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블로그에서 지난 몇 년 간 꾸준히 해온 주장 중 하나가 한국사회의 보수화였다.
불평등이 계속 증가하고, 사회이동이 줄어들고 있다는 일부의 진단과 달리, 한국 사회는 불평등이 줄어들고, 사회이동이 늘고 기회평등이 확산되면서, 상위계층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심화되고, 중상층 기득권의 대물림 지위가 위협받고 있다. 그와 동시에 지난 사반세기 동안 경제가 성장하면서 계층지위 인식이 높아지고 변화보다는 수성의 멘탈리티가 늘었다. 한국의 이러한 변화는 불평등 증가와 백인 노동자의 기득권 축소가 맞물렸던 미국과는 다른 조건이다.
이 맥락에서 현재의 대선을 바라보면 왜 이슈가 대부분 보수화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집권을 목표로 하는 정치 세력은 변화한 사회경제문화적 환경을 정책과 선거마케팅에 반영할 수 밖에 없다. 이 맥락을 무시하면, 이재명 민주당의 우클릭과 유권자의 진보세력 외면은 뜬금없거나 기존의 입장에서 변절한 것으로 느껴질 것이다.
그렇다고 진보의 신념을 포기할 수는 없지 않겠나. 이런 환경에서 진보적 아젠다를 어떻게 실행할 수 있을지 당연히 많은 사람들이 연구했다. 특히 미국같이 보수적 이데올로기와 문화가 지배적인 사회에서 장기적으로 진보적 아젠다가 꾸준히 실행된 동력이 무엇인지 질문했다. 저도 이 논의를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사회과학하는 사람의 상식 차원에서 알려진게 몇 가지 있다.
첫 번째 방법은 상대적 진보 세력의 꾸준한 집권이다. 보수 우위 구도에서도 상대적으로 진보적 정치 세력이 집권하면 진보적 아젠다의 실행 확률이 높아진다. 20세기 중반 이후 자본주의 국가에서 복지가 확대된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정치적으로는 리버럴 정권의 장기집권이었다 (관련 포스팅이 요기, 요기). 신자유주의의 확산 중에도 클린턴/오바마/바이든의 집권은 상대적으로 진보적 정책을 실행했다.
두 번째 방법은 진보적 이슈를 보수적 가치로 풀어내는 프레임 능력이다 (관련 논문 요기, 요기). 예를 들어, 여성 노동시장 진출을 성평등의 관점이 아니라 노동인구 축소에 대한 효율적 대응으로 바꿔서 논의하는 방식이다. 여성 노동시장 진출을 경제성장 전략의 하나로 프레임할 수 있다. 딱 들어맞는 사례는 아니겠지만, 미국에서 생명보험이 확산될 때 사용했던 전략이 "생명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그래서 생명보험은 받아들일 수 없다)에서 "남성은 죽은 후에도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다"(그래서 마초인 나는 생명보험을 든다)로 바꾼 것이었다. 이런 방식이 항상 옳다는 건 아니고, 정반대의 전략이 더 성공적인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여성참정권 운동이 스위스보다 성공했던 이유). 하지만, 보수의 가치로 진보적 정책을 프레임하면 정책의 실행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방법은 보수 뿐만 아니라 중도층에게도 소구력이 있다.
세 번째 방법은 운동권이 거리가 아닌 사무실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 방법은 첫 번째와 결합되어 정책을 실제로 만드는 것이다. 이재명 민주당이 집권할 경우, 보수화된 민주당을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정책 입안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진보적 내용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재명 후보측에서는 경제발전을 키워드로 기본사회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고 있다는데, 세금 다 깎아주고 어떤 재원이 있을지 모르겠다. 어쨌든, 진보적 아젠다를 고민하는 분들은 변화한 구조적 조건에서 어떤 대응이 좋을지 고민해야. 변화한 구조적 조건이 무엇인지부터 분석하고 인지해야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