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100일 정도 언론이 비판을 자제하고 소위 허니문 기간을 거친다. 초보운전의 미숙을 일정 정도 봐주는 것.


직위에 대한 업무 분장이 있고, 매뉴얼이 있지만, 조직은 매뉴얼로만 돌아가지 않는다. 적응기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조직을 유기체에 비유하는 일이 잦은데, 인체에 타인의 장기를 넣거나 이물질을 삽입하면 적응기간이 필요한 것과 유사 (안경 도수만 많이 바꿔도 처음에는 힘들다). 암묵적 룰, 지식이 의외로 중요하다.


새로운 정부 초기에 의욕은 높으나 경험이 없다. 시스템에 대한 이해도 떨어지고, 누가 뭘 할지도 잘 모른다. 구체적인 업무 분장은 매뉴얼, 개인성격, 능력, 타부서과의 관계 등에 따라 모두 미묘한 조정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어느 정부나 초기에는 뻘짓을 한다. 소소한 잘못은 그냥 봐주는 허니문 기간은 언론의 조직론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박근혜 정부가 출범 초기에 관료들로 주요보직을 채운 건 상당히 이해할만한 (오히려 현명했던) 처사였다. 북핵파동이 일어났는데, 적응기간을 거칠 수도 없다. 정부 조직과 정책 결정 과정에 적응되어 있어 바로 일처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더 낫다. 김병관 국방부 장관 예정자가 낙마하고 김관진 장관이 유임한 건 나는 박근혜 정부의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헌데 윤창중 성범죄 사건의 처리를 보면 설사 정부 초기 임을 감안하더라도 박근헤 정부를 신뢰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1. 레이디 가카의 사람에 대한 판단력에 심각한 의문점이 제기된다. 윤창중은 레이디 가카의 개인적 선호에 의존해 임명을 강행한 인사다. 능력을 판단 못하고 자신의 눈과 귀에 달콤한 말을 속삭이는 아첨꾼을 선호한다는 강한 의심이 있다. 


2. 한국 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대미 외교, 그것도 당선 후 첫 외교 무대에서 나라가 뒤집힐 사건이 벌어졌는데, 대통령 보고는 만 하루가 지난 후다. 대통령의 귀가 막혀있다. 판단을 대통령이 아니라 그 밑의 비서관들이 하는 것 아닌가? 레이가 가카는 엄하게 한다고 하지만, 현실은 오히려 허수아비 대통령인가?


3. 이남기 홍보 수석은 윤창중을 전혀 콘트롤하지 못했다. 이남기 개인의 무능일 수도 있고, 윤창중 개인의 돌출행동일 수도 있지만, 사람은 누을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다. 레이디 가카의 총애를 받은 인물은 조직의 위계를 무시하고 설쳐대는 듯하다. 한마디로 조직위계가 콩가루.


모든 사람이 "관료적"이라는 말을 싫어하지만 관료제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이유는, 관료제가 지금까지 있어온 모든 조직 체계 중에서 가장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status quo가 너무 효율적이라 변화를 거부하고 효율을 갉아먹는 모순을 베버는 iron cage라고 표현했다. 이 역설의 의미는 혁신은 때로는 덜 효율적이어야 가능하다는 것.


윤창중 성범죄 처리 과정과, 이남기, 윤창중, 허태열의 기자회견 사과를 보면,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 조직은 관료제의 효율은 확실히 버렸다. 혁신? 변희재, 정미홍, 손인춘, 일베가 설칠 환경을 마련해 준게 혁신이라면 혁신. 윤창중이 미국에서 한국으로 도망쳐오는 과정도 관료제와는 너무도 거리가 멀다. 최악의 조직운영.


4. 재발 방지 의지가 있는가? 셀프사과 논란을 빚는 이남기의 사과. 장황했던 허태열의 사과. 비비꼬인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 어느 하나 잘못을 깨끗이 인정하고 고치겠다는 의지가 느껴지지 않는다. 사후 처리가 좋았다면, 조직이 갖춰지지 않은 정권 초기에 일어난 개인의 성범죄, 정권 차원에서는 해프닝이 될 수도 있었던 일이다. 


하지만 이남기는 대통령에게 사과했고, 박근혜 대통령은 성범죄 피해자를 "동포여학생"이라 했다. 인턴으로 채용된 임시 직원이고, 윤창중은 청와대 대변인이라는 직위를 위용하여 범죄를 저질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석은 대통령에게 사과하고, 대통령은 조직을 부인하고, 뚱딴지 같은 칭호를 사용하였다. 인턴은 청와대와 정부가 채용의 주체지만, 동포여학생은 청와대와는 무관한 지위다. 윤창중이 길가다가 그 인턴을 만났나, 호텔바에서 우연히 만났나. 그 인턴을 윤창중에게 배치한 게 박근혜 정부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의 문제다. 동포여학생에게 저저른 행위가 아니라, 인턴 직원에게 저지른 행위다.


5. 관련해서 3번의 사과 과정을 보면, 위 청와대 핵심관계자들이 정상적인 정무 판단을 하는지 심히 의심스럽다.


정권 초기임을 감안하여 최종 판단은 유보다. 앞으로 개선해서 잘할 수 있는 기회도 있고, 잘하기를 기원한다. 하지만, 박근혜와 박근혜 정부의 능력, 구체적으로 인물 판단력, 조직 장악력, 조직 이해력, 개선 의지, 정무 판단력에 대한 의구심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Posted by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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