으로 이어진다. 

 

모든 사람에게 가족배경의 중요성을 줄이고 기회 평등을 주는 기획은 b를 0로 만드는 것이고, 현재의 불평등을 줄임으로써 미래의 불평등도 줄이는 기획이 Var(X)를 줄이는 것이다. 전세계 어느나라도 b를 0으로 만든 적이 없고, Var(X)를 0으로 만든 적이 없다. 

 

공정성에 집착하는 현재의 한국사회는 Var(X)는 수용하고, b를 0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셈이다. 위 네이트 판 글의 부모 세대에 대한 냉정한 평가도 Var(X)를 수용하는 내용이다. 공분을 샀지만 "부모 잘만난 것도 능력"이라는 정유라의 발언도 Var(X)를 수용하는 내용이다. 본질적으로 네이트 판의 글과 같은 인식이다. 

 

하지만 현실은 Var(X)와 b가 연결되어 있어서, 기성세대의 불평등을 줄이는 사회가 다음 세대의 기회불평등도 줄이고, 이것이 순환되어서 다음 세대의 결과불평등도 줄인다. 이 관계를 보여준 것이 "위대한 개츠비 커브"다.

 

기성세대의 불평등 축소와 다음 세대를 위한 기회불평등 축소는 같이 가는 것이지, 하나는 가만두고 다른 하나를 취할 수 있는게 아니다. 정책적으로는 기성세대의 불평등 축소가 다음 세대를 위한 기회불평등 축소보다 훨씬 쉽다.

 

불평등 축소, 빈곤 추방은, 살아온걸 봤을 때 지지리 못사는게 마땅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도 괜찮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지, 성실하게 살았지만 어쩌다 가난해진 사람만 지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야만 현재의 결과 불평등에 아무런 책임이 없는 다음 세대에 공정한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현재의 결과불평등에 대한 정책적 선호 없는 공정성에 대한 도덕적 선호는 공허한 말장난이다. 

 

 

결과 불평등 축소 없이 기회 불평등 축소 없다. 

현재 세대의 결과 불평등 축소 없이 다음 세대의 기회 공정성 없다. 

Posted by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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