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사회학자 5명이 모여서 <한국의 교육과 사회이동 총서>라는 주제로 4권의 책을 냈습니다. 박현준 교수가 1권 <세대 간 사회이동의 변화: 한국사회 얼마나 개방적으로 변화하였는가?>를, 변수용, 이성균 교수가 2권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자녀의 교육 결과: 한국에서 교육불평등은 심화되었는가?>를, 저와 변수용 교수가 3권 <교육 프리미엄: 한국에서 대학교육의 노동시장 가치는 하락했는가?>를, 신광영 교수와 제가 4권 <교육, 젠더와 사회이동: 한국사회 계층화의 성별 차이는 줄어들었는가?>를 각각 담당하였습니다. 저는 3권에서는 주저자로, 4권에서는 보조저자로 참여하였습니다. 교육과 사회이동을 연구하는 훌륭한 선생님들과 같이 작업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제가 맡은 책의 내용은 제가 이 블로그에서 했던 주장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좀 더 이론적이고 분석적이긴 합니다.
아래는 책의 맛보기용으로 3권의 결론 부분에서 일부를 인용한 것입니다. 3권은 아래 내용 중 노동시장 문제를 주로 다룹니다.
이 블로그에서는 꾸준히 얘기했던 내용이지만, 본격적인 종합 학술 연구로 "한국의 사회이동"이 일반적 인식과 달리 줄지 않았다는걸 4권의 책으로 엮어서 주장하는 것이라 저 뿐만 아니라 다른 선생님들도 어떤 비판을 받을지 떨고 있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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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용이 사라진 가장 큰 이유는 개천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1960년 인구총조사에서 40대 경제활동인구 중 농림어업에 종사하는 비율은 62%였다. 2015년 인구총조사에서 그 비율은 6%에 불과하다. 1985년에는 15%였다. 부모가 40대일 때 자녀의 연령이 10대일 가능성이 높으므로 40대 인구의 직업 분포는 그 이후 세대의 직업 분포와 비교하는 준거점이 된다. 1960년대에 부모가 40대였던 세대는 62%가 농어민에서 다른 직업으로 이동할 수 있지만, 2015년 기준으로 부모가 40대였던 세대는 단 6%만이 농어민에서 다른 직업으로 사회이동을 할 수 있다. 주변에 농어민 출신으로 소득상층이나 상층 위계의 직업을 가진 경우가 줄어든 이유는 이처럼 분모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가족배경과 교육성취의 연결고리도 마찬가지다. 1960년대 40대 인구 중 대졸 학력자는 0.6%에 불과했다. 초대졸까지 모두 포함하여도 1.4%에 불과하다. 1985년대는 2년제 대학을 포함하여 이 비율이 11%로 커진다. 2015년 기준으로는 48%다. 1960년대 10대였다가 학사 학위를 취득한 거의 모든 대졸자가 부모보다 학력이 상대적으로 상승하였다. 아마도 자신을 개천용으로 여길 것이다. 부모의 학력과 사회경제적 배경이 자신의 학업 성취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2015년에 40대는 절반 정도가 대학 교육을 받았다. 그 자녀들이 대학 교육을 받아도 개천에서 용이 났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 눈부신 고도성장과 빠른 교육팽창을 경험한 한국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계층 구조의 급속한 변화를 경험하였다. ... 바뀐 것은 개천에서 용이 나올 확률이 아니라 개천의 양이다. 곳곳이 더러운 물이 흐르는 개천이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커다랗고 깨끗한 물이 흐르는 강으로 강산이 변하였다.
노동시장에 끼치는 교육 효과가 줄어들었다는 인식도 대졸자의 증가로 비교집단이 변화한 결과이다. 1960년대 25-34세 청년층은 4%만이 대학 교육을 받았기에 96%의 대학 교육을 받지 않은 또래집단과 자신을 비교한다. 사회적 네트워크가 좁고 고립되어 있는 사람이라도 고졸이나 그 미만 노동자와 자신을 비교할 수밖에 없다. 친구와 친척 중에 대학 교육을 받지 못한 또래집단이 많았다. 하지만 2015년 기준으로 25-34세 청년층은 77%가 대학 교육을 받았다. 4년제 대졸자만 48%에 이른다. 비교집단이 대학 교육을 받은 또래 집단이 되고, 경험적으로 모든 격차가 대졸자 내부의 격차로 해석되기 쉽다. 절대 다수가 대학 교육을 받았기에 대졸자와 대졸 미만 노동자 간의 상호작용은 크게 줄었을 것이다. 대학 교육의 절대적 보상이 줄어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대학 교육의 상대적 보상은 심리적으로 줄었다고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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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한국 사회의 불평등을 줄이는 방법은 무엇일까? 본 연구로 부터 이에 대한 답을 직접 도출할 수는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교육 공급을 조절함으로써 노동시장 불평등을 해결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극소수만이 대학 교육을 받았던 1960년대에도 노동시장 불평등 수준은 높았다. 대다수가 대학 교육을 받은 21세기의 청년층 내부에서도 노동시장 불평등은 크다.
교육을 바꿔서 불평등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노동시장 내부의 불평등을 줄임으로써 학력 간 격차를 줄일 수 있다. 한국에서 경제발전과 더불어 소득불평등이 낮아지던 1980년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학력 간 소득 격차도 줄었다. 노동시장에서 고졸자 대비 대졸자의 보상 정도가 작아졌지만, 이 시기에 교육의 전반적 가치가 줄었다고 누구도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교육의 가치가 낮아졌다고 생각하는 시기는 전체적인 불평등이 증가하고 학력 간 소득 격차가 벌어지는 21세기 이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