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기사: [책과 삶]우연한 가난은 없다 ‘45년생 윤영자’

소준철. 2020. <가난의 문법>. 푸른숲.

 

안그래도 한국에서 주문한 책이 도착해서 읽고 있는데 경향신문 기사가 나왔다. 최근 읽은 사회학 책 중에서 가장 탁월한 저서 중 하나이다. 감탄하면서 읽었다. 저같이 통계로 사회를 보는 사람들은 절대 볼 수 없는 삶의 구체성을 Ethnography로 드러내면서도, 객관성을 잃지않고, 현상의 다면성을 사회과학적으로 잘 분석하고 있다. 

 

경향기사에서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서사에 통계자료와 각주를 더해 질적 연구에 입각한 사회과학 연구서를 떠올리게 했다면, <가난의 문법>은 사회과학 연구에 서사를 병치해 도시 말단의 ‘가난’에 돋보기를 들이댄다"며 <82년생 김지영>과 이 책을 비교하는데, 저도 이 책을 읽고 딱 <82년생 김지영>과의 비교가 떠올랐다.

 

이 책의 형식은 혁신적이다. 일반적으로 ethnography 책은 사회과학적 논리를 풀면서 인터뷰한 내용을 인용하거나 관찰한 내용을 소개한다. 그것도 아니면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Evicted와 같이 반쯤 소설 비슷하게 쓴다. 

 

그런데 이 책은 윤영자라는 가상의 전형적 인물을 창조해서 오후1시서부터 다음날 오후 12:30까지의 하루 일정을 따라가며 윤영자의 일상을 소설적으로 묘사하는 6~7쪽의 내용이 나오고, 사회과학적 분석이 이어진다. 윤영자의 하루에 대한 묘사만 모으면 아마 단편소설 한 편이 될 것이고, 사회과학적 분석을 모으면 논문이 될 것이다. 내용 뿐만 아니라 글형식의 혁신과 탁월함에 많이 놀랐다. 소설적 부분은 저자가 사회학자가 아니라 소설가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만큼 글이 생생하고 찰지다. 

 

"재활용품 수집 여성 노인"에 대한 사회과학적 분석은 거시 사회경제적 맥락과 미시 정책이 모두 이루어져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재활용품 수집 노인들이 존재하는 맥락은, <"기술적 진보와 기업조직의 변화, (소비자의) 한 번 쓰고 버리는 물건을 사용하는 습관, (불완전한) 도시 당국의 쓰레기 수거 시스템", 그리고 생산자가 생산품의 처리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 않는 상황>(92쪽)이라는 거다.

 

"폐지 줍는 노인"이라는 가난의 상징적 존재가 어떻게 생겨나고 유지되는지, 거시 사회적 변화와 도시 재활용 시스템의 합법적 사업과 비합법적 사업, 재활용 쓰레기의 소유권적 성격 등에 대한 매우 깊이 있는 분석이 이루어져 있다. 이 책을 읽고 난 후에 거리의 쓰레기와 폐지를 보는 당신의 시각은 완전히 바뀌어 있을 것이다. 

 

저자인 소준철이 가난한 노인인 윤영자의 삶을 바라보는 시각 역시 따뜻하지만 객관적이다. "그녀의 가난은 이 변화 속에서 그녀가 선택한 결과이며,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했던 결과이기도 하다"라고 기술한다. 개인의 선택과, 국가의 정책, 그리고 국가의 지원이 어떻게 중첩되는지 책은 매우 잘 설명하고 있다. 

 

"폐지 줍는 노인"인 윤영자의 삶은 빈곤층이지만, 홈리스는 아니다. 가난하지만 질병에 대처하기 위해서 또는 손자, 손녀에게 용돈을 주기 위해서 저축하는 모습도 보인다. 빈곤 속에서 어떻게 삶이 유지되는지, 어떤 가족 관계는 단절되고 어떤 가족관계는 단절되지 않았는지도 소설적 기술로 보여준다. 

 

이 글에 등장하는 1945년생 윤영자의 이름은 1945년 출생등록 중 가장 흔했던 이름을 택한 것이다 (16쪽). 그녀의 남편이나 자녀의 이름 역시 같은 방식으로 택했다. 이 책의 소설적 부분이 소설이지만 소설이 아닌 이유를 이 보다 더 잘 드러내는 것도 없으리라.

 

현재의 노인층은 저자가 말하듯 <가족복지의 해체 후>에 노인이 되었지만, 국민연금과 같은 <사회복지의 도입 전>에 노인이 된 복지 사각의 낀 세대이다. 한국에서 노인 빈곤 문제가 심각한 이유다. 그 때문에 정부의 대응은 노인을 노동에서 은퇴할 대상으로 규정하면서, 또 다른 노동(=취로사업)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사회적 대책은 "노인들이 (일을 하지 않더라도) 더 나은 기초소득을 가질 방법을 고민하는 데 있다"(278쪽)는게 저자의 결론이다. 

 

 

Ps. 역시 한국의 사회 문제는 사회학자가 제일 잘 드러낸다. 

Posted by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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