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환, 최성수 (2026) " 청년 남성 극우 성향의 구조와 분포." 한국사회학. 

 

작년 6월에 시사IN에 기재되었던 인터뷰 분석 기고문을 정식 학술 논문으로 연세대 최성수 교수와 함께 발전시켰다. KCI에는 첫 페이지만 보이고, 한국사회학회 회원은 학회 홈페이지에 로그인하면 전체 논문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doi 주소인 DBPia 에는 전체 논문이 며칠 후에 올라오지 않을까 싶다. 

 

내용은 시사IN 기사의 단순한 재탕은 아니다. 개념은 정교화했고, 상당히 새로운 (하지만 진보 입장에서는 우울하고 심지어 절망적인) 발견들이 있다. 

 

우선 개념부터. 시사IN 기사에서 정책적 선호를 극우의 요소로 넣은 것에 비판이 있었다. 그런데 이는 보수적 정책을 선호하면 극우라는 의미가 아니고, 진보와 보수를 구분하기 위한 장치였다. 논문에서는 이를 분명히 했다. 정책 선호에서 진보와 보수를 가르고, 그 다음에 규범적 극단 성향으로 극우를 규정했다. 규범적 극단 성향은 3가지다. (1) 절차적 민주주의 부정, (2) 약자 포용 정책 반대, (3) 폭력 수용. 정책적 우파 중 (1)과 (2) 성향을 모두 가지면 약한 극우, (3)까지 나가면 강한 극우로 규정했다. 

 

이렇게 규정한 후 극우를 추정하면, 성*연령 집단별 극우의 비율은 아래 그래프와 같다. 청년 남성의 26%가 극우성향이 있다. 청년 여성은 4.2%에 불과하다. 장년 남성, 노년 남성, 노년 여성의 극우 성향은 크게 다르지 않게 청년 남성 다음이다. 

 

보수 성향으로 따지면 청년 남성은 50%가 보수로 다른 어떤 집단보다 높다. 30%가 중도, 진보는 20% 미만이다. 두 번째로 보수 성향이 높은 집단은 노년 남성으로 39%다. 보수 청년 중 극우 성향을 보이는 비율은 51%다. 그런데 장년 보수층 중 극우 성향을 보이는 비율은 49%로 청년 남성과 다르지 않다. 

 

그러니까, 청년 남성의 극우 성향이 높은 것은 보수 청년 중에서 유난히 극단적 성향이 높은게 아니다. 보수 성향 장년 남성의 극우 성향도 청년 남성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청년 남성은 보수적 경향이 다른 어떤 집단보다 높아서 극우의 비율도 높다. 한국 보수 중 청장년 남성은 절반이 극우 성향을 가지고 있고, 노년층은 1/3 정도가 민주주의적 절차를 부정하거나, 약자 포용을 반대하는 극우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 중 상당수는 폭력도 수용한다. 

 

한국 극우 성향의 가장 큰 특징은 약자 포용에 대한 반대다. 특히 청년 남성에게서 그 성향이 강하다. 약자 포용에 대한 반대는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장애인 고용 반대, 반페미니즘 성향으로 측정했다. 청년 남성의 유난한 약자 포용 반대가 반페미니즘 때문인지 파악하기 위해서 페미니즘 항목을 분석에서 제외했는데도 결과는 거의 변화가 없다. 한 가지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청년 남성의 약자 포용 정책 반대가 심하지만, 보수적 성향의 다른 연령층도 약자 포용 정책 반대 성향을 강하게 보인다. 한국 보수의 전반적 특징이다.

 

이 번 연구에서 드러난 특징 중 하나는 청년 남성의 절차적 민주주의 수용성은 86세대를 포함한 장년층과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노년층 보다는 청년 남성의 절차적 민주주의 수용성이 유의하게 높았다. 즉, 계엄이라든지, 탄핵 절차라든지 민주주의 절차에서 청년 남성은 장년 남성과 다르지 않은 높은 수용성을 보인다. 민주주의 수용성에 주목해서 청년 남성을 분석하면 이들에게서 특별히 더 극우적 측면을 발견할 수 없다. 과거 청년 남성이 극우 성향을 가지는지에 대한 논쟁에서 일부에서는 그렇게 보기 어렵다는 주장이 있었는데, 이 주장은 극우의 특징 중 민주주의 절차만 분석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청년 남성은 다른 집단만큼 민주주의 질서를 중시한다. 

 

폭력성은 보수적 성향을 가진 청년 남성과 진보적 성향을 가진 청년 남성에게서 큰 차이가 없었다. 또한 보수적 청년의 폭력성은 보수적 중년 남성의 폭력성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즉, 폭력성은 보수적 청년 남성에게서 나타나는 고유한 특성이 아니라 나이가 들면서 완화되는 연령 효과이자, 한국의 보수 청장년 남성이 공유하는 특성이다. 

 

정리하자면, 청년 남성의 높은 극우 성향은 이들의 두드러진 보수화, 보수 전반과 청년 남성 전반의 높은 폭력 수용성, 한국 보수 진영 전반이 공유하지만 보수 청년 남성에게서 특히 강한 사회적 약자 배제라는 진영 효과가 중첩된 결과이다. 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청년 남성과 장년 남성의 성향이 다르지 않다. 

 

이러한 결과는 청년 남성 극우 성향의 특성을 드러냄과 동시에, 한국에서 보수층에서 두텁게 형성되어 있는 극우 성향을 드러낸다. 장년 극우가 두드러보이지 않았던 이유는 장년층의 보수 비율이 청년 남성만큼 높지 않기 때문이지, 보수층 내에서의 극우 성향은 청년과 장년 남성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 

 

한국 사회에서 계엄과 탄핵 이후에도 보수층에서 극우적 주장이 사라지지 않고, 정치인의 극우적 발언이 지속되는 이유는 이렇게 보수 전반에 극우 성향이 폭넓게 퍼져있는 구조 때문이다. 신진욱 교수가 계엄 선포 당시 엘리트 층에서 반발이 없었다는 점을 들어 한국 민주주의가 취약하다는 논문을 썼었는데, 우리 결과는 한국 민주주의의 취약성은 엘리트 층 뿐만이 아니라 기층에서도 상당히 넓게 발견된다는 우울한 진단을 제공한다. 

 

 

그렇다면 청년 남성은 언제부터 이렇게 보수화된 것일까. 시사In 자료는 2025년 횡단면 자료이기 때문에 이 질문에 답할 수 없다. 그래서 <한국종합사회조사> 자료를 이용해서 장년층 대비 청년 남녀의 지지 정당의 측면에서, 또한 자기 응답 정치 성향의 측면에서 상대적 보수성을 측정해봤다. 

 

그랬더니 아래 보다시피 청년 남성의 보수적 성향은 21세기초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증가했다. 최근 청년에게서 갑자기 나타난 현상이 아니다. 다만 최근에 (= 2020년 이후) 청년 남성의 보수적 성향이 장년층을 초과했기 때문에 눈에 띄는 것이다. 꾸준히 증가하던 청년 남성의 보수적 성향이 박근혜 탄핵 당시 지지 정당의 측면에서 위축되었기 때문에 최근의 성향이 더 두드러 보인다. 

 

이러한 결과는 청년 남성의 보수화와 이에 동반하는 극우화가 최근 코호트에서 갑자기 생겨난 현상이 아니라 21세기 전반에 걸쳐서 꾸준히 진행된 구조적 현상임을 시사한다.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점은 2025년 시사IN 조사는 대선 직후에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선거 직후 조사는 일반적으로 승자 쏠림 현상이 있다. 달리 말해, 민주당이 승리한 선거 직후의 조사에 기반하였기에, 이 분석의 보수와 극우는 과소평가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결론적으로 청년 남성의 높은 극우 성향은 강건하게 확인되며, 장년과 노년층에서도 약자 배제를 기초로 한 극우 성향은 상당히 강하다. 장애인, 여성, 외국인에 대한 혐오 기사들, 제주도가 외국인 때문에 범죄의 온상지가 되었다는 기사들은 모두 이러한 성향을 자극한다. 이상의 분석은 한국 사회에서 정치 상황에 따라서 극우적 역풍이 상당히 크게 불어올 수 있는 정치인구학적 기반이 탄탄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Ps. 국승민 교수는 이 연구와 같은 자료를 사용한  시사IN 기고문에서 청년 극우의 증거가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의 주장은 자가 응답 극우 성향과 민주주의 수용성에 기반한다. 그런데 청년 남성은  실제 정치적 성향에 비해 자신을 극우라고 여기는 경향이 약하다. 자가 응답으로 따지면 극우 성향이 가장 높은 집단은 노년 여성이다. 그 다음이 노년 남성, 그 다음이 장년 여성이다. 청년 남성은 주변의 극우적 성향이 높다보니 자신이 극단적이라는 인식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자가 응답에 의존하지 않고, 요인분석과 그에 기반한 확률분석으로 극우 성향을 추정하면 여전히 청년 남성의 극우 성향이 다른 어떤 집단보다 높다. 이것도 논문의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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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수 교수 페이스북: 서·논술형 수능에 대한 비판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위원회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 서·논술형 문항을 도입하는 대입제도 개편에 시동을 걸었"고 이재명 대통령은 "객관식에 답하는 능력을 테스트하는 건 초보 컴퓨터도 하는 방식"이라고 했단다. 

 

이에 대해 최성수 교수가 서·논술형 수능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는데, 일독을 권한다. 

 

두 가지 측면에서 수능의 서·논술형으로의 전환은 패착이 될 것이다. 

 

하나는 계층론적 측면이다. 2020년에 논문으로도 썼는데, 상위계층에서 가장 유리한 입시제도가 논술이다. 수능이든 내신이든 모든 입시제도가 상위계층에게 유리하지만, 특별히 더 상위계층에게 유리한 입시제도가 바로 논술이다. 한국에서만 그런 게 아니다. 최근 미국 대학에서 SAT, ACT와 같은 standardized tests를 폐지했더니 오히려 상위계층에게 유리하고, 학업 능력이 뛰어난 하위계층 출신 학생에게 불리하더라는 연구가 이어졌다. 그 때문에 여러 미국 대학에서 standardized tests를 다시 입시에 들여오고 있다. 예일대의 연구에 따르면 학생의 성공을 예측하는 가장 중요한 단 한 개의 변수가 바로 standardized tests 점수였다. 다른 학교도 비슷한 결과다. 심지어 조선시대에도 그 비슷한 경향이 있었다. 

 

서술과 논술은 어린 시절 어떤 가정 환경에서 크느냐에 따라 그 능력이 크게 달라진다. <Unequal Childhoods>에서 아네트 라루가 보여준 것도 가정 환경에 따라 일상 생활에서 쓰는 단어와 태도가 달라진다는 거다. 중상층과 상층 출신의 가족배경은 어릴 때부터 논술에 적합한 일상 환경을 제공한다. 

 

입시 얘기만 나오면 "개천룡"을 떠들지만, 실제로 어떤 제도가 하위계층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는지에 관심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개천룡에게 유리한 제도는 학습 내용이 표준화되어서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시험이다. 무엇보다 제도를 너무 자주 바꾸지 말아야 한다. 빈번한 제도의 변동 그 자체가 상위계층에게 유리하다. 

 

서·논술형 입시 도입은 중상층의 교육을 통한 계급 재생산의 강력한 메커니즘으로 작용할 것이다. 여러 번 얘기했지만, 지금의 온갖 개천룡 관련 비판은 실제 개천룡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존 체계를 흔들어 중상층에 유리한 제도를 도입하기 위한 기동이 아닌가 의심스럽다. 계급고착화가 안 되어 불안한 한국 사회에 계급고착화라는 안정성을 부여하는 그런 기동. 

 

두 번째는 창의성이다. 이게 정말 오래된 떡밥인데, 주관식이 창의성을 만든다는 증거가 도대체 무엇인지 모르겠다. 예전에도 포스팅했지만, 창의성은 교육을 통해서 길러지는 게 아니다. 

 

누가 창의적인지는 해보기 전에는 모른다. 창의성은 교육을 통해서 길러지는 게 아니고, 교육 과정 중에 발견되는 것에 더 가까울 것이다. 창의성에 대한 연구는 일정 수준 이상의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다양하게 섞으면 창의적인 해결책이 더 자주 나온다고 보여준다. 여기서 "일정 수준 이상의 능력"은 중요한 지표이다. 아무나 섞는다고 창의적 해결책이 나오는 게 아니고, 다양한 배경에서 다른 측면에서 능력을 입증한 사람들을 섞으면 창의적 해결책이 나온다. 객관식 수능은 일정 수준 이상의 능력을 측정하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효율적인 지표다. 

 

한국 사회에서 창의성을 높이려면 일정 수준 이상에서는 단일 지표 줄 세우기가 아니라 융합적 환경을 더 많이 만드는 게 필요하다. 그리고 한국 사회는 이미 이런 경향이 있었고 더욱 이런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 반도체가 잘나가는데, 이거 구축한 사람들이 창의성 교육을 받은 사람들인가? 전형적인 암기 위주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지. 

 

한국인들의 유난스러운 여러 사교 모임은 과거 한 가지 잣대로 줄 세우는 대학 문화에 반해 다양성과 융합의 기회를 제공했을 가능성이 높다. 여러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서 사고를 달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게 온갖 모임들이다. 

 

그런 측면에서 특목고, 자사고, 강남 출신끼리 모이는 대학 친구는 다양성을 줄여 창의성을 떨어뜨리는 동학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러니까 입시의 다양화는 다양성을 증진시켰지만, 특목고/자사고 등의 도입은 다양성을 감소시켰다. 계층재생산에 유리한 제도와 불리한 제도가 동시에 실험된 것이다. 하지만 최근 논의되는 서·논술형  대학 입시 정책은 개천룡과도 무관하고, 창의성과도 별 관계가 없다. 제가 보기에 이 제도는 혼돈스러웠던 입시제도를 (중)상층의 원활한 계급재생산에 유리한 제도로 바꾸는 기능을 할 것이다. 계급이 고착화되면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개천룡 타령은 줄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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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기사: 20대 고소득층 자산이 30대 추월? '사실 반 거짓 반'.

 

블로그에 KBS 기사의 문제점을 지적한 후, 오마이뉴스 김시연 기자로 부터 연락이 왔고 (아마 박권일 선생의 페북 포스팅을 본듯), 2025년을 포함한 추가 분석을 제공했다. 아래 PDF가 제공한 분석 전문이다. 

report_kbs_verification_1.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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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기사를 쓰기 위해 KBS에 문의하는 도중 경향신문의  "20대 자산 격차 34배"라는 기사도 나왔다. KBS의 2025년 20대 자산이 단 13가구에 기반한 분석인데, 경향신문 2025년 분석은 단 7가구에 기반한 분석이다. 경향신문에서 2017년과 비교하는데 2017년 분석 대상인 20대 가구는 단 5가구다. 

 

KBS에서 20대 상위 20%의 자산이 30대를 추월했다고 보도했는데 이건 순전히 1 가구 때문이다. 2025년에 갑자기 (전체 가구 기반) 소득 상위 20%에 속한 20대 가구주 중 최대 자산 규모인 가구가 순전히 통계적 우연에 의해서 2024년 18억에서 2025년 33억으로 급등해서 생긴 현상이다. 이 1 가구만 제외하면 20대 상위 가구가 30대 상위 가구를 역전하는 현상은 사라진다. 

 

KBS는 의아하게도 전체 가구 기준 소득 상하위 20%를 비교했다. 하지만 20대 가구주의 자산불평등을 볼려면 20대 가구주 중에서 상하위 20%를 비교하는게 맞다. 아래 그래프는 그렇게 비교한 것으로, 순자산과 총자산 상위 10% 분위 대비 하위 10% 분위의 비율이다. 보다시피 순자산이 양인 가구만 놓고 볼 때 P90/P10는 2017년 대비 2025년에 줄어들었다. 일부에서는 순자산이 양(+)인 가구만 봐서 그렇다고 할텐데, 음(-)인 가구까지 포함하면 줄어드는 정도가 더 크다. 

 

 

위 그래프가 의미하는 바, 중상층과 하층의 격차라는 면에서 20대 자산 불평등은 줄어들었다. 늘어난게 아니고. 그래프가 위와 같이 그려지는 이유는 지난 10년간 20대 가구주  최하층의 자산이 중상층보다 더 빨리 늘었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2021년 이후에는 증가하는 경향이 보이지 않냐고 할텐데, 맞다. 몇 년간 증가했다. 그런데 그렇다면 2017년에서 2021년 사이 감소할 때는 왜 그렇게 조용히 있었나? 20대 순자산 지니계수를 음의 값까지 포함해서 계산하면 2017년 .632 대비 2025년 .669로 증가한다. 그런데 이 증가는 순전히 단 1가구 때문이다. 대략 500가구를 차지하는 20대 가구주 중 단 1 가구를 제외하면 지니계수는 2017년 .623 대비, 2025년 .630으로 거의 변화가 없다. 

 

그러니까 한국에서 20대 청년 가구주 중 상위 10%P에 속하는 중상층과 하위 10%P에 속하는 하층의 자산불평등은 줄어들었다. 늘어난건, 이것도 확실한 건 아니지만 상위 1~2%의 최상층과 중상층의 격차이다. 자산불평등이 늘었다는 비판은 중상층이 자기는 왜 최상층이 쉽게 되지 못하고, 하층과의 격차는 왜 줄어드냐는 불만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언론은 숫자를 이상하게 만들어서 20대 전체의 자산불평등이 늘었다고 보도한다. 앞의 포스팅에도 말했지만, 자산불평등의 측면에서도 한국의 언론은 중상층의 불만을 전체의 불만인 것으로 왜곡해서 포장하는 경향이 있다. 

 

 

 

경향신문에서는 30세 미만 가구주 순자산 상위 20%의 평균 총자산이 하위 20% 대비 33.9배로 2017년 대비 크게 증가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경향신문에서 쓴 순자산 상위 20%는 전체 가구 중 상위 20%다. 이에 속하는 20대 가구는 2017년에 5가구, 2025년에 7가구에 불과하다. 

 

경향신문처럼 이상하게 보지 않고, 30세 미만 가구주 내에서 상위 20%를 계산하고 이들과 하위 20%의 자산 비율을 보면, 아래 그래프와 같이 2017년 26.8배에서 2025년 16.1배로 자산 불평등이 상당히 줄어들었다. 늘어난게 아니고. 

 

그런데도 경향신문은 전체 가구주 대상 상위 20%에 속하는 극소수 30세 미만 가구주를 대상으로 배수를 구한다. 도대체 왜? 

 

경향방식으로 계산하면,  2021년에는 30세 미만 가구주 중 전체 상위 20%에 든 가구는 단 3가구고, 그 중 한 가구가 자산이 88억이다 (순전히 샘플링의 우연이다). 그래서 경향신문 방식으로 상하위 20%의 비율을 그리면 아래 붉은색 그래프와 같이 된다. 경향방식이면 2021년 74배까지 뛰었던 자산 격차를 단 1년 만에 2022년에 단 27배로 낮춘건가? 

 

 

 

종합적으로 KBS와 경향신문이 보도한 청년 가구주의 자산 불평등 폭증은 전체 가구의 소득과 자산 분위를 청년 가구주에 그대로 적용해서, 극히 적은 표본수로 만들어낸 우연의 수치이다. 대부분의 국가 통계청에서도 극소수의 표본에 기반한 통계 계산과 보도를 하지 않고, 접근 제한 자료를 검토할 때도 이 기준을 엄격히 적용한다. 한국은 원자료 공개 범위가 미국보다 좁다. 예를 들면 가계금융복지조사의 지역코드와 같이 당연히 제공해야할 자료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불만이 학자들에게 많다. 하지만 KBS와 경향신문의 이런 보도 방식은 국가데이터처에서 왜 원자료 공개를 꺼리는지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작은 그룹의 수치를 볼 수 있는 원자료를 제공하면 이런 식의 황당한 수치를 계산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그럼 왜 미국같은 나라는 세부 원자료를 공개할 수 있는가. 이건 법의 문제가 아니라 윤리의 문제, 사회적 압력의 문제이다. KBS와 경향신문 같은 보도를 했다가는 학자, 정부, 다른 원론으로부터 집중포화를 맞고 사회적 비난을 면치못할 것이다.

통계와 관련해 회자되는 말 중, Lies, damn lies, and statistics라는 말이 있다. 자극적 수치로 클릭수를 높이고 주목을 받으면 좋을지 모르겠지만, 사실과는 거리가 멀어도 많이 먼 보도관행이다. 

 

 

 

Ps. 오마이뉴스에서는 "사실 반 거짓 반"이라고 했지만, 이건 백퍼 거짓이다. 통계를 이용한 거짓은 항상 이런 식이다. 20대 가구주 상위 20%와 하위 20%의 격차는 벌어지지 않았고, 20대와 30대 가구주 자산 상층의 역전도 없다. 순전히 통계적 우연에 의해, 전체 가구주를 대상으로 5분위를 나눌 때, 상위에 속하는 소수의 20대 가구주 중 단 한 가구 때문에 특정 연도에 20대 평균 자산이 30대보다 많았던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은 실제 통계에 근거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Lies, damn lies, and statistics라고 하는거다. 아주 고약한 거짓말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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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복 (2026) "세대 간 소득 이동과 자산 재생산: 세대 간 사회 이동, 자산 재생산, 소득 이동성, 교차 경로, 행정자료, 수저계급론". 한국사회학 60(2): 1-32. (한국사회학회 회원은 요기서 전문 다운로드 가능.)

 

개천룡이 안난다는 세간의 인식이나 언론의 보도와 달리, 한국 사회에서 사회이동이 매우 활발하다는 주장은 사회학자들에 의해 꾸준히 제기된 바다. 이 블로그도 찾아보면 여럿 나온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분석은 대부분 교육이나 직업 차원이었다. 소득이나 자산을 보면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추정도 많았다. 중산층이 세습된다거나 자산이 세습된다는 주장들이다. 최근 KBS보도나 경향신문의 잘못된 보도도 그런 인식을 강화시킨다. 

 

그런데 한국사회학 최신호에 자녀의 청소년(14-18세) 시기 부모의 소득과 자산이 그 자녀들이 성년기(30-37세)가 되었을 때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지 국민건강보험공단 행정자료 원자료를 이용한 분석이 보고되었다. 이근복 박사의 논문인데, 1987-1992년 출생자 전체의 4.3% 정도를 표본추출한 근 32만명에 달하는 대규모 행정 데이터다. 이 논문에서 사용한 소득과 자산은 서베이 질문이 아니라 국세청에서 국민연금공단에 제공한 자료다. 그러니까 이보다 더 정확한 소득과 자산 데이터는 없다. 

 

이 연구에서 소득과 자산을 모두 균등화한 후 랭크 변수로 전환하고,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의 랭크-랭크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이 방법이 최근 세대 간 사회이동을 연구하는 국제적인 표준 방법이다. 상관관계가 낮을수록 사회이동이 활발하고, 상관관계가 높을수록 소득과 자산이 세습된다는 의미다. 

 

논문 전체의 핵심 결과를 요약하는  24쪽의 기술을 그대로 옮기면 아래와 같다. 

 

"소득의 세대 간 분위 회귀계수는 약 0.20 이다. 이는 덴마크(약 0.20), 노르웨이(약 0.17) 등 북유럽 국가들과 비슷하며, 미국 (약 0.34) 보다는 낮다 (Chetty et al., 2014; Helsø, 2021). 비록 분석 대상 코호트의 연령이 30 대 초반으로 생애 소득이 완전히 실현되지 않은 성인기 초반이라는 한계가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수치는 한국의 소득을 통한 세대 간 이동 경로가 여전히 열려 있음을 시사한다. 

 

자산의 세대 간 이전 정도 역시 미국과 대만 등에서 보고된 자산 이동성 추정치 보다는 다소 낮은 수준이다 (Chu et al., 2024; Pfeffer and Killewald, 2018). 국제비교를 통해 볼 때 한국의 자산의 세대간 이동 경로 역시 어느 정도 열려 있는 것으 로 보인다."

 

이 연구에서 본 자산 추정치는 0.338인데 미국이나 노르웨이 보다 낮고, 스웨덴과 유사하며 덴마크보다 다소 높은 수준이다. 일부에서는 자산은 더 세습되는거니까 문제가 심각한거 아니냐고 할텐데, 거의 모든 국가에서 자산의 랭크-랭크 상관관계가 소득보다 높다. 어느 국가나 자산 불평등이 소득 불평등 보다 높고, 어느 국가나 자산의 세습이 소득의 세급 보다 강하다. 

 

종합하자면, 한국의 세대 간 사회이동은 소득과 자산의 사회이동 측면에서 덴마크, 노르웨이 등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들 국가가 지금까지 보고된 국제 비교연구에서 사회이동이 가장 활발하다는 국가들이다.

 

90년대 출생자는 뭔가 다르다고 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이 연구 결과를 보면 그렇지 않다. 논문에서는 출생 코호트별로도 랭크-랭크 상관을 추정했는데, 모든 코호트가 거의 같다. 

 

그러니까 한국 1987-1992년 출생 코호트의 소득, 자산 세대 간 이동은 전세계 선진국 중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Ps. 그럼 도대체 왜 한국은 이렇게 잘못된 인식이 퍼지고 언론은 그 인식을 재생산하나? 제가 주장하는 바는 상위계층의 계급투쟁이다. 21세기들어 대학 교육 기회, 입사 기회 등 많은 기회가 공정해지면서 경쟁이 심화되고 상위계층의 계층 재생산이 어려워졌다. 기회가 공정해진다는건, 모든 사람에게 기회가 돌아간다는 의미이고, 그렇게 되면 경쟁이 심화된다. 사회이동이 활발해지면 상향이동 뿐만 아니라 하향이동도 당연히 생긴다. 상위계층의 재생산에 문제가 생기게끔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상위계층 입장에서는 계층 재생산을 위해서 어떻게 해서든 변화를 도모해야 하는데, 변화를 위해서는 현 체제로는 안된다는 불만과 불안이 필요하다. 판이 흔들리면 기회가 열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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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 불평등은 소득 불평등과 그 패턴이 상당히 다르다. 그 때문에 측정 방법도 달라야 한다. 

 

한국에서 두 불평등을 동일한 방식으로 측정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건 한국의 자산 불평등이 상대적으로 작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불평등을 동일한 방식으로 측정해도 되는 것처럼 생각한다. 

 

여러 번 말했지만, 한국의 자산불평등이 상대적으로 작은게 반드시 좋은 현상은 아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중상, 중산층의 자산은 집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런데 한국은 전세, 그리고 월세를 살아도 보증금을 꽤 내야하는 제도 때문에 무주택자도 자산이 있다. 외국이었으면 자산이 제로에 가까웠을 계층이 몇 천 만원의 자산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산 하층 20%와 자산 상층 20%를 비교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국가에서 자산 하위 20%는 자산이 없거나, 마이너스다. 불평등은 네거티브 숫자가 들어가면 비교가 어려워진다. 애초에 불평등 지수가 소득을 중심으로 개발되었고, 마이너스 소득은 잘 없기 때문이다 (자영업자에게 없는건 아니다). 하지만 자산은 가진 돈보다 부채가 많은 경우가 상당히 있고, 전체 시민 중 순자산이 마이너스인 비중이 무시할 수 없게 크다. 

 

그래서 자산불평등은 "하위 20% vs 상위 20%"가 아니라 "하위 50% vs 상위 10%" 이런 식으로 비교한다. 전자의 비교가 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KBS 기사에서 청년 자산 하위 20%와 상위 20%를 비교하지 않은 이유도 아마 자산 하위 20%의 평균 자산이 마이너스였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한국에서 자산 하층의 자산이 마이너스가 되는 대표적인 집단이 청년이다. 당연하지 않은가. 청년일 때 교육 대출도 받고, 전세 대출도 받고, 사업 대출도 받으니까. 사회 시스템이 잘되어있어서 청년들에게 대출을 많이 해주고 미래를 도모할 수 있게 해주면 청년 중 자산 하층은 당연히 마이너스가 된다. 이 경우 마이너스 자산이 나쁜게 아니라 좋은 거다. 마이너스 자산 없애겠다고 청년 대출 규제하면 무슨 일이 벌어지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청년 자산 불평등은 매우 조심해서 다루어야 하는 주제다. 다각적으로 분석하지 않으면 헛소리하기 딱 좋은 주제다. 

 

 

Ps. 코로나 이후 증가한 20대 청년 독립 가구주는 이 전 대비 상대적으로 고학력이면서 저소득이라는 특징이 있다. 코로나 이후 중상층 이상 집안 자녀들의 독립이 늘었다는 거다. 대학, 대학원에 재학하며 경제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 20대 독립 가구주 말이다. 이런 인구학적 변화를 통제하지 않으면 소득, 자산 불평등 관련해서 20대 가구주 가구의 특성에 대한 오판 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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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기사: 20대 가구주 자산불평등이 폭증했다는 기사. 

 

2017-2025년 가금복 원자료를 분석했더니 소득 상하위 20%의 자산 격차가 무려 19배라는 기사. 꽤 화제가 되었던 기사다. 

 

이 기사를 처음보자마자 들었던 생각이 그럴 수가 없다는 것이다. 자산은 소득보다 연간 변화 폭이 작다. 2020년에는 6배이던 격차가 5년 만에 19배로 증가한다고? 이런 일은 세상에 일어날 수가 없다. 한 해만 그렇게 나왔으면 그냥 데이터가 튀었나 보다라고 생각할텐데, 그래프를 보니 코로나 이후 지속적인 상승세다. 뭔가 이상했다. 

 

그래서 가금복 원자료를 분석해봤다. 순자산액을 로그 전환 후 분산을 구하는 표준적인 방법을 따랐다. 그랬더니 <총자산-총부채>으로 계산한 순자산의 불평등이 20대 가구주 내에서 2017-2024년 사이에 줄어든 것으로 나타난다 (제가 분석한 데이터는 2025년이 포함이 안되어 있다). 적어도 순자산이 플러스인 집단에서는 KBS 기사와 약간 차이 나는 정도가 아니라 방향이 완전 정반대다. 20대 가구주의 자산불평등이 줄어든 정도도 아주 작지도 않다. 

 

그럼 도대체 KBS 분석 결과는 어떻게 나온 것인가? 

 

여기에 조작이라도 비난해도 과하지 않을 몇 가지 통계적 요술을 부렸다. 우선, 기사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19배는 자산 하위 20%와 자산 상위 20%의 격차가 아니다. 소득 하위 20%와 소득 상위 20%의 자산 격차다. 자산 격차를 알고 싶다면서 왜 분위는 소득으로 구하는지 의문이 든다.

 

20대 내에서 자산 하위 20%와 자산 상위 20%의 격차 변화(이게 자산불평등 변화를 보는 가장 단순하지만 직관적인 통계다)를 통시적으로 보면, 자산 격차의 급격한 상승이라는 KBS 기사의 수치가 안나온다. 

 

그래서 KBS 숫자를 리버스 엔지니어링하기 위해서 20대 가구주 가구의 소득 하위 20%와 상위 20%를 나눈 후 이들의 자산 격차 변화를 봤다. 그랬더니 증가하기는 하는데 KBS 기사에서 말하는 격차만큼 증가하지는 않는다. 

 

도대체 20대 가구주 가구 소득 상하위 20%를 어떻게 나눈건가? 20대 내부의 소득 분위를 나누는건 어려운건 아니지만, 통계패키지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살펴본게 국가데이터처에서 제공하는 전체 가구의 상하위 20% 분위를 사용했다. 그랬더니 KBS에서 제시한 2024년 수치와 정확히 일치한다. 

 

그런데 전체 가구를 대상으로 소득 상하위 20%를 나누면 20대 가구주는 소득 상위 20%에 속하는 가구의 수가 2024년에 15명에 불과하다. 어떤 해는 11명이다. 20대의 소득이 30-50대 보다 낮으니 당연한거다. 이 15명을 대상으로 계산해서 이렇게 강한 주장의 기사를 쓴다. 이게 통계 조작을 통한 선동이 아니면 무엇인가. 

 

기사에서는 20대 가구주는 500여명에 불과해서 숫자를 조심해서 해석해야 한다고 써놨던데, 이건 자신들이 한 일을 알기에 그랬겠지. 500명은 아주 큰 표본 크기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작은 것도 아니다. 500명 전체를 대상으로 자산불평등을 분석하면 숫자가 튀지 않는다. 튀는건 이 기사에서 쓴 이상한 방식으로 계산했을 때 뿐이다.    

 

도대체 왜 이러는건지. 

 

Ps. 2010년대 이후 20대 가구주의 특징 변화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지만, 이건 논문으로 써야하니 나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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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번 지방선거 결과로 두 가지 점이 좀 더 명확해졌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서울 거주 청년의 정치 성향이다. 작년 7월초 시사In 기사에서 "서울 거주 경제적 상층일수록 극우 청년일 확률 높다"고 주장했었다. 일부에서는 그게 아니고 영남의 극우 청년 확률이 더 높다고 반박했다. 그 반박을 보고 의아했던 것은 제대로 된 데이터 분석없이 주장만 있어서였다. 그 때 적극적으로 재반박하지 않았던 이유가 이 번 지방 선거를 보면 누가 맞았는지 드러날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도 진짜 서울 거주 청년 남성의 보수성이 더 높은지 의심이 있었고. 

 

이 번 지방선거 출구 조사 결과는 서울 거주 청년 남성의 보수 지지가 영남 청년 대비 절대적으로도, 해당 지역의 전반적 경향  대비 상대적으로도 더 높다는 것이다. 장년층 대비 차이는 지역 고정 효과를 통제하는 의미가 있다.  일부에서는 조사의 한계를 말할 것이다. 출구 조사는 차이의 정확성 면에서 한계가 있다. 하지만, 경향성을 보는데는 문제가  없다. 또한 작년 전체 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서베이 조사 결과와 올 해 선거 결과의 경향이 일치한다. 이 걸 부인하려면 단순히 자료 신뢰에 대한 몇 가지 의심을 넘어서는 제대로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이 번 지방선거로 드러난 또 다른 점은 온라인 커뮤니티의 효과다. 청년 보수(극우)화의 근원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찾으면 서울과 지방의 차이를 설명하기 어렵다. 일베 등 온라인이 청년 보수(극우)화의 근원이면 청년 보수성의 지역 격차와 온라인 극우 커뮤니티 이용률이 확률적으로 정비례 해야 한다. 아니면 온라인은 지역 커뮤니티의 바운더리를 넘어서기 때문에 전국적이야 한다. 이 번 지방선거 결과는 이 가설이 지닌 한계를 드러낸다. 계층론에 기반해 극우를 연구하는 학자 중에 Eric Protzer라는 분이 있다. 이 분이 미국과 유럽의 극우를 연구하면서 온라인 커뮤니티의 지역 격차를 이미 연구한 바 있다. 결론은 온라인은 극우를 확대하는 효과는 있지만, 근원이 될 수 없다는거다. 

 

 

 

두 가지 예측은 한국의 미래에 대한 것이다. 얼마 전 서울대 대학신문에서 극우가 문화현상인지를 다루면서 질문지를 보내왔다. 기사화되지는 않았지만, 저의 대답은 극우가 문화가 되어서 문제라는 것이었다. 아래는 질문과 답변이다. 

 

질문: 데이터에서 경제적 상층 청년 남성일수록 극우 성향일 확률이 높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 청년들이 일베식 혐오 코드를 래퍼의 가사나 밈으로 소비할 때, 그것이 정치적 신념의 표현인지 아니면 정치적 맥락이 탈각된 문화적 소비인지 데이터로 구분할 수 있을까요? 혹은 그 경계 자체가 흐릿하다고 보시나요?

답변: 제가 아는 한 그렇게 구분할 수 있는 데이터는 없습니다. 그리고 문화와 정치를 분명하게 구분되는 두 영역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아마도 일베식 혐오 코드가 문화적 성향이면, 정치적 의도가 없으므로 무해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문화란 사회학적 정의에 따르면 선택의 기본값(default)으로 가치판단 없이 안정적, 불안정적 시기 모두에 기본적으로 따르는 좌표가 되는 행동 규범입니다. 일베식 혐오 코드가 문화가 되면 일베식 혐오 코드가 행동과 판단 규범의 기본값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일시적 정치적 선택보다 훨씬 더 큰 문제입니다. 현재의 일베적 혐오 코드가 그렇게 진화했기에 문제입니다. 개인의 문화적 성향은 한 번 형성되면 잘 변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회학 연구들이 문화의 변화는 새로운 세대의 출현 (cohort replacement)을 통해 점진적으로 바뀌지 (=구세대의 사멸과 신세대의 등장), 코호트 내의 연령에 따른 변화 효과는 미미하다고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국의 청년 세대도 이러한 일반적 패턴을 따를 가능성이 큽니다. 상당히 광범위한 청년 코호트가 일베적 혐오 코드를 디폴트로 장착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 사회가 앞으로 한 세대 내에 미국이 트럼프 시대에 겪는 것과 유사한 정치적 혼란을 겪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위 답변에는 두 가지 예측이 있다. 하나는 청년 남성의 보수적 성향이 이들이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될거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래서 결국 한국 사회가 정치적으로 상당한 백래쉬를 겪을 것이라는 거다. 

 

얼마 전 이 문제로 한 교수님과 내기도 했다. 첫번째 예측, 그러니까 청년 남성의 보수성이 지속될 것이라는 예측은 빠르면 5년, 늦어도 10년 이내에 결과가 나온다. 여러 사회학적 연구는 문화의 변동은 세대 교체지, 세대 내 연령효과는 작다고 보고한다. 이 일반적 분석이 한국에도 적용되면 한국 청년 남성이 어떤 정치적 성향을 미래에 보일지 추정할 수 있다. 지난 대선 직후에도 청년 남성이 극우가 아닐 것으로 바뀔 것이라는 주장에 반박하며 동일한 얘기를 했었다. 

 

진짜 문제는 두 번째 예측이다. 저는 한국 사회가 미래에 적어도 한 번은 상당히 큰 정치적 보수(극우) 백래쉬를 겪을 것으로 본다. 언제까지나 보수가 잘못할리도 없고, 언제까지나 민주당이 잘 할 일도 없다. 보수가 시대를 이끄는 세력이 되었을 때, 어떤 보수 세력이 이끄냐가 중요한데, 한국의 청년층은 물론, 장년층 보수의 성향을 분석해 봐도 미래에 보수 정권을 이끄는 주요 세력이 온건 보수가 되기 보다는 상당히 극우 성향을 띄는 강경 보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짧으면 10년 이내에 늦어도 한 세대 이내에 이런 상황이 도래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피할 수 없다면, 어떻게 가능한 짧게 내지는 강도를 낮추면서 지나갈 수 있을까가 중요하다. 이건 다음에. 

 

 

 

Ps. 예전에도 몇 번 말했지만, 이 블로그 시작의 계기가 노무현 대통령 서거다. 당시 대다수가 친노가 폐족이 된다고 하길래, 그게 아니고 친노가 민주당을 통해 부활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블로그에서 많은 예측을 했는데, 잘못된 것도 제대로 된 것도 있다. 사회과학은 자연과학과 많이 다른데, 그 차이 중 하나가 사회과학은 과거에 일어난 일은 설명을 잘하는데 미래 예측력은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분석틀이 맞는지, 어떤 변수가 더 중요한지는 미래에 대한 예측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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