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 교수들이 김건희 박사 논문의 표절을 자체 검증하지 않기로 투표로 결정했다고.  

 

예전에 얘기했는데, 전문가 거버넌스의 가장 큰 특징은 자율이다. 톱다운으로 안되고, 외부에서 주입하는거 안되고, 자체적으로 품질을 관리하는게 전문가다. 당연한 일이다. 전문 분야는 그 분야 전문가가 아니면 평가할 방법이 없으니까. 논문 심사는 "동료평가"로 할 수 밖에 없다. 어느 학계나 좁은 사회라서 서로 다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가진 학문적 기준에 따라 아는 사람 논문도 엄격히 품질을 심사하는 관행이 쌓여서 학계가 존재한다. 

 

이 때문에 전문가에 대한 관리도 전문가 출신이 한다. 사실 관리만 놓고 보면 반드시 그래야할 이유는 없다. 전문가에서 관리자로 바뀌는건 직업의 대분류가 바뀌는 일이다. 해당 분야 전문가를 관리자로 바꾸는 것보다는 전문 관리자를 데려오는게 나을 수 있다. 조승우 나왔던 병원 드라마 라이프가 그 경우. 하지만, 비전문가가 전문가를 관리해서는 전문가의 협조를 끌어내기 어렵다. 협조가 없으면 조직이 돌아가지 않는다. 

 

 

국민대에서 60%가 넘는 교수들이 김건희 논문을 검증하지 않기로 투표했다는 것은 한국에서 학계의 자율 규제 기능이 부재하다는 증명인 셈이다. 이렇게 되면 학계의 도덕과 규율은 외부, 그러니까 교육부의 통제로 넘어가게 된다. 

 

전문성이 없는 외부의 통제로 넘어가면 질적 평가가 불가능해진다. 한국에서 교원 충원 시 SSCI는 몇 점, KCI는 몇 점, 공동저자는 몇 점이라고 점수를 매겨서 상위랭킹으로 자르는 평가 방식을 꽤 오랫동안 사용했다. 자교 출신은 몇 %를 넘지 않아야 한다는 기준도 있었다. 한국 대학의 연구 기능 강화, 인맥이 아닌 연구실적으로 교수를 뽑는 관행은, 안타깝게도 자율적 변화가 아니라 이런 외부의 양적 통제 하에서 생겨났다. 그런데 이런 양적 평가는 논문의 질적 평가를 무력화시켜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 여기에 대한 비판도 많았고, 최근에는 그러지 말자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고 느꼈다. 

 

한국에서 표절은 단어 몇 개가 연속되어 같으면 안된다는 식으로 규정되어 있다. 표절율이 40%가 넘는 논문도 문제가 되느니 마느니 하는 상황을 볼 때, 황당한 규정이다. 재작년인가 정부 용역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보고서 내고 난 후에 진짜 표절을 이런 식으로 검증하더라. 단어 몇 개 겹치는거 없는지, 주장에 대한 인용이 모두 달렸는지 등. 심지어 그런 감사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 너무나 상식적인 OLS 모델에 대한 설명도 인용을 하라고 하더라. 중력 말하면서 뉴턴 인용 안하면 표절이라는 식.

 

가장 잘못된 표절은 아이디어를 베끼는 것이다. 단어가 같고 다르고와는 차원이 다른 표절이다. 김건희 박사의 논문은 그 차원도 아닌 원초적인 문장 베끼기였다. 그런데 이 표절을 검증하지 않겠다고 교수회에서 집단적으로 투표해서 결정했다. 이러면 외부의 통제가 정당화된다. 내용에 상관없이 단어 몇 개가 연속이어도 안된다는 정부 측과, 40%가 넘는 표절도 검증하지 못하는 학계 측 중에서 누구에게 더 정당성이 부여되겠는가. 

 

표절 프로그램을 돌려서 15%를 넘으면 박사학위를 줘서는 안된다는 교육부 지침이 내려오고, 교육부 공무원들이 기관 감사에서 박사 논문을 표절 프로그램으로 검증하고 교수들에게 해명하라고 요구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Ps. 듣자니 어떤 학교에서는 학생의 기말 페이퍼가 표절로 드러나, 그 학생의 재학 기간 전체 기말 페이퍼를 검증한 적이 있단다. 학교 변호사까지 포함하여 관련 법률과 규정을 엄격하게 적용했다고. 제가 재직 중인 학교에서는 제출한 박사 학위 논문의 상당 부분이 표절로 드러나 수정할 기회도 주지 않고 바로 제적한 경우도 있었다.

Posted by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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