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theacro.com/zbxe/193460

드물게 선거 평가 중에서 가장 제 의견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아크로의 시닉스 님의 글입니다.

재미삼아 몇 마디 더하자면,

유시민, 참여당, 친노세력에게는 이 번 유시민의 실패가 독이 되기 보다는 약이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성공했으면 참여당과 친노세력이 독자노선의 길을 걸었을 텐데, 그 길은 희망이 없죠. 오히려 실패함으로써, 그것도 민주당과 호남의 지지를 등에 엎고 실패함으로써, 민주당과 하나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유시민은 흔들리지 않는 자기만의 핵심지지세력이 있기 때문에 민주당 "내"의 권력투쟁에서 이길 가능성이 있고, 그러면 호남, 친노의 지지를 모두 받을 수 있죠.

한나라당 입장에서 보자면, 유시민의 행보는 친노세력을 업어다가 민주당에 상납하는 모양새로 보일 겁니다. 당장 서프, 무본 등에서도 일부 논자들은 민주당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두언이 유시민의 행보를 "전략적"이라고 했을 때, 그가 가졌던 의구심이 이런 거겠죠. 시닉스님이 지적했듯 여기서 박지원, 손학규, 김진표의 공은 큽니다.

물론 이 기회를 살릴 수 있는지, 그 공은 다시 유시민측에 넘어 갔습니다. 유시민이 그 간 보여온 소위 "기회주의적" 행태를 봤을 때, 그가 이 기회를 날릴지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겠습니다.

한명숙 공천 과정에서의 민주당의 행위는 양날의 칼입니다. 이 번 선거의 핵심프레임은 반MB였고, 반MB의 중심은 친노입니다. 서울에서 명박통 탄압의 상징이 안나오면 선거 분위기 만들기 참 어렵습니다. 이계안이 그 중심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는게 상식입니다. 수도 서울과 관련된 정책은 세련되었겠지만, "명박통에게 당한게 뭐죠? 오히려 현대에서 같이 짝짝꿍하는 사이아니었나요?"라는 질문에 답할 말이 없습니다.

문제는 한명숙이 참 좋은 상징이고, 좋은 사람인데, 말빨이 안서는 분이라는거겠죠. 그래서 나온 전술이 토론무시, 당내 민주주의 무시, 노출빈도 축소 전략이겠죠. 선거 결과가 이만큼 나왔으니 결과론적으로 현명한 선택이었다고도 할 수 있지만, 그래도 정석이 아니라 사술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240명이 넘는 국회의원을 공천할 때는 전략적 공천이란 것도 해야 하지만, 16명, 그 중에서도 수도서울의 제1야당 후보 공천을 그렇게 해서는 곤란하겠죠.

무엇보다도 이 번 선거에서 무상급식과 복지라는 프레임이 부각된 것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무상급식이라는 토픽이 한나라당과 명박통이 지방권력을 장악하고 있을 때의 분권화 전략의 결과물이라는 것도 아이러니고요. 민주주의가 결국은 민중에게 이롭다하는 점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고나 할까요.

저는 예전부터 지방선거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터라, 이 번 결과가 기쁘기 그지 없습니다. 민주당이 선거에서 이긴 지역부터 새로운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중앙권력을 둘러싼 선거에서 이길 수 있고, 또 그래야 민주당이 집권했을 때 어떤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하는지 답이 나올 겁니다.

민주당과 범진보세력의 가장 큰 위기는 지난 10년간 민주당이 집권하면 어떤 사회를 만드는지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겁니다. 즉, 당내 민주주의라든가 권력투쟁이라든가의 위기가 아니라 노선과 이념의 위기라는 거죠. 명박통이 워낙 민주주의와 소통을 무시하고 밀어붙이고,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통에 새로운 기회를 얻었는데, 이 기회를 제대로 살리기를 기대합니다.
Posted by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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