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직후에 변화하는 기관 신뢰도에 대해서 포스팅했었는데, 크게 봐서 정부 기관과 기업의 지도층에 대한 신뢰도는 높아지고, 시민사회 지도층에 대한 신뢰도는 낮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그런데 정부 관련 기관 중에서 두 곳만 신뢰도가 낮아지는 예외가 있었는데, 바로 대법원과 군대다. 아래 그래프가 2003년 이후 대법원, 군대, 국회의 지도층을 "거의 신뢰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비율이다. 2023년에도 국회에 대한 불신이 군대나 대법원보다 여전히 2배 이상 (대략 60% vs 30%) 높지만, 2003년에는 3배 (대략 75% vs 25%)였다.
국회에 대한 신뢰는 지속적으로 증가한 반면, 군대와 대법원에 대한 신뢰는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2023년이 마지막 조사였고, 올해 KGSS 조사가 다시 실시되는데, 한국의 여러 기관에 신뢰가 어떻게 변화할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대법원과 헌재를 구분해서 인식하는지 아니면 위 그래프가 법원에 대한 전반적인 신뢰도를 나타내는지 모르겠지만...
아울러 "피청구인은 재판관 선출을 둘러싼 여야의 대립이 극심한 상황에서 국회로부터 재판관 선출 통지를 받기도 전에 국무회의나 담화문 등을 통해 여야 합의를 전제로 재판관을 임명하겠다는 취지로 발언하는 등, 국회가 선출한 3인을 재판관으로 임명하지 않겠다는 거부 의사를 미리 종국적으로 표시함으로써 헌법상의 구체적 작위의무를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재판관들은 다만 "임명 거부가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을 진행하는 헌재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목적 또는 의사에 기인했다고까지 인정할 증거나 객관적 자료는 발견되지 않는다"며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수 없어 파면을 정당화하는 사유가 존재한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김복형 재판관은 다수의 견해인 기각 의견에 동참하면서도, 재판관 후보자 임명 보류가 '즉시 임명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라며 위헌·위법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된다. 위헌에 해당하는 거부 의사를 미리 종국적으로 표시했지만, 헌재를 무력화할 "목적 또는 의사에 기인"했다고 인정할 증거나 객관적 자료가 없어서 파면할 수 없다니. 실질적으로는 무력화하지만, 그럼에도 그 이유가 헌재 무력화라고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으면 파면 사유가 아니라고?
위반의 경중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도 충분히 동의할 수 있는데, 한덕수 탄핵 시점에서의 재판관 임명 거부는 대통령 탄핵이라는 중차대한 국가사를 헌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위반의 경중에서 이 보다 더 중하기도 어렵지 않은가? 지속적 재판관 임명 거부가 헌정의 중지로 이어지는데 국민의 신임을 배신한 경우가 아니라니.
"지체없이"도 상식적 차원에서 규정해야 정상인거 아닌가?
2명이 각하고, 기각 중 1명은 임명 거부가 위헌도 아니라는 입장이라 어차피 탄핵은 안되지만, 가장 많은 4명이 제시한 위 논리는 이해가 안된다. 차라리 각하라면 이해하기 쉬운데.
많은 분들이 소개했던 (예를 들어, 한겨레 기사) Levitzky & Ziblatt 의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를 뒤늦게읽었다.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한 책이지만, 한국의 현재 상황을 고통스러울 정도로 너무 잘 설명하는 책이기도 하다.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권위주의 정권이 어떻게 선거를 통해서 집권을 하고; 민주주의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연속적인 일련의 조치로, 국민들이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무너지는지; 과거와는 다른 양상의 민주주의 후퇴를 잘 설명하고 있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헌법과 법률 뿐만 아니라 행위자의 규범이 중요하다는 것도 100% 공감하는 내용이다. 이 부분은 제도에 관심이 있는 모든 사회과학도에게는 아마 상식일 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강조하고 있는 또 하나의 내용은 정치엘리트의 중요성이다. 듣기에 따라서는 당혹스러울 수도 있는데, 민주주의를 지키는데 더 중요한 것은, 적어도 게이트키핑이라는 측면에서, 국민의 민도가 아니라 엘리트의 역할이라는 주장이다. 극단적 선동을 일삼는 사람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고, 이들에게 호응하는 대중도 드문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가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으로부터 민주주의를 보호하는 힘은 정당과 정당의 지도자들이 행하는 게이트키퍼로서의 역할이다. 정당의 지도자들이 게이트키핑 역할을 하지 않는다고 민주주의가 바로 무너지는 것은 아니지만, 민주주의는 극단주의자, 권위주의자의 위협에 벌거벗겨진체 노출된다.
미국에서 폴리티컬머신이라고 불리우던 지역의 정치지도자가 모든 후보를 좌우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런 비민주적 절차를 개선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가 프라이머리, 코커스 등의 국민참여 후보선출 제도다. 한국도 정당을 민주화하고 경선을 도입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들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프라이머리 제도가 트럼프의 등장을 가능케했다. 민주주의를 통해 무너지는 민주주의.
현재 한국은 국민의힘 지도부가 민주주의를 위한 게이트키핑을 하기보다는 앞장서서 계엄과 쿠데타를 옹호하고 있다. 얼마전 이재명 대표가 국민의힘이 100일 안에 윤석열을 부인할 것이라고 말했는데, 국민의힘이 윤석열을 계속해서 옹호하기 보다는 거리를 둔다면 오히려 긍정적 변화이다. 과연 그럴 것인가?
"국민의힘이 극우세력을 신속하게 포용하면서 극우 노선을 수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과는 다른 정치적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 이번 독일 총선에서 보수정당인 기독민주당과 바이에른 기독사회당 연합이 1위를 하고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2위를 했다. 기독민주당은 AfD와는 절대 연정하지 않겠다며 극우와 확실히 선을 그은 바 있다. 이 같은 선 긋기가 중요한데, 국민의힘은 그와 정반대로 가고 있어 향후 국민의힘 내에서 극우세력의 주류화가 공고해질 수 있다. ... 후폭풍이 오랫동안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설령 국민의힘 내에서 극우가 지배적인 세력이 되지 않는다 해도, 극우가 외부에서 계속해서 여론에 영향을 미치고 결집할 가능성이 높다. ... 더 강경한 극우 메시지를 내세우는 새로운 정치인이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헌재의 탄핵 선고가 인용으로 나와도 갈 길은 매우 매우 멀다.
Ps. 이 책에서 칠레가 미국이 지원했던 쿠데타의 어두운 과거를 멀리하고 1990년 이후 지난 30년간 모범적 민주주의를 펼치고 있다고 마지막 장에서 얘기한다. 희망적 사례인데, 칠레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전환점은 사회당과 기독민주당 정치지도자들이 모여서 합의한 "완전한 민주주의를 위한 전국 협정"이고, 그 내용은 주요 사안을 두 당간의 합의로 처리한다는 것이었단다. 현재 한국에서는 그 씨앗도 보이지 않는 내용이다.
Pps. 돌이켜보면 한국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양 당의 공유된 가치는 86운동권 세대가 양 당 모두에 포진하고 서로 친분을 유지했던 결과이기도 하다. 아이러니하게도 김영삼의 3당 합당이 이를 가능케했다. 이와 달리 현재의 여야 지도부는 출신 성분이 다르고 서로 간의 접점면이 과거보다 작다.
최근 일련의 사태를 겪기 전까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규범과 이를 체화한 두터운 관료, 시민층이 한국에 형성되어 있다고 생각했다.계엄에 저항했던 군인과 홍장원 등을 보면서그 생각에 추호도 의심이 없었다. 그런데 불법 계엄과 그 후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 그리고 어제 윤석열의 석방을 보면서 한국에서 국가와 시민사회의 균형, 민주주의 제도를 가능케했던 동력은 어디에 있는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많이들 알고 있듯, 애쓰모글루와 로빈슨은 <국가의 실패>와 <좁은 회랑> 논의에서 제도(institution)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런데 제도는 법률, 정부 조직 같은 형식적 제도 뿐만 아니라 문화와 관습, 사람들의 믿음 같은 비형식적 제도를 포괄한다. 형식적 제도는 그 자체로는 원래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 모든 제도는 허점이 있다. 그 허점을 악용하지 않고, 제도의 취지에 따라 작동하도록 만드는건 그 제도 내에서 플레이하는 플레이어들의 태도, 관습, 문화다.둘은 물론 같이 발전하는 것이지만, 사회학에서 베버의 자본주의 발전론은 그 중에서도 비형식적 제도, 문화의 중요성에 주목했다. 저는 이 부분의 중요성을 간과하다가 최근 생각이 좀 바뀌었다.
어쨌든 1987년 이후 지난 40년 가까운 지속적 실행을 통해서, 한국에도 민주주의의 형식적 제도 뿐만 아니라 이를 지탱하는 문화와 관습이 확립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한국도 좁은 회랑에 들어섰을 뿐만 아니라 이미 그 회랑이 상당히 넓어지는 우상향 분면에 들어섰다고 생각했다. 국가의 제도적 민주성과 이를 실행하는 엘리트와 시민사회의 문화적 수용성이 상당히 괜찮은 긴장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한국이 좁은 회랑으로 들어선 동력이 국가와 시민사회와 더불어 제3의 요인인 외세가 있다면? 그러니까 한국이 권위주의나 대혼란으로 빠지지 않고 좁은 회랑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동력이 내적 역학 뿐만 아니라 미국의 개입이라는 외적 동력이 상당히 중요했고, 지금도 중요하다면? 한국의 엘리트와 행정, 사법 권력이 민주주의 문화를 체화하지 않았고, 그럴 의향도 없지만, 한미 특수관계에 의해서 형식적 제도의 작동이 강제되었고, 그게 지금까지는 엘리트와 권력자들의 이해와 일치했지만, 더 이상은 아니라면? 달리 말해, 시민사회와 국가권력의 균형이 유지되었던건, 양자의 건강한 상호작용이 다가 아니고, 외세의 개입이라는 제3의 변수가 권위주의로 빠지는 않도록 무게 중심을 옮겼고, 한국의 엘리트와 권력자들이 여기에 순응했기 때문이라면?
1987년 민주화 당시 전두환이 계엄을 하지 못한 이유 중 미국의 압력이 있었다는건 잘 알려져 있다. DJ가 박정희에게 암살당하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도 CIA의 개입이다. 적어도 트럼트 이전까지 미국은 자유민주주의 이데올로기의 리더였다. 미국이 가진 제국적 힘의 원천에는 권위주의 대비 자유민주주의의 이데올로기적 우월성, 그러니까 소프트파워도 한 자리하고 있다. 미국의 악행도 헤아릴 수 없지만, 적어도 친미인 한에서는 민주주의 국가를 권위주의 국가보다 선호하는건 분명했다. 중국이 미국과의 경쟁에서 밀리는 이유 중 하나도 소프트파워다. 경제력 외에 중국 체제를 선호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트럼프 이후 한국을 좁은 회랑으로 강제했던 제3의 힘이었던 외세가 트럼프 이후 더 이상 개입하지 않고, 오히려 권위주의적 체제로 가는걸 촉진하는 힘이 되고 있다면? 계엄 직후 한국이 법률적 과정을 통해 질서를 회복하기를 바란다고, 내정간섭에 가까운 개입을 했던 바이든 정부의 미국은 더 이상 없다. 트럼프의 미국이 한국의 민주주의를 보호하기 위해서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도 낮다. 불법 계엄을 해도 40%가 여전히 지지하고, 보수가 똘똘 뭉쳐서 오히려 세를 확장할 수 있고, 설사 여러차례 구속이 정당하다고 판단을 받아도, 한 번의 기회를 통해 석방이 될 수 있고, 안보에 문제가 없고, 궁극적으로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면, 한국 엘리트와 권력층의 입장에서 자신들의 권력 유지에 도움이 되지 않는 좁은 회랑에 굳이 머무를 이유는 뭔가.
이 상황에서 한국은 권위주의나 내전으로 떨어지지 않고 좁은 회랑의 우상향 분면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는 문화와 규범이 충분히 강한가?
트럼프와 머스크가 정확히 무엇을 하고 싶은지는 모르겠지만, 이들이 하는 일이 연방정부의 전반적인 규모 축소로 이어질 것은 확실하다.
지난 금요일에 사회보장국 (Social Security Administration) 직원 7천명을 해고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미 연방정부에서 가장 큰 조직은 국방부(군인을 포함해서 280만명)이고, 그 다음은 보훈처(Veterans Affairs)로 약 40-50만명이다. 사회보장국은 중간 규모의 조직으로 약 6만명이 근무한다. 그런데 미 연방정부 예산에서 가장 큰 규모를 차지하는 것이 바로 의료와 연금을 포함한 사회보장이다. 연방 정부 총지출의 40~50%가 사회보장국 관련이다.
그러니까 사회보장국에 대한 공격은 연방정부에 대한 공격이 될 수 밖에 없다. 사회보장국 직원의 축소는 사회보장에 대한 축소로 넘어가기 위한 징검다리가 될 수 있다.
아래 그래프는 어디에서 긁어왔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데, 연방정부의 수입과 지출이 전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보여준다. MAGA, Make American Great Again에서 얘기하는, 미국 사람이 노스탤지어를 가지는 Again이 대략 50-60년대인데, 이 때와 지금을 비교해서 연방정부가 차지하는 GDP 비중에 차이가 없다. 연방정부의 규모 축소로 갈려면 2차 대전 이전, 루즈벨트 대통령 이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니까 1935년에 입법되고 그 이후 상당히 확장된, 사회보장법 이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연방정부를 축소시키는 변화는 MAGA의 Again이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기대하는 1950-60년대가 아니라, 광란의 20년대 (Roaring Twenties), 내지는 약탈 귀족 (Robber barons)의 시절이라는 19세기 후반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연방정부에 대한 공격이 유례가 없어서 말하자면 그렇다는거고, 실질 규모가 그렇게까지 크게 축소되지는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
사회보장 제도에 대한 변화는 늘상 있는 것이지만, 가장 질적으로 큰 변화를 시도했던건 2005년 부시 대통령 재선 직후다. 연방 정부 프로그램인 사회보장을 민영화하려고 했다. 일반 기업에서 들어주는 퇴직 연금인 401k 비슷하게 개인이 어떻게 투자할지 결정하고, 그 투자 결과에 따라서 연금을 받는 방식으로 사회보장제도를 바꾸려고 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연방정부는 내 돈에 손대지 말라"는 식의 시니어들의 적극적 저항으로 그 시도는 무산되었다.
하지만 사회보장국 직원 수를 대폭 감소하면, 사회보장 서비스의 질이 낮아질 것이고, 당연히 받아야할 돈을 받지 못하는 일도 증가할 것이다. 그러면 뭔가 큰 변화를 요구할 수 있고, Social Security를 민영화 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릴 수 있다. 사회보장제도의 작동을 망가뜨려서 오히려 사회보장제도 자체의 변화를 시도하는 기동이라는 것.
트럼프 1기에 일어난 일에 대해서 쓴 책 중에 Michael Lewis가 쓴 <The Fifth Risk>라는 책이 있다. 루이스는 영화로도 나온 <The Big Short>의 저자이기도 하다. 연방 정부가 관리하는 네 가지 위험 (핵, 자연재해-기후변화, 경제/사회안정, 보건) 외에 정부의 실무적 관리 소홀이 어떻게 재앙으로 연결될 수 있는지, 트럼프의 연방 정부 기능에 대한 이해 부족(The fifth risk)이 어떻게 실무적 관리 소홀로 이어지고, 심각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지에 대한 책이다. 예를 들어, 기후 측정과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는 주요 부서도 상무부 (Department of Commerce)이고, 인구조사 (Census)를 진행하는 부서도 상무부인데 트럼프 1기 때 얼마나 이러한 기능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그래서 어떻게 해야할 일을 안하는걸로 연방정부 기능들을 약화시켰는지 쓴 책이다.
트럼프 2기는 1기와 달리 무지에 의해서 연방정부 기능을 약화시키는게 아니고, 연방정부가 무엇을 하는지 알고 의도적으로 그 기능을 약화시키고 있다. 어디까지 갈지...
Ps. 아래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지금 부는 해고 칼바람의 강도는 한국 언론에서 보도하는 것보다, 미국 대학의 테뉴어 트랙 교수들이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하다. 스탠포드는 고용 중단 결정이 내려졌고, 유펜은 신규 대학원 지원자의 학비지급 오퍼 취소 명령이 내려왔다더라. 연방정부에 근무하는 친구는 언제 해고 통보가 날아올지 하루하루가 가시방석이라고. 제가 있는 대학의 재정부서는 해고는 불가피하고, 해고시 1개월의 유예 기간을 줄 예정인데, 그 1개월 월급을 어느 구좌에서 지급할지 논의하고 있다더라.
Pps. 미국에서 은퇴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사회보장 수표가 싱가폴 사회보장국 사무소에서 발행된다. 이 사무소는 남아 있으려나 모르겠다.
과거에 민주당이 중도보수, 중도우파라는 발언을 한 인사들의 수는 적지 않다. 색깔론에 대한 대응 차원, 중도 확장 전략 등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이재명 대표의 발언은 5월 대선을 염두에 둔 발언이리라. 그 의도를 제가 분석하고자 하는 건 아니고, 한국에서 진보적 정책의 수용성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다시 한 번 말하고자 한다.
몇 번 얘기했지만 (예를 들면 요기, 요기, 요기) 한국 국민의 정책적 선호는 상당히 보수화되어 왔다. 그 배경에는 계층인식의 상승이 있다. 경제가 안정되고, 소득이 높아지고, 생활처지가 개선되니까 분배 정책에 대한 지지가 줄어든다.
아래 그래프는 예전에도 한 번 보여줬던 그래프에 2023년 자료를 업데하고, <상층*>라는 카테고리를 추가한 것이다. 자료소스는 KGSS 2003-2023 원자료다. 2021년에 비해서도 2023년에 자신이 계층이 상층이라는 인식이 증가하였다. 자신이 중간은 넘는다는 인식이 2003년 21%에서 2023년에는 47%로, 20년 사이에 두 배 이상 높아져, 연평균 1.3%포인트씩 증가했다.
10점 만점 척도에서 7점 이상을 확실한 상층(아래 그래프에서 <상층*>)으로 규정하면 (9나 10응답자는 극소수다), 2003년에는 7.7%였는데, 2023년에는 24.0%로 3배 증가하였다. 2023년 현재, 상층*의 응답 비중은 자신이 중간 (5점) 미만이라는 응답의 비중과 거의 다를 바 없다. 자신이 하층이라는 응답은 2003년에는 46%로 거의 절반에 달했는데, 이제는 27%로 줄었다.
이러한 계층 인식의 상승은 성연령을 불문한다. 집단에 따른 격차는 있지만 모든 집단에서 계층 인식이 높아졌다. 특히 중장년과 노년층의 계층 인식이 크게 높아졌다. 남녀를 분리하면 여성의 상승률이 더 높다.
청년 남성의 계층 인식도 높아졌지만, 다른 집단과 비교해서 상승률이 작다. 일부는 2003-05에 다른 집단에 비해 상층 인식이 높았던 것에 기인(즉, 기저효과)하지만, 다른 집단보다 상위 계층 인식의 상승률이 낮은 건 분명하다. 2003-05에는 모든 집단 중에 청년 남성에서 가장 상위 계층 인식률이 높았는데, 지금은 60+ 여성에 뒤이어 끝에서 두 번째다.
표1 . 상층 (6-10점) 계층 인식자 비율 (%)
18-39 남성
40-59 남성
60+ 남성
18-39 여성
40-59 여성
60+ 여성
2003-05 (%)
28.5
25.0
17.9
26.5
22.2
9.1
2021-23 (%)
40.1
47.2
42.0
48.7
50.1
35.1
변화 (%p)
(11.6)
(22.2)
(24,1)
(22.2)
(27.9)
(26.0)
계층 인식이 이렇게 크게 변화했기 때문에, 한국에서 급진적 변화를 요구하는 정책이 지지를 받을 가능성은 낮다. 무상급식에서 시작해서 기초연금을 어느 정당이 더 많이 올리냐로 경쟁했던 시절은 당분간 다시 돌아오기 어려울 것이다.
선거에서 다수파를 형성하고자하는 정당의 지도부는 변화보다는 안정을 원하는 유권자를 염두에 둔 이미지 포장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의 가장 강력한 지지기반인 40-50대의 계층 인식이 다른 집단보다 더 높다는 것도 민주당이 급진적 변화보다는 안정을 강조할 계층적 이유가 된다. 이재명 대표의 발언이 개인의 정치적 지향에 따라 실망스러울수는 있어도, 놀랄 일은 아니다. 한국에서 진보 정당의 파이가 줄어드는건 정치 공학이 다가 아니고, 유권자의 지형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스팔트 우파에 경도되어 극우화로 치닫는 정당이 대중의 지지를 받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한다. 청년 남성은 다른 집단 대비 상대적 박탈감을 겪겠지만, 그렇다고 혁명적 변화를 지지할 정도는 아니다.
2023년에도 신청했던 건데, 연구 내용과 연구 디자인은 칭찬 일색이었지만, DEI 내용을 좀 더 충족하라는 코멘트를 받았다. 작년에, DEI를 보강하고 혼합방법론, 커뮤니터 기여 같은 부분을 추가한 후 동일한 프로포잘을 다시 제출하라는 요청을 받았고, 그렇게 했지만 결국 선정되지 않았다.
이 그랜트는 선정 과정이 다른 그랜트와 조금 다르다. SSA RDRC(Retirement and Disability Research Consortium)라고 미국 사회보장국에서 자금을 대는 연구 센터가 6군데 대학에 있다. 각 대학 연구센터에서 1차 심사를 진행하고, 이를 취합하여 SSA에 보내면 2차 심사를 하는 과정이다. 1차 심사에서는 무난히 통과했는데, 최종 선정 과정에서 탈락하였다.
왜 안되었는지 코멘트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 번 주에 관련 그랜트 모두가 진행 중단 명령을 받았고, 대학의 연구센터 전체의 펀드도 전액 지급 중단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센터 모두가 문을 닫고, 관련 연구원과 행정직들이 모두 해고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대부분의 연방정부 연구자금은 일단 집행하고 해당 비용을 변제받는 방식으로 집행된다. 만약 작년에 연구 프로포절이 선정되고 올 초에 연구를 시작했으면, 연구조교도 고용했을텐데, 이제와서 모든 연구를 중단하고 조교도 해고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뻔 했다. 연구비를 못받아서 오히려 황당한 일을 겪지 않게 되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DEI 와 눈꼽만큼이라도 관련된 연구만 폭탄을 맞은 것도 아니다. 재직 중인 학교의 한 연구소는 DEI와 아무 관련이 없고 증거기반 교육정책을 연구하는 순수 과학에 가까운 프로그램인데도 중단 명령을 받았다.
이 뿐만이 아니다. NIH 간접비를 최대 15%로 제한하라는 명령으로 인해, 재직하고 있는 학교의 수입이 약 2천만불 (280억원)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당장 학교 연구비 관련 부서는 추가 고용 중단 결정이 내려졌고, 손실을 어느 정도 커버할 수 있을지, 해고는 일어날 지, 매일 회의와 타운홀 미팅이 열리고 있다. 학교 측에서는 해고하지 않는다는 약속은 못하고, 해고하더라도 프로그램을 통해서 놀라지 않게 점진적 과정을 거치겠다고 약속하는 정도다.
우리 과에서는 NIH 펀드를 받아서 지난 12-1월에 신규 교수 2명 채용 계약을 했는데, 약속한 펀드가 제대로 집행될지 모르겠다. 신규 교수 채용 조건이 다행히 NIH 펀드 수령의 조건부는 아니라, 설사 NIH에서 돈을 못받더라도 계약을 취소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1월에 채용 계약한 교수는 채용 조건에 대한 협상을 진행하다가 트럼프의 연구비 집행 중단 명령 소식을 듣자마자 추가 협상없이 계약서에 바로 사인했다더라. 올 가을 미국 교수 채용 시장은 상당히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대학이 지원받는 연구비 중에서 Department of Education의 펀드가 간접비는 적지만 규모 자체는 상당히 큰데, 여기에 의존해서 운영하던 연구센터에서는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서, 직원과 연구원들이 매일 상당한 스트레스 속에서 일하고 있다. 연구비 중단에 이어 교육부에 대해서 도대체 무슨 짓을 할지.
미국은 출생아수의 감소로 조만간 대학 진학자의 절대수가 상당히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대학에서는 이에 맞춰서 교원수와 행정 조직을 조정해왔다. 일부 대학은 문을 닫았고.
연구비 축소는 교육팽창의 시대에서 교육축소의 시대로 전환하는걸 더 앞당기겠지. 이러한 변화가 2년이 갈지, 4년이 갈지, 영속화되는건지. 대학의 기능 중 연구가 축소되고 수업이 더 중시될지. 대학도 확실히 불확실성의 시대로 접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