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정의당 0석

정치 2024. 4. 14. 02:42

요즘 주로 들여다보는게 미국사회라서 블로그 포스팅이 예전보다 뜸한데, 그래도 총선에 대한 피상적 감상 몇 개는 있다. 

 

하나는 총선예측이다. 여론조사 회사와 관계자는 당연히 조사 데이터에 근거해서 예측하지만, 나름 논리를 가지고 총선 예측을 했던 몇 분이 생각난다. 

 

한겨레 성한용 기자는 3월에 "국힘 1당 확실"이라고 예측했다. 한겨레 신문에 그 논리를 실은 적도 있다. 이외에도 잘못된 예측을 한 분들이 꽤 된다. 이에 반해 유시민은 1월에 쓴 칼럼에서 총선은 민주당 안정적 우세로 진단했었다. 

 

제가 아는 가장 쪽집게 예측을 했던 분은 박종희 교수다. 논리인즉, 한국에서 대통령 임기 중반의 대통령 선거는 대통령 중간 평가 선거이고, 그 해 3-4월 대통령 국정 지지율 평균(34-38%)에 의석수 300을 곱하면 대략적인 여당의 의석수를 추정할 수 있다는거다. 그래서 102-114석 (평균 108석)이 예상된다는 것. 이 논리는 대통령제와 실질적 양당제를 채택하고 있는 한국 정치에서 국회의원 선거의 의미를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108석을 제외한 나머지 의석이 어떻게 유권자의 선택을 받는가라는 질문이 남는다. 거대 양당이 아닌 제3당의 득표와 의석은 그 나름의 분석을 필요로 한다. 이 번 선거에서 녹색정의당이 의석을 얻지 못한 것은 상당한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바로 한국 유권자 니즈의 보수화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앞으로 정책 전선이 우측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 몇 년 전에 포스팅한 적이 있는데 (요기, 요기), 한국에서 빈부격차가 큰 문제라는 인식과  분배 개선이 필요하다는 인식은 계속줄어들었고, 자신의 계층을 중층 이상으로 여기는 인식은 계속 늘었다. 바로 아래 포스팅에서 얘기했듯, 삶의 만족도는 계속 높아졌다. 그래서 데이터를 분석해 보면 정부의 개입을 통한 2차 분배 정책에 대한 지지도는 계속 줄어들었다. 특정 집단에서만 그런게 아니고, 전반적인 경향이다. 

 

녹색정의당이 원외 정당이 된 이유는 제도적 측면, 정치지형적 측면, 행위자의 전략적 측면에서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고 제가 잘 아는 것도 아니지만, 계층론의 관점에서 보면 정의당으로 상징되는 진보에 대한 정책적 니즈와 대표의 필요성이 줄어들었다. 지역구에서는 중도진보인 민주당을 찍지만, 그래도 한국에서 보다 진보적인 정당의 원내 진입과 이들의 선명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인구가 줄었다는 것. 

 

이를 한국의 불평등 증감 경향과 함께 보면 그 의미가 더 명확해 진다. 한국의 불평등은 90년대 중반이후 2008년까지 최하층의 소득 하락과 그 이상 계층의 소득 상승으로  증가했고, 최근 15년 이상 최하층의 소득 상승으로 줄어들었다. 불평등이 가장 심각한 사회문제라는 인식이 줄어드는 객관적 기반이 있다. 중하층을 포함한 대부분의 중산층이 경제적 처지의 개선을 경험했기에, 자신의 경제적 지위를 유지하려는 보수적 성향을 띄게 된다.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를 두고 논쟁했던 박근혜 대통령 당선 당시의 진보 호시절은 당분간 오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경제가 어떻게 변화할지 모르겠지만, 급격한 위기에 빠지지 않는 이상, 진보와 재분배의 확대보다는 체계적 관리를 통한 안정적 성장을 유권자들은 더 원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환경에서 진보 정책의 아젠다를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는가? 다르게 말하자면, 유권자의 전반적 보수화 경향 속에서도 어떻게 진보적 정책을 실현할 수 있을까? 한 방법은 정책의 보수화를 받아들이면서 점진적으로 일부 분야에서라도 진보적 아젠다를 실현하는 것이고 (클린턴), 다른 하나는 좁은 기회의 창을 활용하는 것이다 (오바마). 아무리 유권자가 보수화되어도 경제 위기 때는 사회적 안전망에 대한 니즈가 생기고 진보 정책을 밀어붙일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오바마가 2008년 위기 때 Affordable Care Act를 통과시킨 것처럼.  진보 정책을 준비하고 있으면 이 때 정책을 법제화할 수 있고, 이 후 진보적 정책은 당연히 누려야할 국민의 권리가 된다. 이 때문에 미국 유권자는 항상 유럽 유권자보다 보수적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정책 수립의 역사적 변화는 유럽과 미국의 방향이 같았다. 

 

좁은 기회의 창이 열릴 때 다수파가 될 수 있도록 전략을 짜는게 좋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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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Happiness Report 올해 보고서가 며칠 전에 출간되었다. 

 

OECD 국가로 한정해서 한국인의 행복도가 낮다는 보고서가 나올 때는 언론에서도 많이 다루고, SNS에서도 뜨거운 주제가 되었지만, 전세계 국가를 포함한 보고서는 나와도 대체로 조용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의 행복도가 낮지 않기 때문이다. 전체 143개 국가 중에서 한국은 52위로 높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심각하게 낮은 것도 아니다. 일본이 51위, 포르투갈이 55위다. 비슷한 경제발전 정도의 국가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낮은거지, 절대적으로 다른 나라보다 월등하게 사람들이 불행하게 느끼는 국가가 아니다. 

 

전에 비슷한 내용의 포스팅을 했더니 어떤 분이 "매우 만족"의 응답비율이 다른 국가보다 낮아서 한국은 불행한 국가라고 하더라. 이러저러하게 기준을 바꿔서 어떻게 해서든 한국은 불행해야만 한다는 강박.

 

행복을 측정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하나는 어제 오늘 느끼는 특점 시점의 감정이고, 다른 하나는 전반적인 삶의 만족도다. 보통 0-10점으로 물어보고 이걸 Centril ladder라고 한다. Centril ladder의 평균값으로 국가 간 비교를 많이 한다. 이 때 삶의 만족도를 결정하는 가장 강력한 요인은 1인당 GDP다. 사회적 관계, 신뢰 등 다른 요인은 무의미하다는게 아니고, 경제발전이 만족도에 가장 크게 영향을 끼친다. 

 

한국은 21세기 동안 가장 발전한 국가다.2006-2010년의 행복도와 비교해서 한국인의 행복도는 0.414 포인트 올랐다. 가장 많이 오른 순으로 분류해서 48위인데, 한국보다 더 행복도가 증가한 국가들이 어떤 국가인지를 보면 한국의 행복도 증가가 상당히 큰 폭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소위 말하는 선진국 중에서 한국보다 행복도 증가분에서 앞서는 국가는 거의 없다. 아이슬란드와 대만 정도. 이 번 보고서에서 행복도 1위를 차지한 핀란드가 0.162 포인트 늘었고, 일본은 전혀 변화가 없다. 2012년 보고서에서 일본은 한국보다 국가 간 랭킹에서 13단계 행복도가 높았지만, 지금은 차이가 없다. 연도별로 1단계 앞서거니 뒷서거니 한다. 미국은 .545 포인트 줄었다. 

 

한국은 2020년 보고서와 비교하면 랭킹이 61위에서 52위로 올랐다. 전체 연구대상 국가 숫자가 153개에서 143로 줄긴 했지만, 백분위 40등에서 36등으로 올랐다. 한국이 경제는 발전했지만, 예외적으로 불행한 국가라는 인식은 이제 거둘 때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연령대별 행복도에서 한국은 젊은층의 상대적 행복도가 장년층이나 노년층보다 높은 국가다. 국가별 랭킹에서 전체는 52위인데, 30대 이하 젊은층(Young)은 52위, 노년층(Old)은 59위다. 30대와 40대 초반(Lower Middle Age)은 45위로 상대적 랭킹이 가장 높다. 86세대가 속하는 장년층(Upper Middle Age)은 55위로, 젊은층이나 젊은 장년층보다는 낮다.

 

아래 그래프는 2024년 보고서의 부록에 실려있는 연령대별 Centril ladder 점수 값 변화다. 연령대별로 증가폭은 다르지만 모든 연령층에서 2006-2009년 대비 2020-2023의 값이 높다. 청년층의 만족도는 항상 가장 높았다. 청년층의 불만이라면 노년층이나 장년층에 비해 상대적 증가폭이 높지 않다는 정도.

 

아래 그래프에서 명확히 보이는 노년층 삶의 만족도 증가는 2008년 이후 지속된 취로사업 등 노년층 소득 확대를 위한 정책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요약하면, 경제는 계속 발전하는데 삶의 만족도는 지속적으로 낮아진다거나, 전체 경제는 좋아지고 다른 연령층은 꿀을 빠는데 젊은층은 더 불행해지는 그런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인의 삶의 만족도는 개선되었고, 다른 국가와 비교해서 낮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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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에서 20대 남녀 이념차가 한국에서 제일 크다는 FT 분석에 대한 기사를 냈다. 

 

jtbc 기사에서 페미니즘의 확산 이후 청년층의 성별 지지정당 격차가 커졌고, 특히 청년 남성에서 보수정당 지지가 높아졌다는 내용이 있다. 

 

그런데 청년 남성의 보수 정당 지지가 높아진 것을 어떻게 해석하는게 좋을까? 얼마전 넥슨 집게손 논란에서 이대남이 도덕적 아노미를 겪고 있을 가능성을 제기한 바 있다. 그 때는 직관에 의해서 말했던 건데, 데이터를 분석하다보니 실제로 그럴 가능성이 있어보인다.

 

아래 그래프는 2004년 이후 지지 정당이 있는 사람 중 지지정당과 이념성향이 일치하는 비율이다. KGSS 한국종합사회조사를 분석한 것으로, 지지정당을 보수와 진보로 나누고, 이념성향을 묻는 5점 척도 질문에서 중도를 제외한 진보와 보수로 묶어서, 지지하는 정당이 있다고 밝힌 사람 중에 지지정당과 이념성향이 일치하는 비율을 본 것이다. 

 

보다시피 지지 정당과 이념성향의 일치도는 꾸준히 늘었다. 21세기 초반에는 50% 정도였는데, 2021년 조사에서는 65%에 이른다. 전반적인 학력 상승, 지역 기반 정당 대결에서 정책 대결로의 전환으로 인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성*연령 그룹별로 변화를 보면 상당히 특이한 현상이 관찰된다.

 

아래 그림(B)는 18-34세 남녀, 35-59세 남녀의 지지 정당과 이념성향의 상대적 일치도를 본 것이다. 여기서 상대적이라고 하는 이유는, 그룹별 일치도에서 전체 응답자의 일치도 변화를 뺀 것이기 때문이다. 위의 그림(A)에서 관찰된 지지정당-이념성향 일치도 상승이 모든 그룹에서 나타나면 그래프는 모든 수평(flat)의 직선을 보일 것이다. 

 

그림(B)에서 보다시피, 모든 그룹이 0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대략  수평한 선을 보이는데, 유독 18-34세 청년 남성만 2021년 조사에서 지저 정당과 이념 성향의 상대적 일치도가 떨어진다. 이념적으로 진보라고 답하면서 지지정당은 보수인 청년 남성의 비율이 늘었기 때문이다.

 

2010년 이전에는 청년 여성보다 청년 남성의 이념-지지정당 일치율이 높았는데, 그 이후에는 반대의 현상이 보이기 시작해서, 청년 남성보다 청년 여성의 이념-지지정당 일치율이 상대적으로 높아지더니, 2021년에는 청년 남성의 일치율이 갑자기 떨어져 그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청년남성의 이념적 성향과 지지 정당이 일치하지 않는 아노미적 현상이 관찰된다는거다. 이게 2021년의 자료가 튀는 것인지, 이런 현상이 고착화되는 것인지, 이 분석으로는 알 수 없다. 2023년 KGSS 자료가 나오면 좀 더 분석이 가능할 것이다. 

 

 

Ps. 18-29가 아닌 18-34로 분석한 이유는 표본수를 늘려서 reliability를 높이기 위해서다. 18-29로 분석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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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ancial Times 기사

 

이 기사에 나온 아래 그래프 때문에 SNS가 난리가 났다. 모두들 한 마디씩 거드는 중. 분석한 4개 국가 모두 청년층 여성이 남성보다 더 진보적이고 성별 정치 성향의 격차가 벌어지는데, 특히 한국의 사례가 가장 극단적으로 나타났다.

 

 

기사의 임팩트가 크다보니 이 분석에 제대로 된 분석인지 많은 분들이 검증에 나섰다. 하지만 정확한 자료 replication에 성공한 분들은 없는 듯 하다. 그래프의 주석을 보면 한국은 KGSS조사의 지지정당 항목을 분석한 것이고, 따라서 어떤 정당을 진보와 보수로 묶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전체 인구의 추세에 맞춰 조정 (adjusted for time trend in the overall population)"했다고 한다. 뭔가 추세 분석을 해서 그래프를 스무딩했다는건데 정확히 어떻게 했는지 알 수가 없다. 

 

저도 이것저것 해 봤는데 동일한 그래프를 얻는데는 실패했다. 하지만 FT 기사의 핵심 메시지, 그 중에서 한국 관련 분석은 타당해 보인다. 아래 그래프는 KGSS를 이용해서 지지 정당의 성별 격차 추세를 분석한 것이다. (A)는 18-29세의 청년층으로 한정한 것이고, (B)는 전체 응답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다. 0보다 큰 값은 여성이 더 진보계열 정당을 지지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고, 0보다 작은 값은 남성이 더 진보계열 정당을 지지하는 것이다. 0에 가까우면 성별 격차가 없는 것이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아래 그래프는 전반적으로 진보나 보수 정당 중 어느 쪽을 지지하냐가 아니라, 이 지지 경향의 성별 격차를 봤다는거다. 

 

보다시피 청년층은 시간이 갈수록 여성과 남성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여성이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경향이 남성보다 크다. 2015년 이후 급작스럽게 변화한게 아니고, 21세기 전반에 걸친 경향적 변화다.  이에 반해 전체 국민으로보면 성별 분화가 보이지 않는다. 시기별로 진보 정당이 더 지지를 받기도, 보수 정당이 더 지지를 받기도 하지만, 성별로 다른 추세적 경향이 나타나지 않는다.  

 

여러 분석에서 반복적으로 관찰되는 것으로 보아, 청년층 세대 정치 태도의 성별 분화는 확실한 경향이다. 

 

세대 얘기만 나오면 소환되는 약방의 감초 만하임의 세대 분석 중에 "세대 내 분화"라는 개념이 있다. 세대 얘기하면서 거의 언급되지 않는 개념이지만, 청년 세대의 특징은 다른 세대와의 차이보다는 청년 세대 내부 분화가 더 특이점이다. 

Ps. 위 그래프는 (1) KGSS 각 연도별 지지 정당을 보수 정당과 진보 정당으로 구분한 후 (변수명: PRTYID03~PRTYID21, PRTYPR04~PRTYPR21) (2) 성별 진보/보수 지지 비율을 단순 계산한 후, (3) 진보 지지율에서 보수 지지율을 빼서 성별로 "진보 지지율의 상대적 우위"를 계산한 후, (4)  "진보 지지율의 상대적 우위" 의 성별 격차를 본 것이다. 이렇게 계산하면 연도에 따라 전체적으로 진보계열 정당의 지지율이 높아지거나, 보수계열 정당의 지지율이 더 올라가는 효과가 통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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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기사: 자기 논문 표절한 조성경 과기부 차관의 박사논문

관련된 박치욱 교수 트윗

 

한국에서는 학위 논문을 하드카버 제본해서 학교에도 제출하고 지인들과 공유한다. 학위 논문을 학술연구의 최종 결과물로 보는 분위기가 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사회학 국제 학술장에서 박사학위 논문의 위치는 unpublished manuscript 이다. 출간이 안된 초고지 그 자체가 논문 출간 성과가 아니다.

 

학위 논문과 관련해 많이 하는 농담 중 하나가, 교수들의 석사 논문을 찾아서 드러내겠다는거다. 그만큼 석사 논문은 질적 수준이 낮은 경우가 많다. 저도 돌이켜 생각하면 석사 논문은 흑역사다.  

 

대학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하는 고정 레파토리 중 하나가, 여기 들어온 사람 중에 칼 맑스, 막스 베버, 에밀 뒤르켐의 박사 논문 찾아본 사람 있냐는거다. 아무도(는 아니지만 극소수를 제외한 거의 모든 사회학자들이) 사회학 founding fathers의 박사 논문을 찾아보지 않는다. 하물며 석사 논문은 듣도보도 못했을거다. 제 포인트는 그러니 석사 논문 쓰는데 하세월을 보내지 말라는거다. 석사 논문의 지위가 이렇다보니, 논문을 쓰지 않고 석사 학위를 부여하는 교육기관도 크게 늘었다. 

 

석사논문을 더 발전시켜 박사 논문으로 만드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고 이걸 표절이라고 하는 경우는 없다. 자기 석사 논문에 비슷한 내용이 있다고 인용구를 다는 경우도 한 번도 본적이 없다. 저널 아티클로 실린 논문은 박사 논문에 반드시 인용을 표시해야 하지만, 석사 논문에 썼던 내용은 하지 않아도 되는건 아니지 않은가. 

 

미국 사회학과에서 잘 쓴 박사 논문은 저널에 아티클로 이미 실렸거나 앞으로 실릴 것이고, 긴호흡의 박사 논문은 책으로 나올 것이다. 한국이라고 달라야 할 이유가 있나? 예를 들어 2018년에 출간된 김도균 선생의 <한국 복지자본주의의 역사>는 잘 쓴 박사논문 기반 학술도서다. 저널 아티클이나 단행본으로 나오지 않는 박사 논문은,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읽어볼 가치가 그리 높지 않은 경우가 많다. 논문 3개를 묶어서 학위 논문으로 제출하는 경우도 많은데, 잘쓴 챕터는 저널 아티클로 나오고, 미숙한 챕터는 학위 논문의 한 챕터로 그치고 만다. 남의 박사 논문 굳이 찾아서 읽어볼 필요는 거의 없다고도 학생들에게 얘기한다. 

 

그러니 박사논문이 자기의 다른 논문 표절이라는 것은 타당하지 않은 공격이다. 한국은 뭔가 기준이 다르다고 항변하는 분들도 있는데, 그런 식이면 외국 대학에서 학위를 받고 성과가 좋아서 한국에 돌아온 한국 교수들 거의 모두가 박사 논문을 표절한 논문이 있거나, 자기 논문을 표절한 내용이 박사 논문에 있을 것이고, 한국 대학은 그 표절 논문에 높은 점수를 부여하고 그 교수를 임용했을 것이다. 자기 모순이 되어 버린다. 

 

 

 

그러면 박사 논문은 무엇인가? 

 

이건 학위 취득자가 독립적 연구자로써 유의미한 학술적 기여를 할 수 있을 능력이 된다는 일종의 자격증 비슷한거다. 크리덴셜(credential)이지 논문 출간 성과에 카운트하지 않는다. 

 

자격증을 취득했으니 그 기술을 절차탁마하여 성과를 내는게 학위 취득 후의 연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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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 Kim (2024) Aging and the Rise in Bottom Income Inequality in Korea

 

한국에서 한경의 번역 왜곡으로 논란이 되었던 노벨상 수상자 Angus Deaton의 유명한 논문 중에 고령화와 불평등의 관계를 다룬게 있다 (Deaton & Paxson 1994, 1995). 나이가 들수록 인적자본의 리턴이 달라지고, 우연에 의한 인생변화의 확률이 누적되고, 노동소득보다는 자본소득의 상대적 중요성이 커지는데, 상속자산은 늘어난다. 그래서 고연령층 내부의 불평등은 다른 연령층 내부의 불평등 보다 크다. 그런데 고령화는 고연령층의 비중 상승을 의미하고, 따라서 내부 불평등이 큰 인구의 비중이 늘면서 전체 불평등이 증가한다. 처음 연구가 대만을 분석한 것인데, 미국, 일본 연구에서도 이 주장이 검증되었다.  

 

그런데 한국은 일반적인 고령화와 다른 특징이 하나 있다. 바로 노인 빈곤이다. 한국의 고령화는 불평등 상승 뿐만 아니라 빈곤율의 상승으로 이어지고, 특히 상층에서의 불평등 상승이 아니라, 하층에서의 불평등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추측이다. 언론에서 자주 다루고 일부 학계에서 주장하듯이 톱 1%의 상층이나 상위 10%의 중상층이 중위계층과 분리되는게 아니라 (즉, 상위불평등 상승), 하위계층이 중위계층과 분리되는 현상(즉, 하위불평등 상승)이 고령화로 벌어질거라는게 저의 추론이다. 이 블로그에서 여러 번 했던 주장이다. 이 번 논문은 그 주장을 통계적으로 증명한 것이다. 

 

아래 그래프는 가계동향조사에서 균등화 시장소득 기준으로 상위 50%에 속하는 가구와 하위 50%에 속하는 가구에서 가구주의 연령 분포 변화를 보여준다. 70대 이상 고령층의 1998년 전체 가구의 1.8%에서 15.9%로 늘어나는데, 보다시피, 그 증가분의 대부분이 하위 50%에 집중되어 있다. 소득상위 50%에서 노인 가구의 증가분은 미미하다. 60대까지 포함하면 현재 하위 50% 가구의 거의 절반이 노인 가구다. 가난한 가구의 절반은 노인가구라는 말이다. 

 

이에 반해, 20-30대 청년 가구층은 인구 감소로 소득 상하위 모두에서 그 비중이 줄어들지만, 하위50%에서 더 크게 줄어든다. 과거에는 하위가구의 절반이 20-30대였는데, 지금은 18% 정도 밖에 안되고, 상위가구에서는 과거에는 40%였는데, 지금은 22%다. 가구 랭킹으로 봤을 때, 청년층 가구의  상대적 소득은 개선되었다. 

 

 

이 블로그에서 몇 번 얘기했지만(예를 들면 요기, 요기), 한국의 불평등은 상위불평등의 변화가 아니라 하위불평등의 변화로 특징지워진다. 아래 그래프에서 A는 가계동향조사고, B는 가계금융복지조사(가금복)이다. P90P10은 90%포인트 상위의 소득과 하위 10%포인트의 소득의 비율(정확히는 로그 소득의 격차)로 전체불평등을 나타내고, P90P50은 상층과 중위값의 격차로 상위불평등, P50P10은 중위값과 하위 10%포인트의 격차로 하위불평등을 나타낸다. 

 

1998년 이후 지금까지 가계동향조사를 이용하든 가금복으로 보든 상위불평등은 거의 변화가 없다. 전체불평등 변화는 모두 하위불평등의 변화에 의해서 추동되었다. 꼭 적절한 비유는 아니지만, 강남아파트 거주 고소득층과 월급쟁이의 차이가 전체 불평등에 중요한게 아니라, 월급쟁이와 폐지줍는 노인의 격차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여기서 질문은 이러한 변화를 추동하는 요인이 무엇인가이다. 

 

거기에 답하기 위해서 RIF (recentered influence function) 회귀분석 기반 요소분해법이라는 최신 통계방법론을 적용하였다. RIF 요소분해법이 이전 방법과 다른 특징은 전체 불평등 뿐만 아니라 상하위 불평등에 끼치는 여러 요인의 기여도를 분해 분석할 수 있다는 거다. 

 

그 결과가 아래 그래프다. Compositional change라는건, 예를 들어, 세대 간 소득격차의 차이는 그대로인데, 고령화로 노인인구가 상승함에 따라 불평등이 얼마나 바뀌는가를 보는거고, Rate Change는 인구구조는 그대로인데, 세대 간 소득격차 변화가 불평등에 끼치는 정도가 얼마인지를 계산한거다. 

 

보다시피 연령의 효과가 가장 크고 확실하다. 나머지 요인은 거의 영향력이 없거나 등락을 보일 뿐이다. 위의 그림을 보면 1998년에서 2008년까지는 불평등이 상승하고, 그 이후로는 하락한다. 그런데 아래 그림을 보면, 고령화는 전체 불평등이 줄어드는 2008년 이후에도 불평등을 키우는 구조적 요인이다. 1998-2008년 사이의 시장 소득 불평등 증가의 2/3는 하위소득 불평등 증가 때문이고, 이 증가의 절반이 순전히 고령화 때문이다. 2008-2016년 사이의 시장소득 불평등 하락은 고령화라는 구조적 불평등 증가요인에도 불구하고 하위계층의 소득상승으로 인하여 불평등이 줄어든 것이다. 

 

이 결과는 앞으로 고령화가 더 진행되면 한국의 소득 불평등은 상당한 추가 상승 압박을 받을거라는 의미다. 하위계층, 특히 고연령층의 소득 상승을 위한 정책적 조치가 없으면 불평등은 추가 상승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런데, 2008-2016 사이에 지속되는 고령화에도 불구하고 불평등이 줄어드는 이유는 하위계층 노인 가구의 소득 상승 때문이다. 노인층을 제외하면 소득 패턴에 거의 변화가 없다. 아래 그래프에서 보듯이 60세 이상 고연령층 중 하위 10%p의 소득이 2008년 이후 크게 늘었다. 그 이유는 취로 사업 때문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보수언론에서 매 번 비난하는 푼돈주는 노인알바 일자리다. 이 일자리는 글로벌 경제위기와 맞물린 MB 정권의 4대강, 재정확대에서 시작되었다는게 아이러니. 

 

 

위 그래프와 본문의 요소분해 결과를 종합하면, 고령화라는 인구구조 변화(composition)가 한국 불평등 증가의 첫 번째 구조적 압박 요인이고, 고연령층 내부의 소득변화, 특히 저소득 고연령층의 소득 변화(rate)는 한국 불평등 등락의 제 1 결정 요인이다.

 

한국 불평등이 최상층의 문제라는 판타지에서 벗어나, 대부분 신경쓰지 않는 폐지줍는 노인의 가난의 문법이라는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 한국은 국민연금 등 공적부조가 불평등을 오히려 늘리는 아이러니가 있는데, 상당수의 은퇴 노인이 국민연금 혜택을 받을 때 까지 노령연금을 대폭 올리는 등의 정책이 필요하다. 

 

 

 

 

Ps 1. 위 결과는 한국의 불평등 변화를 China Shock로 보는 최병천 소장 가설에 대한 간접적인 반박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불평등이 변화하는 이유가 China Shock라면 노인층에서만 하위 소득이 줄거나 늘어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주노동계층에서 그 효과가 나타나야지. 

 

Ps 2. 위의 요소분해 그래프(세번째 그림)에서 교육의 rate 효과가 0인데, 이는 기술변화로 인한 숙련편향 임금변화 효과가 한국에는 거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국의 대학 교육팽창은 고학력자 공급확대로 이어졌고, 그로 인해 고학력자와 저학력자의 상대적 임금 격차는 숙련편향 기술변화에도 불구하고 늘어나지 않았다. 대학 팽창이 불평등 상승을 억제했을 가능성이 높다.  

 

Ps 3. 위의 요소분해 그래프(세번째 그림)에서 Household composition과 economy of scale의 rate 효과 변동폭이 큰데, 그 이유는 두 효과가 서로 상쇄하기 때문이다. 두 효과를 합치면 거의 평평한 선이 된다. 그러니까, 걍 통계적 우연이다. 이 두 효과가 무엇인지는 논문 참조. 논문은 캔사스대학과 Elsevier의 계약 덕분에 게이트없이 무료 다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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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bin & Berntsen (2006) 논문, The Atlantic 4월호 기사

 

25세 이하일 때는 자신의 실제나이보다 주관적으로 더 나이가 많다고 느끼고, 20대 후반과 30대 때는 자신의 실제 나이와 주관적으로 느끼는 나이가 같고, 40세가 넘어가면 자신의 실제 나이 대비 주관적으로 20% 정도 더 젊다고 느낀다는 Rubin & Berntsen의 연구. 

 

Rubin & Berntsen 연구의 아래 그래프를 보면 실제 나이와 주관적 나이의 절대값 격차는 나이가 들수록 커진다. 그러니 40세 이상에서는 새해에 주관적으로는 나이를 한 살 더 먹는게 아니라, 0.8살 더 먹는거다. 

 

 

The Atlantic 기사를 보면 중세에 "천국에서 당신의 나이는 몇 살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졌고, 답은 33세였다고 한다. 열정과 성숙의 균형을 이루는 나이가 30대 초반이기 때문이라는게 설명이다. 너무 늙어서 힘이 빠지지도, 너무 어려서 미숙하지도 않은 나이가 30대 초반이라는거. 

 

그 때와 비교하면, 교육 기간이 길어져서 실제 성인으로 진입하는 연령이 많이 늦어졌다. 요즘은 교육을 모두 마치고, 세상의 경험도 쌓아서 성숙해진 연령이 40대 초반이 아닐까 싶다. 

 

나이가 들면서 자신이 20% 정도 더 젊다고 주관적으로 느끼는게, 단순한 착각이 아니라, 다른 한 편으로 아직은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미래에 대한 낙관(optimism)의 지표이기도 하다고. 그래서 경로사상이 있고, 나이든 사람들을 존중하는 아시아권에서는 실제 연령과 주관적 연령의 격차가 서구 사회보다 작다고 한다. 자신들이 여전히 가치있다고 느끼기에 주관적 연령을 낮게 인식할 필요가 없다고. 

 

이 블로그 보시는 분 중에, 주관적 나이를 한 살 더먹는 분과 0.8살 더 먹는 분들 모두 좋은 일이 많은 한 해가 되시기를.

 

 

 

Ps. 캔사스 시티에 Nelson-Atkins Museum이라고 상당히 괜찮은 미술관이 있다. 미국 대부분의 미술관이 약 $20 정도의 입장료를 받는데 여기는 무료다. 가끔 특별전만 요금을 받는다. 이 번에 모네 특별전이 있어서 갔다. 모네의 후기 작품이 추상표현주의와 연결되었다는 점을 교육적으로 잘 보여줘서 만족하긴 했지만, 프랑스에서 가져온 작품은 겨우 4점이었다. 이걸 특별전이라고 $22을 받다니 하고, 화가 날 뻔 했는데... 표파는 직원이 얼굴을 보고 나이를 물어보더니, 5X세 이상은 시니어 디스카운트를 해준다고. 거, 경로우대 연령이 너무 낮은거 아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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