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전문가를 적으로 돌리는.
의협의 파업을 보면서 다들 느끼는 점도 많고 황당한 것들도 많을 듯. 가장 당혹스러운 것은 공공의료라는 대의, 이 대의를 위한 논리, 논리를 알리기 위한 대중과의 소통. 어느 것 하나 의협측에 유리한게 없는 것처럼 보이는데 결과는 환자의 생명을 인질로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파업한 의협의 승리라는 사실이리라.
오죽했으면 정부를 비난하는 제목의 한국일보 칼럼도 "의사들이 정부의 4대 의료정책(공공의대 설립과 의대정원 확대, 한방 첩약 급여화, 원격의료) 폐지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실은 공급 확대와 유사 직역 진입으로 인한 수익 악화를 걱정하고 있다는 걸 모르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라고 썼겠는가.
이런걸 보고 스스로를 진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깨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건 기득권의 무서움이다.
아마도 가장 무섭지 않은 집단이 "잃을게 없어서 겁날게 없다"라는 사람들일 것이다. 세상에 그런 사람이나 집단은 없다. 맑스가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잃을 것은 쇠사슬 뿐"이라고 했을 때 맑스가 보지 못한 것은 그 쇠사슬의 소중함이다. 잃을게 없어서 무서울게 없는 사람들의 선택지는 많은 경우 투쟁이 아니라 자기 파괴다. 노동자도 쇠사슬 지킬려고 투쟁하지, 쇠사슬 쯤이야라고 투쟁하는게 아니다.
뭔가 불평등한 결과를 설명하는 가장 강력한 이론 중 하나가 자원의 격차에 대한 것이다. 인적자본론은 개인의 신체에 쌓인 지식이라는 자원이고, 세대간 사회이동도 경제적 자원의 동원력에 따라 다음 세대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달라진다는 것 아닌가. 동원할 수 있는 리소스가 다르면 결과도 다르다. 투쟁력도 자원이 있는 사람들이 강력하다.
가장 결연히 떨쳐 일어서고 가장 강력히 투쟁하는 사람들은 잃을게 없어서 겁이 없는 사람들이 아니라 지킬게 많은 집단이다. 조직도 있고 파업자금도 있는 민주노총이 강력히 저항하지, 돈도 없고 파편화되어 있는 임계장이 강력히 투쟁하던가. 기득권자들이 투쟁하지 않는 이유는 투쟁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지 투쟁력이 약하기 때문이 아니다.
공공의료도 그렇고 검찰개혁도 그렇고 현정권의 접근이 안이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코로나 위기에 의사들이 파업하지 않을거라고 믿고 정책을 추진하는 안일함. 윤석열같은 검찰 내부자, 정권 외부자로 검찰 개혁이 가능할 것으로 보는 안일함. 기득권을 만만히 보는 듯.
기득권 무서운줄 알아야 한다. 기득권의 투쟁력이 가장 강력하다.
Ps. 이 블로그에서 자주하는 얘기가 중산층이 복지 혜택을 보는데 하위계층이 같이 덕을 보는 시스템을 만드는게 제일 좋다는 것. 복지 기득권층을 양산해야 복지가 오래간다. 그래야 복지를 축소하고자할 때 복지 기득권층이 강력히 투쟁한다.
Pps. 그런 면에서 재난지원금 50% 지급보다는 전국민에게 주자는 이재명 지사의 주장이 낫다고 생각한다. 중산층이 재난지원금을 지지하게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다들 알듯이 세금 인상이 정말 어렵다. 전국민 재난지원금을 부여하고, 내년 연말 정산에서 일정 소득 이상은 추가 세금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국민적 합의를 끌어낼 수 있는 여지도 있다. 과거의 소득 통계에 근거해 지급하는게 아니라 일단 지급하고 현재의 소득통계를 나중에 계산해서 세금으로 환수하기 방식이다. 사각지대도 없어서 효율적이다. 이 방식은 재정면에서는 재난 지원금 일부 지원과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다. 세금 인상에 대한 저항감도 줄이고, 잘하면 중산층 이상의 세금을 영구히 높일 수도 있다.
Ppps. 세력에 대한 고려없는 정책 논의는 바보 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