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켑렙에서 의사들의 프롤레타리아트화(?)에 대한 비분강개가 넘친다.

예전에 대학 전공에 따른 노동시장 성과에 대해 연구한 적이 있다. 이공계 위기론이 한창일 때, 어떻게 하면 의대를 안가고 이공대를 가게할까를 고민하던 시절이다. 내가 내린 결론은 이공계를 의대만큼 획기적으로 개선하는게 사실상 불가능하므로, 오히려 의대의 노동시장 성과를 줄이는게 쉽다는 것이었다.

아래 그림은 각 전공별로 대학 졸업 후 어떤 직업을 평생 유지하는가이다. 놀라운 사실은 공학계 출신이 대학(원) 졸업 직후에는 좋은 직업을 가지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 직업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50대가 넘어가면 공학계 출신이 차지하고 있는 직업 위계는 사회계열보다 낮아진다. 공학계의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변화 속도에 맞추어서 업데이트하는게 쉬운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반면 의대는 졸업하면 평생 의사다. 실업률 낮고, 직업 안정성 높고, 임금 안정성도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대단히 높았다.



현재 언론 지상에 오르내리는 얘기는 물론 과장이 있을 게다.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의대 출신의 절대 다수가 물질적으로 편안한 삶을 누리가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신문 기사에 오르는 의대 출신의 어려움이 몇 개 에피소드를 넘어, 의사라는 직업의 절대적 직업/임금 안정성에 약간의 크랙이 가는 얘기라면, 요즘 고등학생들은 의대에 지원하기 보다는 이공계에 지원할 눈꼽만한 이유가 생기는 셈이다. 의대 지원이 평생 밥벌이를 보장하지 못한다면, 비슷한 risk-reversion 성향으로 이공계를 지원하는 사람이 늘어날 테니까.

사회 전체의 발전을 위해서 나쁘지 않은 소식이다.



주1: 위 그래프는 대학 전공계열별 취업 조건부 "좋은 직업" 취득 확률이다. 헤크만 2단계 프로빗 모형을 돌린 후 연령별 확률을 구한 것이다. 좋은 직업은 평균 직업 위계보다 1표준편차 높은 직업으로 정의하였다. 직업 위계 계산은 Hauser & Warren (1997)의 교육에 의한 계산법을 따른 것이다. 데이타는 2000년 인구총종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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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이 아니다.

도시의 지붕과 도로를 흰색으로 칠하면 앞으로 20년간 전세계 6억대의 차량이 발산하는 온도 상승 효과를 off-set할 수 있단다. 액수로 무려 1조달러의 이산화탄소 감소 효과가 있다네요.

Miller-McCune에 소개된 기사
Climate Change에 실린 논문

오바마의 그린 stimulus package 덕분에 페인트 사업이 흥할 듯. 아스팔트가 흰색이 되면 선그라스의 수요도 아마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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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켑렙에서 노무현 애도가 찻잔 속의 태풍으로 지나가고 친노의 정치적 부활은 없을 것이라는 의견이 주류군요.

대중의 사랑을 받다 비극에 간 지도자에게 대중이 부여하는 판타지를 과소평가하는군요.

노무현 대통령의 사망으로 친노세력은 정치적으로 부활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가졌습니다. 단, 이들의 부활은 독자세력으로써가 아니라 민주당에 통합됨으로써 가능합니다.

민주당은 노무현이 남긴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를 화두로 진보개혁세력의 통합을 이루어야 합니다. 정동영의 복당을 받아들이고, 친노세력의 복당을 받아들이고, 진보개혁의 적장자로써 자신을 위치지어야죠.

누구나 이 길이 사는 길이라고 알고 있었지만, 정치공학으로 이를 이루고자 했을 때, 국민들의 시선은 싸늘했습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자신의 몸을 던져 이 기회를 마련하였습니다. 이 시점에서의 통합을 정치적 술수로"만" 보는 국민은 소수일 것입니다.

일부 극단적인 친노세력이 조문을 막고 행패를 부렸지만, 지도부에서는 점잖게 타이르는 성숙된 모습도 보여줬습니다. 노혜경 선생이 인터뷰에서 적대적인 분들도 조문을 왔으면 좋겠다고 한 그 모습이 바로 친노의 정치적 부활의 출발점입니다. 유시민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노무현의 계승자로써의 이미지를 통합의 재료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한국에서 진보개혁세력은 호남을 중심으로 한 지역등권파와 수도권 386을 중심으로 한 진보파의 긴장관계로 당을 꾸려가야 합니다. 정동영을 배제하면 전자가 없어지고, 친노세력을 배제하면 후자가 없어집니다. 이 통합으로 전국 정당으로써의 모습도 갖추고, 호남 배제도 극복하고, 진보적 아젠다도 껴앉을 수 있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의 역사를 자랑스러운 민주당의 역사로 만들 수도 있고요.

언제까지 노무현 추모를 돌담길 아래에서 전경버스에 둘러쌓여 할 것입니까. 시청 앞 잔듸 광장이 우리가 있어야 할 그곳입니다. 텅빈 그 광장을 추모객으로 메우는 일은 현 여권 인사에게 물병을 던져서 이룰 수 있는게 아니라, 힘을 모아 정치세력을 만들고 선거에서 이겨야 이루어집니다. 

이런 비극적 계기에 정치적 통합을 이루는 능력을 보임으로써, 국민으로부터 수권 세력으로써의 신뢰를 쌓을 수 있습니다. 꼭 구체적인 정책적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 게 아닙니다. 다음 번 선거는 진보개혁세력의 적장자 민주당이 한나라당을 이기는 선거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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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실업률 3%대이지만… 체감 실업률은 10% 넘어

노동연구원에서 잠재실업자와 부분실업자를 합친 확장 실업률은 10%가 넘는다는 통계를 발표했다.

여러 사람들이 예전부터 한국의 실업률 계산방식은 외국과 달라서 믿을 수 없다는 얘기를 많이 했다. 마치 정부가 구라를 친다는 식으로. 하지만 한국의 실업률 계산 방식은 국제 표준을 따른다. 국제 비교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요 앞 포스트에서도 얘기했듯이 한국은 실업률이 문제인 나라가 아니다. 쓸만한 일자리(decent job)라 얘기되는 정규직 일자리가 부족한 나라다.

공식적으로 쓰이는 국가별 고용 비교 지표는 경제활동인구 중 실업자의 비율을 따지는 <실업률>이 있고, 다른 하나는 전체 인구 중 취업자의 비율을 따지는 <취업자비율>이 있다.

경기 확장 국면에 쓸만한 일자리가 늘어나면 비경제활동인구가 경제활동인구가 되어서 구직자가 되기 때문에 실업률은 생각보다 줄지 않는다. 예를 들어 여성이 집에서 가사와 육아를 할 때의 가치와 구직을 해서 공식 경제활동을 할 때의 가치를 비교해서, 쓸만한 일자리가 늘어난다면 전자의 기회비용이 너무 커지기 때문에, 가사와 육아를 접고 노동시장에 뛰어든다.

소위 얘기하는 체감 경기, 체감 실업률은 <실업률>보다는 <취업자비율>이 더 정확히 반영한다. 한국은 <실업률>로 따지면 OECD 국가 중 앞에서 자리를 다투지만, <취업자비율>로 따진 국제비교에서는 저 뒷자리를 차지한다. OECD의 노동통계를 확인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안다.

비정규직 일자리수를 늘리는 현재의 방식으로는 절대 한국사회의 체감 실업률을 줄일 수 없다. 비정규직 일자리를 늘리는 실업 대책은 IMF 직후 대량실업으로 다수 대중이 거리로 나앉는 상황에서 한시적으로만 쓸 수 있는 정책이다.

경제 위기 시의 한시적 대책을 항구적으로 쓰고 있으니 사람들이 항상 경제 위기라고 느끼는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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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련 "비정규직 사용기간 제한 폐지해야"

비정규직 사용기간 제한이 비정규직의 일자리를 줄여 이들의 실업률을 높이는 효과가 있는 건 아마 맞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실업률은 이 어려운 시기에도 3%대 중반이다. 지금은 실업률보다는 비정규직이 더 문제인 상황이다.

이공계 기피, 의대편중, 교대편중 등등의 젊은층의 패기 상실 현상이 모두 비정규직 문제다. 장기적으로 국가경쟁력을 갉아먹는 암적인 문제다.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여 <고용안정>을 제공하든가, 비정규직의 단위 임금을 정규직과 마찬가지로 내지는 정규직보다 더 높게 상승시켜 <임금안정>을 제공하든가, 둘 중 하나는 해야 사회가 안정되게 돌아간다. 실업률이 5% 정도로 높아지더라도 정규직이 늘어난다면 경제적 불안감은 오히려 사그라들 것이다.

참여정부 시절 둘 중 하나로 방향을 잡아 정책을 피지 못한 것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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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만불이 조금 안되는 한국의 일인당 평균 GDP는 유럽으로 따지면 그들의 1980년대 초반, 미국으로 따지면 그들의 1970년대 후반 GDP다.

당시에 이들 국가가 복지, 고용, 건강, 주택 보조 등에 사용한 비용은 국가 전체 GDP의 대략 20-25% 정도였다. 미국은 10-15% 정도.

이 통계는 미국은 기부금이 전체 GDP의 10% 가까이 이른다는 점을 반영하지 않은거다 (기부금의 상당수가 대학 기부금이긴 하다). 한국은 거의 0%다. 유럽이나 미국이나 전체 국가가 버는 소득의 1/4은 자기 자신이 아닌 그 사회의 공공복리를 위해 쓴다.

이들 국가가 복지국가로 전환한 것은 몇 백 년에 걸친 유구한 전통의 결과가 아니라, 2차 대전 이후 느닷없이 그리된 것이다.

한국은 현재 교육을 제외하면 6%다. 포함하면 11%.

한국은 복지라는 좌파 정책을 펼칠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이 안되는게 아니라, 복지 정책을 펼칠 수 잇는 사회적 능력이 안되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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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라고 불리는 사회는 노블레스가 더 많은 책임을 지는 사회가 아니라, 사회가 더 많은 개입을 하는 경제구조를 노블레스도 (어쩔 수 없이) 용인하는 사회다.

노블레스가 서민보다 벌어들인 수익의 더 많은 부분을 세금으로 내는 진보성이 중요한게 아니라, 똑같은 %를 세금으로 내더라도, 세금을 많이 내는 것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덜한 사회를 만드는게 복지 사회를 이루는데 중요하다.

예를 들어 모두가 50%씩 일률적으로 세금으로 내는 국가 A와 부자는 30%, 빈자는 0%를 내는 진보적 세제를 갖춘 국가 B를 생각해보자.

국가 A에서 한 달에 1000만원버는 의사와 한 달에 100만원 버는 노동자가가 똑 같이 50%씩 세금을 내면 총 세금은 550만원이다. 이를 공평하게 공공 복지에 사용하면, 의사는 500만원의 개인 소득과 275만원의 공공 복지 혜택을 봐서 총 775만원 어치 , 노동자는 50만원의 개인 소득과 275만원의 공공 복지 혜택으로 325만원 어치의 물질적 효용을 누린다.

반면 진보적 세금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세율이 최대 30%인 국가 B를 생각해보자. 1000만원 버는 의사는 30% 세율을 적용받아 300만원을 세금으로 내고, 100만원 버는 노동자는 세율이 0%라서 세금을 내지 않는다. 국가B의 총 세금은 300만원이어서, 이를 공평하게 사용하면, 의사는 700만원의 세후 개인소득과 150만원의 공공복지로 850만원 어치의 경제적 효용을 누리고, 노동자는 100만원의 개인 소득과 150만원의 공공복지로 250만원어치의 경제적 효용을 누리게 된다.

결국 진보적인 세율이 가지고 있지만 절대적 세율이 낮은 B보다는 세율은 진보적이지 않지만 절대적 세율이 높은 A의 세후 소득 불평등이 낮아진다.

Lane Kenworthy에 따르면 스웨덴이나 핀란드 등의 북구 복지 국가는 모든 시민이 50% 정도의 소득을 세금으로 내고, 미국은 모든 시민이 30% 정도의 소득을 세금으로 낸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들 국가의 세율이 진보적일지 모르지만 간접세, 지방세까지 모두 고려하면  모든 시민이 자기 소득의 비슷한 비율로 세금에 기여한다.  소득이 낮은 계층은 소득 중 소비 비중이 높아 간접세가 차지하는 부분이 높고, 소득이 높은 계층은 직접세의 비중이 높을 뿐이다.

한국 사회의 복지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부자에게 세금을"이라는 구호가 아니라, "복지를 위한 전사회적 동참"을 높이는 통합의 정치를 펼쳐, 노블레스를 강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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