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통계

인구변화 만으로 사회를 예측할 때의 한계

sovidence 2024. 4. 25. 11:01
현상 유지에나 헐떡이고 1%대 성장률을 간신히 버티는 당뇨병 경제가 앞으로 10년쯤 지속되는게 절대 이상한 예측이 아닙니다. 기존에 존재하는 망국론 따위들하고는 차원이 다르게, 느리지만 관찰 가능하고 예측 가능하게 다가오는 현상에 가깝습니다. 이미 한국 경제 성장률이 작년에 1.4%로 주저 앉았습니다. 추세 하락이 더 이어져오고 있고요. 문제를 굉장히 과소평가하고 계시네요

 

위 박스 글은 "업데이트된 느낌적느낌 한국 망국론"이란 포스팅에 달린 댓글의 일부다. 인구만으로 경제를 예측하는건 틀릴 가능성이 많다고 했더니, 문제를 과소평가하고, 인구문제를 정반대로 이해해서 심각성을 줄이려고 애쓴다고 비난하는 댓글이었다. 그런데 오늘 발표된 1분기 성장률은 전년 동기 대비 3.4%다. 1%대 당뇨병 경제가 10년쯤 지속된다는 주장이 틀렸다고 판명나는데 채 한 달도 걸리지 않았다. 한 달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예측이었던 것. 

 

인구변화에 기반해 사회를 예측하는 건 필요한 사고실험이지만, 그 예측이 빗나갈 가능성도 매우 크다는걸 인식해야 한다. 며칠 전에 국민의힘 쪽 패널이 앞으로 5년 간 보수 유권자가 150만명이 돌아가시기에, 보수가 위기에 처했다는 식으로 주장하는 기사를 봤다. 다른 모든 변수가 동일하고, 인구만 바뀌면 당연히 그렇게 되겠지만, 과연 다른 모든 변수가 동일할까? 이 기회에 인구 기반 예측의 한계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는 것도 좋겠다 싶다.  

 

우선 미국의 사례를 들어보자. 미국에서 도시로의 인구유입이 늘어나고, 소수인종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은 정해진 미래(였)다. 도시 인구의 민주당 지지율이 비도시보다 훨씬 높고, 소수인종의 민주당 지지율이 백인보다 높은 것도 사실이다. 이 둘을 합쳐서 나온 주장이 인구변화 때문에 앞으로 민주당 장기 집권이 가능할거라는 전망이다. 인구변화를 볼 때 장기적으로 민주당 우위가 정해진 미래라는 것.  한 때, 특히 2000년대 초반에, 많은 사람들이 했던 주장이다. 폴 크루그만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이 예측은 두 가지를 놓쳤다. 하나는 게리멘더링으로 민주당의 하원 선거가 불리해졌다는 거고, 다른 하나는 소수 인종에서 공화당 지지가 늘고 있다는 거다. 현재 흑인, 라티노, 아시아계 미국인 모두에서 공화당 지지가 증가하고 있다. 미국에서 사회학자들에게 인기 없는 주장이지만, 가장 중요한 사회학적 업적 중의 하나가 William Julius Wilson의 <줄어드는 인종의 중요성, The Declining Significance of Race>다. 1980년에 출간된 책인데, 매우 큰 논란이 되었지만, 이 책의 주장이 상당부분 맞았다. Wilson의 책이 경제적 운명에 대한 것이라면, 정치적 태도에서의 줄어드는 인종의 중요성은 이제 시작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종 간 격차보다는 인종 내 격차가 더 중요해지고, 경제적 처지 결정에서 인종의 상대적 중요성이 감소하면서, 소수 인종이 자신의 문화적 선호와 성향에 따라 공화당을 지지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여기서 배워야할 교훈은, 인구 변화만으로 미래 정치를 예측하는 일의 명백한 한계다. 인구 기반 미래 진단은 그 인구 구성원의 현재 속성이 그대로 유지된다는 가정 하에 가능하다. 하지만 이는 매우 강한 가정이다. 대부분의 역사는 이 가정에서 빗나갔다. 제가 대학원에서 들었던 수업 중 하나가 Dem Tech이라고 불리는 인구학 방법론인데, 이 때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이러저러한 복잡한 방법론으로 예측한 장기 인구 예측 중이 맞는게 거의 없지만, 그래도 하는게 인구 예측이라는 것이다. 인구변화는 인구행동에 기반하고 인구행동은 인간의 선택인데, 외부적 상황이 바뀌면 사람들은 선택을 바꾸고 인구행동이 변한다. 그러니 선택의 지속성을 가정한 인구예측은 틀리게 된다. 

 

한국 사례를 보자면, 제가 10여년 전에 했던 예측 중에, 서울의 보수화와 경기도의 진보화가 있다 (예를 들면, 요기, 요기, 요기). 그 때는 지금과 달리 경기도보다는 서울에서 민주당 지지세가 높을 때였다. 하지만 서울 중산층과 중하층 30대의 경기도 이주 가속화, 서울의 고령인구 비중 증가로 서울 보수화, 경기 진보화를 예측하였다. 이 예측은 맞았지만, 이와 더불어 예측했던게, 86세대가 50대가 될 때, 20~50대의 인구가 60대 이상 인구를 압도할 것이기에, 한국의 정치사회적 진보화가 가속화되리라는 것이다. 블로그에 썼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사석에서는 몇 분들에게 했던게 분명하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두 가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는데, 하나는 청년층의 보수화고, 다른 하나는 인구전반의 보수화다. 

 

그러면 정치적 예측과 경제적 예측은 다르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경제를 예측하는 분들 중에 AI의 지금과 같은 폭발적 성장을 예측한 분이 얼마나 되고, 앞으로의 효과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많은 분들이 AI 때문에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걱정하지만, 이 걱정은 기계의 발전과 더불어 유구한 역사를 가진 걱정으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실현된 적이 없다. 주장은 늘상 이 번에는 다르다는거다. 하지만 정말 이 번에는 다를 것인가? 

 

자동화와 관련해서 가장 많은 연구를 진행한 학자 중의 한 명인 David Autor는 반대되는 주장을 한다. AI가 중산층재건하는데 도움이 되고, 일자리가 없어져서 문제가 아니라 역으로 일할 사람이 없어서 문제가 될거라는 거다. AI가 없애는 일자리가 분명히 있겠지만, 인구 감소는 노동력 부족을 낳아서 AI 도입에 대한 저항을 완화시킬 것이다. 그 때문에 인구 감소는 자동화를 촉진하고 (한국은 안그래도 자동화 1등 국가다), 자동화 촉진은 1인당 경제성장에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한국 청년층의 높은 교육수준은 자동화 촉진을 다른 어느 사회보다 용이하게할 것이다. 

 

<높은 교육수준 + 인구감소> ➔ <낮은 AI 도입 저항성> ➔ <경제발전> ➔ <이민 유입 증가>  

 

이런 식의 경로를 밟지 않을 것으로 확신할 수 있는가? 인구 기반 "정해진 미래"는 좋게 표현하면 사고실험에 적절한 방식이고, 현실에서는 마케팅적으로 유용한 표현이지 실제 사회적 현상을 설명하는 방법론은 아니다. 인구 변화에 기반한 미래 예측은 "도전과 응전"의 상황을 더 명확히 인식하기 위해 유용한 것이지, 그 자체가 정해진 미래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