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분과학문 대비 사회학의 명확한 기여 중 하나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차이가 명확하다고 여기는 명목변수가 사회적 구성의 결과라는걸 밝힌 것이다. 인종이나 젠더 등의 범주가 생물학적 특징에 의해서"만" 규정되는게 아니다. 경계의 모호성을 넘어 명확한 구분을 만드는건 사회적 과정을 통한 구축(social construction)이다. 저는 직업 구분도 사회적 구성의 결과라는 논문을 쓰기도 했다 (한국 사례 요기, 미국 사례 요기).
수업 시간에 자주 드는 사례가 인도계 미국인의 인종이다. 인도계 미국인이 센서스 조사 초기(19세기 말)에는 백인으로 분류되었었다. 가장 순수한 아리안족으로 여겨졌다. 20세기 초에는 힌두라고 분류되었다. 그러다가 1923년 미국 대법원에서 비록 인류학자들은 인도계를 백인으로 여기지만, 미국의 상식에 비추어 백인이 아니기 때문에 인도계는 백인이 아니라고 판결한다. 당시에 백인이 아니면 시민권자가 될수도, 부동산 재산을 보유할수도, 백인과 결혼할 수도 없었기에 인도계는 졸지에 시민권을 박탈당하고 가진 부동산을 강제로 팔아야만 했다. 이후 인도계의 카테고리가 사라지고, 이들은 자의적 선택에 따라 백인, 흑인 등으로 분할되어 계수되었다. 인도계가 아시아계의 하나이며 동시에 별도의 카테고리로 확실하게 자리잡은건 1980년 이후다. 또 다른 사례로, 과거에는 백인 내부에서도 출신 국가에 따라 상당히 명확한 구분이 있었다. 이태리계, 아이리시계, 동유럽 이민자를 "White nigger"라고 불렀다. 백인이 하나의 집단이 된 건, 사실상 2차 대전 이후다. 미국 외의 사례를 하나 들자면, 르완다 내전을 촉발한 후투족과 투치족의 구분도 사회적 계급의 차이가 인종적 차이로 변이된 사례다. 없거나 희미하던 구분이 사회적으로 구축되고 현대사 최악 살상의 근거가 되었다.
인종이 사회적 구성의 산물이라는 의미가, 피부색 등 phenotype이라고 말하는 생물학적 특성이 전혀 의미가 없다는게 아니다. 어떤 특성이 구분짓기의 기준이 되는지, 그 경계가 어디가 되어야 하는지가 사회적으로 결정된다는거지.
이번에 논란이 된 중추절도 단순히 단어를 잘 몰라서 발생한 오해면 그저 한 번 웃고 넘길 일이다. 이런 일은 "일해라절해라", "마마잃은중천공", 금일, 사나흘, 고지식, 심심한 사과 등 이 전에도 많았다. 추정컨데, 요즘은 소셜미디어의 발달로 많이 퍼질 뿐이다. 가로와 괄호를 혼돈하는 경우도 의외로 많다. 단어 이해도로 인지능력과 문해도를 측정하는건 많이 쓰이는 방법이다. General Social Survey에서 Wordsum이라고 10개 단어의 의미를 묻고 정답의 숫자로 인지능력을 테스트하는 질문이 있기도 하다. PISA와 PIAAC 조사에서도 문해력을 측정한다.
중추절 논란은 단어 사용을 피아구분의 표식으로 간주했다는 점에서 이전의 문해력 논란과 다르다. 마마잃은중천공으로 피아식별이 되지는 않는다. 괄호의 자리에 가로를 썼다고 피아식별이 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중추절이라는 단어를 쓰냐 아니냐로 피아를 식별하려고 한다. 단어 이해가 문해력 문제가 아니라 피아식별의 문제가 되어버렸다. 이런게 바로 사회적 구성의 과정이다.
그러니 중추절이라는 말을 고릿적부터 썼다거나, 많은 역대 대통령이 중추가절이라는 말을 썼다는 등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중추절이라는 단어를 쓴 의미에 대한 논란이 이어진다. 문해력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피아식별의 문제니까. 심지어 양대 정당 중 하나가 "중국인 3대 쇼핑 방지법"과 같은 반중 인종주의적 정서에 편승하는 판이다. 나경원은 전산망 화재가 발생하니 중국인 무비자 입국을 연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국인 무비자 입국을 처음 입안한게 윤석열 정부라는 피곤한 설명이 필요해졌다. 별 관계도 없는 것들을 끌어들여 인종주의적 정서에 기반해 피아식별을 해나가는 사회적 구축과정의 하나다. 중추절 논란은 이런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 자체로는 별거 아니지만, 상당히 위험한 시대적 징표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