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R (price to income ratio) 이라고 연소득 대비 주택 가격의 비율을 나타내는 통계가 있다. 주택가격을 연소득으로 나눈 값이다. 이 수치가 높을수록 노동소득만으로 주택을 구입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소득은 그대로인데, 주택 가격이 올라가면 PIR 지수가 올라가고, 주택 가격은 그대로인데 가구의 연소득이 높아지면, PIR 지수는 낮아진다.
한국에서 주택 가격이 너무 올라서 이제는 소득 불평등은 의미가 없고, 자산 불평등을 봐야한다고 많이들 얘기한다. 하지만 한국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소득 상승률이 21세기에 높았다.
PIR 지수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살펴보면 주택 가격이 너무 올라서 집을 못사는건지, 아니면 소득이 늘어서 주택 시장에 뛰어든 사람들이 늘어서 자산 불평등에 더 민감해진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OECD에서 주택 통계를 제공하는데 (원소스는 요기), 이 통계를 이용하여 1990년을 기준으로 PIR 지수가 상대적으로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그려보았다. 아래 그래프에서 붉은 색이 한국이고, 주황색이 OECD 평균이다.
보다시피 한국은 PIR 지수가 지속적으로 낮아졌다. 주택 가격이 안올라서 낮아진게 아니라, 소득이 성장해서 소득대비 주택 가격의 비율은 낮아진거다. 1980년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도저히 집을 살 수가 없었는데, 80, 90년대의 고도성장으로 연소득이 빠르게 오르면서 소득대비 주택 가격은 더 싸졌다. 생각을 해보라. 대부분이 집을 살 수 없었던 80년대에 자산 불평등이 더 높았을지 아니면 소득대비 주택 가격의 ratio가 낮아진 지금의 자산 불평등이 더 높을지.
이에 반해 OECD 평균은 거의 변화가 없다. 복지국가인 스웨덴은 1990년대 이후 소득대비 주택가격이 크게 올랐다.
1990년대에 대규모 주택 공급으로 PIR 지수가 급락했기 때문에 위 그래프처럼 비교하는게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똑같은 그래프인데 기준점을 1990년이 아니라 2000년으로 바꿔서 상대적 변화를 보면 아래 그래프와 같다.
보다시피 한국의 PIR은 2000년이 100일 때 2019년 현재는 85에 불과하다. 2000년대비 소득대비 주택 가격이 더 싸진거다. 2000년대 초보다 지금이 소득대비 주택 가격이 낮다.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한국은 OECD 국가 중에서 21세기들어 주택 가격의 상대적 상승률이 가장 낮은 국가 중 하나다. 소득 대비 한국의 주택은 더 affordable 해졌다.
2000년과 비교할 때 2019년 현재 OECD 평균은 111이고, 미국은 102, 스웨덴은 149이다. 주택가격은 한국보다 다른 국가에서 훨씬 더 올랐다.
이상의 통계를 보면 소득대비 주택 가격의 비율이 낮아졌기 때문에 21세기들어 자산불평등이 유의하게 높아졌을 가능성이 낮다. 이전에도 몇 번 말했지만, 자산불평등이 최근들어 크게 높아졌다는 증거가 없다. 대부분의 데이터는 큰 변화가 없다고 보여준다.
위의 그래프를 보면 한국에서 자산불평등에 대한 민감도가 올라간 이유는, 자산불평등이 급증하여 상대적 자산의 격차가 높아져서 박탈감을 느끼기 때문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소득이 늘면서 자산 시장에 뛰어들었기 때문에 과거에는 신경 안쓰던 자산격차와 자산소득 격차에 신경을 써서 박탈감을 느끼게 된 것일 가능성이 크다.
예전에는 자산소득이 언감생심이었는데 이제는 할만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것. 그러니 다들 주식, 비트코인 등 자산소득에 집중한다.
예전에는 소득하층은 대학 진학자가 거의 없어서 교육불평등에 신경을 안썼는데, 다들 고등교육을 받게 되니 오히려 교육불평등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진 것과 유사하다.
Ps. 미국에서 20세기 초반에 노동자는 집을 소유한다는 개념이 없었다. 집은 워낙 비싼 물건이라 월급으로 월세사는게 노동자의 당연한 삶이었지 자가 소유는 걍 꿈이었다. 그게 금융의 발전과 소득의 증가로, 그리고 정책적 선택에 의해서 상황이 바뀌어서 20세기 중반서부터 자가 소유가 미국의 문화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