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죽음이라고 안타깝지 않은 죽음은 없다.  

 

박원순의 욕망도 이해가 가고, 그의 약한 모습도 이해가 가고, 그가 자살을 결정하는 것도 다 이해가 간다. 지금까지 쌓아올린 명예가 한꺼번에 무너지고 자기 모순을 자기 스스로 견디기 어려웠겠지. 이미 돌아가신 분의 과오를 지나치게 후벼파는 것이 예의가 아니다. 친분이 있는 분들이 슬퍼하고 애통해할 시간을 가질 수 있게, 지나치게 선정적인 보도나 언급을 자제하는 것도 필요하다. 

 

박원순 시장이 없었다면 박근혜 정권을 무너뜨린 평화적 시위도 없었을 것이다. 변호사로써의 그의 활동도 칭송받아 마땅하다. 최장수 서울시장을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니다. 행정가로써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고 박원순 전시장은 권력의 탄압이나 언론의 모욕을 받은 정치인이 아니다. 본인의 저지른 잘못을 마주할 용기가 없어서 스스로의 목숨을 끊은 것. 그의 유서에는 모든 사람에게 사과를 했지만, 그를 자살로 이끈 행위나 피해자에 대해서 어떠한 언급도 없었다. 박 전시장의 행위는 분명한 피해자가 있고, 그 정도가 도덕적 형사적 책임을 피해갈 수 없는 정도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고 박원순 전시장이 공이 많은 분이나, 그가 죽음에 이른 길은 그의 과 때문이고,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남아있는 과제는 그의 공을 기리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많은 공에도 불구하고 그를 그렇게 이끈 문제를 직면하고 그렇지 않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한 사회가 얼마나 성숙했는가의 척도는 개인의 일탈 행동이 아니라 그 일탈이 발생한 후 어떻게 수습하는가이다. 성범죄, 성추행, 성적 일탈은 완전히 막을 수 없다. 인간 본능의 발현이고, 뭔가를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서 더 크게 나타나기도 한다. 이성의 영역은 그런 일이 벌어졌을 때 공적영역에서의 대처 방식이다. 

 

서울특별시장(葬)이라니, 공소권이 없다고 추잡한 범죄가 없어지나? 여당의원들이 줄줄이 나서서 그의 공을 기리고 추모할 때인가. 박원순 전시장의 장례는 가족, 친지, 그의 지인들이 조용하고 엄숙하게 치르도록 하고, 공적 영역에서는 왜 이런 일이 계속해서 벌어지는지, 왜 일회성 실수가 아니라 반복되었는지, 왜 중간에 멈추게 하는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았는지, 어떻게 하면 발생 빈도를 줄이고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지를 논의해야 하는 것 아닌가? 

 

안희정 전지사의 모친상 때의 정치권의 반응이나, 박원순 전시장의 자살에 대한 추모 방식이나,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대처의 원칙조차 세우지 못하고 있다. 진짜 갈 길이 멀다.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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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윤씨 2020.07.10 10: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옳은 말씀입니다.
    민주당 지도부는 이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고
    민주당 극성 지지자들은 할말 못할말 가리지도 못하고 있는 걸 보니
    이번 선거때 민주당 찍은 입장에서 참 부끄럽네요.

    그렇다고 미통당이 대안을 마련할 수 있을거 같지는 않고...

  2. totuta 2020.07.10 11: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회적 성숙의 또 다른 척도는 공과 과에 대한 이야기가 공존할 수 있는 분위기이기도 할 것입니다.

    극성 지지자들의 못할 말 만큼이나, 박시장의 행동을 위선과 쇼로 몰아가는 의견이 무섭습니다.

  3. 루미에 2020.07.10 13: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대처의 원칙조차 세우지 못하고있다.
    사실은 성범죄란 무엇인가?부터 이해를 못한 사람이 너무 많은것같습니다.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4. kc 2020.07.10 16: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공적 영역에서의 대처가 너무 실망스럽네요. 다들 친분 있는 사이였을 테니 인간 박원순에 대해서 추모하는 건 그러려니 싶은데 지자체장이 3연타로 성추문으로 끝을 보는데 여기에 대한 당의 반성도 해결에 대한 의지도 안 보이는 게 참... 비극은 일어났지만 고위공직자들한테 좋은 반면교사라도 됐으면 좋겠네요. 그거려면 민주당이 잘해야 될텐데 한숨만 나옵니다.

  5. 종종 2020.07.11 07: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 요즘 뉴스에 별 관심을 안 두고 있어 소식을 들었을때 범죄사실이 가려진 것도 아니고 시장이었으니 서울특별시장으로 하는 게 무슨 문제인가 싶었는데 이런 관점도 있겠군요. 감사합니다

  6. 건강 2020.07.11 20: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많은 사람들이 돌아가신 분의 사회적 무책임에 대해서 질타하시는데 저는 생각이 다른게 앞으로 성추행에 대한 사회적 책임의 무게에 대해서 더 집중하는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적 책임이 큰 직위나 위치에 있는 사람이 성추행 또는 그 유사한 행위를 한다면 앞으로의 기준은 목숨 내 놓으라는 뜻으로 이해한다면 돌아가신 분의 행위에 대해서 다사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 2020.07.12 03:22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뇨. 처벌은 법치주의의 원칙에 따라 주어진 시스템 하에서 공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런 사적인 자기 마무리가 선례로 남아서는 안 됩니다.

    • 건강 2020.07.12 18:25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런 사례에서 처벌이 공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법적인 처벌은 살아있는 사람에 대한 것이지 죽은 사람에게 가능하지 않지요. 남아 있는 사람들이야 이런 저런 얘기 모두 할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어떤 사람도 앞으로는 이런 짓 하지 말라는 돌아가신 분의 경고 정도로 충분할 듯 합니다.

    • 바이커 2020.07.12 20: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법적 처벌이야 당연히 없지만, 자살이 명예의 보호로 이어지는걸 사회적으로 경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7. 차분 2020.07.12 01: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죄의 대상에 대한 적시가 없다는 것은 황망하게 가신 당신이 필요하지 않았다는 판단 이었을 것이고 그저 막연한 죄송함은 본인 삶의 마지막을 제대로 정리하지 않고 가심에 대한 보편적 미안함이 이유라고 봅니다.
    민주계의 자살골이라는 저간의 풍문이 사실적 비극으로 받아들여 집니다.
    대한민국의 서민들은 이제 지들 편하게 그어진 좌,우 의 두 어르신들을 모시고 살게 되었습니다.
    이제 막 선진국으로 들어선 한국에는 서민들의 보호막이 없어진다는 신호탄입니다.
    마지막은 이재명 지사가 대미를 장식해 줄 것으로 봅니다.

  8. 썸마 2020.07.13 00: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 서울특별시장으로 장례가 치뤄지는 건, 공이 과보다 크다거나 고인이 시민운동 등에 몸을 바쳤다든가 등의 이유가 아닌, 법률과 제도에 의해서임.

    2. 위의 교수님이 말씀주셨듯이 굳이 서울시장으로 해야 했는냐에 대한 아쉬움은 있을 수 있으나, 그것 자체로 비난받아야 할 마땅한 이유는 없어보임

    3. 민주당은 당원이 모여 권력을 지향하는 정당단체임. 예고치못한 금번 일로 당내 일정 수준 이상의 당원들은 상실감/무력함 등의 깊은 상처를 입었을 것이 뻔함. 박원순 계파/당원을 버리는게 권력을 지향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한 것이 아니라면, 민주당은 당연히 박원순 시장에 대한 추모를 하는게 감성적으로 이성적으로 마땅하여 보임

    4. 박원순 기념관/추모비/훈장 등을 수여하는 게 아님. 정해진 절차/기준에 따라 장례 절차를 추모 분위기 속에서 진행하면 그 뿐임. 고인이 엄격하게 살았다고 해서, 장례식마자 엄격한 기준을 들이대어 야박하게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함.

    5. 오히려 본 정국을 기회로,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한 정치적 행위들이 난무하고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게 안타까울 뿐임.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던 한국 사회의 사건 중 하나가 용산참사였고, 그 다음이 최근의 인천공항공사 정규직화 사건이었다. 그런데 별안간 한국 사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깨달았다. 이 깨달음을 얻는데는 페북에서 Tilly를 언급한 최성수 교수의 영향도 컸다. 

 

초간단 정리를 미리 하자면, 한국 사회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은 (1) 구조적 사회이동의 기회가 줄어든 상황에서 (의미는 조금 다르지만 경제성장률이 떨어졌다는 것), (2) 기회평등의 개선으로 상위계층의 세습이 어려워지고, 전국민적 동질성으로 상위-하위계층 모두 동일한 지위를 둘러싼 경쟁이 격화되자, (3) 상위계층의 지위독점과 계급세습을 재확보하기 위한 사회적 배제 투쟁에 나섰는데, (4) 그 방식은 공정을 매개로 한 기회비축(opportunity hoarding)이다.  

 

틸리의 논의에 따르면 <지속되는 불평등>은 범주 구분에 의한 불평등(categorical inequality)이고, 착취와 기회비축(opportunity hoarding)으로 재생산된다. 한국 사회에서 착취는 이미 노동시장 분절화로 광범위하게 자행되고 있지만, 기회평등의 개선은 상위계층에게 후자(=기회비축)를 위기에 빠뜨렸다. 게다가 범주 구분의 수가 줄어들고 있다. 현재 성별만 확실한 기준으로 남았고, 과거에 크게 위력을 발휘하던 지역, 학벌의 영향력이 급감하였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은 기득권층의 기회독점을 위한 사회적 배제다. 시험에 접근하기 어려운 계층을 "공정"이라는 이름으로 제척하고 자신들만의 기회를 비축(opportunity hoarding)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일부 20대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상당한 크기의 코호트에서 사회전반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공정은 기회비축의 이데올로기적 정당화 기제이지, 실체적 기회평등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기회평등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인이 가족배경이다. 공정 담론이 실체적 기회평등으로 발전한다면, 가족배경의 영향력을 줄이는 방향으로 논의가 전개되어야 하는데, 현재의 논의는 가족 배경을 삭제하고 노력한 개인만 앞에 둔다. 

 

교육 불평등이 커지고 기회평등이 안이루어져서가 아니라, 교육 불평등이 작아지고 기회가 평등해지고, 사회가 전반적으로 공정해졌지만, 구조적 이동의 저하로 상향사회이동이 어려워지고 계급세습의 경로가 불분명해진 것이 원인이다. 

 

 

 

 

이는 한국사회가 처한 독특성에 기반한다. 지금 한국 사회는 불평등과 계층 재생산에서 역사적으로 어느나라도 겪지 않은 특이한 구조적 상황에 처해 있다. 

 

역사적으로 기회가 평등해지고, 사회가 전반적으로 공정해진 과정이 폭발적 경제성장기, 구조적 사회이동이 활발한 시기에 일어났었다. 이 과정에서 사회 전반이 진보로 바뀌었다. 서로 반목하던 집단 간의 분화도 약화된다. 많은 서구사회가 2차 대전 직후 역사적으로 이런 일을 경험했다. 북구 사회 뿐만 아니라 가장 보수적인 미국도 이 시기에 불평등이 줄어들고 복지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사회의 범주 구분도 약화되었다. 사회학자인 Richard Alba는 그의 책에서 미국에서 한 때 "하얀 깜둥이(화이트 니그로)"로 불렸던 아이리쉬(이태리인, 동유럽인)가 2차 대전 이후 주류백인으로 편입되는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생생하게 묘사한다. Alba는 현재의 소수인종도 IT 산업 혁명으로 구조적 사회이동이 활발해지면, 2차 대전 직후 벌어졌던 일이 다시 벌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구조적 사회이동은 경제가 발전하고 좋은 직업이 늘어나고 상위계층의 크기가 커지는 것이다. 순수사회이동이란 그런 구조적 변동과 관계없이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의 랭킹이 바뀌는 것이다. 순수사회이동이 늘어나면 하위계층이 상위계층으로 올라가는 일도 늘어나지만, 상위계층이 중간이나 그 이하로 떨어지는 일도 늘어난다. 하지만 구조적 사회이동이 활발하다면 상대적으로 부모 세대 대비 자식 세대에서 랭킹은 낮아졌지만, 부모 세대 대비 자식 세대에서 절대적 경제 수준은 높아진다. 통시적으로는 상대적 비교에서 하향이동이더라도, 절대적 비교에서는 상향이동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순수사회이동의 증가가 사회적 갈등을 낳지 않는다. 오히려 사회통합을 촉진한다. 한국도 한강의 기적으로 이러한 사회이동을 경험하였다. 

 

위험한 상황은 구조적으로 하향사회이동의 확률이 높아지는데 "순수" 사회이동이 커지는 경우다. 불평등도 증가한다. 경제가 폭망한 상황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 (예를 들면 칠레). IMF 직후의 한국 상황이 아마 이러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는 모두가 하향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자신의 하항이동이 구조적 상황의 결과인지 순수사회이동의 결과인지 불명확하다. 계급투쟁보다는 각자도생이 더 부각되는 상황이다. 

 

미국(과 다른 서구) 사회는 근래에 구조적 사회이동이 줄었지만, 순수사회이동은 변화가 없고, 계급화가 완성되어 있다. 불평등이 사회전반에 만연하고 기회불평등이 워낙 심해서 하위계층은 상위계층과 동일한 경쟁을 하지 않는다. 계급이동이 없어서 오히려 안정된 사회다. 많은 서구사회가 순수사회이동에 변화가 없고 안정되어 있다. 사회적 계급의 격차가 크고 계급세습이 안정적으로 구축되어 있다. 대부분의 사회가 안정된 계급세습 경향을 보이는 것을 두고 나온 사회학의 유명한 테제가 세대 간 사회이동의 constant fluidity다. 계층론 공부하는 사회학자면 누구나 아는 골드소프 등이 정리한 논의다. 구조적 변동을 통제하고 나면, 대부분의 서구사회가 국가 간 비교를 해도, 국가 내 통시적 비교를 해도, 순수계급이동은 비슷하다는 거다. 

 

이게 지금까지 자본주의 사회가 겪었던 경험이다. 

 

 

 

 

한국의 현재 상황은 위에서 언급한 일반적 역사적 경험과 다르다. 경제가 안정된 상황에서, 구조적 사회이동은 줄지만, 순수사회이동이 늘어나고 있다. Constant fluidity 테제에서 규명한 특징이 한국 사회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는 박현준 교수의 RSSM 논문도 있다. 상위 50% 내부의 불평등이 커지지 않고, 하위계층이 대거 대학에 진학하는 등 기회평등이 개선되었다. 상위계층부터 중하위계층까지 문화적 동질성을 유지하며 교육, 미래의 비젼을 공유하고 동일한 지위를 노린다. 그 결과로 순수사회이동이 늘어나면 상위계층의 하향이동 가능성도 높아진다. 그리고 상위계층의 입장에서 그 원인도 명확히 인식된다. 구조적 상황의 악화로 하향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기회균등으로 독점적 기회를 상실하고 경쟁에서 밀려서 하향이동하는 것이다. 계급세습구조의 고착화를 통한 안정적 재생산 욕구가 커질 수 밖에 없다. 

 

이전 포스팅에서 보여주었듯 한국사회에서 IMF 이후 늘어난 불평등도 상층과 나머지의 분리가 아니다. 상위 1/2 내지 2/3가 큰 불평등의 증가없이 같이간다. 상위 50%에서 불평등에 큰 변화가 없다는 것은, 동원할 수 있는 자원에서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최하위 계층을 배제했지만, 나머지 대다수의 계층이 불평등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배제되지 않고 경쟁에 그대로 남아 있다. 오히려 과거에 사교육 시장에 뛰어들지 않았던 중하층도 사교육의 보편화로 사교육 시장에 뛰어들어 교육 경쟁은 더 격화되었다. 몇 번의 포스팅에서 얘기했듯, 교육기회 불평등은 늘어나기는 커녕 줄어들었다. 

 

이러한 기회평등과 달리 노동시장은 분절되어 있고 불안정이 크다. (교육) 기회의 측면에서 계층 간의 격차는 blurry해지는데 반해, (노동시장) 결과의 측면에서 격차는 obvious하다. 특히 정규직-비정규직, 고용안정성의 차이가 크다. 이러한 안정된 고소득 직업의 기회를 배타적으로 향유하고 싶은 유혹이 클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최근들어서 세대 내에서 학력 간 소득격차가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논문 작업 중). 분절된 노동시장에서 특정 계층이 우월적 지위를 독점하면, 학력 간 소득격차도 늘어나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이는 상위계층의 노동시장 독점이 약화되었다는 신호다. 현대 사회에서 계급재생산의 가장 명확한 통로가 교육을 통한 재생산인데, 한국은 교육의 기회는 평등해지고, 교육을 받은 후의 학력 간 노동시장 격차는 줄어들고 있다. 계급을 재생산하겠다는 관점에서 보면 현대 사회 계급 재생산의 가장 중요한 통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공정을 명분으로, 노동시장 기회를 배타적으로 비축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공정담론이 "지균충"이라는 말을 만들어내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반대하는 등 주로 하위계층을 공격하는 것이 우연이 아니다. 공정은 분절되어 있는 노동시장에서 경쟁에 들어오고 있는 하위계층(내지는 사회적 약자)의 기회를 배제하는 기능을 하는 담론이다. 교육, 노동시장에서 "점수"로 줄세우기해서 계층의 순위를 명확히하고, 이 순위에 따라 상층에게 기회가 배타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가 공정 담론이다.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연대 대나무숲의 글은 그 욕망을 날 것 그대로 보여준다. 노오력을 기울여 점수를 확보한 자들과 그렇지 않은 자들로 category를 만든다. 

 

동질성이 특성인 한국 사회에 균열을 발생시켜 이질성을 확대하고 계층재생산을 안정화(=고착화)하고자 하는 것이다. 

 

최근 경제성장률, 노동시장 불평등 변화, 교육 불평등 변화, 세대 간 사회이동 변화, 담론의 변화가 모두 일관성있게 설명된다. 

 

 

 

 

어떤 결과가 기다라고 있을까?

(a) 4차 산업혁명의 성공으로 구조적 이동 확대.

모두가 해피한 상황이다.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그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b) 미국(서구)모델의 이식. 즉, 이질성을 확대하고 기회평등을 약화시켜, 불평등과 계층재생산 안정화. 

(c) 노동시장 분절구조 타파, 복지향상으로 기회평등과 결과평등 동시 확대. 

 

결국 (b)와 (c)의 전선이다. 어떤 연대로 (c)의 세력을 확장할 수 있을까? 청년층도 노조도 (b)에 천착한 상황에서 희망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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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Roll 2020.07.05 19: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렴풋이 생각만 하고 있던 내용이 이렇게 정리되니 명쾌하네요. 다음세대는 (b)에 올인한 느낌인데 노동의 분절에 이어 부동산 폭등으로 인한 주거의 분절로 인해 우리도 영국처럼 될까 두렵습니다.

    • 바이커 2020.07.05 21:05  댓글주소  수정/삭제

      한국은 지역간 소득격차가 작은 편이라 설마 영국처럼 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3. 음.. 2020.07.05 19: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c와 같은 경우가 정착한 나라가 있나요? 보면 c는 사회적 혼란기나 특수한 경우에 잠시 지나가는 징검다리같고 결국 b로 수렴하게 되는것 같은데..

    • 바이커 2020.07.05 21:06  댓글주소  수정/삭제

      위대한 갯츠비 커브(Great Gatsby Curve)를 생각하면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4. ㅎㅎ 2020.07.05 20: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노동시장의 "점수"에 개인의 노력보다 가족적 배경이 더 큰 비율을 차지한다는 말씀이신가요? 수능 공부해서 대학에 가고, 대학에서 좋은 학점을 받는 것에 '가족적 배경'의 영향력이 '개인의 노력'보다 적다면 이 글에 공감이 갈텐데, 저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네요.

    • Zero 2020.07.05 21:01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 노력에 가족적 배경이 들어가는 점을 도외시한다면 그렇게 되겠죠.

      세계에서 비행기 탈 사람 뒤지는 직원 뽑는데 업무와는 전혀 상관도 없는 국사 어딘가 구석의 (학계 바깥에서는) 트리비아 찍기로 줄을 세워야 공정하다는 담론이 진지하게 사회적으로 교환되는 예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

    • 댕댕이 2020.07.05 21: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노력 자체가 가족배경의 함수라는 이야기입니다.

  5. ㅁㄴㅇㄹ 2020.07.05 21: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읽었습니다.

    다만 공정 담론이 상위 계층이 하위 계층의 기회를 배제하기 위한 수단이란 말이 이해하기 어렵네요.

    교육적 불평등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점수로 줄세우기'가 상위 계급에 유리하다는 근거가 이해되지 않습니다. '개천에 용 난다'란 말에서 보듯 계급이동의 주요 통로이자 계급 세습을 막는 한가지 방법이라고 생각해왔는데요...

    • 바이커 2020.07.05 21: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대학팽창으로 대학진학자가 늘고, 전형의 다양화로 하위계층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한 유형도 있어 교육불평등은 줄지만, 수능 점수 줄세우기는 상위계층에게 상대적으로 더 유리합니다.

  6. Spatz 2020.07.06 01: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니까 순수하게 줄을 세우게 되면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쪽이 훨씬 유리하게 되는 것입죠. 여기에 개입을 하지 않으면 그걸 세습하는 꼴이 되는 거고요. 전에 업로드 했었던 거지만 9급공무원 시험도 소득계층에 따라 합격률이 갈려요. (통제해도 결과는 같다고 하네요) 그래서 여기에 인위적인 개입을 하게 되는 것. 가끔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고졸 출신이 사시에 합격하고 하는 일이 있지만 그를 제외한 9할 이상은 소득계층을 물려받는 셈이 되고요. 특히 "투자받지 못하는" 여성들은 더 가혹했죠.

  7. 단추 2020.07.06 02: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국사회의 공정담론이 실제 '공정함'과는 거리가 멀군요. 공정담론의 납작함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이 소외계층의 전략이 되어야 할 텐데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8. 익명 2020.07.06 05: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번사태에서 공정이라는 주장을 단지 시험을 유지하기 위한 꼼수라고 결론을 내어버렸는데 자신이 평소 가지고 있던 생각에 끼워맞추기식으로 단정을 내렸다고밖에 보이지 않는군요.

    공정에 대한 바램은 겨우 인국공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공정은 문제가 아니라 해결책입니다. 우리 사회의 여러 그룹들 사이에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갈등들을 중재할 유일한 수단입니다. 이제는과거 민주화-독재시대와는 다르게 정의를 두고 싸우지 않습니다. 그저 이익집단들이 이권을 두고 싸우고 있을 뿐입니다. 인국공은 이를 폭발시킨 마지막 한방울에 불과합니다. 타다를 위시한 와해적 IT혁신산업과 택시기사 사이의 갈등, 집있는 사람과 집 없는 사람의 갈등, 정규직-비정규직 간의 갈등, 심지어 젠더갈등조차도 그 첫 격전지는 공무원직을 누가 차지하냐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문제를 중재할 수 있는 대원칙이 공정입니다.

    인국공 상황에서 시험을 치지 않았다는 것 외에도 중요한 불만포인트가 한가지 더 존재합니다. 누구는 그저 운이 좋아서 대통령의 수혜를 받아 로또에 당첨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로또식 혜택이 이거 한가지가 아닙니다. 집값 상승을 막겠다고 분양가 상한제를 걸었습니다. 그 결과 추첨으로 운좋게 분양권에 당첨된 사람들이 모든 시세차익을 취하는 분양권 로또가 생겼습니다. 신혼특공, 청년특공으로 약자를 배려한다는 정책들이 그 커트라인 1cm에서 잘려나가 오히려 '배제'되버리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불공정하다는 생각을 심어주었는지를 아십니까? 부동산에는 이런 사례가 너무너무 많습니다. 그 외에도 현재 좌파적 기조에서 시행되고 있는 정책들이 전부 비슷한 형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반면에 너무나도 급진적 좌파정책으로 간주되었던 기본소득이 요즘 우리사회에 의외로 논의거리고 받아들여지고 전통적으로 이를 반대하던 우파들 역시 이 정책에 찬성/반대가 오가는 것은 이것이 공정한 정책이기 때문입니다. 공정은 시대정신입니다.

    여기까지 읽었는데도 여전히 공정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무기일 뿐이라고 주장하고 싶다면 왜 20대 상류층이 아니라 대다수의 20~30대가 분노했는지를 고민해 보십시오. 인국공 사태에 분노를 표출하는 사람은 시험을 쳐서 자리를 딴 공기업/공무원/대기업 사람들만이 아닙니다.

    • ㅇㅅㄷ 2020.07.06 10:36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원글을 이해하기로는... 미국이나 서구처럼 안정된 사회에서는 이미 불평등이 내재화되어 있고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때문에 "공정 담론"이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고 이해했습니다. 상류층이 자신의 위치를 유지하는데 위협이 없으니까요.

      반면 한국에서는 상류층부터 중류층까지가 교육경쟁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고, 이 과정에서 공정 담론이 드높아져 있는 셈이죠. 이 공정 담론은 상류층과 중류층이 비슷하게 맞붙을 수 있는 토양(?)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상류층이 온갖 수단을 써서 여전히 약간이나마 우세한 건 사실이고요. 아예 이런 교육 경쟁, 노동시장 경쟁에 뛰어들 여력이 없는 하류층에겐 더욱 거대한 벽이 되겠죠.

      본문 중에 "공정은 분절되어 있는 노동시장에서 경쟁에 들어오고 있는 하위계층(내지는 사회적 약자)의 기회를 배제하는 기능을 하는 담론이다." 라는 구절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위 계층이야 하위 계층 일이고, 그래도 무조건 '공정'하게 경쟁하는게 맞다고 하실 수도 있겠지만요.

      @ 주거 지원 정책이나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같은 정책이 '공정'을 훼손하는 정책이라 없어져야 한다면, 이런 하위 계층에 속한 분들은 (극히 힘들어도) 자력갱생으로 벗어나는 수 밖에 없을테고요. 적어도 하위 계층에 대해선 계층적 장벽이 공고해지겠지요.

    • 무슨 2020.07.06 21:19  댓글주소  수정/삭제

      1. 타다는 어떤 기술적 혁신도 이루지 않았습니다.
      2. 인국공이 왜 로또 당첨입니까? 비정규직은 원래 2년이상 근무하면 직접고용의무가 발생하는데요? 정규직 전환을 운이 좋은 로또당첨이라고 부르는 것은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며 부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경력을 무시하는 겁니다. 이게 공정입니까?
      3. 기본소득은 좌파정책 아닙니다. Negative Income Tax 주창한 사람이 누군지 찾아보고 오세요.

    • 담담 2020.07.07 10:45  댓글주소  수정/삭제

      지금 얘기되는 공정은 적어도 경제or학력에 있어 중간층 이상 그룹을 위한 공정이지요. 대다수의 20~30대가 분노한 게 아니라 중상층 이상의 20~30대가 분노한 거고요. 경제-학력 중간층 이하의 20대에게 물어보세요. 인국공이고 뭐고, 별 관심도 공감도 없습니다. 어차피 다른 세계 이야기거든요.

  9. 레치 2020.07.06 12: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 옛날의 대학 교육이 지금의 대학교육과 의미가 같지 않죠. 과거에는 대학 나오면 실질문혜율 계산능력 등에서 차이가 유의미했지만 요사이는 그런 보편적인 능력면에서 드라마틱한 향상이 힘들죠. 이게 특기가 확실한 기계나 컴퓨터 같은 기술직 이과라면 모르겠지만.. 문과 그리고 이과 중에서도 순수학문의 경우 취업시장에서의 매리트가 크지 않다 봅니다. 그러다보니... 공기업은 나름 교육받았지만 기대한 만큼의 직장 얻는게 요원한 나름 앨리트들에게는 성지였고... 그러다보니 결국... 비정규직 정규직화라니 뭔 개소리냐 공정하게 시험쳐서 들어가는개 사회정의다 같은 소리가 나오는 것이겠쥬

  10. 교수 2020.07.07 02: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진짜 식견 짧은 사람이 쓴 게 티가 너무 난다

  11. 2020.07.07 06: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박살난 가족배경을 가진 흙수저가 열심히 해서 명문대 갔더니 졸지에 상위 계층의 기회비축에 동조하는 기득권 적폐가 되어버렸네요.

    글쓴 분께선 높은 학력, 좋은 학벌 집단과 상위계층이 일치한다고 여기시는 것 같네요. 그 집단에 상위 계층이 많이 포진되어 있는 건 맞지만(명문대의 경우 소득분위 기준 상위 20%가 약 40%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절반 정도 되는 나머지 중하위 계층 입장에서 공정 담론은 대학을 통한 불평등 완화에 가깝다고 봅니다.

    글에 쓰셨듯 교육 기회가 평등해지고 모든 계층이 교육 경쟁에 뛰어들었습니다. 때문에 20대의 대부분이 경쟁의 룰로서의 공정을 그만큼 중요하게 여기는 것 아니겠습니까. 웬만한 대학 다니는 사람들 중에서 흙수저부터 금수저까지 모두가 공정 담론을 이야기하고 있잖아요? 노력해서 (좋은) 대학 들어간 중하위층이 있고(혹은 늘어났고), 그들 입장에서는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도 싶어하는거구요.(그 사람들이 느끼는 것에 대한 사실적 기술) 그리고 그 보상은 취업에서 자신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험 등으로 진행되는 거겠죠. 이게 상위 계층의 기회비축인가요. 아니면 대학을 통한 불평등 완화인가요. 얼마만큼이 기회비축이고 얼마만큼이 대학을 통한 불평등 완화인가요.

    적어도 명문대 간 흙수저들에게는 대학 교육을 통한 불평등 완화의 사례가 될 수 있겠네요. 차라리 대학 입시때 흙수저들을 교육적으로 엄청 지원해서 좋은 대학에 훨씬 더 많이 가도록 서포트하는게 랜덤 취업보다는 좋은 기회 평등의 사례가 되겠지요.

    저번 글에서 쓰셨듯 입사시 전형의 다양화가 필요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적어도 이번 인국공 사태에서 분노하는 이유는 바늘구멍 같이 들어가기 어려운 인국공 정규직 채용임에도 그 절차가 열리지 않은채 대통령 방문 시점을 기준으로 정규직 전환이 결정되었다는 것이겠죠. 일하던 사람들에게 가산점 주고 정규직 공채하든가 경력자 우대해서 같이 경쟁하게 했으면 다들 이렇게 화내지는 않았을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고용유연화해서 공기업 정규직 같은 신의 직장이 사라지는게 좁은 문을 열여주는 길이라고 봅니다.

    • 바이커 2020.07.07 10:18  댓글주소  수정/삭제

      일치한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확률적으로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과 개별 사례가 일치한다는 것은 많이 다릅니다.

    • Spatz 2020.07.08 01: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부동산 업자들이 정책 비판할때 항상 개미를 끌고 오고, 상류층 명문대 자제들이 항상 비판할 때 주변에서 얼마 보지도 않은 흙수저 친구들을 데리고 오더라고요.

      걍 까고 말해서 한 다리 건너면 어디 기자고, 대기업이고, 공기업다니는 선배들이 쌔고 쌘 더 나은 인프라와 선후배 인맥을 가지고도 취직 못 하는 것이 본인 능력의 한계라고 생각해보지는 않으셨는지 모르겠네요. "능력주의"로 따져도 못 뽑을 정도로 폐급이란거 아니겠어요. 아! 하나 더 있습니다. 거기 나오는 면접관이나 평가자들도 자기 선배, 남성일 가능성이 농후하죠. 이렇게 기울여 줬는데도 못 하면 반성부터 해야 하는것 아닌지..

    • 애독자 사마귀 2020.07.08 02:34  댓글주소  수정/삭제

      흙//
      흙님이 그 인국공 정규직 취업 준비를 하셨는지 모르겠지만 명문대 간 흙수저께서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서 보안 검색요원 자리 노리고 있던건지 여쭤보고 싶네요. 심지어 정규직 전환 전 비정규직 자리를요?

  12. 20대 2020.07.07 10: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읽었습니다. 상당히 일관된 논리가 인상적입니다. 하지만 그만큼 일관된 악의성, 혹은 단순화도 인상적입니다.

    먼저 밝혀두자면 전 20대이며 글에서 계급 재생산을 원하는, 그러나 그 수단은 막혀가는 명문대 출신입니다. 하지만 STEM 관련 공부를 하며 플랜B로 (본문의 교육의 평준화에 힘입어)대치동을 생각했으면 생각했지 공무원은 생각조차 한적이 없으므로 문제의 인국공 문제와는 쥐꼬리만큼도 이해관계가 없습니다. 2000명이 정규직이 되든 0명이 되든 10000명이 되든 제 인생에는 아무런 영향도 없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을 그저 넘기고 싶진 않습니다. 글에서 계급 재생산화의 수단으로만 말해지는 '공정' 때문에요.

    제게는 가까운 순서대로, 그리고 글 순서와는 거꾸로 가봅시다. 공정담론이 '지균충'이라는 말을 만들어 내는 것이 우연이 아니라고 하였죠. 기득권은 평등해지는 교육 상황에서 점수라는 기준으로 하위 계층을 공격하기 위해서 필요하기 때문에 만들어 졌단 의미로. 그런데 정말로 그렇습니까?

    감히 의심치 않건데, 전 교수님보다 인터넷 하위문화에 익숙하며 또한 비슷한 나이의 명문대생들과 더 많이 교류합니다. 뭐 후자는 저의 빈약한 사회성으로 인해 아닐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학부 4년을 다녔습니다. 그리고 인터넷 1시간이면 학부시절 동안 오프라인에서 경험한 것보다 더 많은 '지균충' 논의를 경험할 수 있지요. 적어도 '지균충'은 학교 내부에서 공공연하게 지배적으로 논의되는 담론이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동의하지도 경험하기도 힘든 담론이며, 존재한다면 음지에서 찌질하게 나오는 담론이지요.

    그럼 이 찌질한 인간들은 누구일까요? 그리고 누구를 공격하는 걸까요? 글의 논리에 의하면 기득권이 계층재생산을 위해 점수라는 방법론을 이용해 하위계층의 기회를 막으려하는 것이겠죠. 하지만 적어도 접한 상황은 정반대입니다. '지균충'을 입에 담는 이들의 학벌은 대부분 명문대가 아닙니다. 심지어 아직 고등학교를 졸업하지도 않은 이들도 많죠. 스스로 밝히는 집안 배경도 대부분은 기득권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들이 공격하는 대상은 바로 계층 재생산을 하는 기득권입니다. 흔히 이런식이죠.

    '서울대 지원 기준이 3등급으로 택도 없는데 최저 3등급해봐야 뭐함 오히려 비리 입학이나 쉬워지지' (실제 인터넷에서 가져왔습니다.)
    사실 이 '지균충'논의는 '수시충'로 이어집니다. 애초에 지균이란 전형이 수시의 일부니까요. 그리고 수시에 대한 반감은 하위층의 '부적절한' 입학에 대한 우려보다 기득권층의 학벌 대물림에 대한 우려가 절대적이죠. 뭐 sky 캐슬에 대한 반응이 어느정도 이를 보여줬다는군요. 전 안봤지만.


    사실 '지균충' '수시충' 논의가 학내 커뮤니티에서 가시화된적이 최근에 있었습니다. 작년 8월~9월즈음에 어느 고위 공직자 딸의 대입 논란의 연장선이었죠. '지균충' '수시충'을 가장 많이 사용하며 증오하는 계층은 기득권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단어들로 공격하려는 대상이며, 사용하는 이는 자신들이 보기에 신뢰할 수 없는 대입제도에서 소외된 하위계층이에요. 수시 비율 논란부터 이런 맥락은 계속되어왔습니다.


    이 글에서는 공정, 점수 담론을 시험에 접근 가능한 계층이 그렇지 않은 계층을 배제하는 방법으로 애기하죠. 역시 이 글에 따르면 교육불평등은 약해지고있으며, 중하위 계층까지 교육(~=시험)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정직원의 인식은 절대 중하위계층이 아닙니다. 그럼 결국 중하위 계층에게는 시험은 게층의 재생산과 고착화가 아니라 상승수단으로 볼 수 밖에 없지 않습니까? 이들은 교육에서 배제된 최하위 계층의 격우는 자신들이 그러했듯 결국 교육에 접근 가능해질 것으로 생각할 수 있고 또 그것을 반대하지도 않을겁니다. 무엇보다도 이들에게는 신뢰할 수 있는, '공정한' 방법입니다.


    이 '공정'이 단편적이고 실질적으로 문제가 많다는건 다른 글에서도 잘 봤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 사람들이 이 단어에 매달리며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완전히 계급적 담론으로 치부하는 것은 지나치다 생각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 '공정'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수단 그 이상이며 과정과 결과에 신뢰란 도덕적 가치를 부여하는 존재잖습니까.

    많은 것들을 설명하는 '일관성'을 위해 무시해선 안될 부분들을 무시하고 단순화 시켰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 '일관성'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무시된 담론들이 다시 한번 그 존재를 드러낼 땐 '일관성'이 여전히 유효할지 모르겠습니다.




    • 바이커 2020.07.07 10:40  댓글주소  수정/삭제

      하위계층이 상위계층보다 상대적으로 수시를 수능정시보다 더 선호합니다. 수능에 더 집착하는 집단은 상위계층이지 하위계층이 아닙니다.

    • 20대 2020.07.07 12:10  댓글주소  수정/삭제

      입시 제도 선호의 통계가 그래서 제 주장의 무엇을 반박하나요? '지균충' 담론은 절대 주류가 아님을 밝혔습니다. 또한 이 담론의 (적어도 표면적인)주요 공격대상, 논리도 파괴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글에서의 일관성이 이번 사태의 한쪽 진여을 하위 계층을 배제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얻으려 하는 집단으로 만든다음 따라서 닥치고 있으라는 것 이외에 어떤 해결책을 제시합니까?

      이해하기 힘들며 비주류인 혐오발언의 존재와 그로 인해 절대 소수가 아닌 계층이 이득을 본다는 사실이 이 둘을 일치시키지도 않으며 이들이 얘기하는 (그리고 적지 않은이가 받아들이는)도덕적 가치를 부정할 수도 없으며 따라서 이 모든 담론을 이해관계와 계급갈등으로 만들지도 않습니다.

    • 바이커 2020.07.07 12:36  댓글주소  수정/삭제

      하위계층이 "수시충"거리면서 더 싫어한다는 관찰은 일부 현상을 근거없이 확대한 것이라는거죠.

    • 20대 2020.07.07 12:52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게 해석될 여지가 있군요. 그럼 '수시충' 담론에 (적어도 표면적으로는)기득권의 계층 재생산, 신뢰성 등을 연결시키는 이들이 존재하며 글에서 얘기되는 방향과 무관하거나 정반대 방향의 논리가 존재하는건 동의하시나요?

    • 바이커 2020.07.07 12: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당연히 존재하겠죠. 그러니까 공정담론이 힘을 발휘할 수 있는거고요. 이데올로기가 원래 "허위의식"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 20대 2020.07.07 13:26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럼 이 글의 '일관성'이 저 '허위의식'의 논리를 파괴합니까? 그리고 그 내재논리와는 별개로 이 허위의식의 영향에서 벗어나게 합니까? 결국 이 일관성은 1/2내지 2/3의 계층이 그 아래 계층을 배제하지 않을 당위성도 이득도 알려주지 않고 대립시키면서 표면적인 도덕적 가치에 설득된 이들도 설득하지 못하는거 아닙니까? 그리고 이것이 의존하는 거시적 도식화와 경향성 파악의 방식으로는 여러 역겨운 주장들이 일관성이란 기준하에서 성립하는거 아닙니까?

      이 글은 사태를 보는 다른 방식을 보여주고, 현 상황의 일면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글에서 여러 담론들의 일관된 도식화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당혹스럽기만 하네요.

    • 바이커 2020.07.07 13: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무슨 주장을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는데, 모든 분석, 이론, 기술은 추상이고 현실 그 자체가 아닙니다. 단순한 기술로 많은 것을 일관성있게 설명해내는 이론이 가장 좋은 추상입니다.

      구체적 현실에서 어떤 변주가 일어나는지 파악하고 그 복잡성을 추가하는 것은 또 다른 작업이고요.

    • 윤씨 2020.07.07 22:01  댓글주소  수정/삭제

      정시/수시 논의는(지균 포함)은 명문대학교 커뮤니티에서도 10년 전 부터 꾸준히 언급되는 주제였습니다....

    • Spatz 2020.07.08 01:27  댓글주소  수정/삭제

      재미있네요. 스누라이프, 에타를 비롯한 커뮤니티들에서 수시충 등을 비롯한 혐오발언이 얼마나 많았는데 그걸 덮으려고 하시다니.... 계급적 요소 분명히 있습니다. 오히려 님이 하위문화에 익숙하지 않은거 아닌가요? 심지어 공감도 많이 받더군요. 왠지 아세요? 그 사람들이 자기가 갈 (행시) 재경직같은 고위층 자리를 뺏는다고 생각하거든요.

  13. 그런데 2020.07.07 11: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헌데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수시가 어떤 형태를 말씀하시는지요?

    1. 학교내 축적된 내신성적 + 교내 수상 성적 위주의 수시

    2. 해외 여행 다녀와서 책 쓴 경험, 밴드 만들어본 경험, 교수와 협업해서 논문 하나 써본 경험, 기타 경시대회 수상 등. 흔히 미국 명문 대학입시에서 좋아하는 '다양성'.


    1번은 초기 수시와 요즘 다시 강조되는 수시 방식인데, 이 방식은 확실히 계층 이동에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이건 세밀하게 보면 대체로 정량평가의 축적이지. 정성평가는 아니겠지요.

    다양성으로 포장되는 수시는 2번인데, 이거는 돈 없이는 어렵습니다. 2번이 이명박 정부 부터 나와서 박근혜 정부 중기부터 사회적 비판이 나오더니 최근에 줄어드는 방이고, 작년에 그렇게 시끄러웠던 그 양반 자식이 바로 이 방식으로 대학에 갔지요.

    2번 방식은 진보진영이 좋아하는 '줄세우기 없고, 창의적이고, 무언가 진취적인' 느낌은 있는데 돈 없으면 어렵지요. 돈 없는 애들이 특이한 경력 쌓기가 될리가 없고, 굳이 그런 집안 애들하고 놀아주면서 논문 써줄 교수들도 없겠지요. (이건 교수님이 더 잘 인정하실테고)

    그래서 저는 수시 정시 논쟁 때마다 이게 궁금하더군요. 수시와 학력고사가 전혀 다른 형태의 시험이듯 수시도 전혀 방식이 다른게 있는데 어떤 식으로 하자는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물론 최근 들어서는 진보쪽에서도 교과전형 위주 수시를 받아들이는 쪽이긴 하지만, 여전히 철없이 (명확하게 철없다고 봅니다) 바칼로레아 같은거 떠드는 사람들도 남아있지요.

    • 바이커 2020.07.07 12:38  댓글주소  수정/삭제

      2의 숫자는 매우 작습니다. 그리고 학종은 워낙 다양해서 어떤 유형은 상위계층이 어떤 유형은 하위계층이 유리합니다.

      이 문제는 몇 달 내에 자세하게 얘기하겠습니다.

  14. 글Tp 2020.07.07 11: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동의할 수는 있으나 차차리 위의 20대 학생분의 글이 틀릴 수 있겠지만 더 직관적이긴 하네요. 체감이 틀렸고 완벽한 공정은 없고 결과평등을 추구하고 + 기회평등인데 현제도가 최선은 아니겠지만 역시 늙어서그런가(교수님보다는 제가 조금 더 젊지만;;) 더 나은 것도 없는데 왜그래... 같은 생각도 드네요ㅋㅋ 그러면 뭐가 더 좋은데? 구관이 명관아닌가 같은 게으른 뇌가 반응하는군요.

    물론 교수님의 주장처럼 그런 계급화 계층화 제도적 차별 공정으로 포장된 줄세우기 등등 말씀하시는 게 맞을 수는 있는데... 실제로도 그렇게 느끼는 것도 많구요.

    본문의 글은 큰 학계의 논의를 다 담기에는 일부러 단순하게 만든 것이 아닌지...
    솔직히 지금의 시험이 최선이 아니다한들 결과적으로 누구말데로 퍼주는 거 외에는 방법 없지 않습니까. 그러면 페어하게 같은 시험으로 배경을 다 다르지만 그냥 다이다이 뜨자는 게 제일 공평하겠죠.

    말씀 좋습니다만 솔직히 이런 식으로 논의가 가니 일반인에게 개소리니 탁상공론이니 소리가 나오는 게 아닌가합니다... 뭐 저도 학계에서 남들은 신경도 안쓰는 논문쓰면서 일하지만 여태까지의 포스팅을 거진 다 봤기에 주장하시는 바의 넓은 뜻은 제가 넌지시 이해를 하지만... 뭔가 도식화되는 거 같군요.

    뭐...이런 글은 제 낮은 이해로 생긴 감상평정도겠지요.
    뭐가되었든 더 공정하고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데에 힘써주세요. 감사합니다.

  15. 단추 2020.07.07 20: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한국의 현재 상황은 위에서 언급한 일반적 역사적 경험과 다르다. 경제가 안정된 상황에서, 구조적 사회이동은 줄지만, 순수사회이동이 늘어나고 있다. Constant fluidity 테제에서 규명한 특징이 한국 사회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는 박현준 교수의 RSSM 논문도 있다. 상위 50% 내부의 불평등이 커지지 않고, 하위계층이 대거 대학에 진학하는 등 기회평등이 개선되었다."

    라고 하셨는데, 한국 사회의 기회평등이 다른 나라와 달리 개선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결국 철저한 능력주의 정책, 시험으로 줄세우기 정책이 효과를 발휘한 건 아닌지요?

    첨언하자면 저 역시 한국 능력주의의 폐해가 심각하다고 느끼고 있고, 더 나은 대안이 없을까 생각해보곤 합니다. 하지만 줄세우기 정책이 기회평등의 개선에는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네요.

    • 바이커 2020.07.07 21:09  댓글주소  수정/삭제

      정확히는 모릅니다.

      다만 타국의 사례와 교육 사회학 이론, 지금까지 나온 한국 연구 결과를 봤을 때, 가장 큰 원인은 교육팽창이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교육이 팽창되면 줄세우기 효과가 떨어집니다. 그래서 상위계층에서는 질적으로 뭔가 다른 걸 할려고 노력합니다.

    • 단추 2020.07.07 21:57  댓글주소  수정/삭제

      "교육이 팽창되면 줄세우기 효과가 떨어집니다. 그래서 상위계층에서는 질적으로 뭔가 다른 걸 할려고 노력합니다."

      조금 이해가 안됩니다. 제가 이해하기로 "교육팽창"은 "대학진학률 상승"인 것 같은데, 한국에서 줄세우기 효과 (=학벌) 는 여전히 강하지 않은가요? 한국에서 학벌과 미래소득간의 상관관계는 여전히 뚜렷할 것 같은데요.

      순수사회이동이 늘어난다는것은 downward mobility가 증가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에게는 downward mobility의 가장 큰 예가 "자식이 부모보다 안 좋은 대학을 간다", 즉 학벌하락으로 보입니다.

      계속 데이터없이 제 impression만 얘기해서 죄송하지만, 한국의 "학벌하락" 비율이 미국과 유럽보다 높지 않을까요? 미국은 악명높은 레거시 시스템이, 영국은 사립 중고등학교가 학벌하락을 막아줄 것 같습니다 (다른 유럽은 잘 모르겠군요). 한국에서 상위 0.1%, 혹은 상위 1% 가정이 계급재생산을 하려면, 자식이 최소한 sky 혹은 의대를 가야할 겁니다. 그런데 한국의 "능력주의 줄세우기" 때문에 자식학벌하락을 막기가 어려운 것 아닌가, 이런 생각입니다.

    • 바이커 2020.07.07 22: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레거시 입학에 비해서 한국 시스템이 분명 그런 효과가 있죠. 그래서 조기유학, 미국대학 입학 같은 조치를 취하는거죠.

      학벌 문제는 이 글에서 얘기했습니다: https://sovidence.tistory.com/1072

      그리고 공정담론이 얼토당토않다고 얘기하는게 아닙니다. 어떤 이데올로기로 전개되었는지를 얘기하는거죠.

      능력주의는 세습을 타파하는 진보적 아젠다로 출발하지만, 실질적 기회평등에서 벗어나면서 디스토피아적 비젼으로 변화합니다. 마이클 영이 주장한 능력주의의 비극도 같은 것입니다 (https://sovidence.tistory.com/1076).

    • 단추 2020.07.07 22: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링크의 글을 읽어봤는데, 학벌과 계급-미래소득의 상관관계가 하락하고 있다는 요지군요. 하지만 이 역시 위의 제 가설을 전면적으로 반박하지는 못합니다.

      이에 제 가설을 조금 수정하자면 이렇게 되겠네요: 한국의 (예전부터 능력주의였던) 대학입시- (최근에 능력주의로 더 변화하고 있는) 졸업 후 취업 시스템이 downward mobility를 증가시킨다.

      위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저 역시 교수님이 능력주의를 바라보는 시각에 동의합니다. 다만 한국사회에서 능력주의 정책이 지난 수십년간 기회평등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을 거라는 것이 저의 생각이고, 이것을 확인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작업은 "공정성"담론이 계층을 막론하고 광범위한 지지를 받는 이유를 더 잘 알아보기 위해서도 필요할 것입니다. 능력주의가 아직까지는 한국에서 "세습을 타파하는 진보적 아젠다"로 인식되고 있는데, 이 이유는 실제로 능력주의의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 바이커 2020.07.07 23: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두 가지 차원이 섞여 있습니다.

      하나는 대부분의 사회에서 산업사회화 되면서 나타나는 능력주의에 기반한 신분타파와, 다른 하나는 최근에 나타난 한국 사회의 특수성입니다.

      한국은 압축 성장이 특징이기 때문에 이 둘을 시기적으로 명확히 구분하기 어려운 점이 있죠. 그래서 능력주의에 기반한 공정담론이 더 큰 힘을 발휘하는 면이 있습니다.

    • 단추 2020.07.07 23:27  댓글주소  수정/삭제

      "최근에 나타난 한국 사회의 특수성"이 위 글에서 언급한 내용이라면, 저는 말씀하신 "두 가지 차원"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 가설을 부정하지 않으셨으니 이를 맞다고 가정하면) "최근에 나타난 한국 사회의 특수성"은 오히려 능력주의를 다른 나라보다 더 극한으로 밀어붙인 결과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결국 미국이나 유럽에서 능력주의가 실질적 기회평등을 저해하게 되는 이유는, 능력주의 정책 자체가 변질되고 있는 것이 큽니다. 레거시 입학, 사립학교 등의 편법을 계속 만들어내서, 줄세우기 시스템 자체를 혼란에 빠트리죠.

      한국에서도 마찬가지 시도들은 항상 있어왔지요. 외고, 국제학교, 기부금입학 논의 등등. 하지만 한국에서는 상류층을 감시하는 시민사회의 힘이 굉장히 커서, 줄세우기의 질서 자체가 흔들리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한국에서는 이러한 시민사회의 모멘텀이 "더 강력한 능력주의" 정책으로 나타난 듯 합니다. 이제는 특권층이라고 해서 자녀를 군대면제도 쉽게 못 시키고, 빽으로 좋은 회사 들어가기도 힘들어졌고. 말씀하신대로 좋은 학교 나왔다고 해서 성공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다만 문제는, "능력주의"는 더 강해졌지만 반대로 "결과의 평등"은 강해지지 못했다는 점이겠죠. 철저한 능력주의 관문을 통과하면 상은 거하게 주는 시스템은 여전합니다. 한국 시민사회의 동력을 결과평등 아젠다로 이어지게 해야 할 텐데요.

    • 바이커 2020.07.07 23:42  댓글주소  수정/삭제

      여러 글에서 얘기했지만, 한국은 동질성이 남다릅니다. 한국사회의 특수성은 이 동질성을 빼놓고 얘기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 동질성을 능력주의의 결과로 치부할 수 있는지는 의심스럽습니다.

      말씀하신 여러 현상에 대해 그런 측면이 있다고 동의하지만, 능력주의로 한국의 특수성을 회귀시키면 왜 능력주의가 실질적 기회균등 보장으로 진행되지 않고 지금처럼 정규직화에 반대하는 것과 같은 계급담론으로 변질되는지 설명하지 못합니다. 논리의 완성을 위해서는 이 변화를 설명하는 고리가 있어야 합니다.

    • 그런데 2020.07.08 00: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동질성이 남다른 나라에서 대체적으로 횟수나 기간의 차이가 있을 뿐 정량적이지 않은 방식의 지위 나누기가 가능할까요.

      한국의 경우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나 수시의 정착도 정량 요소를 강조해서 능력주의의 하나로 흡수시키는게 훨씬 더 효과적이고 효율적이라는 점이죠.

      사회적으로 얘네들에게도 지위를 나눠주지 않으면 피곤하겠다 싶을 정도의 완연히 구분되는 인종적, 종교적, 문화적 다양성 자체가 없잖습니까.

  16. 종종 2020.07.07 23: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렵네요. 글 내용도, 그래서 어떡하는 게 공정한 것인지도요.

  17. 그런데 2020.07.07 23: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시를 두고 제가 대분류를 나눈 이유는 수시가 단순히 정성평가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정성평가 방식이냐 정량평가 방식이냐고 말을 하려면 대략 비율을 기준으로 해야 할텐데, 그 점에서 보면 1번 방식의 수시도 횟수의 차이만 있을 뿐 3년간 줄세우는 것이죠. 비율상 정량평가가 더 많지요.

    실제로 강남출신 명문대학생들이 십수년 전부터 수시를 비난할 때 쓴 논리는 비강남권 고교의 내신 성적 획득이 쉽다는 것이지. 무슨 출신별, 소득별 감안해서 대충 정성평가해서 안된다는 말이 아니었지요.

    말씀하신 다양성이 인종적, 문화적, 종교적 다양성이 아니라 계층적 다양성이라고 치면 심지어 그러한 다양성조차 한국서는 주로 정량적인 방식으로 획득했다는 겁니다.

  18. 그런데 2020.07.08 00: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천국제공항 사태는 현직자가 정규직화가 된 이후에는 여전히 딜레마가 남습니다.

    향후 신규직은 어떻게 뽑을지 말입니다.

    만약 처음부터 정규직으로 뽑는다면, 아마 이번에 정규직으로 전환된 보안직군조차 정량평가식으로 행정직, 경영직군과 똑같은 방식을 도입하자고 할 겁니다. 그래야 장기적으로 자신들 위상도 올라갈테니 말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모든 직군에서 2년간 비정규직 이후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시스템일텐데 그 경우에도 하위직군인 이상 이 사람들의 정규직 전환은 2년간의 업무에 대한 대략적인 정량평가 (무단 결근 안했냐, 사고 안 쳤냐)와 형식적이긴 해도 대략적인 실력검증과 면접 같은 방식이겠지요. 하지만 이 경우 2년 이후 나가 떨어지는 사람들 문제가 나올테고, 사실 이거 때문에 1번으로 회귀하곤 했던거지요.

    어느 쪽이건 정량평가의 비율이 더 높을 겁니다.

    결국 한국사회의 논쟁은 단1회의 시험과 면접으로 되는 정량평가냐, 다회의 시험(혹은 실행)과 면접으로 되는 정량평가냐의 차이지 이게 미국식 방식이 될 것 같지는 않다는 겁니다. 애초에 해고와 고용이 쉽게 빨리 회전되는 나라도 아니고요.

    사회가 이런 변화나 방식을 정량평가 중 하나로 받아들이게 시스템 정비하는게 더 빠르지, 이걸 굳이 정성평가 중 하나라고 강조하고 정량평가 말고 다른 방식이 더 옳다고 해봐야 오히려 제도 정착만 힘들어지고 설득력도 별로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19. 그런데 2020.07.08 00: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실제로 최근 들어서는 오히려 전교조가 수시의 단순화와 비교과영역 축소, 학종 축소에 긍정적이고 교총이 수시 단순화 반대, 비교과 영역 축소 반대, 학종 촉소 반대를 주장하고 있지요.

    이미 입시 영역에서는 이미 진보진영에서도 여전한 소수 (주로 현장경험없는 교수님들이나 시민단체)를 제외하면 대체로 줄을 세우되 반복해서 오랫동안 세우는 방식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바뀌었지요. 더 이상 내신 가지고 교실의 아이들을 줄세우고 어쩌고 저쩌고 감성팔이하는 얘기 안 나옵니다.

  20. orfeu 2020.07.08 07: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국공 정규직 전환에 대한 백래시는 일견 '공정'을 강력하게 희구하는 중·하위층의 절규로 읽히지만, 저는 그 전에 그 비정규직들의 태생적, 후천적 '무능력'과 '기회주의적 속성' 을 공정이라는 이름으로 마음껏 조롱하는 사회의 비정함을 먼저 읽을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나는 인서울 대학을 나와 하루 12시간 공부하는데, 저들은 지잡대를 나와 운좋게 떼법으로 인국공 정규직이 된다' 라고 분노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치면 유전자(=지능), 재산, 성별 등 무엇 하나 공정의 잣대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성장위축 → 기회평등의 개선으로 경쟁 격화 → 공정을 매개로 한 상위층의 기회 비축

    근래에 읽은 글 중 이보다 한국의 기이한 사회현상을 명쾌하게 설명한 단락을 본적이 없습니다. 다만 여전히 남는 의문은, 왜 상위층의 '유사 공정 (혹은 비공정)' 을 활용한 기회비축에 중·하위층의 상당수가 열광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위의 20대라는 분의 경우, 최초 문제의식의 결은 다르지만 어쨌든 저와 비슷한 의문을 품은 것 같네요.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상위층' 이라는 실체가 의식적으로 중·하위층을 배제하려는 집단적 움직임을 펼쳐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 코호트로 분류되는 사람들의 행태가 유사했던 것일 뿐이며, 그 개개인의 hoarding 집합의 결과가 자연스럽게 중·하위층 배제라는 현상으로 나타났을 뿐이라는 겁니다. 마치 자연선택과 유사하게 말이지요(여기에는 어떠한 윤리적 판단도 담지 않습니다).

    • 2020.07.08 08:19  댓글주소  수정/삭제

      '후천적 '무능력'과 '기회주의적 속성' 을 공정이라는 이름으로 마음껏 조롱하는 사회의 비정함을 먼저 읽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거 동감합니다. 대학 커뮤니티 가보면 저학력자들 무시하고 비난하는 극언을 막 쏟아냅니다.

    • 바이커 2020.07.08 09:25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건 사회과학 이론의 근본적인 방법론적 질문인데요, 집단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모두 개인으로 돌리면 집단이 사라져 버립니다. "개인"만 있을 뿐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산물이라는 분들도 있습니다.

      위글에서 언급한 틸리가 나름의 불평등론을 발전시키면서 처음 제기하는 문제의식이 바로 기존 불평등 이론이 개인속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집단을 의식을 가진 행위자로 규정하는 건 아닙니다. 개인 차원으로 돌릴 수 없는 집단(내지는 사회적) 경향을 이론화할려는 거죠.

  21. 단추 2020.07.08 22: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또 댓글을 달게 되네요. 저는 이번 인천공항공사 정규직화 이슈가 "공정을 매개로 한 상위층의 기회 비축"이라는 해석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탁월한 견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한국에서 나타나는 "기이한 사회현상"이라는 것에 좀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이번 인국공 이슈는 조너던 하이트의 도덕기반이론에서 "공정성"기반이 강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반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아무리 다른 조건이 똑같다고 해도) 한국에서 '정규직화'는 곧 '신분상승'을 의미하니까요.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지배계층이 이번 이슈에 대해 나름대로 광범위한 지지를 얻어낼 수 있는 것입니다.

    어느 나라에서나 지배계층은 계급재생산을 가장 큰 목표로 합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끈질긴 시도에도 불구하고 계급고착화 기획이 쉽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위에서도 얘기했지만 저는 이 현상이 "강한 시민사회"가 이끄는 "더 강력한 능력주의 정책"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돌이켜 보면, 한국의 많은 사회적 갈등은 '공정성'과 '더 빡센 능력주의'를 강조하는 것으로 해결되었습니다.

    하지만 지배계층은 어떻게든 자신들의 계급재생산 정책을 실현시켜야 하는데, 이번 이슈에서는 그 매개가 '공정'이 된 셈입니다.

    그런데 '공정성'을 매개로 결과평등확대에 반기를 드는 예는 다른 곳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기본소득을 반대하는 보수주의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하나같이 "게으른 사람들에게 꽁돈을 주는 꼴은 못 본다"식의 얘기를 펼치거든요. 미국의 food stamp에 반대하는 몇몇 사람들의 논리도 비슷합니다. 인국공 이슈도 넓게 보면 같은 맥락이 아닐까 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더 보탠다면, 결과평등을 진보의 아젠다로 정착시키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결과평등이 결국에는 진정한 의미의 공정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인식시켜야 하는데, 이는 최소한 한 세대가 걸리는 일이니까요. 수십년에 걸친 외부효과를 일반 개인이 인식하기는 굉장히 힘듭니다. 따라서 "약자를 돌봐야 하지 않느냐"는 당위성에 호소해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보수층은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따라서 진보/보수의 이념적 이슈가 되어버립니다.



    • orfeu 2020.07.09 00:07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번 인국공 이슈는 조너던 하이트의 도덕기반이론에서 "공정성"기반이 강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반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 동의합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면 시험을 잘 본다'의 대우인 '시험을 잘 못 본 이유는 공부를 열심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 너무나도 강력한 직관성을 가지고 잇으므로, 여기에 환경 및 유전적 요인을 들어 이를 반증하려 하는 어떠한 시도도 가난 속에 꽃을 피워 서울대에 입학한 누군가의 일화에 가로막혀 버리죠.

      그저 시간이 더 필요한 것 뿐인지? 결과적 평등을 확대하기 위한 해결책은 잘 모르겠습니다.

 

"계급 없는 사회는 다양한 가치를 소유하는 동시에 그런 가치에 근거해서 행동하는 사회가 되리라... 개인적 차이를 수동적으로 관용할 뿐 아라 능동적으로 장려하며... 모든 인간은 어떤 수치적 잣대로 비춰 봐 세상에서 출세할 기회가 아니라 풍요로운 삶을 이끌기 위해 자기만의 특별한 역량을 발전시킬 기회를 균등하게 누리게 되리라." 

 

마이클 영이 쓴 "능력주의의 부상"에 나오는 "첼시선언"의 일부. 소설에서 능력주의 사회에 저항하는 사람들에게 꽤 영향을 끼친 선언문이다. 여기서 계급이란 맑스주의적 생산수단 소유에 따른 계급이 아니고, 능력주의에 따라 직업과 신분이 결정되는 사회의 계급이다.

 

진정한 기회균등이란 시험같이 "어떤 수치적 잣대"로 줄세우는게 아니라 개인이 가진 각자 다른 역량을 발전시킬 기회를 모두에게 주는 것. 한가지 수치적 잣대인 시험이나 IQ 등이 지배하는 사회는 기회균등과는 거리가 멀어도 많이 먼 사회라는게 이 선언의 핵심이다. 

 

마이클 영의 말을 다시 그대로 빌어오면, "기회균등이란 사회의 계층 사다리를 올라갈 기회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각자 타고난 덕과 재능, 인간 경험의 깊이와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모든 능력, 삶의 잠재력을 '지능'에 상관없이 최대한 발전시킬 기회를 균등하게 만드는 일이다." 

 

전에도 여러 번 말했지만, 많은 사상가들이 그린 이상향은 "다양성"과 그 다양성을 "개인"이 마음대로 발휘할 "자유"(즉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지는 사회다. 칼 맑스도, 토마 피케티도, 마이클 영도 모두 이런 사회를 이상향으로 그렸다. 시험에 의존하는 사회(마이클 영의 소설에서는 IQ 검사에 의존하는 사회)는 하나의 이상향으로써의 기회균등을 박탈하는 사회다. 

 

 

 

 

저는 지금 인천공항공사 정규직을 둘러싼 논란을 공정이라고 표현하는 "과정"에 대한 입장 차이로 이해하는게 맞는지 모르겠다. 오히려 어떤 사회가 좋은 사회인지, 유토피아의 비젼 간의 충돌로 봐야 하는거 아닌지? 

 

한국에서 틈만나면 소개되는 북구 복지국가의 삶의 모습이 적어도 한국보다는 마이클 영이 그린 계급없는 사회에 가깝다. <첼시선언>에 나온 기회균등의 사회를 이상향으로 그렸다. 그게 실현 가능하냐를 떠나서 적어도 머리 속에 그리는 이상사회는 한국인들이 비슷하게 공유했다.

 

하지만 지금 공정을 내세우는 분들이 그리는 이상사회는 마이클 영이 풍자한 능력주의가 완성된 그런 이상사회에 가까운 것 아닌가? 한 가지 수치의 잣대로 측정된 능력에 따라 줄세우고 그 능력에 따라 커지는 불평등은 용인하는 사회.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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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참담한사회 2020.06.29 10: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금 사태를 보면 끔찍합니다. 이제는 기를 쓰고 어떻게 해서든 '시험'을 치르지 않으면 '너희'들의 노력과 능력은 인정하지 않겠다고, 주제 파악하고 아래로 내려가라고 소리치는 것 같습니다.

    • 바이커 2020.06.29 10:59  댓글주소  수정/삭제

      오찬호의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가 나왔을 때 알아봤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2. 참담한사회 2020.06.29 10: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이클 영의 소설은 꼭 읽어봐야 겠습니다.

  3. sbl 2020.06.29 10: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교적 최근(?)에 나온 Joseph Fishkin의 <Bottlenecks>에서도 비슷한 얘기를 했던 걸로 기억합니다(한국에서 <병목사회>로 번역이 됬었죠). 제가 '대충' 기억하기로 그 책의 저자의 주요 논지가 일률적으로 조직화된 기회구조를 다원화하자는 거였는데, 그게 본문에서 말씀하신 "다양성"과 그 다양성을 자유롭게 발휘할 수 있는 "자유(기회)"가 평등한 사회로의 지향과 맞닿아 있는 듯합니다.

  4. Spatz 2020.06.29 16: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 그래도 미디어오늘 보도 보니 뉴스1측에서 그 문제의 카톡이 조작으로 판명나니까 "팩트체크 안 한 건 맞는데, 이 카톡이 조작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청년들의 공정성 문제가 요점이다!!" 라며 어이가 가출하는 소릴 하더라고요.

    사실 이런 식으로 나오리라고 예상은 했습니다. SNS 등지에서든 여기든 반박이 계속되니 "아무튼 공정 문제 아니냐 왜 이해를 못 하느냐 기성세대가 그럴 입장이냐!!" 하는 친구들이 속출했으니까요. 근데 진짜로 판명되는 건 다른 문제겠죠. 과연 지금 사태에서 낚인 친구들은 그 사실을 인정할지.... 뭐 덕분에 진짜 의도들이 뭔지는 잘 알았네요(ㅋㅋ)

    링크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7874&fbclid=IwAR3cjAzoDcaL1-ck0fe0r5K-Npf8uzMsKl_qUP6GIauG7oELSmsqOXLRz34

    • 바이커 2020.06.29 18: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도대체 왜 이 분들은 디스토피아적 이상향을 가지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이 남습니다.

    • Spatz 2020.06.30 01:01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냥 노예들이 계급놀이 하고 싶은 거죠 뭐... 군대만 해도 장성들은 허허 뒷짐지고 있는데 알아서 없는 사관생도들과 초급 간부, 병사들끼리 부조리 제일 많이 하지 않았습니까.

  5. 프리드먼의 그림자 2020.06.29 20: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경쟁 사회의 폐해"라는 결론으로 회귀하시는 것 같은데 정말 기성 세대의 일부 인물들과는 단절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겐 바람직한 노동환경의 변화로 보이겠지만 누군가에겐 노력과 보상의 등식의 전복으로 보일겁니다.

    평등은 결과의 평등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말했듯 기회의 평등이 주어지면 됩니다. 인국공뿐만 아니라 지금과 같은 공공부문 일자리 생산은 결과의 평등에 집착한 근시안적인 태도로 보입니다. 저마다 들어온 문이 다르다면 대접도 다르게 받는 것이 비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 노력한 시간과 비용을 보상해주는 공정이자 정의입니다.

    대학교수와 용역 청소부가 같은 존경을 받는 것과 같은 보상을 받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일입니다. 5년차 교수보다 15년차 용역 청소부가 돈을 더 많이 받는 세상을 원하시는 것 같아 참담합니다.

    • 바이커 2020.06.29 21:07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미 5년차 비정규직 교수보다, 15년차 청소부가 돈 더 많이 받고 있는데요? 이게 평등한 사회로 보여요?

      기회평등 논리가 매우 단순해서 이를 믿는 사람들은 신기루를 쫓는거고, 대부분은 자신이 이미 차지한 유리한 기회를 정당화하는거죠.

      저마다 태어난 문이 다르면 대접도 다르게 받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자 공정이라고 몇 천년을 떠들어도 먹혔으니 놀랍지는 않아요.

    • 프리드먼의 그림자 2020.06.29 21: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대학의 테뉴어 제도로 안정적인 지위에 오른 사람들과 비정규직 강사들과의 격차는 잘 알고 있습니다. 비정규적 강사들은 한정된 자리와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무한경쟁속에 병들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마다의 연구 실적이나 석박사 논문으로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총장님이 부임하신 날짜를 기준으로 그 전에 출근하던 비정규직 강사는 테뉴어가 되고, 그 이후에 출근한 강사는 소급대상이 아니라면 이는 불의이자 불평등입니다. 또한 학교 외부에서 테뉴어 자리를 위해 노력한 강사들 역시 공정하게 경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저마다 타고난 형질에 의한 차별은 모두에게 존재합니다. 물질적 요인이나 외적 요인 모두 타고난 형질에 불과합니다. 저마다의 차별이 있는 것입니다. 태어난 문이 다르면 대접도 다르게 받습니다. 그럴수록 공정하고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평가기준이 중요한 것입니다.

      능력과 평판 위주의 천거제가 어떤 말로를 가져왔는지는 진군의 구품중정제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불행히도 꽃밭이 아니고 에덴동산은 더더욱 아닙니다.

    • 바이커 2020.06.29 22:11  댓글주소  수정/삭제

      결국 공정은 비정규직 강사 문제 해결이나 처우개선과는 무관한 것이죠.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평가기준." 그런게 있을리가요. SAT도 논란 끝에 대학 입학 참고자료로도 보지 않겠다는 학교가 늘어나는 판국에요.

      "저마다의 차별"? 사회적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형해화시켜서 문제가 없는 듯 넘어가려는 기동이 어디 하루이틀된 것이던가요.

      우리가 사는 세상은 신분제를 철폐했고, 경제발전과 더불어 기아를 축출했고, GDP의 0.2%를 복지에 쓰던 국가가 20%를 복지에 쓰는 국가로 변모해 왔어요. 아마 18세기 대기근으로 굶어죽던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지금이 에덴동산일걸요. 실제로 19세기초에 그리던 유토피아의 모습은 현재 우리의 물질적 삶과 다르지 않아요.

      신분제 철폐 이외에 수많은 기회평등 기획이 대부분 기대했던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것에 비해, 복지확대, 재분배는 확실한 성과를 거두었죠.

    • 프리드먼의 그림자 2020.06.29 23:10  댓글주소  수정/삭제

      공정이 비정규직 강사의 문제해결이나 처우개선과 무관한 것이 아니라,
      예로 들었던 문제해결과 처우개선을 위해 사용한 방법이 공정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현대사회는 다양성과 복잡성이 공존하는 사회입니다. 모든 문제를 사회적 구조로만 판단하고 솔루션을 제시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개개인의 파편화가 진행되고 있는 시대입니다. 인종, 성별, 소득, 연령, 외모, 목소리, 신장과 같은 개개인의 다양한 형질들을 모두 평등하게 조정할 수 있을까요? 심리적 요인은 어떤가요? 평등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신분제철폐와 경제발전으로 인한 상대적 에덴동산 이야기를 하시는데,

      소위 시험이라고 부르는 선발 기준이 아니라 실무능력이나 평판과 같은 다양한 기준에서 인재추천을 하는 방식의 단점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진군이 주창하고 실행된 구품중정제는 초기에는 명사집단들과 지역사회의 천거로 인해 많은 인재를 등용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인재를 추천하고 평가하는 다양한 기준이 있다는 것은 다시 말해 다양하게 부패할 요소도 다분하다는 것입니다.

      구품중정제의 결과가 무엇입니까? 결국 지위의 세습 아니었습니까. 기회평등은 커녕 이너서클 안에서 기회 역시 세습되는 것입니다.

      그에 대한 반발과 보완으로 '과거제'로 불리는 기회의 평등과 과정의 공정을 중요시하는 제도가 등장한 것이지요.

      모두가 인정하는 평가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모두가 인정하는 평등의 기준 역시 존재하지 않는 것 아닐까요?

      과정의 공정이 없어도 결과의 평등은 이룰 수도 있겠지만 결과의 정의는 절대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 Spatz 2020.06.30 00:58  댓글주소  수정/삭제

      거 말장난 하시네 결국 공정타령은 사회 정의랑 동떨어져있고 아무튼 기회의 평등 보장하라는 건데 지금 그 예시들이 개박살나는 상황에서 똑같은 말 반복해대며 텍스트만 쓸데없이 늘려 대고 꿋꿋이 머리 들고 비정규직들 보고 안빈낙도 운운하시는거 보니 어디 경제지 출신이신가 싶네요 지론을 따라 당신의 고용유연화도 꼭 이루어져야 할 것 같읍니다...

      뭐 조선일보 기자들도 자기들 밥그릇 때문에 파업하기도 하더라고요~ 그런거 보면 세상이 재미있어 보이긴 합니다. 이런 분들도 어디가서 똑같이 하시겠죠?

  6. 프리드먼의 그림자 2020.06.29 21: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위적인 결과의 평등을 만들기 위해 개입된 손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공정한 경쟁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폭력이 될 것입니다. 개미와 배짱이의 우화에서 볼 수 있듯이 느슨할 자유와 치열하게 살 자유 둘 다 존중받아야 할 가치 아니겠습니까?

    본인의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다면 안빈낙도하고 느긋한 라이프스타일 역시 귀감이 될 것입니다. 모두가 정규직 노동자가 될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됩니다.

    세상이 변해가고 있습니다. 그 어느때보다도 단순 노동력에 대한 가치가 떨어지는 시대입니다. 인공지능, 자율주행 자동차와 같은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저숙련 노동자들의 노동이 대체될 것입니다. 멀리 있는 미래가 아닙니다. 이미 우리 사회에 스며들고 있는 현상입니다.

    일례로 비대면 사회로 키오스크를 사용하는 매장이 늘자 단순 파트타임 노동자의 일자리가 줄어들었습니다. 불의에 저항하는 것과 시대적 흐름에 저항하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스웨덴과 같은 노르딕 국가의 복지 모델이나 사회구조에 경도되신 것 같은데 이런 지원금이나 기계적 평등을 명목상으로나마 추구하는 나라들이 근로의욕 고취가 안되고 이민 사회와 통합 실패로 사회 갈등을 빚고 있습니다.

    기계적 평등을 위해서는 강한 국가, 시장에 대한 정부의 권한과 개입이 커져갈 것입니다. 정부의 힘이 커질 수록 권력의 근처에 있는 이해관계자들과 소외된 사람들의 격차 역시 커져갈 것입니다. 이 또한 새로운 계급과 새로운 층위를 만드는 것입니다.

    마르크스가 베데마이어에게 보낸 편지에 따르면 계급 투쟁을 없애고 무계급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귀결된다고 말합니다. 아무리 민주적 통제를 외쳐도 이 땅에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시행한 모든 국가들이 계급이 해소된 공산주의 체제로 나아가지 못하고 과두정 독재로 체제를 마무리했습니다.

    사회주의의 미래상이 노동시간이 줄어들고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자유와 시간이 보장된 사회였다는 것을 상기해본다면 어떤 정책에 대한 판단은 의도가 아니라 결과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는 프리드먼의 말을 떠오르게 합니다.

    • EE 2020.06.29 23:36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와 같은 의견을 가지신 분이 노동시장 유연화에는 어떻게 생각하실지 궁금하네요. ‘의외로’ 고용 경직성을 강하게 주장하지 않으실지 생각해 봅니다.

    • 불신사회 2020.06.30 03:24  댓글주소  수정/삭제

      원래 인간은 서있는 위치에 따라서 다 달라지지 않습니까. 정규직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라면 고용유연화를 지지할터이고, 정규직에다가 부양가족까지 있다면 고용 경직성을 지지하겠지요.

    • EE 2020.06.30 04: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불신사회 서있는 위치에 따라서도 고용 유연화에 입장이 정해지겠지만, 그것만이 요인은 아닙니다. 생산성이 무엇인지 생각하면 고용 유연화가 필요한 이유를 알 수 있죠.

  7. 으악 2020.06.29 22: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빈낙도하고 느긋한 라이프 스타일? 설마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 보고 하는 소리 아니겠죠?

  8. 불신사회 2020.06.30 03: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송호근이 "한국의 평등주의 그 마음의 습관" 에서 말했던 한국인들 내면의 평등에 대한 인식이 또 다른 모양으로 변주되어 나타나는 것 뿐입니다. 위에 리플에서도 보이지만 한국에서 시험을 거치지 않는 추천제 등 다른 방식의 의미는 "돈있고 빽있는" 사람들만 일자리를 얻는 방식" 이라고 받아들여져 왔습니다.

    마치 미국 흑인들이 자녀들에게 미국내의 인종차별 대응용으로 가르치는 "안 돼 교육" 같은 이런 신화가 꾸준히 전승되고, 사람들은 불신사회를 구성하는데 한 몫하고 있는데 공채가 없어지는 것을 당연히 사회불의가 판치는 세상이 왔다! 라고 생각할 수 도 있는 거겠지요. 그것이 진실이든 아니던간에.

    조국 사건이 핫했던 이유도 바로 이런 역린을 건드려서 아니겠습니까?

    뭐 결국 대중 감정의 문제이니 어쩔 수 없겠지요. 정성평가 자체를 불신하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는 무엇을 시도해도 반발로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또다른 방식의 정량평가로 회귀할 것입니다.

  9. 그런데 2020.06.30 04: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국식 대학 입시는 솔직히 요즘 말로 적폐 그 자체에 가깝지 않습니까. 그나마 보여줄 수 있는 소수그룹에게 일부 혜택이 돌아가서 망정이지, 희한한 뒷문입학과 레거시, 기부입학까지... 사실 미국에서만 채택하는 제도지 같은 서방인 서유럽조차 외면하는 방식이니까요.

    헐리웃 배우들 자녀 입시부정이 잠깐 시끄러울 뿐 큰 분노 없이 잊혀질 만큼 일상화된 편이니...

  10. 그런데 2020.06.30 05: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인적으로는 한국 사회에선 동질감이나 유대감을 바탕으로 복지를 통한 후보정이 이뤄지고, 그 이전의 사회적 상층 가치/지위 쟁탈은 정량평가로 이뤄지는 시스템이 앞으로도 영구히 유지될 것으로 거의 확신합니다. 이걸 바꾸려는 시도가 종종 있겠고 일부 파괴나 변형이 있겠지만 큰 틀에서는 절대로 바뀔 리가 없다고 확신을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그렇게 나쁜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 방식으로 동북아 3국이 급속도로 속된 말로 거지꼴에서 정승꼴이 된 것도 사실이고요. 지금보다도 더 정량적이고 주입적인 동북아 교육이 과연 동시기 서구 교육방식보다 반드시 열등하거나 취약했느냐 하면 오히려 이제와서 물음표가 붙으니까요.

    무엇보다 이 방식이 동작하기엔 동북아 국가들은 대체로 국가 내부에서 뚜렷한 소수자 집단도 없고 문화적으로도 매우 동질적이고 대단히 세속적이고 현실적인 문화라는 점에서 더 그렇지 않나 싶습니다.

    미국이나 유럽은 흑인, 히스패닉, 무슬림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매우 동떨어진 문화를 거진 이들과 정치적 타협을 해야하지만 동북아는 그런 환경도 전혀 아니고 심지어 새로 들어오는 이민자 그룹 마저도 크게 동떨어진 문화를 가진 것은 아닌 동남아시아 위주라는 점도 앞으로 큰 변화가 없지 않을까 예상하게 만듭니다.


  11. 그런데 2020.06.30 05: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오히려 인국공 사태는 이걸 깔끔하게 정량화 시킬 수 있는 요소로 환원해서 이 사람들 능력 있다, 정량적으로 봐도 개나소나 할 수 있는게 아니다. 니들 같으면 하루 종일 공항에서 사람들 감시하고 관리하고, 진상들 받아주고. 물리력으로 제압하기도 하는게 쉬운 줄 아느냐. 이 사람들 체력검정도 해야 되고 필요한 만큼의 어학 능력도 검증할 것이다. 그리고 향후에도 해당직군 채용은 그런 식으로 할거다. 이러면 그만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사실 과거 국회 청소원 정규직화도 이런 논리로 쉽게 받아들여졌지요. 이 일이 육체적으로 얼마나 힘드냐, 게다가 정신적으로도 소모가 얼마나 크냐, 또한 권력자들 매일 접해야 하는 감정노동이 얼마냐는 얘기가 잘 먹혀들어갔지요.

    이 방식으로 순차적 정규직화를 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이 (마치 경찰들 승진시험 치듯) 훨씬 정치적으로도 매끄럽고 깔끔했으리라고 봅니다.

  12. 그런데 2020.06.30 05: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여기서 예민한 문제가 나오지만,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사회, 그리고 학문의 위상에서 점차 인문학이 몰락하고 사회과학조차 자연과학에 다소 얹혀가는 세상 (이제 정량 연구 없는 사회과학 연구, 소위 썰풀기는 취급받기 어렵잖습니까)이 확연한 마당에, 어떤 다양성을 말할 건지도 좀 애매하다고 봅니다.

    솔직히 이런 분위기에선 지능의 고저, 세속성과 비세속성, 그리고 이것에 어느 정도로 친화적이냐 적대적이냐를 만드는 문화적, 종교적, 문명적, 선천적 차이점들이 다양성으로 포장하기 점점 어려워지지 않을까 싶거든요.

    무엇보다 설령 저 다양성을 인정한다고 해도 그 다양성 내에서조차 우열이 나뉠 것이라는게 거의 확실하기 때문에... 저로서는 좀 회의적입니다.

    말씀하긴 북구사회만 해도 대단히 소규모에 동질적 인종,문화,종교적 집단으로 존재할 때 현재의 시스템이 완성되었고 여기에 외부인 특히 완고하게도 동화되기 어려운 무슬림이 대거 등장하자 극우 정당이 대거 등장한게 우연은 아니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흐름 자체가 기존 복지 시스템마저 흔들면 흔들지 확대에 기여할리야 만무하고 말입니다.

    이미 하늘,바다,육지가 펑뚫려버린 세계가 급속한 배외주의나 고립주의로 가진 않겠지만 전반적으로 다양성을 억지로 구현하는 시스템보다는 동질성 추구와 불가근 불가원 정도가 미래상이 아닐까 요즘 더욱 생각하게 됩니다.

    유럽과 미국의 정치적 변화, 동북아에서의 국민(민족) 정체성 강화, 시민참여가 늘어날수록 역설적으로 비세속적이고 전통적으로 회귀하는 이슬람권 등 일단 현상을 봐도 이 흐름이 1세기 이상은 굳건하지 않을까 싶고, 솔직히 이런 상황에서 다양성을 통한 선보정 시스템이 동작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13. 그런데 2020.06.30 05: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또한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에선 공적 영역이 서구에서의 그것과 동급이 아니라는 걸 간과하면 안된다고 봅니다. 서구에서의 공기업 직원, 공무원이 갖는 위상과 동북아에서 갖는 위상은 전혀 다르니까요. 어떤 직군, 직렬이건 일단 공적 섹터에 있는 사람은 일종의 권력에 친화되어있거나 보유한 사람으로 실제로 어느 정도 그러하니까요.

    단순히 토익부터 행정학개론까지 보고 들어가는 공채가 아니라서 분노한다기에 보다는 공적 직군에 너무 쉽게 편입되는거 아니냐는 문제제기도 크지 않나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름 계량적 평가를 거치고 정규직으로 전환된다는 걸 강조했어야 하지 않았나 싶고요.

    이미 대기업의 공채가 대거 축소되고 있지만 커다란 청년층의 반발은 보이지 않고 중견기업이나 중소기업은 애초부터 알음알음 취업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단순히 공채신화, 지필고사 신화만으로 이 분노가 설명되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14. 그런데 2020.06.30 05: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또한 동아시아가 사회적 관계망에 의한 비리가 작동하기 매우 쉬운 집단주의 문화라는 점에서 정성평가에 대한 불신을 그냥 일종의 망상으로 치부하긴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미국에서조차 특유의 정성평가식 대학입시에 대한 불신은 꽤나 넘치고 있고 꾸준히 언급되는 사회문제임을 감안하면 꼭 한국적 현상도 아니고 말입니다.

    • 바이커 2020.06.30 16:51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누구보다 정량 좋아하는 사람인데요, 정성이냐 정량이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의 잣대로 모든걸 재단할 수 없다는거죠. 그 알기 쉬운 예로 몇가지를 든 겁니다.

      기업에서 시험은 입구(내지는 하위직 승진 정도)에서만 작동하고 대부분의 승진은 정성평가입니다. 그런데 왜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바뀌는 것만 정량이어야 하겠습니까.

      그리고 시험성적대로 합격해야 한다면, 불법으로 서울메트로나 은행에서 시험성적 높은 여성 떨어뜨렸을 때 비슷한 분노가 전해져야 하는데 그건 또 전혀 아니었죠.

    • 불신사회 2020.06.30 22:40  댓글주소  수정/삭제

      지금 논쟁이 되는 부분은 바로 '입구컷' 의 문제 아니었던가요? 어떤 나라, 어떤 조직이건가에 내부의 라인과 정치에 따른 승진은 일반적이지요. 하지만 그것조차도 입구를 통과해야만 가능한 문제 아니겠습니까.
      실제로 시험 성적이 높은 친구들을 떨어뜨렸을 때의 반응은 소위 명문대/외국대학 출신들과 떨어진 대학 출신들의 반응이 갈렸지요.

      지금 인국공은 그때보다 범위가 더 확대되었기에 (소위 인서울 4년제 전체) 좀 더 시끄럽게 표출되는 것 뿐입니다. 자기들은 거기 해당 안되는 줄 알다가 큰 코 다친거지요.

    • 그런데 2020.07.01 01: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비교 대상이 전혀 다르지 않습니까. 임원 승진과 비정규직 - 정규직 전환은 애초에 위치 자체가 틀리니까요. 이건 승진이라기보다는 고용형태 변환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채용 성차별 사건 때도 여성들의 분노는 컸습니다. (맞습니다. 혜택을 본 남성들은 입다물었지요). 못 믿으시겠지만 '젊은 페미니즘'을 내거는 여성들은 최근 인국공 사태에서도 '자댕이'들만 이득보는거 아니냐, 정규직 대상자 중 여성 비율은 얼마냐 이런거 얘기합니다. 분노한 20대들 중에는 이 사람들도 한 축입니다. 이건 옳고 그름을 떠나서 정체성에 따라 분노의 크기가 달라지는 부분입니다.

    • 그런데 2020.07.01 02:12  댓글주소  수정/삭제

      결국은 어떤 방식으로 인재를 뽑느냐, 위치를 나누느냐는 영역인데, 이 분야의 장단점은 결국 퍼포먼스 그 이상의 평가 기준이 없고, 여기서 딱히 한국식 시스템이 불리한 점을 찾기가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심지어 혁신을 두고 한국이 계속 우리가 잘못했느냐며 자조의 대상이 되는 나라 중 시스템이 대거 다른 나라는 미국 뿐이고 그것조차도 분야는 정량적인 것을 추구하는 STEM아니면 경영/경제지요. 학문으로 치면 레거시나 기부 위주로 입구 세우기 좀 거시기한 분야들 아니겠습니까.

      그나마 최근에 미국 다음으로 언급되는 비교대상은 한국 시스템의 원조라고 할 수 있고 오히려 더 극성맞을지도 모르는 중국이 되었고, 이 분야의 모범생 일본은 단골 멤버죠.

    • 그런데 2020.07.01 02: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말 나와서 말인데 라인과 정치에 따른 승진은 분명 존재하지만, 이 분야에서도 정량성이 더 큰 경우일수록 퍼포먼스가 좋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어느 기업, 공조직이건 관리자, 임원을 뽑느데 최우선 되는 건 결국 수치화되는 실적입니다. 일단 경쟁군간 실적 수치가 매우 흡사해야 그 다음에 마음 맞는 정치질을 하는거지 그게 역전될 수는 없고 역전된 조직의 미래가 불투명해지는 건 필연적이죠.

    • 바이커 2020.07.01 09: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바로 그거게요 승진도 주어진 후보자 내에서 대부분 정성인데, 똑같은 일에 비슷한 봉급받고, 업무능력이 검증되었지만, 고용형태만 바뀌는것에 무슨 수치를 통한 평가를 얘기하냐는거죠.

      그리고 정량화해서 평가하는거 아무도 부정안한다니까요. 경향성으로 어떤 관계가 있다는 것과, 그것만으로 기준을 삼아야 한다는 것은 많이 다른 얘기에요.

    • 불신사회 2020.07.01 20: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똑같은 일에 비슷한 봉급받고, 업무능력이 검증되었지만, 고용형태만 바뀌는것" 을 놀랍게도 아무도 믿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특히 직장인 익명게시판인 블라인드에서 유출되는 사례들 - (진짜인지는 모르겠으나) - 을 보면 어디서 이 피해의식이 오는 지 알 수 있지요. https://twitter.com/coconut_coffeeL/status/1276015593003474945

      사람들에게 신뢰를 담보하지 못하니 담론이 제대로 동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 그런데 2020.07.02 04:08  댓글주소  수정/삭제

      승진과 고용형태 변환은 동급이라는게 말이 됩니까. 신분 내 상승과 신분 변화가 같습니다. 정규직-비정규직은 전세계 어디를 가도 신분, 계급의 차이입니다. 교수들에게 테뉴어 있고 없고가 학교에서 좋은 보직 받고 안 받고 수준 밖에 안되나요? 전세계 어느 나라 교수나 같은 답 말할 겁니다.

      이 정부도 이런 생각을 다 했습니다. 그래서 전부 정규직으로 전환되는게 아니고 나름의 검증절차도 만들려고 했습니다. 이걸 강조 못한 건 정치적 실수에 불과합니다. 오히려 어설프게 장기적으로 정성평가가 정답이라는 분들이 스피커가 되면서 꼬였지요.

      헌데 애초에 모든 공공기관의 비정규직이 일시에 정규직이 되는 것이라면서 논리전이 가능하곘지만 같은 공항공사 보안요원도 '인천'만 되는 이상 정무적인 행태를 보여야 되는게 맞지요. 논리전으로 접근하려면 유니버설하게 어디든 다 되야 가능할 겁니다. 거기만 되는 이유가 문재인의 방문과 즉석약속 뿐인데, 그걸 로또로 보는 사람이 나오는게 이상할게 없지요.

      그리고 겉도는 얘기인데 그 하나만의 잣대가 아닌 다양성의 가치도 의외로 평가 전환하기 어려운 것도 아니죠. 청원경찰, 보안검색 요원에게 필요한 능력은 대체적으로 정량평가가 꽤 쉽습니다. 오히려 정성평가할 영역이 별로 없어요.


      그런데 교수님 지난 글에는 한국에 고용유연화가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하시지 않으셨는지요. 그렇게 치면 사실 공항공사 보안요원이 꼭 정규직이 되야 할 이유도 좀 애매하지요. 경력 쌓고 다른 데로 가셔도 된다고 하면 그만. 정규직이 아니라 비정규직인 지금도 하려는 사람은 많은 직군인데요.

    • 바이커 2020.07.02 09:18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마 제가 테뉴어 제도를 옹호할 것으로 생각해서 계속 이 비교를 하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테뉴어 제도에 그렇게 우호적이지도, 이 제도가 과거와 같은 형태로 지속될 것으로 보지도 않습니다. 문제가 많아요.

      많은 미국 학교에서 포스트-테뉴어 리뷰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6년마다 한 번씩 재심사를 받죠. 테뉴어를 받은 교수가 온갖 수모를 당한 끝에 그만두는 것도 봤고요.

      지속적으로 복수의 강의를 하는 분들은 teaching professor라고 해서 봉급도 올리고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제도도 도입하고 있습니다. 충분한 것과는 거리가 멀지만, 적어도 현재의 시스템이 망가져있다는 것은 많은 분들이 동의하죠.

      인천공항 관련 최근의 논란을 보면서 알게 된 것은 그런데님이 너무도 명확하게 기술하였듯 고용형태를 신분으로 인식하고 그게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겁니다. 덕분에 한국 사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크게 깨달았어요.

  15. 익명 2020.06.30 08: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상에 대해서 이야기할 생각이 없습니다. 현실에서 어떤 선택이 더 나은지에 대해서 논하고 싶은 것입니다. 완벽한 사회의 모습은 '능력만큼 일하고 필요한 만큼 받는 사회'라는 오래된 문장으로 충분할 겁니다. 그런 사회를 만들수가 없을 뿐이지요.
    위 글의 선언적인 문장도 그 수준을 전혀 벗어나지 못한말일 뿐입니다.

    • 동감 2020.06.30 08: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능력만큼 일하고 필요한 만큼 받는 사회'에 동감합니다.

      그럴 수 없는 것이고 그 사이 어딘가에서 현실에 맞게 최대한 나은 결정을 할 뿐. 아름답고 오래된 이상이네요.

  16. EE 2020.07.04 03: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교수님, 긴 댓글을 볼수록 드는 생각인데, 고용을 유연화하면 이런 긴 논쟁 자체가 불필요해 지지 않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아는 그 폴라니 아니고 다른 폴라니. 

 

경제학자인 데이비드 오토가 자동화가 왜 인간 노동을 대체할 수 없는가에 대해 쓴 논문에 나온 얘기인데, 내용인 즉, 사람은 자기가 설명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패러독스. 분명히 판단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고, 행동할 수 있는데, 도대체 어떤 사고 흐름으로 그런 판단을 하는지 설명할 수 없는 그런 지식을 사람들은 많이 가지고 있다. 

 

언어 능력이라든지, 사진을 딱보면 개 사진인지, 쿠키 사진인지 구별하는 능력이라든지, 남들이 하는거 보고 배워서 따라하는 능력이라든지,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능력이라든지, 직장에서 사수가 하는거 보고 따라하다보면 어느새 자기도 뭔가 회사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능력이라든지. 

 

도대체 이걸 왜 이렇게하고 어떤 사고의 흐름으로 판단하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AI니 컴퓨터니 자동화니 뭔가 프로그래밍하고 기계한테라도 가르치는데, 설명을 못하니 자동화나 프로그래밍을 하기도 매우 어렵다. 

 

일하는 지식도 마찬가지. 회사에서 일을 가르치는 사수도 모른다. 하다보면 이상하게 알게된다. 군대에서 일류대 나온 이병보다 고졸 병장이 더 낫다고 하는 이유도 이거 때문이다. 짬밥으로 밖에 표현을 못하는 암묵지 습득 얘기다. 

 

좋은 대학 나오고 시험 잘 본다고 회사에서 곧바로 써먹을 수 있는게 아니다. 일을 익히는데 시간이 걸린다. 좋은 대학 나온 사람을 그래도 선호하는 이유는 곧바로 써먹을 수 있어서가 아니라 학력이 trainability의 시그널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교육이 시그널로만 작동하는 것은 아닌데, 시그널의 기능을 하는 것은 확실하다. 경력이라는게 그래서 중요하다. 가능태로만 있던 능력을 현실에서 검증해서 잘하는지 못하는지 아웃컴이 나온 사람이 경력자다. 

 

시험잘보고 뭔가 공부를 열심히 한 것은 회사에서 어떤 능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많다는 한 신호이지 그 자체는 능력이 아니다. 시험보는 능력은 별로인데, 회사의 일을 익히는 능력은 괜찮은 사람도 있다. 회사에서 진짜 필요로 하는 능력과 시험보는 능력의 불일치가 있다. 이 경우 회사는 누구를 뽑아야 공정한걸까? 해보기 전에는 모른다. 그런데 후자를 뽑는게 더 안전하다. 

 

이 때문에 대학에서 기업을 위한 인재를 길러내고 싶어도 뭘 가르쳐야 할지 모른다. 기업인들이 매일 대학에서 배운 지식이 쓸모없다고 한탄하는데, 그럼 뭘 가르치라는 말이냐고 물어보면 얘기를 못한다. 기업인들도 모른다. 뭘 가르쳐야 하는지,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하다보면 알게되는 그런 tacit knowledge를 말로 표현할 수가 없고, 일이 돌아가는 상당한 이유는 바로 이 암묵지 때문이다.

 

 

 

그래도 시험으로 뽑는 시스템이 더 공정하고 생산성을 높이지 않냐고? 맞다, 정실에 좌우되는 인재 채용보다는 나은 경우가 꽤 있다. 그런데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대부분의 경우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회사는 사람을 뽑을 때 시험을 보는게 아니라 소개를 받는다. 사회학의 유명한 weak-tie thesis (취업 정보는 가까운 관계의 사람에서가 아니라 알지만 친하지 않은 관계에서 나온다는 테제)가 괜히 나온게 아니다. 토익 점수가 좋은 지원자 보다는 그 회사에서 일하는 내부자가 종합적으로 평가해서 추천하는 사람이 그 회사에 더 나은 인재일 가능성이 높다. 그 회사에서 일해봤기에 일의 성격을 알고있는 내부자가 여러 사회적 관계를 통해 오랫동안 관찰해서 평가하는 것이 토익 점수보다 훨씬 더 종합적인 판단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회사 내부자가 아는 사람을 추천하는 정실 인사가 시험봐서 뽑는 공정 인사보다 더 종합적이고 효율적이다. 기준을 시험 점수가 아니라 회사에서 일잘하는 능력으로 바꾸면, 정실인사가 시험보다 더 공정하다. 

 

 

 

 

암묵지 외에 시험 한 가지 기준으로 인재를 채용하는게 잘못된 또 다른 이유는 혁신의 필요성 때문이다. 

 

요즘 모두들 혁신, 혁신하지만, 어떻게 하는지 알면 그게 혁신인가. 아무도 모르는 뭔가 새로운걸 하니까 혁신이지. 혁신은 가르칠 수가 없다. 어떻게 하면 혁신이 되는지도 알지 못하고. 

 

그래서 어떤 분위기에서 혁신이 되는지 골머리를 썩히는거다. IT 기업에서 뭐 이상한 놀면서 일하는 분위기 만드는거라든지, 양복 대신 티셔츠 입히는 것이라든지, 모두 혁신을 어떻게 하는지 모르니까 분위기 잡는거다. 

 

그런데 혁신이 이루어지는 환경에 대해서 대략적 합의가 나오는 것 중의 하나가 (1) 뭔가 다르지만 (2) 그래도 똑똑한 사람들끼리 (3) 상호작용을 하다보면 혁신이 더 잘되더라는거다.  

 

시험으로 인재를 뽑는 가장 큰 문제점은 "(1) 뭔가 다르지만"이라는 조건이 가장 충족이 안되는 방식이라는 것. 시험은 단일한 기준으로 인재를 채용한다. 뭔가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뭔가 비슷한 사람들이다. 이런 조직은 원래하던 일을 반복하고 익숙한 문제를 능숙하게 처리하지만 대신 새로운 문제가 닥치면 해결을 못하거나 느리다. 혁신이 안된다. 

 

그러니 시험만으로 인재채용을 하라고 하면, 혁신을 포기하라는 얘기와 비슷한 주장이 된다. 

 

 

 

 

마지막으로 그럼 회사에 들어와서 누가 더 많은 능력을 보여주고 회사에 기여했는지는 정확히 체크할 수 있을까? 당연히 제대로 못한다. 뭔가 기준을 만들면 그 rule of game에 의해서 굴러가고, 그 규칙이 경향적으로 능력을 체크하기 때문에 기준이 없는 것보다는 낫지만, 오직 경향적으로 체크할 뿐이다.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대부분의 회사들이 아무리 정치한 정량 평가를 도입해도 마지막은 정성으로 결정한다. 뭔가 부정을 저지르기 위해서도 아니고, 최종 평가를 정성으로 하는게 그들에게 더 좋아서가 아니라, 이 방법 외에 정량에서 잡히지 않는 기여도를 반영할 더 나은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능력 측정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유명한 사회학 논문으로 직조공의 성과 측정에서 영국과 독일의 차이점에 대한 것이 있다. 산업혁명 직후 직조공은 천을 얼만큼 짰는지에 따라 보상하는 성과급(piece rate)이었다. 같은 기계를 사용하고 결과물이 너무 명백하게 보이는 산업인데, 영국과 독일의 보상 체계가 달랐다. 영국은 천의 길이에 따라 보상했고, 독일은 베틀의 왕복횟수에 따라 보상했다. 영국은 output, 독일은 input으로 보상한 것. 그래서 나온 결과가 영국은 천의 길이는 긴 대신, 엉겼고, 독일은 천의 길이는 짧았지만 매우 조밀한 하이퀄러티 천을 생산했다. 둘 중 어느 보상 체계가 더 공정한 것인가?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뭔가 한 가지 기준을 세워 채용이라든가, 진학이라든가, 승진이라든가 등등등에서 사람을 줄세우는 공정이라는게 있을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그런 공정을 만들면 사회발전이 지체된다는 것이다.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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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EE 2020.06.27 22: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계속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원래 글의 주제와는 다른 질문인데 고용유연화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제 생각에 고용을 유연화하면 이번 논란 자체가 성립하지 않고, 정상 상태(steady state)가 되면 개개인의 생산성에 따라 인적 자원이 잘 배치가 될 것 같은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아울러 고용유연화 없이 실업률을 낮추고 고용을 늘릴 수 있을까요?

    • 바이커 2020.06.28 10:45  댓글주소  수정/삭제

      실업률은 충분히 낮습니다. 고용유연화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 푸른 2020.06.27 22: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A.I가 일자리를 대체할테니 교육은 A.I가 대체하지 못할 능력을 가르쳐야 한다"라고 역설하던 퇴임교수님과 "그 능력이 도대체 뭐냐? 그게 있다쳐도 강의실에서 교육이 되냐? 강의실에서 교육이 되면 왜 프로그래밍으로 대체가 안되냐?" 하고 설왕설래했는데 이 게시글로 많이 배우고 갑니다.

    특히 영국과 독일의 직조공 사례는 수업에서 써먹을 수 있을까요? 이 글의 맥락과는 살짝 다르지만 평가방식의 차이로 결과물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로 사용하던 다른 예시보다 확 와닿네요. 물론 소스는 밝히겠습니다!

    • 바이커 2020.06.28 10:49  댓글주소  수정/삭제

      원소스는 Biernacki (1995) 입니다: https://www.amazon.com/Fabrication-Labor-Germany-Britain-1640-1914/dp/0520208781

  3. 익명 2020.06.27 23: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험보다 정실인사가 더 기업의 업무에 적합한 인재를 뽑는다는 부분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시험이 더 '공정'합니다.
    위 글에는 정실인사를 진행하는 사람이 '기업의 업무에 적합한 사람'을 뽑는다는 암묵적인 가정을 하고 있습니다.
    현실에서는 정실인사는 '자신의 정치력을 강화하는 사람'을 뽑는다는 굉장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정실이 공정하게 진행되지 않는것입니다.

    • ㅁㄴㅇㄹ 2020.06.28 02:54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럼에도 시험 한줄세우기는 훨씬 더 많은 암묵적인 가정을 하고 있죠. 본문을 침착하게 읽고 맥락을 잘 파악해 보세요.

    • 바이커 2020.06.28 10:53  댓글주소  수정/삭제

      추천제가 꽤 괜찮은 인재를 모은다는건 수없이 검증된 주장입니다.

      정실인사에 기반해 주요 포스트에 무자격자를 등용하는 것과, 신규임용에서 추천제를 이용해 적절한 인재를 임용하는 것에 차이가 있죠.

    • 제프 2020.06.28 21:01  댓글주소  수정/삭제

      익명 / 아직도 시험이 '공정' 하다고 하시는 분들이 계시는군요. 시험을 치루는 방식 자체는 '공정' 할지 모르나,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 거기에 투여되는 다양한 자산들은 전혀 공정하지 않습니다.

    • 익명 2020.06.28 23:01  댓글주소  수정/삭제

      ㅁㄴㅇㄹ: 이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분노에 대한 맥락을 잘 파악하세요. 필요한 자리에 최고로 적절한 능력을 가진 사람을 뽑는 것보다 공정하게 뽑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 이 논란의 요지입니다. 능력을 한가지 척도로 평가해서 한줄로 세우는 것은 이 이슈가 커진 이유가 아닙니다.

    • 익명 2020.06.28 23: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바이커: 추천제가 괜찮은 인재를 모은다는 것은 다른 제반환경이 갖추어 졌을때나 동작합니다. 추천 이후의 사후 평가가 계속 공정하게 동작하는 것 등이 그 필요조건입니다. 현재의 우리나라에 그런것이 갖추어져 있습니까?

    • 익명 2020.06.28 23:04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프: 그런 요소를 간주해도 시험이 정실보다 공정합니다. 정실의 폐혜를 보지 않은 사람만이 이런 탁상물림 논란에 찬성하며 스스로를 깨인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 sbl 2020.06.29 00:45  댓글주소  수정/삭제

      익명/ '정실'과 '시험'에 대한 본인의 편향된 시각으로 스스로를 깨인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공정이란 아이디어가 효율성이나 혁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수호되어야 할 가치는 아닐 수 있다는 것도요.

    • 익명 2020.06.29 09:59  댓글주소  수정/삭제

      sbl: 스스로가 깨어있는 사람이라는 착각에서 일찌감치 벗어나십시오. 그 이전에 방금 본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는 있나요? 요즘 이 이슈가 화두인 것은 결과의 평등을 강조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고, 본인도 이 생각에 동조하는 마음으로 방금 댓글을 달았겠죠. 그래놓고 논지를 효율성과 혁신이 공정보다 중요하다고 하다니... 자신이 무슨말을 하는지도 모르면 조용히 있으세요.

    • sbl 2020.06.29 10:42  댓글주소  수정/삭제

      익명: "자신이 무슨말을 하는지도 모르면 조용히 있으세요" 그 말 그대로 돌려드릴게요. ^^

    • 제프 2020.06.29 20:11  댓글주소  수정/삭제

      익명 / 제가 스스로 깨인 사람이라고 했나요..? 말하지도 않는 이야기를 끌고오지는 말아주세요. 그리고 '정실' 이 '시험' 보다 공정한지 안한지에 대하여 근거 자료가 있나요? 개개인의 주변사례로 이야기 하지 말아주세요. 제 주변에는 '정실' 이 '시험' 보다 공정한 사례가 많습니다. 그리고 '공정' 에 대해서 서로의 정의가 다른 것 같긴한데, 본인이 생각하시는 공정이 단순한 기계적 공정인지 아닌지 이야기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기계적 공정이 얼마나 의미가 없는지는 이미 알고 계실 것이라 생각 됩니다.

  4. 두꺼비 2020.06.28 11: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직관과 실제가 일치하지 않는 수많은 일들 중 하나네요. 최근 코로나 입국금지 논쟁이 떠오릅니다. 이런 경우 정부가 직관에 의거해 반발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설득할지에 대해 고민을 좀 해봐야 되는거 같아요. 모두가 감염병 역학이나 사회학의 전문가는 아니니까요.

  5. 안녕하세요 2020.06.28 11: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교수님. 정말 실례지만 이 글을 대학교 대나무숲에 출처를 남기고 퍼가도 될까요? 너무 좋은 글이라고 생각해서 마구 알리고 싶습니다.

  6. 자연 2020.06.28 17: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나라에선 추천제로 하면 권력 남용에 의한 불공정한 꽂아넣기가 넘쳐나서 안된다..는 식의 반박이 넘쳐날 거라 미리 예상해 봅니다. 사실 글의 핵심은 그게 아닌데 말이죠. 교수님 여러번 지적하셨듯 상위 10%의 1%에 대한 피해의식이 과대표되는 현상이기도 할 것 같고요.

    • orfeu 2020.06.28 18:29  댓글주소  수정/삭제

      글의 핵심이 그게 아니라 할지라도, 현실적인 한계를 논하는 것이 불필요하는 일은 아닐 것 같습니다.

      제가 정확히 기억하는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전에 블로그 주인께서 말씀하신 바대로 우리 나라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삶의 양식과 기준이 동질화되어있습니다.
      개인의 노력으로 충분한 근로소득 또는 안정적인 노후 대비가 가능한 직업을 얻는 방법은 사실상 2가지 밖에 없습니다 (이 2가지조차도 필요조건일 뿐입니다). 좋은 대학교에 들어가서 고연봉 회사의 취업에 유리한 위치를 획득하든가, 공무원 또는 각종 전문직 시험에 합격하든가. 둘 다 철저히 정량적인 판단에 기반하고 있다고 밖에는 볼 수 없겠습니다. 그나마 수시 입학 중 일부 전형이 예외에 해당한다고나 할까요.

      필요 이상으로 공정을 중시하는 나머지 사회 발전을 지체하는 일이 벌어지더라도, 쉽게 그놈의 '공정' 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번외로, 대기업에서 경력자를 고용할 때는 현재 한국의 시스템 상 그 추천받은 사람 또한 동종업계에서 일하기 위해 학벌 스크리닝을 이미 거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별로 대기업들이 '특별히 더 시험보다 정실인사에 가중을 두는' 부담을 질 필요가 없습니다.

  7. 애독자 사마귀 2020.06.28 18: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주변 이직 사례를 보면, 인재 채용에 있어 추천제가 효율적인 이유 중 하나는 추천인도 깊이 개입되기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애초에 추천을 의뢰하는 쪽은 추천인에 대한 평가에 기반 해 의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사람이 추천한다면 믿을만 하겠다.' 같은 거죠. 마찬가지로 추천인도 추천 결과에 따라 본인 평판이 달라진다는 것을 잘 알기에 스스로 거르는 과정을 거치게 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 Spatz 2020.06.28 21: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동의합니다. 사실 회사 입장에서 손해 볼 확률도 적죠. 작정하고 폭탄돌격대 아닌 이상 추천자 스스로의 평판도 박살날 걸 각오하고 추천하는 거니까요...

    • 익명 2020.06.28 22:58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 방식 역시도 그 둘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동일하면 공정하게 동작하지 않습니다.

    • 바이커 2020.06.29 09:16  댓글주소  수정/삭제

      애독자 사마귀, Spatz/ 맞습니다. 추천인과의 관계 때문에 피추천인이 턴오버도 적고 일도 열심히 한다는 연구도 있고요. 심지어 가족이민도 기술이민만큼 능력자를 데리고 온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 young026 2020.07.05 01:01  댓글주소  수정/삭제

      요 아래인가에서 누가 언급했던 남조 구품관인법 체제에서는 그게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기도 했죠.^^; 피추천인이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추천인의 위신에 손상이 가니까 어떻게 해서든 피추천인을 끌어올려서 기대치에 결과를 끼워맞추는 식으로.

    • 문제는 2020.07.05 05:40  댓글주소  수정/삭제

      한국에서 흔히보이는 권력을 가진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어디로 꽂아넣는건 대부분 꽂아넣은 사람이 일을 못해도 본인에게 피해가 가는게 미미하지요. 서구식 동료평가가 아니니까요.

  8. 안녕하세요 2020.06.28 18: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사합니다!

    • 안녕하세요 2020.06.28 19:34  댓글주소  수정/삭제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4510517395628851&id=962935677053725

      페이지는 페이스북 유니스트 대나무숲 입니다.

  9. 재떨이 2020.06.29 01: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본문과는 아무 관련도 없습니다만 (왠지 딴지만 거는 거 같네요)

    "도대체 이걸 왜 이렇게하고 어떤 사고의 흐름으로 판단하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AI니 컴퓨터니 자동화니 뭔가 프로그래밍하고 기계한테라도 가르치는데, 설명을 못하니 자동화나 프로그래밍을 하기도 매우 어렵다."

    지금 개념으로는 과정을 알려주지 않아도 어느 정도 가르칠 수 있습니다. 지금 기술로는 결과가 명백히 그런 것과 그렇지 않은 것만 가르칠 수 있습니다만...

    • 바이커 2020.06.29 09: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그래서 자동화가 생각보다 빨리 진행이 안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래와 같은 특집 기사도 나오고요: https://www.economist.com/technology-quarterly/2020/06/11/an-understanding-of-ais-limitations-is-starting-to-sink-in

  10. 매운맛나리 2020.06.29 18: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항상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본문의 논지와 좀 벗어난 내용이지만 "그런데 혁신이 이루어지는 환경에 대해서 대략적 합의가 나오는 것 중의 하나가 (1) 뭔가 다르지만 (2) 그래도 똑똑한 사람들끼리 (3) 상호작용을 하다보면 혁신이 더 잘되더라는거다." 이 부분을 좀 더 살펴보고 싶은데 번거롭지 않으시다면 혹시 레퍼런스를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미리 감사드리겠습니다.

    • 바이커 2020.06.29 18:27  댓글주소  수정/삭제

      https://sites.lsa.umich.edu/scottepage/ 이 분 책과 논문을 참고하십시오. 제 얘기는 The Difference라는 책에 바탕한 것입니다.

    • 매운맛나리 2020.06.29 19:41  댓글주소  수정/삭제

      감사합니다!

요즘은 거의 없지만 10여년 전에는 한국 학생이 미국 유수의 대학에 들어가면 무슨 큰 성취를 한 양 언론에서 떠들었다. 지금도 좋은 대학가고 시험에 합격하는 것을 큰 성취인양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맞다. 개인으로써는 큰 성취다. 열심히 노력한 결과겠지. 

 

그런데 사회적으로는 시험 잘 본 것은 남들이 다한 얘기 머리 속에 잘 베꼈다는 것 밖에 없다. 머리 속에 써두는 컨닝페이퍼 정도. 당신이 시험 잘 보는 것의 사회적 부가가치는 제로다. 아무런 기여가 없다. (시험 공부하기 위해 학원가고 참고서 사며 돈 써서 소비 촉진이 된 정도가 기여? 자장면 사먹어서 소비 촉진한 기여와 크게 다를 바 없음.)

 

시험에서 수학 문제 잘 푸는게 어떤 신호가 되고, 수학 문제 잘 푸는게 나중에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것과 상관관계가 높고, 실제로 일을 할 때 그 지식이 부가가치 창출에 도움이 되니, 가르치고 시험보고 그런 과정을 거치는거다. 한 마디로 비젼베팅을 하는 것. 

 

 

 

 

기업의 관점에서 신입사원의 스팟 부가가치는 마이너스다. 일잘하는 사수가 신입사원 가르치느라 "낭비"하는 시간까지 생각하면 신입사원의 마이너스 부가가치는 그 사원이 받아가는 봉급에 한정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마이너스 부가가치 과정을 참고 견디며 firm-specific skill, industry-specific skill 등을 익히게 하면 나중에 포지티브한 기여를 한다. 경력에 따라 실제 기여 정도와 기여도에 따른 소득에 미스매치가 있다. 많은 경우 신입사원 때는 "기여도 < 봉급"이고, 중견사원은 "기여도 > 봉급"이다. 그런데 이런 마이너스 부가가치 과정을 거치는 않는 매우 효율적인 시스템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경력사원 채용. 

 

취준생들 입장에서야 시험잘 본 사람 뽑는게 공정이겠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신입사원 채용하는게 하나도 공정하지 않다. 사회적으로는 신입사원 채용이 필요해도, 당장 기업의 이윤 창출에 도움이 안되는 신입사원 채용은 가능한 피하는 것이 최선이다. 대신 다른 기업에서 검증된 경력을 채용하면 된다. 신입사원 채용, 공채 인원을 늘리라는 정부의 압력이 매우 불공정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신입사원 채용도 일종의 사회적 합의,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사회적 조건에 제약된다고 할 수 있다. 사회 전체적으로 인재에 대한 비젼베팅의 분위기가 사라지고 기업의 우선순위가 현 시점의 이윤 창출에 더 집중할수록 신입사원을 뽑을 유인은 떨어지는게 당연하다. 있어봤자 도움안되는 사람들 잔뜩 뽑아서 뭐하나. 신입사원 훈련은 다른 기업에서 하도록 하고 자기 기업은 경력사원만 쓰는게 가장 좋다. 물론 이런 행태는 죄수의 딜레마를 유발하지만, 죄수의 딜레마를 유발하는 상황 자체는 개별 기업의 책임이 아니다.

 

평생 고용, 이직의 제한, 내부노동시장의 활성화 등의 조건이 충족되어야 신입사원을 뽑는게 기업에 도움이 된다. 불행히도 1990년대 이후 노동시장은 기업 문화의 변화, 내부노동시장의 사멸, 간부직 채용의 외부 개방 등으로 신입사원 채용이 기업에 도움이 되는 조건이 점점 나빠졌다. 평생 고용 문화가 사라졌기에 노동자 입장에서 firm-specific skill에 대한 투자 요인도 떨어진다. 

  

기껏 뭔가를 가르쳐도 신입사원은 이직률이 높다. 요즘 세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원래 그랬다. 20대와 30대 초반에는 노동시장에서 자신의 적성을 탐색하는 기간이다. 안맞으면 옮겨야. 이러한 현상에도 불구하고 과거에는 기업환경과 사회적 조건이 신입사원 채용과 친화적이었기에 이들을 뽑은거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조건이 악화되었고, 그에 대한 반응으로 이직률은 더 높아졌다. 신입사원을 채용할 유인이 더 떨어진다. 

 

요즘 코로나로 미국에서 실업이 크게 늘었는데, 기업에서 노동자를 lay-off할 때의 원칙 중 하나가 last come, first go. 가장 신입을 가장 먼저 해고한다. 평균적으로 생산성이 떨어지고 firm-specific skill이 낮고, 이직의 가능성이 높은 노동자를 먼저 해고하는 나름 합리적 원칙이다. 이게 다는 아니지만, 그래서 불황 직후에 기업의 생산성은 높아진다. 2001년 불황, 2008년 불황 모두 마찬가지였다. 

 

신입사원 공채는 한국의 독특한 문화 중 하나다. 전반적인 기업 환경의 변화와 다른 국가의 고용 패턴 변화를 봤을 때, 한국에서 신입사원 채용, 특히 공채를 통한 채용의 비중은 더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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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ㅁㅁ 2020.06.26 00: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미 공채 줄어들고 있는거 취준하는 사람들은 다 알고요. 채용형 인턴도 많아요. 심지어 공기업같은 경우에는 애초에 채용비리 때문에 한바탕 난리난 것 때문에 시험에 비중을 크게 두고있다는것도 감안해야죠. 아직도 공기업에서 면접점수 조작해서 대거 탈락시키는 경우도 심심찮게 들려오는데..

    • ?? 2020.06.26 00: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말씀하시는 시험이나 면접이나 둘 다 신입사원 채용 프로세스 같은데요? 기존 경력직들은 시험 보는 경우는 거의 없이 레퍼런스 체크나 면접으로 들어올테니 해당사항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시험은 조작이 없을까요? 면접점수 조작뿐만 아니라 당장 은행권 시험 점수 조작 이슈 터진게 최근이었는데요.
      그나저나 적고보니 시험 과정에 소요되는 코스트 세이빙도 신입 공채를 줄일만한 요인이겠군요.

    • ㅁㅁ 2020.06.26 00:22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는 그렇게까지 물증남기 쉬운 시험점수까지 조작해서ㅋㅋㅋ 채용비리 일으키는게 리스크가 더 클것같은데요.
      아무튼 그럼 죄다 비정규직살이 5년쯤하고 경력직 달아서 경력직 채용에 넣는 세상 만들어야겠네요. 친기업적 마인드 좀 내려놓으시구요.
      그리고 처음부터 비정규직 처우개선문제 때문에 여기저기서 말 나온거 아니었나요? 비정규직을 이런식으로 '기업에서 필요한 능력을 쌓기 위해서 처우가 뭐같아도 참고 버티면서 경력쌓는 기간'이라고 포장하면 죄다 비정규직으로 시작하라는 말밖에 더되나요? 차라리 정규직도 능력없으면 자르기 쉽게 만들라고 하던가요. '코스트 세이빙'의 일환으로요 ㅋㅋ

    • ?? 2020.06.26 01:05  댓글주소  수정/삭제

      첫 덧글부터 많이 화가 나있으신 것 같은데 덧글 다신 분의 상황과 별개로, 본문도 제 덧글도 현재 일어나고 있는 현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딱히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비정규직 이야기는 본문도 제 덧글에도 관련 내용이 없는데 왜 언급하시는지 잘 모르겠네요.
      화를 가라앉히시고 신입사원 공채만이 덧글 다신 분 인생에 올 유일한 기회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시면 오는 기회를 놓치지 않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모두가 힘든 시기인건 알겠습니다만 분노는 스스로를 파괴할 뿐입니다. 힘내세요.

    • ㅁㅁ 2020.06.26 01:35  댓글주소  수정/삭제

      예. 제가 애꿎은 님한테 화내긴 했네요. 사과합니다. 이번 이슈마다 온갖 곳에서 정규직으로 꿀빨려는 대졸자 취준생들 꼴좋다며 사이다식으로 이번 이슈 소비하는게 짜증나서 화부터 냈네요. 본문에 내용만 없다뿐이지 사실상 뉘앙스는 다를바 없다고 느껴지고요. 제가 댓글에 적어둔 말 실제로 내뱉는 인간들 수두룩하다는 것만 아세요. 저도 정규직 공채가 제 인생에 유일한 기회라고 생각안해요 ㅋㅋ 근데 거기에 투자한 시간을 오롯이 스스로 책임져야하는 청년층의 불만마저 틀어막는 기성세대가 이해가 안될뿐입니다 ^_^...

    • Q 2020.06.26 01: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을 읽다 궁금해서 질문 드리는데, ‘ㅁㅁ’님은 결론적으로 말씀하시고 싶은 것이 “신입 채용을 늘려야 한다”인가요? 이 포스팅의 내용은 그런 희망이 잘못됐다는게 아니라 기업이 그럴 유인이 없다는 것을 설명한 것인데 이상한 지점에서 분노하시는군요.
      “ 본문에 내용만 없다뿐이지 사실상 뉘앙스는 다를바 없다고 느껴지고요.” 와 같은 말씀은 혼자 화내서 열폭하시는 건데 더운 여름에 너무 열내시면 본인만 힘들죠.

    • ㅁㅁ 2020.06.26 04:40  댓글주소  수정/삭제

      예 제가 열폭했습니다 ㅇㅇ

  2. 한국 2020.06.26 04: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국하고의 비교는 좀 안맞지 않을까요. lay-off 가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여서 애초에 안뽑거나 어느정도 연차있는 친구들을 권고사직형태로 많이들 내보냅니다.

  3. 이거는알겠네요 2020.06.26 13: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래서 기업들이 대학을 직업양성소로 만들려고 기를쓰는거군요 최대한 교육비용을 외부로 전가하기위해

    • 바이커 2020.06.26 23:19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게 꼭 나쁜 건 아닙니다. 뭘 가르쳐야할지 알기만하면요.

      설사 대학의 목적 중 하나가 기업에 맞는 인재를 길러내는 것이라 할지라도, 대학은 뭘 가르쳐야 생산성이 높아지는지 잘 모르고, 기업도 뭘 요구해야 하는지 몰라요.

      그러니까 두산에서 중앙대 인수했을때 기껏한다는 소리가 모두에게 회계원론을 듣게 하겠다는 소리를 하는거죠.

  4. 지나가다가 2020.06.27 06: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채 채용이야 막을 수 없는 현실이 되었고, 취업준비생들도 제정신이면 다 동의할 겁니다.

    솔직히 고성장 시대도 아니고 기업에 혜택이 넘치는 정경유착 시대도 아닌데 굳이 막대한 비용부담을 할 이유가 없잖아요.

    이번에 문제가 된 것은 공기업이라서가 큰 것 같습니다. 만약 공무원이기라도 했으면 난리도 아니었겠지요.

    사실 대상자 전원이 정규직화 되지 않고, 일정 이상 계량평가(체력검정, 외국어 능력 등)를 강조했으면 좀 좋았을텐데 싶습니다. 사실 애초 인천공항 정규직 선언을 했을 때는 전혀 반발이 없었거든요. 이번에는 정무적으로 좀 세련되지 못했어요.


    개인적으로도 다른 분야와 달리 공공분야는 앞으로도 계량평가를 유지했으면 합니다. 뭐 아주 극단적으로 대만처럼 고시부까지 만들어서 국가 정신수준으로 할 이유야 없겠지만, 요즘 코로나 사태나 미국 경찰 폭력 사태를 보면 계량평가를 통한 규격적 인재들의 장점이 공공영역에선 뚜렷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코로나에서 상대적으로 평균은 가는 나라들이 죄다 공적 인재들을 계량평가로 뽑는 나라라는게 우연의 결과는 아닌 것 같습니다. 하도 조롱당하는 일본조차 비슷한 경제력의 독일에 비하면 일등급 수준이죠. (그나마 유럽대륙에서 공/사 모두 계량적, 권위적 문화가 강한 독일이 코로나 대처가 가장 낫다는 것도 우연은 아닐테고요)


    다만 아무 쓸데없는 국어나 현지인도 안 쓰는 희한한 영단어, 아무 쓸모없는 자투리 역사 암기 시험이 아니라 PSAT과 업무과목 형태로 정리하는게 낫겠죠.

    실제로 정부 방향이 이미 그 쪽으로 가는 듯하더군요.

    여기에 더해서 대입도 사실 그 방향이 될 듯 합니다. 일부 진보 교육감들이 바칼로레아 같은 외치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교내 내신에 일부 계량적 평가가 가능한 비교과 요소 위주로 갈 수 밖에 없을 듯 합니다.

  5. 그런데 2020.07.01 04: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근데 교수님은 공적 영역의 채용이 어느 방향으로 봐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사기업이야 채용이 아니라 그냥 친구 자식만 뽑아도 사실 막을 이유도 없고 막을 수도 없을 겁니다. 심지어 종교가 마음에 안들어서 안 뽑는다고 해도 당장 차별이라고 할 수 있는가 애매한 분야가 사적 섹터죠. (교회 직원으로 이슬람신도 안 뽑는다고 차별이라고 할 수는 없으니)

    어차피 정량 100, 정성 100은 없는 것이고 그렇다면 정량 우위의 정성이냐 정성 우위의 정량이냐 정도의 차이일텐데

    물론 저는 정량 우위의 정성 평가 정도가 가능(아니 사실 다른 방법은 아예 불가능)하다는 쪽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