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nei minnei님 블로그 글: 자산 불평등에서의 주택의 역할

국토연구원 오민준 연구원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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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는 한국에서 자산불평등이 소득불평등 보다 커서 소득 뿐만 아니라 자산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산불평등이 소득불평등보다 큰 것은 전세계 공통 현상이기 때문에 새로운 내용은 아니다. 한국이 자산 불평등이 다른 나라와 비교해 큰 것도 아니다. 이 보고서에서 지니계수로 측정한 한국의 전체 자산불평등은 .56이다. 이 정도면 전세계적으로 낮은 편이다. 미국과 스웨덴은 .85에 달한다. 독일도 .82이다. 네델란드는 .90가 넘는다. 자산불평등이 소득불평등보다 1.5~2.0배 높은 것이 일반적이다.  

 

이 보고서에서 지니계수를 그룹 간, 그룹 내로 요소분해했는데, 이것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지니계수는 그룹별 요소분해에 좋은 지표가 아니다. 보고서에도 보이듯, 지니계수는 요소분해 후 "중첩" 요소를 남긴다. 깔끔한 요소분해가 되지 않는다. 타일, 아킷슨, 로그분산 등 깔끔한 요소분해가 가능한 지표를 놔두고 왜 굳이 지니를 썼나 싶다. 

 

한국에서 주택 보유여부가 자산에서 가장 중요한건 상식인데, 주택 보유 여부로 불평등을 분해하는게 무슨 의미인지도 몰랐다. 이는 마치 소득 액수에 따라서 소득불평등을 요소분해하는 종속변수로 종속변수를 요소분해하는 동어반복처럼 들렸다. 

 

그런데 주택 보유 여부에 따라 집단을 나누어 자산 불평등을 계산한 결과를 보니 처음에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의문이 풀리고, 이 연구가 매우 중요한 발견을 보고한다는걸 깨달았다. 

 

 

 

 

아래표는 위에 링크한 블로그 포스팅에서 베껴온 것이다. <표4>는 전체 가구의 지니 불평등 지표이고, <표 5>는 주택 보유 여부에 따른 소득, 자산 지니 불평등 지표이다. 

 

가장 놀라운 점은 주택보유자의 낮은 자산 불평등 정도다. <표4>를 보면 소득 불평등은 .35 총자산 불평등은 .56으로, 다른 국가에 비해 자산불평등이 낮긴 하지만, 극히 예외적으로 낮지는 않다.

 

그런데  <표5>를 보면 주택 보유자의 자산불평등은 어떻게 측정하더라도 .43~.45사이에 있다. 이 수치는 자산불평등의 측면에서 상당히 낮은 수치다. 이 수치가 얼마나 낮은 것이냐 하면, 세전 소득불평등이 미국과 독일은 .50에 달한다. 스웨덴 등 북구 복지국가가 .43 내외이다. 즉, 한국의 주택소유 가구 내부의 자산불평등은 다른 나라의 소득 불평등 보다도 낮다. 소득불평등과 자산불평등이 얼마 차이도 나지 않는다. 자산불평등 자료가 있는 전세계 국가 중에서 과거 사회주의였던 슬로바키아가 자산불평등 .50으로 가장 낮은데, 이것도 자료를 믿을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 슬로바키아의 자산불평등은 몇 년 전만해도 .60이 넘었다.

 

 

 

 

이 결과는 한국에서 주택보유자는 상대적으로 동질적인 중상층을 형성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표 5>에서 주택 미보유자의 순자산 불평등이 .71에 달하는 것을 보라. 주택보유자의 자산불평등 지니 .44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지니계수에서 .71과 .44는 엄청난 격차이다. 주택 미보유자는 자산보유액에서 이질적 집단이지만, 주택보유자는 상대적으로 동질적 집단이다. 

 

이 결과를 보면 주택 정책으로 주택보유자 내부를 갈라치기하는게 용이치 않다는걸 알 수 있다. 주택 보유자 내부의 이질성이 커야 그 특성을 이용하여 갈라치기 할텐데, 보다시피 이질성이 생각만큼 크지 않다.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전세입자와 주택보유자를 합친 후 전세금을 주택 자산으로 계산하여 주택과 부동산 자산의 지니계수를 계산하면 지수가 어떻게 바뀌는가다. 전세금을 포함한 주택자산 불평등이 .44에서 크게 늘어나지 않는다면, 주택보유자와 미보유자 갈라치기도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의미다. 

 

또 다른 함의를 찾자면, 현재 주택보유자 내부의 불평등이 상대적으로 작기 때문에, 사람들이 주택 가격 변동으로 자산불평등에 변화가 일어나는 현상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주택보유자 내부에서 자산상위층과 중간층의 격차가 작아서 경기 변동이나 소득 변동에 따라 언제든지 캐취업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택 가격의 차별적 증가에 따른 자산불평등이 심화되면, 캐취업이 가능한 상태에서 불가능한 상태로 질적 변화가 발생한다. 엄청난 상대적 박탈감을 유발할 것이다.

 

부동산 민심이반을 강남 때리기나 임대 주택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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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patz 2020.11.25 17: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계량화가 불가능한 주관적 생각이지만 (=뇌피셜), 보통 나이 지긋하신 분들은 현재 가진 집은 주거용으로 냅두고 '투자용' 부동산을 따로 마련하던가, 주식, 채권같은 다른 방향으로 투자를 돌리더라고요. 그것도 아니면 자식 결혼할 때 하나 마련해서 주던가. 결국 개별 공시지가 등은 다르지만 부동산을 가지려는 목적은 거의 일치하는 셈이고 (=어찌 되었건 투자용 재산).. 그러니 사실상 성별, 나이를 막론한 거의 모든 계층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거 아닌가 싶고 그렇습니다.

    몇 십년간 쌓아온 욕망의 피라미드가 그렇게 쉽게 부너지진 않죠.

    • 바이커 2020.11.25 20:07  댓글주소  수정/삭제

      주택보유자의 자산불평등이 저렇게 낮다는 것은 대부분 투자용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투자면 손실도 감당할 수 있지만, 투자가 아니기 때문에 손실이 나면 삶에 직격탄을 맞는거죠.

    • Spatz 2020.11.25 20:30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 맞네요. 제가 잘못 해석했군요. 내 집은 낮아지면 안 되지만 아무튼 집값은 잡아야 한다니 (이 자체 공감대는 있는 듯 하더라고요) 사실상 불가능한 명제 아닌가 싶습니다ㅋㅋㅋ

  2. Ee 2020.11.25 18: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시나요? 해결책을 알려주세요.

  3. 이니대디 2020.11.25 18: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중산층이 2000년대 이후 동질적이고 두텁게 형성된 것(그 이면에 중요한 요소는 대졸자 비율의 증가일 것이고요)이 현재 한국 사회의 불평등 및 계층화 양상, 사회이동 양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해 왔고, 그 원인이자 결과가 뉴타운으로 상징되는 아파트 주택 자산층의 등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통계는 그 가설을 너무 잘 지지해주고 있네요. 좀 놀랄 정도로요.

    이들 신흥 주택 중산층의 핵심은 대략 80년대생 30대 젊은 부부, 가족들, 처음으로 한국에 중산층이 등장한 이후에 태어나고 자란 첫 세대이지 않을까 싶고요(강남이 형성된 시기와도 맞물립니다).

    제 또 다른 개인적 가설은 이들로부터 본격적으로 한국에서도 제대로 된(?) 문화자본을 기반으로 한 배제의 사회화, 양육/교육 불평등이 시작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진짜 "세습 중산층"이 시작된다는 것이죠 (386세대 부모 - 90년대 생 자녀가 아니라 80년대 생 부모, 2010년대 생 자녀...). 맘 카페 에쓰노그라피(?) 해보다 보면 그런 심증이 강해 집니다.

    • 바이커 2020.11.25 20: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매우 중요한 문제제기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회가 지금까지 하위 20~30%만 버리고 다 같이 가는 사회였는데, 중간층 이상에서 더 세밀한 분화(내지는 계급형성)를 바라는거죠.

      이 욕망이 현실화되었는지는 물론 또 다른 차원의 얘기입니다.

  4. 궁금 2020.11.25 20: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주택보유자의 자산불평등은 평균의 함정일 수는 없나요?

    • 바이커 2020.11.25 20:41  댓글주소  수정/삭제

      극소수 부유층의 사례를 얘기하는거라면 모르겠지만, 현재와 같이 전반적인 아파트 가격이 상승할 때 평균의 함정이 될 수는 없습니다.

      지니계수도 일종의 평균이라면 평균이지만, 격차의 평균이라서요. 더욱이 지니는 중간값의 변화에 민감합니다.

  5. Ee 2020.11.25 21: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본은 부동산 가격이 오랫동안 안정적이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6. minnei 2020.11.25 22: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측정된 자료가 2018년 자료이기에 올해 자료로 살펴본다면 자산불평등이 훨씬 커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최근 서울을 중심으로 한 급격한 부동산 가격 변화 때문에 박탈감도 상대적으로 더 클 것이라 예상해 볼 수 있겠다 했구요.

    특히 서울과 비서울로 나누어서 분석해본다면 어떨까 궁금하더라구요.

    2030세대 중 부모에게 주택의 도움(증여)을 받고 결혼할 수 있는 가구와 그렇지 않은 가구 사이에 격차와 박탈감이 상당하다는 것(특히 서울), 그리고 최근 2030 자가 세대 비율이 감소했다는 보고(https://news.v.daum.net/v/20201123183601133) 등으로 2030세대의 마음을 읽어볼 수 있을거 같아요.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부동산 정책은 가용할수 있는 모든 정책들의 합인거 같고 어떤 메세지가 주가 되어야할까 고민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바이커 2020.11.25 23:32  댓글주소  수정/삭제

      커지긴 하겠지만 자산 불평등이 그렇게 급격하게 증가할지는 의문입니다. 집값이 특정 지역만 오른게 아니라서요.

      링크한 기사에 나오는 2030대 가구 자가주택 비율은 미혼 1인 가구와 기혼 2인 이상 가구를 나눠봐야 정확한 실태를 알 수 있습니다. 전체 주택 보유 가구 비율은 높아졌는데, 20~30대 가구주 가구만 떨어졌거든요. 가구 구성 변화 때문인지, 지역 집중 때문인지, 실제 신혼가구 주택 구입에 상당한 문제가 생긴건지 구분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7. 궁금 2020.11.25 23: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주택보유 중산층과 나머지로 비율화하면 몇대 몇정도가 될까요? 4대 6정도 될까요?
    주택보유층중 강남으로 대표되는 일명 '핵심지'와 나머지간 격차도 최근 어마무시하게 벌어지고있는데, 주택보유층을 단일한 집단으로 보는게 맞을지도 궁금해요. 강남 보유자는 전체 보유자중 매우 적은수라 의미가 없으려나요.

    • 바이커 2020.11.25 23:51  댓글주소  수정/삭제

      어떻게 중산층을 정의하냐에 따라 비율은 많이 달라질 겁니다.

      주택보유층의 내부 격차가 생각보다 작다는게 이들이 단일 집단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대충 얘기해서 중간층이 상위 20% 정도의 자산 보유가 완전히 불가능하다고 보지 않을 정도라는거죠.

  8. 크또-또 2020.11.26 00: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 예상과 굉장히 비슷한 결과가 나왔네요. 지난 몇년간의 부동산 폭등이 오히려 중산층을 강력하게 키워 줬다는 건데, 아파트를 가진 사람에게만 이 과실이 돌아가니 참 어렵습니다.

    • 바이커 2020.11.26 09:02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시군요. 저는 부동산 폭등이 다수에게 이득을 가져왔다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주택소유자의 자산불평등이 낮을줄은 전혀 기대치 못했습니다.

  9. Other 2020.11.26 23: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원래 포스팅과는 별개의 이야기인데, 유연한 미국의 고용시장은 건국 이래 변함없는 역사인가요? 아니면 경직되어 있다가 유연하게 노동법이 바뀐 계기가 있는 것인가요?

  10. minnei 2020.11.27 22: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바이커님, 자산불평등 정도를 주기적으로 측정하는 국제비교 자료는 어디에 있을까요? (제가 잘 몰라서요 ^^ 굽신굽신 ;;)

    • 바이커 2020.11.28 00:17  댓글주소  수정/삭제

      OECD가 주기적으로 업데합니다. 한국은 top1, 10% 등의 자료가 포함이 안되어 있는데, 하위 60% 쉐어는 보고합니다.
      https://stats.oecd.org/Index.aspx?DataSetCode=WEALTH

      https://www.oecd-ilibrary.org/economics/inequalities-in-household-wealth-across-oecd-countries_7e1bf673-en

      Wealth Gini를 매년 업데하는 기관은 스위스 은행인 Credit Suisse입니다. https://www.credit-suisse.com/media/assets/corporate/docs/about-us/research/publications/global-wealth-databook-2019.pdf

    • minnei 2020.11.28 00: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우와 감사합니다. ^^

네이트판의 요즘 흙수저 집안에서 애 낳으면 생기는 일에 대한 많은 개인적 경험과 분석이 보인다. 그 중에서도 사회학자 Annett Lareau의 중산층과 하위계층의 양육 방식 차이를 나타내는 concerted cultivation과 natural growth 개념을 적용하여 해당 글을 분석한 dennoch님의 트윗이 인상적이다. 

 

아래 기린아님이 댓글에서 한국에서 문화자본이 질적차이를 통해서가 아니라 양적차이를 통해서 드러난다는 지적도 타당하게 들린다. 중산층은 에버랜드 방문이 맘먹으면 언제든지 갈 수 있는 곳이지만, 하위계층은 그렇지 않다는 것. 

 

문화자본이 학업성취와 계층형성에 끼친다는 사회학 연구는 많다. 모든 학자들이 일치된 문화자본의 정의와 적용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문화자본이 많은 가정에서 자란 자녀들의 학업 성취도가 높고 계층지위도 높아진다.

 

예를 들어 Evans 등은 27개 국가를 비교해보니, 책이 많은 가정에서 자란 자녀가 책이 전혀 없는 집에서 자란 자녀보다 3년 정도 교육 연수가 많았다. 이 효과는 부모의 교육수준, 직업, 계층지위를 통제한 것이다. 문화자본이 소득의 대리지표가 아니라 독립적인 영향이 있다는 것. 이 영향력이 국가의 발전 수준에 관계 없이 나타났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문화자본의 영향력은 어느 정도인지 당연히 뒤따르는 질문이다. 

 

흥미롭게도 지금까지의 연구에 따르면 "문화활동"으로 규정된 문화자본은 한국에서 학업성취도에 오히려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 문화활동을 많이 하는 상위계층 자녀의 성적은 올라가는게 아니라 내려간다. 얼마 전 소개했던 정인관 외 (2020)의 한국의 세대 간 사회이동과 교육 불평등에 대한 리뷰 논문에 잘 정리가 되어 있다. 37~38쪽의 내용을 따오면 다음과 같다 (참고문헌 인용은 모두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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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소유한 문화적 소유물, 독서 향유 정도, 문화적 소통 등으로 정의된 문화자본은 자녀의 학업성취에 정적인 영향을 주는 반면, 자녀의 문화 활동 참여로 정의되는 문화자본은 일관되게 부적 영향을 가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런 결과는 한국 교육제도의 특징(표준화된 커리큘럼, 시험 중심의 평가제도, 사교육) 및 문화 활동과 공부가 가진 시간 배분에서의 경쟁 관계로 설명된다. 이런 한국의 양상은 서구 사회에서 관찰되는 일반적 양상과는 다른 독특한 점이다. 

이런 문화자본의 발현 방식은 한국에서 문화적 체험, 경험이 자본으로서 작동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지만 한편 고도로 전략적이고 계층화된 형태 로 문화자본 활용이 이뤄지고 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 예를 들어, 문화 체험의 빈도가 부모의 문화 체험 빈도에 따라 선형적으로 증가하지 않고 일정 수준부터는 감소하는 대신 독서 향유로 전환되는 양상이 나타나는데 이는 각 유형의 문화자본의 한계 효과를 이해한 전략적 행위일 수 있다. ... 이는 한국에서 문화자본이 교육 불평등을 악화시키는 역할을 하되 그 방식이 무의식 혹은 반의식적 사회화 과정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고도의 전략적 고려를 매개로 이뤄지고 있을 가능성을 확인시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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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한국의 계층이동, 교육불평등에 관심있는 모든 분들에게 이 논문을 읽을 것을 권하고 싶다.)

 

 

 

문화자본의 영향력이 이렇게 미묘한 이유 중 하나는 한국에서 계층별 문화 격차가 질적 차이가 아니라 양적 차이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인이 공유하는 문화적 동질성이 문화자본이 학업과 계층 성취와 보다 직접적인 상관관계를 맺는걸 방해한다.  

 

예를 들어, 모든 계층의 자녀가 사교육을 받는다. 계층에 상관없이 같은 학원에서 사교육을 받으면서 교우 관계를 맺는게 계층별 문화 자본의 영향력을 낮추는 아이러니를 일으킬 수 있다. 지난 10여년간 하위계층의 사교육 투자가 늘어났다는 것을 기억하라. 

 

문화자본의 이러한 미묘한 영향에 비해 가족배경의 계층지위는 확실히 좋은 대학 진학 확률에 영향을 끼친다. 

 

그런데 한국의 하위계층은 소득 수준이 올라가면 자녀 교육 투자가 늘어난다. 소득이 올라갔을 때 자녀 교육 투자를 우선시하는 한국의 교육열은 계층 재생산의 가족배경 효과는 낮추는 면에서 엄청난 장점이다.

 

이 때문에 하위계층의 소득 수준 개선에 집중하는 정책으로 하위계층 자녀의 학업 성취도도 개선할 수 있다. 아래 포스팅에서 얘기했듯, 소득 재분배 정책이 기회 평등 정책보다 쉽다.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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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기린아 2020.11.15 23: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데 한국에서의 문화자본이 '계급'형성에 도움이 안되서(하비투스라고 하든가요?) 가치가 없는것도 대충 맞는거 같아요. 가령 상류층만 듣는 음악이라던지 아니면 미술에 대한 감각이 대화에 영향을 미친다든지 그런건 아니거든요. 상류층만의 문화라는게 딱히 볼거 없다고 해야 할지. 어학연수쯤 되면 상류층과 상류층 아닌 사람들의 차이가 확실히 날텐데, 그게 또 딱히 어마어마한 사회적 리턴으로 돌아오는건 또 아니란 말이죠.

    그냥 드는 생각인데, 한국에서 계급 차이가 '질적 차이'가 아닌 '양적 차이'로 나는 것은 아직 계급이 '발생 중'이어서 그 차이가 두드러지지 않을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계급에 따른 문화적 격차를 '경험'해 본 적이 없으니 그것이 '당연시'되는 것도 아니구요.

    • 바이커 2020.11.16 12:01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는 그게 계급재생산의 안정성이 떨어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달리 말해 세대간 사회이동이 활발하다는거죠.

  2. 푸른 2020.11.16 00: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문화자본 개념이 상당히 모호한데, 일단 부르디외 저작을 열심히 옮겨주시는 이상길 교수님에 따르면 부르디외가 말하는 '문화자본'의 자본은 베버의 자산asset이라고 하네요. 문화적 경험의 정도를 가지고 문화자본이다 아니다 정의하는게 아니고 가치나 이윤을 전유하는데 기여하는 능력이 문화적 요소(취향, 책이나 음반같은 문화적 재화, 공인자격증)일 때 그 요인을 문화자본이라고 하는 것이죠. 구성적 정의가 아니라 기능적인 정의인 것이죠.

    결국 특정한 문화적 요소가 계급재생산에 부적이라면 그건 재생산과정에서는 문화자본이라 부를 수 없습니다. 이건 그냥 definition의 문제죠. 다른 분께서 여부와 빈도를 거론해주셨는데, 빈도를 지지해주는 경제적 여건과 취향(놀이공원이나 익스트림을 즐기는 성향)으로 나눠볼 수 있을듯 합니다. 후자만이 문화자본의 후보군이겠고요.

    한편 이 문화자본으로 규정되는 문화적 경험은 국가별로, 시대별로 달라집니다. 예컨대 새벽에 일어나면 할아버지가 사서삼경을 읊는 집의 경우 조선시대까지야 도움이 됐겠지만 요즘에는 별 도움 안되죠. 국가별로는 철학, 사회학, 언어학 정전을 추가적으로 읽으면 대입에 유리해지는 프랑스의 바칼로레아 하에서 독서경향은 분명한 문화자본이지만, 일단 영어는 EBS지문 외우는게 우선이고, 독서와 별 상관없는 수학이 변별력을 주는 한국의 대입제도(그 중에서 정시)에서는 독서경향이나 연극이나 영화를 좋아하는 취향은 공부할 시간에 딴짓하는 학생을 만들 뿐이죠.

    교수님이 추천해주신 위의 리뷰논문에 감사드리며, 저도 문화자본에 대한 생각을 달리하게 된 논문을 소개하고 마치려합니다. 김샛별 교수님의 논문 '불평등한 미래: 청소년의 꿈, 지위표식이 되다'입니다. 혼합방법을 썼는데 인터뷰 부분에서 드러나는 계층별 차이가 쇼킹하더라구요.
    링크는 여기 : https://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9312409#none

    • 바이커 2020.11.16 12: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문화자본에 대한 일치된 정의가 있는건 아니지만, 문화자본의 자산 측면을 그렇게 정의하면 결과가 발생해야만 자본이 되는 문제가 생깁니다. "이기는 편이 우리편"으로 우리편을 정의하는거와 비슷하죠.

      검증이 불가능하거나 불필요한 개념이 되어버립니다.

    • 푸른 2020.11.17 20:03  댓글주소  수정/삭제

      한마디, 딱 한마디면 되겠네요. 화폐

      화폐도 결과적으로 교환의 매개물로서 기능해야 화폐가 됩니다. 그것이 돌로 만들어졌든, 붉은색 꼬리깃이든, 초록색 종이든 '매개물로 기능하는 것이 화폐인 것'ㅡ이기는 편이 내 편과 같이ㅡ이죠. 그럼 화폐 개념도 불필요한 개념인가요? 아마 아닐겁니다.

    • 바이커 2020.11.17 21:12  댓글주소  수정/삭제

      화폐는 정의 자체가 기능이에요. 뭔가 다른건데 결과적으로 교환의 매개물이라는 기능을 하는게 아니고요. 그 기능에 맞으면 뭐든 화폐가 됩니다. "이기는 편"이라는 정의 자체죠. 그러니 형태가 무엇이든 그 기능을 하면 모두 화폐입니다.

      반면 자본은 무언가의 stock이죠. 자본도 분명 작동과 기능을 하지만, 어떤 기능 자체로 정의된게 아닙니다.

      문화자본을 상류계층의 어떤 취향 일체가 아니라 계급재생산의 미시적 과정에서의 각각의 기능으로 정의하면 논의가 많이 꼬이게 될 겁니다.

    • 푸른 2020.11.18 01: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불필요에서 논의의 어려움으로 평가가 달라진듯하여 다행입니다. 제가 "화폐"거리며 한 말의 의도를 어찌저찌 이해해주셨나봅니다ㅎㅎ

      한편 자본에 대한 논의는 참으로 복잡하죠. 교수님이 말하셨듯 자본을 stock으로 보는 입장이 있는가 하면 다른 입장도 있으니까요. 애초에 '자본'이라는 말을 유행시킨 마르크스가 "자본이란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 특정한 역사적 사회구성체에 속하는 일정한 사회적 생산관계"라고 단언하기도 했고요.. 이 관점에서 보면 문화자본의 경우, '자본'이 무엇이냐가 핵심인듯 합니다. 부르디외가 마르크스 이전의 정의를 그대로 차용했을지, 마르크스 이후의 다른 학자의 정의를 차용했을지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우선 그 개념이 등장한 배경을 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부르디외가 문화자본 개념을 제시한 이유는 경제적 배경만으로는 재생산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를 두고 부르디외는 같은 경제수준이더라도 특정 문화성향을 충족하는 그룹에서 재생산이 효과적임을 분석해냅니다. 그 후에 그 문화성향을 문화자본이라고 지칭합니다. 지극히 결과적이고 기능주의스러운 명명이죠.

      물론 부르디외는 자본을 축적된 노동이라고 말합니다. 재생산에 도움이 되는 문화적 성향도 반복행동의 결과일 뿐이니까요. 다만 이를 두고 '자본을 무언가의 stock으로 정의했다'라고 하기 어려운 이유는 부르디외의 장 이론에 따르면 대상A가 이 장에서는 자본이지만 다른 장에서는 자본이 아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컨데 호의적인 말투는 연애 시장에서는 분명 문화자본이겠지만 주식거래시장에서는 문화자본이라 불리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자본이 무언가의 stock으로 정의된다면, 달리말해 '자본A는 a의 stock이다'가 분석명제라면, a의 stock은 항상 자본이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죠.

      이에 더해 부르디외는 '(경제적) 상류계층이 지닌 문화적인 취향이 문화자본이다'라고 말한적은 1번도 없고, 오히려 경제적 심급이 최종심급이라는(그래서 문화적성향도 경제적여건이 결정한다는) 알튀세르의 의견에 반대합니다. 또한 미국에서 '미국에서는 계급 위치에 따라 취향이 분화되지 않는다'는 말을 누군가는 꼭한다고 불평을 하죠.

      이상의 설명을 종합해보면 문화자본은 stock으로 정의될 수 없으며, 기능주의적으로 명명됩니다. 기능주의를 피하기 위한 일단의 시도는 부르디외에게만큼은 부정되었고요.

    • 바이커 2020.11.18 08:26  댓글주소  수정/삭제

      화폐의 비유를 잘못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정확히 그런 의미로 썼다니 놀랍군요.

      그런데 그렇게 정의하면 기능주의 논리가 걸었던 길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됩니다.

  3. 두꺼비 2020.11.16 01: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그 네이트 판 글을 보고 그 책이 가장 먼저 떠오르더라고요. 아마 몇 년 전에 이 블로그에서 추천받았던거 같은데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네이트 판: 요즘 흙수저 집안에서 애 낳으면 생기는 일

 

다들 이 글을 보고서 느끼는 점이 많으실 것. 진짜 흙수저와 가짜 흙수저인 중산층이 이렇게 다르구나 하는 것도 알게되고. 흙수저가 어렵다는걸 알려주는걸 넘어, 문화자본, 경험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성찰이 보인다. 

 

"힐빌리의 노래"라는 책을 읽으신 분들은 Sparkling Water에 대한 J.D. Vance의 회고가 기억날 것이다. 문화와 경험은 그렇게 물 한 잔 마시는 것에서도 차이가 난다. 

 

그런데 이 글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부모님에 대한 묘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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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본인들은 동네 주민들이랑 술도 마시러 다니고 친목 모임도 조금씩 하고 다님.  
못 사는 동네여도 어른들의 자존심을 건 친목 문제는 중요하게 여기면서 
자식들의 사회적 관계는 전혀 중요하게 생각 안함.
...

그렇게 인생을 통틀어 
가난하기만 한 부모님 밑에서 태어난 애들은  
평균 소득이 오른 세상에서 부모의 무능함을 함께 제대로 체감하게 됨.  
...

부모님 세대는 정시 기회도 더 열려 있어서 
무식할 정도로 언수외탐만 파고 있으면 명문대 진학하기는 더 좋았고 
학벌이 좋으면 취직도 잘하고  
심지어 집값도 지금보다 훨씬 싼 시대였는데  

낳은 자식이 자라는 20년 동안  
자기 명의로 된 집 한 채도 마련해본 경험이 전혀 없고  
기초생활수급자 생활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 시대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밀려나 도태된 인간이란 뜻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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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묘사는 불평등과 사회이동에 대한 매우 중요한 진실을 담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불평등 자체가 아닌 공정성 이데올리기가 지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배 이데올로기는 많은 경우 단순히 허위의식이 아니라 어떤 객관적 사회 현실에 기초한다. 불평등과 사회이동에 대한 사회적 태도가 공정성 위주로 달라지는 원인이 바로 부모님--보다 정확히는 기성세대의 계층위치--에 대한 이러한 태도 변화에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가족의 빈곤은 사회적 구조의 결과이거나 운이 없기 때문으로 여겼다. 대부분 농민 출신이었던 부모의 빈곤이 부모 세대의 노력의 결과로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청년층의 부모 세대인 현재의 50~60대 계층 지위는 위 글에서 묘사되었듯 자신들의 노력의 결과로 여긴다. 부모 세대의 가난이 그래도 마땅한 그들 삶의 결과라는 것이다. 

 

이 글에서 묘사된 하위계층 기성세대는 <돈없어도 자기 친목은 즐기는 도태된 인간>이다. 기회가 주어졌지만 현재의 즐거움을 위해 미래를 생각하지 않아서 현재 가난하게된 루져다. 당신들이 젊었을 때  주어졌던 기회를 근시안적으로 노력안해서 날렸고, 자식들의 기회도 당신들의 현재 즐거움을 위해 날리고 있다. 

 

이러한 묘사가 전면적인 진실은 아니더라도 상당부분의 진실을 담고 있다. 산업화세대, 민주화세대를 거치면서 부모 세대의 기회 제공과 sorting이 이루어졌다. 모두가 농민이라 구조적 제약이 경제적 성취의 대부분을 설명하는 시대가 지났다. 현재의 자식세대 뿐만 아니라 부모세대에서도 생득지위(ascribed status)의 시대가 가고 획득지위(achieved status)의 시대가 온 것이다. 

 

사회학에서 사회이동 연구할 때 일단 산업사회로 넘어오면 계층 이동의 변화가 없다는 constant fluidity 가설은 이렇게 산업사회가 완성된 후에 변화하는 사회이동 관계를 아카데믹하게 담아낸 용어다. 

 

기성세대의 사회적 지위는 그들이 획득한 것이고, 이 획득 과정은 대체로 공정하였다. 기회가 완전히 평등한 것은 당연히 아니지만, 기회가 전혀 주어지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기성세대의 현재지위는 그들의 생을 봤을 때 많은 경우 그래 마땅하다.

 

그런데 여기서 도덕적 딜레마가 생긴다. 공정한 경쟁의 결과로써의 기성세대의 불평등한 지위는, 전혀 공정하지 않은 다음 세대의 불평등한 기회로 연결된다. 마땅하다고 여기는 부모 세대의 결과 불평등이 다음 세대의 기회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이전세대 결과 불평등이 다음 세대 기회불평등으로, 결국 다음 세대의 결과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현실을 칭하는 용어가 "불평등의 기계적 결과 (mechanical consequences of inequality)"다.

 

좀 아카데믹하게 얘기하자면, 아래 단순 회귀식에서 부모세대의 소득(=X)과 자식세대의 소득(=Y)이 b로 연결되어 있을 때, 부모 세대의 불평등 (= Var(X))가 커지면 설사 부모-자식의 기회불평등(=b)에 아무런 변화가 없어도 자식 세대의 불평등(= Var(Y))은 자동으로 커진다. (1)은 부모와 자식 세대의 소득/자산의 관계에 대한 것이고, (2)는 (1)을 불평등으로 바꾸면 유도되는 아주 간단한 식이다. 

 

(1) Y = a + b*X + e

(2) Var(Y) = b^2*Var(X) + Var(e)

 

부모세대와 자식세대의 소득관계(=b)를 완전히 0으로 만들지 못하는한, 부모세대의 결과 불평등은 자식세대의 결과 불평등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현재의 불평등이 미래의 불평등으로 필연적으로 이어진다. 

 

모든 사람에게 가족배경의 중요성을 줄이고 기회 평등을 주는 기획은 b를 0로 만드는 것이고, 현재의 불평등을 줄임으로써 미래의 불평등도 줄이는 기획이 Var(X)를 줄이는 것이다. 전세계 어느나라도 b를 0으로 만든 적이 없고, Var(X)를 0으로 만든 적이 없다. 

 

공정성에 집착하는 현재의 한국사회는 Var(X)는 수용하고, b를 0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셈이다. 위 네이트 판 글의 부모 세대에 대한 냉정한 평가도 Var(X)를 수용하는 내용이다. 공분을 샀지만 "부모 잘만난 것도 능력"이라는 정유라의 발언도 Var(X)를 수용하는 내용이다. 본질적으로 네이트 판의 글과 같은 인식이다. 

 

하지만 현실은 Var(X)와 b가 연결되어 있어서, 기성세대의 불평등을 줄이는 사회가 다음 세대의 기회불평등도 줄이고, 이것이 순환되어서 다음 세대의 결과불평등도 줄인다. 이 관계를 보여준 것이 "위대한 개츠비 커브"다.

 

기성세대의 불평등 축소와 다음 세대를 위한 기회불평등 축소는 같이 가는 것이지, 하나는 가만두고 다른 하나를 취할 수 있는게 아니다. 정책적으로는 기성세대의 불평등 축소가 다음 세대를 위한 기회불평등 축소보다 훨씬 쉽다.

 

불평등 축소, 빈곤 추방은, 살아온걸 봤을 때 지지리 못사는게 마땅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도 괜찮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지, 성실하게 살았지만 어쩌다 가난해진 사람만 지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야만 현재의 결과 불평등에 아무런 책임이 없는 다음 세대에 공정한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현재의 결과불평등에 대한 정책적 선호 없는 공정성에 대한 도덕적 선호는 공허한 말장난이다. 

 

 

결과 불평등 축소 없이 기회 불평등 축소 없다. 

현재 세대의 결과 불평등 축소 없이 다음 세대의 기회 공정성 없다.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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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키비쳐 2020.11.14 18: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이 글(네이트판)을 다른 커뮤니티를 통해서 접했는데, 부르디외의 <구별짓기>와 아네트 라루의 <불평등한 어린 시절>이 제일 먼저 떠올랐습니다. 부모 세대가 가지고 있는 문화 자본과 경험이 어떻게 자녀 세대에게 전이되는 지, 그러한 양상이 계층에 따라 어떻게 차이가 나타나는 지를, 있는 그대로 묘사하더라구요. 가장 기억에 남았던 대목이, '나는 중산층 집안 애들 생활 수준도 생활이지만, 제일 부러웠던 이유가 화목한 가정이 형성되는 조건을 잘 갖추고 있어서, 부모님을 공경하고 사랑할 수 있다는 점이었음.'이었는데, 이 부분은 읽으면서, 아네트 라루의 '조율된 양육(concerted cultivation)'이라는 개념이 떠올랐습니다.
    P.S. 사실 저 글에 대한 댓글도 좀 흥미로웠던게, 글 내용에 공감한다는 댓글이 압도적으로 많아서 놀랐습니다. 물론, 부정적인 댓글('부모 탓, 남탓 한다.', '지나치게 비관적이다.')도 있었지만.

    • 바이커 sovidence 2020.11.15 09: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백퍼 동의합니다. 저도 그 생각이 제일 먼저 났습니다. 라루의 글은 부모가 자녀에게 해주는 것인데, 저는 자녀가 바라보는 부모에 대한 시각의 변화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2. 코끼리 2020.11.14 18: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짜 흙수저 중산층'이라는 말이 콕 박힙니다.

    기회 불평등, 공정성 기획의 한계를 명쾌하게 짚어주셨네요. 속이 시원합니다. 현실에선 여전히 공정성 담론이 목소리 큰 중산층의 열렬한 지지속에서 득세할 거라는 점은 답답하게 느껴지지만요.ㅠ

    "불평등 축소, 빈곤 추방은, 살아온걸 봤을 때 지지리 못사는게 마땅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도 괜찮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지, 성실하게 살았지만 어쩌다 가난해진 사람만 지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야만 현재의 결과 불평등에 아무런 책임이 없는 다음 세대에 공정한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3. 마요 2020.11.14 19: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거는 안보실줄 알았는데 보셨네요.교수님말고 정치인들이 봐야하는데...
    근데 놀랍게도 대부분의 반응은 저 글쓴이가 부모탓을 한다고 하는데 이걸 어떻게 생각해야할지 모르겠네요. 평균연령이 낮은 커뮤에서도 높은 커뮤에서도 가난이 개인의 문제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는거같습니다.
    + https://pgr21.com/freedom/82712 여기 글도 읽어 보시길 추천드립니다.이것 도 명문입니다.

  4. 영국처럼고착화가 2020.11.14 20: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국처럼 고착화가 되어서 "노동자" 라는 계급성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정신 (물론 일부 사람들은 그것을 일종의 체제에 순종한 허위의식이라고 봅니다 http://www.yes24.com/Product/Goods/1431062) 이라도 생기지 않는 한 계속 사회불만사항으로 남지 않을까 싶습니다.

    요즘 신세대들이 '낳음당했다' 라고 자주 말하는건 본문의 네이트판 글 같은 측면도 크겠지요. 태어나보니 주변은 다 그럭저럭 사는데 흙수저에 불화 가득한 가정이라니. 누가 생각해도 불공정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차라리 종교의 힘을 빌려 불교의 업보에 따른 윤회전생설이 어떻게 보면 이런 의식을 제어할 수 있겠지요. 니가 이렇게 '낳음당한' 것은 니가 전생에 큰 업보를 지었기 때문이다라고 명쾌하게 설명해주니 말이죠. 그래서 현생에서 노력해서 다음 생을 노리세요. 라고 말해주고요.

    정신적인 해결책이야 그렇다치고, 사회적으로는 결국 흙수저들도 어느정도 시스템안에 자리잡게 해야할텐데, 국가가 이런걸 전부 하기 어렵다면 민간과도 적극적으로 손을 잡아 체계적으로 시스템안으로 들여와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https://www.chosun.com/national/weekend/2020/11/14/EJQVKP47UVDFJOZBHTKF6P453U/

    • 바이커 sovidence 2020.11.15 09: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한국의 세전 불평등은 지니계수 .40 정도로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편입니다. 많은 선진국이 .50이 넘습니다.

      한국이 뒤지는건 세후 재분배 후 불평등입니다. 한국은 세후 불평등이 .36 정도인데, 다른 나라는 .50에서 .32~3으로 줄어들거든요. 다른 국가에 비해 한국은 국가가 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국가입니다.

  5. 헬피 2020.11.14 23: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모든 사람에게 가족배경의 중요성을 줄이고 기회 불평등을 주는 기획은 b를 0로 만드는 것이고,"

    -> "기회 평등을 주는" 또는 "기회 불평등을 줄이는" 을 의도하신 것이지요??

  6. 기린아 2020.11.15 00: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전에 후배랑 이야기 하면서, 현대사회에서 의외로 상층민과 하층민의 경험 '여부'는 차이가 크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적이 있습니다. 왠만큼 가난해도 에버랜드를 '다녀온' 경험이(주로 수학여행의 형태입니다만...) 한번 정도는 있을 가능성이 높죠.

    진짜 차이는 '빈도'에서 나타나더군요. 중산층은 에버랜드를 '맘먹으면 아무때나'갈수 있는 사람인거죠. 연간 이벤트나 몇년단위로 고민하지 않고도요. 마찬가지로 음식도 그러하겠네요. 해외여행쯤 되면 더 벌어질 거고. 결국 하위계급이 '이벤트'로 하는 일을 상위 계급은 '마음 내키는대로' 할 수 있는 것이죠. 이런데서 나타나는 취향의 격차는 꽤 크기는 합니다.

  7. Spatz 2020.11.15 17: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속칭 밑바닥으로 일컬어지는 소득 하위 20% (132만원..) 들을 관찰할 기회가 있었는데, 딱 맞아요. 진짜 문제는 뭐 당장의 생활비고 뭐고 다 좋은데 단순히 돈 못 버는 집안에 낳음당했다란 것 만으로 '불합리한 선택을 하도록' 계속 내 몰리게 되고 그게 종국에 불평등을 유발한다는 것.

    당장 알바천국 같은 앱에 보면 속칭 "바" 라고 일컬어지는 여성 대상 유흥주점 아르바이트나 당일지급을 걸어 둔 택배 상하차들이 눈에 띄죠. 사실 이것들은 그렇게까지 좋은 선택이 아니라는 것 쯤은 다들 알 거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쪽을 선택하게 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뭐 시험이라던가 합격을 위해 공부하는 것 보다 생존이 급한 경우, 인생사 큰 그림을 그릴 수도 없는데 당장의 쾌락은 가까운 경우,.. 뭐 인간은 코딩된 기계가 아니니만큼 가끔 올라가용하는 개천용들도 보이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죠. 당초 그건 그 사람들이 잘 난 거고.

    한국의 싸구려 소주나 막걸리들에 취해 길거리를 다니는 청년, 노인들이 모두 본인의 선택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해결이 쉬운데. 근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심지어 대부분은 이게 '불리하다고' 학습받기 때문에 (똥수저, 흙수저가 욕으로 쓰이기도 하잖습니까.) 철저히 가리길 원하고. 그렇게 각종 조사에서 가려지고 그 때문에 정책에 잡히지도 않으니 대책은 산으로 가고.

    • 바이커 sovidence 2020.11.15 19: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습니다. 극빈은 최상층만큼 서베이에서 실제 소득이나 상태를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이 분들도 자신을 드러내기 매우 꺼려합니다.

      2015년 센서스에서 소득하층이 많이 포착된 이유가 그 전에 서베이 조사에서 포착되지 않던 집단시설 (예를 들면 만화방) 거주자를 행정자료로 포함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전 센서스에 비해 주거지 자료가 튑니다.

      이 때문에 2015년 센서스에 기반해서 표본설계를 다시 한 2018년 가계동향조사에 문제가 생겼던거죠.

      KGSS 조사할 때도 극빈층 조사를 힘들어합니다. 상류층은 인맥을 타고 들어가면 조사할 수 있는데 반해 극빈층은 그것도 안되거든요.

    • Spatz 2020.11.16 19:20  댓글주소  수정/삭제

      결국 직접 연구자원을 파견하는 식으로 조사를 할 수 밖에 없는데 극빈층들의 패러다임 역시 변하고 그들 업무 (저임금 고강도) 때문에 협조도 안 되다 보니 참.. 변화 속도를 못 따라 잡는 듯 한 느낌도 들어요.

  8. 2020.11.16 20: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회 불평등, 결과 불평등을 저렇게 수식으로 나타내니 훨씬 이해가 쉽네요 대박

시사인 기사: 바이든 승리해도, ‘트럼프 시대’는 계속 된다

 

아마 많이들 보셨을 듯. 트럼프 현상이 계속되는 이유를 논하는 기사다. 경제불평등은 악화되고 세계화가 진행되는 와중에 미국의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국제주의+불평등주의"에 묶여 있다. 이 구도에서 저학력 농촌 거주자가 기댈 정당이 없다. 트럼프가 이 틀을 깨고 "토착(또는 자국우선)주의+불평등주의"로 보수 유권자를 유인하여 성공했다는 것이 천 기자의 단순명료한 분석이다.  

 

일독을 권한다. 

 

여기서 추가로 질문할 것은, 왜 그리고 어떻게 트럼프가 성공했냐는 것이다.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주류는 비슷한데,  공화당의 이단자 트럼프는 성공하고, 민주당의 이단자 샌더스는 (그리고 AOC는 아직은 모르지만) 성공하지 못했는가?

 

트럼프와 비슷한 정치인에 대한 일정 정도의 지지는 많은 국가에서 나타나지만, 트럼프 같이 성공한 케이스는 많지 않다. 불평등 증가는 전세계적 현상인데 왜 유독 미국에서 트럼프 현상이 강력하게 나타났을까? 미국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제가 주목하는 것은 두 가지 이슈다. 하나는 지역, 다른 하나는 양당제. 

 

우선 양당제부터. 이 블로그에서 몇 번 논의했던 내용인데, 양당제가 다당제보다 좋은 이유 중 하나가 극단적 정치 세력의 득세를 막는 효과가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트럼프 같은 정치인이 미국에서 성공하기 어려워야 한다. 하지만 트럼프는 2016년에 당선되었고, 이 번에 낙선했지만 엄청난 지지를 받았다. 

 

트럼프는 공화당을 바꾸는데 어떻게 성공한 것인가?

 

제가 답을 아는 것은 아니고, 이 질문을 정치사회학 전공하는 동료 교수에게 했더니, 그의 답은 Koch Brothers다. 코크 형제는 트럼프 지지자가 아니다. 오히려 트럼프에게 반대한 캔사스 기반의 억만 장자다. 그런데 이들 형제가 한참 유행했던 Tea Party의 적극적 참여자이자 재정적 지원자였다. Tea Party 운동이 공화당에 큰 균열을 일으켰고, 상당수의 새로운 Tea Party 출신 정치인이 당선되었다. 2016년 선거에서 트럼프는 Tea Party를 지속적으로 찬양하였고 Tea Party 운동의 동력이 모두 트럼프에게 넘어갔다. 

 

Tea Party 운동은 양당제의 한 쪽 정당에 침투하여 그 당을 바꾸는 전략이었는데, Tea Party 자체가 아니라 트럼프를 통해서 공화당을 바꾸는데 결국 성공한 것이다.

 

이에 반해 샌더스는 민주당에 침투하여 민주당을 바꾸는 전략을 쓰지 않았고 결국 후보도 되지 못했다. 

 

 

 

 

정치 세력이 둘 밖에 없을 때 전국 선거에서 이길려면 median voter의 지지를 받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중도층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그래서 양당제에서 극단적 정치 세력이 잘 안나타난다. 이 이론에 따르면 설사 티파티와 트럼프가 공화당을 장악하는데 성공할지라도, 트럼프같은 후보를 내면 전국 선거에서 져야 한다. 

 

그런데 2016년에는 이겼고, 이 번에도 상당한 지지를 받았다. 

 

저는 그 이유가 지역문제와 미국의 독특한 선거인단 시스템(electorate system)에 있다고 생각한다. 시사인 천관율 기자의 분석에서 나오듯 고학력자의 민주당 지지율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동시에 발생하는 현상이 고학력자의 도시집중 심화다. 조지아가 공화당에서 민주당으로 넘어간 이유가, 한편으로는 Stacey Abrams의 소수인종 투표 방해을 막기 위한 풀뿌리 운동이겠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Atlanta라는 거대 메트로 지역이 있기 때문이다. 

 

거대 메트로 도시가 없는 주는 거의 예외없이 트럼프를 지지했다. 뉴욕주도 비도시, 비대학도시 지역은 대부분 트럼프를 지지했다. 뉴욕시의 바이든 지지 몰표 때문에 뉴욕주가 민주당에게 갔다. 마지막까지 가슴을 졸이게했지만 바이든 승리로 끝난 네바다도 라스베가스에서 바이든 지지 몰표가 쏟아졌고 비도시 지역은 모두 트럼프 지지였다.  

 

다수 득표자가 대통령이 되는 시스템에서는 고학력자의 지역 집중이 문제가 아니지만, 미국 같은 주별 선거인단 체제에서는 체계적으로 비도시 지역에 더 많은 가중치를 주게된다. 그 때문에 2016년에도 트럼프가 과반수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했지만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미국의 선거인단 시스템은 고학력자의 도시 집중에 대항하여 농촌 지역 저학력자가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제도적 장치가 되었다. 중도층의 지지를 못받아도 농촌 기반 정치세력이 이길 수 있는 제도적 장치다. 2016년에 트럼프가 이길 수 있었던 이유다. 소수파가 양당제의 한 쪽 정당을 장악하고 전국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는 제도적 여건이 미국은 있다.

 

즉, <민주당 지지하는 고학력자 도시 집중> + <비도시 지역에 가중치를 주는 선거인단 시스템> + <티파티 운동으로 양당제의 한쪽 축인 공화당의 극보수화> + <이 판에 제대로 포퓰리즘을 발휘한 트럼프>로 인해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양당제의 장점인 중도파 강화 경향이 선거인단 제도 때문에 발휘되지 못해버린 것이다.

 

이 제도적 장치 하에서는 민주당 같이 고학력 도시 거주자의 지지를 받는 정당은 중도를 벗어나 진보화되기 어렵다. 중도파와 멀어져 진보화되면 필패하기 때문이다. 다수 득표를 하지 않고도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없고, 다수 득표를 하기 위해서는 중도층에서 멀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보통 선거에서 연속해서 지면 정당은 변한다. 집권을 못하는 정당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일반적으로 양당제 하에서는 급진화하면 지고 그러니 급진화에 제동이 걸린다.

 

하지만 지금 살펴보았듯 미국에서 보수는 급진화하고도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생겼다. 그러니 보수의 트럼프 현상은 당분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에 반해 진보의 트럼프는 기대할 수 없고. 

 

 

 

 

여기까지가 분석이고, 추가 질문은 그럼 미국의 <선거인단 제도>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다. 다수의 의지가 반영되지 않으니 민주주의에 반하는 제도인가? 아니면 저학력 농촌거주자라는 사회적 약자에게 더 많은 파워를 제공하니 사회세력간에 권력의 균형을 맞추는 민주주의 원리에 맞는 제도인가? 

 

자본가를 뜻하는 부르주아의 유래는 "성 안 사람들"이다. 여기서 성은 도시다. 도시 사람들이 부르주아인 것. 지금 미국의 대립은 자본주의 양대 계급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트의 대립이 아니라, 자본주의 이행기의 부르주아와 페전트(peasants, 농민)의 대립처럼 느껴진다.  

 

 

 

 

Ps. 전에 총선에서 나타난 20대 남성 보수성 포스팅에서도 물었지만, 도대체 왜 한국은 다른 나라와 달리 대학 교육의 확대가 진보 지지로 이어지지 않는가? 시사인에서 인용한 피케티의 그래프가 바로 이 포스팅에서 보여줬던 그래프다

 

Pps. 한국에서 나타날 조짐이 보이는 또 다른 현상은 도시의 보수화다.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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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ㅁㄴㅇㄹ 2020.11.12 00: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캘리포니아 도시지역 사람들이 텍사스로 많이 옮겨간다던데 당차원에서 워싱턴, 캘리포니아 사람들을 애리조나, 텍사스, 네바다 쪽으로 동부해안가 도시 사람들을 오하이오나 조지아, 플로리다, 노스캐롤라이나 같은 주로 이주를 돕는 것도 진지하게 고려해볼만 하지 않나 싶습니다.
    해안가 대도시 low rise를 팔면 내륙에선 대저택 사고도 돈이 남는다던데 ㅋㅋ

  2. 마요 2020.11.12 00: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국말고 다른나라에서도 트럼프같은 지도자가 등장하겠죠? 한국도 나타날까 궁금하네요

    • 이미한분 2020.11.12 11:44  댓글주소  수정/삭제

      유력한 대선주자 중에 있으시잖습니까? 아직까지는 그 분이 젤 유리한 것 같군요.

    • Spatz 2020.11.12 17:29  댓글주소  수정/삭제

      속칭 '둠'이라고 하는 분이 성향이 비슷하죠. 인터뷰에서도 대놓고 자기와 시민을 등치시키는 분... 인데 "시대가 그를 부른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 듯 합니다. 그 대안우파로 분류되는 남초 사이트들 같은 경우에도 '속 시원하다, 일 잘한다' 는 평이 있었던거 같은데 어쩔 수 없나 봅니다.

    • 바이커 2020.11.12 17:41  댓글주소  수정/삭제

      어떤 면에서 비슷한거죠? 포퓰리스트라는 것을 빼면 정책 면에서 완전 반대 아닌가요?

    • Spatz 2020.11.12 22:27  댓글주소  수정/삭제

      정책 면에서는 완전한 반대가 맞습니다만, 저는 성향을 전제로 이야기했어요. 트럼프는 미국 하층에 맞춘 거고, 이재명은 정확히 한국 중하층의 '죽창론' 같은 인식에 맞춘 거라고 생각해요. 권위주의 해체와 속칭 사이다로 일컬어지는 정책의 결이 한국의 진보의제와 맞떨어진 거라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합니다.

  3. abc 2020.11.12 04: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거인단제도는 미국이 연방국가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나라처럼 Popular vote로 승자를 가려내기 보다 메인이나 네브라스카가 하는 것처럼 모든 주가 승자독식이 아닌 선거구별로 선거인단을 선출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봤습니다. 하지만 현 제도도 그렇지만 어떻게 수정하더라도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4. 21 2020.11.12 22: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번 글은 그닥 좋은 분석같진 않네요. 뭐 그것에대해 말하는 건 어차피 이 바닥에서 무의미합니다만... 결국 편향인 거 아니겠습니까마는... 저도 뭐 비슷하겠죠 그러면

    꽤 재밌는 점이... 농촌에 사는 저할력 사람들이 생각하고 트럼프를 지지하는 게 문제인 건지 의아하네요. 설마 뭐 농촌사람들이 다 인종차별주의자에 극우주의자라도 된다고 생각하시진 않으실텐데...(그리고 16년 투표 때에도 킬리지 디그리로 나눈 교육수준의 차이는 양당에서 별 차이가 없었구요). popluar vote로는 오히려 민주당이 충분히 득세할텐데 선거인단의 수의 문제나 제리멘더링의 문제로 조정할 부분이지 상원만으로 충분하다...뭐 생각은 다 다르니까요. 선거인단제도는 늘 분분하니까요.

    진보화되면 필패한다는 건 맞는 말씀이신데, 그러면 왜 오른쪽으로 더 돌아간 공화당에선 이게 먹히느냐에 대한 분석은 부족하신 듯 하네요. 좀 진부한 레토릭을 또 한 번 보게된 정도랄까요... 좀 더 본질적인 질문은 왜 보수화되는 혹은 우경화되는 사람들에게(농촌에 살 건 도시에 살 건) 진보적인 가치랄까 뭐 진보적인 건 어필하지 않는가...가 될 거 같습니다.

    쓰신 글에선 제 오독이라고 여기겠습니다만 진보진영의 멘탈이 힘껏 묻어나는 거친 흔한 레토릭에 당위성을 넌지시 암시하는 많이 읽어본 분석이랄까요. 그게 나쁜 건 아니고 뻔한 얘기가 너무 나와서 그 분석이 맞나싶네요.

    • 종종 2020.11.20 08:07  댓글주소  수정/삭제

      확실히 저도 uneducated라는 미국 진보진영의 레토릭이 깔린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5. 다시다 2020.11.13 07: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국의 백인 비율이 정말 위협을 느낄 정도로 낮아졌기 때문에 인종적 극단주의에 더 휘말리는 거 아닐까요.

  6. 2020.11.13 15: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바이커 sovidence 2020.11.13 16: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스랖을 알지 못합니다. 글도 못봤고요. 링크 걸어주시면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정치학을 공부한 사람도 정치사회학을 아는 사람도 아니라 재미삼아 쓴 글입니다.

      제가 가장 의아하게 생각하는건 고학력자의 코스모폴리탄, 진보화 현상이 한국에서 왜 안나타나는가,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그렇게 보이는 이유는 뭔가입니다.

  7. 바이커 sovidence 2020.11.13 16: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국 정치 관심있는 분들의 일독을 권합니다: https://nymag.com/intelligencer/2020/11/david-shor-analysis-2020-election-autopsy-democrats-polls.html

    재미납니다.

    선거 전에 인터뷰했던 것도 재밌고요: https://nymag.com/intelligencer/2020/07/david-shor-cancel-culture-2020-election-theory-polls.html

    29살의 데이터 분석가가 이렇게 똑똑해도 되나 싶습니다.

  8. 그게 2020.11.13 20: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 일단 고학력자의 코스모폴리탄 현상이라는게 서구에 국한된 것 아닌가요? 당장 대만, 일본, 중국을 보면 그런 현상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미국-유럽-호주의 백인 고학력자들의 공감대는 분명 인종적 문명적 기반이 확고하지 않습니까.

    한국인들은 아무리 내부에서 상층이었다해도 서구에 갈 경우 그런 이너서클에 들어갈 확률이 적겠지요. 그게 계급적이건 문화적이건.


    2. 대학교육의 확대가 진보적 경향을 가져오지 않는 것도 미국과는 비교도 안되는 일률적 학벌구조를 감안하면 이상하지 않아 보입니다. 근데 이게 좀 애매하네요. 여기서 언급되는 대학에 대졸자 전체를 의미하시는건지 아니면 소위 건동홍국숭세단 정도까지를 말하는건지요.



    3. 한국에서 도시의 보수화는 자연스러운 현상 같습니다. 교외가 없으니까요. 서울자체가 고소득자와 저소득자가 매우 거리적으로 가깝게 사는 나라지요. 계속 아파트 단지라는 측면에서만 소셜믹스 얘기하지만, 거주 구역의 인접성으로 보면 한국만큼 소셜믹스가 된 나라가 서구에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 바이커 sovidence 2020.11.13 22: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고학력자의 코스모폴리탄은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https://sovidence.tistory.com/1086

      과거에 대졸이상이 민주당 지지 성향이 저학력층보다 높았고요.

      청년층의 대졸 학력 증대에도 불구하고 보수적 성향이 늘어나는건, 세계적 조류에도, 한국의 기존 정치성향과도 반대됩니다.

    • 그게 2020.11.14 17:48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 저는 코스모폴리탄을 그게 아니라 흔히 말하는 뉴욕이 지방보다 가깝다, 내 친구들의 파리와 베를린에 있다. 그런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사실 이게 한국 사회에선 좀 더 통례에 가까울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이건 좀 궁긍점인데 통계가 세분화되어서 도시 중산층 거주지역과, 외국인들이 밀집한 외곽 공업지역의 의견 차이가 궁금해지네요. 저는 오히려 후자 쪽이 외국인에게 더 호의적일 것이라고 봅니다.

    • 이미한분 2020.11.14 21: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대졸자가 서구에 비교하면 너무 많아서 그런 것 아닐까요?

      거의 고교생의 70%가 2/4년제에 진학하는데 이래서야 외국의 고교 졸업자와 별 차이가 있을까 싶습니다.

  9. 그게 2020.11.14 17: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나저나 이번에 새로 느낀게 트럼프주의의 한국 버전은 이미 강력한 대세 아닌가 싶더군요. 어디서 누군가가 대한민국주의라고 그걸 호칭하는 걸 봤는데, 어느 정도는 공감이 갑니다.

    과거 운동권이 가지고 있던 미완의 국가, 민족의 통일이란 과제에서 출발하는 민족주의가 퇴조하고, 대한민국 그 자체가 완성된 정체성으로 완결 됐다고 보는 관점이 강력해진다는 말인데. 저도 두가지 현상에서 그걸 느꼈습니다.

    하나는 문재인의 김원봉 추서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것이고, 하나는 코로나 정국에서 대북지원이 결국 불발 되었다는 것이죠. 민족주의 감성이 강력하다면 가장 도와줘야 마땅할 시점에서 민간 지원조차 눈치를 본다면 뭔가 좀 이상하지 않겠습니까. 오히려 한 민족을 전투에서 죽이는데(!) 일조한 참전국가를 대상으로 한 지원이나 참전용사에 대한 지원은 이뤄졌고 정부 또한 이걸 열심히 홍보했지요.

  10. 그게 2020.11.14 18: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또 하나의 실례를 들자면 난민, 이민에 대한 부정적 의견이 갈수록 높아진다는 것이고 이게 양당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이지요. 우리가 이민이나 난민을 받아야 될 원죄 (서구의 제국주의 침략 따위)도 없는데 알 바 없다는 게 골자.

    특히 이 부분에 있어선 민주당의 철저한 우군이라는 2030들이 더 강력하더군요. 예멘 난민 사태 때 진저리치게 싫어하던게 바로 이들이지요.

    일단 현상적으론 세계주의의 퇴조와 개별 국민국가주의 강화는 한동안 강력할 것 같고, 이게 기존 세계주의와 타협을 거친 후에도 여전히 많은 제도적 장치로 남아있지 않을까 합니다.

    • 바이커 sovidence 2020.11.15 09: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이민자에 대한 태도 문제는 앞으로 더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 전에 복지 확충을 해놓지 않으면 복지와 민족에 대한 태토가 결합해서 거의 불가능한 지경이 되어버릴테니까요.

  11. 이미한분 2020.11.15 00: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http://weirdhat.net/blog/archives/5086
    http://weirdhat.net/blog/archives/5088

    김민하 작가의 글도 읽어볼만 하군요. 확실히 로컬마다 좀 다르네요.

개표가 아직 진행 중인데, 바이든측이 정권 인수위원회 홈피를 개설했다는 뉴스보도가 나왔다. 많은 분들이 이를 바이든이 이길 것으로 확신한다는 정치적 승리 선언의 하나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그런 의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의 시작과 비교해서 바이든의 인수위 홈피 론칭은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한국도 대선 후 인수위를 설치하고 행정부 각 부서로 부터 보고를 받는다. 한국은 인건비를 포함해서 인수위의 모든 비용을 정부 예산에서 지원받는다 (한국의 인수위는 이명박 시절의 어륀지 발언으로 기억되지만...). 미국은 이와 달리 사무실과 비품은 정부에서 지원해주지만, 인수위 인건비는 후보가 자신의 캠페인 자금에서 지불해야 한다. 

 

트럼프가 처음 당선되었을 때 인수위 인건비를 자기 돈으로 못내겠다고, 인수위를 설치하지 않겠다고 황당한 생난리를 쳐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정권 인수 과정에서 트럼프 인사들이 얼마나 정부의 실제 업무에 관심이 없고, 정부 기능을 무력화시켜왔는지에 대해서 언론인 마이클 루이스가 The Fifth Risk라는 책에서 생생히 보여줬다 (예전에 이 책을 추천해준 매디슨가이님께 감사). 마이클 루이스의 The Fifth Risk는 가디언지에 요약본이 실리기도 했다. 

 

"다섯번째 위험"이란 미국 사회를 망칠 수 있는 다섯 번째 위험이라는 뜻으로, 4가지 위험은 핵, 북한, 이란, 전기공급망이다. 구체적으로 다섯 번째 위험은 정부 "프로젝트 관리" 능력이다. 즉, 행정력이다. 

 

이 책에서 두 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하나는 물론 트럼프 행정부가 어떻게 행정 기능을 무력화시켰는지. 다른 하나는 행정부에서 무슨 일을 하는건지. 이 번 코로나 팬데믹에 미국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도 트럼프 행정부에서 CDC를 무력화시켰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행정부의 많은 일은 따분하고 거대한 정보를 다루는 일이다. 예를 들어 Department of Commerce(상공부)에서 항공정보를 통제하고, 바다 온도 수집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을 누가 알겠는가. 허리케인, 폭풍 경고를 날리는 National Weather Service도 상공부 산하 기관이다. 제가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Census 데이타도 상공부에서 관리한다. 상공부는 거대한 정보 관리 기관--data processing machine--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트럼프는 이 상공부에 억만장자인 Wilbur Ross를 임명했고, 윌버 로스는 장관 임명 전에 받는 상공부의 업무 브리핑에 거의 참석하지도 않았다. 상공부가 뭐하는 곳인지 모르고, 상공부의 업무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배울 생각도 없고, 상공부의 정보를 이용하여 자기 이익을 챙기는데 혈안이 된 사람을 장관으로 내세운 것. 

 

다른 행정부서도 마찬가지였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임명되지 않고 공석으로 비워두었던 포지션들이 많은데 그 이유는 트럼프가 행정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자리에 사람을 임명하는 것도 큰 일이다.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할 수가 없는 일이다. 정실 인사라고 욕먹는건 차라리 낫다. 아무도 임명안하면 아무런 결정도 일도 안되고 행정력은 무너진다. 

 

마이클 루이스의 책에는 트럼프의 인수위가 얼마나 행정부의 업무를 인수받는데 관심이 없었는지 자세히 쓰여있다. 행정부 인사들이 상세한 브리핑을 준비했지만 이전 행정부와 달리 트럼프 인사들이 나타나지 않아 얼마나 멀뚱멀뚱 시간을 보냈는지등. 

 

박근혜 정권 시절에 돼지열병이 창궐하고, 메르스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게 우연이 아니다. 그래도 한국에서 정권이 여러 번 바뀌었지만 행정력이 크게 무너지지 않은건, 한국의 정치세력이 여야 모두 행정 건전성 면에서 미국보다는 낫다는 신호이리라.  

 

바이든이 당선 확률이 높아지자 마자 인수위를 띄우고 홈페이지를 론칭했다는 것은, 바이든 행정부와 트럼프 행정부가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주는 첫 장면이다. 빨리 당선자가 확정되고, 정말로 크게 달라지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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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기린아 2020.11.05 18: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갑자기 오래된 이야기가 떠오르네요. Bad decision이 No decision보다 낫다고 했든가요;;;

  2. Spatz 2020.11.08 03: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모두가 축제 분위기네요. 정말 다들 싫어했나 봅니다...

  3. 다시다 2020.11.08 04: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들 바이든에게 기대하는 것처럼 환경 문제에 미국의 리더십을 보여주고 나머지 국정운영은 무난하게만 해줬으면 좋겠어요.

많은 사람들이 비슷하겠지만, 놀랐음. 

 

2016년 선거 때는 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있었다. 가장 큰 이유는 여론조사 결과가 들쑥날쑥했기 때문. 모두가 99% 이상 힐러리 클린턴 승리가 확실하다고 했을 때 Nate Silver는 트럼프 당선 확률이 상당하다고 진단했었다. 당시 여러 교수들이 네이트 실버의 계산이 엉터리라고 많이 비판했다. 특히 언론에 대문짝만하게 나오게 네이트 실버를 비판했던 시카고 교수 한 명이 기억에 남는다. 막상 선거 결과가 나온 뒤에 모두 버로우탔지만. 

 

이 번 선거에서는 질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믿었다. 여론조사 결과가 매우 일관되게 8%포인트 이상 바이든이 이기는 걸로 나왔기 때문이다. 538의 마지막 예측은 8.4%포인트 격차였다. 

 

이 번 대선 개표를 보고 가장 크게 놀란 것은 현재 개표율 기준으로 바이든이 트럼프를 2%포인트 정도만 앞서고 있다는 점이다. 2016년에 예측이 틀릴 때도 여론조사는 미국 전체 지지율을 정확히 반영했다. 개별 주의 측정 오차가 문제였지, 전체 미국 국민의 의사를 측정하는데는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이 번 조사에서는 미국민 전체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것인가?

 

미국 중부 시간 오전11시 현재, 총 개표수는 대략 1억3천6백만표다. 전체 투표수는 대략 1억6천만표고. 앞으로 2천4백만표 정도를 더 개표해야 하는데, 이 중 70% 이상이 바이든을 지지하고, 30% 정도만 트럼프를 지지해야 전체 득표율 격차가 8%가 될 것이다. 남은 표는 사전투표가 많을테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결과는 둘 중 하나다. 

(1) 전국 여론조사 완전히 빗나감. 

(2) 여론조사가 맞고, 이렇게 차이가 크게 나는데도, 선거는 박빙. 

 

뭐가 되었든 문제가 있다. 미국에 사는 입장에서 차라리 (1)이기를 바라지만. 

 

 

 

 

또 다른 감상 하나는 "사회조사방법론"과 "통계"를 이제 대학과 고등학교 필수 과목으로 넣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사전투표는 민주당 지지자가 당일투표는 공화당 지지자가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통계 용어로 "선택 편향"이 있다는 것. 따라서 개표 순서에 따라서 민주당과 공화당 몰표가 나오게끔 되어 있었다.

 

이런 상황이 명확한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단순 합계에 근거해서 결과를 예측하는 오류를 피하지 못한다. 

 

이렇게 선택편향이 있을 때 결과를 제대로 예측하기 위해서는, 어떤 투표함을 열었는지에 "가중치"를 주어야 한다. 그게 없으면 접전 지역에서의 개표 초반 결과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런 기본적인 지식을 심지어 선거 전문가들도 제대로 모르거나, 알고도 단순 숫자 합계가 주는 illusion을 피하지 못한다.  

 

단순 숫자가 주는 illusion의 강도를 깊이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정책적으로도 이 착각을 적절히 이용할 필요가 있다. 

 

어쨌든 체계적으로 개표 과정에서 선택편향이 크게 반영되고, 그 편향이 빠른 시간 내에 교정되지 않는 미국 시스템은 큰 개선을 필요로 한다.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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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베너타 2020.11.04 16: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디어 판문점 평화쇼가 막을 내리네요

  2. Spatz 2020.11.04 17: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보아하니 아예 불복하고 "왜 10만표가 우수수 나와! 부정선거 아니냐!"며 억지 쓰는 모양새던데 아무래도 평화롭게 끝나기는 무리인 거 같네요. 저기는 검은 우산 대신 뭐 쓸려나.

    • Spatz 2020.11.04 18:12  댓글주소  수정/삭제

      https://www.facebook.com/story.php?story_fbid=4667364659971349&id=100000935844572

      민경욱이 이번에 부정선거라고 올린 글 보니 아주 재밌네요

    • 바이커 2020.11.04 18:18  댓글주소  수정/삭제

      소송과 작은 소동은 있겠지만, 큰 소란은 없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공화당 정치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걸 다 얻었고, 낙선한 트럼프와 같이 망가질 이유가 없습니다. 동조세력이 없다는거죠.

      그리고 선거의 승패는 현타 타임을 가져오기 때문에, 결과를 보면 사람들의 행동도 바뀝니다.

    • Spatz 2020.11.05 01:33  댓글주소  수정/삭제

      트럼피언들이 좀 조용했으면 좋겠는데 큐아넌 음모론까지 퍼트린 터라 소요 사태는 계속 될 거 같네요 에휴

보통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그리고 거의 체크를 안하기 때문에 모르는데, 최근 조귀동 기자가 올린 한국의 중상층의 부의 집중도는 여러 경로로 전해 듣고 보게 되었다. 살펴보니 추가 논의할 가치가 있는 듯 하다. 

 

조귀동 기자의 주장 내용인 즉, 한국에서 상위 1%에 집중된 자산 정도는 국제 비교의 중간 정도인데, 그 아래 9%, 그러니까 2~10%의 중상층에 집중된 부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세습 중산층 사회>라고. 아래 그래프가 조 기자가 포스팅한 것이다. 

 

 

불평등 관련 통계를 볼 때는 데이터의 소스가 무엇인지, 분석 단위가 무엇인지 꼼꼼히 따져보는게 좋다. 조귀동 기자가 인용한 WID 통계는 아마도 (비록 일부 수정을 거쳤겠지만)  김낙년 선생의 2016년 논문에 근거한 추정치일 것이다. 김낙년 교수의 추정치는 상속세 기술 통계를 이용하여 "개인" 자산 불평등을 통계적으로 추정한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개인" 자산 불평등 추정치다. WID 홈페이지에도 personal wealth라고 명확하게 기술되어 있다. 

 

이런 통계를 보고 가장 처음 질문해야할 것은 자산불평등을 개인 단위로 추정하는 것의 의미다. 자산 불평등은 보통 가구 단위로 측정한다. 국제 비교를 위한 OECD의 통계도 가구단위로 본다. 가구단위와 개인단위 추정 모두 장단점이 있지만, 일반적 기준으로 가구단위를 택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을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주택을 소유하고 있을 때, 부부 공동명의가 아니라 가구주 명의로 등록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개인 단위로 보면, 가구주는 강남 아파트를 소유한 자산 부자고, 배우자는 자산 한 푼 없는 빈털털이다. 하지만 (꼭 그런건 아니지만) 이는 당연히 부부 공동의 자산으로 봐야 한다. 김낙년 교수의 추정치는 개인 단위 자산 불평등이기 때문에 주택이나 금융 자산을 소유하지 않은 여성, 가구원(전체 성인의 50% 이상)은 모두 자산이 0원으로 추정된다. 하위 50%의 전체 자산 보유액이 걍 0원, 0%다. 

 

자산 연구자들이 농담 비슷하게 하는 얘기로 성별 자산 격차를 축소시키는 가장 강력한 조치는 "이혼"이다. 여성의 생애사에서 개인 자산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사건이 두 개 있는데 바로 이혼과 배우자의 사별이다. 이를 바탕으로 연구자가 개인 단위 자산 불평등 축소를 위해서 이혼을 대책으로 내놓으면 얼마나 황당하겠는가. 자산 불평등의 분석 단위를 오직 개인으로 하면, 자산 빈자와 자산 부자의 계급전선이 부부 사이에 형성된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일부 연구자는 개인 단위 자산불평등을 측정할 때 가구 자산을 부부에게 분할하는 여러 기법을 적용하기도 한다.

 

 

 

 

WID에 올라온 김낙년 교수의 추정치는, 가구 자산의 개인 할당 등을 하지 않은 순수 개인 자산 불평등 추정치이다. 그것도 개인 자산을 직접 측정한 것이 아니고 사망자의 유산을 근거로 추정한 것이다. 일부에서는 상속인을 기준으로 했기 때문에 성별 격차 문제는 없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하지만 피상속인의 사망시 유산을 기준으로 계산했기 때문에 한국의 관습으로 인한 성별 자산 격차가 추정치에 그대로 반영된다. 예를 들어 40대 부부가 사망했을 때, 부인이 사망하면 상속 자산이 거의 없는 것으로, 남편이 사망하면 상당한 상속 자산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조 기자는 WID 통계는 세금 자료를 사용했기 때문에 서베이 기반 통계보다 더 정확하다고 주장한다. 그렇지 않다. 개인 단위 자산불평등을 추정할 때도 측정오차의 문제를 피해갈 수 없다. 오히려 개인 단위 자산불평등 추정은 엄청나게 많은 "가정"을 요구한다. 서베이에 기반한 가구 단위 자산 측정은 샘플링 에러와 응답 오차의 경향성만 가정하면 되지만, 여러 통계의 추계인 김낙년 교수의 추정치는 수 많은 가정이 필요하다. 세금 자료를 이용했다고 반드시 더 정확한 것이 아니다. 이 추정 과정에서 서베이 데이터도 동원된다. 그러니까 김낙년 교수의 추정은 세금 자료와 서베이 자료를 합쳐서 추정한 것이다. 세금자료와 서베이 자료를 모두 동원했기에 두 데이터의 측정 오차 모두가 자료에 반영된다. 

 

조귀동 기자가 표시한 상위 1%의 자산(위에 표시한 그래프)도 실제 관찰된 것이 아니라, 완전히 통계적으로 추정한 것이다. 김낙년 교수의 계산에 따르면 상위 1%의 자산 비중은 대략 24.8%에서 43.6% 사이인데, mean split histogram이라는 방법을 사용하여 몇 %인지 추정한다. 대략적인 상위 1%의 자산 추정 범위가 얼마나 넓은지 보이는가? 이 범위 중에서 통계적으로 한 수치를 뽑은거다. 이렇게 추정하면 서베이에서 추정한 것보다 더 정확하다고 할 수 있나? 

 

또 하나 예를 들어보자.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2013년 가계 순자산은 6,366조원이다. 그런데 김낙년 교수의 방법에 따르면 그 총액이 3,710조원이다. 엄청난 격차가 있다. 김 교수는 이 격차를 여러 조정을 통하여 맞춰서 추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격차는 너무 커서 화해가 불가능하다. 제가 따로 계산한 것이 아니라 김낙년 교수의 논문 내용이다. 이런 차이점과 주의점이 논문에 꼼꼼하게 쓰여있다.  

 

관찰치나 서베이에서 직접 물어본 자료가 아닌, 통계적 추정에 근거한 개인 자산 불평등의 국제 비교는 매우 조심해야 한다. 사회적 규범의 차이에 따라 어떤 국가는 (특히 주택) 자산이 부부 공동인데 어떤 국가는 가구주의 독점 소유로 세금 자료에 등록되어 있다.

 

국제 비교에서는 한국 데이터의 정확성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데이터의 정확성도 같이 따져야 한다. 상속 자산의 규모 파악은 한국 데이터가 아니라 다른나라 데이터를 믿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 이 점 역시 김낙년 교수의 논문에 쓰여 있다. 한국은 과세점 이하의 상속 재산이 파악되지만, 많은 국가가 과세점 이하 재산이 아예 파악이 안된다. 걍 통계적으로 추정하는 거다. 

 

그렇다고 개인 단위 자산 불평등 추정은 의미가 없다는 주장은 또 아니다. 서로 다른 통계이고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 소득이든 자산이든 불평등은 다면적인 것이기 때문에 여러 수치로 파악해야 한다. 어느 한 수치가 진리가 아니다. 그렇게 다면적 검토를 한 후 어떤 결론을 내리고 자신의 주장을 내세워야 한다. 

 

 

 

 

국제 비교가 수월한 자산 불평등의 단위는 당연히 가구다. 

 

아래 표는 OECD 보고서의 일부다. 통계 원자료는 요기서 확인 가능하다. 한국은 상위 10%의 자산을 보고하지 않는데, 하위 60%의 자산 보유 정도를 살핌으로써 국가 간 비교를 할 수 있다. 보다시피, 한국은 하위 60% 가구의 자산 보유 비중이 높은 축에 속한다.

 

조귀동 기자가 올린 그래프를 보면 한국의 하위계층 자산 보유 정도가 미국과 프랑스의 중간이다. 위 그래프에서 하위 90%의 자산 비중을 계산(=100-상위1% 점유-상위2-10% 점유)하면 한국은 34.3%, 프랑스는 44.2%, 미국은 27.6%다. 하지만, 미국의 하위 60% 가구는 전체 자산의 2.4%만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의 17.7%와는 엄청난 차이다. 마찬가지로 조귀동 기자가 올린 그래프에서는 프랑스의 하위 계층의 자산 보유율이 한국보다 높은 듯이 보이지만, 아래 가구 단위 기준으로 보면, 프랑스의 하위 60%는 전체 자산의 12.1%만을 소유하고 있다. 가구단위로 계산했을 때 한국보다 하위계층의 자산 점유율이 낮다.

 

결혼도 안하고 (출산의 30~60%가 혼외) 개인이 각자의 자산을 소유하는 서구 국가와 가구 단위 자산 소유인 한국은 자산 소유 형태가 다르다. 개인 자산 불평등 국가 간 비교는 오해를 불러오기 쉽상이다. 

 

하위 60%가 아니라 하위 40%로 보면 한국의 가구 자산 분포가 상대적으로 평등하다는 것을 더 명확히 알 수 있다. 한국 하위 40%의 자산 보유 비중은 전체 자산의 6.0%인데, 프랑스는 2.7%에 불과하다. 프랑스와 한국 중 어느 쪽의 자산 불평등이 더 크겠는가? 

 

일부에서는 위 표의 근거가 된 자료도 서베이 기반이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고 할 것이다. 그럴 수 있다. 측정 오차가 상당히 클 것이고. 하지만 상위 계층의 자산 응답에 비해 하위 계층의 자산 응답은 상대적으로 더 신뢰할 수 있다. 특히 한국에서 중산층 이하는 주택의 자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최근 1~2년 사이에 주택 자산 격차가 조금 벌어졌을 수 있지만, 한국은 2000년대에 주택 자산 격차가 벌어지지 않았다. 이 역시 김낙년 교수의 논문 내용 중 일부다. 

 

그런데 위 표에서 상위 10%의 자산 집중도는 없으니 문제 아닌가? 이 통계를 알 수 있는게 이성균 외 (2020) 논문. 아래 표를 보면 2015년 기준 44.9%다. 이 수치를 위 OECD 비교 표에 대입하면, 한국의 상위 10% 가구의 자산 보유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 아래 표를 같이 보면 한국의 자산 분포를 추정할 수 있다. 한국에서 상위 10%는 자산의 45%; 그 다음 10%(상위 11~20%)는 자산의 18%; 그 다음 20%(상위 21~40%)는 자산의 20%; 그 다음 20%(상위 41~60%)는 자산의 12%; 하위 40%는 자산의 6%를 소유하고 있다. 

 

 

그렇다고 가구 단위 계산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것은 또 아니다. 가구 단위 계산은 가구 형성(즉, 결혼과 독립)의 인구 패턴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결론은? 

 

한국의 자산불평등이 다른 OECD 국가 보다 높다는 신뢰할만한 자료는 없다. 김낙년 교수의 자료는 수많은 가정에 기반한 추정치로 가구 자산이 아니라 개인 자산의 추정치일 뿐이다.

 

전체 가구의 자산에 기반한 가장 신뢰할만한 자료는 한국의 자산불평등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것을 보여준다. 

 

연구자들은 각 통계추정치의 장단점을 두루 살펴 자신의 결론을 도출하는거다. 하나가 맞다고 철떡같이 믿는게 아니고.

 

 

 

 

Ps. 어쨌든 개인 단위로 자산불평등을 보는 것이 맞다고 치자. 그런데 조귀동 기자가 올린 그래프를 보면 2000년과 2013년 사이에 중상층 자산 보유 비중에 거의 변화가 없다. 오히려 조금 줄었다. 그럼 "세습 중산층"은 2000년대 부터, 그러니까 1970년대생 이전부터 있었던건가? 1990년대생에서 갑자기 세습 중산층이 나타난게 아니고? 안타깝게도 조귀동 기자가 올린 통계 수치가 바로 1990년대생에서 중산층이 세습되기 시작했다는 조귀동 기자의 핵심 주장을 반박하는 간접 증거다.

 

Pps. 조적조는 진리.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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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unnae 2020.10.29 17: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pps가 훌륭합니다.

  2. wasd 2020.10.29 18: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번에 포스팅에서 올려주신 교수님의 지니계수와 이번의 지니계수가 수치가 다른듯한데 차이점이 뭐가 있는지 가르쳐주시면 감사합니다.

  3. yarg 2020.10.29 19: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고 갑니다. 세금 자료를 전가의 보도처럼 여기는 경우를 보면 피케티-사에즈를 탓할 수도 없고 참 그렇습니다.

  4. 마요 2020.10.30 03: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통계는 너무 주관적이면서도 객관적이네요.귀에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 바이커 2020.10.30 10:57  댓글주소  수정/삭제

      통계는 이론적 관점을 가지고 봐야 합니다. "통계 자체로 말하게 하라"는 관점이 틀렸다는건 너무 많이 논의 되었는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죠. 정작 통계로 사회현상 연구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말입니다.

  5. 2020.11.01 17: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6. Spatz 2020.11.02 01: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 보니 아예 사기꾼이라고 선언하고 다닌 거 같고만요. 그래도 전에 세습중산층 사회 이야기 할 땐 학문적 가치라도 보였는데 어쩌다가 데이터 맹신까지 가게 되었을까요?

    • -_- 2020.11.02 18:47  댓글주소  수정/삭제

      일전에 조귀동 기자 기사 통계의 문제점을 바이커님이 거의 해부하다시피 파헤친 적이 있었죠. 그 이후로 엄청난 개인적 원한을 품고 있는 듯요.

      자기 책에 안좋게 평한 다른 사람한테도 적의를 보인 적도 있고.. 맺힌게 많은 사람인 것 같아요.

    • Spatz 2020.11.02 19: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다른 사람에게도 단순히 부정적인 책 평가 만으로 그랬다면 일종의 방어기제로도 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