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최저임금 관련 포스팅에 한 분이 최저임금 인상이 성장으로 이어지는 메카니즘을 도저히 모르겠다고 말씀하셨다. 조선일보 논설주간은 "소득 주도 성장, 허장성세로 끝나야"라는 칼럼도 썼다. 


소득 주도 "성장"은 가능한가? 


비록 매크로 경제학의 문외한이지만, 주워들은 바로 내가 아는 답은 모른다는거다. 더 정확한 답은 장기 성장이 어떻게 가능한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소득주도성장이 실제로 가능성 높은 성장 대책이냐고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아무도 모르는 장기 성장의 비결을 소득주도성장이 제대로 제시하지 않는다고 다른 경제정책 대비 특별히 더 비판 받을 이유는 없다. 


한 번 더 뒤집어서 말하면 "소득주도" 정책을 핀다고, 장기 성장에 해를 끼친다는 아무런 증거도 없다. 성장이론으로 소득주도성장론이 의심될지라도, 분배논리로 소득주도성장론은 유효하다. 


특히 세계적으로 장기 성장이 정체된 현재의 상황에서 분배의 중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경제 성장률이 높을 때에는 분배 정책이 미비해도 다수의 경제적 웰빙이 꾸준히 개선되지만 경제 성장률이 낮아지면 적극적 분배 정책 없이는 경제적 웰빙의 개선이 소수에서만 일어난다. 





소득주도성장이 성장론이냐 아니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경제 성장이 가능한지를 알아야 한다. 가장 쉬운 경제성장 정책은 베끼는 것이다. 후진국이 선진국의 기술, 제도를 베끼는 catch-up이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쉬운 방법이다. 한국은 이 단계는 거의 끝났다. 


그 다음으로 알려진 방법이 요소투입량을 늘리는 것이다. 자본, 노동력을 더 투입하는 것이다. 인구가 늘면 경제가 성장한다. 노동 투입량이 늘어나니까. 투입 노동력의 질을 높이는 것도 잘 알려진 방법 중 하나이다. 


그런데 경제성장에 제일 중요한 것은 요소투입량이 아니라 총요소생산성이라고 명명된 요인인데, 이 총요소생산성은 보통 잔차로 계산한다. 무슨 말인고하니 GDP 성장 분 중에서 설명 가능한 모든 요인을 다 빼고 그래도 설명안되고 남는 부분이 총요소생산성이다. 한마디로 잘 모르는 경제성장 요인이다. 


20세기 이후 세계적으로 경제성장률이 높았던 시기는 총요소생산성이 높게 증가했던 시기이고, 요즘 들어 경제성장률이 낮아진 시기는 총요소생산성이 낮아진 시기다. 


총요소생산성은 기술발전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는데, 몇 가지 기술만으로 설명되는 것도 아니다. 20세기 중반에 전기, 내연기관 등이 보편적으로 사용되면서 생산성이 급등하고, 1990년대 중반에 기술정보통신이 광범위하게 사용되면서 생산성이 일시적으로 증가한다. 그런데 이 요인들을 고려해도 설명안되고 남는 총요소생산성이 여전히 경제발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현재 세계적으로 경제발전이 안되는 이유는 총요소생산성 증가율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총요소생산성 발전이 최근 들어 낮아진 이유에 대한 설명은 대략 3가지 입장으로 대별된다. 하나는 구조적 문제로 인식하는 입장으로, 요즘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는 서머스의 secular stagnation 같은 주장이나, Robert Gordon의 <미국의 성장은 끝났는가?>같은 주장들이다. 가까운 미래에 총요소생산성의 증대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다음은 현재의 침체는 일시적 문제일 뿐 가까운 미래에 총요소생산성이 폭발적으로 증대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브린욜프슨이 중심이 되어 하는 주장인데, 4차산업혁명이니 뭐니 하는 얘기는 모두 이 계열의 주장이다. 


마지막은 지금도 총요소생산성은 끊임없이 증대하고 있는데 현재의 GDP 계산 방식이 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GDP 측정 오류로 총요소생산성 증가의 침체를 인식하는 주장이다. 예를 들어 Youtube로 듣고 싶은 음악 마음대로 음악듣는 것도 경제적 웰빙의 큰 개선인데 GDP에는 이게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브린욜프슨은 두 번째 주장과 세 번째 주장 사이에 왔다갔다 한다. 


각각 구조론, 시기론, 측정오차론으로 칭할 수 있다. 각각의 입장에서 성장에 대한 대안은 첫번째는 당분간 성장은 틀렸으니 확장적 재정으로 총수요나 관리하자, 두번째는 조금만 기둘려라, 경제 성장은 곧 온다. 4차 산업혁명 와중에 희생될 미적응자에 대한 케어를 준비하자. 세번째는 우리의 인식을 바꾸자.  


어떤 입장이든 최근 수치로 측정된 경제성장률이 낮아졌다는데는 동의한다. 이 중 경제발전에 가장 중요한 총요소생산성을 높이는 확실한 정책적 방법은 아무 것도 없고 (뭐 당연하지 않은가. 아무도 모르니까), 그나마 정책이라고 제시된 것은 구조론에 기반한 확장적 재정이다. 






그런데 이런 소득주도성장론은 이 중에 어떤 입장이고, 어떤 답을 제시하는가? 


명시적으로 얘기는 안하지만 확장적 재정정책을 제시하는 구조론과 친화적이다. 시기론과도 딱히 괴리되어 있지는 않다. 


왜 확장적 재정정책이 정반대의 입장인 시기론과 반드시 괴리되어 있지 않는가? 예를 들어 보자. 20세기 중반의 경제발전의 큰 요인 중 하나가 전기의 광범위한 사용인데, 전기의 발명은 19세기 중반이다. 산업 생산과 일상 생활에 전기가 보편적으로 사용된 시기가 미국은 20세기 초반, 유럽은 2차 대전 이후다.  발명서부터 광범위한 사용까지 1세기가 걸렸다. 


즉, 설사 시기론이 맞아서 궁극적으로 폭발적 경제성장을 겪는다 할지라도 4차 산업 혁명의 실현까지 앞으로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면, 시기론은 구조론과 다를 바가 없어진다. 100년동안 손가락 빨면서 혁명의 시기를 기다릴건가? 그 사이에 확장적 재정정책을 피는게 낫지. 


(MB의 4대강 사업에 대해 다른 진보 분들보다 내가 긍정적으로 얘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꼭 4대강에 돈을 퍼부었어야 하느냐고 질문할 수 있지만, 안하는 것보다는 이거라도 해서 돈을 붓는게 낫다.)


이렇게 해서 소득이 늘어 총수요가 늘어나면 설사 총요소생산성이 높아지지 않더라도 경제가 수요부족으로 침체를 겪지는 않을 것이라는게 소득주도성장이다. 장기 성장의 답은 제시 못하지만 수요 부족으로 인한 장기 침체는 피할 수 있다는 논리다.  


장기 성장은 이렇게 버티다 보면 언젠가는 되겠지라는게 사실상 소득주도성장이 제시하는 논리라면 논리다. 허접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거말고 소득주도성장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다른 뾰족한 수가 없다. 


소득주도성장론의 장기 성장 대책이 명확하지 않다고 비판하는 건 아무도 모르는 답을 소득주도성장론도 제시하지 못했다고 비판하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야당은 여당의 정책을 반대하는 것으로 충분하니까 그럴 수 있는데, 학자들이, 특히 평소 진보적이라고 자부하던 분들이 이에 대해 비판하는 건 좀 그렇다. 그렇다고 이 분들이 장기 침체는 없고 곧 노말한 상태로 돌아올 것으로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면 이렇게 장기 성장의 비젼도 제대로 없으면서 소득주도"성장"이라고 마치 분배 정책을 성장 정책으로 포장해서 팔아도 되는건가? 이거 정책적 사기 아닌가? 


아래 최저임금 포스팅에서 한 분의 반론은 다른 정책은 경제 성장 요인에 대한 논리는 제시한다는 것이다. 나는 총요소생산성은 모르겠지만 요소투입의 측면에서 최저임금 인상과 소득주도성장론이 그 정도는 충분히 고려했다고 생각한다. 


소득주도성장론이 총 수요를 증가시켜 기업의 자본투입을 높일거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얘기한 바다. 자본투입 외에 경제성장률을 높이는 방법 중 하나는 노동력 투입을 높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투입노동력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이를 달성하는 가장 가능성 높은 방법은 고학력 여성노동자를 노동시장에 투입하는 것이다. 한국은 젊은층의 상식과 달리 전체 노동자의 평균 교육수준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 낮다. 그 이유는 고연령층의 노동시장 참여율은 다른 선진국보다 높은데 이들의 학력수준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많이 낮기 때문이다. 동시에 한국은 고학력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은 다른 국가보다 낮다. 남성노동자도 마찬가지다. 고학력 청년노동자의 실질 실업률이 높고, 저학력 고령 노동자의 노동시장 참여율이 높다. 


고학력 여성노동자를 산업현장에 투입하면 한국은 요소투입량이 증가한다. 총노동 수요가 부족해서 이것이 불가능하다 할지라도, 저학력 고연령 노동자를 고학력 여성노동자로 대체하면 노동력의 질이 높아진다. 어떤 형태가 되었든 이는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요인이다. 최저임금 인상이 설사 1~2년 내 단기효과로 일자리의 감소를 초래할지라도 장기적으로 이러한 대체를 촉진하는 경제성장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Reservation wage가 높을 고학력 여성 노동자의 노동시장 참여 유인 요인으로, 생산성이 낮은 고연령 저학력 노동자의 퇴출 요인으로 말이다. 


총요소생산성의 측면에서도 소득주도성장이 해를 끼칠 가능성은 낮다. 요소생산성 향상 측면에서 현재 주목하는 것은 정보통신기술(ICT)인데, 저학력 노동자로는 이 기술을 제대로 도입할 수 없다. 노동시장의 문턱을 높임으로써 노동자의 질을 제고하면 ICT를 이용한 총요소생산성 향상을 꾀하기 용이해진다. 


실제로 일부 연구에 따르면 선진국에서 선도기업의 생산성은 빠르게 증가하는데 비해 그렇지 않은 기업의 생산성은 정체되고 있다. 선도기업의 혁신이 정체기업의 혁신으로 전파되지 않고 있다. 한국에서 투입노동력의 질 향상은 혁신의 전파를 용이하게 할 것이다. 


그래서 결국 소득주도성장은 성장론인가? 내가 이해하는 한 검증된 성장론은 아니지만, 현재의 생산성 정체 상황에서 충분히 시도해볼만한 성장론이라고 생각한다. 설사 소득주도성장이 장기 성장에 실제로 도움을 주지는 못하더라도, 지금보다 크게 나빠질 가능성도 높지 않다. 소득주도성장이 한국의 경제모델인 수출산업을 망친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이상 경제성장을 방해할 것으로 기대되지 않는다.  





자, 소득주도성장은 이 정도 방어하고, 그렇다면 소득주도성장이 아니면 뭐가 남는가? 사람들이 얘기를 안하지만 소득주도성장의 반대 논리는 "이윤주도성장 (profit-led growth)"이다. 


이윤주도성장도 총요소생산성은 할 얘기가 별로 없어 보이고, 요소투입의 측면에서 이윤이 많이 남으면 자본은 투자량을 증가시켜 경제를 발전시킨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GDP의 노동지분은 꾸준히 감소하고 자본지분은 꾸준히 증가했다. 그래서 자본 투자가 증가하고 생산성이 높아지고, 경제성장률이 높아졌나? 


소득주도성장이 검증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이에 반대되는 이윤주도성장은 별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미 전세계적으로 검증된 것 아닌가? 1997년의 IMF 사태 이후 20년간 진보, 보수정권 모두 이와 유사한 정책을 폈는데, 성장률은 낮아졌고, 분배는 악화되었다. 해봤는데 작동하지 않은 정책을 반복할 필요는 없다. 


여러 국제기구에서 소득주도정책을 권고하지만 많은 국가에서 이 정책을 추진할 세력의 미비로 그렇게 못하고 있다. 한국은 전세계에서 촛불혁명이라는 세계사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체제 내 혁명"을 이룩하고 정권을 교체한 국가다. 전세계에서 소득주도정책을 실행해볼 수 유일한 국가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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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경향신문 최저임금 팩트체크 기사

최병천 전보좌관의 허핑턴포스트 글


경향신문에서 최저임금이 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증거가 없다는 기사를 내자, 최병천 전보좌관이 반박하는 글을 허핑턴 포스트에 실었다. 


학계에서는 의견이 분분한데 왜들 이렇게 몇 가지 부정확한 통계를 가지고 자신있게 최저임금 상승이 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고 확신하는지 모르겠다. 




우선 최저임금 미달률 부터. 


최 전보좌관은 최저임금 증가율과 최저임금 미달자 증가율 간에 "뚜렷한 개연성"(아마도 상관관계)를 보인다는데, 아래 글에서 지적했듯 그거 그렇게 뚜렷하지 않다. 노무현 정권 기간 동안 상승한 7%포인트 증가분만 빼면 지금도 6.6% 밖에 안될 것이다. 왜 이 기간 동안 이토록 급격하게 최저임금 미만률이 늘었는지 정확히 아는가? 


내가 초간단 회귀분석을 해보니 최저임금 미달자 증가율 중 최저임금 상승률에 의해서 설명되는 부분은 17%에 불과하다. 나머지 83%의 최저임금 미달자 증감분은 뭔가 다른 요인에 의해서 결정된다. 




다음으로 최저임금 미달자의 영세 사업체 집중 여부. 


최저임금 미달 기업이 30인 미만 사업장에 88%가 집중되어 있다고 했는데, 그 중에서 얼마나 많은 부분이 실제 영세사업체이고, 얼마나 많은 부분이 대기업의 사업장인지 알고 있나?   


사업체와 기업체를 구분하지 않으면 한국은 대기업의 고용률이 지나치게 낮게 나온다. 소규모 사업체의 상당 부분이 사실은 대기업의 지점들이다. 이 대기업 지점들은 최저임금을 지급할 여력이 있다. 


실제로 비정규직 중 대기업에 속한 인원이 사업체 기준으로는 13.4%이지만, 기업체 기준으로는 37.7%라는 보고도 있다. 소규모 사업체에 속한 대기업 소속 비정규직이 대부분 현재 최저임금을 적용받고 있어 최저임금 미달자가 아니고, 최저임금 미달자는 대부분 영세기업에 속해 있다고 확신할 수 있나? 행정지도와 사회적 압력을 통해 영세자영업자를 단속하지 않으면서도 최저임금 이하를 지급하는 실제로는 대기업 소속인 5인 이하, 10인 이하 사업체의 미지급률을 줄일 수 있다. 


최저임금 상승률이 최저임금 미지급률 변동분을 설명하는 정도가 작은 이유도 이러한 버퍼요인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다음으로 최저임금 미달계층. 


최병천 전보좌관의 글을 통해서 배운 것 중의 하나가 누가 최저임금 이하를 받는가이다. 예상대로 50대 이상의 고령층이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비율이 높다. 그런데 최 전보좌관이 강조하지 않은 것 중의 하나가 최저임금 미달층의 1/3만이 빈곤층이라는 것이다. 


이는 최저임금 상승이 빈곤 완화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증거이기도 하지만, 최저임금 상승이 빈곤층보다는 중산층의 소득향상에 도움이 되(거나 고용이 줄어들면 이들의 소득이 줄어드)는 증거이기도 하다. 달리 말해 최저임금 상승의 효과는 빈곤층에 한정되지 않고 다양한 계층에 영향을 끼친다. 설사 최저임금 인상으로 고용이 줄더라도 빈곤층의 급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낮다는 유추도 가능하다. 


왜 최 전보좌관은 최저임금 상승으로 노동시장에서 떨어져나올 계층이 고연령 빈곤층에 집중될 것으로 가정하는가? 보조소득자가 아닌 빈곤층이 최저임금 상승으로 주로 떨어져 나올 것으로 믿는 근거가 무엇인가? 


최저임금 미지급 단속을 중소기업이 아닌 대기업의 소규모 사업체에 집중해도 빈곤층 소득 감소가 일어날까?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데 돈을 걸겠다.  




그리고 빈곤층 대책에 대해. 


빈곤을 줄이기 위한 주대책으로 EITC를 거론하는 것도 황당하다. 한국에서 근로계층의 빈곤율은 타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 유아 및 청소년 빈곤율도 낮다. 한국의 빈곤율이 높은 것은 prime working age에 있는 근로빈곤 때문이 아니라, 노인빈곤 때문이다. 


다른 선진국의 노인층보다 한국노인의 노동시장 참여율이 높기는 하나, 상당수의 노인층이 일을 안한다. 당연한거 아닌가. 그런데 일을 안해서 생기는 노인빈곤을 EITC 적용해서 줄일 수 있겠는가. 말이 안되는 정책이다. 빈곤 대책이랍시고 EITC 얘기하는 분들 보면 황당하다. 모르면 외우자. 한국의 빈곤은 근로빈곤이 아니라 노인빈곤의 문제다. 그런데 왜 근로빈곤 대책을 빈곤대책으로 제안하나? 


선진국에서 고연령층의 빈곤율이 낮은 것은 연금을 수령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고연령층의 연금수령율이 아직 낮다. 대부분의 은퇴자가 국민연금을 수령하게 되면 고연령층의 빈곤율은 급감하게 될 것이다. 노인빈곤은 그 사이에 어떤 대책을 마련해 주느냐이다. EITC 보다는 박근혜 정부에서 수행했던 노인연금이 현 시점에서 100배 나은 정책이다. 


(EITC 하지 말자는 얘기는 아니다. 빈곤 대책이라기 보다는 전반적인 불평등 감소 대책으로, 또한 복지병을 야기하지 않으면서 복지를 확대하는 방책으로 EITC는 분명 좋은정책이다. 하지만 예산 제약으로 EITC와 노인연금 확대 중 하나를 택하라면 나 같으면 후자다.)




한국은 재분배를 통해 불평등 해소 정도가 매우 작은 국가이다. 시장 소득을 통한 1차소득의 조정 없이 불평등을 줄이기 어렵다. 세금 인상과 복지 확대를 통한 빈곤층 축소가 정공법이나, 이 대책은 말이 쉽지, 지금 할 수 있나? 중산층 세금 인상하려다가는, 다음 총선에 패배하고, 바로 정권을 내줘야할 판인데. 


그러니 대기업의 팔을 비틀고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 시장 소득의 변화를 가져올려는 것이다. 시장 소득의 조정이 시장에 의해서 결정날 것 같지만, 사회적 norm에 의해서도 크게 영향을 받는다. 


이 방법이 꼭 좋은 것은 아니고, 실패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것 외에 당장 실행할 수 있는 다른 대책도 많지 않다. 


사회적 분위기에 영향을 받는 세력이 재벌과 부유층인 것만도 아니다. 노동조합도 사회적 압력을 받는다. 지금은 노조도 공생보다는 자기 밥그릇 챙기기, 각자도생에 급급하다. 노동조합도 자신들의 직접적 이익에 손해가 나더라도 사회적 공적 이득, 연대를 통한 노동자 전체의 이득에 복무토록 태도를 바꿔야 한다. 그럴려면 각자도생을 안하면 사회가 전반적으로 변화한다는 신뢰가 형성되어야 한다. 


그런데 최저임금 공약을 첫 해부터 깨라고? 문재인 당시 후보 혼자 내건 공약도 아니고 대부분의 후보가 내건 공약이다. 여기서 최저임금 인상은 없던걸로 할께요하면, 정책적으로 참으로 훌륭하다고 하면서 다 같이 잘먹고 잘사는 사회를 만들자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겠는가, 아니면 사사건건 직접적 효과를 따지며 각자도생 분위기만 더 팽배해지겠는가? 문재인 정부의 노동관련 첫 정책 결정인데, 노동측을 실망시켜서 앞으로 정책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파트너쉽을 형성할 수 있겠는가? 


올해 최저임금을 크게 올린 것은 정치적 결정이다. 최저임금 1만원 시대를 3년 내에 열지, 상황을 보며 속도조절을 할지는 나중에 결정하면 된다. 문재인 대통령도 1년 해보고 속도를 결정하자고 한다. 최저임금의 효과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최저임금이 <긍정적 효과가 있다>가 아니라 <부정적 효과가 확실치 않다>라는 포지션으로 충분히 방어할 수 있다.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국민여론도 괜찮다. 이 판에 진보적 인사들이 나서서 정확하지도 않은 통계로 불안감을 가중시킬 필요가 있는건지. 최저임금 1만원 주장하던 분들은 왜 다들 꿀먹은 벙어리인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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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최저시급이 노동시장에 끼치는 효과는 학문적으로 확정되지 않았음. 최저시급을 올리면 고용이 줄어든다는게 경제학의 이론이지만 현실은 이론처럼 깔끔하게 최저시급을 올린다고 고용이 줄어드는 것으로 나오지 않음. 


심지어 최저시급을 올려서 고용이 줄어드는게 꼭 나쁜 것이냐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림. 높은 임금은 구조개혁을 촉진하고, 생산성 향상을 강제하는 효과가 있음. 최저 임금도 못주는 기업과 자영업자는 문을 닫는데, 이들 중소기업/자영업자들이 가지고 있는 자본이 공중분해하는 것이 아님. 이들 자본이 최저임금 이상을 줄 수 있는 자본으로 흡수됨. 이 경우 경제 전반의 생산성이 향상되고 구조적 고도화가 강제됨. 


한국의 서비스업 생산성이 낮은 이유 중 하나도 낮은 임금에 있을 개연성이 상당함. (50대 이상의) 노동자를 싸게 부릴 수 있는데 뭐 때문에 자본을 투자하고 어렵게 생산성을 향상시킴? 


이렇게 최저시급의 효과가 불확실함에도 불구하고 언론과 칼럼에서 전방위적으로 최저시급 인상을 공격하고 있음. 심지어 최저임금 인상은 내년임에도 불구하고, 보수언론은 경영부실과 섬유산업 경쟁력 상실로 망하는 기업을 "최저임금발 감원 본격화"라고 거짓말하며 이데올로기 투쟁의 수단으로 동원하고 있음.  


하나하나 좀 살펴볼 필요가 있음. 


우선 최근에 언론에 크게 보도된 주진형의 비판부터. 최저임금 인상이 큰 문제였으면 1989년 이후 평균 9%씩 30년간 12배 넘게 인상한걸 비판해야지, 지금까지는 가만있다가 16% 인상 한 번 하니까 최저임금 인상 정책이 "부모 없는 자식"이라고 비판하는 건 좀 뜬금없음. 최저임금 높여서 한국 경제가 망했으면 망해도 진작에 망했음.  


최저임금 인상이 끼치는 영향력에 대한 분석이 정확히 않다는 것은 앞에서 언급한 바임. 미국에서도 주구장창 연구했는데 결론이 나오지 않음. 시애틀에서 최저임금을 왕창 올린 것의 효과도 정확히 무엇인지 모름. 아무도 정확히 모르는 것을 부모없는 자식이라고 비판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음? 하나마나한 소리지. 주진형이 뭔가 근거가 있어서 반대하는 것도 아님. 너도 나도 정확히 모르는 효과를 왜 모르느냐고 큰소리치는건 걍 최저임금 비판 분위기에 휩쓸리는 것임. 이런 비판이 무슨 의미가 있음?   


최저임금이 오른다고 최저임금 미달 노동자가 반드시 증가하는 것도 아님. 한국의 최저임금 수준이 낮지 않다는 오석태 이코노미스트의 분석에는 분명히 동의하나, 최저임금 상승률과 미달률의 관계를 1대1인 듯 언급한 것은 정확하지 않음. 


아래 그림은 초간단으로 그려본 최저임금 인상률과 미달률의 관계임 (좋은 그래프는 아니나 대충 관계를 볼 수는 있음). 최저임금이 오르면서 미달률이 같이 높아지는 관계가 항상 나타나지 않음. 최저임금 미달률은 2003-2007년 사이에 이상 급등하고, 2012년 이후 지속적으로 올라서 현재의 상태에 이른 것. 왜 이 시기에 이렇게 미달률이 올랐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있음? 특히 2003-2007 사이에 미달률이 3배 증가하였음. 


2003년까지 최저임금 미달률이 5% 미만인데, 1989년에서 2003년까지의 최저임금 상승률은 9.99%로 2003년에서 2016년 사이의 인상률 8.4%보다 훨씬 높았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3년까지 최저임금 미달률은 매우 낮았음. 9.99%씩 오를 때는 미달률이 안오르다가, 8.4%씩 오르면 미달률이 오른다는 것임? 


아마도 최저임금이 일정 수준에 오르면 그 다음부터 인상률과 미달률 변화가 밀접한 관계가 생긴다고 생각할 것. 하지만 2010-2012년 사이에는 최저임금 인상률은 높아졌지만, 미달률은 오히려 낮아졌음. 인상률 낮춘다고 미달률 반드시 낮아지는거 아님. 


사실 최저임금 미달률은 노무현 정권과 박근혜 정권 시절에만 증가하였음. 노무현 정권은 최저임금 증가율이 역대 정권 중 가장 높았지만, 박근혜 정권 시절은 이명박 정권 다음으로 증가율이 낮았음. 증가율 정도가 정반대지만, 두 정권 동안 미달률이 증가한 것. 이러한 결과는 최저임금 미달률 증감이 정권의 행정권력 사용에 의해 좌우될 가능성을 시사함. 미달률 증감은 행정의 디테일에서 결판이 날 것. 


현재 경제상황이 괜찮기 때문에 최저임금을 올린다고 실업률이 증가할 가능성은 낮음. 그런데 최저임금 안올릴 이유가 뭐임?  



부가로 다른 나라의 예를 들자면, 미국에서 1968년의 시간당 최저임금의 현시점의 가치는 1만2천원에 달함. 당시의 실업률은 4% 미만으로 완전 고용에 가까웠음. 실업률과 노동시장은 최저임금보다는 경기상황의 영향을 더 크게 받음. 그렇다고 최저임금 상승이 저임금 노동자의 소득을 유의하게 늘렸다는 명확한 근거도 없음. 





최저임금 올린다고 고용이 줄어드는 것도 명확치 않고, 최저임금 올린다고 저소득층의 소득이 증가하는 것도 명확치 않다면, 도대체 최저임금의 효과는 뭐임? 


아래 그림은 Piketty & Saez가 보여준 최저임금과 상위1%의 소득지분의 관계임. 보다시피 상당히 밀접한 역상관관계임. 



사실 이 그림은 매우 이상하게 다가와야 함. 최저임금과 탑1%가 무슨 상관이람? 상위 1%의 임금이 최저임금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것임? 


최저임금과 상위1%의 소득 share나 불평등이 상관관계를 가지는 이유는 아마도 최저임금의 직접적 효과 때문이 아니라, 최저임금이 경제적 배분을 둘러싼 권력 관계의 proxy이기 때문일 것임. 


최저임금의 효과는 불명확하지만, 빈곤 감소, 불평등 감소를 원하는 진보 세력은 최저임금 상승을, 보수세력은 최저임금 동결을 원해서, 최저임금이 세력관계를 볼 수 있는 지표가 되기 때문일 것임. 


다시 말해 최저임금은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를 둘러싼 투쟁의 정책적 접점일 가능성이 큼. 최저임금의 부정적 효과가 분명했다면 "증거기반 정책"이 모토인 미국 리버럴들이 이 정책을 접었을 것. 하지만 그런 효과가 분명하게 안나타나기 때문에 최저임금을 둘러싼 투쟁이 계속되는 것. 


한국에서 진보, 보수 정권 모두에서 최저임금을 지속적으로 상승시킨 것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었음. 최저임금이 이데올로기 투쟁의 대상이 아니었던 것. 하지만 문재인 정부들어 최저임금을 높이 올리니 보수측에서 정쟁의 대상이 아니었던 최저임금을 이데올로기 투쟁의 쟁점으로 전환시키고 있다고 보여짐. 




이런 상황인데 최저시급 인상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나서서 방어하는 사람도 하나 없음. 어용지식인 벌써 다 죽었음? 


문재인 정부에서 세금 올리겠다는데 이건 또 어떻게 싸울지.  




ps. 그래서 이 번 포스팅의 분류는 "정치"임. 


pps.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플레가 유발된다는 걱정이 있는데, 요즘 세상에 인플레 걱정이라니 무척 반가움. 


ppps. 최저임금 인상으로 걱정되는 계층은 영세 자영업자와 더불어 50대 이상의 노년층임. 저임금 일자리에 집중된 계층인데, 고용이 줄어들면 이 계층이 우선 타격을 받을 것. 


pppps. 개인적으로는 최저임금 1만원 목표 달성보다는 행정력을 이용한 미달률 줄이기가 저소득층 소득향상에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함. 하지만 소득주도 성장 진지전 구축으로 전선이 그어지는 것도 정치적 선택의 하나라고 생각. 오바마가 정책적으로 훌륭한 선택을 했지만 정권은 결국 트럼프에게 넘어갔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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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조선비즈 뉴스: 최저임금 미달자 313만명

중앙일보의 시애틀 최저임금 인상효과 분석 기사


이전포스팅: 최저임금 이하 소득 OECD 최악


최저임금 인상 효과에 대해서 황당한 이데올로기 투쟁 기사도 있지만, 상당히 양질의 분석 기사들도 나오고 있음.  


명확한 통계적 분석을 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한국에서 최저임금 상승으로 인한 고용 감소 효과는 별로 없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음. 


그 이유는 바로 조선비즈 뉴스에서 보도한 이유 때문. 2015년의 포스팅에서도 얘기했듯 한국은 명목적으로 최저임금은 올리지만, 중소기업에서 이를 지키지 않는 것도 용인하고 있음. 최저임금 상승분을 감내할 수 있는 공공부문과 대기업은 지키게 하고 다른 분야는 안지켜도 거의 처벌을 안하고 있음. 설사 단속에 걸려도 추후에 최저임금 미달 소득을 보정해주면 처벌을 안받음. 


한국에서 1989년에 최저시급은 600원이었음. 2018년에 최저시급 7530원이 시행되면, 명목임금으로 12.6배, 매 년 평균 인상률 9.1%를 기록하는 것. 매우 급격한 인상률임. 이렇게 임금이 급속도로 오르면 고용에 뭔가 부작용이 있을 것 같지만, 한국은 실업률 3.6%의 낮은 실업률을 기록하고 있음.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영향을 끼치지 않은 큰 이유는 명목 최저임금은 지속적으로 상승했지만, 실제로 최저임금을 지키지 않는 비율이 매우 높기 때문. 최저시급이 4860원일 때 최저시급 미만의 소득을 올리는 노동자가 약 11%, 최저시급을 받는 노동자가 4% 정도 되었음. 지금은 최저시급 미만을 받는 노동자가 15%임. 대략 20%의 노동자가 최저시급이나 그 이하의 임금을 받고 있음.  


이 비율은 전세계적으로도 매우 높은 편임. 미국은 최저시급 미만 노동자는 5% 미만, 프랑스는 8% 정도에 불과함. 미국은 최저시급은 낮아도 법을 지켜서 그 만큼은 보장함. 반면 한국은 최저시급은 오르지만 이를 지키지 않음. 


그러니 지금 당장 모두가 최저시급을 정확히 지킬 생각이 아니라면 최저시급이 오른다고 고용이 급감하거나 중소기업이 당장 망할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됨. 





여기서 지키지도 않는 최저시급 올려서 뭐하나라는, 이건 모두 문재인 정부(를 포함한 역대정부)의 눈가리고 아웅이라고 시니컬하게 반응할 수도 있음. 


하지만 제도적 장치를 먼저 마련하고 이의 시행을 탄력적으로 적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임. 정치적 힘이 있을 때 일단 액수를 올리고, 나중에 지지율과 상관없이 가지게 되는 행정력을 이용하여 최저시급 적용 대상을 확대하는 것도 제도 변화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며 제도를 안착시키는 방법이 될 수 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노동계와 정부가 최저임금에 대한 관심을 액수가 아니라 실제 적용으로 전환하기 시작해야 함. 


한국에서 평균 가구원수는 약 2.5명이고, 보건복지부의 2.5명 가구의 기준중위소득은 대략 320만원정도임 (걍 2인가구와 3인 가구의 평균임). 


2018년 최저임금을 적용한 월소득은 157만원으로 2.5인 가구의 기준중위소득의 49%에 달함. 2.5인 가구에서 1인만 노동시장에서 최저임금으로 풀타임으로 일하면 중위 소득의 50% 이하를 빈곤으로 정의하는 보편적 기준에 따를 때 빈곤층에서 거의 벗어나게 됨. 


2020년 최저임금 1만원을 달성하면 최저임금만으로 국제적 기준의 빈곤을 근절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마련되는 셈. 


그렇지만 전체 노동자의 15%를 넘어 20% 가까이 최저시급 미만을 받게 되면 최저시급 제도 자체가 형해화될 수 있음. 1/5의 고용에서 지키지 않는 법의 실효가 그대로 지속되기는 어려움. 최저시급 인상으로 영향을 받는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과 더불어, 최저시급 미만 지급 기업에 대한 계도와 처벌을 확대해 나가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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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한국일보 기사: 명문대 성공 방정식 깨기 vs. 학벌도 노력의 결과


학벌이 아니라 인성과 적성, 능력위주로 뽑겠단다. 인성, 적성, 능력에 기반해 인력을 선발하겠다는 의도를 비판할 사람은 없을 것. 


그런데 학벌 보다 더 나은 적성과 능력을 평가하는 방법이 뭐가 있나?  


기업이 인재를 채용할 때 고려하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현재 일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이고, 다른 하나는 앞으로 일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는 학습능력(trainability)이 있는가이다.


과거에 한국에서 중시했던 것은 전자가 아니라 후자다. 지금 뭘 알고 있는지에 관계없이 (즉, 전공에 관계없이) 똑똑한 사람 뽑아서 (즉, 수능고사 점수가 높아서 좋은 대학에 들어간 사람을 뽑아서) 가르쳐서 쓰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다 같이 경쟁하서 똑같이 시험 본 수능(학력고사, 예비고사)이 누가 똑똑한지를 나타내는 지표로 기능했고, trainability의 시그널은 대학 입학으로 완성이 된다. 그러니 대학 입학 이후에는 추가적 노력이 사회적으로 의미가 없었다. (개인적으로야 추가 노력으로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언제나 의미가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기업에서 학습능력이 있는 인재를 뽑아 기르는 "사람키우기" 보다는, 당장에 현업에 투입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이 인사의 목표가 되었다. 전공 선택이 중요해지고, 대학에서 전공 학점의 중요성이 올라가고, 인턴제가 성행하는 것도 다 같은 이유다. 키울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사람을 뽑는다. 최고의 채용은 신입이 아니라 다른 회사에서 검증된 경력직이다. 


기업이 이런 식으로 변한 이유 중 하나는 기업 내부 구조가 수평화되고, 관리직 채용이 외부에 오픈되면서 "기업내 노동시장"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이 한 회사에 머물지 않고 다른 회사로 손쉽게 옮길 수 있다면 회사 입장에서 신규 노동자를 훈련시키기 위한 비용을 투자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다. 생산성이 낮을 때 그 이상의 임금을 지불하며 훈련시켜 생산성을 올려두었고, 이제 겨우 회사에 기여할 수 있는데, 그 때 다른 회사에서 조금 더 높은 임금을 지급하고 스카우트하면 회사로써는 훈련 비용을 손해보는 것이다. IMF 이후에 사회에 진출한 90년대 중반 학번 부터 이렇게 변화한 채용 방식의 직격탄을 맞았다. 


비록 경력직 채용이 확대되었지만 그나마 신규 사원을 뽑는다면 trainability가 높아서 짧은 시간 내에 훈련 시킬 수 있는 사람을 뽑는다. 이 때 학력이 trainability의 제 1 요인이 된다. 


그런데 블라인드 채용을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혹자는 심층 면접 등 다른 방식으로 능력과 trainability를 알 수 있다고 반박할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면접으로 개인을 평가하는 방법을 모른다. 압박면접, 음주면접, 면접에서 물어보는 황당한 질문들은, 면접보는 사람의 인성이 후져서라기 보다는, 면접 노하우 부족의 결과다.  면접을 하기는 하는데, 면접에서 뭘 물어 볼지 모른다. 그래서 면접에서 온갖 벙크가 터지는 것이다. 


예전에는 면접이 형식적이었기에, 그 짧은 면접에서도 황당한 행동을 하는 아웃라이어를 솎아내는 기능만 담당하였다. 아니면 면접은 동원가능한 인맥, social capital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어차피 최종 면접까지 올라온 인력의 능력은 비슷하기에 social capital이 좋은 (즉, 빽이 좋은) 사람을 뽑는 것이다. 


서구 사회에서 면접이 채용과 승진을 결정하는 주요 방식이 된 이면에는 이를 뒷받침하는 전체적인 사회구조가 있다. 선생이 추천서를 써도 실제로 강력하게 추천하는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 사이에 미묘한 표현의 차이를 둔다. 인사담당자는 이 차이를 캐취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도 학생이 추천서를 직접 써서 선생에게 들고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서구사회는 면접을 통해 인력을 뽑아서 성공한 케이스와 실패한 케이스의 노하우가 조직에 쌓여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면접의 효율성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에서 블라인드 채용을 실시하는 것은 한국 사회의 노동시장이 지금까지 이용했던 노하우를 폐기하고 새로운 방식을 쓰라는 것인데, 문제는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아는 것이 없다. 


그러니 개별 기업의 입장에서 가장 손쉬운 대응은 신입사원 채용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학력, 학벌보다 더 쉽게 알 수 있는 trainability 정보는 현재로써는 없다. trainability를 알 수 없다면 훈련비용을 낭비하는 것보다는 경력직 채용을 확대하는 것이 낫다. 


그 다음은 trainability을 검증할 수 있는 새로운 시험을 실시하는 것이다. 공적인 학벌 대신, 여러 standardized test를 입사 시험에서 실시하면 된다. 수능시험을 기업 입사 시험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1980년대 말, 90년대 초반에 한국의 기업들이 학벌을 볼 때, 외국인 회사는 변종 IQ 시험을 적성검사 명목으로 봤다. 비슷한 능력 테스트를 개발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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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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