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민주당의 영향력이 크긴 크다. 예전에 복지에 대해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던 분들이, 민주당이 3무1반(궁극적으로 5무1반)을 표방하자마자 복지에 쌍수들고 환영하는걸 보니 흐뭇(?)하다.

그런데 도대체 유시민은 왜 저러는 것일까?

내가 생각하기에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포지셔닝. 다른 하나는 실제 정책의 문제.

유시민이 지속적 인기를 구가하는 이유는 그의 독특한 포지셔닝 때문이다.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기회주의라고 욕하지만, 그는 오른쪽의 민주당보다는 (비록 그 자신이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표현하지만) 이상을 추구하고, 왼쪽의 민노당 보다는 현실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런 포지셔닝을 점하고 있는 유일한 대중 정치인이다.

나는 그간 민주당의 지지부진을 "이상 추구"의 부족에서 찾았다. 그런데 요즘 민주당이 복지를 전면에 내걸고, "운동권" 정당이 되었다. 복지라는 시민운동의 의제를 정치의 전면에 걸고서, 뭔가 세상을 바꿀 "목표"를 제시하는 정당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정치공학의 정당에서, 운동으로써의 정치를 하는 정당으로의 변화다.

이렇게 되면 유시민이나 참여당이 차지할 공간이 없어진다. 이들이 차지했던 공간을 민주당이 집중 공략하기 때문. 사라지고 있는 존재감을 표방할 다른 방도가 없기 때문에, 유시민과 참여당은 지금과 같은 입장으로 나오는 것이다. 민주당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영토싸움에서 민주당에 한 방 먹고 나오는 수세적 표현. 지금까지 민주당 나와바리를 유시민이 침범했는데, 최근의 공방은 유시민의 나와바리를 민주당이 잠식하고 있다.

이 싸움은 민주당이 지금과 같이 변화하고 여기에 더해서 정책을 생산해내면 결국 민주당이 이길 것이다. 관건은 어떻게 이겨서 유시민을 지지했던 세력을 손실 없이 온전히 지지세력화하느냐다.

그런데 유시민은 왜 하필이면 무상의료를 물고 늘어질까?

그건, 무상의료가 민주당 정책의 약한 고리이기 때문이다. 오세훈은 급식이라는 새발의 피 크기의 정책으로 말도 안되는 트집을 부리지만, 유시민의 무상의료 비판은 "정책적으로" 타당성이 있기 때문이다.

소스를 정확히 못찾겠는데, 70년대 말인지, 80년대 초반인지 Rand 연구소에서 무상의료를 실제로 실험한 적이 있다. 한 마을에서 통제집단은 모든 의료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다른 마을의 비통제 집단은 보험을 내고 비용을 내게 했다. 무상 의료를 제공받은 집단의 의료서비스 이용률이 약 30% 가량 올라서, 그만큼 전체 의료비가 올라갔지만, 건강 개선의 측면에서는 비용을 낸 집단과 차이가 없었다. 유일한 차이가 극빈층에서만 무상의료로 건강 개선 효과가 있었을 뿐. 무상의료는 의료서비스 이용의 증가로 비용 상승은 크지만, 효과는 크지 않은 정책이다.

일천한 지식으로 막연히 추측해 본다면, 한국 의료는 보장성의 확대(소비자 부담 감소)와 저가 서비스의 자기 부담률 확대(소비자 부담 증가)를 동시에 해야 한다. 전자가 다가 아니다.

"복지 정치"가 "복지 정책"보다 우선인 만큼, 하지도 않을 정책으로 쓸데없는 논쟁을 벌이기 보다는 큰 틀을 제시하고, 당장 실현하고 체험할 수 없는 작은 정책으로 논쟁을 벌이기를 기대한다.
Posted by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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