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 없는 사회는 다양한 가치를 소유하는 동시에 그런 가치에 근거해서 행동하는 사회가 되리라... 개인적 차이를 수동적으로 관용할 뿐 아라 능동적으로 장려하며... 모든 인간은 어떤 수치적 잣대로 비춰 봐 세상에서 출세할 기회가 아니라 풍요로운 삶을 이끌기 위해 자기만의 특별한 역량을 발전시킬 기회를 균등하게 누리게 되리라." 

 

마이클 영이 쓴 "능력주의의 부상"에 나오는 "첼시선언"의 일부. 소설에서 능력주의 사회에 저항하는 사람들에게 꽤 영향을 끼친 선언문이다. 여기서 계급이란 맑스주의적 생산수단 소유에 따른 계급이 아니고, 능력주의에 따라 직업과 신분이 결정되는 사회의 계급이다.

 

진정한 기회균등이란 시험같이 "어떤 수치적 잣대"로 줄세우는게 아니라 개인이 가진 각자 다른 역량을 발전시킬 기회를 모두에게 주는 것. 한가지 수치적 잣대인 시험이나 IQ 등이 지배하는 사회는 기회균등과는 거리가 멀어도 많이 먼 사회라는게 이 선언의 핵심이다. 

 

마이클 영의 말을 다시 그대로 빌어오면, "기회균등이란 사회의 계층 사다리를 올라갈 기회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각자 타고난 덕과 재능, 인간 경험의 깊이와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모든 능력, 삶의 잠재력을 '지능'에 상관없이 최대한 발전시킬 기회를 균등하게 만드는 일이다." 

 

전에도 여러 번 말했지만, 많은 사상가들이 그린 이상향은 "다양성"과 그 다양성을 "개인"이 마음대로 발휘할 "자유"(즉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지는 사회다. 칼 맑스도, 토마 피케티도, 마이클 영도 모두 이런 사회를 이상향으로 그렸다. 시험에 의존하는 사회(마이클 영의 소설에서는 IQ 검사에 의존하는 사회)는 하나의 이상향으로써의 기회균등을 박탈하는 사회다. 

 

 

 

 

저는 지금 인천공항공사 정규직을 둘러싼 논란을 공정이라고 표현하는 "과정"에 대한 입장 차이로 이해하는게 맞는지 모르겠다. 오히려 어떤 사회가 좋은 사회인지, 유토피아의 비젼 간의 충돌로 봐야 하는거 아닌지? 

 

한국에서 틈만나면 소개되는 북구 복지국가의 삶의 모습이 적어도 한국보다는 마이클 영이 그린 계급없는 사회에 가깝다. <첼시선언>에 나온 기회균등의 사회를 이상향으로 그렸다. 그게 실현 가능하냐를 떠나서 적어도 머리 속에 그리는 이상사회는 한국인들이 비슷하게 공유했다.

 

하지만 지금 공정을 내세우는 분들이 그리는 이상사회는 마이클 영이 풍자한 능력주의가 완성된 그런 이상사회에 가까운 것 아닌가? 한 가지 수치의 잣대로 측정된 능력에 따라 줄세우고 그 능력에 따라 커지는 불평등은 용인하는 사회.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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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참담한사회 2020.06.29 10: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금 사태를 보면 끔찍합니다. 이제는 기를 쓰고 어떻게 해서든 '시험'을 치르지 않으면 '너희'들의 노력과 능력은 인정하지 않겠다고, 주제 파악하고 아래로 내려가라고 소리치는 것 같습니다.

    • 바이커 2020.06.29 10:59  댓글주소  수정/삭제

      오찬호의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가 나왔을 때 알아봤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2. 참담한사회 2020.06.29 10: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이클 영의 소설은 꼭 읽어봐야 겠습니다.

  3. sbl 2020.06.29 10: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교적 최근(?)에 나온 Joseph Fishkin의 <Bottlenecks>에서도 비슷한 얘기를 했던 걸로 기억합니다(한국에서 <병목사회>로 번역이 됬었죠). 제가 '대충' 기억하기로 그 책의 저자의 주요 논지가 일률적으로 조직화된 기회구조를 다원화하자는 거였는데, 그게 본문에서 말씀하신 "다양성"과 그 다양성을 자유롭게 발휘할 수 있는 "자유(기회)"가 평등한 사회로의 지향과 맞닿아 있는 듯합니다.

  4. Spatz 2020.06.29 16: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 그래도 미디어오늘 보도 보니 뉴스1측에서 그 문제의 카톡이 조작으로 판명나니까 "팩트체크 안 한 건 맞는데, 이 카톡이 조작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청년들의 공정성 문제가 요점이다!!" 라며 어이가 가출하는 소릴 하더라고요.

    사실 이런 식으로 나오리라고 예상은 했습니다. SNS 등지에서든 여기든 반박이 계속되니 "아무튼 공정 문제 아니냐 왜 이해를 못 하느냐 기성세대가 그럴 입장이냐!!" 하는 친구들이 속출했으니까요. 근데 진짜로 판명되는 건 다른 문제겠죠. 과연 지금 사태에서 낚인 친구들은 그 사실을 인정할지.... 뭐 덕분에 진짜 의도들이 뭔지는 잘 알았네요(ㅋㅋ)

    링크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7874&fbclid=IwAR3cjAzoDcaL1-ck0fe0r5K-Npf8uzMsKl_qUP6GIauG7oELSmsqOXLRz34

    • 바이커 2020.06.29 18: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도대체 왜 이 분들은 디스토피아적 이상향을 가지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이 남습니다.

    • Spatz 2020.06.30 01:01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냥 노예들이 계급놀이 하고 싶은 거죠 뭐... 군대만 해도 장성들은 허허 뒷짐지고 있는데 알아서 없는 사관생도들과 초급 간부, 병사들끼리 부조리 제일 많이 하지 않았습니까.

  5. 프리드먼의 그림자 2020.06.29 20: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경쟁 사회의 폐해"라는 결론으로 회귀하시는 것 같은데 정말 기성 세대의 일부 인물들과는 단절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겐 바람직한 노동환경의 변화로 보이겠지만 누군가에겐 노력과 보상의 등식의 전복으로 보일겁니다.

    평등은 결과의 평등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말했듯 기회의 평등이 주어지면 됩니다. 인국공뿐만 아니라 지금과 같은 공공부문 일자리 생산은 결과의 평등에 집착한 근시안적인 태도로 보입니다. 저마다 들어온 문이 다르다면 대접도 다르게 받는 것이 비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 노력한 시간과 비용을 보상해주는 공정이자 정의입니다.

    대학교수와 용역 청소부가 같은 존경을 받는 것과 같은 보상을 받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일입니다. 5년차 교수보다 15년차 용역 청소부가 돈을 더 많이 받는 세상을 원하시는 것 같아 참담합니다.

    • 바이커 2020.06.29 21:07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미 5년차 비정규직 교수보다, 15년차 청소부가 돈 더 많이 받고 있는데요? 이게 평등한 사회로 보여요?

      기회평등 논리가 매우 단순해서 이를 믿는 사람들은 신기루를 쫓는거고, 대부분은 자신이 이미 차지한 유리한 기회를 정당화하는거죠.

      저마다 태어난 문이 다르면 대접도 다르게 받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자 공정이라고 몇 천년을 떠들어도 먹혔으니 놀랍지는 않아요.

    • 프리드먼의 그림자 2020.06.29 21: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대학의 테뉴어 제도로 안정적인 지위에 오른 사람들과 비정규직 강사들과의 격차는 잘 알고 있습니다. 비정규적 강사들은 한정된 자리와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무한경쟁속에 병들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마다의 연구 실적이나 석박사 논문으로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총장님이 부임하신 날짜를 기준으로 그 전에 출근하던 비정규직 강사는 테뉴어가 되고, 그 이후에 출근한 강사는 소급대상이 아니라면 이는 불의이자 불평등입니다. 또한 학교 외부에서 테뉴어 자리를 위해 노력한 강사들 역시 공정하게 경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저마다 타고난 형질에 의한 차별은 모두에게 존재합니다. 물질적 요인이나 외적 요인 모두 타고난 형질에 불과합니다. 저마다의 차별이 있는 것입니다. 태어난 문이 다르면 대접도 다르게 받습니다. 그럴수록 공정하고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평가기준이 중요한 것입니다.

      능력과 평판 위주의 천거제가 어떤 말로를 가져왔는지는 진군의 구품중정제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불행히도 꽃밭이 아니고 에덴동산은 더더욱 아닙니다.

    • 바이커 2020.06.29 22:11  댓글주소  수정/삭제

      결국 공정은 비정규직 강사 문제 해결이나 처우개선과는 무관한 것이죠.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평가기준." 그런게 있을리가요. SAT도 논란 끝에 대학 입학 참고자료로도 보지 않겠다는 학교가 늘어나는 판국에요.

      "저마다의 차별"? 사회적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형해화시켜서 문제가 없는 듯 넘어가려는 기동이 어디 하루이틀된 것이던가요.

      우리가 사는 세상은 신분제를 철폐했고, 경제발전과 더불어 기아를 축출했고, GDP의 0.2%를 복지에 쓰던 국가가 20%를 복지에 쓰는 국가로 변모해 왔어요. 아마 18세기 대기근으로 굶어죽던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지금이 에덴동산일걸요. 실제로 19세기초에 그리던 유토피아의 모습은 현재 우리의 물질적 삶과 다르지 않아요.

      신분제 철폐 이외에 수많은 기회평등 기획이 대부분 기대했던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것에 비해, 복지확대, 재분배는 확실한 성과를 거두었죠.

    • 프리드먼의 그림자 2020.06.29 23:10  댓글주소  수정/삭제

      공정이 비정규직 강사의 문제해결이나 처우개선과 무관한 것이 아니라,
      예로 들었던 문제해결과 처우개선을 위해 사용한 방법이 공정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현대사회는 다양성과 복잡성이 공존하는 사회입니다. 모든 문제를 사회적 구조로만 판단하고 솔루션을 제시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개개인의 파편화가 진행되고 있는 시대입니다. 인종, 성별, 소득, 연령, 외모, 목소리, 신장과 같은 개개인의 다양한 형질들을 모두 평등하게 조정할 수 있을까요? 심리적 요인은 어떤가요? 평등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신분제철폐와 경제발전으로 인한 상대적 에덴동산 이야기를 하시는데,

      소위 시험이라고 부르는 선발 기준이 아니라 실무능력이나 평판과 같은 다양한 기준에서 인재추천을 하는 방식의 단점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진군이 주창하고 실행된 구품중정제는 초기에는 명사집단들과 지역사회의 천거로 인해 많은 인재를 등용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인재를 추천하고 평가하는 다양한 기준이 있다는 것은 다시 말해 다양하게 부패할 요소도 다분하다는 것입니다.

      구품중정제의 결과가 무엇입니까? 결국 지위의 세습 아니었습니까. 기회평등은 커녕 이너서클 안에서 기회 역시 세습되는 것입니다.

      그에 대한 반발과 보완으로 '과거제'로 불리는 기회의 평등과 과정의 공정을 중요시하는 제도가 등장한 것이지요.

      모두가 인정하는 평가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모두가 인정하는 평등의 기준 역시 존재하지 않는 것 아닐까요?

      과정의 공정이 없어도 결과의 평등은 이룰 수도 있겠지만 결과의 정의는 절대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 Spatz 2020.06.30 00:58  댓글주소  수정/삭제

      거 말장난 하시네 결국 공정타령은 사회 정의랑 동떨어져있고 아무튼 기회의 평등 보장하라는 건데 지금 그 예시들이 개박살나는 상황에서 똑같은 말 반복해대며 텍스트만 쓸데없이 늘려 대고 꿋꿋이 머리 들고 비정규직들 보고 안빈낙도 운운하시는거 보니 어디 경제지 출신이신가 싶네요 지론을 따라 당신의 고용유연화도 꼭 이루어져야 할 것 같읍니다...

      뭐 조선일보 기자들도 자기들 밥그릇 때문에 파업하기도 하더라고요~ 그런거 보면 세상이 재미있어 보이긴 합니다. 이런 분들도 어디가서 똑같이 하시겠죠?

  6. 프리드먼의 그림자 2020.06.29 21: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위적인 결과의 평등을 만들기 위해 개입된 손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공정한 경쟁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폭력이 될 것입니다. 개미와 배짱이의 우화에서 볼 수 있듯이 느슨할 자유와 치열하게 살 자유 둘 다 존중받아야 할 가치 아니겠습니까?

    본인의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다면 안빈낙도하고 느긋한 라이프스타일 역시 귀감이 될 것입니다. 모두가 정규직 노동자가 될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됩니다.

    세상이 변해가고 있습니다. 그 어느때보다도 단순 노동력에 대한 가치가 떨어지는 시대입니다. 인공지능, 자율주행 자동차와 같은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저숙련 노동자들의 노동이 대체될 것입니다. 멀리 있는 미래가 아닙니다. 이미 우리 사회에 스며들고 있는 현상입니다.

    일례로 비대면 사회로 키오스크를 사용하는 매장이 늘자 단순 파트타임 노동자의 일자리가 줄어들었습니다. 불의에 저항하는 것과 시대적 흐름에 저항하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스웨덴과 같은 노르딕 국가의 복지 모델이나 사회구조에 경도되신 것 같은데 이런 지원금이나 기계적 평등을 명목상으로나마 추구하는 나라들이 근로의욕 고취가 안되고 이민 사회와 통합 실패로 사회 갈등을 빚고 있습니다.

    기계적 평등을 위해서는 강한 국가, 시장에 대한 정부의 권한과 개입이 커져갈 것입니다. 정부의 힘이 커질 수록 권력의 근처에 있는 이해관계자들과 소외된 사람들의 격차 역시 커져갈 것입니다. 이 또한 새로운 계급과 새로운 층위를 만드는 것입니다.

    마르크스가 베데마이어에게 보낸 편지에 따르면 계급 투쟁을 없애고 무계급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귀결된다고 말합니다. 아무리 민주적 통제를 외쳐도 이 땅에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시행한 모든 국가들이 계급이 해소된 공산주의 체제로 나아가지 못하고 과두정 독재로 체제를 마무리했습니다.

    사회주의의 미래상이 노동시간이 줄어들고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자유와 시간이 보장된 사회였다는 것을 상기해본다면 어떤 정책에 대한 판단은 의도가 아니라 결과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는 프리드먼의 말을 떠오르게 합니다.

    • EE 2020.06.29 23:36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와 같은 의견을 가지신 분이 노동시장 유연화에는 어떻게 생각하실지 궁금하네요. ‘의외로’ 고용 경직성을 강하게 주장하지 않으실지 생각해 봅니다.

    • 불신사회 2020.06.30 03:24  댓글주소  수정/삭제

      원래 인간은 서있는 위치에 따라서 다 달라지지 않습니까. 정규직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라면 고용유연화를 지지할터이고, 정규직에다가 부양가족까지 있다면 고용 경직성을 지지하겠지요.

    • EE 2020.06.30 04: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불신사회 서있는 위치에 따라서도 고용 유연화에 입장이 정해지겠지만, 그것만이 요인은 아닙니다. 생산성이 무엇인지 생각하면 고용 유연화가 필요한 이유를 알 수 있죠.

  7. 으악 2020.06.29 22: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빈낙도하고 느긋한 라이프 스타일? 설마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 보고 하는 소리 아니겠죠?

  8. 불신사회 2020.06.30 03: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송호근이 "한국의 평등주의 그 마음의 습관" 에서 말했던 한국인들 내면의 평등에 대한 인식이 또 다른 모양으로 변주되어 나타나는 것 뿐입니다. 위에 리플에서도 보이지만 한국에서 시험을 거치지 않는 추천제 등 다른 방식의 의미는 "돈있고 빽있는" 사람들만 일자리를 얻는 방식" 이라고 받아들여져 왔습니다.

    마치 미국 흑인들이 자녀들에게 미국내의 인종차별 대응용으로 가르치는 "안 돼 교육" 같은 이런 신화가 꾸준히 전승되고, 사람들은 불신사회를 구성하는데 한 몫하고 있는데 공채가 없어지는 것을 당연히 사회불의가 판치는 세상이 왔다! 라고 생각할 수 도 있는 거겠지요. 그것이 진실이든 아니던간에.

    조국 사건이 핫했던 이유도 바로 이런 역린을 건드려서 아니겠습니까?

    뭐 결국 대중 감정의 문제이니 어쩔 수 없겠지요. 정성평가 자체를 불신하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는 무엇을 시도해도 반발로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또다른 방식의 정량평가로 회귀할 것입니다.

  9. 그런데 2020.06.30 04: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국식 대학 입시는 솔직히 요즘 말로 적폐 그 자체에 가깝지 않습니까. 그나마 보여줄 수 있는 소수그룹에게 일부 혜택이 돌아가서 망정이지, 희한한 뒷문입학과 레거시, 기부입학까지... 사실 미국에서만 채택하는 제도지 같은 서방인 서유럽조차 외면하는 방식이니까요.

    헐리웃 배우들 자녀 입시부정이 잠깐 시끄러울 뿐 큰 분노 없이 잊혀질 만큼 일상화된 편이니...

  10. 그런데 2020.06.30 05: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인적으로는 한국 사회에선 동질감이나 유대감을 바탕으로 복지를 통한 후보정이 이뤄지고, 그 이전의 사회적 상층 가치/지위 쟁탈은 정량평가로 이뤄지는 시스템이 앞으로도 영구히 유지될 것으로 거의 확신합니다. 이걸 바꾸려는 시도가 종종 있겠고 일부 파괴나 변형이 있겠지만 큰 틀에서는 절대로 바뀔 리가 없다고 확신을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그렇게 나쁜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 방식으로 동북아 3국이 급속도로 속된 말로 거지꼴에서 정승꼴이 된 것도 사실이고요. 지금보다도 더 정량적이고 주입적인 동북아 교육이 과연 동시기 서구 교육방식보다 반드시 열등하거나 취약했느냐 하면 오히려 이제와서 물음표가 붙으니까요.

    무엇보다 이 방식이 동작하기엔 동북아 국가들은 대체로 국가 내부에서 뚜렷한 소수자 집단도 없고 문화적으로도 매우 동질적이고 대단히 세속적이고 현실적인 문화라는 점에서 더 그렇지 않나 싶습니다.

    미국이나 유럽은 흑인, 히스패닉, 무슬림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매우 동떨어진 문화를 거진 이들과 정치적 타협을 해야하지만 동북아는 그런 환경도 전혀 아니고 심지어 새로 들어오는 이민자 그룹 마저도 크게 동떨어진 문화를 가진 것은 아닌 동남아시아 위주라는 점도 앞으로 큰 변화가 없지 않을까 예상하게 만듭니다.


  11. 그런데 2020.06.30 05: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오히려 인국공 사태는 이걸 깔끔하게 정량화 시킬 수 있는 요소로 환원해서 이 사람들 능력 있다, 정량적으로 봐도 개나소나 할 수 있는게 아니다. 니들 같으면 하루 종일 공항에서 사람들 감시하고 관리하고, 진상들 받아주고. 물리력으로 제압하기도 하는게 쉬운 줄 아느냐. 이 사람들 체력검정도 해야 되고 필요한 만큼의 어학 능력도 검증할 것이다. 그리고 향후에도 해당직군 채용은 그런 식으로 할거다. 이러면 그만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사실 과거 국회 청소원 정규직화도 이런 논리로 쉽게 받아들여졌지요. 이 일이 육체적으로 얼마나 힘드냐, 게다가 정신적으로도 소모가 얼마나 크냐, 또한 권력자들 매일 접해야 하는 감정노동이 얼마냐는 얘기가 잘 먹혀들어갔지요.

    이 방식으로 순차적 정규직화를 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이 (마치 경찰들 승진시험 치듯) 훨씬 정치적으로도 매끄럽고 깔끔했으리라고 봅니다.

  12. 그런데 2020.06.30 05: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여기서 예민한 문제가 나오지만,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사회, 그리고 학문의 위상에서 점차 인문학이 몰락하고 사회과학조차 자연과학에 다소 얹혀가는 세상 (이제 정량 연구 없는 사회과학 연구, 소위 썰풀기는 취급받기 어렵잖습니까)이 확연한 마당에, 어떤 다양성을 말할 건지도 좀 애매하다고 봅니다.

    솔직히 이런 분위기에선 지능의 고저, 세속성과 비세속성, 그리고 이것에 어느 정도로 친화적이냐 적대적이냐를 만드는 문화적, 종교적, 문명적, 선천적 차이점들이 다양성으로 포장하기 점점 어려워지지 않을까 싶거든요.

    무엇보다 설령 저 다양성을 인정한다고 해도 그 다양성 내에서조차 우열이 나뉠 것이라는게 거의 확실하기 때문에... 저로서는 좀 회의적입니다.

    말씀하긴 북구사회만 해도 대단히 소규모에 동질적 인종,문화,종교적 집단으로 존재할 때 현재의 시스템이 완성되었고 여기에 외부인 특히 완고하게도 동화되기 어려운 무슬림이 대거 등장하자 극우 정당이 대거 등장한게 우연은 아니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흐름 자체가 기존 복지 시스템마저 흔들면 흔들지 확대에 기여할리야 만무하고 말입니다.

    이미 하늘,바다,육지가 펑뚫려버린 세계가 급속한 배외주의나 고립주의로 가진 않겠지만 전반적으로 다양성을 억지로 구현하는 시스템보다는 동질성 추구와 불가근 불가원 정도가 미래상이 아닐까 요즘 더욱 생각하게 됩니다.

    유럽과 미국의 정치적 변화, 동북아에서의 국민(민족) 정체성 강화, 시민참여가 늘어날수록 역설적으로 비세속적이고 전통적으로 회귀하는 이슬람권 등 일단 현상을 봐도 이 흐름이 1세기 이상은 굳건하지 않을까 싶고, 솔직히 이런 상황에서 다양성을 통한 선보정 시스템이 동작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13. 그런데 2020.06.30 05: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또한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에선 공적 영역이 서구에서의 그것과 동급이 아니라는 걸 간과하면 안된다고 봅니다. 서구에서의 공기업 직원, 공무원이 갖는 위상과 동북아에서 갖는 위상은 전혀 다르니까요. 어떤 직군, 직렬이건 일단 공적 섹터에 있는 사람은 일종의 권력에 친화되어있거나 보유한 사람으로 실제로 어느 정도 그러하니까요.

    단순히 토익부터 행정학개론까지 보고 들어가는 공채가 아니라서 분노한다기에 보다는 공적 직군에 너무 쉽게 편입되는거 아니냐는 문제제기도 크지 않나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름 계량적 평가를 거치고 정규직으로 전환된다는 걸 강조했어야 하지 않았나 싶고요.

    이미 대기업의 공채가 대거 축소되고 있지만 커다란 청년층의 반발은 보이지 않고 중견기업이나 중소기업은 애초부터 알음알음 취업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단순히 공채신화, 지필고사 신화만으로 이 분노가 설명되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14. 그런데 2020.06.30 05: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또한 동아시아가 사회적 관계망에 의한 비리가 작동하기 매우 쉬운 집단주의 문화라는 점에서 정성평가에 대한 불신을 그냥 일종의 망상으로 치부하긴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미국에서조차 특유의 정성평가식 대학입시에 대한 불신은 꽤나 넘치고 있고 꾸준히 언급되는 사회문제임을 감안하면 꼭 한국적 현상도 아니고 말입니다.

    • 바이커 2020.06.30 16:51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누구보다 정량 좋아하는 사람인데요, 정성이냐 정량이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의 잣대로 모든걸 재단할 수 없다는거죠. 그 알기 쉬운 예로 몇가지를 든 겁니다.

      기업에서 시험은 입구(내지는 하위직 승진 정도)에서만 작동하고 대부분의 승진은 정성평가입니다. 그런데 왜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바뀌는 것만 정량이어야 하겠습니까.

      그리고 시험성적대로 합격해야 한다면, 불법으로 서울메트로나 은행에서 시험성적 높은 여성 떨어뜨렸을 때 비슷한 분노가 전해져야 하는데 그건 또 전혀 아니었죠.

    • 불신사회 2020.06.30 22:40  댓글주소  수정/삭제

      지금 논쟁이 되는 부분은 바로 '입구컷' 의 문제 아니었던가요? 어떤 나라, 어떤 조직이건가에 내부의 라인과 정치에 따른 승진은 일반적이지요. 하지만 그것조차도 입구를 통과해야만 가능한 문제 아니겠습니까.
      실제로 시험 성적이 높은 친구들을 떨어뜨렸을 때의 반응은 소위 명문대/외국대학 출신들과 떨어진 대학 출신들의 반응이 갈렸지요.

      지금 인국공은 그때보다 범위가 더 확대되었기에 (소위 인서울 4년제 전체) 좀 더 시끄럽게 표출되는 것 뿐입니다. 자기들은 거기 해당 안되는 줄 알다가 큰 코 다친거지요.

    • 그런데 2020.07.01 01: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비교 대상이 전혀 다르지 않습니까. 임원 승진과 비정규직 - 정규직 전환은 애초에 위치 자체가 틀리니까요. 이건 승진이라기보다는 고용형태 변환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채용 성차별 사건 때도 여성들의 분노는 컸습니다. (맞습니다. 혜택을 본 남성들은 입다물었지요). 못 믿으시겠지만 '젊은 페미니즘'을 내거는 여성들은 최근 인국공 사태에서도 '자댕이'들만 이득보는거 아니냐, 정규직 대상자 중 여성 비율은 얼마냐 이런거 얘기합니다. 분노한 20대들 중에는 이 사람들도 한 축입니다. 이건 옳고 그름을 떠나서 정체성에 따라 분노의 크기가 달라지는 부분입니다.

    • 그런데 2020.07.01 02:12  댓글주소  수정/삭제

      결국은 어떤 방식으로 인재를 뽑느냐, 위치를 나누느냐는 영역인데, 이 분야의 장단점은 결국 퍼포먼스 그 이상의 평가 기준이 없고, 여기서 딱히 한국식 시스템이 불리한 점을 찾기가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심지어 혁신을 두고 한국이 계속 우리가 잘못했느냐며 자조의 대상이 되는 나라 중 시스템이 대거 다른 나라는 미국 뿐이고 그것조차도 분야는 정량적인 것을 추구하는 STEM아니면 경영/경제지요. 학문으로 치면 레거시나 기부 위주로 입구 세우기 좀 거시기한 분야들 아니겠습니까.

      그나마 최근에 미국 다음으로 언급되는 비교대상은 한국 시스템의 원조라고 할 수 있고 오히려 더 극성맞을지도 모르는 중국이 되었고, 이 분야의 모범생 일본은 단골 멤버죠.

    • 그런데 2020.07.01 02: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말 나와서 말인데 라인과 정치에 따른 승진은 분명 존재하지만, 이 분야에서도 정량성이 더 큰 경우일수록 퍼포먼스가 좋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어느 기업, 공조직이건 관리자, 임원을 뽑느데 최우선 되는 건 결국 수치화되는 실적입니다. 일단 경쟁군간 실적 수치가 매우 흡사해야 그 다음에 마음 맞는 정치질을 하는거지 그게 역전될 수는 없고 역전된 조직의 미래가 불투명해지는 건 필연적이죠.

    • 바이커 2020.07.01 09: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바로 그거게요 승진도 주어진 후보자 내에서 대부분 정성인데, 똑같은 일에 비슷한 봉급받고, 업무능력이 검증되었지만, 고용형태만 바뀌는것에 무슨 수치를 통한 평가를 얘기하냐는거죠.

      그리고 정량화해서 평가하는거 아무도 부정안한다니까요. 경향성으로 어떤 관계가 있다는 것과, 그것만으로 기준을 삼아야 한다는 것은 많이 다른 얘기에요.

    • 불신사회 2020.07.01 20: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똑같은 일에 비슷한 봉급받고, 업무능력이 검증되었지만, 고용형태만 바뀌는것" 을 놀랍게도 아무도 믿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특히 직장인 익명게시판인 블라인드에서 유출되는 사례들 - (진짜인지는 모르겠으나) - 을 보면 어디서 이 피해의식이 오는 지 알 수 있지요. https://twitter.com/coconut_coffeeL/status/1276015593003474945

      사람들에게 신뢰를 담보하지 못하니 담론이 제대로 동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 그런데 2020.07.02 04:08  댓글주소  수정/삭제

      승진과 고용형태 변환은 동급이라는게 말이 됩니까. 신분 내 상승과 신분 변화가 같습니다. 정규직-비정규직은 전세계 어디를 가도 신분, 계급의 차이입니다. 교수들에게 테뉴어 있고 없고가 학교에서 좋은 보직 받고 안 받고 수준 밖에 안되나요? 전세계 어느 나라 교수나 같은 답 말할 겁니다.

      이 정부도 이런 생각을 다 했습니다. 그래서 전부 정규직으로 전환되는게 아니고 나름의 검증절차도 만들려고 했습니다. 이걸 강조 못한 건 정치적 실수에 불과합니다. 오히려 어설프게 장기적으로 정성평가가 정답이라는 분들이 스피커가 되면서 꼬였지요.

      헌데 애초에 모든 공공기관의 비정규직이 일시에 정규직이 되는 것이라면서 논리전이 가능하곘지만 같은 공항공사 보안요원도 '인천'만 되는 이상 정무적인 행태를 보여야 되는게 맞지요. 논리전으로 접근하려면 유니버설하게 어디든 다 되야 가능할 겁니다. 거기만 되는 이유가 문재인의 방문과 즉석약속 뿐인데, 그걸 로또로 보는 사람이 나오는게 이상할게 없지요.

      그리고 겉도는 얘기인데 그 하나만의 잣대가 아닌 다양성의 가치도 의외로 평가 전환하기 어려운 것도 아니죠. 청원경찰, 보안검색 요원에게 필요한 능력은 대체적으로 정량평가가 꽤 쉽습니다. 오히려 정성평가할 영역이 별로 없어요.


      그런데 교수님 지난 글에는 한국에 고용유연화가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하시지 않으셨는지요. 그렇게 치면 사실 공항공사 보안요원이 꼭 정규직이 되야 할 이유도 좀 애매하지요. 경력 쌓고 다른 데로 가셔도 된다고 하면 그만. 정규직이 아니라 비정규직인 지금도 하려는 사람은 많은 직군인데요.

    • 바이커 2020.07.02 09:18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마 제가 테뉴어 제도를 옹호할 것으로 생각해서 계속 이 비교를 하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테뉴어 제도에 그렇게 우호적이지도, 이 제도가 과거와 같은 형태로 지속될 것으로 보지도 않습니다. 문제가 많아요.

      많은 미국 학교에서 포스트-테뉴어 리뷰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6년마다 한 번씩 재심사를 받죠. 테뉴어를 받은 교수가 온갖 수모를 당한 끝에 그만두는 것도 봤고요.

      지속적으로 복수의 강의를 하는 분들은 teaching professor라고 해서 봉급도 올리고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제도도 도입하고 있습니다. 충분한 것과는 거리가 멀지만, 적어도 현재의 시스템이 망가져있다는 것은 많은 분들이 동의하죠.

      인천공항 관련 최근의 논란을 보면서 알게 된 것은 그런데님이 너무도 명확하게 기술하였듯 고용형태를 신분으로 인식하고 그게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겁니다. 덕분에 한국 사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크게 깨달았어요.

  15. 익명 2020.06.30 08: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상에 대해서 이야기할 생각이 없습니다. 현실에서 어떤 선택이 더 나은지에 대해서 논하고 싶은 것입니다. 완벽한 사회의 모습은 '능력만큼 일하고 필요한 만큼 받는 사회'라는 오래된 문장으로 충분할 겁니다. 그런 사회를 만들수가 없을 뿐이지요.
    위 글의 선언적인 문장도 그 수준을 전혀 벗어나지 못한말일 뿐입니다.

    • 동감 2020.06.30 08: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능력만큼 일하고 필요한 만큼 받는 사회'에 동감합니다.

      그럴 수 없는 것이고 그 사이 어딘가에서 현실에 맞게 최대한 나은 결정을 할 뿐. 아름답고 오래된 이상이네요.

  16. EE 2020.07.04 03: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교수님, 긴 댓글을 볼수록 드는 생각인데, 고용을 유연화하면 이런 긴 논쟁 자체가 불필요해 지지 않을까요?

  17. gltkglep 2020.07.15 09: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https://www.facebook.com/gwidong.cho/posts/3133239650052139

    조선쪽 기자는 아직도 정신못차리고 교수님 비방을 일삼고 있네요

    • 바이커 2020.07.15 16:53  댓글주소  수정/삭제

      https://sovidence.tistory.com/952

      이 분이 누군지 전혀 모를 때 위 같은 포스팅으로 이 분 기사도 비판한 적이 있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