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기 전, 여러 분들에게 혹시 이게 세계체제 전환의 시발점이었던 사라예보의 총성과 같은 의미를 가질 가능성이 있냐고 물어봤다. 다들 뭐라 확신하지는 못하더라. 느낌으로는 그 때 보다 점점 더 커더란 변화에 대해서 얘기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여전히 일본이 왜 저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전망하기는 더 어렵고.
그래서 그냥 올리는 감상 포스트.
어떤 안정된 시스템을 얘기할 때 무슨무슨 체제라고 한다. 그런데 그 체제는 생각보다 빨리 변한다.
(1) 아래 지도는 1914년 1차 대전의 지도. 1차 대전 이후 "제국"이라는 말은 사라졌다. 그야말로 우리가 현재 인식하는 "국가"인 국민국가 시대로 접어든 것은 1차 대전 이후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2) 그리고 모두가 알다시피 세계 지도는 또 한 번 크게 변화한다. 2차 대전이 끝난 후의 세계 식민지 지도
IMF, World Bank, GATT (~= WTO)가 이 때 확립되었다. 현재의 자본주의 세계 체제는 모두가 알다시피 2차 대전 이후 미국의 주도로 만들어 놓은 질서다. 한국의 독립도 분단도 이 시기에 이루어져서 우리는 이 때의 체제가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는 2차 대전 이후의 세계지만, 보다시피 2차 대전 직후의 세계는 우리가 알고 있는 현재의 세계지도와는 많이 다르다.
(3) 아프리카와 아시아 국가들이 유럽으로부터 독립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이름의 국가가 국가로 존재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이후다. 박정희와 김일성이 아프리카 국가 수반 모셔다가 대접하던 시절이 이 때다. 국가별 독립 연도에 따른 나라 목록.
(4) 세계 지도가 또 한 번 크게 바뀐 것은 소련이 멸망한 1990년 이후. 신생 국가들이 잔뜩 생겨났다. 내가 고등학교 때 보던 사회과부도의 세계지도는 현재의 지도를 파악하는데 아무짝에 쓸모가 없다. 소련의 등장으로 시작된 인류 최대의 실험, 사회주의가 허망하게 끝이 났다.
20세기에만 세계 지도가 대략 4번 정도 크게 바뀌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독립을 2차대전의 후과로 보더라도 세계지도의 변화를 가져온 큰 변화가 3번. 지도 변화가 체제 변화를 곧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의미는 크게 달라지겠지만 그저 대충 감으로 따져도 대략 30년에 한 번씩 세계체제가 바뀌었다.
한 개인이 일생에 걸쳐 2번 정도의 체제 변화를 경험하고 3개 정도의 다른 체제를 산다고나 할까.
한국도 일제, 해방 후 냉전, 90년 이후 미국 일극체제. 3번의 커다란 체제 변화를 겪었다. 일제 강점기가 35년이고, 냉전이 45년. 영원할 것 같은 체제도 그렇게 오래가지 않았다. 한국에서 냉전의 종식과 더불어 1990년 북방정책(이 때문에 노태우에 대한 나의 평가는 다른 사람보다 후한 편이다)을 실시한 이후 30년이 지났다. 20세기 이후 30년에 한 번씩 커다란 세계사적 체제 변화가 있어왔으니, 이 번에 새로운 체제로 접어드는게 이상한 것도 아니다.
역시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Ps. 지금까지 경제사회학을 가르치면서 현재의 세계화가 뒤로 후퇴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주장했다. 단견이었던 것 같다.
Pps. 아직도 종북이 세상을 판별하는 기준이 되는 분들은 대략 90년 체제 전환 이전, 그러니까 체제가 2번 바뀌는 동안 사고방식을 전환하지 못하는 그런 분들이다.
Ppps. 물론 이런 얘기는 절대 아카데믹한 글쓰기에서는 안쓰고 블로그에만 쓰는 감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