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계층론과 불평등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네트워크인 불평등 연구회가 드디어 홈페이지를 개설 (http://inequality.kr/). 영문한글 버젼을 모두 제공. 


연례 심포지움과 월례발표회에 대한 안내를 확인할 수 있고, 연례 심포지움 자료를 다운받을 수 있는데, 발표에 대한 안내를 이메일로 받고 싶으신 분은,


inequalitykr@gmail.com 으로 연락해서 이메일 리스트에 포함시켜 달라고 하시면 됨. 





그리고, 


세계사회학회 (International Sociological Association) 불평등 분과인 Research Committee (RC) 28의 2018년 학회가 불평등 연구회 주관으로 5월 25-27일 서울 연세대에서 개최될 예정임. RC28 한국 개최는 처음임. 


미국과 유럽에서 개최되는 RC28 학회에 몇 번 참석해 봤는데, 페이퍼에서 이름만 봤던 불평등 연구 사회학자들이 상당수 참석함. 


이 학회는 전통적으로 참가비를 내면 세션 사이의 쉬는 시간에 커피와 점심을 무료 제공함. 커피와 점심 뿐만 아니라, 학회 시작 전날 리셉션이 있고, 학회 두 번째날 큰 저녁 모임(모두 참가비에 포함)이 있어서, 세계적인 네임드 학자와 섞여서 (물론 영어로) 얘기할 수 있는 드문 기회를 가질 수 있음.  


요즘 유명한 불평등 연구자들의 관심 사항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함. 다 같이 칭찬만 하는 학회가 아니라, 신랄한 비판과 논쟁이 뭔지도 가끔 확인할 수 있음.  


발표 신청을 하기 위해서는 2-4페이지의 extended abstract를 영문으로 작성해서 RC28Seoul 홈페이지를 통해 제출해야 함. 


자세한 내용은 RC 28 학회 서울 대회의 홈페이지인 http://www.rc28seoul.com/ 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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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기사: 학벌주의 심해지길 바라는 고대생글

국민일보 기사: 사이다 팩트 폭격이라는 반박글


고대생은 제공된 기회에서 내가 성공했으니 더 이상의 불확실성은 없어야 한다는 관점, 그에 대한 반박글은 대입 기회 제공이 완전히 공정할 수 없으니 모두에게 추가 기회가 지속적으로 제공되어야 한다는 얘기. 


최근 몇 번에 걸쳐 얘기했듯 학벌주의를 바라는 글과 그에 대한 반박글이 모두 공정한 기회 제공과 반복적 기회 제공을 이상적 사회로 그리고 있다. 두가지 논리 모두 기회균등 기획이라는 틀에서 나오는 사고다. 




그런데 설사 기회균등의 관점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고대생의 소망과 달리 학벌주의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그 이유는 극단적으로 단순화시켜서 두 가지인데, 하나는 사회현상의 복잡성과 불확실성, 다른 하나는 능력지표로써 가지는 교육의 한계 때문이다. 이 두 가지가 상호배제적 컨셉은 아니고 서로 연결되어 있다. 


사회현상은 복잡하고 불확실하다. 어떤 활동은 기존 지식의 완벽한 습득과 반복을 요구하고, 다른 활동은 과거와의 단절을 통한 혁신을 요구한다. 교육은 주로 전자의 지표인데, 이 지표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미시간주립대 교수인 스캇 페이지가 행한 실험 중에 이런게 있다. 시험 성적이 좋은 애들끼리만 10명 모아놓은 그룹보다, 시험성적 좋은 애들 5명, 중간 성적 5명을 섞어 놓은 그룹이 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내놓더라는 것이다. 다양성이 곧 혁신과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더라는 것. 


현재의 대학 입학은 비슷한 능력을 가진 우수 학생을 선발한다. 하지만 혁신은 비슷한 경험과 능력을 가진 사람들끼리 소통할 때가 아니라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소통할 때 생겨난다. 학문 분야에서도 자기 연구 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를 끊임없이 곁눈질해야 뭔가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긴다. 


우수 인재들끼리만 끼리끼리 뭉치고 다양성을 추가하지 않으면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게 된다. 


설사 모두에게 동등한 기회가 제공되고, 학벌이 어떤 능력의 완벽한 지표일지라도, 완벽한 학벌주의 사회는 결국 도태된다.  


(그런데 다양성을 강조하는 페이지 교수의 실험에서 한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기존 지식의 습득을 잘한 우수 성적 그룹이 기존 문제 해결과 혁신 모두에서 필요했다는 것이다. 비록 한계가 있지만, 우수 인재를 우수 대학에서 선발하는 과정을 멈추어서는 안되는 이유다. 교육 혁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자주 잊어버리는게 바로 수월성 교육은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재의 대학 입학 선발 기준으로 미래의 모든 복잡성과 불확실성에 대비할 수 없다. 가장 많은 분야에 적용될 수 있는 최대적용의 원칙을 가지고 능력있는 인재를 선발하지만, 그 기준이 향후 생산성 향상에 기여하는 정확한 기준은 아니다. 


학벌이 20대 중반의 청년의 능력에 대해 가장 많은 정보를 제공해 주는 지표이기는 하나 사회적 성공지표로써의 신뢰성(reliability)이 매우 높지는 않다. 학벌이라는 가장 좋은 지표도 미래의 사회적 기여에 대한 지표로써의 정확성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이다. 


지금 40-50대에 이른 사람들은 학창시절 같은 학교 같은 과에 있던 친구들의 처지가 얼마나 크게 달라졌는지 실감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운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시험 성적 몇 점으로는 측정할 수 없던, 하지만 돌이켜 보면 뭔가 달랐던 능력 차이다. 통계에서 항상 얘기하는 학벌로는 측정할 수 없는, 고용주나 인사 담당자는 알 수 없는 능력(unobserved heterogeneity)의 격차가 너무 크다. 


학벌이 한계를 가지는 또 다른 이유는 많은 분야들이 해보기 전에는 누가 잘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똑같은 얘기를 해도 재미있게 전달하는 사람이 있고, 똑같은 물건을 팔아도 신뢰감있게 잘파는 세일즈맨이 있고, 똑같은 이론을 배워도 뭔가 다른 아이디어를 창출해내는 학생이 있다. 해보기 전에는 모른다. 


더욱이 경제가 변화하면서 학벌주의가 가지는 능력 지표 기능이 강화되기 보다는 약화되고 있다. 


요즘 많이 얘기되는게 소프트 스킬이다. 경제가 변화하면서 피플 스킬 내지는 소프트 스킬의 중요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혹자는 여성의 임금이 높아지는 이유를 소프트 스킬의 중요성 강화에서 찾기도 한다. 남자보다 여자가 공감 능력이 높으니까. 


그런데 정규 교육은 소프트 스킬을 측정하는 지표로써의 기능이 작다. 소프트 스킬이 생산성 향상과 회사 이윤 추구에 중요해질수록 학벌주의의 기능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좀 더 포말하게 얘기해 보자. 아래 그래프에서 빨간색 정규 분포가 학벌이 높은 사람들이고, 파란색이 낮은 사람들이다. 능력 지표로써의 교육의 한계 때문에, 또한 사회현상의 복잡성과 다양성 불확실성 때문에, 현 시점에서 사회가 필요로 하는 능력의 variance가 학벌이 높은 사람보다 낮은 사람이 클 수 밖에 없다. 이 경우 아래 그래프에서 보듯 요구되는 능력의 최고점에서 학벌이 높은 사람들 보다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포션이 커지게 된다. 설사 고학벌의 평균이 높더라도, 최상층 인재 충원으로 갈수록 학벌의 중요성은 낮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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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김정숙 여사가 직접 말린 곶감을 트럼프 내외에게 대접했다는 소식에 일부에서 말들이 있는가보다.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여성의 역할을 제한한다고. 

 

그런데 분들이 퍼스트 레이디, 영부인이라는 자리 자체에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나는 영부인이라는 포지션을 이해하지 못한다. 깊이 들어가면 결혼과 가족이라는 제도의 변화와 유지에 대해서도 쉽게 납득이 가지는 않는다.

 

번에 방문한 트럼트 대통령만 해도 결혼을 했다. 자식 5명이 서로 다른 명의 부인에게서 태어났다. 이반카, 도날드 쥬니어, 에릭은 첫번째 부인과 낳은 자식들이다. 알려져 있듯 멜라니아 여사는 트럼프 대통령의 번째 부인이다. 혼인 재혼의 반복으로 조부모와 손자손녀 사이에 혈연관계가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현대 사회에서 가족의 의미는 분명 변하고 있다. 

 

그건 그렇고 ,영부인은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이 있고, 분명히 공적 인물이지만, 선거를 통해 당선된 것도, 공직에 임명된 자리도 아니다.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맺어진 관계가, 경제적 공동체를 넘어 정치적 영향력의 공동체로 확장된 것이다. 혼인과 가족관계를 통한 정치적 영향력이라는 측면에서 현대 사회에서 영부인보다 자리는 없을 것이다.

 

대통령직의 특수성을 감안할 영부인이 받는 경호와 일정 정도의 영향력은 불가피하다. 부부 모두가 전문직이다가, 명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는데, 다른 명이 자신의 직업을 그대로 수행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대통령의 영향력이 당선되지 않은 배우자를 통해 그대로 관철될 것이기 때문이다. 영애와 영식도 비슷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들은 원래 직장에 계속 근무한다.

 

웃기는 것은 미국과 한국의 대통령제에서 영부인이라는 자리가 가족관계의 특수성 때문에 유지되는, 대통령의 배우자가 없으면 당연히 존재하지 않는 지위가 아니라,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반드시 채우는 지위라는 점이다. 탄핵당한 박근혜 전대통령이 영애일 영부인 노릇을 대신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에서도 영부인이 없으면 자식이, 자식이 없으면 다른 여성 친척이라도 데려다가 영부인 역할을 시켰다. 예를 들어, 평생 총각이었던 부캐넌 대통령은 조카가 영부인 노릇을 했다.


현재의 영부인은 대통령직의 특수성 때문에 특수 가족관계인 그 배우자에게 부여하는 지위가 아니라, 영부인이라는 정부 조직 내 어떤 지위가 있고, 이 지위를 가족관계를 통해 채우는, 혈연을 통해서만 채워지는 정치적 지위다.  

 

그런데 여성이 대통령이 되었을 First Gentleman (영부군?) 자리를 반드시 채우지는 않는다. 당장 박근혜 전대통령을 보라. 그가 대통령이던 시절 2부속실을 없앨까 고민했다지 않은가. 전통적으로 영부인이 했던 역할, 청와대 안주인으로써의 역할을  전대통령 자신이 했다. 

 

영부인이라는 자리는 뭘까? 봉건시대 왕에게는 반드시 중전이 있어야 했던 전통의 잔재인가? 즉, 미국에서 대통령이라는 포지션이 생길 때 남아있던 봉건적 요소가 영부인 자리인데 그 나름의 기능이 있어서, 또는 그 후 경로의존성으로 현재도 유지되는 것인가? 영부인 자리는 반드시 채우지만, 영부군 자리는 반드시 채우지 않는 것은, 마치 여성에게 일과 가정사 모두를 감당할 것을 요구하는 것과 비슷한 것인가


포지션에 대한 정치학이나 사회학에서 어떤 이론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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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검사의 위증 교사

기타 2017.11.06 18:36

우병우 : "증거인멸 같은거, 저도 검사 출신인데 누구든지간에 시키겠습니까? 그런거 한 적 없습니다."




지난 청문회에서 김경진 국민의당 의원이 질의에 우병우 전수석이 한 말이다. 증거인멸 같은거 검사 출신은 안시킨다고. 우 전수석은 이런 것은 너무 상식적인 일이라, 검사가 증거인멸을 시키는 일은 하지 않는다고 반어법으로 답했다. 


우병우 전수석의 윤리의식에 비추어도 너무 터무니 없다고 얘기했던 일이 바로 검사 출신이 누군가를 시켜 증거인멸 시키는 것. 


하지만 댓글수사방해 사건은 검사라면 상식적으로 도저히 할 수 없는, 우병우 전수석도 검사출신인 나를 뭘로 보고 증거인멸 교사했다고 물어보냐고 불쾌하다는 응답을 했던 그 일을 현직 검사들이 조직적으로 했다는 증거가 나온 사건이다. 


현직 검찰 간부들이, 바로 자신들이 그 구성원인 검찰, 기소독점권을 가진 그 검찰의 국정원 사무실 압수 수색에 대비해 허위 서류를 가져다 놓은 가짜 사무실을 만들고 직원들에게 수사와 재판에서 허위 진술을 하도록 지시한 혐의(공무집행방해·위증교사)를 받는 사건. 


이런 일을 위에서 시켜서 어쩔 수 없이 했다고 변명할 수 있는가? 현직 검찰의 직업 윤리 측면에서 이 보다 더 나쁜 일이 있을까? 


똑같이 형법의 저촉을 받는 일이지만, 직업윤리를 따지자면, 뇌물받고 죄를 무마시켜줄려고 노력했던 검사와, 권력의 비위에 맞추기 위해 같은 검찰이 시행하는 수사를 방해하고 위증을 교사한 죄 중에서, 후자가 훨씬 더 나쁜 짓이 아닌가? 


 


박근혜 정권 시절은 전문직의 윤리적 바닥을 본 시기이기도 하다. 


물대포 사건의 진단서를 엉터리로 발부한 서울대병원 백선하 의사, 댓글수사를 방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장호중, 이제영, (고) 변창훈 검사. 


전문가의 직업윤리가 이 보다 더 떨어질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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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현 노사정위원장 강연 전문


"... 어떤 형식이든 시험치고 그자리 간 사람은 자기가 대단히 똑똑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대부분 정규직은 시험 치고 들어간다. 공무원 시험이나 임용고시 친다. 이번에 기간제 교사가 문제된 것도 교사들도 다 시험치고 들어가서 그렇다. 하다못해 사기업도 입사시험 치고 들어간다.


시험 친 사람은 자기가 시험치고 왔다는 자부심과 자랑이 있다. 이건 그분들이 잘못된 게 아니고 현실이 그렇다. 그런데 대부분 비정규직은 그렇지 않다.


단언컨대 정규직화의 첫번째 걸림돌은 회사나 정부 이전에 노동자끼리의 신분적 차이를 어떻게 할것인지다. 이것이 우리에게 던져진 숙제다. 하기는 해야하는데, 어떻게 해결하나. ..."





앞서 포스팅한 능력주의라는 지옥과 통하는 얘기. 문성현 위원장의 주장은 비정규직 차별을 합리화하는 가장 큰 기제 중 하나가 "시험"이라는 것. 


똑같은 일을 해도 시험을 통과해서 들어온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뉘는 것이 합당하고 그에 따른 차별은 능력에 따른 차이지 차별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 


사실 시험에 합격하냐 아니냐는 점수 차이가 몇 점 되지 않는데, 이 몇 점 안되는 점수 차이로 대우가 달라짐.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통계기법 중에 Regression Discontinuity라는 기법이 있는데, 이 기법의 가정이 이런 거임. 학교 입시 시험에서 커트라인 바로 위에 있어서 합격한 사람이나, 바로 밑에 있어서 불합격한 사람이나 능력의 차이는 없다는 것. 시험 점수가 능력의 척도라면 시험에 턱걸이로 합격한 사람과 1점이 모자라 불합격한 사람이나 소득차이가 별로 나지 않아아 햠. 시험 점수의 연속선에서 소득이 결정되어야 함. 


그런데 합격과 불합격을 기점으로 큰 격차가 벌어지면 (=discontinuity) 이것은 학교에 입학해서 교육받는 것이 소득을 높이는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것. 


순수한 능력주의에 따르면 시험에 1점 차이로 합격한 사람과 불합격한 사람의 격차보다는 턱걸이로 합격한 사람과 수석합격자의 격차가 더 커야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음.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많은 불평등이 이렇게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제도적 장치에 의해 결정되는 것. 




그러면 시험봐서 사람 뽑는 시스템이 나쁘다는 것이냐? 그건 또 그렇지가 않음. 특히 개발도상국에서 인적자원을 활용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정부의 중요 직책을 시험을 봐서 뽑는 것. 어디서 봤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한국의 빠른 경제 성장의 배경 중의 하나로 고시를 적시한 UN 보고서도 있었음. 많은 후진국에 권고하는 사항 중 하나가 시험봐서 사람 뽑으라는 것. 


시험을 안보면 정실이 개입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 시험보다 더 확실하게 능력을 재는 지표도 많지 않음. 




그러면 해결책은? 


하나는 경쟁의 기회를 끊임없이 주자는 것. 온갖 유연화론이 이에 입각한 것. 패자부활전이니, 처음에는 실패했지만 나중에 성공하는 감동스토리도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 앞서 포스팅한 기회평등 기획은 항상 패자부활전 부여하기 논리로 이어짐. 


다른 하나는 시험에 합격한 사람과 불합격한 사람의 격차를 줄이자는 것.  선발방식도 시험 만이 아니라 다양화해서 한가지 척도로 능력을 재는 방식을 지양하자는 논리, 전반적인 불평등을 줄이자는 논리가 이에 해당. 





이 논란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데, 이 논쟁 중에 한가지 변수가 더 끼어들었으니, 그건 바로 교육의 확장임. 한국에서 중진국으로 올라올 때 까지 시험의 순기능이 컸던 이유 중의 하나가 국민의 전반적인 학력수준이 낮은데 시험을 통해 사람을 뽑아서 능력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었던 것. 


그런데 한국처럼 고등교육 이수자가 코호트의 80%를 차지하는 국가에서는 시험이 가지는 긍정적 기능은 줄어들고 있다고 생각됨. 능력의 지표 기능은 떨어지고 한정된 스팟을 차지하는 의자돌리기 게임의 규칙으로써의 기능은 커지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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