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학위의 가치가 예전만 못하다는 푸념을 많이 들을 수 있음. 

 

1960년에는 대졸자의 비중이 1.2%였는데, 2015년에는 31.2%로 폭발적으로 증가. 초대졸까지 포함하면 1960년에는 상위 2.3%였는데 지금은 47.2%가 대학 학위가 있음. 대졸자가 과거에는 엘리트였지만 지금은 걍 일반 대중. 이러니 대학 학위의 가치가 예전만 못하다고 느끼는 것. 

 

하지만 그 사이에 경제도 발전하고 직업구조도 고도화되어서 25-64세 인구 중 관리/전문직에 종사하는 비율이 4.3%에서 22.0%로 증가하였음. 

 

대학 졸업자가 늘어서 대학 학위의 지위재로써의 위치는 낮아졌지만, 괜찮은 직업 취득 면에서 노동시장에서 대학 학위의 가치가 낮아졌는지는 대졸자의 증가와 직업구조 고도화를 동시에 고려해야 함. 

 

그래서 각 학력 수준별로 25-64세 노동인구 중 관리/전문직에 종사할 확률을 계산해 봄. 1960년부터 2015년까지의 인구총조사 자료 이용하여 연령, 혼인 상태 등을 통제한 후 선형확률모델로 계산하였음. 현재 직업이 있는 사람들 중에서만 분석. 

 

그랬더니 대졸 남성의 관리/전문직 취득 확률은 1960년대에 비교해서 2015년 현재 거의 달라진 바가 없음. 오히려 약간 증가. 이에 반해 고졸과 초대졸의 가치는 상당히 하락하였음. 그래서 남성노동자의 대학 학위의 상대적 가치를 따지지면, 1960-75년에는 대졸자가 고졸자보다 3.4배 더 관리/전문직에 종사했는데, 지금은 7.8배 더 관리/전문직에 종사할 확률이 높음. 대학 학위의 상대적 가치는 확실히 상승하였고, 절대적 가치도 낮아지지 않았음. 

 

반면 여성의 경우는 대학 학위의 절대적 가치는 낮아졌지만 상대적 가치는 남성과 마찬가지로 상승. 1960-75년에는 대졸자가 고졸자보다 3배 더 관리/전문직에 종사했는데 지금은 7.5배임. 대학 학위의 상대적 가치는 남성과 비슷하게 변화. 

 

여성의 관리/전문직 종사자가 남성보다 많은데, 이는 관리/전문직의 범위가 넓어서 남성은 관리/전문직 보다는 기술직이 소득이 많은 경우가 상당하기 때문. 또한 선택편향도 상당히 있을 듯. 

 

한 가지 더 주목할 점은 초대졸이나 여성의 대학 교육 가치 하락이 최근 일어난 일이 아니라 1970년대에서 1980년대 넘어오면서 발생했다는 것. 대졸자의 폭발적 증가는 졸업정원제와 정원자율화로 1980년대와 90년대에 더 명확하게 이뤄졌지만, 이 시기에 대학 학위의 가치가 추가로 하락하지 않았음. 1980년대 이후는 매우 안정적임. 요즘들어 직업 지위 획득 측면에서 대학 교육의 상대적 가치가 하락했다는 증거가 얼마나 되는지? 남성은 절대적 가치도 하락하지 않았음. 

 

추가적 확인이 더 필요하긴 하지만, 한국에서 대학 교육의 가치가 낮아졌다는 증거가 얼마나 되는지 매우 의심스러움. 

 

  1960-1975 1985-2000 2005-2015
남성      
- 고졸미만 1.5% 0.0% 0.3%
- 고졸 11.6% 5.9% 5.2%
- 초대졸 30.8% 18.4% 18.2%
- 대졸 39.0% 38.5% 40.8%
여성      
- 고졸미만 0.1% 0.0% 0.0%
- 고졸 22.6% 4.3% 7.0%
- 초대졸 61.2% 35.6% 33.5%
- 대졸 67.6% 57.6% 52.8%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중앙일보 기사 1: 로또 된 남자와 결혼할래요

중앙일보 기사 2: 중간층 자녀 성적 하락, 2000-2015


국제학업평가도조사(PISA)의 2000, 2006, 2015년 자료를 비교했더니, 하위계층에서 장래에 희망하는 직업의 위계지수가 크게 낮아졌더라는 것. 


미래에 뭐가 되고 싶은지, 청소년층의 꿈도 계층화되고 있다는 것. 


이렇게 꿈이 없으니 당연히 공부도 안함. 두 번째 기사는 PISA에서 측정한 학업성취도에서 하위계층의 성적 하락이 두드러지더라는 것. 두 기사 모두 변수용 교수의 연구에 바탕. (교육 전공이지만 교육사회학을 연구하며 사회학회와 불평등학회에 꾸준히 오시니 이런 좋은 연구를 하는 것^^)





한편으로는 흥미있고, 한편으로는 충격적인 보도인데, 그 함의가 뭔지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히 잘 모르겠음. 


가장 긍정적 가능성은 한국 사회의 능력주의가 너무 잘 작동해서 계층 sorting이 매우 잘 되어서 나타난 결과라는 것. 이건 청소년층의 문제가 아니라, 부모 세대의 변화가 청소년층에 투사된 것일 뿐. 


좀 더 설명하면 과거에는 부모 세대에서 모두에게 균등한 기회가 제공되지 않아서 계층 sorting이 안되었음. 이 경우 계층 지위가 능력보다는 다른 우연적 구조적 요소에 의해 결정됨. 그래서 사실은 능력이 있지만 운 때가 안맞아서 낮은 계층 지위를 차지하는 부모 세대가 상당함. 이 부모 세대가 자녀 세대에게 용기도 불어넣고 투자도 해서, 이 자녀들이 계층상승의 꿈을 가지게 됨.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 능력이 떨어지지만 상위 계층을 차지한 부모 세대는 자녀 세대에게 계층 상승의 꿈을 키워주지 못함. 


그래서 과거에는 부모 계층에 따른 자녀 세대의 장래 희망이 덜 계층화되었던 것. 즉, 위 기사에서 보도한 꿈의 계층화는 사실은 자녀 세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부모 세대의 변화가 자녀 세대에 드러난 것. 통계적으로 계층 노이즈의 감소로 attenuation bias가 줄어든 결과일 뿐이라는 것. 





가장 암울한 가능성은 한국 사회에서 문화적 이질성의 확대. 


미국 사회의 구조적 변화가 어떻게 태도의 변화에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윌슨의 <When Work Disappears>에 보면 경제 구조의 변화에 따라 도시 빈민이 어떻게 태도의 변화를 보이는지가 잘 기술되어 있음. 윌슨의 책은 흑인에 대한 얘기였는데, 미국 경제가 양극화됨에 따라 백인 하위 계층의 행동 패턴도 동일하게 변화했음. 


이와 비슷한 태도의 변화가 한국 사회에서도 벌어지고 있을 가능성이 있음. 한국 사회는 계층에 관계없이 교육, 혼인, 출산 등에 대해서 상당히 동질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음. 미국은 하위 계층에서 애들에게 공부도 안시키고, 공부도 안해서, 어떻게 하면 공부 좀 시킬까가 고민. 하지만 한국은 그런 고민이 별로 없음. 없는 집도 다 애들 공부시키느라 가랑이 찢어지는 상황. 오바마 전 대통령이 교육에 대해 한국을 여러 번 언급할만 했음. 


아예 결혼을 안했으면 안했지, 계층에 상관없이 혼인에 대한 책임감도 강한 편. 혼외출산 문제도 없음. 하위 계층도 자녀에게 좀 더 많은 것을 해주지 못해서 고민이지, 계층에 따라 자녀를 대하는 태도에 심각한 계층화 현상이 없음. 





그런데 "꿈의 계층화"는 이러한 동질성에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음. 이 경우 한국 사회는 지금까지 가지지 않았던 다른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 진짜로 그런지는 모르겠음. 하지만 매우 심각하게 주목해야할 현상임에는 분명함.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YTN 뉴스: 유시민 발언, 20대 남성은 축구 게임하느라


20대 남성의 독특성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고. 이 뉴스를 접하고 생각난 논문. 


박종희 교수 논문: 월드컵 덕에 여성 법조인 100여명 늘어 (한겨레 기사)


예전에 읽은 논문인데 생각나서 다시 검색했는데 못찾아서 기사만 링크함. 논문의 주장인 즉, 사법시험 2차가 매년 6월에 실시되는데, 이 때가 월드컵 기간과 겹친다는 것. 


그래서 월드컵이 있는 해의 사법시험 합격자수와 없는 해의 합격자수를 비교했더니, 월드컵이 있는 해에 유독 남성 합격자 수가 적더라고. 


남자들은 축구보느라 사법 시험 준비를 여성보다 적게 하더라는. 




축구는 그렇고, 게임이 공부에 크게 방해가 되는지는 의문. 


PLoS One 논문: Video-Games Do Not Negatively Impact Adolescent Academic Performance in Science, Mathematics or Reading


2009년도 PISA 자료로 비디오 게임이 15세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에 영향을 끼쳤는지 연구했더니, 혼자 하는 비디오 게임은 과학, 수학, 언어 영역 모두에서 효과가 전혀 없다고. 


하지만 한 명이 아닌 여러 명이 플레이하는 게임은 약간의 부정적 효과가 있었다고 함. 다만 그 크기가 크지는 않음. 


(23개 국가를 분석한 이 논문의 메인 분석에서 한국은 제외하였음. 이유는 한국은 비디오 게임을 너무 많이 해서라고. 도대체 얼마나 하길래... 다행히 한국을 포함한 결과도 제시하기는 함.)


아래 그림은 한국을 포함한 결과. 윗 부분은 한명이 하는 게임의 효과고, 아래 부분은 여러 명이 같이 하는 게임의 효과. 흰색이 비디오 게임을 전혀 하지 않는 케이스고, 검은색이 매일하는 경우. 


비록 effect size가 크지는 않지만 확실히 멀티 플레이어 비디오 게임은 비디오게임의 횟수와 학업 성취도 간에 체계적으로 부정적 효과가 있음. 


그런데 비록 미약하지만 비디오 게임의 부정적 효과가 성별 학업 성취도 격차로 이어지려면, 남성이 여성보다 게임을 더 많이 해야함. 중앙일보 이 뉴스에 따르면 성별 격차는 그리 크지 않은 듯. 헤비 유져의 남녀 비율이 어찌되는지는 모르겠음.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최성수, 이수빈 2018 한국사회학 논문


더 이상 개천룡은 나오지 않는건지. 명문대는 이제 부유층의 자녀만 가는 것인지. 예전에는 저학력 부모의 자녀도 고등교육을 받았는데, 이제는 그런 일이 점점 덜 일어나는지. 언론에서 계속해서 과거에 달리 이제는 배경이 좋은 자식들만 명문대에 간다고 보도가 나왔는데, 정말로 그런지에 대한 객관적 연구는 거의 없음. 


연구가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좋은 자료가 없기 때문.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성균관대 최성수, 이수빈 두 사회학자가 서베이 자료 8개를 통합해서 1940년대 이전 출생자부터 1990년대 출생자까지 부모의 학력 수준에 따른 자녀의 교육 성취도를 연구. 


단순히 부모 교육 수준을 대졸 대 대졸미만으로 나누지 않고 (이 경우 대졸 부모의 비율이 늘었기 때문에 대졸 부모라도 1960대와 1990년대는 상대적 지위가 다름), 상위 20%, 하위 20%로도 나누어서 그에 따른 자녀의 교육 성취를 연구. 


자녀의 교육 성취도 단순히 교육연수 (years of schooling), 대졸 여부, 명문대 졸업 여부 중 한 가지로 보지 않고, 교육연수, 전문대 이상, 4년제 대학 이상, 명문대 졸업 등으로 나누어서 다층적으로 어떻게 역사적 변화를 거쳤는지 자세하게 분석함. 


늘상 그렇듯 현실은 단순하지 않고 매우 복잡. 그런 복잡한 현상을 드러내면서도 결론은 명확하게 제시. 드물게 보는 매우 훌륭한 연구. 


이런 훌륭한 연구는 전혀 훌륭하게 보이지 않는 지루하고 짜증나는 서로 다른 자료간 통합이라는 단순 노가다 작업을 동반함. 진짜 학자는 이런 작업을 해서 새로운 사실을 드러내는 사람임. 


그럼 두 학자가 이 논문에서 드러낸 명확한 결론은?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한국에서 교육기회 불평등은 커지지 않았다는 것. 


아래 그래프는 부모가 대졸이냐 아니냐에 따라서 자녀의 교육연수가 얼마나 다른지 자녀의 출생연도에 따른 변화를 나타낸 것. 보다시피 현재 70대인 전쟁 세대는 부모의 학력에 따른 자녀 학력 격차가 4년에 이르렀는데, 86세대인 60년대생에 오면 3년 이하로 줄어들고, 90년대 출생자에 이르면 1년 이하로 줄어듦. 


부모 교육 정도에 따른 자녀 교육 수준의 격차가 줄어든 것. 



대다수가 대학에 진학하는 90년대 출생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교육연수가 아니라, 명문대 진학 여부라고 생각하는 분들 많을 것. 


아래 그래프는 학력 수준 상위 20%의 부모와 하위 20%의 부모 사이에 자녀가 명문대를 졸업할 확률의 격차를 측정한 것. 


상층 부모를 두면 명문대 졸업 확률이 높은 것은 분명하지만, 그 차이가 늘었다는 증거는 전혀 없음. 위에 보여준 교육연수처럼 부모의 배경에 따른 교육 격차가 지속적으로 줄어든 것은 아니지만, 1950년대 출생자 이후 현재까지 사실상 거의 변화가 없음.  



명문대 졸업자 중에서 개천룡이 줄어들었다고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개천" 출신이라고 할만한 저학력 부모의 비율이 줄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가장 높음. 농민 출신이 CEO가 되는 비율이 줄어든 가장 큰 이유는 산업화로 부모가 농민인 경우가 줄었기 때문. 


명확한 결론이 그렇다는 것이고, 복잡한 현실은 2년제 이상 대학 졸업 여부, 4년제 대학 졸업 여부 등에서는 일직선 변화가 아닌 inverted U-curve 패턴이 나타나고, 부모의 구체적인 학력 수준에 따른 변화도 다양함. 이런 복잡성은 논문을 직접 읽어보시기를 권함. 그래프와 표는 영어지만 원문은 한글임 (왜 이랬지?). 


그래서 이 논문의 함의는? 


교육기회의 불평등이 커져서 한국 사회의 계층적 불만이 커진 것이 아님. 내가 생각하기에 이 논문을 통해서 생각할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기회불평등이 줄어들어도 그와 걸맞는 평등한 노동시장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사회적 불만은 커지는 것. 다른 한 편으로 늘상 말하지만 기회불평등을 해결해서 사람들이 불만을 가지는 전반적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 기회의 평등은 오히려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논리로도 동원된다는 것을 기억할 것.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뉴스타파 보도: 가짜학문 제조공장의 비밀

뉴스타파: 와셋 참석 상위 대학과 교수 명단


아마 이런 가짜 학술대회와 가짜 학술지 관련 이메일을 받아보지 않은 학자는 아무도 없을 것. 


어떻게 이메일을 긁었는지 모르겠지만, 1주일에도 몇 번씩 이상한 학술대회 참가, 이상한 학술지 투고하라는 이메일을 받음. 심지어 학술지 스페셜 이슈 편집장을 맡으라는 이멜도 심심찮게 받고 있음. 물론 제목만 보고 관련 이멜은 걍 삭제. 학술대회 타이틀도 그렇게 구릴 수가 없음. 정상적인 학자라면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는 구리함이 넘치는 이멜임. 


뉴스타파에서 보도한 Waset만 있는 것도 아님. 돈만 내면 무조건 받아주는 가짜 학술대회와 가짜 학술지가 널렸음. 


... 와셋의 학술지와 학술대회를 이용하는 한국인 학자들의 숫자는 2014년부터 급증한 추세이며, 최근 들어 매년 1천 명이 넘는다. 지난 2007년부터 지금까지 논문 게재 등으로 와셋에 이름을 올린 한국인 학자는 모두 4,227명, 기관은 272개다. ...


충격적인 것은 한국인이 이 가짜 학술대회와 학술지의 가장 중요한 고객 중의 하나라는 뉴스타파의 보도. 어디 듣보잡들이 그러는게 아니라 서울대, 성대, 연대 등 유수의 대학 교수들이 이 가짜 학술대회의 주 고객이었다는 보도에 그저 아연실색할 뿐. 


자기 학문 분야에서 어떤 학술대회와 어떤 학술지가 그래도 가볼만하고 읽어볼만한지는 모두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음. 대학원생들이야 이러한 상식을 갖추기 전이라 뭘 모른다고 할 수도 있지만, 교수와 박사 받은 연구원들이 도저히 모를 수 없음. 


이런 학술대회 참가를 막는 방법은 학계의 전통적 규제인 self governance. 자율적 규제로 이런 가짜 학회나 학술지는 업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학계 내에서 credential을 잃어야 정상임. 문제는 한국에서 self governance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 


그러다보니 자율규제가 아닌 대학본부의 규제, 교육부의 규제로 평가가 이루어지고, 아이러니하게도 교수가 가짜로 대학본부를 속일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추어짐. 교수들은 어떤 학회가 가짜고 어떤 학회가 제대로 된 것인지 상식적으로 알지만, 대학 본부에서 어떤 학회가 가짜인지 어떻게 다 알겠음. 국제 학회 참석했다고 하니 그런줄 알지. 


학계와 대학이 self governance로 굴러가는 건 이유가 있음. 그거 외에는 정상적 체계를 갖추기 매우 어려움. 한국은 자율규제가 안되니 타율규제를 하게 되고, 거기서 생기는 여러 문제점들이 눈에 많이 띔. 


그래도 이런 가짜 학술대회의 최대 고객이 한국인이 되는 황당한 상태가 될 줄은 몰랐음.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조선기사: 학벌주의 심해지길 바라는 고대생글

국민일보 기사: 사이다 팩트 폭격이라는 반박글


고대생은 제공된 기회에서 내가 성공했으니 더 이상의 불확실성은 없어야 한다는 관점, 그에 대한 반박글은 대입 기회 제공이 완전히 공정할 수 없으니 모두에게 추가 기회가 지속적으로 제공되어야 한다는 얘기. 


최근 몇 번에 걸쳐 얘기했듯 학벌주의를 바라는 글과 그에 대한 반박글이 모두 공정한 기회 제공과 반복적 기회 제공을 이상적 사회로 그리고 있다. 두가지 논리 모두 기회균등 기획이라는 틀에서 나오는 사고다. 




그런데 설사 기회균등의 관점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고대생의 소망과 달리 학벌주의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그 이유는 극단적으로 단순화시켜서 두 가지인데, 하나는 사회현상의 복잡성과 불확실성, 다른 하나는 능력지표로써 가지는 교육의 한계 때문이다. 이 두 가지가 상호배제적 컨셉은 아니고 서로 연결되어 있다. 


사회현상은 복잡하고 불확실하다. 어떤 활동은 기존 지식의 완벽한 습득과 반복을 요구하고, 다른 활동은 과거와의 단절을 통한 혁신을 요구한다. 교육은 주로 전자의 지표인데, 이 지표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미시간주립대 교수인 스캇 페이지가 행한 실험 중에 이런게 있다. 시험 성적이 좋은 애들끼리만 10명 모아놓은 그룹보다, 시험성적 좋은 애들 5명, 중간 성적 5명을 섞어 놓은 그룹이 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내놓더라는 것이다. 다양성이 곧 혁신과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더라는 것. 


현재의 대학 입학은 비슷한 능력을 가진 우수 학생을 선발한다. 하지만 혁신은 비슷한 경험과 능력을 가진 사람들끼리 소통할 때가 아니라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소통할 때 생겨난다. 학문 분야에서도 자기 연구 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를 끊임없이 곁눈질해야 뭔가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긴다. 


우수 인재들끼리만 끼리끼리 뭉치고 다양성을 추가하지 않으면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게 된다. 


설사 모두에게 동등한 기회가 제공되고, 학벌이 어떤 능력의 완벽한 지표일지라도, 완벽한 학벌주의 사회는 결국 도태된다.  


(그런데 다양성을 강조하는 페이지 교수의 실험에서 한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기존 지식의 습득을 잘한 우수 성적 그룹이 기존 문제 해결과 혁신 모두에서 필요했다는 것이다. 비록 한계가 있지만, 우수 인재를 우수 대학에서 선발하는 과정을 멈추어서는 안되는 이유다. 교육 혁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자주 잊어버리는게 바로 수월성 교육은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재의 대학 입학 선발 기준으로 미래의 모든 복잡성과 불확실성에 대비할 수 없다. 가장 많은 분야에 적용될 수 있는 최대적용의 원칙을 가지고 능력있는 인재를 선발하지만, 그 기준이 향후 생산성 향상에 기여하는 정확한 기준은 아니다. 


학벌이 20대 중반의 청년의 능력에 대해 가장 많은 정보를 제공해 주는 지표이기는 하나 사회적 성공지표로써의 신뢰성(reliability)이 매우 높지는 않다. 학벌이라는 가장 좋은 지표도 미래의 사회적 기여에 대한 지표로써의 정확성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이다. 


지금 40-50대에 이른 사람들은 학창시절 같은 학교 같은 과에 있던 친구들의 처지가 얼마나 크게 달라졌는지 실감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운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시험 성적 몇 점으로는 측정할 수 없던, 하지만 돌이켜 보면 뭔가 달랐던 능력 차이다. 통계에서 항상 얘기하는 학벌로는 측정할 수 없는, 고용주나 인사 담당자는 알 수 없는 능력(unobserved heterogeneity)의 격차가 너무 크다. 


학벌이 한계를 가지는 또 다른 이유는 많은 분야들이 해보기 전에는 누가 잘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똑같은 얘기를 해도 재미있게 전달하는 사람이 있고, 똑같은 물건을 팔아도 신뢰감있게 잘파는 세일즈맨이 있고, 똑같은 이론을 배워도 뭔가 다른 아이디어를 창출해내는 학생이 있다. 해보기 전에는 모른다. 


더욱이 경제가 변화하면서 학벌주의가 가지는 능력 지표 기능이 강화되기 보다는 약화되고 있다. 


요즘 많이 얘기되는게 소프트 스킬이다. 경제가 변화하면서 피플 스킬 내지는 소프트 스킬의 중요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혹자는 여성의 임금이 높아지는 이유를 소프트 스킬의 중요성 강화에서 찾기도 한다. 남자보다 여자가 공감 능력이 높으니까. 


그런데 정규 교육은 소프트 스킬을 측정하는 지표로써의 기능이 작다. 소프트 스킬이 생산성 향상과 회사 이윤 추구에 중요해질수록 학벌주의의 기능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좀 더 포말하게 얘기해 보자. 아래 그래프에서 빨간색 정규 분포가 학벌이 높은 사람들이고, 파란색이 낮은 사람들이다. 능력 지표로써의 교육의 한계 때문에, 또한 사회현상의 복잡성과 다양성 불확실성 때문에, 현 시점에서 사회가 필요로 하는 능력의 variance가 학벌이 높은 사람보다 낮은 사람이 클 수 밖에 없다. 이 경우 아래 그래프에서 보듯 요구되는 능력의 최고점에서 학벌이 높은 사람들 보다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포션이 커지게 된다. 설사 고학벌의 평균이 높더라도, 최상층 인재 충원으로 갈수록 학벌의 중요성은 낮아진다.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능력주의 또는 실력주의라는 말로 번역되는 Meritocracy는 마이클 영이라는 영국 사회학자이자 소설가가 처음 쓴 말이다. The Rise of the Meritocracy라는 소설에서 쓴 용어. 


그런데 마이클 영은 이 용어를 실력과 능력에 따라 사회적 지위를 차지하는 공정한 사회를 찬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런 사회가 얼마나 끔찍한 사회가 되는지를 비꼬기 위해서 썼다. 다른 어떤 것도 아니라 지적 능력, 교육 성취, 기타 개인의 성취에 의해서 지위가 결정되는 사회가 어떻게 계급 재생산을 영속화시키고 사회의 통합을 망치는지 비꼬기 위해서 공적, 장점, 우수성을 뜻하는 merit과 그에 의한 지배를 뜻하는 cracy를 합쳐서 meritocracy라는 말을 만든 것이다. 


그런데 이 용어가 많은 사회에서 출신에 관계없이 능력에 따라 성취를 이루는 훌륭한 사회를 칭하는 말로 둔갑하였다. 능력주의 사회가 이상향인양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British Journal of Sociology에 실린 논문


며칠 전 영국사회학지에 재미있는 논문이 한 편 실렸다. 사회이동에 대한 지금까지의 사회학 연구는 부모 배경이 자녀의 사회적 지위에 영향을 끼치는데, 교육은 한 매개 변수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교육 외에도 부모와 자녀의 사회적 성취를 연결시키는 다른 요인이 있다는 것. 


대부분의 연구에서 교육은 최종 학력이 무엇인가로 측정하고, 추가로 몇 가지 교육 변수를 통제한다. 


그런데 설리반등 일군의 영국 사회학자들이 5세, 10세, 16세의 지적 능력 점수를 비롯하여, 출신 중고교의 특성, 그 때의 성적, 대입학력고사 성적, 영어/수학 능력, 학위 타입 등의 매우 광범위한 지적 능력과 교육 성취에 대한 변수를 통제했더니, 대기업 매니져나 변호사 의사 등의 상층 전문가가 될 확률에서 부모의 계급이나 소득 같은 가족 배경이 끼치는 영향이 완전히 사라지더라는 것이다. 


가족 배경의 독립적 영향력이 완전히 사라지는 연구는 처음 봤다. 이 결과는 개인의 사회적 성취는 교육과 지적 수준으로 온전히 설명이 되더라는 것. 




문제는 이렇게 지적 능력이 높고 교육 수준이 높은 계급이 자기 재생산을 한다는 것이다. SKY로 대표되는 엘리트 대학 입학생 중 강남 출신이 늘어나는 것은 이들이 남다른 혜택을 받아서가 아니라 부모들의 희생으로 더 많은 공부를 했고 남다른 노력을 했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에서 자신의 성취는 사회적 혜택이 아니라 자신의 노오력의 결과로 본다. 이 사회에서 "박애"에 기반한 정책은 남기 어렵게 된다.  


요즘 미국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Richard Reeves의 Dream Hoarders도 비슷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상위 5~10%의 부모들이 자신의 자식들에게 수많은 투자를 하며 기회를 독점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냐고? 


한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강조하는 "공정"이라는 말도 meritocracy의 정신에 입각한 것이다. 공정에 반대하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과정 상의 공정이 모든 것도 아니다. 인위적으로 결과의 평등을 가져오는 조치를 추가로 취하지 않는 공정은 한 사회의 계급생산을 영속화시키는 길이 될 것이다.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홍춘욱 경제팩트] 한국 여학생은 왜 이공계 진학을 기피할까? 


여학생이 이공계를 기피하는 이유는 객관적인 수학 실력 때문이 아니라 문화적 요인이라는 홍춘욱 박사의 주장. 


홍춘욱 박사의 칼럼에 재미있는 논문이 하나 등장하는데 Guiso 등 4명의 학자가 2008년 Science에 출간한 "Culture, Gender, and Math." 


아주 센세이셔널했던 논문인데, 이 논문의 주장은 아래 그래프 하나로 요약된다. 2개 그래프 중 아래 주황색 그래프가 World Economic Forum의 Gender Gap Index (GGI). 지수가 높을수록 양성평등도가 높은 국가. 이 지수는 한국의 높은 여성차별을 논의할 때 자주 인용되는 지표다. 


그런데 여성과 남성의 수학 성적 격차는 성평등 지수가 낮은 국가에서 높고, 성평등 정도가 좋아질수록 수학 성적 격차가 줄어든다. 첫번재 그래프에서 노란색이 성별 수학 성적 격차. 보다시피 오른쪽으로 갈수록 (=성평등이 높아질수록) 격차가 줄어듬. 그래서 이 논문의 결론은 여성의 낮은 수학 성적은 해당 국가의 성차별 문화 때문이라는 것. 성별 수학 성적 격차의 문화결정론이 할 수 있다. 



이렇게 센세이셔널했던 논문이 검증을 피할 길은 없다. 이 논문 이후에 문화결정론에 대해 논박하는 논문들이 여럿 나왔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눈을 끄는 것은 Stoet & Geary의 2015년 Intelligence 논문


요점인 즉, Guiso et al의 2008년 논문이 2003년도 PISA 자료를 사용한 것인데, 그 이후 데이타를 사용해보면 동일한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는 것. 


아래 그래프를 보면 맨 위 2개가 2003년 자료를 사용한 것이고, 그 아래가 2006년, 2009년 PISA를 사용한 것. 2003년과 2009년의 가장 큰 차이가 Iceland의 위치 변화인데, 보다시피 2003년 대비 2009년에 Iceland의 성별격차 지수가 바뀌니 남녀평등문화와 성별 수학 격차의 상관관계는 통계적으로 zero로 변화함. 


Stoet & Geory는 국가 간 비교 뿐만 아니라 국가 내 비교를 통해서 남녀 간의 수학 성적 격차, 특히 상위권에서의 격차는 robust하다고 주장함. 남녀 간 수학성적 격차를 문화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 



그럼 성별 수학 성적 격차와 문화는 상관이 없는 것인가? 그건 또 그렇지가 않음. 올 5월 AER P&P에 실린 Nollenberger 등의 논문에 따르면 남녀 평등 문화와 수학 성적은 밀접한 연관이 있음. 


이들은 이민자의 자녀들을 대상으로 성별 수학 능력 격차를 측정. 9개 이민 대상국(destination countries)에서 태어난 이민자의 자녀들을 대상으로, 이민 대상국의 특성을 통제한 후(통계적으로 fixed effects model) 부모 세대의 origin countries의 문화적 특성이 성별 수학 성적 격차에 나타나는지 살펴본 것. 부모 세대의 origin countries의 갯수는 35개. 


Destination countries의 특징을 FEM으로 통제했기에 국가 간 institution의 차이는 통제됨. 또한 이민자 자녀들이 모두 선진국에서 교육을 받았기에 교육시스템의 차이, 교사의 문화적 차이도 통제됨. 남는 것은 부모 세대의 문화적 격차. 


저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성평등도가 높은 국가에서 온 이민2세대의 성별 수학 격차가 성평등도가 낮은 국가에서 온 이민2세대의 성별 수학 격차보다 훨씬 낮음. 약 70%의 성별 수학 격차가 문화적 요인으로 설명됨. 


이렇게 연구마다 결론이 다르다는 것은, 이 주제에 대해 대다수가 동의하는 결론에 아직 이르지 못했다는 것. 어쨌든 이 세가지 연구 중 마지막 연구가 가장 문화와 성별 수학 성적 격차의 인과관계에 가까움. 남학생과 여학생의 수학 성적 격차가 모두 문화에 의해 설명될지는 모르겠으나, 성차별 문화와 성별 수학성적 격차에 상당한 상관이 있을 가능성이 크기는 한 듯.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동아일보 기사: 중학생 13만명 줄고 대학 진학률 70%대 무너져…대학 ‘비상’


대학가에 있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지만 막상 닥치기 전에는 잘 실감이 안날 것. 얼마나 드라마틱한 감소가 예상되는지 후덜덜함.  




한국의 신생아수는 1971년이 102만명으로 정점을 찍고 그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 


1970: 100만

1975: 87만:    5년 전 대비 13만명 감소 (13% 감소)

1980: 86만

1985: 66만:    5년 전 대비 20만명 감소 (23% 감소)

1990: 65만

1995: 72만

2000: 63만

2005: 44만:    5년 전 대비 19만명 감소 (30% 감소)

2010: 47만

2015: 43만



1970년 이후 신생아수 변화는 3번의 급감기와 3번의 안정기로 나눌 수 있음. 보다시피 각각의 감소기에 분모가 더 작아졌기에 절대수 대비 비율적 감소폭은 더 커졌음. 70년대초의 13% 감소에서 2000년 후반은 30% 감소로 감소폭이 크게 증가하였음. 


신생아수 감소가 장기에 걸쳐 서서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특정 시기에 집중된 급격한 감소인 것도 재미있는 특징임. 예를 들어 81년과 82년의 감소 폭이 매우 크고, 2001년과 2002년의 감소폭이 매우 큼. 왜 그런지 나는 잘 모름. 


3번의 안정기는 75-80년 사이의 짧은 시기와,  1985-2000년 사이의 15년 간, 그리고 2005년 이후 현재까지의 10여년간임. 물론 5년 단위로 대충 본 것이고 각 연도별로 살펴보면 구체적 기간은 변화함. 그러나 대략적 추세를 보는데는 아무 문제 없음.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과거에도 신생아수의 큰 감소가 있었는데 대학 진학자수는 별로 줄어들지 않음. 하지만 앞으로는 큰 감소가 예상되는데, 그 이유는 대학 진학률의 변화 때문임. 


1970년대 초반 출생자들이 대학에 진학하던 1990년대 초에는 고졸자의 대학 진학률에 30%초반에 불과하였음. 전체 대학신입생수가 30만명이 조금 넘었음. 


그런데 1970-1975년 사이 13만명의 신생아수가 감소했지만, 이 코호트가 대학에 진학할 때 진학률은 약 10%포인트가 증가함. 출생 코호트 사이즈는 줄었지만 대학신입생 코호트 사이즈는 오히려 약간 증가하였음. 70-75년 의 신생아수 감소는 대학 진학자수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음. 


1980-85년 사이 신생아수가 감소한 코호트가 대학에 가던 1999-2004년 사이에도 대학 진학자수는 문제가 안됨. 그 전 시기 상당 기간에 걸쳐 꾸준히 대학 진학률이 증가하였고,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의 짧은 시기에 진학률이 10%포인트 가까이 추가로 증가함. 2000년대 초에는 80%가 대학에 진학하기에 65만 코호트 사이즈에 80% 진학률을 대비하면 대략 대학 신입 코호트 사이즈는 50만명이 됨. 1970년생 코호트에 비해 코호트 사이즈는 35% 줄었지만, 대학 진학 사이즈는 70% 증가한 것. 


고교 졸업 인구가 줄었음에도 대학가기가 더 어려워 진 것은 이처럼 경쟁자가 늘었기 때문. 


어쨌든 신입생수의 변화와 대학증원 확대로, 비록 여러 부침이 있지만, 50만명 전후의 졸업생이 대학에 진학하는 추세는 2000년생 코호트가 대학에 진학하는 2019년까지는 지속될 것임. 많은 사람들이 대학의 위기를 떠들지만 아직은 1985-2000년 사이의 신생아수가 안정된 코호트가 대학에 진학하는 호시절이라 할 수 있음.  


하지만 위에 링크한 동아일보 기사에서 써있듯 2020년 부터 사정이 완전히 달라짐. 80%를 넘던 대학 진학률이 70% 이하로 쪼그라들고 앞으로도 더 감소할 가능성이 큰데, 출생 코호트 사이즈는 2000년 이후 2-3년 사이에 30% 감소함. 대학 진학률을 70%로 가정하면 신입생 총수는 대략 30만명이 조금 넘을 것. 60%로 진학률이 떨어지면 대학 신입생 수는 27만명으로 낮아짐. 앞으로 5년 이내에 대학 신입생이 갑자기 40% 가까이 격감할 것으로 예상됨. 


이렇게 되면 모든 대학이 정원을 축소해도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음. 대학의 1/4-1/3이 문을 닫는 것도 막연한 공포만은 아닐 수 있음. 등록금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대학이 도저히 견딜 수 없게 됨. 교수 출신 실업자들이 쏟아져 나오고, 신생 박사가 교수직을 얻는 것은 지금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하늘의 별따기가 될 가능성이 농후함. 


그야말로 대학에 헬게이트가 열리는 것. 


2020년 부터 상당 기간 새로운 equilibrium이 형성될 때 까지 어느 대학이 살아남아 버티는가가 관건이 될 것임. 





ps. 이러한 맥락에서 나는 최근 이화여대의 평생교육 단과대 설치 시도를 앞으로 다가올 고난의 행군시기를 버티기위한 준비과정의 하나로 이해함. 교육부 주도의 대학 "개혁"에 불만이 많겠지만 파편화된 개별 학교 입장에서는 다른 뾰족한 대안이 있지도 않음. 이화여대 사태가 앞으로의 대학 변화 방향에 대한 진지한 논의의 장으로 진화했으면 좋았겠지만, 그런 건 물건너 간 듯.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주간동아 기고문


이화여대 사태에 대해 또 한가지 생각해볼 점이 학위장사가 과연 유망하냐는 것. 예전에 이주호 전교육부 장관이 "한국은 인적자본 1등 국가인가?"라는 글에서 한국의 교육 효과가 줄어들고 있다고 보여준 적이 있음. 


내가 다른 자료로 분석해봐도 마찬가지. 한국에서 불평등이 늘어났지만 그 원인이 교육 격차의 확대 때문이 아님. 미국 등 다른 국가에서 기술의 숙련 편향적 발전이 불평등 증가의 원인이라는 경제학의 주장과 한국은 잘 맞지 않음. 


미국과 유럽에서도 21세기에 들어서는 고등 교육의 노동시장 리턴이 줄어들고 있다는 보고가 계속 나오고 있음. 




이 기고글에서 알리고 싶었던 얘기의 핵심은 아래 두 단락: 


"... 한국에서 학력 프리미엄은 1990년대와 2000년대에 걸쳐 꾸준히 감소한다. 2014년 현재 대졸자의 고졸자 대비 학력 프리미엄은 22%로 90년보다 33%p나 감소했다. 비율로 보면 2014년 현재 대졸자의 학력 프리미엄은 90년대 대비 40%에 불과하다. 대학원 졸업자의 학력 프리미엄 감소는 더욱 드라마틱하다. 같은 기간 80%p 감소했다. 프리미엄이 4분의 1로 쪼그라든 것이다. 대졸자와 비교할 때 대학원 졸업자는 현재 연소득이 단지 5% 높을 뿐이다. 


같은 기간 대졸자와 초대졸·대학 중퇴자의 소득격차도 크게 줄어들었다. 유일하게 학력 프리미엄이 늘어난 경우는 고졸 미만자 대비 고졸자 항목뿐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노동시장에 참여하는 25~59세 남성 가구주 중 고졸 미만자는 매우 적다. 여성의 경우 자료 확보가 가능한 1998년 이후 학력 프리미엄의 변화 경향이 남성과 큰 차이가 없다. ..."




왜 이렇게 되었을까라는 원인에 대한 질문이 뒤따라야겠지만, 그건 이제 연구를 해야지 ...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