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수도권 중심 지배세력 연대에 달린 촌평님의 댓글을 몇 가지 생각해볼 점이 있다고 생각되어서 본문으로 세웁니다. 제목은 제가 그냥 붙였습니다.

이명박이 박근혜와의 당내 경선과 정동영등과의 대선 본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 중원(수도권)을 장악한 결과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입니다만, 그것을 바이커님이 지적한 새로운 지배연합의 형성이란 측면에서 본격적으로 다룬 시도는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면 지난 참여정부 5년은 한나라당의 수도권중시 전략과 참여정부의 지역중시 전략이 지속적으로 충돌했고 결과적으로 한나라당의 전략이 승리한 기간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수도권(강남이 코어)을 축으로 하는 새로운 지배연합이 형성된 것 같습니다.

현재 이슈가 되고 있는 이명박의 세종시 수정 정책 역시 같은 전략의 연장선 상에 있는 것이며, 4대강 사업은 이를 보완하는 지방 무마 정책의 의미를 갖는다고 봅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이명박의 '삽질정책'은 그들 입장에서 대단히 전략적이고 합리적인 정책이며 그런 만큼 반드시 밀어붙일 가치가 있는 것들이라고 봅니다.

문제는 이런 이명박-한나라당의 전략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느냐, 곧 저항연합을 어떻게 구성하는냐 하는 것이겠는데요, 결국 수도권 개혁진보층-소외층(지역적, 계급적)과 지방의 연합이 될 수밖에 없으리라 봅니다.

수도권 소외층이 수도권 코어에 포섭될 가능성이 크고 지방이 분열되어 있다는 점에서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지난 대선에서 500만표 차이로 나타났음), 반이명박-반한나라당 진영으로선 어쩔 수 없는 선택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난 재보선에서도 드러났듯이 이런 전략이 반드시 무망하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한번 시도해볼만한 길이지요.

이런 점에서 노무현의 지역기반 수도권 포위전략은 오히려 앞날을 내다본 혜안으로 평가될 수도 있겠죠. 수도권 개혁진보층-소외층을 포섭할 수 있는 분명한 전략이 덧붙여진다면 말이죠.

이명박과 대립각을 형성한 박근혜의 경우 바이커님의 지적대로 약간 모순적인 포지션인 것 같은데요,궁극적으로야 한나라당의 핵심 기반인 수도권(코어) 이익과 영합하겠지만, 당분간은 지방 이익을 대변하며 세력을 다질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4대강이나 세종시에 대한 박근혜 입장 참조)

이런 점에서 보자면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의 경우 박근혜의 한나라당(친박연대?)과 연대할 가능성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이명박의 한나라당과 연대할 가능성은 현재의 세력 구도상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봅니다.

물론 국민참여당이 무시할 수 없는 제3당 혹은 제2당으로 성장한다면(민자-평민-민주-자민 4자 정립구도 때처럼), 그래서 새로운 수도권-지역 연합의 필요성이 정략적으로 제기된다면 모를까 그러지 않는 한에서는 거의 가능성이 없는시나리오라고 봅니다.

즉 신3당합당의 위험성은 그만큼 반한나라당 진영의 수도권 개혁진보-소외층과 지방간 연합 전략이 성공을 거둔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시나리오인만큼, 지금 시점에서 그런 걱정(?) 혹은 상상을 하는 것은 거의 불필요한 일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정치세력의 행위에는 이념(정체성)이 상당히 주요하게 작용하긴 하지만, 주어진 상황의 압박요인(이익)이 더욱 결정적이라는 데 동의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는 거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죠. 그러나 유사한 상황에서도 누구(어느 세력)는 변절(?)하고 누구는 하지 않듯이, 객관적 상황 못지 않게 주관적 상황도 정당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봅니다. 어쨌든 이런 이야기는 모두 국민참여당이 상당히 성장한다는 점을 전제하기 때문에 현재로선 거의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요즘 언론에 글쓰는 한국의 정치학자 중에 가장 참신한 얘기를 많이 하는 사람은 경희 사이버대 미국학과의 안병진 교수 같다.

프레시안에 쓴 오바마 집권은 개인의 역량이 아니라 미국 민주당과 진보세력 전체의 역량 때문이라는 글(프레시안 칼럼)도 괜찮았고,

한겨레 21에 요약 정리되어 나온 노무현 정권을 매디슨적 공화주의와 마키아벨리적 공화주의로 나누고, 양자의 모순에서 노무현 정권 몰락의 원인을 찾는 시도(한겨레21 기사)도 참신하다. 아래 일부만 인용하면, 


예컨대 노무현식 공화주의에 주목한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교수의 발표는 ‘초기 노무현’과 ‘후기 노무현’의 간극을 설명하는 참신한 잣대다. 공화주의는 소수에 의한 ‘자의적 지배’를 배척하는 태도다. 권력기관의 상호 견제와 균형을 통해 이를 구현하는 게 핵심이다. 안 교수가 보기에 노 전 대통령은 헌정 사상 처음으로 “공화주의적 가치를 초보적 형태로나마 구현하려” 했다....


그런데 공화주의에도 두 종류가 있다. 엘리트 사이의 이성적 대화와 타협을 강조하는 태도가 있고, 시민들에 의한 엘리트 견제를 강조하는 태도가 있다. 앞의 것을 안 교수는 ‘매디슨적 공화주의’로 불렀다.... 뒤의 것은 ‘마키아벨리적 공화주의’로 부를 수 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의 통치 기술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으로 곧잘 오해되지만, 실은 민중의 역량에 주목한 선구적 정치학자였다...


안 교수는 노 전 대통령이 “선거에서는 마키아벨리적 공화주의에 기댔고, 국정운영에서는 매디슨적 공화주의에 집착했다”고 본다. 한나라당을 향해 대연정이나 개헌을 제안한 것은 “메디슨적 정치 구현”에 매달린 결과다. 이런 태도는 결과적으로 핵심 지지 기반을 침식했다. 특권층을 비판하는 대중의 지지를 얻고서도, 오히려 지배 엘리트와 타협하는 데 많은 정력을 기울였다는 진단이다...


노무현 정부가 서툴렀던 점이... 집권 초기, 4대 입법 등 거대한 정치 의제보다는 사소하지만 작은 곳에서 성과를 얻으면서 민심을 확인해나가는 민생 의제를 추진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키아벨리적 공화주의로 특권층을 견제하면서도 매디슨적 공화주의로 지배 엘리트를 적절히 설득하는 전략이 그 요체다.



안교수는 80년대 학생운동할 때는 제헌의회 쪽에 가까웠고, 사노맹에도 관련되었던 걸로 알고 있다. 한국에서 석사하고 미국으로 유학가더니 뉴욕의 뉴스쿨에서 클린턴 선거전략가 딕 모리스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예전에 하킴님이 지난 미국 대선에서 Ayer를 둘러싼 논란을 보고 미국에서는 60년대 과격 운동권이 유의미한 사회활동에서 완전히 배제되었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라는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안교수를 보면서도 그런 생각이 든다. 지식인 숫자가 작기 때문에 배제 전략을 쓸 수 없었을 수도 있지만, 이런 면에서는 미국보다 한국이 더 개방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한겨레 21 기사의 일독을 권한다. 최장집 원로 교수의 일관성 없는 얘기(오돌또기님의 "속보" 참조)보다는 알찬 내용이 많다.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의 목숨을 끊은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이 언론과 검찰이 너무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일반 시민과 언론종사자들이 너무하는 언론과 검찰에 크게 저항하지 않았다. 오히려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대부분의 언론종사자들이 너무한다고 지금 얘기하는 그 행위에 동참 하였다.

우리는 왜 이러는걸까?

사회조사방법론 시간에 꼭 배우는 내용으로 밀그람의 실험이라는게 있다. 1963년에 밀그람이라는 학자가 독일에서 왜 홀로코스크가 일어났는지, 그 많은 사람들이 그 잔인한 행위를 어떻게 할 수 있었는지 실험을 통해 알아보고자 하였다.

실험에서 피실험자는 문제를 읽고 옆방에 있는 응답자가 잘못된 답변을 하면 전기충격을 주도록 하였다. 피실험자는 응답자를 보지는 못한다. 전기충격은 처음에는 약했지만, 갈수록 강도가 세어진다. 150볼트가 넘어가면 옆방 응답자의 비명도 들리고, 330볼트가 넘어가면 더 이상 비명도 들리지 않게 된다. 연구자는 피실험자에게 옆에서 전기충격을 계속 주도록 지시한다. 물론 전기충격은 가짜다.

충격적이게도 80%의 피실험자가 150볼트까지 전기충격을 주었고, 비명이 들린 다음에도 65%의 피실험자가 450볼트까지 전기충격을 주었다.

문제를 맞추면 좋겠지만, 틀리더라도 그게 어디 전기 충격을 가할만한 잘못이겠는가. 대부분의 인간은 잘못된 것인줄 알면서도 권위와 분위기에 복종하며, 10볼트씩 올리는 충격 강화에 설마 괜찮겠지라고 스스로를 위안한다. 80볼트의 충격을 이미 주었는데, 10볼트 올린다고 뭐가 대수겠는가.

1963년은 옛날 일이고, 지금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얼마 전에 버거 교수가 유사한 실험을 하였다. 인권에 대한 가치도 높아졌고, 개인의 자유에 대한 의식도 높아지지 않았던가. 그러나 여전히 70%의 피실험자가 150볼트까지 권위에 분위기에 복종하여 응답자에게 전기 충격을 가하였다.

150볼트 이상으로 볼티지를 올리는 실험은 이 번에는 행해지지 않았다. 밀그람의 실험은 응답자의 비명 때문에 정신적 충격을 입은 피실험자에 대한 윤리 문제 때문에 절대 해서는 안되는 과학 실험의 대표적 예가 되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실험의 교훈은 이념, 의식, 문화가 발전하더라도, 어떤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가에 따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잔인해질 수 있다는 거다. 더군다나 그 지시가 권위있는 상부로 내려올 때, 그 지시를 어기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설사 그 지시를 어김으로써 자신이 당하는 피해가 전혀 없더라도.

노무현의 죽음에 대해 언론인, 정치인, 보통 사람들이 느끼는 미안함은 사회적 분위기와 권위에 복종하여 그를 죽음으로 몰아가는데 자신도 눈꼽보다 작은 정도라도 기여했다는 죄책감과,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애초부터 알고 있었던 감정이 뒤섞여 일어 나는, 인간들의 보편적 행동 양식이다.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실시한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나라당 지지율이 22%로 10%포인트 폭락하고, 민주당은 21%로 8%포인트가 올랐다. MB 지지율도 20%대 후반으로 폭락.

한나라당과 MB지지율 떨어지는건 이해한다고 해. 민주당이 한게 뭐가 있어서?

노무현 전대통령이 그래도 민주당 소속이라는 사람들의 생각 밖에는 다른게 없다. 식물정당에서 팔팔하게 살아 숨쉬는 대안정당으로 살아나는거, 한 순간이다. 이러다가 다 죽겠다는 생각을 사람들이 하기 시작한거다.

이 정국에서 선거구제 개편 같은 얕은 수로 노 전대통령의 유지를 이를려는 정치인은 별로 없을게다.

진보개혁세력은 <정치인들의 활동, 권모술수로써의 정치>와 <운동으로써의 정치>를 결합해야만 산다. 지금은 서로 다른 세력으로 분리되어 별도의 활동을 하던 두 정치를 화학적으로 융합할 절호의 찬스다. 노 대통령이 온 몸 던져 제시한 메시지다.

호남 중심의 민주당 재건론은 전자만 있지 후자가 없어서 성공할 수 없고, 친노세력 중심의 정면돌파론은 후자만 있지 전자가 없어서 성공할 수 없다.

한국사회의 경제적 변화 때문에 호남 중심 재건론이 타 지역, 타 계층과 연대할 수 있는 진보적 의미를 가지기 보다는 지역이기주의로 흐를 가능성이 커졌으며, 다수 대중의 물질적 욕망을 수용하기 어렵게 되었다. 하지만 진보적 호남과의 결합없이 한국 사회의 진보적 아젠다를 실현할 수 있는 역사적 정치적 능력은 현재도 없고 상상 가능한 미래에도 없다.

지역 등권론이 <운동으로써의 정치>도 포괄할 수 있었던 힘은 지역불균등 발전을 치유하는 경제적 함의와 5.18로 상징되는 민주주의 운동을 완성하는 정치적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영호남으로 대비되는 지역 불균등 발전 보다는 수도권 대 비수도권, 강남 대 강북으로 대비되는 계급 갈등의 의미가 더 커진 상황, 5.18 기념식마져도 내부 갈등을 겪는 현 상황은 호남이 더 이상 <운동으로써의 정치>의 바탕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반면 친노세력은 그 구성원의 활동에서도 그렇고, 정치적 성향에서도 계급갈등을 해결하려는 <운동으로써의 정치>를 가지고 있으나, 그들의 막연한 열망을 실현할 구체적인 아이디어도 없고, 정치활동을 통해 그들의 생각을 실현할 당선 가능한 정치인들도 없다.  친노세력이 그들의 순수 혈통을 유지하고자 한다면, 이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운동으로써의 정치>의 대의를 몇몇의 심리적 자족을 위해 내버리는 행위가 될 것이다. 전형적인 운동권 소아병이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에서 얼마전에 조사한 것처럼, 호남은 진보적 호남과 이기적 호남으로 분열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호남은 그 어떤 표밭보다 진보적이다. <운동으로써의 정치>를 추동하는 세력이 진보적 호남과 결합할 때, 진보적 호남이 지역이기주의적 호남을 압도하고 한국 사회의 변화를 추동할 수 있다.

어떤 정치도 실익과 명분을 분리해서 성공하지 못한다.

미국 공화당이 80년 이후 오랫동안 해먹을 수 있었던 것도 보수주의 운동과 정치를 결합했기 때문이고, 오바마가 성공한 것도 풀뿌리 민주주의 운동과 정치를 결합했기 때문이다. 루즈벨트가 새로운 미국, 새로운 세계의 역사를 쓴 정책을 펼친 것도, 미국 진보정치, 사회주의 운동의 아젠다와 지지를 그의 권모술수와 융합시켰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재임 기간 동안의 실패는, 그 역시 양자를 결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가 자신의 몸을 던져 마련한 마지막 승부수다. 지금 <정치인들의 활동, 권모술수로써의 정치>와 <운동으로써의 정치>를 결합함으로써 이 유지를 이어받아야 한다.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스켑렙에서 노무현 애도가 찻잔 속의 태풍으로 지나가고 친노의 정치적 부활은 없을 것이라는 의견이 주류군요.

대중의 사랑을 받다 비극에 간 지도자에게 대중이 부여하는 판타지를 과소평가하는군요.

노무현 대통령의 사망으로 친노세력은 정치적으로 부활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가졌습니다. 단, 이들의 부활은 독자세력으로써가 아니라 민주당에 통합됨으로써 가능합니다.

민주당은 노무현이 남긴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를 화두로 진보개혁세력의 통합을 이루어야 합니다. 정동영의 복당을 받아들이고, 친노세력의 복당을 받아들이고, 진보개혁의 적장자로써 자신을 위치지어야죠.

누구나 이 길이 사는 길이라고 알고 있었지만, 정치공학으로 이를 이루고자 했을 때, 국민들의 시선은 싸늘했습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자신의 몸을 던져 이 기회를 마련하였습니다. 이 시점에서의 통합을 정치적 술수로"만" 보는 국민은 소수일 것입니다.

일부 극단적인 친노세력이 조문을 막고 행패를 부렸지만, 지도부에서는 점잖게 타이르는 성숙된 모습도 보여줬습니다. 노혜경 선생이 인터뷰에서 적대적인 분들도 조문을 왔으면 좋겠다고 한 그 모습이 바로 친노의 정치적 부활의 출발점입니다. 유시민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노무현의 계승자로써의 이미지를 통합의 재료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한국에서 진보개혁세력은 호남을 중심으로 한 지역등권파와 수도권 386을 중심으로 한 진보파의 긴장관계로 당을 꾸려가야 합니다. 정동영을 배제하면 전자가 없어지고, 친노세력을 배제하면 후자가 없어집니다. 이 통합으로 전국 정당으로써의 모습도 갖추고, 호남 배제도 극복하고, 진보적 아젠다도 껴앉을 수 있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의 역사를 자랑스러운 민주당의 역사로 만들 수도 있고요.

언제까지 노무현 추모를 돌담길 아래에서 전경버스에 둘러쌓여 할 것입니까. 시청 앞 잔듸 광장이 우리가 있어야 할 그곳입니다. 텅빈 그 광장을 추모객으로 메우는 일은 현 여권 인사에게 물병을 던져서 이룰 수 있는게 아니라, 힘을 모아 정치세력을 만들고 선거에서 이겨야 이루어집니다. 

이런 비극적 계기에 정치적 통합을 이루는 능력을 보임으로써, 국민으로부터 수권 세력으로써의 신뢰를 쌓을 수 있습니다. 꼭 구체적인 정책적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 게 아닙니다. 다음 번 선거는 진보개혁세력의 적장자 민주당이 한나라당을 이기는 선거가 되어야 합니다.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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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를 열며...

기타 2009.05.24 18:50
블로그를 열 생각이 없었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마주하고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그가 일생을 통해 꿈꾸었던 지역주의의 극복, 특권 없는 사회는 대연정과 같은 정치적 빅딜이 아니라, 경제적 이득의 (생산) 분배 구조를 변화 개선시킴으로써 가능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방법은 이념에 대한 견결한 믿음이나, 개인적인 청렴결백의 유지를 통해서가 아니라 변화하는 현상에 대한 사회과학적인 분석과 이에 걸맞는 정치적 정책적 실천을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겠죠. 

노무현의 눈물은 뒤로 하고, 노무현이 좋아했다는 "정연한 논리"를 앞세우는 것이 그의 꿈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될 것입니다.

이 블로그는 다같이 잘먹고 잘사는 사회, 사회 발전의 효율성을 해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최대 평등을 지향하는, 미국에 거주하는 한 사회과학도가, 한국사회에 의미있다고 생각되는 연구물들을 공유하는 다소 무미건조한 기록이 될 것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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