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사회학 이론 중에 EMI (effectively maintained inequality)라는게 있음. 전세계적인 고등 교육의 팽창 속에서 상류층이 어떻게 자신들의 우월적 지위를 유지하고 교육을 통해 불평등을 재생산하는지에 대한 버클리 사회학과 교수 Sam Lucas의 탁월한 통찰이 담긴 이론.
고등 교육이 팽창하면 상류층은 교육의 양보다는 교육의 질에 더 신경을 쓰고, 여러 경로를 통해서 자신들과 다른 계층을 구분지음. 이 구조 하에서는 집안 배경에 따른 전공과 대학 랭킹의 구분짓기가 과거보다 강화됨.
그런데 이러한 구조를 재생산하는 방법으로 최근에 활용되어 온 것이 "기회비축 (opportunity hoarding)".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Richard Revees 가 그의 책, Dream Hoaders에서 제시한 컨셉인데, 미국에서 상위 10%의 중상층이 어떻게 자신의 자녀들을 위해 교육, 인턴쉽, 연구조교, 견학 등의 기회를 배타적으로 비축하고 계급을 재생산하는지에 대한 개념.
불법적으로 성적을 조작하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에서 그걸 안하는 것도 아님), 중상층 이상에서 자신의 네트워크와 자원을 이용해서 자녀들에게 더 많은 인턴 기회, 더 많은 공동 연구 기회, 더 많고 더 나은 봉사활동 기회를 제공하고, 그렇게 쌓인 기회 속에서 자녀들이 "성취"를 이루고 결국은 경쟁적 노동시장에서 성공함.
조국 법무장관 후보의 자녀 관련 논란을 보면 한국에서도 미국에서 일어났던 일이 그대로 재생되고 있음을 알 수 있음. 유럽이 다르냐고 하면 그것도 아님. EMI 이론은 유럽에도 잘 적용됨.
그렇다고 옛날에는 이런 기회비축이 없었냐고 하면 그것도 아님. 다만 행태가 달랐음. 지금은 여러 경로를 통해 기회를 배타적으로 비축하고 그렇게 배타적으로 비축된 기회를 통해 형성된 경력을 통해 인적자본을 재생산하고, 궁극적으로 계급을 재생산하지만, 과거에는 기회비축을 통해서가 아니라 날 것 그대로 돈의 힘으로 재생산 했음. 뒷돈으로 경기고 진학하고, 명문대 나왔다는 케이스가 부지기수. 그나마 기회비축을 통해 재생산하는 행태가 기회균등의 측면에서 진일보한 것임.
교육을 통한 불평등 유지 이론의 가장 큰 정책적 함의는 상류층은 어떻게 해서라도 자신들의 우월적 지위를 활용하는 방법을 찾아내고야 만다는 것. 아무리 체제를 정교하게 짜더라도 모두에게 평등하게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는 그런 시스템은 불가능함.
애초에 가족배경에 따라 동원 가능한 인적, 물적, 문화적, 사회적 자원이 다르고, 모든 부모가 자신의 자녀의 성공을 바라고, 자신이 가진 자원을 투입할 의지가 있음. 이 불평등 구조 하에서 계급재생산을 위한 개개인의 창의성은 기회균등을 위한 제도적 견고함을 가뿐히 뛰어넘게 되어 있음.
조국 법무장관 후보와 그 자녀는 이러한 사회적 구조에서 벗어나 있지 않았던 구성원 중 한 명. 교육을 통한 계급재생산 과정에서 자신이 얼마나 의지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개입했는가는 따져볼 수 있겠지만, 이 구조 내에서 자신의 이익극대화를 위해 행위했고 이 구조를 벗어나는 행동적 실천을 보여주지는 않았음 (이 실천이 공직의 필요조건인건 아님).
뭐 결론은 늘상 하는 얘기임. 기회균등의 기획은 실패했고, 앞으로도 성공하기 어려울 것.
선택은 결과의 평등을 촉진시켜 기회균등의 중요성을 낮추거나, 지금과 같이 떠들석한 굿판을 계속 벌이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