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 없는 사회는 다양한 가치를 소유하는 동시에 그런 가치에 근거해서 행동하는 사회가 되리라... 개인적 차이를 수동적으로 관용할 뿐 아라 능동적으로 장려하며... 모든 인간은 어떤 수치적 잣대로 비춰 봐 세상에서 출세할 기회가 아니라 풍요로운 삶을 이끌기 위해 자기만의 특별한 역량을 발전시킬 기회를 균등하게 누리게 되리라." |
마이클 영이 쓴 "능력주의의 부상"에 나오는 "첼시선언"의 일부. 소설에서 능력주의 사회에 저항하는 사람들에게 꽤 영향을 끼친 선언문이다. 여기서 계급이란 맑스주의적 생산수단 소유에 따른 계급이 아니고, 능력주의에 따라 직업과 신분이 결정되는 사회의 계급이다.
진정한 기회균등이란 시험같이 "어떤 수치적 잣대"로 줄세우는게 아니라 개인이 가진 각자 다른 역량을 발전시킬 기회를 모두에게 주는 것. 한가지 수치적 잣대인 시험이나 IQ 등이 지배하는 사회는 기회균등과는 거리가 멀어도 많이 먼 사회라는게 이 선언의 핵심이다.
마이클 영의 말을 다시 그대로 빌어오면, "기회균등이란 사회의 계층 사다리를 올라갈 기회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각자 타고난 덕과 재능, 인간 경험의 깊이와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모든 능력, 삶의 잠재력을 '지능'에 상관없이 최대한 발전시킬 기회를 균등하게 만드는 일이다."
전에도 여러 번 말했지만, 많은 사상가들이 그린 이상향은 "다양성"과 그 다양성을 "개인"이 마음대로 발휘할 "자유"(즉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지는 사회다. 칼 맑스도, 토마 피케티도, 마이클 영도 모두 이런 사회를 이상향으로 그렸다. 시험에 의존하는 사회(마이클 영의 소설에서는 IQ 검사에 의존하는 사회)는 하나의 이상향으로써의 기회균등을 박탈하는 사회다.
저는 지금 인천공항공사 정규직을 둘러싼 논란을 공정이라고 표현하는 "과정"에 대한 입장 차이로 이해하는게 맞는지 모르겠다. 오히려 어떤 사회가 좋은 사회인지, 유토피아의 비젼 간의 충돌로 봐야 하는거 아닌지?
한국에서 틈만나면 소개되는 북구 복지국가의 삶의 모습이 적어도 한국보다는 마이클 영이 그린 계급없는 사회에 가깝다. <첼시선언>에 나온 기회균등의 사회를 이상향으로 그렸다. 그게 실현 가능하냐를 떠나서 적어도 머리 속에 그리는 이상사회는 한국인들이 비슷하게 공유했다.
하지만 지금 공정을 내세우는 분들이 그리는 이상사회는 마이클 영이 풍자한 능력주의가 완성된 그런 이상사회에 가까운 것 아닌가? 한 가지 수치의 잣대로 측정된 능력에 따라 줄세우고 그 능력에 따라 커지는 불평등은 용인하는 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