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기고글


... 영남패권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정치 기획은 과연 대중의 정치적 요구를 반영하고 있을까. 거칠게 말해 영남패권주의는 세 가지 차원에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는 인종주의적 영남패권주의다. 미국의 인종차별처럼 영남 출신이 사회 전방위적으로 특혜를 누리고 호남 출신이 차별받는다는 주장이다. 두 번째는 엘리트계층 내 권력 배분 기제로서의 영남패권주의다. 한국 현대사에서 박정희 이후 김대중을 제외한 모든 대통령이 영남 출신이었다는 게 대표적인 근거다. 세 번째는 출신 지역이 아니라 지역 발전 전략으로서의 영남패권주의다. 영남만 발전하고 다른 어떤 지역보다 호남의 발전이 지체됐다는 것이다. ...


... 여러 자료를 통해 검증을 시도했지만 인종주의적 영남패권주의가 존재한다는 증거는 발견하기 어려웠다.... 다수 대중이 영남패권주의에 대항해 연대할 수 있는 물질적 기반은 찾기 어렵다. 한국 사회에서 인종주의적 영남패권주의를 가정한 정치 기획이 성공하기 어려워 보이는 이유다. 반면 두 번째 차원인 엘리트 내부의 권력 배분 기제로서의 영남패권주의는 매우 쉽게 확인된다. ... 전남은 다른 지역보다 젊은 층의 이주율이 높고 출생지와 현 거주지의 일치율(32%)이 유독 낮다. 전남지역의 소외감에는 분명히 물질적인 근거가 있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인종주의적 영남패권론에는 근거가 없다. 엘리트 계층 내부의 영남패권은 정권교체로 수정 가능하겠지만, 전남의 지역 발전 지체는 새로운 기획을 필요로 한다. ...


학술적으로 지역주의 논쟁은 사회학에서는 황태연 교수가 예전에 지역등권론 주장하면서 소개했듯이 70년대에 잠깐 있었고 그 다음은 거의 사라짐. 지역을 좀 더 체계적으로 개념화하려는 시도가 그 후 몇 차례 있었으나 별로 성공적이지 못했음. 지역은 주로 농촌사회학자의 관심 영역. 


1990년대 독일에서 지역주의에 대한 논쟁이 있었는데 지역의식은 실질적인 물질적 기반이 없는 정치인의 동원 기제(시민의식의 왜곡으)로 대략 정리되었음. Bourdieu 같은 경우에도 지역갈등은 권력을 둘러싼 의식적인 집단형성 과정으로 이해함. 


요즘 인문지리학에서 지역주의, 지역의식, 지역정체성에 다시 관심을 가지는 경향이 있는데 그 이유는 유로존의 형성 등 민족국가를 뛰어넘는 광범위 institution으로써의 지역의 등장 때문. 


당연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지역정체성과 지역의식(계급의식 비슷한 의식)은 어떤 객관적이고 필연적인 요소가 있다기 보다는 역사적 문화적 조작적으로 형성되는 구성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입장이 지배적인 듯. In-group과 out-group을 확실히 해야 집단행동이 가능한데 지역의식은 이러한 행동의 토대를 제공함. 따라서 지역주의는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것. 


많은 경우 국가 내 지역주의, 지역의식, 지역정체성은 정치 엘리트 집단의 패권 강화를 위해 조작된 것. 영남패권주의도 이에 해당. 저항적 지역주의도 존재하기는 하나, 지역 외의 다른 정체성과 결합하여 지역의 독립을 목표로 하지 않는 경우에는 한계가 있음. 


기존 연구에 따르면 저항적 지역주의든 억압적/패권적 지역주의든 지역주의가 인종주의와 결합할 때 큰 위력을 발휘함. 지역주의 약화가 목적일 경우에는 지역의식이 인종의식과 결합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함. 

Posted by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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