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뉴스: 황교안 대표 외국인 임금 차별 발언

 

여러 곳에서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한다고 비판받고 있음. 도덕적으로도 틀렸고, 한국 법에도 어긋나고. 하지만 이런 식의 외국인 혐오와 인종문제는 한국에서 앞으로 계속 일어날 것. 

 

아래 그래프는 World Value Survey 2010-14 6차 조사의 원자료를 이용해서 외국인 노동자나 이민자가 이웃으로 살면 싫다는 응답의 국가별 비율을 간단히 계산한 것. 전체 서베이 평균이 25%인데 한국은 44%로 상당한 상위권. 

 

한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외국인 노동자 싫어하는 국가들은 리비야, 말레이지아, 카타르, 레바논 등 아랍권이 주. 태국, 인도 등 아시아권 국가도 상위권. 

 

하지만 독일 (22%), 미국 (13%), 호주 (11%), 스웨덴 (4%) 등 모든 선진국이 한국보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해서 개방적임. 중국(12%)도 한국보다는 훨씬 나음. 일본(36%)이 우리와 자주 비교하는 국가 중 외국인 노동자 혐오가 심한 국가. 

 

지금은 황교안 대표의 발언이 많은 비판을 받지만, 한국의 여론은 황교안 대표의 발언이 상당한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여지가 잠재되어 있음. 이자스민 전의원에 대해 가해졌던 공격을 떠올리면... 

 

그래서 앞으로 사회학 분야에서 한국에서 수요가 증가할 것이 확실한 분야 중 하나가 다양성(diversity)에 대한 연구. IOM 이민정책연구원에서 활발히 연구하고 있지만, 대학과 시민사회에서도 이 분야의 전문가가 더 많이 필요할 것. 최근에 유학온 한국 분들에게 한국에 돌아갈 생각이면 가족, 여성, 다양성 이 세 분야를 전공으로 고려해 보라고 조언. 

 

학교에서 다양성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지 교양으로써도 가르칠 필요가 있고, 계속 증가할 것이 거의 확실한 이민노동자를 사회에서 어떻게 수용하고 동화, 같이 변화해나갈지 연구해야.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경력단절 이전 여성은 차별받지 않는가" 논문 원본.

한겨레 기사


아래 포스팅에서 어지간하면 답변도 할려고 했으나 너무 코멘트가 많아서 하나하나 읽는건 포기. 


실제로 이 논문이 현실 세계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두고봐야 알겠지만, 인터넷에서의 반응을 봐서는 논문을 작성하면서 원했던 바는 완벽하게 달성했다고 생각됨. 


논문의 요지는 

1) 20대 여성과 남성의 고용과 소득이 같다는 기존의 생각은 오류. 20대에서도 여성의 소득이 남성보다 낮음.

2) 그 원인은 여성이 남성보다 낮은 소득을 올리는 지위로 할당되기 때문. 동일노동 동일임금 문제가 아님. 


여러 논란이 있지만, 일단 이 두 가지 중요 주장은 논문을 대충이라도 읽은 분들에게는 받아들여지는 듯. 


논의의 쟁점은 이게 과연 차별이냐, 시간당 소득으로 봐도 과연 이 만큼의 차이가 있느냐로 이동하는 듯. 여전히 차별이 아니라는 분들의 주장은 


1) 남성이 일하는 시간이 길기 때문에 시간당 소득으로 보면 차이가 없을 것이다; 

2) 여성이 레져 선호 등 뭔가 다른 이유로 낮은 소득을 원한다 (여성 선호); 

3) 여성은 일을 제대로 안하기 때문에, 내지는 혼인 출산으로 일을 제대로 안할 것이기 때문에 기업에서 안뽑는게 당연하다 


이 모든 주장이 20대에서 여성이 남성과 똑같이 벌고, 문제는 경력단절이라는 주장에서 크게 후퇴한 것임. 성별 소득격차와 관련된 논의의 지형이 완전히 바뀐 것. 


처음 논문을 작성할 때 이런거 써봐야 소용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에 비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음. 






그럼 여전히 여성차별이 없다는 위 세 가지 주장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우선 첫번재 주장 부터. 


일부에서는 전체 여성노동자와 남성노동자의 노동시간 격차를 가져와서 성별 격차가 상당한 것처럼 주장하던데, 전체 노동자 중 여성의 노동시간이 남성과 크게 차이 나는 이유는 바로 경력단절과 가족 돌봄 노동 때문. 이 논문의 대상은 대학졸업 후 2년 이내 경력단절 이전의 남녀임. 생물학적 성별 격차 외에 다른 격차가 별로 없음. 


본 연구의 대상인 남성의 평균 주간 노동시간은 42.5 시간, 여성은 41.0 시간. 노동 시간 격차는 1.5시간 밖에 안됨. 일부에서 뇌피셜로 그리는 것과 달리 노동시간에 거의 차이가 없음. 본 연구의 대상이 성별 격차 외에는 매우 동질적인 집단임을 다시 한 번 상기할 것. 


1.5시간도 차이라면 차이. 그런데 이 시간 격차가 본인의 자발적 선호인지, 아니면 노동시장 할당의 차별로 인하여 파생된 결과인지는 구분할 수 없음. 시간제 비정규직 노동자의 근로시간이 전일제 정규직 노동자보다 짧은데, 비정규직이 대부분 정규직 되고 싶어하지, 그 반대는 아님. 


본 연구는 이 전체 효과를 측정하기 위해서 월급여로 본 것임. 참고로 시간당 급여로 바꿔서 계산해도 결과는 큰 차이 없음. 성별 격차가 2%포인트 줄어드는게 다임. 결론에 아무런 영향을 안끼침. 





다음으로 여성이 돈많은 일자리를 원치 않는다는건데, 말도 안되는 주장이라고 생각하지만, 뭐 그럴 수도 있다고 치고, 실제로 그런지 보자는게 한겨레신문 인터뷰에서 했던 주장임. 정부에 남품, 협업하는 기업은 성별 지원자수와 합격자 현황을 공개토록 하자는 것. 


제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분들도 여성이 돈많이 주는 일자리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제 제안에 흔쾌히 동의할 것으로 생각됨.  


지원자 대비 합격자의 비율만 봐도 대략 여성의 선호 뿐만 아니라 기업의 차별도 파악이 가능함. 차별이 없으면 그 증거가 될 것이고, 차별이 있다면 현황 공개가 사회적 압력의 객관적 자료가 될 것임.  





세번째 주장은 여성의 경력단절이 예상되기에 기업에서 미리 여성을 차별해서 안뽑는게 합리적이라는건데, 여성의 경력단절은 그 자체로 고쳐나가야 할 사안임. 이건 사회적으로 합의가 되어 있는 것임. 경력단절을 예단해 미리 차별할 것이 아니라 경력단절이 생기지 않도록 제도와 문화를 바꿔나가야 함. 





그런데 여성의 경력단절은 한국만의 특이한 현상은 아님. 미국도 혼인 출산으로 인한 여성의 경력단절이 있음. 특히 출산 효과가 큼. 미국 여성의 소득도 남성보다 낮음. 


그렇다고 대졸 초기에 한국과 같은 커다란 성별 격차가 있는 것은 아님. 아래 표는 여성차별 논문 원포스팅의 댓글에서 제가 4년전에 발표했던 내용을 기억하는 분이 언급했던 내용임. 미국의 2003, 2010 대졸자 조사(National Survey of College Graduates)에서 최근 3년 이내 졸업자만을 추려서 성별 격차를 분석한 것. 논문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음. 


학교 전공 등 아무 것도 통제안한 모델임. 제 논문에서 모델0과 거의 같은 것. 대상은 역시 20대로 제한. 논문을 읽으신 분들에게 상기시키자면, 이 모델에서 한국의 여성은 남성보다 소득이 20% 적은 것으로 나옴. 


아래에서 보다시피 미국에서 대졸 직후 성별 소득격차는 통계적으로 0임. 연령 통제 이전에는 여성이 남성보다 0.2% 적게 받고, 통제 이후에는 여성의 소득이 남성보다 1.4% 높음. 다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은 격차이기에 결론은 남녀 소득격차가 없다는 것. 한국의 20% 격차와 대비되어도 너무 대비됨.  


이것으로 한국의 20대에서 관찰되는 성별 소득격차는 성별의 생물학적 선호 격차로 설명될 수 있는게 아니라는 것을 유추할 수 있음. 한국의 특수성의 반영임. 



길게 말했지만 아무리 얘기해도 당장 자신의 의견을 바꿀 사람은 얼마되지 않을 것. 하지만 제 논문으로 인하여 적어도 인터넷에서 논의의 지형은 바뀌기 시작했으며, 앞으로 계속 바뀌기를 기대함. 





마지막으로 사회현상을 나름 이해하는 사람으로써 젊은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여성의 교육수준이 계속해서 높아지고, 노동환경이 육체노동에서 사무직 노동으로 더 급속히 변화하기에 rise of women으로 칭해지는 여성의 부상은 계속될 것임.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라 세계적 보편적 현상. 피할 수 없는 구조적 현상임. 


그리고 경제적 불평등이 커지면서 금수저 이외에는 커플이 같이 일해서 가족을 형성하고 규모의 경제를 이루지 않으면 중산층의 삶을 유지하기 어려움. 이 역시 피할 수 없는 구조적 현상.  


한국에서 여성의 경제활동은 필연적으로 높아질 것이기에, 가능하면 똑똑하고 경제적 능력이 있는 여성과 혼인해서 중산층 가족을 형성하는 것이 남성의 물질적 행복을 이루는 길. 그런데 똑똑하고 경제적 능력이 있는 여성이 미쳤다고 반페미 남성과 혼인하겠음? 


중상층부터 페미니즘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자신의 경제적 처지를 개선시킬 것이고, 이 역사적 흐름에 당랑거철로 맞서던 중하층 남성들은 더 큰 불이익을 당할 것. 


역사적 수레바퀴에 깔려죽은 사마귀가 되지 않도록 행동하는 것이 합리적 선택임.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미국 기준으로 오늘이 여성의 날이니 올리는 포스팅.  


아래 그래프에서 보듯 한국에서 여성 국회의원의 비율이 5%를 넘어서기 시작한 것은 21세기 들어와서 임. 그 전에는 3%를 넘은 적이 없음. 


1996년 선거에서 3%였는데, 2016년 선거에서 17%가 되었으니 20년 사이에 거의 6배 증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세계 기준으로 상당히 낮은 편. 


참고로 북한은 여성 대표자 비율이 16.3%로 한국과 차이 없음 (소스는 요기). 


이란의 여성 대표자 수가 6% 정도되니 불과 20년 전의 한국의 여성 정치 대표성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 


전세계적으로 여성에게 한국만큼 남성과 동일한 자기발전 기회(즉, 교육 기회)를 제공하면서 한국 만큼 적게 노동시장과 리더쉽 기회를 제공하는 국가는 없음. 이는 구조적 모순임. 


그 과정에 다소의 부작용이나 불만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거세게 터져나오는 여성의 목소리는 구조적 모순의 해결 과정임. 도저히 바꿀 수 없는 대세임. 


이 대세에 빨리 순응해서 살길을 모색하는 것이 개인으로써는 합리적 선택임을 기억할 것.  




* 한국의 여성 국회의원 비율 변화 (소스는 요기)




* 전세계 여성 정치 대표자의 비율 변화 (소스는 요기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이 블로그에서 여러 번 얘기했지만, 사회과학에서 가장 허접한 이론이 음모론이라고 생각함. 


복잡한 사회현실을 파악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의 부족, 밝혀진 사실의 한계로 인하여 인과관계를 특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지속적으로 탐구해가는 인내력의 부족, 진영논리에 함몰되어 몸빵하는 자신을 보지 못하는 성찰력의 부족, 


이러한 결핍의 산물이 음모론이다. 이 중에서 첫번째가 가장 크다. 





음모론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산되는 이유는 이 이론이 매우 클리어하게 상황을 설명하는 듯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인간의 뇌는 인과관계를 추구하게끔 프로그램 되어 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가 안되는데 모든 것을 어떤 특정 집단의 음모로 돌리면 인과관계의 최종심급이 음모로 환원되어 모든 기대하지 않았던 효과가 설명되고 왜 자기 편이 피해를 보는지가 설명된다.  





지금 Me-too 운동이 벌어지는 이유는 미투운동이 고발하는 행위들이 정치적 입장과 관계없이 만연했는데 여성의 자각과 행동이 전반적인 진보적 사고의 상승과 맞물려 진행되다보니, 진보 정권에서 이런 일이 터져나오는 것이다. 


다양한 진보적 욕구의 분출은 언제나 진보 정권에서 더 나온다. 이 에너지가 바로 진보정권을 탄생시키는 원동력이다. 더욱이 여성문제는 현재 한국 사회가 당면한 가장 큰 이슈 중 하나다. 


이러한 진보적 욕구의 분출을 잘 coordinate하지 못하면 정권 자체를 위협하는 경우도 많다. 노무현 정권이 인기를 잃은 원인 중의 하나도 노동운동과 제대로 관계를 정립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을 공격하는 의도 중의 하나가 이거다.). 


하지만 현재의 여성운동이 그런 식으로 작동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생각한다. 노동운동은 조직운동이지만 현재의 미투는 조직운동도 아니고 구체적인 요구도 없다. 정권이 현재 가용 가능한 리소스로 수용하기 어려운 요구 자체가 아예 없는데, 무엇으로 갈등을 빚을 것인가? 부딪히는 지점이 없는데 어떻게 갈등을 빚나. 





진보인사도 너무나 당연히 성적 욕망을 가지고 있고, 타인의 저항을 넘어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킬 수 있는 권력이 있을 때 이를 잘못된 방향으로 사용한다. 


그래서 진보나 보수나 똑 같으니 정치 혐오나 하고 말지라는 사고를 하기 쉬운데, 이 역시 지적 능력의 부족의 산물이다. 세상 어느 현상도 단일 차원으로 회귀되지 않고 중첩적이다. 그 중첩성과 복잡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방향성을 찾아가는 사고와 능력이 필요한 것이다.  


현재의 미투운동은 전향적인 태도의 요구다. 전향적인 태도를 요구하는 미투운동에 가장 바보같은 대응이 음모론으로 찍어누르는 태도일 것이다. 





Ps. 새누리당 시절 여의도 연구소 보고서에서 향후 정세를 전망하며 지적한 바, 여성의 니즈는 당분간 가장 중요한 정치 이슈 중 하나가 될 것이다. 김어준 같은 음모론자를 지상파 방송에 내보내는 이유는 그렇게 함으로써 진보의 신뢰성을 깎아내고 정권과 여성 전반을 격리시키려는 음모가 있기 때문이다. 못먹을 떡을 먹게 함으로써 체하게 만드는 것. 상대방을 제거하는 고도의 술수다. KBS, MBC는 노조원이 파업하는 등 함부로 프로그램을 개편할 수 없었기 때문에 스브스가 이 역할을 맡은 것이다. 생각해보라. 스브스의 권력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어준이 지상파에 진출한 이유는 다 이런 고도의 음모가 있기 때문이다. 


뭐, 아님 말고...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NBER 논문


설명이 필요없는 깔끔한 그래프. 검은색 그래프가 출산을 한 여성의 소득 곡선, 회색 그래프가 출산을 하지 않은 여성의 소득 곡선.성평등이 가장 높은 수준인 국가에서도 출산은 여성의 소득에 부정적 영향을 끼침. 


저자들은 덴마크에서 현재 남아 있는 성별 소득 격차의 거의 모든 것이 여성의 출산 패널티로 설명된다고 함. 





미국, 영국, 덴마크, 스웨덴의 성별 소득 격차 비교. Good news는 보다시피, 미국과 영국은 성별 소득 격차가 꾸준히 줄어들어 현재 덴마크 스웨덴과 크게 차이가 없음.


Bad news는 덴마크 스웨덴은 1980년대 이후 큰 변화가 없다는 것. 여성이 남성 소득의 85%에 접근하면 그 이하로 줄어들지 않고 있음.  


가족 내 분업을 제거할 수 없다면 이게 한계치일수도.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뉴스위크. CNN논문


여성의 교육 수준이 남성보다 증가하고,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이 증가하면서 여성 노동이 가정 경제에 기여하는 바가 커짐.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여성의 교육이 증가하고, 여성의 개인 소득이 증가한 결과, 생활수준의 향상 면에서 가장 크게 혜택을 받은 사람은 여성 자신이 아닌 그 여성과 결혼한 남성임. 


가정을 꾸린 분들의 경제적 처지는 개인소득이 아니라 가구 소득에 의해서 결정됨. 생활수준(standard-of-living)을 측정하는 가장 보편적 지표가 가구 소득을 가구원수에 따라 보정해준 균등화 소득(equivalized income)임. 


여성의 교육 수준이 남성보다 높아지면서 부부 중 여성의 교육수준이 남성보다 높은 케이스가 미국에서 크게 증가함. 1990년에는 35-44세 여성 중 여성의 교육상혼(남편의 교육 수준이 높음)이 37%이고, 강혼(남편의 교육수준이 낮음)이 26%였는데, 2009-2011에 나와는 교육상혼이 27%, 강혼이 35%로 뒤바뀜. 가정 경제에 부인이 기여하는 바는 커지고, 남편이 기여하는 바는 줄어듦. 


그 결과 교육수준을 통제했을 때 여성의 생활수준은 지난 20년간 별로 증가하지 않았지만, 남성의 생활수준은 증가함. 남성은 교육수준을 통제했을 때 개인 소득의 증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가구 소득이 부인의 소득이 높아져 증가한 반면, 여성은 개인 소득은 증가했지만 남편의 소득이 늘어나지 않아 소득 수준이 거의 나아지지 않음. 


아래 그림 b 에서 1990년 대비 2009-2010에 개인 소득은 기혼 여성의 증가율이 기혼 남성의 증가율을 압도하지만, 그림 d에서 보듯 Professional Degree 소유자를 제외한 전 교육수준에서 기혼 여성의 생활수준 향상 정도는 기혼 남성에 비해 떨어짐. 


동기간 동안 여성의 경우 고졸이하에서 최대졸까지 대졸 이하 여성이 생활수준의 저하를 경험한 반면, 남성은 고졸 이상은 모두 미약하더라도 생활수준의 향상을 경험. 


개인 소득의 측면에서는 여성의 진보가 여성의 소득을 높였지만, 생활 수준의 측면에서는 여성의 진보가 남성의 생활수준을 높임. 


남성 입장에서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이 사회현상에 대한 태도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경제적 이해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 특히 고학력 남성은 그 경제적 이득이 큼. 






ps. 넵 이 블로그에서 예전에 다 얘기했던 바임. 그래도 나님의 연구가 언론에 보도되고 논문이 나왔으니 재탕의 유혹을 이길 순 없음~ :-)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아래 그래프는 10인 이상 사업체를 대상으로 한 임금구조조사를 이용하여 연령, 연령자승, 학력을 통제한 후 로그 변환된 월소득의 여성 격차임. 대상은 25세 이상 64세 이하의 노동자로 한정.


Y축을 아주 러프하게 남성 대비 여성의 소득 수준으로 해석할 수 있음. 예전에는 학력을 통제한 후의 여성 소득이 남성의 40% 밖에 안되었는데, 지금은 70% 정도됨.


1980년 이후 여성의 소득 불이익 정도를 추적해 봤는데, 1980년에서 1998년 사이에 여성 불이익이 절반 이하로 떨어졌는데 반해, 21세기 들어와서는 전혀 변화가 없음.


대졸자 직업경로조사를 이용하여 최근 10년간 대졸자의 졸업 직후 노동시장 성과도 추적해 봤는데, 여성의 남성 대비 소득 개선 정도가 없는건 아닌데 매우 미약함.


노무현 정권 이후 대학과 공기업의 여성 할당 등 성평등 정책이 많이 시행되었고, 경력단절에 대한 문제제기도 많았기에 상황이 지속적으로 개선되어 왔을 껏으로 기대했는데, 의외로 성평등 문제가 많이 제기된 21세기에 노동소득 측면에서의 성평등 개선정도가 매우 약함.  


이러한 결과는 남녀 소득 격차를 경력단절로만 접근해서는 안될 것이라는 점을 시시한다고 생각함. 경력단절로 인해 소득 격차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소득 격차 (아마도 차별)에 의해 경력 단절이 발생하고, 소득 격차를 악화시키는 경로일 가능성이 있음. 


다른 한편으로 이 결과는 21세기들어 실시한 정책적 대응으로는 남녀 소득 불평등을 개선시키기 어렵다는 점을 시사함.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동성애 처발 조항 폐지에 동참한 국회의원 10명


많은 사람들이 자유민주주의에서 민주주의에만 신경쓰는데, 자유가 진짜로 중요한 것임. 민주주의의 논리적 토대가 자유에 있음. 세상을 살아갈수록 인민민주주의가 아닌 자유민주주의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음. 


선진국의 기준은 경제 성장을 통해서 개인의 자유가 확대되는 것임. 


지금은 동성애자가 이슈지만, 장애인을 생각하면 자유민주주의의 의미를 파악하기 용이함. 신체적 장애가 개인이 하고자하고 되고자하는 바를 이루는데 큰 장애가 되지 않는 사회, 자유롭게 자신이 하고 싶은 바를 할 수 있는 사회가 선진국임. 


물론 이렇게 하기위해서는 엄청난 비용이 들어감. 한국에서 명절마다 장애인이 고속버스 앞에서 시위하는 모습은 우리 사회가 GDP의 액수가 아니라 GDP를 높여 이루고자 하는 궁극적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임.


다리가 불편하거나 쓸 수 없는 사람이 일상적 이동에 제한 없이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교통체제가 갖추어져야함. 대중교통, 도로, 공공시설의 모든 인프라를 장애인을 위해 추가로 갖추는 것을 의미함. 이를 갖추기 위한 비용은 정말 비쌈. 일반인들이 이동하기 위해서 사회적으로 투입하는 비용보다 수십수백배의 비용이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투여됨. 예를 들어 당장 시내, 시외, 고속버스를 모두 바꿔야 함. 경제가 발전하지 않으면 이 비용을 감당할 수 없음. 그래서 경제발전이 중요한 것. 


장애인을 위해 추가 시설을 하는 것이 특혜가 아니라, 모두가 당연히 누려야하는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응당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자유의 확대임.  


비용만이 문제가 아님. 장애인이 버스를 타기 위해서 리프트를 내리고 올리는데 시간이 걸리더라도 모두가 기다리는 공공의 의식과 합의도 필요함. 그 합의가 상식이 된 사회가 수준 높은 사회임. 


자유의 확대란 개인이 가지는 여러 제약과 한계를 타파해 나가는 것임.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다를 바 없이 같은 권리를 가지고 살 수 있게 하는 것. 이에 들어가는 추가 비용이 문제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게 자유임. 


개개인 모두가 스스로에 대한 각자의 자유로운 권리를 가지고 있고, 이 권리에 차이가 없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논리적으로 도출되는 것임. 자유민주주의보다 더 급진적이고 더 평등한 이념은 아직까지는 없음. 자유주의의 폐기가 아니라 자유주의의 진보적 해석이 좌파가 살 길임. 


동성애 문제도 마찬가지. 동성애를 좋아할 필요도 동조할 필요도 없음. 동성애에 대해서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 것은 이성애자의 입장에서는 자연스러운 것임. 장애인을 보고 편하게 느끼게 되지 않듯, 동성애자도 마찬가지임. 하지만 사회적 다수가 느끼는 이러한 불편한 감정을 넘어서 사회적 소수가 살아가는데 불편이 없도록 만드는 것이 필요함. 그게 바로 진보임. 


이런 불편한 감정을 없애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사회적 훈련과 교육이 필요함. 집단적으로 이러한 훈련과 교육이 되어 있는 사회가 선진국이고 그렇지 않은 사회가 후진국임.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기타 서비스업을 이용할 때 장애인을 자주 마주치면 선진국이고, 모두가 획일적으로 사지가 멀쩡하면 후진국임. 성적 지향이 다수의 다른 사람과 다르다고 개인이 누려야할 사회적 행위에 제한이 있는 사회가 후진국이고 그런 제약이 없는 사회가 선진국임. 


지구상에서 가장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는 동성애자를 잡아서 태형에 처하고, 그 다음으로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는 동성애자를 잡아서 투옥하고, 가장 자유로운 국가는 동성애자에게 이성애자와 같은 가족 생활의 권리를 부여함. 


개인의 자유를 확대하지 않는 진보는 모두 가짜임.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공동체 좋아하지 말 것. 


문재인 정부에서 우선 순위로 동성애 문제를 삼을 수 없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음. 하지만 동성애자들의 권리 찾기 운동이 진보고, 자유민주주의의 원리에 더 적합함. 문재인 정부가 이들로부터 욕먹는다고 불만 터뜨리지 말 것. 문재인 대통령의 지난 대선 토론에서의 발언은 표를 얻는데는 도움이 되었을지라도 자유의 확대라는 입장에서 욕먹어 쌌음. 명시적으로 지지하지 못하겠으면 입이라고 닫고 있을 것.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한국일보 기사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1주기를 맞아 사회적 변화에 대한 여러 분석 기사가 나오고 있음. 내가 이해하는 강남역 사건은 상징적 분기점일 뿐 변화는 그 전부터 시작되었음. 이 변화를 추동한 힘은 지속된 구조적 억압에 맞설 새로운 주체의 형성임. 


어쨌든 현재 한국 사회의 성평등 인식에 대한 연구는 의미가 있을 듯. 



1. 


KGSS의 조사에서 2016년에 처음으로 남성과 여성 사이의 평등 촉진이 정부의 책임인가라는 질문을 함. (참고로 KGSS 조사는 2003년에 시작)


이 질문에 그렇다고 응답한 비율(%)은 성, 연령별로 다음과 같음: 


 

 18-29

30-39

 40-49

 50-59

 60+

 남자

 43.7

55.6

 57.1 

 55.3

 52.7

 여자

 57.3

68.5

60.0

 60.4

 59.6

 격차

 13.6

12.9

  2.9 

  5.1

  6.9


30대 여성이 정부차원의 남녀평등 대책을 원하는 비율이 가장 높고, 20대 남성이 가장 낮음. 30대 여성과 20대 남성의 격차는 무려 24.8%포인트. 


20대 남성은 전체 성,연령 인구 중 유일하게 성평등이 정부의 책임이 아니라는 비율이 더 높은 집단. 고연령층에서도 남녀 모두 성평등 촉진은 정부의 책임이라고 인식하고 있음. 


젊은 남성들의 성평등 관련 정부 역할에 대한 인식이 사회 전체의 인식과 괴리되어 있음. 


한가지 더 특이한 사항은 남성들의 경우 20대를 제외하고 성평등 정부역할 인식에 차이가 거의 없음. 여성은 30대가 특히 더 진보적이지만, 남성은 오히려 40대가 미세하지만 조금 더 진보적.  


이러한 결과는 예전에 분석했던 70년대생 90년대 학번 신여성 등장과 일치함. 모든 변화는 구조적 요인과 변화를 이끌 주체의 성립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생기는 법. 


앞으로 겪을 노동시장 변화에서 70년대 중반 이후 출생 여성들이 얼마나 결혼 출산 후 노동시장에서 탈락하지 않고 버터주느냐가 중요한 변화의 지표가 될 것. 그 전 세대는 모두 탈락했음. 




2. 


그런데 과거 대비 20대 남성의 인식이 퇴화하고 있다고 할 수는 없음. 


우리 사회의 여성문제 인식에 대한 변화를 알 수 있는 설문이 KGSS에 몇 개 있음. 


(1) "여성이 전일제로 취업하면 가정생활이 어려움을 겪게 된다"라는 질문에, 2012년에는 19.7%가 매우 그렇다고 답했는데, 2016년에는 그 비율이 9.5%로 급감. 20대 남성도 2012년에는 6.0%가 여기에 적극 동의했는데, 2016년에는 그 비율이 1%로 줄어듦. 


그럼에도 2016년 현재 이 의견에 동의하는 비율(46.5%)이 그렇지 않은 비율(31.1%)보다 훨씬 높기는 함. 



(2) "아내가 할 일은 가정과 가족을 돌보는 것이다"라는 문장에 적극 동의하는 비율도 2006년 대비 (찬성 42.1%) 2016년에 줄어듦 (찬성 33.7%). 


20대 남성의 경우 찬성 비율이 2006년 23.6%에서 2016년 9.5%로 격감하였음. 





전반적 인식의 개선에도 불구하고 20대 남성이 성평등 역할을 촉진하기 위한 정부의 역할에 대해 다른 어떤 인구집단보다 부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좀 놀랍기는 함. 여성의 사회적 역할 증대에는 찬성하지만 정부의 성평등 촉진으로 인해 자신들의 기회가 줄어든다고 믿고 있는 듯. 





Ps. KGSS 조사의 2003-2016 누적 자료가 드디어 공개되어 요기 사이트data 섹션에서 다운받을 수 있음. 코드북은 documentation 섹션에서 다운 가능. 자료는 SPSS로만 제공. R에서 "foreign" package를 쓰면 간단히 Stata 자료로 변환 가능. 이 경우 데이타 사이즈가 커지는데, Stata에서 compress 명령을 실행 후 저장하면 자료 사이즈가 축소됨.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동성애 자체에 찬반을 묻는 조사는 못들어봤고, 동성 결혼 합법화에 대한 찬반을 묻는 조사는 2016 KGSS에서 시행. 


조사 결과는 아직 공표되지 않았고 참여 연구자들 일부만 자료를 받아서 살펴보고 있는 중. 


어쨌든 내가 가지고 있는 자료로 간단한 기초 통계만 살펴보니, 대략 


동성 결혼 합법화에 찬성하는가? 


- 50% 반대. 

- 30% 찬성. 

- 20% 의견없음. 


30%가 찬성하고, 50%가 반대하는데, 이 정도 찬성 비율은 미국에서 2000년대 초반의 찬성 비율과 유사함. 2004년에 동성결혼 합법화 찬성 비율이 미국에서 31%였음. 반대는 60%. 


반대로만 따지면 한국에서 동성결혼 합법화에 반대하는 비율은 미국의 2010년과 유사한 수준. 


동성결혼 합법화에 대한 찬성이 30%에 가깝다는 것은, 동성애자의 존중, 그들의 인격, 권리 문제에 대해서는 훨씬 더 많은 다수가 우호적 생각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큼. 


연령대별로 보면, 


18-39세의 젊은층에서  


- 30% 반대

- 40% 찬성

- 30% 의견없음


찬성의견이 반대의견보다 높음. 


60대 이상에서는 


- 70% 반대

- 10% 찬성

- 20% 의견없음



이상의 결과를 보면 정치공학적으로 표를 생각해도 동성애자에 대한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진보적 후보에게 결코 유리하지 않음. 진보를 지지하는 젊은층은 동성 결혼 합법화에 이미 찬성 의견이 반대 의견보다 높음. 


아마 2016년 KGSS 조사 시기가 미국에서 동성결혼 합법화를 시행한 직후라 그 영향이 있을 것임. 이 번 대선처럼 동성애에 대한 이슈화된 적이 없어서 대중의 명확한 태도가 형성되기 전임. 다시 조사하면 합법화에 대한 반대 의견이 더 높아졌을 수도 있음. 


개인의 자유를 확대한다는 진보적 가치의 입장에서 판단할 때 동성애자에 대한 적대적 태도 형성에 기여한 문재인 후보의 발언은 매우 부적절하였음.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