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기고문


이 시국에 한가한 소리지만 2주 전에 쓴 글이니...


한국의 직장남들이 저녁이 있는 삶을 무척 좋아하고 그런 삶을 즐기게 되면 여가를 많이 즐길 것으로 생각하는데 꿈 깨라는 소리. 


선진국의 변화를 보면 일자리 노동시간이 줄어들고 집에 일찍 오는 저녁이 있는 삶을 즐기게 되면 여가 활동 시간이 늘어나는게 아니라 가사노동 시간이 늘어나서 임노동과 가사노동을 합친 총노동시간은 같다는 것. 





"결론부터 말하자면 남성에게 저녁이 있는 삶은 여가시간이 늘어나는 게 아니라, 일터에서 보내는 시간이 줄어드는 대신 가사노동이 늘어나는 삶을 의미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 성인 남성이 하루 중 가사노동으로 보내는 시간은 45분으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짧다. 복지국가인 덴마크 남성의 하루 평균 가사노동시간은 3시간 6분으로 한국 남성보다 4배 이상 길다. ... 


저녁이 있는 삶으로 가사노동이 늘어나리란 점은 다른 나라의 역사적 변화를 살펴봐도 명확하다. ‘그래프’는 20세기 이후 미국인의 주간 평균 가사노동시간 변화를 보여준다. 20세기 초 미국 남성의 평균 가사노동시간은 일주일에 4시간, 하루 34분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이 1920년대 이후부터 21세기 초까지 꾸준히 증가해 지금은 일주일에 16시간 40분, 하루 2시간 20분이 됐다. 지난 한 세기 동안 4배 늘어난 것이다. 현재 한국 남성의 평균 가사노동시간은 미국 남성의 30년대 가사노동시간과 비슷하다. 


남성의 가사노동시간이 늘어난 반면, 노동시장에서 소득을 올리는 노동시간은 줄었다. 업무노동과 가사노동을 합친 전체 노동시간은 어떻게 변했을까. 놀랍게도 전체 노동시간은 1930년대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다. 즉 30년대에는 일주일에 40시간을 밖에서 일하고, 4시간 가사노동을 해서 총 44시간 일했다. 지금은 일주일에 27시간 30분을 밖에서 일하고, 16시간 30분을 가사노동에 써 역시 총 44시간 일한다. 소득이 있는 노동이 업무가사노동으로 바뀌었을 뿐 총 노동시간에는 변화가 없다. ... 


저녁이 있는 삶이 여가시간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업무노동을 가사노동으로 전환할 뿐이라니! 뭔가 배신당한 느낌이 들지 않으면 이상하다. 이런 삶을 추구할 가치가 있을까.


답은 노동시간과 여가시간의 변화가 아니라 시간을 함께 보내는 대상의 변화에서 찾아야 한다. 소득 수준이 비슷한 다른 국가에 비해 우리나라 사람의 행복감이 떨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사회적 관계의 밀도가 낮기 때문이다. 저녁이 있는 삶은 회사에서 일하는 시간이 줄어드는 대신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회식 대신 가족, 친구와 함께 저녁식사를 할 기회가 많아지는 삶이다. 이러한 변화는 가족관계를 공고히 하고 사회적 관계의 확장을 가져올 것이다.   


우리나라 남성이 순수하게 여가에 보내는 시간은 하루 5시간 14분으로 OECD 회원국 평균보다 5분 적을 뿐이다(반면 한국 여성의 여가시간은 OECD 회원국 평균보다 45분 적다). 아마 이 시간이 더 늘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함께 집안일을 하는 저녁이 있는 삶은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 것이다.  "




Posted by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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