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에 쓴 오바마 집권은 개인의 역량이 아니라 미국 민주당과 진보세력 전체의 역량 때문이라는 글(프레시안 칼럼)도 괜찮았고,
한겨레 21에 요약 정리되어 나온 노무현 정권을 매디슨적 공화주의와 마키아벨리적 공화주의로 나누고, 양자의 모순에서 노무현 정권 몰락의 원인을 찾는 시도(한겨레21 기사)도 참신하다. 아래 일부만 인용하면,
예컨대 노무현식 공화주의에 주목한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교수의 발표는 ‘초기 노무현’과 ‘후기
노무현’의 간극을 설명하는 참신한 잣대다. 공화주의는 소수에 의한 ‘자의적 지배’를 배척하는 태도다. 권력기관의 상호 견제와
균형을 통해 이를 구현하는 게 핵심이다. 안 교수가 보기에 노 전 대통령은 헌정 사상 처음으로 “공화주의적 가치를 초보적
형태로나마 구현하려” 했다....
그런데 공화주의에도 두 종류가 있다. 엘리트 사이의 이성적 대화와 타협을 강조하는 태도가 있고, 시민들에 의한 엘리트 견제를 강조하는 태도가 있다. 앞의 것을 안 교수는 ‘매디슨적 공화주의’로 불렀다.... 뒤의 것은 ‘마키아벨리적 공화주의’로 부를 수 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의 통치 기술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으로 곧잘 오해되지만, 실은 민중의 역량에 주목한 선구적 정치학자였다...
안 교수는 노 전 대통령이 “선거에서는 마키아벨리적 공화주의에 기댔고, 국정운영에서는 매디슨적 공화주의에 집착했다”고 본다. 한나라당을 향해 대연정이나 개헌을 제안한 것은 “메디슨적 정치 구현”에 매달린 결과다. 이런 태도는 결과적으로 핵심 지지 기반을 침식했다. 특권층을 비판하는 대중의 지지를 얻고서도, 오히려 지배 엘리트와 타협하는 데 많은 정력을 기울였다는 진단이다...
노무현 정부가 서툴렀던 점이... 집권 초기, 4대 입법 등 거대한 정치 의제보다는 사소하지만 작은 곳에서 성과를 얻으면서 민심을 확인해나가는 민생 의제를 추진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키아벨리적 공화주의로 특권층을 견제하면서도 매디슨적 공화주의로 지배 엘리트를 적절히 설득하는 전략이 그 요체다.
안교수는 80년대 학생운동할 때는 제헌의회 쪽에 가까웠고, 사노맹에도 관련되었던 걸로 알고 있다. 한국에서 석사하고 미국으로 유학가더니 뉴욕의 뉴스쿨에서 클린턴 선거전략가 딕 모리스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예전에 하킴님이 지난 미국 대선에서 Ayer를 둘러싼 논란을 보고 미국에서는 60년대 과격 운동권이 유의미한 사회활동에서 완전히 배제되었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라는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안교수를 보면서도 그런 생각이 든다. 지식인 숫자가 작기 때문에 배제 전략을 쓸 수 없었을 수도 있지만, 이런 면에서는 미국보다 한국이 더 개방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한겨레 21 기사의 일독을 권한다. 최장집 원로 교수의 일관성 없는 얘기(오돌또기님의 "속보" 참조)보다는 알찬 내용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