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지어낸 말 아니고 실제 사회학 학술 논문에 쓰인 용어. 1987년 BJS에 실린 학술 논문의 제목이 "Shame and Glory: A Sociology of Hair"다.
안산 선수의 숏컷들 두고 성차별주의자들이 황당한 공격을 자행했는데, 이 기회에 털의 사회학을 간단히 소개하는 것도 좋을 듯.
영어로 hair가 머리카락만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온갖 털을 의미. 머리카락은 그냥 hair, 수염과 온갖 얼굴에 난 털은 facial hair, 몸에 난 털은 body hair.
털의 사회학은 저같이 노동시장 불평등 문제 연구하는 사람이 하는게 아니고 권력의 상징 문제, 몸의 지배 문제 같은걸 연구하는 분들이 주로 하는 분야다. 사회학보다는 인류학자들이 더 많이 알고.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털과 관련된 규범과 권력은 주로 여성의 문제였다. 헤밍웨이는 "그녀의 머리카락 없이 소녀는 더 이상 소녀가 아니다"라고도 하였다. 그런데 아시아계 미국인 남성에 대해서 연구하다 보면 아주 가끔 털 문제를 마주하게 된다. 소체, 소추 문제 뿐만 아니라 소털도 아시아계 남성의 남성성을 낮게 보는 이유 중 하나다. 털은 개인적이며 사회적이며, 털의 형태는 또한 권력적이다.
BJS 논문을 쓴 Anthony Synnott는 털의 사회학을 3가지 차원의 대비로 분석했다. 특이하게 털은 장단이 항상 대비를 이룬다.
(1) 남성 vs 여성: 여성의 털이 긴 곳은 남성은 짧고 (머리털), 여성의 털이 짧은 곳은 남성이 길다 (가슴털, 다리털).
(2) 머리 vs 다른 몸: 남성과 여성의 대비에서 설명했듯, 머리가 길면 몸의 털은 짧고, 머리가 짧으면 몸의 털은 길다.
(3) 주류 vs 비주류: 주류의 털이 길면 비주류는 짧고, 비주류의 털이 길면 주류는 짧다. 남성이라도 헤비 메탈은 머리가 길고, 스킨헤드족은 극단적으로 머리가 짧다. 깔끔하게 머리 단정하게 깎은 히피가 있던가. 적당한 털길이에서 벗어나면 비주류나 이단이 된다.
주류 백인 남성은, 길지 않은 머리, 말끔하게 면도한 얼굴, 길고 덟수룩한 가슴털이 norm이다. 요즘은 분야에 따라 면도한 얼굴이 아니라 멋있는 수염이 남성성의 상징이다. 아시아계 남성은 머리털은 따라할 수 있지만, 수염과 가슴털이 없어서 주류 남성성이 아니라 여성성에 가깝게 분류된다.
그렇다고 가슴털이 항상 남성성의 상징인 것도 아니다. 보디빌딩, 휘트니스 같은 분야에서는 남성도 털 하나 없이 매끈한 몸을 가져야 한다. 근육 덩어리 자체를 드러낼 때는 털은 없어야 한다. 가장 남성성을 드러내는 대회에서, 남성도 왁싱을 한다.
역사적으로 털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는 항상 그 사회 주류의 norm이 있었다. 한국사회 개화의 상징 중 하나가 단발령이 아니던가. 남성의 긴머리가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손으로 효지시야였던 시대가 가고, 사회 비주류의 상징이 되었다. 긴 털이 규범일 때는 짧은 털로 저항하고, 짧은 털이 규범일 때는 긴 털로 저항하는 형태가 역사적으로 여러 사회에 걸쳐서 발견된다.
비주류의 털은 사회적으로 통제의 대상이 된다. 흑인 여성들이 자연스러운 머리가 아니라 백인처럼 곧게 핀 머리카락을 인위적으로 가지는게 요즘 가장 대표적으로 얘기되는 문화 권력에 의한 털의 지배다. 여성이 어떤 머리카락을 가져야 하는지는 항상 사회적 통제의 대상이었다.
이 번 사태 역시 반사회적 성차별주의적 남성들이 자신의 이념대로 사회적 통제를 하려고 했던 시도 중 하나다.
자유민주주의 얘기들 많이 하는데, "자유"는 신체의 자유가 출발점이다. 내 몸의 소유주는 나 자신이라는게 자유의 시작점, 근대의 출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