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번 지방선거 결과로 두 가지 점이 좀 더 명확해졌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서울 거주 청년의 정치 성향이다. 작년 7월초 시사In 기사에서 "서울 거주 경제적 상층일수록 극우 청년일 확률 높다"고 주장했었다. 일부에서는 그게 아니고 영남의 극우 청년 확률이 더 높다고 반박했다. 그 반박을 보고 의아했던 것은 제대로 된 데이터 분석없이 주장만 있어서였다. 그 때 적극적으로 재반박하지 않았던 이유가 이 번 지방 선거를 보면 누가 맞았는지 드러날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도 진짜 서울 거주 청년 남성의 보수성이 더 높은지 의심이 있었고. 

 

이 번 지방선거 출구 조사 결과는 서울 거주 청년 남성의 보수 지지가 영남 청년 대비 절대적으로도, 해당 지역의 전반적 경향  대비 상대적으로도 더 높다는 것이다. 장년층 대비 차이는 지역 고정 효과를 통제하는 의미가 있다.  일부에서는 조사의 한계를 말할 것이다. 출구 조사는 차이의 정확성 면에서 한계가 있다. 하지만, 경향성을 보는데는 문제가  없다. 또한 작년 전체 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서베이 조사 결과와 올 해 선거 결과의 경향이 일치한다. 이 걸 부인하려면 단순히 자료 신뢰에 대한 몇 가지 의심을 넘어서는 제대로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이 번 지방선거로 드러난 또 다른 점은 온라인 커뮤니티의 효과다. 청년 보수(극우)화의 근원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찾으면 서울과 지방의 차이를 설명하기 어렵다. 일베 등 온라인이 청년 보수(극우)화의 근원이면 청년 보수성의 지역 격차와 온라인 극우 커뮤니티 이용률이 확률적으로 정비례 해야 한다. 아니면 온라인은 지역 커뮤니티의 바운더리를 넘어서기 때문에 전국적이야 한다. 이 번 지방선거 결과는 이 가설이 지닌 한계를 드러낸다. 계층론에 기반해 극우를 연구하는 학자 중에 Eric Protzer라는 분이 있다. 이 분이 미국과 유럽의 극우를 연구하면서 온라인 커뮤니티의 지역 격차를 이미 연구한 바 있다. 결론은 온라인은 극우를 확대하는 효과는 있지만, 근원이 될 수 없다는거다. 

 

 

 

두 가지 예측은 한국의 미래에 대한 것이다. 얼마 전 서울대 대학신문에서 극우가 문화현상인지를 다루면서 질문지를 보내왔다. 기사화되지는 않았지만, 저의 대답은 극우가 문화가 되어서 문제라는 것이었다. 아래는 질문과 답변이다. 

 

질문: 데이터에서 경제적 상층 청년 남성일수록 극우 성향일 확률이 높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 청년들이 일베식 혐오 코드를 래퍼의 가사나 밈으로 소비할 때, 그것이 정치적 신념의 표현인지 아니면 정치적 맥락이 탈각된 문화적 소비인지 데이터로 구분할 수 있을까요? 혹은 그 경계 자체가 흐릿하다고 보시나요?

답변: 제가 아는 한 그렇게 구분할 수 있는 데이터는 없습니다. 그리고 문화와 정치를 분명하게 구분되는 두 영역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아마도 일베식 혐오 코드가 문화적 성향이면, 정치적 의도가 없으므로 무해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문화란 사회학적 정의에 따르면 선택의 기본값(default)으로 가치판단 없이 안정적, 불안정적 시기 모두에 기본적으로 따르는 좌표가 되는 행동 규범입니다. 일베식 혐오 코드가 문화가 되면 일베식 혐오 코드가 행동과 판단 규범의 기본값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일시적 정치적 선택보다 훨씬 더 큰 문제입니다. 현재의 일베적 혐오 코드가 그렇게 진화했기에 문제입니다. 개인의 문화적 성향은 한 번 형성되면 잘 변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회학 연구들이 문화의 변화는 새로운 세대의 출현 (cohort replacement)을 통해 점진적으로 바뀌지 (=구세대의 사멸과 신세대의 등장), 코호트 내의 연령에 따른 변화 효과는 미미하다고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국의 청년 세대도 이러한 일반적 패턴을 따를 가능성이 큽니다. 상당히 광범위한 청년 코호트가 일베적 혐오 코드를 디폴트로 장착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 사회가 앞으로 한 세대 내에 미국이 트럼프 시대에 겪는 것과 유사한 정치적 혼란을 겪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위 답변에는 두 가지 예측이 있다. 하나는 청년 남성의 보수적 성향이 이들이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될거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래서 결국 한국 사회가 정치적으로 상당한 백래쉬를 겪을 것이라는 거다. 

 

얼마 전 이 문제로 한 교수님과 내기도 했다. 첫번째 예측, 그러니까 청년 남성의 보수성이 지속될 것이라는 예측은 빠르면 5년, 늦어도 10년 이내에 결과가 나온다. 여러 사회학적 연구는 문화의 변동은 세대 교체지, 세대 내 연령효과는 작다고 보고한다. 이 일반적 분석이 한국에도 적용되면 한국 청년 남성이 어떤 정치적 성향을 미래에 보일지 추정할 수 있다. 지난 대선 직후에도 청년 남성이 극우가 아닐 것으로 바뀔 것이라는 주장에 반박하며 동일한 얘기를 했었다. 

 

진짜 문제는 두 번째 예측이다. 저는 한국 사회가 미래에 적어도 한 번은 상당히 큰 정치적 보수(극우) 백래쉬를 겪을 것으로 본다. 언제까지나 보수가 잘못할리도 없고, 언제까지나 민주당이 잘 할 일도 없다. 보수가 시대를 이끄는 세력이 되었을 때, 어떤 보수 세력이 이끄냐가 중요한데, 한국의 청년층은 물론, 장년층 보수의 성향을 분석해 봐도 미래에 보수 정권을 이끄는 주요 세력이 온건 보수가 되기 보다는 상당히 극우 성향을 띄는 강경 보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짧으면 10년 이내에 늦어도 한 세대 이내에 이런 상황이 도래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피할 수 없다면, 어떻게 가능한 짧게 내지는 강도를 낮추면서 지나갈 수 있을까가 중요하다. 이건 다음에. 

 

 

 

Ps. 예전에도 몇 번 말했지만, 이 블로그 시작의 계기가 노무현 대통령 서거다. 당시 대다수가 친노가 폐족이 된다고 하길래, 그게 아니고 친노가 민주당을 통해 부활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블로그에서 많은 예측을 했는데, 잘못된 것도 제대로 된 것도 있다. 사회과학은 자연과학과 많이 다른데, 그 차이 중 하나가 사회과학은 과거에 일어난 일은 설명을 잘하는데 미래 예측력은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분석틀이 맞는지, 어떤 변수가 더 중요한지는 미래에 대한 예측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Posted by sovidence
,

https://github.com/kchyhj/sociology-wiki-template

 

GitHub - kchyhj/sociology-wiki-template: Accuracy-first research wiki template for sociologists using Claude Code

Accuracy-first research wiki template for sociologists using Claude Code - kchyhj/sociology-wiki-template

github.com

 

사회(과)학 연구자의 문헌 정리에 특화된 LLM-Wiki 템플릿입니다. 

 

이공계 분들에 비해서 LLM-Wiki가 아직 많이 퍼져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위키 기능은 다른 무엇보다도 사회학 연구자들에게 필요하고,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 위키의 최고 원칙은 "정확성 >>> 효율성"이다.

 

위키를 구축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게, AI는 어떻게해서든지 환각(hallucinations)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두 가지 이유가 추정되는데 하나는 LLM은 기본적으로 랭귀지 모델이고, 언어의 확률만 높으면 어떤 말이든 만들어낸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비용 효율성(= 작은 토큰 사용량)을 높이기 위해서 어떻게 해서든지 short cut을 발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숏컷은 거의 반드시 환각으로 이어진다. 아무 말이나 그럴듯한 말을 채워넣는다. 아무리 명시적으로 그러지말라고 지시해도 소용없다. 죽어라 말 안듣는 반항아와 같다. 예를 들어, 논문이 길면, pdf를 md로 변환해도 다 안읽고 일부만 읽은 다음에 엉터리 용어나 숫자로 내용을 채운다. 한꺼번에 많은 파일을 처리하게 시키면 이 경향이 커진다. PDF 소스를 제공하는게 환각 방지의 전부가 아니다. 끝까지 밀어붙였더니 100% 환각 방지 방법은 연구자가 직접 정리하는 수 밖에 없다고 니가 직접할래라고 묻더라. 

 

이 위키 템플릿의 디자인은 환각을 가능한 최대로 방지하는데 가장 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설사 느리게 구축되더라도 정확하게 구축하는게 목표다. 여러 시행착오 끝에 이렇게 디자인한 것이다. 

 

기타 많이 회자되는 위키와 또 다른 점은 다섯 개 층위로 문헌 정리가 된다는 것이다. 

(1) 각 논문 정리 (references)

(2) 각 논문 정리를 연결해서 항목별로 정리. 항목은 기본적으로 ASA의 섹션을 따르지만 임의로 제가 쓰는 7개 주제에서 시작한다. 일부는 자동으로 되지만, 상당 부분은 개인 연구자가 필요에 따라 세부 항목을 만들어야 한다 (general)

(3) 연구자 자신이 논문을 읽고 느낀점과 종합적 사고를 간단히 적으면, 그걸 지지하거나 반박하는 문헌을 정리하는 문헌 정리 (claim)

(4) 연구자가 진행하는 프로젝트별로 정리하는 층위. 예를 들어 "조선시대 양반" 프로젝트가 있으면 이 프로젝트를 별도로 정리한다. 프로젝트를 "인제스트"하면 이 층위가 자동 생성된다. (projects) 

(5) 마지막으로 인덱스. 주제별로, 저자별로, 각 색인별로 정리한다. 위의 (1) 각 논문에서 정리한 모든 저자들의 논문과 도서가 알파벳 순으로 리스트되어 있다. 인덱스는 당연히 자동 생선된다. (index)

 

영어만, 한국어만, 한국어+영어, 세 가지 옵션 중 선택해서 구축할 수 있게 디자인했다. 제 개인 위키는 모든 페이지가 한국어+영어로 구축되어 있다. 

 

이게 이 템플릿의 특징이고, 보다 구체적인 내용은 readme, quickstart, philosophy에 적혀있다.

 

그런데 이렇게 해도 환각을 100%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디엔가 구멍이 있고, 그 구멍을 AI는 귀신같이 찾아서 엉터리 내용을 넣는다. 궁극적으로 정확성을 담보하는 것은 개인 연구자의 몫이다. 

 

 

 

그럼 이게 왜 사회(과)학자들에게 유용한가 의문일 수 있는데, 저는 기억력이 나빠서 대학원 시절부터 논문을 읽으면 1-2페이지로 정리해서 ASCII 텍스트 파일로 저장하고 (위의 references 층위), 논문을 읽을 때 마다 관련된 추가 연구 질문은 무엇인지 (위의 claim 층위) 정리했었다. 이게 종합 시험 준비와 박사 논문 작성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이 정리 파일이 너무 많아져서 오히려 보지 않게 되어 버렸다. 정리된 노트 파일과 이걸 프린트해서 바인딩한게 너무 많아서, 어디에 뭐가 있는지 알 수도 없고, 그거 정리하는 것도 큰 작업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예전 문헌 정리해둔 것을 안보게 되더라. 이런걸 잘 정리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저는 아니었다. 

 

개인의 리서치 위키를 구축하면 이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각 논문을 정리할 수 있고, 개인적 노트를 쓰면서 정리한 논문을 연계시킬 수 있고, AI가 알아서 각 개념과 논쟁의 역사를 정리해준다. General에서 어떻게 정리하는게 좋은지는 각자 정해서 AI에게 요청하면 된다. 관련된 문헌을 정리하라고 요청하면 예전문서부터 최근 문서까지 잘 링크해서 정리해준다. AI가 "위키 + RAG (이것도 템플릿에서 자동으로 구축하도록 되어 있는데, RAG가 뭔지 잘 모르면 찾아보시길)" 두 축으로 문헌을 찾고 정리하니까, 문헌 정리가 훨씬 더 용이해지더라. AI가 인용하거나 설명하는데 잘 기억이 안나는 논문은 바로 위키에서 찾아볼 수 있고. 

 

최근 논문 작업을 하면서 지금까지 구축한 것을 사용해봤는데 상당히 유용하더라. 

 

템플릿을 제공하지만, 제 경험에 의하면, 남이 만들어놓은 템플릿에 기반해서 자신의 연구에 사용할 만큼 높은 수준으로 위키를 구축할 수는 없다. 결국 스스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서 위키  구축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 많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템플릿이 초심자가 시작할 때 마주하는 진입 장벽을 아주 약간 낮추고 미약하나마 시간과 비용을 절약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개선 사항이나 기타 코멘트가 있으면 댓글로 남겨주시길. 

 

 

 

Ps. AI가 헤매는 또 다른 분야가 index 정리다. 저자를 알파벳 순으로 정렬하고 관련 논문을 모두 링크하게 되어 있는데, 알파벳이 뒤섞이거나, 관련 논문을 누락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가끔 살펴봐서 오류를 지적하고 업데해야 한다. 논문이 많아지면, 저자나 논문을 혼돈하는 경우도 있더라. 글 쓸 때 도움을 받더라도 최종 확인은 반드시 본인이 직접 해야. 

 

Pps. 그래서 LLM-Wiki는 욕심내지 말고 논문 하나하나 구축하는게 좋다. PDF 왕창 던져주고 AI가 알아서 해주는 시스템으로 구축하면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작게 시작해서 연구자 자신의 논문 읽는 양이 늘면서 Wiki도 풍부해지는 그런 시스템이 좋지 않나 싶다. 지금 당장 쓸만한 위키로 구축할려면, 위키 구축 초기에 투자 비용과 시간을 상당히 들여야 한다. 

Posted by sovidence
,

Choi & Kim (2026) SSH.

 

조선시대 양반은 고정된 세습 신분이 아니고, 몇 대에 걸쳐서 과거에 합격하지 못하면 양반신분을 잃는다. 기득권을 유지할려면 집안에서 과거 합격자가 나와야 한다. 현대 사회에서 학력을 통해 계급이 재생산되는 경로가 막강한데, 조선시대도 이미 그런 메커니즘이었다. 따라서 기득권은 여러 수단을 동원해 자녀가 과거에 합격할 수 있도록 지원할 유인이 있다. 

 

현대의 대학입시와 같다고 얘기할수는 없지만 조선시대 과거제에도 정시와 수시 비스무리한게 있었다. 3년마다 한 번씩 33명을 뽑는 식년시라고 불렸던 정기시험이 있고, 여러가지 명칭으로 불렸지만 필요에 따라 비정기적으로 수시로 뽑았던 별시가 있었다. 

 

과거 시행 횟수는 별시(조선시대 전체 573회)가 정시(163회)보다 훨씬 많았다. 전체 합격자 중에 정시 출신이 5,865명이고, 별시가 8,393명이었다. 정시와 별시는 시험 내용도 달랐는데 (사실은 시대가 바뀌면서 달라졌는데), 정시는 주로 사서삼경 암기 위주였고 (이걸 강경이라고 함), 별시는 여러 주제에 대한 논술 위주(이걸 제술이라 함)였다. 정시는 시험 시기가 정해져 있었지만, 별시는 수시로 봤기 때문에 지방에 있으면 시험 보러 오기도 매우 불편했다. 별시의 시험 문제는 시의성이 있는 경우가 많아서, 친인척이 조정에 가까우면 분위기를 알기 때문에 유리할 수 있었다. 당시 중국에서 유행하던 책에서 시험이 나오는 경우도 있어서, 이런 도서에 접근이 가능한 사람들에게 유리했다. 정시보다는 별시가 더 변동성이 높고, 기득권이 뭔가를 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교육사회학의 적응과 배제의 법칙에 따르면 (이 전 포스팅 요기, 요기), 변동성에 기득권이 더 잘 적응하기 때문에, 정시보다 별시에서 기득권이 더 유리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이 번 연구는 이걸 통계적으로 검증한 거다. 현재의 대학 입시에서 논술 위주의 시험이 상위 계층에서 가장 유리했는데, 조선시대 과거제에서도 정시보다 별시가 기득권에게 유리한지. 

 

조선시대는 전체 과거합격자의 기록을 방목이라는 형태로 남겼다. 그 중에서도 문과 시험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과거다. 이 기록이 문과방목이고, 모두 디지털화되어 있다. 이 기록에는 시험친 날짜, 등수, 출신지역, 부친, 조부, 외조부, 장인의 이름이 있다. 이 이름을 가지고 조상이 과거시험 합격자인지 추적할 수 있고, 조선왕조실록과 링크해서 이들의 지위도 알 수 있다. 

 

별시가 기득권에게 유리한지 아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합격률이다. 그걸 알려면 누가 시험을 봤는지 알아야 하는데, 아쉽게도 그 정보는 없다. 방목은 합격자 정보만 있다. 그래서 고안한 아이디어가 일종의 DID를 하는 거다. 시기별 합격자 중에서 기득권의 정시/별시 비율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보는 거다. 출신 배경에 따른 정시와 별시 합격자의 비율 차이(1st difference)가 시기별로 바뀌는지(2nd difference)를 살펴봤다. 그렇다고 이 연구가 DID의 인과성을 의미하는 건 전혀 아니고, 기술통계의 측면에서 그렇게 비교했다는 거다. 

 

일반적으로 17세기를 양반, 사대부의 전성시대라고 한다. 그리고 19세기가 되면 세도가 정치가 시작된다. 기득권의 변화에 따라 별시를 이용하여 이득을 취하는 집단이 달라질거라고 가정하면, 17세기에는 양반(부, 조부, 외조부..가 과거에 합격한 집안) 중에서 별시 합격자의 비중이 높아질 거고, 19세기가 되면 세도가 집안의 별시 합격자 비중이 높아질 거라는 예측이다. 

 

아래 그림은 정시와 별시 합격자의 조상(부, 조부, 외조부, 형제 등) 중에서 과거 합격자 수의 차이다. + 는 별시 합격자의 조상 중 과거합격자가 정시 합격자보다 많다는 의미다. 보다시피 조선 초기에는 두 시험 간에 차이가 없었는데, 점점 그 차이가 벌어져, 양반의 전성기라는 17세기에 정점을 찍고, 양반이 쇠퇴하는 조선 후기로 가면 별시와 정시 합격자의 조상 중 합격자의 차이가 사라진다. 

 

그럼 세도가는? 세도가를 어떻게 정의할지는 논란이 있지만, 이 연구에서는 선조 이후 중전과 대비를 배출한 6개 집안으로 한정했다 (안동 김, 남양 홍, 여흥 민, 경주 김, 반남 박, 풍양 조). 이걸 이러저리 달리 규정해도 결과의 차이는 없다. 아래에서 보다시피 조선 중기까지는 세도가 집안 과거 합격자의 정시/별시 차이가 없었는데, 19세기에 갑자기 세도가 출신의 별시 비중이 높아진다. 양반과 세도가 집안이 그들의 부침에 따라 별시 합격자 비중이 달라졌다. 

한 가지 추가로 검증한 건, 과거 합격자의 출신 지역이다. 방목에는 어느 지방 출신인지 정보가 있다. 그걸 이용해서 서울로부터의 유클리안 거리를 계산하고, 정시와 별시 합격자의 차이를 봤다. 그랬더니, 아래 보다시피 시간이 지날수록 정시 합격자와 별시 합격자의 서울로부터의 거리가 달라졌다. 서울에서 먼 지방 거주자는 정시를 통해 과거에 합격하고, 서울에서 가까운 거리에 사는 사람일수록 수시에 합격하는 경향이 커졌다. 지방 출신자들이 변동성이 낮은 정시에  점점 적응해서 정시 합격 비중이 높아졌는데, 별시 합격 비중은 오히려 낮아진 것이다. 

 

결론적으로, 기득권은 과거제에서도 제도 해킹을 했다. 시험 제도가 자주 바뀌고 유동성이 클수록, 입시에서의 적응의 법칙이 작동한다. 이 결과는 현대 한국 입시제도에서 논술고시가 상위계층이 훨씬 유리했던 현상과 일치한다. 

 

얼마 전 교육부장관이 AI에 맞춰서 입시제도를 암기 위주, 오지선다가 아니라 논술형으로 바꾸는걸 말했나 보다. 그런 변화가 어떤 계층이 유리할지는 너무 명확하다. 한국의 현재 입시제도, 조선시대 과거제, 미국의 입시제도, 대만의 입시제도 등등 모든 교육 사회학 연구가 매우 일관되게, 제도의 빈번한 변화와 논술위주는 상위계층, 기득권에게 어드밴티지를 주는 효과가 있다는걸 보여준다. 어떤 제도를 만들어도 상위계층은 하위계층보다 교육 성취가 높은 경향을 가지지만, 제도가 빈번하게 바뀌고, 제도에 주관적 평가의 여지가 높아질 때, 상위계층의 이점은 더 커진다. 

 

 

 

Ps. 17세기를 양반의 전성시대라고 하는 것에 대해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과거 합격자 중 양반출신과 세도가 출신 중 당상관에 오른 비율을 권력의 proxy로 삼아서, 이 비율과  20년 후 양반과 세도가 출신의 정시/별시 합격에 끼치는 영향을 봤더니, 정시보다는 별시에 끼치는 영향이 훨씬 컸다. 조상 중에서 당상관에 오른 비율이 높아지면, 자손이 정시보다는 별시를 통해 과거를 합격하는 경향이 커진다는 거다. 

 

Pps. 문과방목을 이용한 선행 통계적 연구로는 이상국,박종희 교수의 연구와 크리스토퍼 백의 연구 등이 있다. 이 연구들은 주로 과거 합격 후 관직 진출에서 집안 배경의 효과를 본 것이다. 우리 연구는 과거를 정시와 별시로 구분하여, 과거 합격의 계층적 특성을 본 첫 양적연구가 아닐까 싶다. 

 

Ppps. 지금까지 여러 공동 논문 작업을 했지만, 이 번이 사회학 전공이 아닌 분과 처음으로 한 작업이다. 역사학에 대한 지식은 모두 공동저자인 홍콩침례대 최동혁 박사의 공헌이다. 정시와 별시를 구분해서 보는 아이디어의 단초도 최동혁 박사 덕분에 가능했다. 융합이라는 게 쉽지는 않지만, 뭔가 새로운 얘기를 할 수 있는 것 같기는 하다. 

 

Pppps. 논문은 학교와 엘스비어의 계약 덕분에 무료 접근. 

Posted by sovidence
,

한국의 현재사를 저널리스트의 관점에서 밝히는 시리즈 글을 <오늘의 기원>이라는 제목 하에 천관율 기자가 쓰고 있다. <시사In>에서 유료 독자만 볼 수 있는 기획이다. 연재 첫회의 포부에 따르면 천관율 기자는 한국이 21세기에 어떻게 발전하고 변화해서 현재에 이르렀는지 "지금까지의 익숙한 설명과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겠다는거다.

 

시간이 지나도 공개되는 글이 아니라 읽을 수 있는 분들이 얼마 없겠지만, 도서관에서 인쇄본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시리즈가 끝나면 책으로 나오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으로 연재 시작부터 흥미롭게 읽었다. 지금까지 4회를 했는데, 1968-85년이 중핵 세대라며 주류가 바뀌었다는 천기자의 이전 주장을 다시 하며, 이 세대가 한국의 경제적 변화와 연결되어 있다는 뉘앙스를 비춘다. 한국은 다른 국가와 달리 중진국을 거쳐 선진국으로 올라섰는데, 1998년 경제 위기 이후 두 번째 기적이 왔다고 주장한다. 경제는 발전했고 불평등은 늘지 않았다고 말하고. 최근 연재에서는 이 변화를 노무현의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의 혁신주의로 설명한다. 

 

개인적으로 한국의 발전과 불평등 변화를 꾸준히 얘기했던 바라 팩트 측면에서 새로울 것은 없다. 천기자가 인용한 KDI 2024년 보고서에서, 한국의 불평등은 상위불평등이 아니라 하위불평등에 의해서 좌우되었다는 얘기가 있는데, 그거 논문에서 처음 주장한 사람이 아마 제가 아닐까 싶다.   

 

앞으로 여러 논의가 전개되겠지만, 현 시점에서 가장 큰 질문은 이거다. 한국이 왜 발전했는가?

 

이 질문은 그 전에도 몇 번 말했지만,  2023년도에 올렸던 포스팅 "업데이트된 느낌적느낌 한국 망국론"에서 본격적으로 문제제기했던 바다. 여기에 대해서 이지원 선생이 답글로 김경미 박사, 권형기 교수의 연구를 소개해 주었다.

 

당시 이지원 선생의 소개 덕분에 새로 알게된 건데, 아마 권형기 교수의 저서인 <Changes by Competition>이 이 주제에 대한 가장 깊이있는 연구가 아닌가 싶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좌파 신자유주의" 노선에 대해 얘기하는 것으로 미루어, 천기자의 주장도 권형기 교수의 주장과 공통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권형기 교수의 핵심 주장은 한국이 21세기에도 지속적 발전을 한 이유는 박정희 시대의 노선이었던 국가 주도의 발전, 학술적으로 말해 발전주의 국가 모델에서, 1998년 경제 위기 이후 기업 중심의 신자유주의 모델로 바뀌어서가 아니라, 발전주의 국가 모델이 다른 형태로 지속되어서 성공했다는 것이다. 

 

좀 더 말하자면, 한국은 정부 부처의 엘리트 간에 경쟁이 있고, 상황에 따라 누가 이 경쟁에서 승리해서 국가의 방향을 결정하는지가 유연하게 바뀌었다는거다. 박정희 초기 혁명 세력의 수출대체산업화와 화폐개혁이 실패하고 경제기획원이 말빨이 안먹히는데, 상공부 관료 중심의 수출 위주 산업화가 성공하고, 다시 중화학 공업화가 상공부 위주로 성공하였다. 이 때 기업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바와 달리 중화학 공업화에 저항했었다. 

 

전두환 이후 1980년대부터 벌써 관료들에게서 요소 투입 위주의 성공이 한계에 봉착하고 생산성 위주로 변화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기업이 이에 발맞춰서 바꾼게 아니라는게 당시의 플레이어를 인터뷰한 권형기 교수의 주장이다. 당시 한국에서 중소기업의 부품, 소재 산업은 발전이 안되었다. 재벌은 문어발식 확장을 통한 대마불사를 원했고, 이게 경제위기의 한 원인이다. 

 

경제위기 이후에도 김우중을 비롯한 재벌은 과거의 방식(= 문어발식 확산)을 답습하고자 했으나, 국가 주도로 재벌을 변화시켜 특정 분야에 집중하도록 하고, 부품/소재 산업을 발전시켜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공생하는 새로운 경제 체제를 만들었다는거다. 이 때 뜬 부서는 정통부, 과기부 등이다. 혁신을 주도할 부서가 바뀌었다. <Changes by Competition>에서 말하는 경쟁은 정부 부서 엘리트 간의 경쟁이다. 재벌 간 경쟁이 아니고. 그 결과 한국은 요소투입경제에서 혁신경제로 바뀌었다는 것. 지금은 한국에서 부품과 소재가 오히려 강점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의 벤처도 모두 이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벤처라는 말을 도입한게 아이러니하게도 IMF의 원흉으로 욕먹었던 강경식 장관.

 

권형기 교수는 이 전반의 변화를 자본주의의 다양성 (variety of capitalism)의 하나인 statist coordination 모델로 범주지운다. 한국 경제 발전 모델은 국가 조정 모델이고, 발전주의 국가의 21세기형 변화를 통한 선진국 진입이라는 것이다. 

 

김경미 박사 논문. 권형기 교수 강연

 

제가 경제 발전을 잘 아는건 아니라 확실히 평가할 수는 없지만, 이 설명은 한국이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R&D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극소수였던 국가에서 전세계 1위인 국가로, 그래서 요소투입이 아니라 혁신이 중요한 기술 선진국으로, 경제발전 이후 불평등이 줄어든 과정과 논리적으로 모순이 없다. 변화 과정에서 누가 주도하고 각 플레이어가 어떤 입장을 취했는지와도 대략 일치하고. 

 

왜 이 설명이 한국 사회에서 광범위하게 논의되지 않았는지가 의문일 따름이다. 

Posted by sovidence
,

2025년 현재 한국의 실업률이 2.8%라는 공식 통계를 제시했더니, 어떤 분이 댓글에서 쉬었음 인구를 생각하면 실업률 운운할 수 없다고 한다. 통계를 종합해서 사고하기 보다는 지 마음에 드는 것만 선택하고 나머지는 메신저를 공격하는 전형적인 패턴. 

 

그런데 20대 노동시장은 분석하기 매우 까다로운 주제다. 한 두 가지 지표로 선동하기도 쉬운 주제고. 예를 들어 이런거다: 2010년에 나온 "청년 고용률 사상 최악"이라는 경향기사가 있다. 당시 여러 신문이 비슷한 기사를 냈다. 고용률은 인구 대비 현재 고용 인원의 비율로, 청년 고용률은 15-29세 인구의 해당 통계다. 그리고 이 때 고용률이 계속 낮아진 가장 큰 이유는 대학 진학의 확대다. 그러니까 교육이 확대되면 15-29세 고용률은 당연히 낮아진다. 반대로 청소년과 청년의 교육 기회를 박탈하면 고용률은 높아진다. 2000년대 초반의 고용률 하락 원인이 교육이니까, 대학 교육 기회를 축소하면 고용률은 반등할 것이다. 그런데 그게 해결책인가? 

 

OECD에서는 15-24세의 고용률을 별도로 구하는데 한국은 27%로 최하위권이다. 가장 큰 이유는 한국에서 10대는 알바를 거의 하지 않고, 대학생도 고용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많은 OECD 경제선진국에서 대다수의 대학생이 일을 한다. 

 

그러니까 20대 고용률은 통계에서 말하는 선택편향이 크게 작용하는 분야다. 군복무, 교육, 취업준비, 가정형편 등등 고용이 디폴트가 아닐 여지가 많은 연령대다. 따라서 20대 고용률 변화는 이유가 무엇인지 세밀하게 밝혀야 한다. 아니면 교육의 팽창 등 긍정적 이유를 부정적으로 해석하게 된다. 

 

반대의 예도 있다. 한국의 노령층 고용률은 다른 국가보다 높다. 이유는 연금의 미비로 노동시장에서 소득을 얻지 못하면, 생활이 안되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높은 고용률이 좋은게 아닌 경우다. 이에 반해 60대의 건강 개선과 연령차별 축소로 고용률이 증가할 수도 있다. 고연령층 고용률 변화를 단순하게 해석하기 어렵다. 

 

그래서 얘기하고자 하는 포인트는 20대의 고용 지표는 여러 지표를 종합해서 판단해야 한다는거다. "쉬었음"이 증가할 때, 고용이 안되어서 절대 빈곤층으로 추락하는 것인지, 다른 가용한 자원이 늘어서 취업 준비 기간이 늘어나는 것인지, 어떤 계층에서 쉬었음의 비중이 증가한 것인지 등등. 

 

그렇다면 한국에서 노동시장 상태를 체크해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지표는 뭘까? 사람마다 의견이 다르겠지만, 저는 30대와 40대의 고용률을 꼽겠다. 20대는 교육 훈련 등 노동시장에 들어오지 않을 여러 이유가 있고, 50대는 빠르면 초반부터 늦어도 중반부터 은퇴가 시작된다. 여성은 가정형성, 출산이 노동시장에서 탈락하는 이유로 작용한다. 30-40대, 그 중에서도 남성은 노동시장에서의 고용 상태가 디폴트 가정이다. 

 

아래가 21세기 한국의 30-40대 고용률(= 고용인구/전체인구)이다. 보다시피 30대 고용률은 2000년 73%에서 2025년 81%로 8%포인트 증가했다. 그리고 그 증가분은 전적으로 여성 고용의 확대 때문이다. 53%에서 73%로 무려 20%포인트 증가다. 퍼센트 증가로 따지면 근 40%에 육박한다 (=.73/.53). 이에 반해 남성 고용률은 92%에서 88%로 4%포인트 하락했다. 30대 전체 고용률은 증가했기 때문에 노동시장에서 일자리가 줄었다고 하기는 어렵고, 여성의 노동시장 진입으로 인한, 경쟁의 격화 가능성이 높다. 일부에서는 한국의 성평등 진전이 없다고 한탄하지만, 보다시피 조용하지만 커다란 변화가 지속되고 있다. 

 

40대를 보면, 남성 고용률은 변화가 없고, 여성 고용률은 30대 만큼 크지는 않지만 63%에서 69%로 6%포인트 증가했다. 

 

 

 

 

 

안정된 변화를 보이는 30, 40대 고용률과 달리, 20대 고용률은 지난 사반세기 동안 상당히 큰 등락을 보인다. 20대 전체의 고용률은 2000년대 초반 대비 2010년대에 2-3%포인트 낮았다. 하지만 2025년 현재의 고용률 60%는 2000년과 완전히 동일하다. 교육팽창으로 하락하던 20대 전체의 고용률이 최근 코로나 시기 이후 이 전 수준으로 회복한 것이다. 

 

그런데 성별로 보면 남녀의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2000년대 초반에는 남성의 고용률이 여성보다 12%포인트 높았는데, 2025년 현재는 여성고용률이 남성보다 5%포인트 높다. 이러한 성별 고용률의 역전은 2010년대 초반에 이루어져 지금까지 확대되었다. 남성은 교육의 확대가 고용률의 하락으로 이어진 반면, 여성은 교육확대로 인한 노동시장 유입의 하락 정도보다 혼인 출산의 저하와 노동시장 기회 확대의 정도가 컸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 여러 요인으로 노동시장에 진입하지 않는 사람들을 제외한 20대 청년 고용상태를 볼 수는 없을까? 그렇게 볼 수 있는 지표가 바로 실업률이다. 아래 보다시피 2017~2020년 사이에 청년 실업률이 10%에 육박하여 2000년의 7.5%보다 2.5%포인트 높았다. 하지만 이후 실업률이 빠르게 개선되어 2025년 현재 실업률이 6.1%로 21세기 중 최근 3년이 가장 낮다. 고용률은 21세기 초와 다를 바 없고, 실업률은 20세기 초 보다 낮다. 

 

현재의 낮은 실업률은 남성에게서 더 도드라진다. 2000년 20대 남성 실업률은 8.8%였는데, 2025년에는 6.6%다. 여성은 각각 6.0%, 5.6%다. 

 

 

종합하면 노동시장 상태를 보기에 가장 간편한 지표인 30-40대의 고용률은 21세기들어 남성은 거의 변화가 없고, 여성은 상당히 개선되었다. 20대 청년은 21세기 초반대비 여성은 모든 측면에서 개선되었고, 남성은 고용률은 낮아졌지만, 실업률이 높아진건 아니다. 30-40대 여성의 고용률 확대와, 20대 청년 고용률의 성별 격차 역전이 21세기의 가장 큰 변화라 할 수 있다.

 

 

 

Ps. 사실 이 얘기는 바로 얼마 전 했던 것의 확장 버전인데, 청년층의 정치적 성향 변화와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앞으로도 몇 번 더 얘기하지 않을까 싶다. 

 

Pps. 그런데 위에 말한 지표는 고용의 "질"을 포함하지 않는다. 고용의 양은 증가했더라도, 질적으로 문제가 있을 가능성도 분명히 있다. 양적, 질적으로 모두 좋아져도, 교육 팽창으로 인한 기대수준 대비 고용의 양질이 미비할 수도 있다. 쉬었음 집단의 원인을 파악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그런 여러 가능성 때문에 위 지표를 무시하는건 오류다. 위 지표를 기본으로 보완적 설명을 제시해야. 

 

통계가 선동이 될 수 있는건, 어떤 하나의 지표를 확대 과장하고, 그걸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고용 뿐만이 아니다. 청년층 보수화 이유로 매크로 지표를 무시할 수 없다고 했더니, 왜 그걸 무시해도 괜찮은지를 얘기하는게 아니라, 자기가 꽂힌 원인만 강조한다. 그런 주장은 설명하는 대상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는게 아니라, 설명하는 화자의 특성을 더 드러낸다. 

Posted by sovidence
,

한 분이 댓글로 2015년 이후 상층과 중간층의 격차(P90/P50)가 증가하지 않았냐고 물으시는데, 바로 답을 하지 못하겠더라. 요즘 주로 미국 사회, 그 중에서도 아시아계 미국인 연구에 집중하고 있어서, 최근 한국 사회 불평등 변화를 체크하지 않고 있던게 티가 나더라. 

 

그래서 가금복 조사 결과를 체크해봤다. 아래 그래프가 결과다. 여기서 소득은 세후 가처분 소득이다.

 

Y축을 두개로 나누는게 좋은건 아니지만, 이래야 변화를 한 눈에 파악하기에 편해서 그렇게 했다. 녹색 실선이 P90/P10이고 (왼쪽 Y축), 아래의 붉은색 점선이 상위 불평등인 P90/P50, 보라색 dash-dot 선이 하위 불평등인 P50/P10다 (오른쪽 Y축). 

 

 

보다시피 전체 불평등은 2011-2020까지 감소했고, 그 이후 정체다. 상위불평등은 급격하지는 않지만 꾸준히 감소했다. 최근 몇 년간 상위불평등에 큰 변화가 없지만, 장기 추세가 뒤집혔다고 할 수는 없다. 하위불평등은 2011-2020까지 급감한 후 그 정도는 작지만 증가했다. 

 

이걸 정권별로 나눠보자. 가금복은 3-4월 조사하는데 전년도 소득을 물어본다. 그러니까 2024년 결과는 실제로는 2023년소득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2011년을 기준점으로 삼을 때 이명박 정권에서 하위 10% 퍼센타일 소득은 16.3% 증가했다. 중위소득은 14.7%, 상위 소득은 7.8% 증가했다. 하위 소득의 증가율이 중위나 상위보다 더 높다. 

 

박근혜 정권 동안은 상위 소득 15.4%, 중위 소득 16.3%, 하위 소득이 25.0% 증가해서 여전히 하후상박의 패턴을 보인다. 문재인 정권은 상위 17.1%, 중위 34.9%, 하위 44.9%다. 박근혜 정권 대비 문재인 정권에서 상위 소득의 증가비율은 큰 차이가 없는데, 하위 소득의 증가율은 문재인 정부에서 압도적으로 높다. 위 그래프에서 2018-2020년 사이 짧은 기간 동안 재분배의 큰 개선이 이뤄졌다. 이 때가 바로 최저임금 문제, 노년층 취로 사업 문제 등이 크게 논란이 되었던 시기다. 

 

상당히 급격하게 하위 소득을 높이던 소득분배 정책이 바뀐건 2020년 코로나 이후다. 코로나 이후 윤석열 정부 초기까지, 상위 소득은 20.0% 증가하고, 중위소득은 22.6% 증가했는데, 하위 소득은 18.8% 증가했다. 그 전 10년간 지속되던 하후상박 패턴에 변화가 생겨, 하위 소득이 더 이상 더 빠르게 증가하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에서 갑자기 바뀐게 아니고, 코로나 이후 몇 년간 문재인 정부를 포함해서 그렇게 바뀌었다. 

 

문재인 정부 초기에는 어느 정부보다 더 확실히 소득재분배를 이루어 소득불평등을 크게 낮췄지만, 후기에는 그 전 10년과 달리 소득불평등 하락 추이가 멈추었다. 미국에서 일시적일지라도 코로나 이후 하위 소득이 증가해 소득불평등이 줄었는데 반해, 한국은 코로나 이후 하위 소득의 증가 정도가 감소해 소득불평등이 더 이상 줄지 않고, 하위불평등만 보면 소득불평등이 조금 늘었다. 코로나 기간 동안 다른 선진국보다 재정건정성에 더 신경 쓴,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은 결과다. 문재인 정부의 지지도 하락의 배경에는 이러한 변화가 있다. 정권 전반기에 상위계층의 지지를 잃을만한, 그리고 후반기에는 하위계층의 지지를 잃을만한 정책을 펼친 것이다. 

 

마무리 하기 전에 두 가지 강조하고 싶은게 있는데, 하나는 코로나 이후에도 상위불평등의 증가는 없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한국에서 불평등을 지배하는건 여전히 하위불평등이라는 점이다. 한국은 상위 10%와 중위층의 차이보다 중위층과 하위 10%의 차이가 크다. 그런 면에서 한국의 경제적 보수화는 상층의 더 많은 이득으로 귀결되기 보다는, 하층의 더 빈곤한 퇴행으로 이어질  위험성이 높다. 

 

 

 

Ps. 세후 가처분소득이 아니라 시장소득으로 보면 추세가 조금 다르다. P90/P50 상위 불평등은 조금만 줄었는데, P50/P10 하위 불평등은 2011년 3.64에서 2024년 4.21로 상당히 크게 늘었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 

 

2011년 이후 시장 소득이 가장 크게 늘어난건 중위층(82.3% 증가)이다. 동기간, 하위10%는 57.8% 늘었고,  상위10%는 71.4% 늘었다. 그런데 가처분소득으로 보면, 하위10%의 증가율이 117%로 가장 높다. 중위층 입장에서 하위계층은 노동시장 활동은 별로 없으면서 온갖 복지혜택을 봐서, 자신들과의 차이는 줄어드는데, 가장 열심히 일해서 시장소득이 늘어난 자신들은 상층과의 격차가 별로 줄지 않았다고 느낄 것이다. 추측컨데, 이 변화가 한국 사회 경제적 보수화의 가장 큰 이유리라. 

Posted by sovidence
,

아래 포스팅은 많은 분들에게 별 관심없는 주제일거로 생각하고 쓴건데, 의외로 여러 분들이 코멘트를 주셨다. 원인에 대한 논의에 코멘트가 많은걸로 미루어, 가끔 얘기되는 트위터 독자들의 학력 분포 편향이 짐작되더라. 

 

많은 분들이 게임, SNS, 국정원의 심리전, sexuality 등 미시적 요인의 설명력에 대해서 언급하셨다. 저도 이 변수들이 상당한 설명력을 가질거라는데 동의한다. 이에 대한 분석이 부족하다는데도 동의하고.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닌 이유는 조금 얘기할 필요가 있다. 

 

일베에 관심있는 분들은 많이 읽어보셨겠지만, 김학준 선생은 <보통 일베들의 시대>에서 일베의 유머, 웃음 코드와 혐오 담론을 연결시킨다. 김학준 선생의 한겨레 인터뷰 내용도 이 점을 잘 보여준다. 저는 유머를 출발점으로 한 이 분석이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인터뷰 내용을 조금 옮기면, "호남, 여성, 진보좌파 등에 대한 혐오에 유머의 탈을 씌워 유희거리로 만든다. ... 혐오코드는 (이렇게) 유머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면서 확산됐고, 그것이 하나의 스타일로 자리잡았다. ... 혐오발언은 이제 각종 ‘드립’뿐 아니라 종종 정의, 공정, 능력이란 말과 뒤섞여 곳곳에서 사용된다. ... 유머를 도구로 쓰다보니, 혐오표현에 대한 지적은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달려드는’ 꼴이 된다." 

 

놀이 문화와 극우화를 연결시키는 다른 분으로 트위터의 괴골(개물)님이 있다. 괴골(개물)님이 포스팅한 요 쓰레드의 논리를 보시라. 마지막 트윗을 그대로 옮기면 아래와 같다. 

=====

놀이 문화 뒤에 숨는 것이 꽤 영리한 전략인 것이, 

1. 10대 수용자들의 거부감을 크게 줄임.
2. 반면 기성세대의 정당한 개입에 대한 거부감을 크게 늘림 ('꼰대들이 놀이를 못하게 한다'는 식으로 생각하죠)
3. 같은 '놀이'를 하는 또래들의 결속력을 강화해서 자가발전시킴(이건 남자들이 더 심함)

=====

 

유머, 놀이와 극우를 연결시키는게 한국만의 현상도 아니다. <도둑맞은 자부심>을 쓴 Arlie Hockshield의 인용에 따르면, David Keen은 미국의 January 6 의사당 난입 폭동에 그토록 쉽게 여러 평범한 사람들이 참여한 이유로 난입 당시의 축제 분위기를 든다. 같은 인용에서 혹실드는 Hannah Arendt의 <전체주의의 기원>를 인용하며 유희적 분위기에서 저절러진 극우 범죄에 대해 논한다. 

 

매우 유용한 분석이라는데 백퍼 동의한다. 하지만 이러한 설명이 가진 한계도 분명하다. 유사한 심리적 기제가 발현되는데, 시대와 사회에 따라 보수화 극우화에 차이가 나는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 유사한 현상이 많은 국가에서 관찰되지만, 한국에서 유난히 성별 격차가 큰 이유가 뭔지, 왜 한국의 청년 남성은 이렇게 심각하게 보수화되었는지. 어떤 상황과 조건에서 심리적 변수들이 더 잘 작동하는지를 설명하는데 한계를 가진다. 

 

매크로 (타입) 변수의 조건에 대한 파악없이 마이크로 변수에만 초점을 맞추면, 해결책은 10대는 SNS 금지, 게임 규제와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게 작동할 수는 있지만, 그리 이상적인 대책은 아니다. 

 

기왕 아렌트를 위에 언급했으니 마셜 플랜을 생각해 보시라. 대부분 알듯이, 독일에서 히틀러가 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 1차 대전 이후의 경제적 궁핍이 있었다는게 마셜 플랜 작성의 주요 논리 중 하나였다. 독일을 바꾼 것은 "악의 평범성" 같은 마이크로 분석이 아니라, 경제발전을 통한 번영이 급진화와 전쟁을 막는다는 매크로한 분석이었다. 

 

이런 논리가 현재 한국 청년 남성의 변화를 이해하는 것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는건 아니다. 하지만 경제적 문제와 청년 남성 보수화를 연결시킬려는 접근 자체가 애초에 잘못된 방향은 아니다. 경제적 궁핍을 원인으로 설파하는 주장이 한국 사회의 변화 방향이라든가 실제 데이터와 안맞는다는거지. 어떤 계층적 세그멘트의 현상인지 밝히는건 중요하다. 

 

반페미니즘, 남성의 toxic masculinity에 대한 분석도 마찬가지다. 신경아 선생이 경향 칼럼으로 쓰고, 페북에 더 자세한 내용을 올렸듯, toxic masculinity는 최근 문제가 아니다. 과거보다 약화되었으면 약화되었지 강화되었다고 하기도 어렵다. 안성기 배우의 부드러운 남자 이미지, 요섹남 등 덜 톡식한 남성 이미지가 넓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매크로한 조건 없이 이것만 분석해서는 왜 지금, 왜 청년층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현재의 청년 남성이라는 한 개의 집단에 대한 매크로 분석은 교육, 계층, 지역 등의 차이에 따른 성향 차이를 통한 추정이 될 수 밖에 없다. 이 집단과 다른 집단 비교를 통해, 이 변수의 효과가 어떻게 다른지를 파악해야할 것이고.

 

노파심에서 한 마디 덧붙이자면, 그래서 이런 매크로 타입 분석만 가치가 있다는게 아니고, 심리적 변수에 대한 분석이나 SNS 활동에 대한 분석으로 매크로 (타입) 변수의 중요성을 대체할 수 없다는 거다. 

 

 

Ps. 개인변수를 이용한게 무슨 매크로 분석이냐고 반문하는 분들도 있을텐데, 교육 수준, 경제상황 같은 변수를 게임, 심리적 변수 같은 변수와 어떻게 달리 표현할지 몰라서, 그냥 매크로 (타입) 변수라고 했다. 

 

Pps. 청년 남성의 보수화가 연령 효과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이미 작년 6월에 포스팅한게 있다. 연령 효과는 청년 남성의 보수화에 회의적인 분들이 이미 했던 얘기다. 일부 논쟁이 있지만, 사회학 연구들은 세상의 변화 뿐만 아니라 개인의 변화를 추적할 때, 나이 효과는 작고, 코호트 효과가 더 크다고 보여준다. 예를 들어, Kiley & Vaisey (2020) 연구에 따르면, 미국 GSS에서 나타나는 태도 변화는 대부분 단기 태도 변화거나 측정 오차고, 지속적인 변화가 나타날 경우는 코호트가 바뀌면서 젊은층의 태도가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람들의 태도는 새로운 정보에 따라 바뀌기 보다는, 청년층에 형성된 성향이 지속되는 성향 안정성 모델에 더 부합한다. 즉, 지금의 청년층이 나이가 들면서 진보적으로 바뀌기 보다는 현재의 세계관을 상당히 유지할거라는 의미다. 링크한 포스팅에서, 첫 번째 코멘트도 읽어보시길. 한국의 현재 청년 세대는 예외적인 케이스라고 주장할려면, 왜 이 집단만 다른 일반적 경향과 다른지 상당히 개연성있는 상황 논리가 있어야 한다. 

Posted by sovidenc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