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알고 있으면서도 문제를 얘기할 때 마다 잊은 듯 보이는게 바로 출산율 저하는 한국의 고유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전세계의 모든 선진국이 겪는 공통의 문제다. 

 

한국이 출산율이 낮아서 망해가는거라면, 전세계 선진국이 출산율이 낮아서 망해가는 중이다. 출산율에 대해 전문적 지식은 없지만, 인구학 저널 제목이라도 훓어보는 사람이 가진 몇 가지 상식을 공유하고자 한다. 

 

얼마 전에 부총리 자문기구가 휴대폰이 재미있어서 출산을 안한다고 했다는데, 아마 기자가 발언을 과대포장한 선정적 보도일거고, 현재까지의 연구를 한 마디로 종합하자면, "백약이 무효"라는 거다. 그렇다고 정말 모든 정책이 효과가 없다는 건 아니고, 효과가 있기는한데, 제한적이고 상대적이라는거다. 몇 가지만 하면 출산율이 높아진다고 주장하거나, 한국의 낮은 출산율의 원인은 이러저러하다고 함부로 진단하는 사람들은 모두 출산율의 변화 경향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아래 그래프는 요기서 가져온건데, 모든 북구 복지국가들이 2000년대 초반에는 출산율이 상승했지만, 2010년대 이후 상승세가 꺾여서 꽤 큰 폭의 하락을 보이고 있다.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을 보라. 이들 국가에서 다른 국가 대비 복지가 부족해서 출산율이 낮아지겠는가. 스웨덴이 80년대 모성보호제도로 (speed premium) 출산율을 상당히 높였고, 그 제도는 지속되고 있지만, 출산율은 2010년대에 큰 폭으로 하락했다.  

 

 

한국이 유독 낮은 출산율을 보이지만, 인접 아시아 국가들도 출산율이 매우 낮다 (그림 출처). 기억이 확실하지는 않은데, 대만, 홍콩, 한국 모두 현재 TFR이 1 미만으로 떨어졌다. 

 

 

최근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서 가장 적극적 정책을 펼친 국가는 권위주의 체제인 헝가리일거다. 자녀 출산 1명당 약 15만원을 주고, 자녀가 4명 이면, 평생 소득세 면제다. 이 외에도 주택지원, 현금지원이 상당하다. 그 결과 헝가리 출산율이 1.2에서 1.6으로 올랐다. 그런데 헝가리만 오른게 아니고, 아래 그래프에서 보듯이 주변 동유럽 국가 대부분이 올랐다. 일반적으로 여성의 고용율이 높아지면, 출산율이 낮아지는데, 동유럽은 반대로 여성의 고용율이 높아지면서, 출산율도 높아졌다. 동유럽은 사회주의 붕괴 후 경제상황 악화로 출산율이 낮아지다가, 최근 경제발전과 더불어 출산율도 높아졌다. 헝가리의 적극적 정책이 효과가 없는건 아니지만, 심대한 효과를 보인 것도 아니다.

 

 

 

선진국 중에서 출산율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가 프랑스다. 일부 분석에 따르면 강한 가족 규범을 가지고, 여성의 노동참여율이 낮은 국가(e.g., 스페인, 이태리)에서 상대적으로 출산율이 낮고, 전통적 가족 규범이 약하고, 여성 노동참여율이 높은 국가에서 상대적으로 출산율이 높다. 실제로 프랑스에서 신규 출산의 2/3 이상이 혼외출산이다. 결혼과 출산이 비결합될 때 출산율이 높다. 이 때문에 일부 학자들은 출산율이 낮은 문제는 여성이라기 보다는 남성이라고도 한다. 남성이 가족을 부양하는 모델은 출산율이 낮고, 가족과 남성이 별 관계가 없게되면 오히려 출산율이 높아진다는 것. 그런데 이것도 확실하지 않은게, 스웨덴도 약 절반의 출산이 혼외출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산율은 떨어졌다. 

 

그러니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하는건지 알기 어렵다. 

 

그래서 정리하자면, 

 

1. 출산율 저하는 전세계적 현상으로, 어떤 정책도 어떤 국가도 인구의 감소를 막을 수 있을 만큼 출산율을 올리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출산율 저하와 인구 감소는 속도의 문제이지 경향은 거의 모든 국가가 비슷하다. 

 

2. 그렇다고 모든 정책이 의미가 없다는건 아니고, 적극적 재정 지원은 출산율을 일정정도 높이기는 한다. 

 

3. 위에서 언급은 안했지만, 이민도 도움이 된다. 이민자의 출산율도 상대적으로 높다. 하지만 이민자도 결국은 동화되어서 출산율이 native와 비슷하게 낮아진다. 

 

4. 동아시아의 강한 정상 가족 규범은 출산율을 낮추는 요인일 가능성이 높다. 출산 결정은 문화의 영향도 크다. 

 

5. 그렇기 때문에 한국 특화 연구는 한국에서 인구 감소 속도를 늦출 수 있는 최선의 정책이 무엇인지 찾는거다. 다른 국가 대비 "상대적으로" 한국의 출산율 저하 속도가 높은 원인을 찾고, 그 대책을 마련하는게 최선이라는 거다. 출산율 저하의 정확한 원인을 모르니, 여러 정책을 백화점식으로 모색하는건 불가피한 면이 있다. 출산율 제고 정책은 의지가 없어서가 아니라, 몰라서 못하는 것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Posted by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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