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죽음이라고 안타깝지 않은 죽음은 없다.
박원순의 욕망도 이해가 가고, 그의 약한 모습도 이해가 가고, 그가 자살을 결정하는 것도 다 이해가 간다. 지금까지 쌓아올린 명예가 한꺼번에 무너지고 자기 모순을 자기 스스로 견디기 어려웠겠지. 이미 돌아가신 분의 과오를 지나치게 후벼파는 것이 예의가 아니다. 친분이 있는 분들이 슬퍼하고 애통해할 시간을 가질 수 있게, 지나치게 선정적인 보도나 언급을 자제하는 것도 필요하다.
박원순 시장이 없었다면 박근혜 정권을 무너뜨린 평화적 시위도 없었을 것이다. 변호사로써의 그의 활동도 칭송받아 마땅하다. 최장수 서울시장을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니다. 행정가로써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고 박원순 전시장은 권력의 탄압이나 언론의 모욕을 받은 정치인이 아니다. 본인의 저지른 잘못을 마주할 용기가 없어서 스스로의 목숨을 끊은 것. 그의 유서에는 모든 사람에게 사과를 했지만, 그를 자살로 이끈 행위나 피해자에 대해서 어떠한 언급도 없었다. 박 전시장의 행위는 분명한 피해자가 있고, 그 정도가 도덕적 형사적 책임을 피해갈 수 없는 정도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고 박원순 전시장이 공이 많은 분이나, 그가 죽음에 이른 길은 그의 과 때문이고,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남아있는 과제는 그의 공을 기리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많은 공에도 불구하고 그를 그렇게 이끈 문제를 직면하고 그렇지 않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한 사회가 얼마나 성숙했는가의 척도는 개인의 일탈 행동이 아니라 그 일탈이 발생한 후 어떻게 수습하는가이다. 성범죄, 성추행, 성적 일탈은 완전히 막을 수 없다. 인간 본능의 발현이고, 뭔가를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서 더 크게 나타나기도 한다. 이성의 영역은 그런 일이 벌어졌을 때 공적영역에서의 대처 방식이다.
서울특별시장(葬)이라니, 공소권이 없다고 추잡한 범죄가 없어지나? 여당의원들이 줄줄이 나서서 그의 공을 기리고 추모할 때인가. 박원순 전시장의 장례는 가족, 친지, 그의 지인들이 조용하고 엄숙하게 치르도록 하고, 공적 영역에서는 왜 이런 일이 계속해서 벌어지는지, 왜 일회성 실수가 아니라 반복되었는지, 왜 중간에 멈추게 하는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았는지, 어떻게 하면 발생 빈도를 줄이고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지를 논의해야 하는 것 아닌가?
안희정 전지사의 모친상 때의 정치권의 반응이나, 박원순 전시장의 자살에 대한 추모 방식이나,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대처의 원칙조차 세우지 못하고 있다. 진짜 갈 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