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댓글에 보니까 어떤 분이 "같은 회사에서 같은 직위를 가지고 같은 종류의 일을 해서 같은 시간만큼 일했을 때 임금 차이"가 나야지 차별이고, 다른 회사 다른 직종에 종사하는 남녀 간의 격차는 차별일 수 없다고 하는데, 차별의 여러 형태 중 자신의 머리 속에서 그리는 특정 형태만 차별이라고 우기는 논리. 이 논리에 따르면 (사실상의) 노예와 (사실상의) 노예주 간에도 차별이 없음.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차별을 없애기 위해서 고안된 개념인데 일부 분들은 차별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쓰는 듯.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 기회에 동일노동의 의미에서 대해서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듯.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이상형(ideal type)으로 내지는 선언적으로 존재하는 개념이지 현실에 직접 적용가능한 개념이 아님. 그래서 요즘은 "동일노동"이라고 안하고 "동일가치노동"이라고 함.
세상에 동일노동은 없다고 봐도 무방. 모든 노동은 다 다름.
예를 들어 똑같이 공무원 시험에 붙어도 종사하는 일은 다름. 어떤 부서는 더 힘들고 어떤 부서는 더 많은 지식을 요구함. 그래도 같은 월급을 받음. 이거 부당하다고 주장할 수도 있음. 같은 학교, 같은 과, 같은 시기에 고용된 선생에게 같은 과목(예를 들어 통계)을 가르치라고 해도 선생마다 내용이 다르고 학생들의 성취도도 다름. 강의평가에 따라 월급을 달리 줘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음. 사무직만 그런게 아님. 기술직이나 노무직도 엄밀히 따지면 사람마다 기여도가 다 다름.
사람마다 기여도가 다른데 이 기여가 부가가치를 늘리는 것인지 아닌지, 늘린다면 얼마나 늘리는지도 확실하지 않음. 어떤 기여는 눈에 띄고 어떤 기여는 눈에 띄지도 않음. 임금이 생산성을 반영해야 하는데, 개인의 생산성이 얼마인지 측정할 방법이 없음.
심지어 승패가 확실한 팀스포츠에서도 개개인의 선수가 승리에 어느 정도 기여했는지 계산할 방법이 없음. 손흥민의 기여도가 정확히 얼마인지 평가할 수 있음? 온갖 통계수치를 이용하여 평가자의 편향을 줄일려고 하지만, 결국 최종 평가는 평가자의 주관으로 하는 것.
그렇기 때문에 동일노동, 동일가치노동을 엄밀히 따지고 들어가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임금 차이를 정당화하는, 개인간의 어떤 차이를 발견하는 황당한 논리로 발전시킬 수 있음. 이 논리에 따르면 모든 불평등을 정당화할 수 있음.
일부에서 상식적으로 이해하는 것과 달리, 임금은 개인의 기여도에 맞춰서 지급하는 것이 아님. 일에 대한 보상은 그 사회에서 인지된 그 일의 대략적 가치를 그 사회의 관행에 따라 보상하는 것. 평균적으로 그렇다는 것이고, 여기에 여러가지 우연적 구조적 요소들이 개입함.
세상을 이해할려면 임금 격차를 낳는 여러 구조적 우연적 요인들이 무엇인지 따져보고, 왜 어떤 구조적 우연적 요인은 임금 격차를 낳고 다른 구조적 우연적 요인은 임금 격차와 상관이 없는지 설명할려고 노력해야 함. 설명이 설득력이 있을려면 임금 격차가 없는 상태를 정상 상태로 가정하고 논리를 시작해야 함.
Ps. 통계적으로 N-1만큼의 변수를 통제하면 회귀모델의 R-squared값은 1이 되는데 이를 두고 모든 격차를 설명했다고 우기는 분들도 있음. 하지만 그게 곧 포함된 변수들이 모든 것을 설명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음. 동일노동 동일임금 논리로 성차별이 없다는 주장을 접할 때마다 saturated model을 만들어서 R-squared값을 높이는 행위를 보는 그런 느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