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팀원 중 한 명인 David Brookman의 연구 디자인 요약 트윗.
기본소득 실험 결과인데, 어제 연구 결과가 풀리면서 지금 가장 핫한 사회과학 연구/뉴스가 되었다.
개인 당 한 달에 1천불(한화 140만원)을 1천명에게 3년간 아무 조건없이 제공한 후 고용, 건강, 교육 등등의 측면에서 어떤 변화가 있는지 살펴보았다. 어마어마한 자금이 들어간 프로젝트인데, 자금을 댄 사람은 ChatGPT를 개발한 Sam Altman이다. 6천만불, 그러니까 800억이 들어간 실험이다.
위에 링크를 건 연구 디자인 요약을 보면 알겠지만, 가능한 모든 편향과 윤리적 문제를 통제하였다. 예를 들어, 기본소득을 받아 소득이 늘면 정부에서 받는 혜택이 감소할 수 있는데,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주정부와 협의해서 특별법을 통과시키기까지 했다. ATUS라고 시간사용에 대한 조사가 있는데, 이와 유사한 조사도 병행하여, 기본소득을 받아서 일을 덜하면 어떤 활동을 하는지도 추적했고, 크레딧 회사의 자료와 연계해서 신용점수는 어떻게 바뀌었는지도 추적했다. 기타 다른 행정자료와도 연계했다고 한다.
연구 보고서는 기본소득 주창론자에게 매우 실망스러운 결과다. 기본소득이 노동공급은 줄이지만, 정신 건강을 개선시키지도 않는다 (처음에 잠깐 기본소득을 받으면 정신건강이 좋아지지만 2년 차에 바로 원상복귀한다). 기본소득이 하기 싫은 노동은 덜하고 더 나은 노동을 하게만드는, 그러니까 좀 더 하이퀄러티 일자리를 추구하게 만드는 효과도 없다. 기본소득이 건강을 개선해 더 일을 할 수 있게 되는게 아니라 장애로 인해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응답이 증가한다 (기본소득을 받은 초기에 건강 검진을 받고 장애판정을 많이 받기 때문일 수 있음). 이에 반해 기본소득을 받는다고 일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어려움(예를 들어, 차가 없어서 출퇴근이 어렵다 등)을 줄이는 효과는 전혀 없다. 기본소득이 노동공급을 줄이는 효과는 상당히 커서 기본소득 1달러당, 약 20센트에 해당하는 만큼의 노동공급과 노동소득 감소가 관찰된다.
기본소득을 받으면 노동시간은 줄어들지만, 자녀 양육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이렇게되면 세대간 계층이동에 긍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하지만, 결과는 기본소득을 받는 사람들의 자녀양육 시간이 오히려 줄었다. 통계적 유의도는 없지만, 계수값은 부정적이다. 개인적으로 이 결과가 가장 실망스러웠다. 1960년대 캐나다 연구에서 기본소득을 제공하면 노동시간을 줄지만, 자녀를 돌보는데 투자하는 시간은 늘었다는 보고도 있었다.
그래도 기본소득의 긍정적 효과가 전혀 없는 건 아닌데, 하나는 청년층에서 기본소득 수령자가 고등교육을 조금 더 받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사업같은 기업가 정신이 높다졌다는 것. 앞으로 수많은 추가 연구들이 쏟아져나올 것이기에, 기본소득이 어떤 분야에서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1960년대에 기본소득 아이디어가 흥하다가 사라진 가장 큰 이유는, 미국과 캐나다의 실험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 기본소득이 노동공급을 줄이는 효과 때문이었다. 1960년대 연구 결과에 대해서 여러 비판이 있었다. 이 번에 더 큰 규모로 훨씬 더 많은 것을 통제한 후 기본소득의 효과를 검증했는데, 기본소득이 노동공급을 줄인다는 결과에 변함이 없다. 그렇다고 기본소득의 다른 효과가 (현재까지의 결과로 보면) 매우 긍정적인 것도 아니다. 기본소득에 큰 긍정적 효과가 있었다면, 이 번 첫 결과 발표에 포함되지 않았을까 싶다.
개인적으로 기본소득에 대해서 미지근하지만 긍정적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기본소득을 하기 위해서 희생해야 하는 다른 프로그램을 생각해볼 때 그 긍정적 효과는 최대한 좋게 해석해도 제한적일 가능성이 크다. 한국에서도 기본소득으로 많은 것을 해결하겠다는 판타지는 버리고, 구체적인 정책망을 촘촘히 하는데 더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Ps. "노동"에 대해서 두 가지 태도가 있는데, 하나는 자아 실현의 방안이라는 긍정적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소외와 착취의 대상이라는 부정적 입장이다. 원래는 전자여야 하는데, 자본주의에서 후자가 되었다는 입장도 있고. 진실은 항상 어중간해서, 노동은 이 양자의 측면을 모두 가지고 있다. 현재까지의 실험과 역사는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프로젝트보다는, "노동을 통한 자아실현"이라는 프로젝트가 더 성공한거 아닌가 싶다. AI가 이 흐름을 근본적으로 바꿀 것이라는 주장도 적어도 아직까지는 그리 설득력이 있어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