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라는 개념이 큰 의미가 없다니까, 집단 개념의 구성적 측면을 얘기하는 분이 있는데, 이 쯤에서 순수 아카데믹한 이슈지만 집단 구분의 구성적 측면(=socially constructed)을 어디까지 논의할 수 있는지 소개하는 것도 괜찮을 듯. (이 기회만을 기다렸...)

 

Kim, Kim, and Ban (2020). Do you know what you do for a living? RSSM

 

대부분의 사람들이 직업이 매우 명확한 개념이라고 생각할거다. 자신의 직업이 무엇인지도 잘 알고.

 

모든 센서스와 사회조사에서 직업을 물어본다. 그런데 많은 비용을 들이는 제대로된 조사에서 직업을 물어보고 코딩하는 방식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 직업이 무엇인지 묻고 타이틀을 그대로 적는게 아니다. 국제 표준으로 응답자의 직업을 알기 위해서 질문을 적어도 2개 한다. (1) 직업이 무엇인지 묻고 - 여기에 더해서 한국은 지위(rank)도 묻는다, (2) 주로 하는 일을 간단히 기술하라고 한다. 그렇게 주관식으로 기술된 내용을 전문 직업 코더가 읽고서 직업 코드를 부여한다. 

 

하는 일의 내용에 대한 주관식 질문 --> 전문 코더가 하는 일의 내용을 읽고 직업 코드 부여. 

 

이렇게 하는 이유는 직업 분류가 의외로 매우 복잡하기 때문이다. 각 국가마다 직업분류표가 다르다. International Standard Classification of Occupations (ISCO)라고 ILO에서 만든 국제표준직업분류가 있는데, 한국은 KSCO라는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분류법을 사용한다. 미국 분류법은 또 다르다. 

 

이 표준 직업분류에 들어가는 직업의 종류는 대분류로 10개, 세분류는 52개, 세세분류는 436개, 세세세분류는 수천개에 이른다. 직업분류표가 수백페이지다. 수천, 수백개의 직업 중에서 어떤 직업에 자신이 속하는지 응답자도 정확히 모르는 경우가 매우 많다. 

 

예전에 미 텍사스주에서 하는 일의 타이틀을 조사한 적이 있는데, 무려 50만개의 서로 다른 job title이 모였다. 이렇게 50만개의 서로 다른 타이틀을 수천, 수백, 수십개로 묶어 놓은게 직업이다. 직업분류는 의외로 매우 작의적이고, 직업의 구분은 의외로 매우 구성적이다. 

 

예를 들어 대학의 "부학장"을 생각해보자. 이 직업 타이틀은 "관리자"에 들어가야 하나? 아니면 "전문가"에 들어가야 하나? 관리자냐 전문가냐는 수천, 수백개의 복잡한 분류의 문제가 아니다. 가장 단순한 직업분류인 10개 대분류에서 서로 다른 항목이다. 이걸 결정하는건 부학장의 업무 중 얼마나 많은 부분이 타인을 관리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KSCO기준은 80% 이상의 업무가 관리여야 한다. 이 원칙에 따르면 어떤 부학장은 관리자고, 어떤 부학장은 전문가로 분류될 수 있다. 같은 타이틀의 부학장이라도 업무 분장에 따라 직업 대분류가 바뀌어야 한다. 직업은 원칙적으로 mutually exclusive해서 같은 일이 동시에 2개 이상의 직업이 될 수 없지만,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2개 이상의 직업에서 하는 일을 하나의 일자리에서 동시에 수행한다. 

 

직업분류의 원칙에 대한 기술을 실제로 읽어보면 더 헷갈린다. 독일 직업분류의 원칙으로 Geis rule이라는게 있다. 한 사람의 일은 한가지 직업이라기 보다는 여러가지 직업에서 하는 일의 믹스인 경우에 많은데, 이 때 여러가지 일 중에서 가장 낮은 직업 카테고리로 분류될 일로 직업을 정하는게 원칙이다. 이 경우 대기업 전자회사 과장은 관리자도 전문가도 아닌, "준전문가" 내지는 "사무원"으로 분류될 수 있다. 중소기업 사무보조원과 대기업 과장이 같은 직업으로 분류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

 

위에서 예로 든 80% 관리 업무 기준 때문에 한국 공식 직업 통계에서 관리자의 비율은 1~2% 밖에 안된다. 다른 국가는 10%에 가까운 비중이 관리자인데 한국은 관리자 비율이 매우 작다. 한국의 직업 고도화가 비슷한 수준의 타국가 대비 유난히 낮아서가 아니라 직업분류의 원칙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직업 10개 대분류를 사용해도 국가 간 비교가 쉽지 않다.  

 

어느게 맞는 분류인지 며느리도 모른다. 소득은 주로 정확한 액수가 있고 서베이가 얼마나 이를 잘 측정하는지 알아보는 "측정오차"의 문제지만, 직업은 코더들의 의견이 얼마나 일치하는지 알아보는 "합의"의 문제다. 어떤 분류가 다른 분류보다 더 맞다고 할 수 없다. 즉, 직업은 그 개념이 본질적으로 매우 구성적이다. 

 

그래서 위에 링크된 논문은 서로 다른 직업코더가 동일한 직업에 대한 응답을 보고 서로 다른 직업코드를 부여할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 연구한거다. 이 연구가 가능했던 이유는 KGSS에서 직업 코딩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복수의 코더에게 동일한 서베이 응답을 보고 직업을 분류하는 실험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랬더니 2명의 서로 다른 코더가 10개 직업 대분류에서 불일치하는 비율이 무려 31.3%에 이른다. 426개 직업 세분류로 들어가면 불일치률이 50.9%로 절반이 넘는다. 사회학에서 많이 사용하는 EGP (7개) 계급 분류의 불일치율은 34.2%. 

 

이 결과가 사회학 계급 연구와 관련된 여러 함의에 대해서도 논문에서 논의하고 있다. 

 

그래서 결론은? 직업과 직업에 근거한 계급 개념은 매우 구성적 측면이 있기에 주의해서 써야하고, 직업 분류에서 같이 묶인 직업은 비트겐슈타인이 말한 가족유사성의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 

 

 

 

Ps. 많은 사람들이 객관적 실체라고 생각하는 직업분류도 이런데 어떤 기준으로 분류하는지 정해진 원칙이 없는 세대 분류는 오죽 하겠는가. 편의나 재미를 위해 쓸 때 쓰더라도 문제점은 알고 쓰는게 좋다. 

Posted by sovidenc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