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를 시작하며 썼듯이 이 블로그를 시작한 이유가 노대통령 서거.
노대통령 서거 후 친노의 운명과 과제에 대한 글을 10년 전에 "포스트 노무현 시대의 과제"라는 제목으로 올린 적이 있는데 그 때의 진단대로 상당 부분 진행되었다고 자평함. 포스트 노무현 시대의 과제는 문재인 정부의 출현으로 일단락 되었음.
포스트-포스트 노무현 시대의 과제라 칭할 수 있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민주화 세력, 진보 세력의 과제는 주류 세력의 교체라고 생각함. 달리 표현하면 소수파가 아닌 다수파가 되는 것. 정권 교체를 목표로 했던 포스트 노무현 시대의 과제보다 10배는 어려운 과제.
누누이 말하지만 한 사회는 성문화된 법률과 규칙 만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에 더하여 암묵적 합의와 문화에 의해서 돌아감. 한국 사회에서 대통령제를 바꾸지 못할 것으로 보는 이유가 한국의 행정부는 대통령의 권위를 정점으로 돌아가는데, 이 권위복종체제가 하루이틀에 걸쳐 형성된 것이 아님. 내각제 헌법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법에는 빈틈이 있기 마련인데 이 빈틈을 메꾸는 관행이 형성되기까지 상당 기간이 필요함. 결국에는 안정화되겠지만 대통령제에서 내각제로 바꾸면 한국 사회는 쓸데없는 혼란을 겪게될 것. 왜 굳이 그런 어려움을 겪고 권력체제를 내각제로 바꿔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움. 권력을 대하는 암묵적 합의와 태도는 매우 중요함.
권위에 대한 복종도 사람 가려가며 하는 것. 어떤 지위에 오른다고 그 지위에 오른 사람에게 무조건 복종하는 것이 아님. 같은 지위라도 사용할 수 있는 권력은 그 지위에 오른 사람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따라 차이가 남. 그런 면에서 진보보다는 보수가 정권을 잡았을 때 더 큰 권력을 사용할 수 있음. 지금 행정부, 사법부, 언론, 학계 모두에서 현 정부에 대해서 딱히 우호적이라고 느껴지지 않을텐데, 그 이유는 민주화 세력, 진보세력이 주류가 아니기 때문. 같은 정권을 잡아도 보수와 진보 정권을 대하는 사회 각층의 태도가 다름. 보수는 원래 거기 있을 디폴트, 진보는 어쩌다 온 노이즈.
이 태도를 바꾸는 다른 방법은 없음. 진보가 디폴트로 정권을 잡고 국가를 운영하면 됨. 이해찬이 말한 20년 집권이 진짜 과제임. 그러면 언론 환경도 바뀌고, 대다수 공무원의 태도도 바뀌고, 학계의 연구주제도 바뀔 것. 굳이 정권을 쥔 측에서 말하지 않아도 알아도 바뀔 것.
20년 집권의 환경이 좋은 편은 아님. 전세계적으로 민주주의와 진보의 확장이 이루어지는 시기면 상대적으로 쉽겠지만, 지금은 세계 패권을 둘러싼 미중 갈등이 심화되고, 전세계적으로 국수주의와 보수주의가 득세하고 있음. 외교적으로 정치적으로 정책적으로 상당히 유연한 태도가 요구됨.
이런 환경 속에서도 할 수 있는 방법은 설사 조금 마음이 맞지 않더라도 연대하고 세력을 확장해서 다수파가 되는 것. 천관율 기자가 "다수파가 되는 전략이 가장 급진적인 전략이다"라고 한 적이 있는데 전적으로 동의함. 민주당 지지세력 중에 가장 한심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같이 보조를 맞춰가야할 사람들을 공격하는 분들. 툭하면 이재명 공격하고, 비문 정치인 공격하는 그런 방식으로 다수파가 될 수는 없음.
집권세력이니 당연히 좋은 정책을 펴야하는데, 방향만 맞다면 설사 원하는 정책에서 조금 모자라더라도 세력 확대가 될 수 있는 방향으로 집행해야 함. 진보적 정책도 긴 과정을 통해서 가랑비에 옷젖듯 바꾸다보면 어느덧 산천이 변한걸 느끼게 될 것.
노대통령 서거 후 정권 교체를 위해 작은 차이를 극복하고 단결했듯 이제는 20년 장기 집권을 위해 단결하고 세력을 확장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