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알고 있으면서도 문제를 얘기할 때 마다 잊은 듯 보이는게 바로 출산율 저하는 한국의 고유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전세계의 모든 선진국이 겪는 공통의 문제다. 

 

한국이 출산율이 낮아서 망해가는거라면, 전세계 선진국이 출산율이 낮아서 망해가는 중이다. 출산율에 대해 전문적 지식은 없지만, 인구학 저널 제목이라도 훓어보는 사람이 가진 몇 가지 상식을 공유하고자 한다. 

 

얼마 전에 부총리 자문기구가 휴대폰이 재미있어서 출산을 안한다고 했다는데, 아마 기자가 발언을 과대포장한 선정적 보도일거고, 현재까지의 연구를 한 마디로 종합하자면, "백약이 무효"라는 거다. 그렇다고 정말 모든 정책이 효과가 없다는 건 아니고, 효과가 있기는한데, 제한적이고 상대적이라는거다. 몇 가지만 하면 출산율이 높아진다고 주장하거나, 한국의 낮은 출산율의 원인은 이러저러하다고 함부로 진단하는 사람들은 모두 출산율의 변화 경향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아래 그래프는 요기서 가져온건데, 모든 북구 복지국가들이 2000년대 초반에는 출산율이 상승했지만, 2010년대 이후 상승세가 꺾여서 꽤 큰 폭의 하락을 보이고 있다.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을 보라. 이들 국가에서 다른 국가 대비 복지가 부족해서 출산율이 낮아지겠는가. 스웨덴이 80년대 모성보호제도로 (speed premium) 출산율을 상당히 높였고, 그 제도는 지속되고 있지만, 출산율은 2010년대에 큰 폭으로 하락했다.  

 

 

한국이 유독 낮은 출산율을 보이지만, 인접 아시아 국가들도 출산율이 매우 낮다 (그림 출처). 기억이 확실하지는 않은데, 대만, 홍콩, 한국 모두 현재 TFR이 1 미만으로 떨어졌다. 

 

 

최근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서 가장 적극적 정책을 펼친 국가는 권위주의 체제인 헝가리일거다. 자녀 출산 1명당 약 15만원을 주고, 자녀가 4명 이면, 평생 소득세 면제다. 이 외에도 주택지원, 현금지원이 상당하다. 그 결과 헝가리 출산율이 1.2에서 1.6으로 올랐다. 그런데 헝가리만 오른게 아니고, 아래 그래프에서 보듯이 주변 동유럽 국가 대부분이 올랐다. 일반적으로 여성의 고용율이 높아지면, 출산율이 낮아지는데, 동유럽은 반대로 여성의 고용율이 높아지면서, 출산율도 높아졌다. 동유럽은 사회주의 붕괴 후 경제상황 악화로 출산율이 낮아지다가, 최근 경제발전과 더불어 출산율도 높아졌다. 헝가리의 적극적 정책이 효과가 없는건 아니지만, 심대한 효과를 보인 것도 아니다.

 

 

 

선진국 중에서 출산율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가 프랑스다. 일부 분석에 따르면 강한 가족 규범을 가지고, 여성의 노동참여율이 낮은 국가(e.g., 스페인, 이태리)에서 상대적으로 출산율이 낮고, 전통적 가족 규범이 약하고, 여성 노동참여율이 높은 국가에서 상대적으로 출산율이 높다. 실제로 프랑스에서 신규 출산의 2/3 이상이 혼외출산이다. 결혼과 출산이 비결합될 때 출산율이 높다. 이 때문에 일부 학자들은 출산율이 낮은 문제는 여성이라기 보다는 남성이라고도 한다. 남성이 가족을 부양하는 모델은 출산율이 낮고, 가족과 남성이 별 관계가 없게되면 오히려 출산율이 높아진다는 것. 그런데 이것도 확실하지 않은게, 스웨덴도 약 절반의 출산이 혼외출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산율은 떨어졌다. 

 

그러니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하는건지 알기 어렵다. 

 

그래서 정리하자면, 

 

1. 출산율 저하는 전세계적 현상으로, 어떤 정책도 어떤 국가도 인구의 감소를 막을 수 있을 만큼 출산율을 올리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출산율 저하와 인구 감소는 속도의 문제이지 경향은 거의 모든 국가가 비슷하다. 

 

2. 그렇다고 모든 정책이 의미가 없다는건 아니고, 적극적 재정 지원은 출산율을 일정정도 높이기는 한다. 

 

3. 위에서 언급은 안했지만, 이민도 도움이 된다. 이민자의 출산율도 상대적으로 높다. 하지만 이민자도 결국은 동화되어서 출산율이 native와 비슷하게 낮아진다. 

 

4. 동아시아의 강한 정상 가족 규범은 출산율을 낮추는 요인일 가능성이 높다. 출산 결정은 문화의 영향도 크다. 

 

5. 그렇기 때문에 한국 특화 연구는 한국에서 인구 감소 속도를 늦출 수 있는 최선의 정책이 무엇인지 찾는거다. 다른 국가 대비 "상대적으로" 한국의 출산율 저하 속도가 높은 원인을 찾고, 그 대책을 마련하는게 최선이라는 거다. 출산율 저하의 정확한 원인을 모르니, 여러 정책을 백화점식으로 모색하는건 불가피한 면이 있다. 출산율 제고 정책은 의지가 없어서가 아니라, 몰라서 못하는 것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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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에서 아래 그래프가 상당한 관심을 끌었다. 80대 남성 노인의 높은 자살율이 상당히 충격적이라는 반응이다. 그런데 아래 그래프를 보고 놀라는 분들은 노인 자살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던 분들일거다. 왜냐하면 아래 보이는 고연령층 자살율은 최근 10년간 급감한 수치이기 때문이다. 

 

 

 

12년 전에 포스팅한 숫자를 보면 인구 10만명 당 75세 이상 연령층의 자살율은 100이 넘었다. 일부 통계에 따르면 150도 넘었다. 지금은 50정도다. 10여년 동안 자살율이 절반 이상 줄어들었다. 

 

현재 60대 노인의 자살율은 40-50대와 다르지 않다. 20대보다 30% 정도 더 높은 정도다. 2010년대 초에는 두 배가 넘었다. 70대의 자살율은 2010년대에는 20대의 3배가 넘었지만, 지금은 1.5배 수준으로 낮아졌다. 20대의 5배가 넘던 80세 이상 노인의 자살율도 3배 이하로 낮아졌다. 

 

노인 자살율이 줄어든 가장 큰 원인은 보편적 사회보장제도의 확대이다. 노인 소득을 높이고, 의료보험 커버를 높인 결과다.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여전히 큰 문제지만, 박근혜 정부 이후 노인 사회보장을 꾸준히 확대한 결과, 자살율도 줄었다. 

 

향후 국민연금의 보장성, 요율, 수령 연령 변동 등이 필요하겠지만, 노인의 삶도 중요하다는 인식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현재 한국은 단기적으로 노인인구의 보편적 보장성을 국민연금과 연동해 더 높이는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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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 유지에나 헐떡이고 1%대 성장률을 간신히 버티는 당뇨병 경제가 앞으로 10년쯤 지속되는게 절대 이상한 예측이 아닙니다. 기존에 존재하는 망국론 따위들하고는 차원이 다르게, 느리지만 관찰 가능하고 예측 가능하게 다가오는 현상에 가깝습니다. 이미 한국 경제 성장률이 작년에 1.4%로 주저 앉았습니다. 추세 하락이 더 이어져오고 있고요. 문제를 굉장히 과소평가하고 계시네요

 

위 박스 글은 "업데이트된 느낌적느낌 한국 망국론"이란 포스팅에 달린 댓글의 일부다. 인구만으로 경제를 예측하는건 틀릴 가능성이 많다고 했더니, 문제를 과소평가하고, 인구문제를 정반대로 이해해서 심각성을 줄이려고 애쓴다고 비난하는 댓글이었다. 그런데 오늘 발표된 1분기 성장률은 전년 동기 대비 3.4%다. 1%대 당뇨병 경제가 10년쯤 지속된다는 주장이 틀렸다고 판명나는데 채 한 달도 걸리지 않았다. 한 달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예측이었던 것. 

 

인구변화에 기반해 사회를 예측하는 건 필요한 사고실험이지만, 그 예측이 빗나갈 가능성도 매우 크다는걸 인식해야 한다. 며칠 전에 국민의힘 쪽 패널이 앞으로 5년 간 보수 유권자가 150만명이 돌아가시기에, 보수가 위기에 처했다는 식으로 주장하는 기사를 봤다. 다른 모든 변수가 동일하고, 인구만 바뀌면 당연히 그렇게 되겠지만, 과연 다른 모든 변수가 동일할까? 이 기회에 인구 기반 예측의 한계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는 것도 좋겠다 싶다.  

 

우선 미국의 사례를 들어보자. 미국에서 도시로의 인구유입이 늘어나고, 소수인종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은 정해진 미래(였)다. 도시 인구의 민주당 지지율이 비도시보다 훨씬 높고, 소수인종의 민주당 지지율이 백인보다 높은 것도 사실이다. 이 둘을 합쳐서 나온 주장이 인구변화 때문에 앞으로 민주당 장기 집권이 가능할거라는 전망이다. 인구변화를 볼 때 장기적으로 민주당 우위가 정해진 미래라는 것.  한 때, 특히 2000년대 초반에, 많은 사람들이 했던 주장이다. 폴 크루그만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이 예측은 두 가지를 놓쳤다. 하나는 게리멘더링으로 민주당의 하원 선거가 불리해졌다는 거고, 다른 하나는 소수 인종에서 공화당 지지가 늘고 있다는 거다. 현재 흑인, 라티노, 아시아계 미국인 모두에서 공화당 지지가 증가하고 있다. 미국에서 사회학자들에게 인기 없는 주장이지만, 가장 중요한 사회학적 업적 중의 하나가 William Julius Wilson의 <줄어드는 인종의 중요성, The Declining Significance of Race>다. 1980년에 출간된 책인데, 매우 큰 논란이 되었지만, 이 책의 주장이 상당부분 맞았다. Wilson의 책이 경제적 운명에 대한 것이라면, 정치적 태도에서의 줄어드는 인종의 중요성은 이제 시작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종 간 격차보다는 인종 내 격차가 더 중요해지고, 경제적 처지 결정에서 인종의 상대적 중요성이 감소하면서, 소수 인종이 자신의 문화적 선호와 성향에 따라 공화당을 지지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여기서 배워야할 교훈은, 인구 변화만으로 미래 정치를 예측하는 일의 명백한 한계다. 인구 기반 미래 진단은 그 인구 구성원의 현재 속성이 그대로 유지된다는 가정 하에 가능하다. 하지만 이는 매우 강한 가정이다. 대부분의 역사는 이 가정에서 빗나갔다. 제가 대학원에서 들었던 수업 중 하나가 Dem Tech이라고 불리는 인구학 방법론인데, 이 때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이러저러한 복잡한 방법론으로 예측한 장기 인구 예측 중이 맞는게 거의 없지만, 그래도 하는게 인구 예측이라는 것이다. 인구변화는 인구행동에 기반하고 인구행동은 인간의 선택인데, 외부적 상황이 바뀌면 사람들은 선택을 바꾸고 인구행동이 변한다. 그러니 선택의 지속성을 가정한 인구예측은 틀리게 된다. 

 

한국 사례를 보자면, 제가 10여년 전에 했던 예측 중에, 서울의 보수화와 경기도의 진보화가 있다 (예를 들면, 요기, 요기, 요기). 그 때는 지금과 달리 경기도보다는 서울에서 민주당 지지세가 높을 때였다. 하지만 서울 중산층과 중하층 30대의 경기도 이주 가속화, 서울의 고령인구 비중 증가로 서울 보수화, 경기 진보화를 예측하였다. 이 예측은 맞았지만, 이와 더불어 예측했던게, 86세대가 50대가 될 때, 20~50대의 인구가 60대 이상 인구를 압도할 것이기에, 한국의 정치사회적 진보화가 가속화되리라는 것이다. 블로그에 썼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사석에서는 몇 분들에게 했던게 분명하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두 가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는데, 하나는 청년층의 보수화고, 다른 하나는 인구전반의 보수화다. 

 

그러면 정치적 예측과 경제적 예측은 다르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경제를 예측하는 분들 중에 AI의 지금과 같은 폭발적 성장을 예측한 분이 얼마나 되고, 앞으로의 효과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많은 분들이 AI 때문에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걱정하지만, 이 걱정은 기계의 발전과 더불어 유구한 역사를 가진 걱정으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실현된 적이 없다. 주장은 늘상 이 번에는 다르다는거다. 하지만 정말 이 번에는 다를 것인가? 

 

자동화와 관련해서 가장 많은 연구를 진행한 학자 중의 한 명인 David Autor는 반대되는 주장을 한다. AI가 중산층재건하는데 도움이 되고, 일자리가 없어져서 문제가 아니라 역으로 일할 사람이 없어서 문제가 될거라는 거다. AI가 없애는 일자리가 분명히 있겠지만, 인구 감소는 노동력 부족을 낳아서 AI 도입에 대한 저항을 완화시킬 것이다. 그 때문에 인구 감소는 자동화를 촉진하고 (한국은 안그래도 자동화 1등 국가다), 자동화 촉진은 1인당 경제성장에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한국 청년층의 높은 교육수준은 자동화 촉진을 다른 어느 사회보다 용이하게할 것이다. 

 

<높은 교육수준 + 인구감소> ➔ <낮은 AI 도입 저항성> ➔ <경제발전> ➔ <이민 유입 증가>  

 

이런 식의 경로를 밟지 않을 것으로 확신할 수 있는가? 인구 기반 "정해진 미래"는 좋게 표현하면 사고실험에 적절한 방식이고, 현실에서는 마케팅적으로 유용한 표현이지 실제 사회적 현상을 설명하는 방법론은 아니다. 인구 변화에 기반한 미래 예측은 "도전과 응전"의 상황을 더 명확히 인식하기 위해 유용한 것이지, 그 자체가 정해진 미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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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정의당 0석

정치 2024. 4. 14. 02:42

요즘 주로 들여다보는게 미국사회라서 블로그 포스팅이 예전보다 뜸한데, 그래도 총선에 대한 피상적 감상 몇 개는 있다. 

 

하나는 총선예측이다. 여론조사 회사와 관계자는 당연히 조사 데이터에 근거해서 예측하지만, 나름 논리를 가지고 총선 예측을 했던 몇 분이 생각난다. 

 

한겨레 성한용 기자는 3월에 "국힘 1당 확실"이라고 예측했다. 한겨레 신문에 그 논리를 실은 적도 있다. 이외에도 잘못된 예측을 한 분들이 꽤 된다. 이에 반해 유시민은 1월에 쓴 칼럼에서 총선은 민주당 안정적 우세로 진단했었다. 

 

제가 아는 가장 쪽집게 예측을 했던 분은 박종희 교수다. 논리인즉, 한국에서 대통령 임기 중반의 국회의원 선거는 대통령 중간 평가 선거이고, 그 해 3-4월 대통령 국정 지지율 평균(34-38%)에 의석수 300을 곱하면 대략적인 여당의 의석수를 추정할 수 있다는거다. 그래서 102-114석 (평균 108석)이 예상된다는 것. 이 논리는 대통령제와 실질적 양당제를 채택하고 있는 한국 정치에서 국회의원 선거의 의미를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108석을 제외한 나머지 의석이 어떻게 유권자의 선택을 받는가라는 질문이 남는다. 거대 양당이 아닌 제3당의 득표와 의석은 그 나름의 분석을 필요로 한다. 이 번 선거에서 녹색정의당이 의석을 얻지 못한 것은 상당한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바로 한국 유권자 니즈의 보수화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앞으로 정책 전선이 우측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 몇 년 전에 포스팅한 적이 있는데 (요기, 요기), 한국에서 빈부격차가 큰 문제라는 인식과  분배 개선이 필요하다는 인식은 계속줄어들었고, 자신의 계층을 중층 이상으로 여기는 인식은 계속 늘었다. 바로 아래 포스팅에서 얘기했듯, 삶의 만족도는 계속 높아졌다. 그래서 데이터를 분석해 보면 정부의 개입을 통한 2차 분배 정책에 대한 지지도는 계속 줄어들었다. 특정 집단에서만 그런게 아니고, 전반적인 경향이다. 

 

녹색정의당이 원외 정당이 된 이유는 제도적 측면, 정치지형적 측면, 행위자의 전략적 측면에서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고 제가 잘 아는 것도 아니지만, 계층론의 관점에서 보면 정의당으로 상징되는 진보에 대한 정책적 니즈와 대표의 필요성이 줄어들었다. 지역구에서는 중도진보인 민주당을 찍지만, 그래도 한국에서 보다 진보적인 정당의 원내 진입과 이들의 선명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인구가 줄었다는 것. 

 

이를 한국의 불평등 증감 경향과 함께 보면 그 의미가 더 명확해 진다. 한국의 불평등은 90년대 중반이후 2008년까지 최하층의 소득 하락과 그 이상 계층의 소득 상승으로  증가했고, 최근 15년 이상 최하층의 소득 상승으로 줄어들었다. 불평등이 가장 심각한 사회문제라는 인식이 줄어드는 객관적 기반이 있다. 중하층을 포함한 대부분의 중산층이 경제적 처지의 개선을 경험했기에, 자신의 경제적 지위를 유지하려는 보수적 성향을 띄게 된다.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를 두고 논쟁했던 박근혜 대통령 당선 당시의 진보 호시절은 당분간 오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경제가 어떻게 변화할지 모르겠지만, 급격한 위기에 빠지지 않는 이상, 진보와 재분배의 확대보다는 체계적 관리를 통한 안정적 성장을 유권자들은 더 원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환경에서 진보 정책의 아젠다를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는가? 다르게 말하자면, 유권자의 전반적 보수화 경향 속에서도 어떻게 진보적 정책을 실현할 수 있을까? 한 방법은 정책의 보수화를 받아들이면서 점진적으로 일부 분야에서라도 진보적 아젠다를 실현하는 것이고 (클린턴), 다른 하나는 좁은 기회의 창을 활용하는 것이다 (오바마). 아무리 유권자가 보수화되어도 경제 위기 때는 사회적 안전망에 대한 니즈가 생기고 진보 정책을 밀어붙일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오바마가 2008년 위기 때 Affordable Care Act를 통과시킨 것처럼.  진보 정책을 준비하고 있으면 이 때 정책을 법제화할 수 있고, 이 후 진보적 정책은 당연히 누려야할 국민의 권리가 된다. 이 때문에 미국 유권자는 항상 유럽 유권자보다 보수적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정책 수립의 역사적 변화는 유럽과 미국의 방향이 같았다. 

 

좁은 기회의 창이 열릴 때 다수파가 될 수 있도록 전략을 짜는게 좋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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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Happiness Report 올해 보고서가 며칠 전에 출간되었다. 

 

OECD 국가로 한정해서 한국인의 행복도가 낮다는 보고서가 나올 때는 언론에서도 많이 다루고, SNS에서도 뜨거운 주제가 되었지만, 전세계 국가를 포함한 보고서는 나와도 대체로 조용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의 행복도가 낮지 않기 때문이다. 전체 143개 국가 중에서 한국은 52위로 높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심각하게 낮은 것도 아니다. 일본이 51위, 포르투갈이 55위다. 비슷한 경제발전 정도의 국가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낮은거지, 절대적으로 다른 나라보다 월등하게 사람들이 불행하게 느끼는 국가가 아니다. 

 

전에 비슷한 내용의 포스팅을 했더니 어떤 분이 "매우 만족"의 응답비율이 다른 국가보다 낮아서 한국은 불행한 국가라고 하더라. 이러저러하게 기준을 바꿔서 어떻게 해서든 한국은 불행해야만 한다는 강박.

 

행복을 측정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하나는 어제 오늘 느끼는 특점 시점의 감정이고, 다른 하나는 전반적인 삶의 만족도다. 보통 0-10점으로 물어보고 이걸 Centril ladder라고 한다. Centril ladder의 평균값으로 국가 간 비교를 많이 한다. 이 때 삶의 만족도를 결정하는 가장 강력한 요인은 1인당 GDP다. 사회적 관계, 신뢰 등 다른 요인은 무의미하다는게 아니고, 경제발전이 만족도에 가장 크게 영향을 끼친다. 

 

한국은 21세기 동안 가장 발전한 국가다.2006-2010년의 행복도와 비교해서 한국인의 행복도는 0.414 포인트 올랐다. 가장 많이 오른 순으로 분류해서 48위인데, 한국보다 더 행복도가 증가한 국가들이 어떤 국가인지를 보면 한국의 행복도 증가가 상당히 큰 폭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소위 말하는 선진국 중에서 한국보다 행복도 증가분에서 앞서는 국가는 거의 없다. 아이슬란드와 대만 정도. 이 번 보고서에서 행복도 1위를 차지한 핀란드가 0.162 포인트 늘었고, 일본은 전혀 변화가 없다. 2012년 보고서에서 일본은 한국보다 국가 간 랭킹에서 13단계 행복도가 높았지만, 지금은 차이가 없다. 연도별로 1단계 앞서거니 뒷서거니 한다. 미국은 .545 포인트 줄었다. 

 

한국은 2020년 보고서와 비교하면 랭킹이 61위에서 52위로 올랐다. 전체 연구대상 국가 숫자가 153개에서 143로 줄긴 했지만, 백분위 40등에서 36등으로 올랐다. 한국이 경제는 발전했지만, 예외적으로 불행한 국가라는 인식은 이제 거둘 때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연령대별 행복도에서 한국은 젊은층의 상대적 행복도가 장년층이나 노년층보다 높은 국가다. 국가별 랭킹에서 전체는 52위인데, 30대 이하 젊은층(Young)은 52위, 노년층(Old)은 59위다. 30대와 40대 초반(Lower Middle Age)은 45위로 상대적 랭킹이 가장 높다. 86세대가 속하는 장년층(Upper Middle Age)은 55위로, 젊은층이나 젊은 장년층보다는 낮다.

 

아래 그래프는 2024년 보고서의 부록에 실려있는 연령대별 Centril ladder 점수 값 변화다. 연령대별로 증가폭은 다르지만 모든 연령층에서 2006-2009년 대비 2020-2023의 값이 높다. 청년층의 만족도는 항상 가장 높았다. 청년층의 불만이라면 노년층이나 장년층에 비해 상대적 증가폭이 높지 않다는 정도.

 

아래 그래프에서 명확히 보이는 노년층 삶의 만족도 증가는 2008년 이후 지속된 취로사업 등 노년층 소득 확대를 위한 정책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요약하면, 경제는 계속 발전하는데 삶의 만족도는 지속적으로 낮아진다거나, 전체 경제는 좋아지고 다른 연령층은 꿀을 빠는데 젊은층은 더 불행해지는 그런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인의 삶의 만족도는 개선되었고, 다른 국가와 비교해서 낮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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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에서 20대 남녀 이념차가 한국에서 제일 크다는 FT 분석에 대한 기사를 냈다. 

 

jtbc 기사에서 페미니즘의 확산 이후 청년층의 성별 지지정당 격차가 커졌고, 특히 청년 남성에서 보수정당 지지가 높아졌다는 내용이 있다. 

 

그런데 청년 남성의 보수 정당 지지가 높아진 것을 어떻게 해석하는게 좋을까? 얼마전 넥슨 집게손 논란에서 이대남이 도덕적 아노미를 겪고 있을 가능성을 제기한 바 있다. 그 때는 직관에 의해서 말했던 건데, 데이터를 분석하다보니 실제로 그럴 가능성이 있어보인다.

 

아래 그래프는 2004년 이후 지지 정당이 있는 사람 중 지지정당과 이념성향이 일치하는 비율이다. KGSS 한국종합사회조사를 분석한 것으로, 지지정당을 보수와 진보로 나누고, 이념성향을 묻는 5점 척도 질문에서 중도를 제외한 진보와 보수로 묶어서, 지지하는 정당이 있다고 밝힌 사람 중에 지지정당과 이념성향이 일치하는 비율을 본 것이다. 

 

보다시피 지지 정당과 이념성향의 일치도는 꾸준히 늘었다. 21세기 초반에는 50% 정도였는데, 2021년 조사에서는 65%에 이른다. 전반적인 학력 상승, 지역 기반 정당 대결에서 정책 대결로의 전환으로 인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성*연령 그룹별로 변화를 보면 상당히 특이한 현상이 관찰된다.

 

아래 그림(B)는 18-34세 남녀, 35-59세 남녀의 지지 정당과 이념성향의 상대적 일치도를 본 것이다. 여기서 상대적이라고 하는 이유는, 그룹별 일치도에서 전체 응답자의 일치도 변화를 뺀 것이기 때문이다. 위의 그림(A)에서 관찰된 지지정당-이념성향 일치도 상승이 모든 그룹에서 나타나면 그래프는 모든 수평(flat)의 직선을 보일 것이다. 

 

그림(B)에서 보다시피, 모든 그룹이 0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대략  수평한 선을 보이는데, 유독 18-34세 청년 남성만 2021년 조사에서 지저 정당과 이념 성향의 상대적 일치도가 떨어진다. 이념적으로 진보라고 답하면서 지지정당은 보수인 청년 남성의 비율이 늘었기 때문이다.

 

2010년 이전에는 청년 여성보다 청년 남성의 이념-지지정당 일치율이 높았는데, 그 이후에는 반대의 현상이 보이기 시작해서, 청년 남성보다 청년 여성의 이념-지지정당 일치율이 상대적으로 높아지더니, 2021년에는 청년 남성의 일치율이 갑자기 떨어져 그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청년남성의 이념적 성향과 지지 정당이 일치하지 않는 아노미적 현상이 관찰된다는거다. 이게 2021년의 자료가 튀는 것인지, 이런 현상이 고착화되는 것인지, 이 분석으로는 알 수 없다. 2023년 KGSS 자료가 나오면 좀 더 분석이 가능할 것이다. 

 

 

Ps. 18-29가 아닌 18-34로 분석한 이유는 표본수를 늘려서 reliability를 높이기 위해서다. 18-29로 분석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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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ancial Times 기사

 

이 기사에 나온 아래 그래프 때문에 SNS가 난리가 났다. 모두들 한 마디씩 거드는 중. 분석한 4개 국가 모두 청년층 여성이 남성보다 더 진보적이고 성별 정치 성향의 격차가 벌어지는데, 특히 한국의 사례가 가장 극단적으로 나타났다.

 

 

기사의 임팩트가 크다보니 이 분석에 제대로 된 분석인지 많은 분들이 검증에 나섰다. 하지만 정확한 자료 replication에 성공한 분들은 없는 듯 하다. 그래프의 주석을 보면 한국은 KGSS조사의 지지정당 항목을 분석한 것이고, 따라서 어떤 정당을 진보와 보수로 묶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전체 인구의 추세에 맞춰 조정 (adjusted for time trend in the overall population)"했다고 한다. 뭔가 추세 분석을 해서 그래프를 스무딩했다는건데 정확히 어떻게 했는지 알 수가 없다. 

 

저도 이것저것 해 봤는데 동일한 그래프를 얻는데는 실패했다. 하지만 FT 기사의 핵심 메시지, 그 중에서 한국 관련 분석은 타당해 보인다. 아래 그래프는 KGSS를 이용해서 지지 정당의 성별 격차 추세를 분석한 것이다. (A)는 18-29세의 청년층으로 한정한 것이고, (B)는 전체 응답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다. 0보다 큰 값은 여성이 더 진보계열 정당을 지지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고, 0보다 작은 값은 남성이 더 진보계열 정당을 지지하는 것이다. 0에 가까우면 성별 격차가 없는 것이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아래 그래프는 전반적으로 진보나 보수 정당 중 어느 쪽을 지지하냐가 아니라, 이 지지 경향의 성별 격차를 봤다는거다. 

 

보다시피 청년층은 시간이 갈수록 여성과 남성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여성이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경향이 남성보다 크다. 2015년 이후 급작스럽게 변화한게 아니고, 21세기 전반에 걸친 경향적 변화다.  이에 반해 전체 국민으로보면 성별 분화가 보이지 않는다. 시기별로 진보 정당이 더 지지를 받기도, 보수 정당이 더 지지를 받기도 하지만, 성별로 다른 추세적 경향이 나타나지 않는다.  

 

여러 분석에서 반복적으로 관찰되는 것으로 보아, 청년층 세대 정치 태도의 성별 분화는 확실한 경향이다. 

 

세대 얘기만 나오면 소환되는 약방의 감초 만하임의 세대 분석 중에 "세대 내 분화"라는 개념이 있다. 세대 얘기하면서 거의 언급되지 않는 개념이지만, 청년 세대의 특징은 다른 세대와의 차이보다는 청년 세대 내부 분화가 더 특이점이다. 

Ps. 위 그래프는 (1) KGSS 각 연도별 지지 정당을 보수 정당과 진보 정당으로 구분한 후 (변수명: PRTYID03~PRTYID21, PRTYPR04~PRTYPR21) (2) 성별 진보/보수 지지 비율을 단순 계산한 후, (3) 진보 지지율에서 보수 지지율을 빼서 성별로 "진보 지지율의 상대적 우위"를 계산한 후, (4)  "진보 지지율의 상대적 우위" 의 성별 격차를 본 것이다. 이렇게 계산하면 연도에 따라 전체적으로 진보계열 정당의 지지율이 높아지거나, 보수계열 정당의 지지율이 더 올라가는 효과가 통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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