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던 한국 사회의 사건 중 하나가 용산참사였고, 그 다음이 최근의 인천공항공사 정규직화 사건이었다. 그런데 별안간 한국 사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깨달았다. 이 깨달음을 얻는데는 페북에서 Tilly를 언급한 최성수 교수의 영향도 컸다. 

 

초간단 정리를 미리 하자면, 한국 사회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은 (1) 구조적 사회이동의 기회가 줄어든 상황에서 (의미는 조금 다르지만 경제성장률이 떨어졌다는 것), (2) 기회평등의 개선으로 상위계층의 세습이 어려워지고, 전국민적 동질성으로 상위-하위계층 모두 동일한 지위를 둘러싼 경쟁이 격화되자, (3) 상위계층의 지위독점과 계급세습을 재확보하기 위한 사회적 배제 투쟁에 나섰는데, (4) 그 방식은 공정을 매개로 한 기회비축(opportunity hoarding)이다.  

 

틸리의 논의에 따르면 <지속되는 불평등>은 범주 구분에 의한 불평등(categorical inequality)이고, 착취와 기회비축(opportunity hoarding)으로 재생산된다. 한국 사회에서 착취는 이미 노동시장 분절화로 광범위하게 자행되고 있지만, 기회평등의 개선은 상위계층에게 후자(=기회비축)를 위기에 빠뜨렸다. 게다가 범주 구분의 수가 줄어들고 있다. 현재 성별만 확실한 기준으로 남았고, 과거에 크게 위력을 발휘하던 지역, 학벌의 영향력이 급감하였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은 기득권층의 기회독점을 위한 사회적 배제다. 시험에 접근하기 어려운 계층을 "공정"이라는 이름으로 제척하고 자신들만의 기회를 비축(opportunity hoarding)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일부 20대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상당한 크기의 코호트에서 사회전반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공정은 기회비축의 이데올로기적 정당화 기제이지, 실체적 기회평등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기회평등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인이 가족배경이다. 공정 담론이 실체적 기회평등으로 발전한다면, 가족배경의 영향력을 줄이는 방향으로 논의가 전개되어야 하는데, 현재의 논의는 가족 배경을 삭제하고 노력한 개인만 앞에 둔다. 

 

교육 불평등이 커지고 기회평등이 안이루어져서가 아니라, 교육 불평등이 작아지고 기회가 평등해지고, 사회가 전반적으로 공정해졌지만, 구조적 이동의 저하로 상향사회이동이 어려워지고 계급세습의 경로가 불분명해진 것이 원인이다. 

 

 

 

 

이는 한국사회가 처한 독특성에 기반한다. 지금 한국 사회는 불평등과 계층 재생산에서 역사적으로 어느나라도 겪지 않은 특이한 구조적 상황에 처해 있다. 

 

역사적으로 기회가 평등해지고, 사회가 전반적으로 공정해진 과정이 폭발적 경제성장기, 구조적 사회이동이 활발한 시기에 일어났었다. 이 과정에서 사회 전반이 진보로 바뀌었다. 서로 반목하던 집단 간의 분화도 약화된다. 많은 서구사회가 2차 대전 직후 역사적으로 이런 일을 경험했다. 북구 사회 뿐만 아니라 가장 보수적인 미국도 이 시기에 불평등이 줄어들고 복지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사회의 범주 구분도 약화되었다. 사회학자인 Richard Alba는 그의 책에서 미국에서 한 때 "하얀 깜둥이(화이트 니그로)"로 불렸던 아이리쉬(이태리인, 동유럽인)가 2차 대전 이후 주류백인으로 편입되는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생생하게 묘사한다. Alba는 현재의 소수인종도 IT 산업 혁명으로 구조적 사회이동이 활발해지면, 2차 대전 직후 벌어졌던 일이 다시 벌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구조적 사회이동은 경제가 발전하고 좋은 직업이 늘어나고 상위계층의 크기가 커지는 것이다. 순수사회이동이란 그런 구조적 변동과 관계없이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의 랭킹이 바뀌는 것이다. 순수사회이동이 늘어나면 하위계층이 상위계층으로 올라가는 일도 늘어나지만, 상위계층이 중간이나 그 이하로 떨어지는 일도 늘어난다. 하지만 구조적 사회이동이 활발하다면 상대적으로 부모 세대 대비 자식 세대에서 랭킹은 낮아졌지만, 부모 세대 대비 자식 세대에서 절대적 경제 수준은 높아진다. 통시적으로는 상대적 비교에서 하향이동이더라도, 절대적 비교에서는 상향이동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순수사회이동의 증가가 사회적 갈등을 낳지 않는다. 오히려 사회통합을 촉진한다. 한국도 한강의 기적으로 이러한 사회이동을 경험하였다. 

 

위험한 상황은 구조적으로 하향사회이동의 확률이 높아지는데 "순수" 사회이동이 커지는 경우다. 불평등도 증가한다. 경제가 폭망한 상황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 (예를 들면 칠레). IMF 직후의 한국 상황이 아마 이러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는 모두가 하향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자신의 하항이동이 구조적 상황의 결과인지 순수사회이동의 결과인지 불명확하다. 계급투쟁보다는 각자도생이 더 부각되는 상황이다. 

 

미국(과 다른 서구) 사회는 근래에 구조적 사회이동이 줄었지만, 순수사회이동은 변화가 없고, 계급화가 완성되어 있다. 불평등이 사회전반에 만연하고 기회불평등이 워낙 심해서 하위계층은 상위계층과 동일한 경쟁을 하지 않는다. 계급이동이 없어서 오히려 안정된 사회다. 많은 서구사회가 순수사회이동에 변화가 없고 안정되어 있다. 사회적 계급의 격차가 크고 계급세습이 안정적으로 구축되어 있다. 대부분의 사회가 안정된 계급세습 경향을 보이는 것을 두고 나온 사회학의 유명한 테제가 세대 간 사회이동의 constant fluidity다. 계층론 공부하는 사회학자면 누구나 아는 골드소프 등이 정리한 논의다. 구조적 변동을 통제하고 나면, 대부분의 서구사회가 국가 간 비교를 해도, 국가 내 통시적 비교를 해도, 순수계급이동은 비슷하다는 거다. 

 

이게 지금까지 자본주의 사회가 겪었던 경험이다. 

 

 

 

 

한국의 현재 상황은 위에서 언급한 일반적 역사적 경험과 다르다. 경제가 안정된 상황에서, 구조적 사회이동은 줄지만, 순수사회이동이 늘어나고 있다. Constant fluidity 테제에서 규명한 특징이 한국 사회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는 박현준 교수의 RSSM 논문도 있다. 상위 50% 내부의 불평등이 커지지 않고, 하위계층이 대거 대학에 진학하는 등 기회평등이 개선되었다. 상위계층부터 중하위계층까지 문화적 동질성을 유지하며 교육, 미래의 비젼을 공유하고 동일한 지위를 노린다. 그 결과로 순수사회이동이 늘어나면 상위계층의 하향이동 가능성도 높아진다. 그리고 상위계층의 입장에서 그 원인도 명확히 인식된다. 구조적 상황의 악화로 하향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기회균등으로 독점적 기회를 상실하고 경쟁에서 밀려서 하향이동하는 것이다. 계급세습구조의 고착화를 통한 안정적 재생산 욕구가 커질 수 밖에 없다. 

 

이전 포스팅에서 보여주었듯 한국사회에서 IMF 이후 늘어난 불평등도 상층과 나머지의 분리가 아니다. 상위 1/2 내지 2/3가 큰 불평등의 증가없이 같이간다. 상위 50%에서 불평등에 큰 변화가 없다는 것은, 동원할 수 있는 자원에서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최하위 계층을 배제했지만, 나머지 대다수의 계층이 불평등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배제되지 않고 경쟁에 그대로 남아 있다. 오히려 과거에 사교육 시장에 뛰어들지 않았던 중하층도 사교육의 보편화로 사교육 시장에 뛰어들어 교육 경쟁은 더 격화되었다. 몇 번의 포스팅에서 얘기했듯, 교육기회 불평등은 늘어나기는 커녕 줄어들었다. 

 

이러한 기회평등과 달리 노동시장은 분절되어 있고 불안정이 크다. (교육) 기회의 측면에서 계층 간의 격차는 blurry해지는데 반해, (노동시장) 결과의 측면에서 격차는 obvious하다. 특히 정규직-비정규직, 고용안정성의 차이가 크다. 이러한 안정된 고소득 직업의 기회를 배타적으로 향유하고 싶은 유혹이 클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최근들어서 세대 내에서 학력 간 소득격차가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논문 작업 중). 분절된 노동시장에서 특정 계층이 우월적 지위를 독점하면, 학력 간 소득격차도 늘어나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이는 상위계층의 노동시장 독점이 약화되었다는 신호다. 현대 사회에서 계급재생산의 가장 명확한 통로가 교육을 통한 재생산인데, 한국은 교육의 기회는 평등해지고, 교육을 받은 후의 학력 간 노동시장 격차는 줄어들고 있다. 계급을 재생산하겠다는 관점에서 보면 현대 사회 계급 재생산의 가장 중요한 통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공정을 명분으로, 노동시장 기회를 배타적으로 비축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공정담론이 "지균충"이라는 말을 만들어내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반대하는 등 주로 하위계층을 공격하는 것이 우연이 아니다. 공정은 분절되어 있는 노동시장에서 경쟁에 들어오고 있는 하위계층(내지는 사회적 약자)의 기회를 배제하는 기능을 하는 담론이다. 교육, 노동시장에서 "점수"로 줄세우기해서 계층의 순위를 명확히하고, 이 순위에 따라 상층에게 기회가 배타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가 공정 담론이다.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연대 대나무숲의 글은 그 욕망을 날 것 그대로 보여준다. 노오력을 기울여 점수를 확보한 자들과 그렇지 않은 자들로 category를 만든다. 

 

동질성이 특성인 한국 사회에 균열을 발생시켜 이질성을 확대하고 계층재생산을 안정화(=고착화)하고자 하는 것이다. 

 

최근 경제성장률, 노동시장 불평등 변화, 교육 불평등 변화, 세대 간 사회이동 변화, 담론의 변화가 모두 일관성있게 설명된다. 

 

 

 

 

어떤 결과가 기다라고 있을까?

(a) 4차 산업혁명의 성공으로 구조적 이동 확대.

모두가 해피한 상황이다.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그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b) 미국(서구)모델의 이식. 즉, 이질성을 확대하고 기회평등을 약화시켜, 불평등과 계층재생산 안정화. 

(c) 노동시장 분절구조 타파, 복지향상으로 기회평등과 결과평등 동시 확대. 

 

결국 (b)와 (c)의 전선이다. 어떤 연대로 (c)의 세력을 확장할 수 있을까? 청년층도 노조도 (b)에 천착한 상황에서 희망적일까?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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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음.. 2020.07.05 19: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c와 같은 경우가 정착한 나라가 있나요? 보면 c는 사회적 혼란기나 특수한 경우에 잠시 지나가는 징검다리같고 결국 b로 수렴하게 되는것 같은데..

    • 바이커 2020.07.05 21:06  댓글주소  수정/삭제

      위대한 갯츠비 커브(Great Gatsby Curve)를 생각하면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3. ㅎㅎ 2020.07.05 20: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노동시장의 "점수"에 개인의 노력보다 가족적 배경이 더 큰 비율을 차지한다는 말씀이신가요? 수능 공부해서 대학에 가고, 대학에서 좋은 학점을 받는 것에 '가족적 배경'의 영향력이 '개인의 노력'보다 적다면 이 글에 공감이 갈텐데, 저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네요.

    • Zero 2020.07.05 21:01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 노력에 가족적 배경이 들어가는 점을 도외시한다면 그렇게 되겠죠.

      세계에서 비행기 탈 사람 뒤지는 직원 뽑는데 업무와는 전혀 상관도 없는 국사 어딘가 구석의 (학계 바깥에서는) 트리비아 찍기로 줄을 세워야 공정하다는 담론이 진지하게 사회적으로 교환되는 예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

    • 댕댕이 2020.07.05 21: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노력 자체가 가족배경의 함수라는 이야기입니다.

    • ㅇㅇ 2020.07.21 21:30  댓글주소  수정/삭제

      가족의 경제 구조가 탄탄하지 않다면 수능에서 좋은 점수를 내서 대학에 간다고 해도, 풍족한 가족을 등에 업고 있는 학생과 성취도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예시를 하나만 꼽자면, 이미 통학 환경에서도 차이가 납니다. 상대적으로 풍족한 학생은 서울에 살고 있거나 혹은 학교 근처에 집을 구할 수 있고 그 집을 구하는 과정에서도 부담을 크게 느끼지 않지만, 그렇지 않은 학생은 통학 시간이 길어지거나 스스로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많은 시간을 소요하게 됩니다. 개인의 노력이 정당하게 평가를 받는다면 풍족하지 않은 학생이 노력의 크기만으로는 풍족한 학생보다 더 클텐데, 그들이 받는 사회적 평가는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 바이커 sovidence 2020.07.22 09: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ㅇㅇ/ 공지에 썼지만 ㅋㅋ, ㅋㅋㅋ, ㅇㅇ 등의 유동닉을 제한하고 있어 유동닉 글은 자동 삭제 됩니다. 가능하면 다른 닉을 사용해 주십시오.

  4. ㅁㄴㅇㄹ 2020.07.05 21: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읽었습니다.

    다만 공정 담론이 상위 계층이 하위 계층의 기회를 배제하기 위한 수단이란 말이 이해하기 어렵네요.

    교육적 불평등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점수로 줄세우기'가 상위 계급에 유리하다는 근거가 이해되지 않습니다. '개천에 용 난다'란 말에서 보듯 계급이동의 주요 통로이자 계급 세습을 막는 한가지 방법이라고 생각해왔는데요...

    • 바이커 2020.07.05 21: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대학팽창으로 대학진학자가 늘고, 전형의 다양화로 하위계층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한 유형도 있어 교육불평등은 줄지만, 수능 점수 줄세우기는 상위계층에게 상대적으로 더 유리합니다.

  5. Spatz 2020.07.06 01: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니까 순수하게 줄을 세우게 되면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쪽이 훨씬 유리하게 되는 것입죠. 여기에 개입을 하지 않으면 그걸 세습하는 꼴이 되는 거고요. 전에 업로드 했었던 거지만 9급공무원 시험도 소득계층에 따라 합격률이 갈려요. (통제해도 결과는 같다고 하네요) 그래서 여기에 인위적인 개입을 하게 되는 것. 가끔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고졸 출신이 사시에 합격하고 하는 일이 있지만 그를 제외한 9할 이상은 소득계층을 물려받는 셈이 되고요. 특히 "투자받지 못하는" 여성들은 더 가혹했죠.

  6. 단추 2020.07.06 02: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국사회의 공정담론이 실제 '공정함'과는 거리가 멀군요. 공정담론의 납작함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이 소외계층의 전략이 되어야 할 텐데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7. 익명 2020.07.06 05: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번사태에서 공정이라는 주장을 단지 시험을 유지하기 위한 꼼수라고 결론을 내어버렸는데 자신이 평소 가지고 있던 생각에 끼워맞추기식으로 단정을 내렸다고밖에 보이지 않는군요.

    공정에 대한 바램은 겨우 인국공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공정은 문제가 아니라 해결책입니다. 우리 사회의 여러 그룹들 사이에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갈등들을 중재할 유일한 수단입니다. 이제는과거 민주화-독재시대와는 다르게 정의를 두고 싸우지 않습니다. 그저 이익집단들이 이권을 두고 싸우고 있을 뿐입니다. 인국공은 이를 폭발시킨 마지막 한방울에 불과합니다. 타다를 위시한 와해적 IT혁신산업과 택시기사 사이의 갈등, 집있는 사람과 집 없는 사람의 갈등, 정규직-비정규직 간의 갈등, 심지어 젠더갈등조차도 그 첫 격전지는 공무원직을 누가 차지하냐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문제를 중재할 수 있는 대원칙이 공정입니다.

    인국공 상황에서 시험을 치지 않았다는 것 외에도 중요한 불만포인트가 한가지 더 존재합니다. 누구는 그저 운이 좋아서 대통령의 수혜를 받아 로또에 당첨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로또식 혜택이 이거 한가지가 아닙니다. 집값 상승을 막겠다고 분양가 상한제를 걸었습니다. 그 결과 추첨으로 운좋게 분양권에 당첨된 사람들이 모든 시세차익을 취하는 분양권 로또가 생겼습니다. 신혼특공, 청년특공으로 약자를 배려한다는 정책들이 그 커트라인 1cm에서 잘려나가 오히려 '배제'되버리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불공정하다는 생각을 심어주었는지를 아십니까? 부동산에는 이런 사례가 너무너무 많습니다. 그 외에도 현재 좌파적 기조에서 시행되고 있는 정책들이 전부 비슷한 형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반면에 너무나도 급진적 좌파정책으로 간주되었던 기본소득이 요즘 우리사회에 의외로 논의거리고 받아들여지고 전통적으로 이를 반대하던 우파들 역시 이 정책에 찬성/반대가 오가는 것은 이것이 공정한 정책이기 때문입니다. 공정은 시대정신입니다.

    여기까지 읽었는데도 여전히 공정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무기일 뿐이라고 주장하고 싶다면 왜 20대 상류층이 아니라 대다수의 20~30대가 분노했는지를 고민해 보십시오. 인국공 사태에 분노를 표출하는 사람은 시험을 쳐서 자리를 딴 공기업/공무원/대기업 사람들만이 아닙니다.

    • ㅇㅅㄷ 2020.07.06 10:36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원글을 이해하기로는... 미국이나 서구처럼 안정된 사회에서는 이미 불평등이 내재화되어 있고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때문에 "공정 담론"이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고 이해했습니다. 상류층이 자신의 위치를 유지하는데 위협이 없으니까요.

      반면 한국에서는 상류층부터 중류층까지가 교육경쟁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고, 이 과정에서 공정 담론이 드높아져 있는 셈이죠. 이 공정 담론은 상류층과 중류층이 비슷하게 맞붙을 수 있는 토양(?)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상류층이 온갖 수단을 써서 여전히 약간이나마 우세한 건 사실이고요. 아예 이런 교육 경쟁, 노동시장 경쟁에 뛰어들 여력이 없는 하류층에겐 더욱 거대한 벽이 되겠죠.

      본문 중에 "공정은 분절되어 있는 노동시장에서 경쟁에 들어오고 있는 하위계층(내지는 사회적 약자)의 기회를 배제하는 기능을 하는 담론이다." 라는 구절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위 계층이야 하위 계층 일이고, 그래도 무조건 '공정'하게 경쟁하는게 맞다고 하실 수도 있겠지만요.

      @ 주거 지원 정책이나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같은 정책이 '공정'을 훼손하는 정책이라 없어져야 한다면, 이런 하위 계층에 속한 분들은 (극히 힘들어도) 자력갱생으로 벗어나는 수 밖에 없을테고요. 적어도 하위 계층에 대해선 계층적 장벽이 공고해지겠지요.

    • 무슨 2020.07.06 21:19  댓글주소  수정/삭제

      1. 타다는 어떤 기술적 혁신도 이루지 않았습니다.
      2. 인국공이 왜 로또 당첨입니까? 비정규직은 원래 2년이상 근무하면 직접고용의무가 발생하는데요? 정규직 전환을 운이 좋은 로또당첨이라고 부르는 것은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며 부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경력을 무시하는 겁니다. 이게 공정입니까?
      3. 기본소득은 좌파정책 아닙니다. Negative Income Tax 주창한 사람이 누군지 찾아보고 오세요.

    • 담담 2020.07.07 10:45  댓글주소  수정/삭제

      지금 얘기되는 공정은 적어도 경제or학력에 있어 중간층 이상 그룹을 위한 공정이지요. 대다수의 20~30대가 분노한 게 아니라 중상층 이상의 20~30대가 분노한 거고요. 경제-학력 중간층 이하의 20대에게 물어보세요. 인국공이고 뭐고, 별 관심도 공감도 없습니다. 어차피 다른 세계 이야기거든요.

  8. 레치 2020.07.06 12: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 옛날의 대학 교육이 지금의 대학교육과 의미가 같지 않죠. 과거에는 대학 나오면 실질문혜율 계산능력 등에서 차이가 유의미했지만 요사이는 그런 보편적인 능력면에서 드라마틱한 향상이 힘들죠. 이게 특기가 확실한 기계나 컴퓨터 같은 기술직 이과라면 모르겠지만.. 문과 그리고 이과 중에서도 순수학문의 경우 취업시장에서의 매리트가 크지 않다 봅니다. 그러다보니... 공기업은 나름 교육받았지만 기대한 만큼의 직장 얻는게 요원한 나름 앨리트들에게는 성지였고... 그러다보니 결국... 비정규직 정규직화라니 뭔 개소리냐 공정하게 시험쳐서 들어가는개 사회정의다 같은 소리가 나오는 것이겠쥬

  9. 교수 2020.07.07 02: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진짜 식견 짧은 사람이 쓴 게 티가 너무 난다

  10. 2020.07.07 06: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박살난 가족배경을 가진 흙수저가 열심히 해서 명문대 갔더니 졸지에 상위 계층의 기회비축에 동조하는 기득권 적폐가 되어버렸네요.

    글쓴 분께선 높은 학력, 좋은 학벌 집단과 상위계층이 일치한다고 여기시는 것 같네요. 그 집단에 상위 계층이 많이 포진되어 있는 건 맞지만(명문대의 경우 소득분위 기준 상위 20%가 약 40%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절반 정도 되는 나머지 중하위 계층 입장에서 공정 담론은 대학을 통한 불평등 완화에 가깝다고 봅니다.

    글에 쓰셨듯 교육 기회가 평등해지고 모든 계층이 교육 경쟁에 뛰어들었습니다. 때문에 20대의 대부분이 경쟁의 룰로서의 공정을 그만큼 중요하게 여기는 것 아니겠습니까. 웬만한 대학 다니는 사람들 중에서 흙수저부터 금수저까지 모두가 공정 담론을 이야기하고 있잖아요? 노력해서 (좋은) 대학 들어간 중하위층이 있고(혹은 늘어났고), 그들 입장에서는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도 싶어하는거구요.(그 사람들이 느끼는 것에 대한 사실적 기술) 그리고 그 보상은 취업에서 자신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험 등으로 진행되는 거겠죠. 이게 상위 계층의 기회비축인가요. 아니면 대학을 통한 불평등 완화인가요. 얼마만큼이 기회비축이고 얼마만큼이 대학을 통한 불평등 완화인가요.

    적어도 명문대 간 흙수저들에게는 대학 교육을 통한 불평등 완화의 사례가 될 수 있겠네요. 차라리 대학 입시때 흙수저들을 교육적으로 엄청 지원해서 좋은 대학에 훨씬 더 많이 가도록 서포트하는게 랜덤 취업보다는 좋은 기회 평등의 사례가 되겠지요.

    저번 글에서 쓰셨듯 입사시 전형의 다양화가 필요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적어도 이번 인국공 사태에서 분노하는 이유는 바늘구멍 같이 들어가기 어려운 인국공 정규직 채용임에도 그 절차가 열리지 않은채 대통령 방문 시점을 기준으로 정규직 전환이 결정되었다는 것이겠죠. 일하던 사람들에게 가산점 주고 정규직 공채하든가 경력자 우대해서 같이 경쟁하게 했으면 다들 이렇게 화내지는 않았을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고용유연화해서 공기업 정규직 같은 신의 직장이 사라지는게 좁은 문을 열여주는 길이라고 봅니다.

    • 바이커 2020.07.07 10:18  댓글주소  수정/삭제

      일치한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확률적으로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과 개별 사례가 일치한다는 것은 많이 다릅니다.

    • Spatz 2020.07.08 01: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부동산 업자들이 정책 비판할때 항상 개미를 끌고 오고, 상류층 명문대 자제들이 항상 비판할 때 주변에서 얼마 보지도 않은 흙수저 친구들을 데리고 오더라고요.

      걍 까고 말해서 한 다리 건너면 어디 기자고, 대기업이고, 공기업다니는 선배들이 쌔고 쌘 더 나은 인프라와 선후배 인맥을 가지고도 취직 못 하는 것이 본인 능력의 한계라고 생각해보지는 않으셨는지 모르겠네요. "능력주의"로 따져도 못 뽑을 정도로 폐급이란거 아니겠어요. 아! 하나 더 있습니다. 거기 나오는 면접관이나 평가자들도 자기 선배, 남성일 가능성이 농후하죠. 이렇게 기울여 줬는데도 못 하면 반성부터 해야 하는것 아닌지..

    • 애독자 사마귀 2020.07.08 02:34  댓글주소  수정/삭제

      흙//
      흙님이 그 인국공 정규직 취업 준비를 하셨는지 모르겠지만 명문대 간 흙수저께서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서 보안 검색요원 자리 노리고 있던건지 여쭤보고 싶네요. 심지어 정규직 전환 전 비정규직 자리를요?

  11. 20대 2020.07.07 10: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읽었습니다. 상당히 일관된 논리가 인상적입니다. 하지만 그만큼 일관된 악의성, 혹은 단순화도 인상적입니다.

    먼저 밝혀두자면 전 20대이며 글에서 계급 재생산을 원하는, 그러나 그 수단은 막혀가는 명문대 출신입니다. 하지만 STEM 관련 공부를 하며 플랜B로 (본문의 교육의 평준화에 힘입어)대치동을 생각했으면 생각했지 공무원은 생각조차 한적이 없으므로 문제의 인국공 문제와는 쥐꼬리만큼도 이해관계가 없습니다. 2000명이 정규직이 되든 0명이 되든 10000명이 되든 제 인생에는 아무런 영향도 없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을 그저 넘기고 싶진 않습니다. 글에서 계급 재생산화의 수단으로만 말해지는 '공정' 때문에요.

    제게는 가까운 순서대로, 그리고 글 순서와는 거꾸로 가봅시다. 공정담론이 '지균충'이라는 말을 만들어 내는 것이 우연이 아니라고 하였죠. 기득권은 평등해지는 교육 상황에서 점수라는 기준으로 하위 계층을 공격하기 위해서 필요하기 때문에 만들어 졌단 의미로. 그런데 정말로 그렇습니까?

    감히 의심치 않건데, 전 교수님보다 인터넷 하위문화에 익숙하며 또한 비슷한 나이의 명문대생들과 더 많이 교류합니다. 뭐 후자는 저의 빈약한 사회성으로 인해 아닐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학부 4년을 다녔습니다. 그리고 인터넷 1시간이면 학부시절 동안 오프라인에서 경험한 것보다 더 많은 '지균충' 논의를 경험할 수 있지요. 적어도 '지균충'은 학교 내부에서 공공연하게 지배적으로 논의되는 담론이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동의하지도 경험하기도 힘든 담론이며, 존재한다면 음지에서 찌질하게 나오는 담론이지요.

    그럼 이 찌질한 인간들은 누구일까요? 그리고 누구를 공격하는 걸까요? 글의 논리에 의하면 기득권이 계층재생산을 위해 점수라는 방법론을 이용해 하위계층의 기회를 막으려하는 것이겠죠. 하지만 적어도 접한 상황은 정반대입니다. '지균충'을 입에 담는 이들의 학벌은 대부분 명문대가 아닙니다. 심지어 아직 고등학교를 졸업하지도 않은 이들도 많죠. 스스로 밝히는 집안 배경도 대부분은 기득권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들이 공격하는 대상은 바로 계층 재생산을 하는 기득권입니다. 흔히 이런식이죠.

    '서울대 지원 기준이 3등급으로 택도 없는데 최저 3등급해봐야 뭐함 오히려 비리 입학이나 쉬워지지' (실제 인터넷에서 가져왔습니다.)
    사실 이 '지균충'논의는 '수시충'로 이어집니다. 애초에 지균이란 전형이 수시의 일부니까요. 그리고 수시에 대한 반감은 하위층의 '부적절한' 입학에 대한 우려보다 기득권층의 학벌 대물림에 대한 우려가 절대적이죠. 뭐 sky 캐슬에 대한 반응이 어느정도 이를 보여줬다는군요. 전 안봤지만.


    사실 '지균충' '수시충' 논의가 학내 커뮤니티에서 가시화된적이 최근에 있었습니다. 작년 8월~9월즈음에 어느 고위 공직자 딸의 대입 논란의 연장선이었죠. '지균충' '수시충'을 가장 많이 사용하며 증오하는 계층은 기득권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단어들로 공격하려는 대상이며, 사용하는 이는 자신들이 보기에 신뢰할 수 없는 대입제도에서 소외된 하위계층이에요. 수시 비율 논란부터 이런 맥락은 계속되어왔습니다.


    이 글에서는 공정, 점수 담론을 시험에 접근 가능한 계층이 그렇지 않은 계층을 배제하는 방법으로 애기하죠. 역시 이 글에 따르면 교육불평등은 약해지고있으며, 중하위 계층까지 교육(~=시험)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정직원의 인식은 절대 중하위계층이 아닙니다. 그럼 결국 중하위 계층에게는 시험은 게층의 재생산과 고착화가 아니라 상승수단으로 볼 수 밖에 없지 않습니까? 이들은 교육에서 배제된 최하위 계층의 격우는 자신들이 그러했듯 결국 교육에 접근 가능해질 것으로 생각할 수 있고 또 그것을 반대하지도 않을겁니다. 무엇보다도 이들에게는 신뢰할 수 있는, '공정한' 방법입니다.


    이 '공정'이 단편적이고 실질적으로 문제가 많다는건 다른 글에서도 잘 봤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 사람들이 이 단어에 매달리며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완전히 계급적 담론으로 치부하는 것은 지나치다 생각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 '공정'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수단 그 이상이며 과정과 결과에 신뢰란 도덕적 가치를 부여하는 존재잖습니까.

    많은 것들을 설명하는 '일관성'을 위해 무시해선 안될 부분들을 무시하고 단순화 시켰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 '일관성'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무시된 담론들이 다시 한번 그 존재를 드러낼 땐 '일관성'이 여전히 유효할지 모르겠습니다.




    • 바이커 2020.07.07 10:40  댓글주소  수정/삭제

      하위계층이 상위계층보다 상대적으로 수시를 수능정시보다 더 선호합니다. 수능에 더 집착하는 집단은 상위계층이지 하위계층이 아닙니다.

    • 20대 2020.07.07 12:10  댓글주소  수정/삭제

      입시 제도 선호의 통계가 그래서 제 주장의 무엇을 반박하나요? '지균충' 담론은 절대 주류가 아님을 밝혔습니다. 또한 이 담론의 (적어도 표면적인)주요 공격대상, 논리도 파괴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글에서의 일관성이 이번 사태의 한쪽 진여을 하위 계층을 배제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얻으려 하는 집단으로 만든다음 따라서 닥치고 있으라는 것 이외에 어떤 해결책을 제시합니까?

      이해하기 힘들며 비주류인 혐오발언의 존재와 그로 인해 절대 소수가 아닌 계층이 이득을 본다는 사실이 이 둘을 일치시키지도 않으며 이들이 얘기하는 (그리고 적지 않은이가 받아들이는)도덕적 가치를 부정할 수도 없으며 따라서 이 모든 담론을 이해관계와 계급갈등으로 만들지도 않습니다.

    • 바이커 2020.07.07 12:36  댓글주소  수정/삭제

      하위계층이 "수시충"거리면서 더 싫어한다는 관찰은 일부 현상을 근거없이 확대한 것이라는거죠.

    • 20대 2020.07.07 12:52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게 해석될 여지가 있군요. 그럼 '수시충' 담론에 (적어도 표면적으로는)기득권의 계층 재생산, 신뢰성 등을 연결시키는 이들이 존재하며 글에서 얘기되는 방향과 무관하거나 정반대 방향의 논리가 존재하는건 동의하시나요?

    • 바이커 2020.07.07 12: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당연히 존재하겠죠. 그러니까 공정담론이 힘을 발휘할 수 있는거고요. 이데올로기가 원래 "허위의식"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 20대 2020.07.07 13:26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럼 이 글의 '일관성'이 저 '허위의식'의 논리를 파괴합니까? 그리고 그 내재논리와는 별개로 이 허위의식의 영향에서 벗어나게 합니까? 결국 이 일관성은 1/2내지 2/3의 계층이 그 아래 계층을 배제하지 않을 당위성도 이득도 알려주지 않고 대립시키면서 표면적인 도덕적 가치에 설득된 이들도 설득하지 못하는거 아닙니까? 그리고 이것이 의존하는 거시적 도식화와 경향성 파악의 방식으로는 여러 역겨운 주장들이 일관성이란 기준하에서 성립하는거 아닙니까?

      이 글은 사태를 보는 다른 방식을 보여주고, 현 상황의 일면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글에서 여러 담론들의 일관된 도식화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당혹스럽기만 하네요.

    • 바이커 2020.07.07 13: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무슨 주장을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는데, 모든 분석, 이론, 기술은 추상이고 현실 그 자체가 아닙니다. 단순한 기술로 많은 것을 일관성있게 설명해내는 이론이 가장 좋은 추상입니다.

      구체적 현실에서 어떤 변주가 일어나는지 파악하고 그 복잡성을 추가하는 것은 또 다른 작업이고요.

    • 윤씨 2020.07.07 22:01  댓글주소  수정/삭제

      정시/수시 논의는(지균 포함)은 명문대학교 커뮤니티에서도 10년 전 부터 꾸준히 언급되는 주제였습니다....

    • Spatz 2020.07.08 01:27  댓글주소  수정/삭제

      재미있네요. 스누라이프, 에타를 비롯한 커뮤니티들에서 수시충 등을 비롯한 혐오발언이 얼마나 많았는데 그걸 덮으려고 하시다니.... 계급적 요소 분명히 있습니다. 오히려 님이 하위문화에 익숙하지 않은거 아닌가요? 심지어 공감도 많이 받더군요. 왠지 아세요? 그 사람들이 자기가 갈 (행시) 재경직같은 고위층 자리를 뺏는다고 생각하거든요.

  12. 그런데 2020.07.07 11: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헌데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수시가 어떤 형태를 말씀하시는지요?

    1. 학교내 축적된 내신성적 + 교내 수상 성적 위주의 수시

    2. 해외 여행 다녀와서 책 쓴 경험, 밴드 만들어본 경험, 교수와 협업해서 논문 하나 써본 경험, 기타 경시대회 수상 등. 흔히 미국 명문 대학입시에서 좋아하는 '다양성'.


    1번은 초기 수시와 요즘 다시 강조되는 수시 방식인데, 이 방식은 확실히 계층 이동에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이건 세밀하게 보면 대체로 정량평가의 축적이지. 정성평가는 아니겠지요.

    다양성으로 포장되는 수시는 2번인데, 이거는 돈 없이는 어렵습니다. 2번이 이명박 정부 부터 나와서 박근혜 정부 중기부터 사회적 비판이 나오더니 최근에 줄어드는 방이고, 작년에 그렇게 시끄러웠던 그 양반 자식이 바로 이 방식으로 대학에 갔지요.

    2번 방식은 진보진영이 좋아하는 '줄세우기 없고, 창의적이고, 무언가 진취적인' 느낌은 있는데 돈 없으면 어렵지요. 돈 없는 애들이 특이한 경력 쌓기가 될리가 없고, 굳이 그런 집안 애들하고 놀아주면서 논문 써줄 교수들도 없겠지요. (이건 교수님이 더 잘 인정하실테고)

    그래서 저는 수시 정시 논쟁 때마다 이게 궁금하더군요. 수시와 학력고사가 전혀 다른 형태의 시험이듯 수시도 전혀 방식이 다른게 있는데 어떤 식으로 하자는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물론 최근 들어서는 진보쪽에서도 교과전형 위주 수시를 받아들이는 쪽이긴 하지만, 여전히 철없이 (명확하게 철없다고 봅니다) 바칼로레아 같은거 떠드는 사람들도 남아있지요.

    • 바이커 2020.07.07 12:38  댓글주소  수정/삭제

      2의 숫자는 매우 작습니다. 그리고 학종은 워낙 다양해서 어떤 유형은 상위계층이 어떤 유형은 하위계층이 유리합니다.

      이 문제는 몇 달 내에 자세하게 얘기하겠습니다.

  13. 글Tp 2020.07.07 11: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동의할 수는 있으나 차차리 위의 20대 학생분의 글이 틀릴 수 있겠지만 더 직관적이긴 하네요. 체감이 틀렸고 완벽한 공정은 없고 결과평등을 추구하고 + 기회평등인데 현제도가 최선은 아니겠지만 역시 늙어서그런가(교수님보다는 제가 조금 더 젊지만;;) 더 나은 것도 없는데 왜그래... 같은 생각도 드네요ㅋㅋ 그러면 뭐가 더 좋은데? 구관이 명관아닌가 같은 게으른 뇌가 반응하는군요.

    물론 교수님의 주장처럼 그런 계급화 계층화 제도적 차별 공정으로 포장된 줄세우기 등등 말씀하시는 게 맞을 수는 있는데... 실제로도 그렇게 느끼는 것도 많구요.

    본문의 글은 큰 학계의 논의를 다 담기에는 일부러 단순하게 만든 것이 아닌지...
    솔직히 지금의 시험이 최선이 아니다한들 결과적으로 누구말데로 퍼주는 거 외에는 방법 없지 않습니까. 그러면 페어하게 같은 시험으로 배경을 다 다르지만 그냥 다이다이 뜨자는 게 제일 공평하겠죠.

    말씀 좋습니다만 솔직히 이런 식으로 논의가 가니 일반인에게 개소리니 탁상공론이니 소리가 나오는 게 아닌가합니다... 뭐 저도 학계에서 남들은 신경도 안쓰는 논문쓰면서 일하지만 여태까지의 포스팅을 거진 다 봤기에 주장하시는 바의 넓은 뜻은 제가 넌지시 이해를 하지만... 뭔가 도식화되는 거 같군요.

    뭐...이런 글은 제 낮은 이해로 생긴 감상평정도겠지요.
    뭐가되었든 더 공정하고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데에 힘써주세요. 감사합니다.

  14. 단추 2020.07.07 20: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한국의 현재 상황은 위에서 언급한 일반적 역사적 경험과 다르다. 경제가 안정된 상황에서, 구조적 사회이동은 줄지만, 순수사회이동이 늘어나고 있다. Constant fluidity 테제에서 규명한 특징이 한국 사회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는 박현준 교수의 RSSM 논문도 있다. 상위 50% 내부의 불평등이 커지지 않고, 하위계층이 대거 대학에 진학하는 등 기회평등이 개선되었다."

    라고 하셨는데, 한국 사회의 기회평등이 다른 나라와 달리 개선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결국 철저한 능력주의 정책, 시험으로 줄세우기 정책이 효과를 발휘한 건 아닌지요?

    첨언하자면 저 역시 한국 능력주의의 폐해가 심각하다고 느끼고 있고, 더 나은 대안이 없을까 생각해보곤 합니다. 하지만 줄세우기 정책이 기회평등의 개선에는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네요.

    • 바이커 2020.07.07 21:09  댓글주소  수정/삭제

      정확히는 모릅니다.

      다만 타국의 사례와 교육 사회학 이론, 지금까지 나온 한국 연구 결과를 봤을 때, 가장 큰 원인은 교육팽창이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교육이 팽창되면 줄세우기 효과가 떨어집니다. 그래서 상위계층에서는 질적으로 뭔가 다른 걸 할려고 노력합니다.

    • 단추 2020.07.07 21:57  댓글주소  수정/삭제

      "교육이 팽창되면 줄세우기 효과가 떨어집니다. 그래서 상위계층에서는 질적으로 뭔가 다른 걸 할려고 노력합니다."

      조금 이해가 안됩니다. 제가 이해하기로 "교육팽창"은 "대학진학률 상승"인 것 같은데, 한국에서 줄세우기 효과 (=학벌) 는 여전히 강하지 않은가요? 한국에서 학벌과 미래소득간의 상관관계는 여전히 뚜렷할 것 같은데요.

      순수사회이동이 늘어난다는것은 downward mobility가 증가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에게는 downward mobility의 가장 큰 예가 "자식이 부모보다 안 좋은 대학을 간다", 즉 학벌하락으로 보입니다.

      계속 데이터없이 제 impression만 얘기해서 죄송하지만, 한국의 "학벌하락" 비율이 미국과 유럽보다 높지 않을까요? 미국은 악명높은 레거시 시스템이, 영국은 사립 중고등학교가 학벌하락을 막아줄 것 같습니다 (다른 유럽은 잘 모르겠군요). 한국에서 상위 0.1%, 혹은 상위 1% 가정이 계급재생산을 하려면, 자식이 최소한 sky 혹은 의대를 가야할 겁니다. 그런데 한국의 "능력주의 줄세우기" 때문에 자식학벌하락을 막기가 어려운 것 아닌가, 이런 생각입니다.

    • 바이커 2020.07.07 22: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레거시 입학에 비해서 한국 시스템이 분명 그런 효과가 있죠. 그래서 조기유학, 미국대학 입학 같은 조치를 취하는거죠.

      학벌 문제는 이 글에서 얘기했습니다: https://sovidence.tistory.com/1072

      그리고 공정담론이 얼토당토않다고 얘기하는게 아닙니다. 어떤 이데올로기로 전개되었는지를 얘기하는거죠.

      능력주의는 세습을 타파하는 진보적 아젠다로 출발하지만, 실질적 기회평등에서 벗어나면서 디스토피아적 비젼으로 변화합니다. 마이클 영이 주장한 능력주의의 비극도 같은 것입니다 (https://sovidence.tistory.com/1076).

    • 단추 2020.07.07 22: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링크의 글을 읽어봤는데, 학벌과 계급-미래소득의 상관관계가 하락하고 있다는 요지군요. 하지만 이 역시 위의 제 가설을 전면적으로 반박하지는 못합니다.

      이에 제 가설을 조금 수정하자면 이렇게 되겠네요: 한국의 (예전부터 능력주의였던) 대학입시- (최근에 능력주의로 더 변화하고 있는) 졸업 후 취업 시스템이 downward mobility를 증가시킨다.

      위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저 역시 교수님이 능력주의를 바라보는 시각에 동의합니다. 다만 한국사회에서 능력주의 정책이 지난 수십년간 기회평등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을 거라는 것이 저의 생각이고, 이것을 확인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작업은 "공정성"담론이 계층을 막론하고 광범위한 지지를 받는 이유를 더 잘 알아보기 위해서도 필요할 것입니다. 능력주의가 아직까지는 한국에서 "세습을 타파하는 진보적 아젠다"로 인식되고 있는데, 이 이유는 실제로 능력주의의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 바이커 2020.07.07 23: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두 가지 차원이 섞여 있습니다.

      하나는 대부분의 사회에서 산업사회화 되면서 나타나는 능력주의에 기반한 신분타파와, 다른 하나는 최근에 나타난 한국 사회의 특수성입니다.

      한국은 압축 성장이 특징이기 때문에 이 둘을 시기적으로 명확히 구분하기 어려운 점이 있죠. 그래서 능력주의에 기반한 공정담론이 더 큰 힘을 발휘하는 면이 있습니다.

    • 단추 2020.07.07 23:27  댓글주소  수정/삭제

      "최근에 나타난 한국 사회의 특수성"이 위 글에서 언급한 내용이라면, 저는 말씀하신 "두 가지 차원"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 가설을 부정하지 않으셨으니 이를 맞다고 가정하면) "최근에 나타난 한국 사회의 특수성"은 오히려 능력주의를 다른 나라보다 더 극한으로 밀어붙인 결과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결국 미국이나 유럽에서 능력주의가 실질적 기회평등을 저해하게 되는 이유는, 능력주의 정책 자체가 변질되고 있는 것이 큽니다. 레거시 입학, 사립학교 등의 편법을 계속 만들어내서, 줄세우기 시스템 자체를 혼란에 빠트리죠.

      한국에서도 마찬가지 시도들은 항상 있어왔지요. 외고, 국제학교, 기부금입학 논의 등등. 하지만 한국에서는 상류층을 감시하는 시민사회의 힘이 굉장히 커서, 줄세우기의 질서 자체가 흔들리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한국에서는 이러한 시민사회의 모멘텀이 "더 강력한 능력주의" 정책으로 나타난 듯 합니다. 이제는 특권층이라고 해서 자녀를 군대면제도 쉽게 못 시키고, 빽으로 좋은 회사 들어가기도 힘들어졌고. 말씀하신대로 좋은 학교 나왔다고 해서 성공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다만 문제는, "능력주의"는 더 강해졌지만 반대로 "결과의 평등"은 강해지지 못했다는 점이겠죠. 철저한 능력주의 관문을 통과하면 상은 거하게 주는 시스템은 여전합니다. 한국 시민사회의 동력을 결과평등 아젠다로 이어지게 해야 할 텐데요.

    • 바이커 2020.07.07 23:42  댓글주소  수정/삭제

      여러 글에서 얘기했지만, 한국은 동질성이 남다릅니다. 한국사회의 특수성은 이 동질성을 빼놓고 얘기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 동질성을 능력주의의 결과로 치부할 수 있는지는 의심스럽습니다.

      말씀하신 여러 현상에 대해 그런 측면이 있다고 동의하지만, 능력주의로 한국의 특수성을 회귀시키면 왜 능력주의가 실질적 기회균등 보장으로 진행되지 않고 지금처럼 정규직화에 반대하는 것과 같은 계급담론으로 변질되는지 설명하지 못합니다. 논리의 완성을 위해서는 이 변화를 설명하는 고리가 있어야 합니다.

    • 그런데 2020.07.08 00: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동질성이 남다른 나라에서 대체적으로 횟수나 기간의 차이가 있을 뿐 정량적이지 않은 방식의 지위 나누기가 가능할까요.

      한국의 경우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나 수시의 정착도 정량 요소를 강조해서 능력주의의 하나로 흡수시키는게 훨씬 더 효과적이고 효율적이라는 점이죠.

      사회적으로 얘네들에게도 지위를 나눠주지 않으면 피곤하겠다 싶을 정도의 완연히 구분되는 인종적, 종교적, 문화적 다양성 자체가 없잖습니까.

  15. 종종 2020.07.07 23: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렵네요. 글 내용도, 그래서 어떡하는 게 공정한 것인지도요.

  16. 그런데 2020.07.07 23: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시를 두고 제가 대분류를 나눈 이유는 수시가 단순히 정성평가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정성평가 방식이냐 정량평가 방식이냐고 말을 하려면 대략 비율을 기준으로 해야 할텐데, 그 점에서 보면 1번 방식의 수시도 횟수의 차이만 있을 뿐 3년간 줄세우는 것이죠. 비율상 정량평가가 더 많지요.

    실제로 강남출신 명문대학생들이 십수년 전부터 수시를 비난할 때 쓴 논리는 비강남권 고교의 내신 성적 획득이 쉽다는 것이지. 무슨 출신별, 소득별 감안해서 대충 정성평가해서 안된다는 말이 아니었지요.

    말씀하신 다양성이 인종적, 문화적, 종교적 다양성이 아니라 계층적 다양성이라고 치면 심지어 그러한 다양성조차 한국서는 주로 정량적인 방식으로 획득했다는 겁니다.

  17. 그런데 2020.07.08 00: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천국제공항 사태는 현직자가 정규직화가 된 이후에는 여전히 딜레마가 남습니다.

    향후 신규직은 어떻게 뽑을지 말입니다.

    만약 처음부터 정규직으로 뽑는다면, 아마 이번에 정규직으로 전환된 보안직군조차 정량평가식으로 행정직, 경영직군과 똑같은 방식을 도입하자고 할 겁니다. 그래야 장기적으로 자신들 위상도 올라갈테니 말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모든 직군에서 2년간 비정규직 이후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시스템일텐데 그 경우에도 하위직군인 이상 이 사람들의 정규직 전환은 2년간의 업무에 대한 대략적인 정량평가 (무단 결근 안했냐, 사고 안 쳤냐)와 형식적이긴 해도 대략적인 실력검증과 면접 같은 방식이겠지요. 하지만 이 경우 2년 이후 나가 떨어지는 사람들 문제가 나올테고, 사실 이거 때문에 1번으로 회귀하곤 했던거지요.

    어느 쪽이건 정량평가의 비율이 더 높을 겁니다.

    결국 한국사회의 논쟁은 단1회의 시험과 면접으로 되는 정량평가냐, 다회의 시험(혹은 실행)과 면접으로 되는 정량평가냐의 차이지 이게 미국식 방식이 될 것 같지는 않다는 겁니다. 애초에 해고와 고용이 쉽게 빨리 회전되는 나라도 아니고요.

    사회가 이런 변화나 방식을 정량평가 중 하나로 받아들이게 시스템 정비하는게 더 빠르지, 이걸 굳이 정성평가 중 하나라고 강조하고 정량평가 말고 다른 방식이 더 옳다고 해봐야 오히려 제도 정착만 힘들어지고 설득력도 별로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18. 그런데 2020.07.08 00: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실제로 최근 들어서는 오히려 전교조가 수시의 단순화와 비교과영역 축소, 학종 축소에 긍정적이고 교총이 수시 단순화 반대, 비교과 영역 축소 반대, 학종 촉소 반대를 주장하고 있지요.

    이미 입시 영역에서는 이미 진보진영에서도 여전한 소수 (주로 현장경험없는 교수님들이나 시민단체)를 제외하면 대체로 줄을 세우되 반복해서 오랫동안 세우는 방식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바뀌었지요. 더 이상 내신 가지고 교실의 아이들을 줄세우고 어쩌고 저쩌고 감성팔이하는 얘기 안 나옵니다.

  19. orfeu 2020.07.08 07: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국공 정규직 전환에 대한 백래시는 일견 '공정'을 강력하게 희구하는 중·하위층의 절규로 읽히지만, 저는 그 전에 그 비정규직들의 태생적, 후천적 '무능력'과 '기회주의적 속성' 을 공정이라는 이름으로 마음껏 조롱하는 사회의 비정함을 먼저 읽을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나는 인서울 대학을 나와 하루 12시간 공부하는데, 저들은 지잡대를 나와 운좋게 떼법으로 인국공 정규직이 된다' 라고 분노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치면 유전자(=지능), 재산, 성별 등 무엇 하나 공정의 잣대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성장위축 → 기회평등의 개선으로 경쟁 격화 → 공정을 매개로 한 상위층의 기회 비축

    근래에 읽은 글 중 이보다 한국의 기이한 사회현상을 명쾌하게 설명한 단락을 본적이 없습니다. 다만 여전히 남는 의문은, 왜 상위층의 '유사 공정 (혹은 비공정)' 을 활용한 기회비축에 중·하위층의 상당수가 열광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위의 20대라는 분의 경우, 최초 문제의식의 결은 다르지만 어쨌든 저와 비슷한 의문을 품은 것 같네요.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상위층' 이라는 실체가 의식적으로 중·하위층을 배제하려는 집단적 움직임을 펼쳐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 코호트로 분류되는 사람들의 행태가 유사했던 것일 뿐이며, 그 개개인의 hoarding 집합의 결과가 자연스럽게 중·하위층 배제라는 현상으로 나타났을 뿐이라는 겁니다. 마치 자연선택과 유사하게 말이지요(여기에는 어떠한 윤리적 판단도 담지 않습니다).

    • 2020.07.08 08:19  댓글주소  수정/삭제

      '후천적 '무능력'과 '기회주의적 속성' 을 공정이라는 이름으로 마음껏 조롱하는 사회의 비정함을 먼저 읽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거 동감합니다. 대학 커뮤니티 가보면 저학력자들 무시하고 비난하는 극언을 막 쏟아냅니다.

    • 바이커 2020.07.08 09:25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건 사회과학 이론의 근본적인 방법론적 질문인데요, 집단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모두 개인으로 돌리면 집단이 사라져 버립니다. "개인"만 있을 뿐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산물이라는 분들도 있습니다.

      위글에서 언급한 틸리가 나름의 불평등론을 발전시키면서 처음 제기하는 문제의식이 바로 기존 불평등 이론이 개인속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집단을 의식을 가진 행위자로 규정하는 건 아닙니다. 개인 차원으로 돌릴 수 없는 집단(내지는 사회적) 경향을 이론화할려는 거죠.

  20. 단추 2020.07.08 22: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또 댓글을 달게 되네요. 저는 이번 인천공항공사 정규직화 이슈가 "공정을 매개로 한 상위층의 기회 비축"이라는 해석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탁월한 견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한국에서 나타나는 "기이한 사회현상"이라는 것에 좀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이번 인국공 이슈는 조너던 하이트의 도덕기반이론에서 "공정성"기반이 강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반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아무리 다른 조건이 똑같다고 해도) 한국에서 '정규직화'는 곧 '신분상승'을 의미하니까요.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지배계층이 이번 이슈에 대해 나름대로 광범위한 지지를 얻어낼 수 있는 것입니다.

    어느 나라에서나 지배계층은 계급재생산을 가장 큰 목표로 합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끈질긴 시도에도 불구하고 계급고착화 기획이 쉽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위에서도 얘기했지만 저는 이 현상이 "강한 시민사회"가 이끄는 "더 강력한 능력주의 정책"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돌이켜 보면, 한국의 많은 사회적 갈등은 '공정성'과 '더 빡센 능력주의'를 강조하는 것으로 해결되었습니다.

    하지만 지배계층은 어떻게든 자신들의 계급재생산 정책을 실현시켜야 하는데, 이번 이슈에서는 그 매개가 '공정'이 된 셈입니다.

    그런데 '공정성'을 매개로 결과평등확대에 반기를 드는 예는 다른 곳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기본소득을 반대하는 보수주의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하나같이 "게으른 사람들에게 꽁돈을 주는 꼴은 못 본다"식의 얘기를 펼치거든요. 미국의 food stamp에 반대하는 몇몇 사람들의 논리도 비슷합니다. 인국공 이슈도 넓게 보면 같은 맥락이 아닐까 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더 보탠다면, 결과평등을 진보의 아젠다로 정착시키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결과평등이 결국에는 진정한 의미의 공정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인식시켜야 하는데, 이는 최소한 한 세대가 걸리는 일이니까요. 수십년에 걸친 외부효과를 일반 개인이 인식하기는 굉장히 힘듭니다. 따라서 "약자를 돌봐야 하지 않느냐"는 당위성에 호소해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보수층은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따라서 진보/보수의 이념적 이슈가 되어버립니다.



    • orfeu 2020.07.09 00:07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번 인국공 이슈는 조너던 하이트의 도덕기반이론에서 "공정성"기반이 강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반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 동의합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면 시험을 잘 본다'의 대우인 '시험을 잘 못 본 이유는 공부를 열심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 너무나도 강력한 직관성을 가지고 잇으므로, 여기에 환경 및 유전적 요인을 들어 이를 반증하려 하는 어떠한 시도도 가난 속에 꽃을 피워 서울대에 입학한 누군가의 일화에 가로막혀 버리죠.

      그저 시간이 더 필요한 것 뿐인지? 결과적 평등을 확대하기 위한 해결책은 잘 모르겠습니다.

  21. 롤스 2020.07.17 08: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의치한약수 행정부고위직도 다 같이 새로운 선발 기준을 만들면되겠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