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조직

정치 2011. 10. 13. 07:49
중산층과 서민의 경제적 풍요와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진보적 아젠다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역사적으로 두 가지 조직이 필요했다.

하나는 정당, 다른 하나는 노조.

진보적 정당의 집권없이 진보적 아젠다를 실행한 경우도 없고, 노조의 강화 없이 진보 정당이 집권한 적도 별로 없다. FDR이 집권하여 진보적 정책을 실현하고, 유럽에서 사민주의가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전에 쌓인 수많은 노조의 투쟁과 사회운동이 있었기 때문이고, FDR의 장기 집권은 그의 행정부가 노조와 소비자 단체의 조직화를 조장한 덕도 있다.

1970년대 이후의 전세계적인 보수화도 마찬가지다. 미국 보수층에서 하나의 조직이 떠오르고 뒤이어 다른 하나의 조직이 변화한다. 전자는 조직화된 자본의 등장, 후자는 공화당의 극보수화. 아버지 부시 시절에만 해도 공화당의 다수가 온건 보수였지만, 깅그리치의 하원 혁명 이후, 아들 부시를 거치면서 공화당은 레이건의 공화당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보수화되었다. 공화당의 보수화를 이끌어낸 것은 공화당 외부의 자본 조직이었다. (티파티를 추동한 것도 조직화된 자본이었다.)

정당만 굳건하면 모든 것이 잘 될 것 같지만, 역사적으로 그렇지 않았다. 정당이 힘을 가질려면 정당 외부의 노조나 소비자 단체 등 시민 조직 역시 힘이 있어야 한다. 전자의 정치와 후자의 사회운동이 결합할 때 진보 정치는 만개할 수 있다. 진보적 아젠다는 외부 환경의 변화에 따라 계속 변화한다. 이러한 변화에 맞추어 정당의 정강을 이끌어내는 것은 "깨어있는 시민, 노동자, 소비자의 <조직화된> 힘"이다.  한국에서 민주당 집권 10년 동안 이 점을 등한시 한 것은 실수였다. 

박원순이 결국은 무소속으로 서울시장 선거를 치룬다. 안철수, 박원순의 지지율은 조직화되지 않은 시민의 지지에 기반한다. 이런 식의 정치는 정당 조직은 형해화시키지만, 시민 조직은 나타나지 않는, 이 중의 조직 부재 현상을 낳는다. 조직의 부재로는 장기적 힘을 발휘하기 어렵고, 장기간 지속되는 힘없이 실질적 변화를 가져오기 어렵다.

한국의 촛불시위가 더 발전하지 못한 이유도 조직의 부재 때문이고, 워싱턴의 월가점령 시위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그렇게 희망적이지 않은 이유도 이들이 조직화되는 징후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강력한 카리스마적 지도자가 있으면 정치적으로, 사회운동의 측면에서 일시적으로 유지할 수 있지만, 조직으로 발전하지 않으면 지속성이 없다. 지도자의 카리스마도 없으면 그야말로 오합지졸이 되기 쉽상이다.

안그래도 노조가 약하고, 소비자 조직도 약한 나라에서, 정당마져 무력화시키면 진보 정치의 미래는 암울해 진다. 민주당이 못봐주겠으면, 들어가서 기존의 구닥다리를 몰아내고 신진세력이 차지해서 고쳐놓겠다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정당도 살고, 진보적 아젠다도 산다.
Posted by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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