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기사: 20대 고소득층 자산이 30대 추월? '사실 반 거짓 반'.

 

블로그에 KBS 기사의 문제점을 지적한 후, 오마이뉴스 김시연 기자로 부터 연락이 왔고 (아마 박권일 선생의 페북 포스팅을 본듯), 2025년을 포함한 추가 분석을 제공했다. 아래 PDF가 제공한 분석 전문이다. 

report_kbs_verification_1.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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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기사를 쓰기 위해 KBS에 문의하는 도중 경향신문의  "20대 자산 격차 34배"라는 기사도 나왔다. KBS의 2025년 20대 자산이 단 13가구에 기반한 분석인데, 경향신문 2025년 분석은 단 7가구에 기반한 분석이다. 경향신문에서 2017년과 비교하는데 2017년 분석 대상인 20대 가구는 단 5가구다. 

 

KBS에서 20대 상위 20%의 자산이 30대를 추월했다고 보도했는데 이건 순전히 1 가구 때문이다. 2025년에 갑자기 (전체 가구 기반) 소득 상위 20%에 속한 20대 가구주 중 최대 자산 규모인 가구가 순전히 통계적 우연에 의해서 2024년 18억에서 2025년 33억으로 급등해서 생긴 현상이다. 이 1 가구만 제외하면 20대 상위 가구가 30대 상위 가구를 역전하는 현상은 사라진다. 

 

KBS는 의아하게도 전체 가구 기준 소득 상하위 20%를 비교했다. 하지만 20대 가구주의 자산불평등을 볼려면 20대 가구주 중에서 상하위 20%를 비교하는게 맞다. 아래 그래프는 그렇게 비교한 것으로, 순자산과 총자산 상위 10% 분위 대비 하위 10% 분위의 비율이다. 보다시피 순자산이 양인 가구만 놓고 볼 때 P90/P10는 2017년 대비 2025년에 줄어들었다. 일부에서는 순자산이 양(+)인 가구만 봐서 그렇다고 할텐데, 음(-)인 가구까지 포함하면 줄어드는 정도가 더 크다. 

 

 

위 그래프가 의미하는 바, 중상층과 하층의 격차라는 면에서 20대 자산 불평등은 줄어들었다. 늘어난게 아니고. 그래프가 위와 같이 그려지는 이유는 지난 10년간 20대 가구주  최하층의 자산이 중상층보다 더 빨리 늘었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2021년 이후에는 증가하는 경향이 보이지 않냐고 할텐데, 맞다. 몇 년간 증가했다. 그런데 그렇다면 2017년에서 2021년 사이 감소할 때는 왜 그렇게 조용히 있었나? 20대 순자산 지니계수를 음의 값까지 포함해서 계산하면 2017년 .632 대비 2025년 .669로 증가한다. 그런데 이 증가는 순전히 단 1가구 때문이다. 대략 500가구를 차지하는 20대 가구주 중 단 1 가구를 제외하면 지니계수는 2017년 .623 대비, 2025년 .630으로 거의 변화가 없다. 

 

그러니까 한국에서 20대 청년 가구주 중 상위 10%P에 속하는 중상층과 하위 10%P에 속하는 하층의 자산불평등은 줄어들었다. 늘어난건, 이것도 확실한 건 아니지만 상위 1~2%의 최상층과 중상층의 격차이다. 자산불평등이 늘었다는 비판은 중상층이 자기는 왜 최상층이 쉽게 되지 못하고, 하층과의 격차는 왜 줄어드냐는 불만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언론은 숫자를 이상하게 만들어서 20대 전체의 자산불평등이 늘었다고 보도한다. 앞의 포스팅에도 말했지만, 자산불평등의 측면에서도 한국의 언론은 중상층의 불만을 전체의 불만인 것으로 왜곡해서 포장하는 경향이 있다. 

 

 

 

경향신문에서는 30세 미만 가구주 순자산 상위 20%의 평균 총자산이 하위 20% 대비 33.9배로 2017년 대비 크게 증가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경향신문에서 쓴 순자산 상위 20%는 전체 가구 중 상위 20%다. 이에 속하는 20대 가구는 2017년에 5가구, 2025년에 7가구에 불과하다. 

 

경향신문처럼 이상하게 보지 않고, 30세 미만 가구주 내에서 상위 20%를 계산하고 이들과 하위 20%의 자산 비율을 보면, 아래 그래프와 같이 2017년 26.8배에서 2025년 16.1배로 자산 불평등이 상당히 줄어들었다. 늘어난게 아니고. 

 

그런데도 경향신문은 전체 가구주 대상 상위 20%에 속하는 극소수 30세 미만 가구주를 대상으로 배수를 구한다. 도대체 왜? 

 

경향방식으로 계산하면,  2021년에는 30세 미만 가구주 중 전체 상위 20%에 든 가구는 단 3가구고, 그 중 한 가구가 자산이 88억이다 (순전히 샘플링의 우연이다). 그래서 경향신문 방식으로 상하위 20%의 비율을 그리면 아래 붉은색 그래프와 같이 된다. 경향방식이면 2021년 74배까지 뛰었던 자산 격차를 단 1년 만에 2022년에 단 27배로 낮춘건가? 

 

 

 

종합적으로 KBS와 경향신문이 보도한 청년 가구주의 자산 불평등 폭증은 전체 가구의 소득과 자산 분위를 청년 가구주에 그대로 적용해서, 극히 적은 표본수로 만들어낸 우연의 수치이다. 대부분의 국가 통계청에서도 극소수의 표본에 기반한 통계 계산과 보도를 하지 않고, 접근 제한 자료를 검토할 때도 이 기준을 엄격히 적용한다. 한국은 원자료 공개 범위가 미국보다 좁다. 예를 들면 가계금융복지조사의 지역코드와 같이 당연히 제공해야할 자료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불만이 학자들에게 많다. 하지만 KBS와 경향신문의 이런 보도 방식은 국가데이터처에서 왜 원자료 공개를 꺼리는지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작은 그룹의 수치를 볼 수 있는 원자료를 제공하면 이런 식의 황당한 수치를 계산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그럼 왜 미국같은 나라는 세부 원자료를 공개할 수 있는가. 이건 법의 문제가 아니라 윤리의 문제, 사회적 압력의 문제이다. KBS와 경향신문 같은 보도를 했다가는 학자, 정부, 다른 원론으로부터 집중포화를 맞고 사회적 비난을 면치못할 것이다.

통계와 관련해 회자되는 말 중, Lies, damn lies, and statistics라는 말이 있다. 자극적 수치로 클릭수를 높이고 주목을 받으면 좋을지 모르겠지만, 사실과는 거리가 멀어도 많이 먼 보도관행이다. 

 

 

 

Ps. 오마이뉴스에서는 "사실 반 거짓 반"이라고 했지만, 이건 백퍼 거짓이다. 통계를 이용한 거짓은 항상 이런 식이다. 20대 가구주 상위 20%와 하위 20%의 격차는 벌어지지 않았고, 20대와 30대 가구주 자산 상층의 역전도 없다. 순전히 통계적 우연에 의해, 전체 가구주를 대상으로 5분위를 나눌 때, 상위에 속하는 소수의 20대 가구주 중 단 한 가구 때문에 특정 연도에 20대 평균 자산이 30대보다 많았던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은 실제 통계에 근거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Lies, damn lies, and statistics라고 하는거다. 아주 고약한 거짓말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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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복 (2026) "세대 간 소득 이동과 자산 재생산: 세대 간 사회 이동, 자산 재생산, 소득 이동성, 교차 경로, 행정자료, 수저계급론". 한국사회학 60(2): 1-32. (한국사회학회 회원은 요기서 전문 다운로드 가능.)

 

개천룡이 안난다는 세간의 인식이나 언론의 보도와 달리, 한국 사회에서 사회이동이 매우 활발하다는 주장은 사회학자들에 의해 꾸준히 제기된 바다. 이 블로그도 찾아보면 여럿 나온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분석은 대부분 교육이나 직업 차원이었다. 소득이나 자산을 보면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추정도 많았다. 중산층이 세습된다거나 자산이 세습된다는 주장들이다. 최근 KBS보도나 경향신문의 잘못된 보도도 그런 인식을 강화시킨다. 

 

그런데 한국사회학 최신호에 자녀의 청소년(14-18세) 시기 부모의 소득과 자산이 그 자녀들이 성년기(30-37세)가 되었을 때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지 국민건강보험공단 행정자료 원자료를 이용한 분석이 보고되었다. 이근복 박사의 논문인데, 1987-1992년 출생자 전체의 4.3% 정도를 표본추출한 근 32만명에 달하는 대규모 행정 데이터다. 이 논문에서 사용한 소득과 자산은 서베이 질문이 아니라 국세청에서 국민연금공단에 제공한 자료다. 그러니까 이보다 더 정확한 소득과 자산 데이터는 없다. 

 

이 연구에서 소득과 자산을 모두 균등화한 후 랭크 변수로 전환하고,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의 랭크-랭크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이 방법이 최근 세대 간 사회이동을 연구하는 국제적인 표준 방법이다. 상관관계가 낮을수록 사회이동이 활발하고, 상관관계가 높을수록 소득과 자산이 세습된다는 의미다. 

 

논문 전체의 핵심 결과를 요약하는  24쪽의 기술을 그대로 옮기면 아래와 같다. 

 

"소득의 세대 간 분위 회귀계수는 약 0.20 이다. 이는 덴마크(약 0.20), 노르웨이(약 0.17) 등 북유럽 국가들과 비슷하며, 미국 (약 0.34) 보다는 낮다 (Chetty et al., 2014; Helsø, 2021). 비록 분석 대상 코호트의 연령이 30 대 초반으로 생애 소득이 완전히 실현되지 않은 성인기 초반이라는 한계가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수치는 한국의 소득을 통한 세대 간 이동 경로가 여전히 열려 있음을 시사한다. 

 

자산의 세대 간 이전 정도 역시 미국과 대만 등에서 보고된 자산 이동성 추정치 보다는 다소 낮은 수준이다 (Chu et al., 2024; Pfeffer and Killewald, 2018). 국제비교를 통해 볼 때 한국의 자산의 세대간 이동 경로 역시 어느 정도 열려 있는 것으 로 보인다."

 

이 연구에서 본 자산 추정치는 0.338인데 미국이나 노르웨이 보다 낮고, 스웨덴과 유사하며 덴마크보다 다소 높은 수준이다. 일부에서는 자산은 더 세습되는거니까 문제가 심각한거 아니냐고 할텐데, 거의 모든 국가에서 자산의 랭크-랭크 상관관계가 소득보다 높다. 어느 국가나 자산 불평등이 소득 불평등 보다 높고, 어느 국가나 자산의 세습이 소득의 세급 보다 강하다. 

 

종합하자면, 한국의 세대 간 사회이동은 소득과 자산의 사회이동 측면에서 덴마크, 노르웨이 등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들 국가가 지금까지 보고된 국제 비교연구에서 사회이동이 가장 활발하다는 국가들이다.

 

90년대 출생자는 뭔가 다르다고 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이 연구 결과를 보면 그렇지 않다. 논문에서는 출생 코호트별로도 랭크-랭크 상관을 추정했는데, 모든 코호트가 거의 같다. 

 

그러니까 한국 1987-1992년 출생 코호트의 소득, 자산 세대 간 이동은 전세계 선진국 중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Ps. 그럼 도대체 왜 한국은 이렇게 잘못된 인식이 퍼지고 언론은 그 인식을 재생산하나? 제가 주장하는 바는 상위계층의 계급투쟁이다. 21세기들어 대학 교육 기회, 입사 기회 등 많은 기회가 공정해지면서 경쟁이 심화되고 상위계층의 계층 재생산이 어려워졌다. 기회가 공정해진다는건, 모든 사람에게 기회가 돌아간다는 의미이고, 그렇게 되면 경쟁이 심화된다. 사회이동이 활발해지면 상향이동 뿐만 아니라 하향이동도 당연히 생긴다. 상위계층의 재생산에 문제가 생기게끔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상위계층 입장에서는 계층 재생산을 위해서 어떻게 해서든 변화를 도모해야 하는데, 변화를 위해서는 현 체제로는 안된다는 불만과 불안이 필요하다. 판이 흔들리면 기회가 열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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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 불평등은 소득 불평등과 그 패턴이 상당히 다르다. 그 때문에 측정 방법도 달라야 한다. 

 

한국에서 두 불평등을 동일한 방식으로 측정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건 한국의 자산 불평등이 상대적으로 작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불평등을 동일한 방식으로 측정해도 되는 것처럼 생각한다. 

 

여러 번 말했지만, 한국의 자산불평등이 상대적으로 작은게 반드시 좋은 현상은 아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중상, 중산층의 자산은 집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런데 한국은 전세, 그리고 월세를 살아도 보증금을 꽤 내야하는 제도 때문에 무주택자도 자산이 있다. 외국이었으면 자산이 제로에 가까웠을 계층이 몇 천 만원의 자산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산 하층 20%와 자산 상층 20%를 비교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국가에서 자산 하위 20%는 자산이 없거나, 마이너스다. 불평등은 네거티브 숫자가 들어가면 비교가 어려워진다. 애초에 불평등 지수가 소득을 중심으로 개발되었고, 마이너스 소득은 잘 없기 때문이다 (자영업자에게 없는건 아니다). 하지만 자산은 가진 돈보다 부채가 많은 경우가 상당히 있고, 전체 시민 중 순자산이 마이너스인 비중이 무시할 수 없게 크다. 

 

그래서 자산불평등은 "하위 20% vs 상위 20%"가 아니라 "하위 50% vs 상위 10%" 이런 식으로 비교한다. 전자의 비교가 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KBS 기사에서 청년 자산 하위 20%와 상위 20%를 비교하지 않은 이유도 아마 자산 하위 20%의 평균 자산이 마이너스였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한국에서 자산 하층의 자산이 마이너스가 되는 대표적인 집단이 청년이다. 당연하지 않은가. 청년일 때 교육 대출도 받고, 전세 대출도 받고, 사업 대출도 받으니까. 사회 시스템이 잘되어있어서 청년들에게 대출을 많이 해주고 미래를 도모할 수 있게 해주면 청년 중 자산 하층은 당연히 마이너스가 된다. 이 경우 마이너스 자산이 나쁜게 아니라 좋은 거다. 마이너스 자산 없애겠다고 청년 대출 규제하면 무슨 일이 벌어지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청년 자산 불평등은 매우 조심해서 다루어야 하는 주제다. 다각적으로 분석하지 않으면 헛소리하기 딱 좋은 주제다. 

 

 

Ps. 코로나 이후 증가한 20대 청년 독립 가구주는 이 전 대비 상대적으로 고학력이면서 저소득이라는 특징이 있다. 코로나 이후 중상층 이상 집안 자녀들의 독립이 늘었다는 거다. 대학, 대학원에 재학하며 경제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 20대 독립 가구주 말이다. 이런 인구학적 변화를 통제하지 않으면 소득, 자산 불평등 관련해서 20대 가구주 가구의 특성에 대한 오판 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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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기사: 20대 가구주 자산불평등이 폭증했다는 기사. 

 

2017-2025년 가금복 원자료를 분석했더니 소득 상하위 20%의 자산 격차가 무려 19배라는 기사. 꽤 화제가 되었던 기사다. 

 

이 기사를 처음보자마자 들었던 생각이 그럴 수가 없다는 것이다. 자산은 소득보다 연간 변화 폭이 작다. 2020년에는 6배이던 격차가 5년 만에 19배로 증가한다고? 이런 일은 세상에 일어날 수가 없다. 한 해만 그렇게 나왔으면 그냥 데이터가 튀었나 보다라고 생각할텐데, 그래프를 보니 코로나 이후 지속적인 상승세다. 뭔가 이상했다. 

 

그래서 가금복 원자료를 분석해봤다. 순자산액을 로그 전환 후 분산을 구하는 표준적인 방법을 따랐다. 그랬더니 <총자산-총부채>으로 계산한 순자산의 불평등이 20대 가구주 내에서 2017-2024년 사이에 줄어든 것으로 나타난다 (제가 분석한 데이터는 2025년이 포함이 안되어 있다). 적어도 순자산이 플러스인 집단에서는 KBS 기사와 약간 차이 나는 정도가 아니라 방향이 완전 정반대다. 20대 가구주의 자산불평등이 줄어든 정도도 아주 작지도 않다. 

 

그럼 도대체 KBS 분석 결과는 어떻게 나온 것인가? 

 

여기에 조작이라도 비난해도 과하지 않을 몇 가지 통계적 요술을 부렸다. 우선, 기사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19배는 자산 하위 20%와 자산 상위 20%의 격차가 아니다. 소득 하위 20%와 소득 상위 20%의 자산 격차다. 자산 격차를 알고 싶다면서 왜 분위는 소득으로 구하는지 의문이 든다.

 

20대 내에서 자산 하위 20%와 자산 상위 20%의 격차 변화(이게 자산불평등 변화를 보는 가장 단순하지만 직관적인 통계다)를 통시적으로 보면, 자산 격차의 급격한 상승이라는 KBS 기사의 수치가 안나온다. 

 

그래서 KBS 숫자를 리버스 엔지니어링하기 위해서 20대 가구주 가구의 소득 하위 20%와 상위 20%를 나눈 후 이들의 자산 격차 변화를 봤다. 그랬더니 증가하기는 하는데 KBS 기사에서 말하는 격차만큼 증가하지는 않는다. 

 

도대체 20대 가구주 가구 소득 상하위 20%를 어떻게 나눈건가? 20대 내부의 소득 분위를 나누는건 어려운건 아니지만, 통계패키지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살펴본게 국가데이터처에서 제공하는 전체 가구의 상하위 20% 분위를 사용했다. 그랬더니 KBS에서 제시한 2024년 수치와 정확히 일치한다. 

 

그런데 전체 가구를 대상으로 소득 상하위 20%를 나누면 20대 가구주는 소득 상위 20%에 속하는 가구의 수가 2024년에 15명에 불과하다. 어떤 해는 11명이다. 20대의 소득이 30-50대 보다 낮으니 당연한거다. 이 15명을 대상으로 계산해서 이렇게 강한 주장의 기사를 쓴다. 이게 통계 조작을 통한 선동이 아니면 무엇인가. 

 

기사에서는 20대 가구주는 500여명에 불과해서 숫자를 조심해서 해석해야 한다고 써놨던데, 이건 자신들이 한 일을 알기에 그랬겠지. 500명은 아주 큰 표본 크기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작은 것도 아니다. 500명 전체를 대상으로 자산불평등을 분석하면 숫자가 튀지 않는다. 튀는건 이 기사에서 쓴 이상한 방식으로 계산했을 때 뿐이다.    

 

도대체 왜 이러는건지. 

 

Ps. 2010년대 이후 20대 가구주의 특징 변화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지만, 이건 논문으로 써야하니 나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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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번 지방선거 결과로 두 가지 점이 좀 더 명확해졌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서울 거주 청년의 정치 성향이다. 작년 7월초 시사In 기사에서 "서울 거주 경제적 상층일수록 극우 청년일 확률 높다"고 주장했었다. 일부에서는 그게 아니고 영남의 극우 청년 확률이 더 높다고 반박했다. 그 반박을 보고 의아했던 것은 제대로 된 데이터 분석없이 주장만 있어서였다. 그 때 적극적으로 재반박하지 않았던 이유가 이 번 지방 선거를 보면 누가 맞았는지 드러날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도 진짜 서울 거주 청년 남성의 보수성이 더 높은지 의심이 있었고. 

 

이 번 지방선거 출구 조사 결과는 서울 거주 청년 남성의 보수 지지가 영남 청년 대비 절대적으로도, 해당 지역의 전반적 경향  대비 상대적으로도 더 높다는 것이다. 장년층 대비 차이는 지역 고정 효과를 통제하는 의미가 있다.  일부에서는 조사의 한계를 말할 것이다. 출구 조사는 차이의 정확성 면에서 한계가 있다. 하지만, 경향성을 보는데는 문제가  없다. 또한 작년 전체 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서베이 조사 결과와 올 해 선거 결과의 경향이 일치한다. 이 걸 부인하려면 단순히 자료 신뢰에 대한 몇 가지 의심을 넘어서는 제대로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이 번 지방선거로 드러난 또 다른 점은 온라인 커뮤니티의 효과다. 청년 보수(극우)화의 근원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찾으면 서울과 지방의 차이를 설명하기 어렵다. 일베 등 온라인이 청년 보수(극우)화의 근원이면 청년 보수성의 지역 격차와 온라인 극우 커뮤니티 이용률이 확률적으로 정비례 해야 한다. 아니면 온라인은 지역 커뮤니티의 바운더리를 넘어서기 때문에 전국적이야 한다. 이 번 지방선거 결과는 이 가설이 지닌 한계를 드러낸다. 계층론에 기반해 극우를 연구하는 학자 중에 Eric Protzer라는 분이 있다. 이 분이 미국과 유럽의 극우를 연구하면서 온라인 커뮤니티의 지역 격차를 이미 연구한 바 있다. 결론은 온라인은 극우를 확대하는 효과는 있지만, 근원이 될 수 없다는거다. 

 

 

 

두 가지 예측은 한국의 미래에 대한 것이다. 얼마 전 서울대 대학신문에서 극우가 문화현상인지를 다루면서 질문지를 보내왔다. 기사화되지는 않았지만, 저의 대답은 극우가 문화가 되어서 문제라는 것이었다. 아래는 질문과 답변이다. 

 

질문: 데이터에서 경제적 상층 청년 남성일수록 극우 성향일 확률이 높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 청년들이 일베식 혐오 코드를 래퍼의 가사나 밈으로 소비할 때, 그것이 정치적 신념의 표현인지 아니면 정치적 맥락이 탈각된 문화적 소비인지 데이터로 구분할 수 있을까요? 혹은 그 경계 자체가 흐릿하다고 보시나요?

답변: 제가 아는 한 그렇게 구분할 수 있는 데이터는 없습니다. 그리고 문화와 정치를 분명하게 구분되는 두 영역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아마도 일베식 혐오 코드가 문화적 성향이면, 정치적 의도가 없으므로 무해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문화란 사회학적 정의에 따르면 선택의 기본값(default)으로 가치판단 없이 안정적, 불안정적 시기 모두에 기본적으로 따르는 좌표가 되는 행동 규범입니다. 일베식 혐오 코드가 문화가 되면 일베식 혐오 코드가 행동과 판단 규범의 기본값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일시적 정치적 선택보다 훨씬 더 큰 문제입니다. 현재의 일베적 혐오 코드가 그렇게 진화했기에 문제입니다. 개인의 문화적 성향은 한 번 형성되면 잘 변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회학 연구들이 문화의 변화는 새로운 세대의 출현 (cohort replacement)을 통해 점진적으로 바뀌지 (=구세대의 사멸과 신세대의 등장), 코호트 내의 연령에 따른 변화 효과는 미미하다고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국의 청년 세대도 이러한 일반적 패턴을 따를 가능성이 큽니다. 상당히 광범위한 청년 코호트가 일베적 혐오 코드를 디폴트로 장착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 사회가 앞으로 한 세대 내에 미국이 트럼프 시대에 겪는 것과 유사한 정치적 혼란을 겪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위 답변에는 두 가지 예측이 있다. 하나는 청년 남성의 보수적 성향이 이들이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될거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래서 결국 한국 사회가 정치적으로 상당한 백래쉬를 겪을 것이라는 거다. 

 

얼마 전 이 문제로 한 교수님과 내기도 했다. 첫번째 예측, 그러니까 청년 남성의 보수성이 지속될 것이라는 예측은 빠르면 5년, 늦어도 10년 이내에 결과가 나온다. 여러 사회학적 연구는 문화의 변동은 세대 교체지, 세대 내 연령효과는 작다고 보고한다. 이 일반적 분석이 한국에도 적용되면 한국 청년 남성이 어떤 정치적 성향을 미래에 보일지 추정할 수 있다. 지난 대선 직후에도 청년 남성이 극우가 아닐 것으로 바뀔 것이라는 주장에 반박하며 동일한 얘기를 했었다. 

 

진짜 문제는 두 번째 예측이다. 저는 한국 사회가 미래에 적어도 한 번은 상당히 큰 정치적 보수(극우) 백래쉬를 겪을 것으로 본다. 언제까지나 보수가 잘못할리도 없고, 언제까지나 민주당이 잘 할 일도 없다. 보수가 시대를 이끄는 세력이 되었을 때, 어떤 보수 세력이 이끄냐가 중요한데, 한국의 청년층은 물론, 장년층 보수의 성향을 분석해 봐도 미래에 보수 정권을 이끄는 주요 세력이 온건 보수가 되기 보다는 상당히 극우 성향을 띄는 강경 보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짧으면 10년 이내에 늦어도 한 세대 이내에 이런 상황이 도래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피할 수 없다면, 어떻게 가능한 짧게 내지는 강도를 낮추면서 지나갈 수 있을까가 중요하다. 이건 다음에. 

 

 

 

Ps. 예전에도 몇 번 말했지만, 이 블로그 시작의 계기가 노무현 대통령 서거다. 당시 대다수가 친노가 폐족이 된다고 하길래, 그게 아니고 친노가 민주당을 통해 부활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블로그에서 많은 예측을 했는데, 잘못된 것도 제대로 된 것도 있다. 사회과학은 자연과학과 많이 다른데, 그 차이 중 하나가 사회과학은 과거에 일어난 일은 설명을 잘하는데 미래 예측력은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분석틀이 맞는지, 어떤 변수가 더 중요한지는 미래에 대한 예측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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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github.com/kchyhj/sociology-wiki-template

 

GitHub - kchyhj/sociology-wiki-template: Accuracy-first research wiki template for sociologists using Claude Code

Accuracy-first research wiki template for sociologists using Claude Code - kchyhj/sociology-wiki-template

github.com

 

사회(과)학 연구자의 문헌 정리에 특화된 LLM-Wiki 템플릿입니다. 

 

이공계 분들에 비해서 LLM-Wiki가 아직 많이 퍼져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위키 기능은 다른 무엇보다도 사회학 연구자들에게 필요하고,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 위키의 최고 원칙은 "정확성 >>> 효율성"이다.

 

위키를 구축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게, AI는 어떻게해서든지 환각(hallucinations)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두 가지 이유가 추정되는데 하나는 LLM은 기본적으로 랭귀지 모델이고, 언어의 확률만 높으면 어떤 말이든 만들어낸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비용 효율성(= 작은 토큰 사용량)을 높이기 위해서 어떻게 해서든지 short cut을 발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숏컷은 거의 반드시 환각으로 이어진다. 아무 말이나 그럴듯한 말을 채워넣는다. 아무리 명시적으로 그러지말라고 지시해도 소용없다. 죽어라 말 안듣는 반항아와 같다. 예를 들어, 논문이 길면, pdf를 md로 변환해도 다 안읽고 일부만 읽은 다음에 엉터리 용어나 숫자로 내용을 채운다. 한꺼번에 많은 파일을 처리하게 시키면 이 경향이 커진다. PDF 소스를 제공하는게 환각 방지의 전부가 아니다. 끝까지 밀어붙였더니 100% 환각 방지 방법은 연구자가 직접 정리하는 수 밖에 없다고 니가 직접할래라고 묻더라. 

 

이 위키 템플릿의 디자인은 환각을 가능한 최대로 방지하는데 가장 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설사 느리게 구축되더라도 정확하게 구축하는게 목표다. 여러 시행착오 끝에 이렇게 디자인한 것이다. 

 

기타 많이 회자되는 위키와 또 다른 점은 다섯 개 층위로 문헌 정리가 된다는 것이다. 

(1) 각 논문 정리 (references)

(2) 각 논문 정리를 연결해서 항목별로 정리. 항목은 기본적으로 ASA의 섹션을 따르지만 임의로 제가 쓰는 7개 주제에서 시작한다. 일부는 자동으로 되지만, 상당 부분은 개인 연구자가 필요에 따라 세부 항목을 만들어야 한다 (general)

(3) 연구자 자신이 논문을 읽고 느낀점과 종합적 사고를 간단히 적으면, 그걸 지지하거나 반박하는 문헌을 정리하는 문헌 정리 (claim)

(4) 연구자가 진행하는 프로젝트별로 정리하는 층위. 예를 들어 "조선시대 양반" 프로젝트가 있으면 이 프로젝트를 별도로 정리한다. 프로젝트를 "인제스트"하면 이 층위가 자동 생성된다. (projects) 

(5) 마지막으로 인덱스. 주제별로, 저자별로, 각 색인별로 정리한다. 위의 (1) 각 논문에서 정리한 모든 저자들의 논문과 도서가 알파벳 순으로 리스트되어 있다. 인덱스는 당연히 자동 생선된다. (index)

 

영어만, 한국어만, 한국어+영어, 세 가지 옵션 중 선택해서 구축할 수 있게 디자인했다. 제 개인 위키는 모든 페이지가 한국어+영어로 구축되어 있다. 

 

이게 이 템플릿의 특징이고, 보다 구체적인 내용은 readme, quickstart, philosophy에 적혀있다.

 

그런데 이렇게 해도 환각을 100%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디엔가 구멍이 있고, 그 구멍을 AI는 귀신같이 찾아서 엉터리 내용을 넣는다. 궁극적으로 정확성을 담보하는 것은 개인 연구자의 몫이다. 

 

 

 

그럼 이게 왜 사회(과)학자들에게 유용한가 의문일 수 있는데, 저는 기억력이 나빠서 대학원 시절부터 논문을 읽으면 1-2페이지로 정리해서 ASCII 텍스트 파일로 저장하고 (위의 references 층위), 논문을 읽을 때 마다 관련된 추가 연구 질문은 무엇인지 (위의 claim 층위) 정리했었다. 이게 종합 시험 준비와 박사 논문 작성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이 정리 파일이 너무 많아져서 오히려 보지 않게 되어 버렸다. 정리된 노트 파일과 이걸 프린트해서 바인딩한게 너무 많아서, 어디에 뭐가 있는지 알 수도 없고, 그거 정리하는 것도 큰 작업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예전 문헌 정리해둔 것을 안보게 되더라. 이런걸 잘 정리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저는 아니었다. 

 

개인의 리서치 위키를 구축하면 이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각 논문을 정리할 수 있고, 개인적 노트를 쓰면서 정리한 논문을 연계시킬 수 있고, AI가 알아서 각 개념과 논쟁의 역사를 정리해준다. General에서 어떻게 정리하는게 좋은지는 각자 정해서 AI에게 요청하면 된다. 관련된 문헌을 정리하라고 요청하면 예전문서부터 최근 문서까지 잘 링크해서 정리해준다. AI가 "위키 + RAG (이것도 템플릿에서 자동으로 구축하도록 되어 있는데, RAG가 뭔지 잘 모르면 찾아보시길)" 두 축으로 문헌을 찾고 정리하니까, 문헌 정리가 훨씬 더 용이해지더라. AI가 인용하거나 설명하는데 잘 기억이 안나는 논문은 바로 위키에서 찾아볼 수 있고. 

 

최근 논문 작업을 하면서 지금까지 구축한 것을 사용해봤는데 상당히 유용하더라. 

 

템플릿을 제공하지만, 제 경험에 의하면, 남이 만들어놓은 템플릿에 기반해서 자신의 연구에 사용할 만큼 높은 수준으로 위키를 구축할 수는 없다. 결국 스스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서 위키  구축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 많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템플릿이 초심자가 시작할 때 마주하는 진입 장벽을 아주 약간 낮추고 미약하나마 시간과 비용을 절약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개선 사항이나 기타 코멘트가 있으면 댓글로 남겨주시길. 

 

 

 

Ps. AI가 헤매는 또 다른 분야가 index 정리다. 저자를 알파벳 순으로 정렬하고 관련 논문을 모두 링크하게 되어 있는데, 알파벳이 뒤섞이거나, 관련 논문을 누락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가끔 살펴봐서 오류를 지적하고 업데해야 한다. 논문이 많아지면, 저자나 논문을 혼돈하는 경우도 있더라. 글 쓸 때 도움을 받더라도 최종 확인은 반드시 본인이 직접 해야. 

 

Pps. 그래서 LLM-Wiki는 욕심내지 말고 논문 하나하나 구축하는게 좋다. PDF 왕창 던져주고 AI가 알아서 해주는 시스템으로 구축하면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작게 시작해서 연구자 자신의 논문 읽는 양이 늘면서 Wiki도 풍부해지는 그런 시스템이 좋지 않나 싶다. 지금 당장 쓸만한 위키로 구축할려면, 위키 구축 초기에 투자 비용과 시간을 상당히 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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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i & Kim (2026) SSH.

 

조선시대 양반은 고정된 세습 신분이 아니고, 몇 대에 걸쳐서 과거에 합격하지 못하면 양반신분을 잃는다. 기득권을 유지할려면 집안에서 과거 합격자가 나와야 한다. 현대 사회에서 학력을 통해 계급이 재생산되는 경로가 막강한데, 조선시대도 이미 그런 메커니즘이었다. 따라서 기득권은 여러 수단을 동원해 자녀가 과거에 합격할 수 있도록 지원할 유인이 있다. 

 

현대의 대학입시와 같다고 얘기할수는 없지만 조선시대 과거제에도 정시와 수시 비스무리한게 있었다. 3년마다 한 번씩 33명을 뽑는 식년시라고 불렸던 정기시험이 있고, 여러가지 명칭으로 불렸지만 필요에 따라 비정기적으로 수시로 뽑았던 별시가 있었다. 

 

과거 시행 횟수는 별시(조선시대 전체 573회)가 정시(163회)보다 훨씬 많았다. 전체 합격자 중에 정시 출신이 5,865명이고, 별시가 8,393명이었다. 정시와 별시는 시험 내용도 달랐는데 (사실은 시대가 바뀌면서 달라졌는데), 정시는 주로 사서삼경 암기 위주였고 (이걸 강경이라고 함), 별시는 여러 주제에 대한 논술 위주(이걸 제술이라 함)였다. 정시는 시험 시기가 정해져 있었지만, 별시는 수시로 봤기 때문에 지방에 있으면 시험 보러 오기도 매우 불편했다. 별시의 시험 문제는 시의성이 있는 경우가 많아서, 친인척이 조정에 가까우면 분위기를 알기 때문에 유리할 수 있었다. 당시 중국에서 유행하던 책에서 시험이 나오는 경우도 있어서, 이런 도서에 접근이 가능한 사람들에게 유리했다. 정시보다는 별시가 더 변동성이 높고, 기득권이 뭔가를 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교육사회학의 적응과 배제의 법칙에 따르면 (이 전 포스팅 요기, 요기), 변동성에 기득권이 더 잘 적응하기 때문에, 정시보다 별시에서 기득권이 더 유리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이 번 연구는 이걸 통계적으로 검증한 거다. 현재의 대학 입시에서 논술 위주의 시험이 상위 계층에서 가장 유리했는데, 조선시대 과거제에서도 정시보다 별시가 기득권에게 유리한지. 

 

조선시대는 전체 과거합격자의 기록을 방목이라는 형태로 남겼다. 그 중에서도 문과 시험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과거다. 이 기록이 문과방목이고, 모두 디지털화되어 있다. 이 기록에는 시험친 날짜, 등수, 출신지역, 부친, 조부, 외조부, 장인의 이름이 있다. 이 이름을 가지고 조상이 과거시험 합격자인지 추적할 수 있고, 조선왕조실록과 링크해서 이들의 지위도 알 수 있다. 

 

별시가 기득권에게 유리한지 아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합격률이다. 그걸 알려면 누가 시험을 봤는지 알아야 하는데, 아쉽게도 그 정보는 없다. 방목은 합격자 정보만 있다. 그래서 고안한 아이디어가 일종의 DID를 하는 거다. 시기별 합격자 중에서 기득권의 정시/별시 비율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보는 거다. 출신 배경에 따른 정시와 별시 합격자의 비율 차이(1st difference)가 시기별로 바뀌는지(2nd difference)를 살펴봤다. 그렇다고 이 연구가 DID의 인과성을 의미하는 건 전혀 아니고, 기술통계의 측면에서 그렇게 비교했다는 거다. 

 

일반적으로 17세기를 양반, 사대부의 전성시대라고 한다. 그리고 19세기가 되면 세도가 정치가 시작된다. 기득권의 변화에 따라 별시를 이용하여 이득을 취하는 집단이 달라질거라고 가정하면, 17세기에는 양반(부, 조부, 외조부..가 과거에 합격한 집안) 중에서 별시 합격자의 비중이 높아질 거고, 19세기가 되면 세도가 집안의 별시 합격자 비중이 높아질 거라는 예측이다. 

 

아래 그림은 정시와 별시 합격자의 조상(부, 조부, 외조부, 형제 등) 중에서 과거 합격자 수의 차이다. + 는 별시 합격자의 조상 중 과거합격자가 정시 합격자보다 많다는 의미다. 보다시피 조선 초기에는 두 시험 간에 차이가 없었는데, 점점 그 차이가 벌어져, 양반의 전성기라는 17세기에 정점을 찍고, 양반이 쇠퇴하는 조선 후기로 가면 별시와 정시 합격자의 조상 중 합격자의 차이가 사라진다. 

 

그럼 세도가는? 세도가를 어떻게 정의할지는 논란이 있지만, 이 연구에서는 선조 이후 중전과 대비를 배출한 6개 집안으로 한정했다 (안동 김, 남양 홍, 여흥 민, 경주 김, 반남 박, 풍양 조). 이걸 이러저리 달리 규정해도 결과의 차이는 없다. 아래에서 보다시피 조선 중기까지는 세도가 집안 과거 합격자의 정시/별시 차이가 없었는데, 19세기에 갑자기 세도가 출신의 별시 비중이 높아진다. 양반과 세도가 집안이 그들의 부침에 따라 별시 합격자 비중이 달라졌다. 

한 가지 추가로 검증한 건, 과거 합격자의 출신 지역이다. 방목에는 어느 지방 출신인지 정보가 있다. 그걸 이용해서 서울로부터의 유클리안 거리를 계산하고, 정시와 별시 합격자의 차이를 봤다. 그랬더니, 아래 보다시피 시간이 지날수록 정시 합격자와 별시 합격자의 서울로부터의 거리가 달라졌다. 서울에서 먼 지방 거주자는 정시를 통해 과거에 합격하고, 서울에서 가까운 거리에 사는 사람일수록 수시에 합격하는 경향이 커졌다. 지방 출신자들이 변동성이 낮은 정시에  점점 적응해서 정시 합격 비중이 높아졌는데, 별시 합격 비중은 오히려 낮아진 것이다. 

 

결론적으로, 기득권은 과거제에서도 제도 해킹을 했다. 시험 제도가 자주 바뀌고 유동성이 클수록, 입시에서의 적응의 법칙이 작동한다. 이 결과는 현대 한국 입시제도에서 논술고시가 상위계층이 훨씬 유리했던 현상과 일치한다. 

 

얼마 전 교육부장관이 AI에 맞춰서 입시제도를 암기 위주, 오지선다가 아니라 논술형으로 바꾸는걸 말했나 보다. 그런 변화가 어떤 계층이 유리할지는 너무 명확하다. 한국의 현재 입시제도, 조선시대 과거제, 미국의 입시제도, 대만의 입시제도 등등 모든 교육 사회학 연구가 매우 일관되게, 제도의 빈번한 변화와 논술위주는 상위계층, 기득권에게 어드밴티지를 주는 효과가 있다는걸 보여준다. 어떤 제도를 만들어도 상위계층은 하위계층보다 교육 성취가 높은 경향을 가지지만, 제도가 빈번하게 바뀌고, 제도에 주관적 평가의 여지가 높아질 때, 상위계층의 이점은 더 커진다. 

 

 

 

Ps. 17세기를 양반의 전성시대라고 하는 것에 대해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과거 합격자 중 양반출신과 세도가 출신 중 당상관에 오른 비율을 권력의 proxy로 삼아서, 이 비율과  20년 후 양반과 세도가 출신의 정시/별시 합격에 끼치는 영향을 봤더니, 정시보다는 별시에 끼치는 영향이 훨씬 컸다. 조상 중에서 당상관에 오른 비율이 높아지면, 자손이 정시보다는 별시를 통해 과거를 합격하는 경향이 커진다는 거다. 

 

Pps. 문과방목을 이용한 선행 통계적 연구로는 이상국,박종희 교수의 연구와 크리스토퍼 백의 연구 등이 있다. 이 연구들은 주로 과거 합격 후 관직 진출에서 집안 배경의 효과를 본 것이다. 우리 연구는 과거를 정시와 별시로 구분하여, 과거 합격의 계층적 특성을 본 첫 양적연구가 아닐까 싶다. 

 

Ppps. 지금까지 여러 공동 논문 작업을 했지만, 이 번이 사회학 전공이 아닌 분과 처음으로 한 작업이다. 역사학에 대한 지식은 모두 공동저자인 홍콩침례대 최동혁 박사의 공헌이다. 정시와 별시를 구분해서 보는 아이디어의 단초도 최동혁 박사 덕분에 가능했다. 융합이라는 게 쉽지는 않지만, 뭔가 새로운 얘기를 할 수 있는 것 같기는 하다. 

 

Pppps. 논문은 학교와 엘스비어의 계약 덕분에 무료 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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