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수업일수 채우기 바빴을 뿐, 학력 그 이상을 잃었다

 

이 기사의 대주제는 "원격수업이 남긴 공백"이다. 원격수업으로 계층 간 학력격차가 커졌을 뿐만 아니라, 관계단절, 심리적 데미지, 급식 등 학습 외적인 측면의 격차도 커졌다는 것. 학교 교육이 단지 지식 전달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을 알게 해주는 좋은 기사다. 

 

그런데 원격수업이 남긴 공백이 주는 교훈에 대해서는 "그동안 지식 전달과 평가만을 강조해온 공교육의 누적된 문제가 이번에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고 엉뚱한 결론을 내리고 있다. "코로나19 이후에는 학생이 학교에 있지 않더라도 동일한 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학습생활복지’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나. 

 

코로나는 일시적 외적 충격이다. 올 하반기면 정상화될 수 있다. 원격수업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정은경 청장도 학교발 감염 많지 않다고 등교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원격수업이 남긴 공백은 등교수업을 하면 당연히 모두 채워진다. 

 

뭐 때문에 "학교에 있지 않더라도 동일한 교육을 제공"하는 체제를 만드나? 학교에서 교육하는 최선의 방식이 이미 존재하는데. 공교육을 백안시하고 학교 교육을 폄훼하는 엉뚱한 좌파적 사고를 버려야 한다. 평소에 이 엉뚱한 사고에서 나오는 정책들이 대안학교, 수업일수 줄이기, 갭이어 등 모두 하위계층과는 아무 상관없이 중상층 친화적 정책이다. 

 

계층 격차를 줄이려면 "가정 배경과 관계없이 학교에서 동일한 교육을 제공하는 '교육 복지'를" 가능한 많이 제공하는게 최선이다. 학교가 제공하는 학습을 확장할수록, 학교가 제공하는 학습 이외의 역할도 확대되는거지, 둘이 근본적으로 다른게 아니다. 왜 멀쩡히 작동하는 시스템을 두고 힘들여 다른 시스템을 개발하나? 

 

원격수업이 남긴 공백에서 배워야할 교훈은 학교의 기능은 학습 이상이고, 이 학습 이상의 기능은 학교라는 물리적 공간과 등하교라는 양적 시간의 지배를 통해 실현된다는 것이다. 이 시공간을 벗어나면 가정이라는 계층화된 제도로 학생들이 들어간다. 계층 영향력의 최첨단이 가족과 가정이다. 가족과 가정 이외의 다른 접촉면을 넓히는 모든 제도가 계층 영향력을 약화시킨다. 공교육 학교 교육이 모든 제도 중에서 가장 덜 계층적이고 (전혀 계층적이지 않다는 의미는 당연히 아니다), 학교에 있는 시간이 많을수록 가족배경의 영향은 줄어든다. 

 

교육부에서 원격교육을 미래교육의 계기로 삼겠다고 하면, 학교에 있는 시간이 줄어드는걸 비판해야지, 학교에 있지 않더라도 동일한 교육을 제공하겠다고 교육부의 계층 격차 확대 정책에 찬동하는 사고를 하면 어쩌나? 원격 수업이 남긴 공백에서 교훈을 얻었다면, 학교라는 공간에 있을 양적 시간을 확대하는 정책을 주문해야 하는거 아닌가? 

 

또 한 가지. 한겨레 기사에서 "학교의 구실과 의미를 단지 학습에만 가둬둘 것이 아니라"고 하는데, 학교의 가장 큰 구실과 의미는 학습이다. 그리고 이 의미는 계층에 관계없이 모두가 공유한다. 학교에 대해서 중산층과 그 이하 계층이 가장 넓게 공유하는 지점이 바로 학습이다. 학교는 학습을 매개로 가정을 통해 획득할 수 없는 사회화와 복지기능을 중하층 이하 계층에게 제공한다. 학습 기능을 약화시키는 순간, 계층간 공동 이해가 흐려지고 학교 제도가 약화된다. 그리고 그 피해는 하위계층에게 돌아간다.

 

중산층 이상은 학교 제도가 없어도 학습 이외의 다른 니즈를 쉽게 충족할 수 있다. 하지만, 한겨레 기사에서 잘 보여주었듯, 중하층 이하는 학교가 없으면 학습도 안되고 다른 사회화도 안된다. 학교라는 시공간에서의 학습 기능은 중산층 이상보다 그 이하 계층에서 그 중요성이 더 크다. 

 

계속 말하지만, 중산층에게 좋은데 하위계층이 묻어가는 정책이 지속가능한 좋은 정책이다. 교육도 예외가 아니다. 

 

이게 원격교육이 남긴 공백에서 배워야할 교훈이 아닐지. 

Posted by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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