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룩소 천관율 기사: (1) 계급이 돌아왔다-이대남 현상이라는 착시, (2) 누가 페미니스트인가

 

천관율 기자/작가의 최근 얼룩소 글을 두고 다양한 평가가 나오는 듯하다. 첫번째 글을 읽은 후 다른 사회학자들에게 가장 먼저한 얘기는 이거 읽고 놀랄 계층론 연구자는 한 명도 없을거라는 것. 계층론 연구자들에게는 상식과 같은 얘기다. 계층에 따라 꿈이 다르다는 얘기도 새롭지 않다. 여러 논문이 이미 나와 있다. 페미니스트의 특성에 대한 진단도 상식적이다. 한국에서 여성이 여러 측면에서 차별받는 소수자인데, 소수자와 연대하는 인식을 가진 사람이 어디 한 가지만 그러겠는가. 평균적으로 더 공동체 지향적인게 당연하다. 기사에 새로운 내용이 없다는게 이 분석의 가장 큰 장점(상식적으로 이해된다)이자 단점(뉴스가 없다)이다. 

 

새로운 내용이 없어서인지 천관율 작가의 글쓰는 스타일에 대해서 말들이 많다. 2개의 분석 기사를 읽고 여러 생각이 있는데, 일단 내용에 대해서 몇 가지 짚고, 제가 생각하는 사회과학과 저널리즘의 관계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우선, 계급 분석 글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계급을 나누는 방법이다. 여러 분들이 이 방법론에 관해 의구심을 가지고 질문을 하던데, 저는 "공부방 계급론"이 매우 명민한 접근이라고 생각한다. 공부방 계급론을 나누기 위한 구체적인 통계 기법이야 여러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응답 점수로 연속척도를 만들수도, 천관율 기자의 방식처럼 임의의 점수로 나눌 수도, 좀 더 체계적으로 latent class analysis (LCA)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뭘 하든지 결과는 비슷할 것이다. 

 

계급이라는게 딱히 정해진 조작적 정의가 없다. 소득, 자산, 교육, 직업, 주관적 계급이 모두 계급 정의의 변수로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이 번 분석에서 공부방 계급론에 사용된 질문은 두 가지 큰 장점이 있다. 하나는 이 지표는 소득(용돈 지급, 돈 걱정 없이 공부), 자산(독립된 공부방), 문화(부모가 자녀 학력에 관심)를 모두 포괄하는 종합지표(a composite index)다. 특히 문화자본(사회학에서는 보통 집에 있는 책의 권수로 측정)은 기존 연구에 따르면 학력 성취에 영향을 끼치는 가장 강력한 변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자본을 측정하여 계급 구분에 적용한 서베이는 거의 없다. 여러 계급적 지표를 종합해서 하나의 변수로 조작화한 것은 인상깊은 장점이다.

 

이 분석의 더 인상깊었던 장점은 응답자가 부정확한 정보를 리콜할 필요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출신계급을 묻는 질문은 보통 15세의 자산, 소득 등을 묻는다. 응답자가 제대로 모르고 답변할 가능성이 상당하다. 의도적인 거짓말이 아니라도, 정보가 부정확할 가능성이 높다. 독립변수의 에러에 대한 errors-in-variables 이슈는 통계의 측정 오차에 대해 눈꼽만큼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아는 문제다. 하지만 공부방 계급론의 질문은 모두 응답자 자신의 경험에 대한 리콜이다. 측정오차를 상당히 줄일 수 있다. 향후 청년층/청소년층을 대상으로 한 계급 분석에서 충분히 계속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다. 

 

공부방 계급론으로 측정한 계급에 따른 응답의 격차가, 학력 격차로 측정한 지위에 따른 응답 격차보다 크다는 점도 재미있는 포인트다. 이 분석을 좀 더 생각해보면, 공부방 계급론의 계급 지위가 학력 격차로 그대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얼룩소 글에서는 계급의 재발견이라고 썼지만, 학력 성취에서 계급의 허약성을 드러내는 결과이기도 하다. 계급 격차가 학력 격차로 그대로 이어지지 않고, 고학력층에서 계급이 상당히 섞여있다는 의미다. 청년층에서 출신 계급에 따른 인식 격차가, 현재의 학력 성취에 따른 인식 격차보다 더 크다. 능력주의 담론은 학력 성취자의 담론이라기 보다는, 출신 계급에 따른 담론이라는 의미다. 계급에 따른 학력성취와 인식 격차를 종합하면, 능력주의 담론은 계급적이지만, 학력 성취는 덜 계급적이라는 의미다. 상당히 재미있는 발견이다. 하지만 얼룩소 분석글에서 이 점이 언급되지 않았다.  

 

천관율 기자의 분석 글에서 "착시"라고 얘기하는데, 뭐가 착시라는건지 아직은 모르겠다. 사회과학에서 착시란 심슨의 역설과 같은 것이다. 이대남이 착시고 계급이 진짜라면, 인구 집단을 세대가 아니라 계급으로 나누면 세대별로 결과가 같아져야 한다. 예를 들어, 35세 이상 상위계층의 반페미니즘과 능력주의 천착이 20대 남성 상위계층과 다를 바 없고, 35세 이상 하위계층은 20대 남성 하위계층과 다를 바 없어져야, 이대남이 계급의 착시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게 아니고 각 계층별로 20대 남성에서 반페미, 능력주의 성향이 다른 연령대보다 강화되었다면 이건 착시가 아니다. 설사 계급별로 상이성이 있더라도, 여전히 이대남 현상이라고 부를 수 있다. 

 

착시라고 얘기할려면, 적어도 하위계층에서는 세대별 격차가 없는데, 상위계층에서만 차이가 난다는 결과라도 있어야 한다. 이 경우, 이대남 현상은 상위계층 남성의 인식 변화 현상이 된다. 세대와 계급의 상호작용 효과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런 분석은 아직까지는 없다. 계층별로 능력주의에 대한 입장이 다르고, 미래에 대한 전망도 다르고, 부모의 역할에 대한 인식도 다르다는 건, 계층론의 상식이다. 착시라고 말할 수 있는 새로운 내용이 아직은 없다. 

 

즉, 착시를 얘기할려면 세대 간 격차에 대한 분석이 있어야 한다. 다음 얼룩소 글에서 이런 착시를 분석하는지 기다리고 있다. 35세 이상 그룹도 서베이했으니 충분히 분석이 가능하다. 한가지 궁금하게 생각하는건 공부방 계급론을 35세 이상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했는지다. 그랬다면 분포는 어떻게 다른지 매우 궁금하다. 이대남 현상이 착시라고 할려면, 35세 이상에게도 똑같은 공부방 계급론 항목을 질문했고, 동일한 기준으로 계급을 나누면 상, 하위 계층의 능력주의에 대한 응답 비율에 세대 간 격차가 없어야 한다. 다만, 20대남자는 돈걱정없고 공부방을 가진 비율이 증가해서 능력주의가 커진 것으로 나와야 한다. 달리 말해, 이대남 현상은 계급의 분포 변화로 인한 착시다. 정확히 심슨의 역설과 같은 논리다. 그래야 이대남 현상이 계급의 착시가 된다. 단순히 계급이 중요하다는건 착시가 아니다. 

 

페미니스트 관련해서, 앞에서 언급했듯 페미니스트의 성향이 공적 영역을 중시한다는건 놀랍지 않다. 이렇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 사회과학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 하나만 하는 사람은 없다고 했던가. 많은 사람들이 모순적 사고를 하지만, 집단으로 분석하면 상당한 일관성이 있다. 민주당 지지자가 미통당 지지자 보다는 평균적으로 더 진보적이고 더 공공성을 중시한다. 그렇다고 민주당 지지자 개개인이 모두 그렇게 일관적이지는 않다. 당연한 현상이다. 마찬가지로, 여성차별이 심한 한국에서 페미니스트가 상대적으로 더 약자에 우호적이고 공공성을 중시하는게 당연하다. 그러니 이 기사도 유용한 정보이기는 하지만, 놀라운 뉴스가 아니다. 심지어 반페미니스트에게도 이 뉴스가 기대하지 못했던 결과인지 의심스럽다.  

 

더 중요한 질문은 왜 이런 상식적 내용과는 관계없이 페미니스트가 사회에 도움이 안된다고 인식되고 있는가이다. 페미니스트의 성향이 아니라, 페미니스트의 내용이나 페미니스트가 여성 문제와 관련해서 제기하는 주장이 문제인데, 거기에 대해서 얼룩소는 질문하거나 분석하지 않는다. 페미니스트의 주장이 싫다는데 "사람은 착해"라고 엉뚱한 얘기를 한다는거다. 페미니스트의 주장이 사회에 도움이 될 것이 확실하고, 여러 국제기구도 페미니스트의 주장대로 해야 한국 경제가 더 발전할 것이라고 충고한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페미니스트를 싫어하나? 페미니스트가 뭔지 몰라서인가? 아니면 성별 평등 자체에 대해서 저항하는가? 계급적으로 페미니스트의 득세가 경제적으로 불이익이 되나? 아니면 미국에서 CRT가 뭔지 모르면서도 비판적이 되듯, 페미니스트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화가 성공해서인가? 쉽지 않은 질문이고, 서베이 한 두 개로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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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 분석글에 대한 코멘트다. 조금만 더 어깨에 힘을 빼주면 좋겠지만, 이 정도면 훌륭한 기사라고 생각한다. 진짜로 하고 싶은 얘기는 사회과학 저널리즘에 대한 것이다. 모든 영역의 전문가들은 그 분야에서 다 똑똑하다. 아마츄어가 범접하기 어려운 내공을 쌓고 있다. 사회과학도 마찬가지다. 서베이 돌려서 남들은 알지 못하고 연구하지 못한 뭔가 굉장히 새롭고 충격적인 얘기를 지속적으로 던지기는 어렵다. 

 

그런데 사회과학 저널리즘은 아는 얘기도 다른 사건에서는 다른 각도로 또 할 필요가 있다. 사회과학과 사회과학 저널리즘은 다르다. 사회과학 저널리즘에 대한 관심은 높아지는데, 저널리즘에 있는 분들이 사회과학, 사회과학 저널리즘, 그리고 저널리즘 사회과학의 차이에 대해 모른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저널리즘 사회과학은 프로페셔날 사회과학의 입장에서 보면 아마츄어다. 이 번 얼룩소 분석도 기사로써는 훌륭하지만, 사회과학적 분석의 잣대를 들이대면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다. 사회과학적 지식도 새로운 내용의 추가를 통한 점진적 발전인데, 새로운 내용 추가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사회과학 저널리즘을 할려면 사회과학자를 설문지 검토 용역에 동원하는 것 보다는, 사회과학자들이 프로페셔날한 영역에서 달성한 성취를 이용해야 한다. 사회과학 저널리즘을 하는 분이 사회과학자 중 누가 무슨 연구를 했는지 읽고 종합해서 알아듣기 쉬운 말로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사회과학자보다 사회과학 기자가 더 광범위하게 읽어야 한다. 사회과학자는 자기 전문 분야만 읽어도 되지만, 사회과학 기자는 덜 깊게 하지만 더 넓게 읽고 서로 다른 분야들을 연결시킬 수 있어야 한다. 사회과학 기자는 어떤 사회과학자가 어떤 분야의 전문가인지 관통하고 있어야 한다. 그게 진짜 정보다. 기사에서 사회학자들 코멘트 딴 것들 보면, 전문가가 아니라 친한 교수에게 대충 몇 마디 딴게 너무 눈에 보인다. 사회과학 저널리즘에서 필요한 능력 중 하나는 누가 진짜 전문가인지 파악하는 능력이다. 무슨 문제가 있을 때 누구에게 물어보는지 알고, 실제로 물어보고, 추가로 무슨 내용을 더 알아보면 되는지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전문적 영역이다. 

 

사회과학 대비 사회과학 저널리즘의 가장 큰 장점은 스토리 텔링이다. 좋은 사회과학 논문이나 저서도 스토리 텔링이 있다. 하지만 사회과학 저널리즘만큼 흥미롭지는 않다. 여러 사회과학 연구를 꿰어서 사회현상에 대한 스토리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사회과학 전문기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의 스토리를 꿰는 것이 어렵다면, 라쇼몽처럼 하나의 현상에 대한 여러 스토리를 전달하는 것도 사회과학 전문기자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다. 천관율 기자는 탁월한 스토리 텔러다. 하지만 이 분이 한 최근의 일부 작업은 사회과학 저널리즘이 아닌, 저널리즘 사회과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바라건대 "저널리즘 사회과학"이 아니라 "사회과학 저널리즘"을 하는 분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Ps. 사회과학자도 1회성 센세이셔널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기획에 곁다리로 참여하는건 이제 좀 자제했으면 좋겠다. 그런 기획이 필요한 때도 있지만, 진중한 질문이 필요한 현상을 그렇게 접근하는 한계는 너무 명확하지 않은가. 

Posted by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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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2021.11.10 17: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회과학 저널리즘에 대한 교수님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누가 전문가인지를 알고, 여러 깊으나 좁은 연구들을 연결하여 이해하고 의미를 찾아낼 수 있는 통찰력을 갖춘 진정한 사회과학 저널리스트의 등장을 기대하고 싶네요.
    이대남은 뭐가 착시의 증거라는 건지 기사를 다 읽어도 납득이 안가네요.

    • 바이커 2021.11.10 17:48  댓글주소  수정/삭제

      글에도 썼지만, 35세 이상도 설문했으니 왜 착시라고 주장하는지 얘기하지 않을까 기다리고 있습니다.

  2. MinK 2021.11.10 21: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십대남을 분석하는 키워드 제시에 사회과학자도 저널리스트도 상상력의 한계를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군대는 다른 세대에도 있었고 계급 역시 이십대남의 고유학 특성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면 웹하드, 불법촬영 문화가 현재 20대 남의 키워드일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는데 라고 보이는데 그런 얘기 하는 분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 그것또한 2021.11.10 23:36  댓글주소  수정/삭제

      고유한 특성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이십대의 대세 게임이 외부에서 보기에는 롤이라고는 하지만 롤을 실제로 하지 않거나, 관심이 없는 비율도 상당하니까요. 마찬가지로 불법촬영, 웹하드 등도 이십대의 고유특성이라기 보다는 이삼십대 소위 인싸 일부의 문화라고 봐야겠죠.

    • 청염 2021.11.10 23:54  댓글주소  수정/삭제

      웹하드와 불법촬영이야말로 ‘20대 남성문화’라 보기 어렵습니다. 이것은 아무리 낮게 잡아도 최소 40대 이하 남성이 모두 공유하는 문화입니다. 저는 ‘김본좌’가 대놓고 찬양받던 시절에 비하면 오히려 현재 20대 남성이 이 문제에서는 더 진보적(?)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 딱하나만 2021.11.11 00:05  댓글주소  수정/삭제

      지나가다가.. 원 댓글 쓴 사람은 아닙니다만 불법촬영, 웹하드가 40대 이하 남성이 공유하는건 동의하는데 그걸 인싸 문화라고 말하는 근거가 있나요? 인싸 문화가 무엇인지 궁금하네요.
      남초 커뮤니티나 남자들 사이에서 '국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법촬영물이 공유되거나 불법촬영물을 소비한게 인싸 아싸 가리지 않았던것 같은데요

    • 통계 2021.11.11 00:24  댓글주소  수정/삭제

      "한편 몰카범죄는 주로 30대 이하 연령대가 저지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4년간 몰카범죄로 검거된 총 2만994건 중 20대가 7,193건으로 가장 많았고 30대가 4,964건으로 두 번째로 많았다.

      소년범을 포함한 19세 이하 연령에 의해 발생한 것도 3,830건에 달했다.

      출처 : 굿뉴스365 - http://www.goodnews365.net/news/articleView.html?idxno=155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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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국회의원은 경찰청이 제출한 국정감사자료 ‘2014년 이후 카메라 등 이용촬영 범죄현황’ 자료 분석 결과, 2014년 이후 검거된 카메라 등 이용 촬영범죄 피의자가 1만 6,802명으로 매년 급증하고 있으며 남성 피의자가 전체의 97%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https://m.boannews.com/html/detail.html?idx=73259

    • 71 2021.11.11 03:03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십대남 특징이라면.. 펨코, 디씨 같은 익명 남초커뮤니티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다는 것 아닐까요? 3040에 비해 시간이 많으니 훨씬 남초커뮤의 논리에 중독되어 있을 것 같습니다 페미 나쁘다 라는 확증편향을 그런 곳에서 접하고 강화하는 것 같더군요.

    • j.k 2021.11.11 09:05  댓글주소  수정/삭제

      원댓글쓴 분은 '불법촬영'이 이대남이 보수화되고 다른 세대와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이유라고 생각하시는건가요? 비논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이십대 여성은 '팬픽'이 키워드라고 제시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참고로 제 입장을 밝히자면, 저는 10대고, 사회학을 뭣도 모르지만 남성 주류 문화가 공감능력이 떨어지고 확증편향이 심한 커뮤니티 문화에 물들었다고 생각합니다)

  3. 종종 2021.11.10 22: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러니 저러니 교수님께서 가장 많이 언급하는 기자는 천관율 기자네요. ㅎㅎ 그래도 가장 교수님 입맛(?)에 맞게 글을 쓰나 봅니다

  4. 지나가던사람 2021.11.11 02: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교수님 분석 잘 봤고 동의합니다.

    다만, 갑작스레 궁금한게 떠올라서 몇 자 남겨봅니다.

    천관율 기자의 분석은, 페미니즘 이슈 응답을 이용해서 k-means를 써서 그룹을 나눈다음, 다른 인권 이슈에 대해서 응답 경향을 분석했습니다.

    어제까지는 이에 대해서 별 생각이 없었는데, 생각을 해보니 이게 거꾸로 분석했어야 했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즉, 다른 인권 이슈의 응답 경향으로 k-means로 그룹을 만든 다음(약자에 친화적인 그룹, 비친화적인 그룹 등), 거기서 페미니즘 이슈의 응답 경향을 분석했어야 했던거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조선족과 난민에 혐오적인 사람이 페미니스트라면 그건 이 사람이 여성 이슈에만 관심이 큰거지, 인권에 친화적이라고 하기엔 되게 애매하지 않습니까.

    천 기자의 분석을 보고 '이거 정말로 페미니스트가 타 그룹에 비해 인권 친화적인거 맞나?'라는 의문들이 많이 제기 되던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분석이 거꾸로 됐단 느낌입니다.

    '착한 사람'을 분석해도, 착한 사람이 어느정도 여성 이슈에 관심있냐, 페미니스트는 어떤 층위로 구성되어있느냐가 중요하지, 평균적으로 페미니스트가 어느정도 착한지의 정보는... 응답경향이 저렇게 벌어지는 상황에서는. 애매한거 같습니다.

    • 바이커 2021.11.11 11:29  댓글주소  수정/삭제

      천관율 기자의 분석은 페미니스트의 profile이 아니라 페미니스트와 그렇지 않은 사람들 각각에서 다른 항목의 share를 따진 분석을 한 겁니다.

      "페미니스트는 누구인가"에 대해 질문이 누가 페미니스트가 되나라면 잘못된 답이고, 페미니시트는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들인가라면 맞는 답이죠.

  5. 71 2021.11.11 03: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티페미들도 놀라워하지 않을 글이라고 하셨는데..안티페미들은 천 기자의 글을 보고 페미들이 그렇게 착할 리 없고 사실은 페미들은 나쁘다며 화를 내더군요. 그게 천 기자의 의도 아니었을까요. 하도 치우쳐 있으니까요.
    안티페미들이 페미를 싫어하는 이유 페미니스트가 뭔지 몰라서이기도 하고 페미니스트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화가 성공해서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넷상 익명 남초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주고받는 확증편향이 이 현상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베가 사회문제가 될 때는 전체 인터넷이용자 중 일베 유저 비율이 비교적 낮았지만 최근 이십대 남성의 디씨,펨코 이용은 일상화되었고 유저 비율은 상당히 높습니다. 그곳에서 공유되는 글들은 일베와 다를 바 없는 수준이고요. 익명 남초 커뮤니티 없이 페미니즘악마화가 설명될 순 없습니다. 조사 대상자가 어떤 인터넷 사이트에서 하루에 몇 시간을 보내는제, 그리고 미디어를 얼마나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지 미디어 리터러시를 조사해본다면 답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동의 2021.11.11 04:55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동의하는데 천관율 기자 분석 자체를 거짓이라고 하는 안티페미들 많더라구요. 페미니스트들이 소수자 문제에 더 나은 응답을 한 게 위선이라고요

  6. 임성민 2021.11.11 04: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천관율 기자 글 읽다가 블로그를 알게 되었습니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첫글부터 쭉 읽게 되네요
    비아냥대는 댓글들 보니 저조차도 기분이 상하는데 어떻게 글쓰기를 지속하셨는지 존경스럽습니다
    앞으로 하시는 연구들도 관심 갖고 찾아보게 될 것 같네요
    번뜩이는 글들 잘 읽고 갑니다

  7. sw19classic 2021.11.11 06: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개인의 학업성취가 (더 정확히는, 학업성취를 위해 들인 투입의 양이) 출신계급보다는 좀 더 '이대남 현상' 을 잘 설명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다면 흙수저 공부방에서 공부했던 명문대생들은 공정·능력주의 담론에 대해서 자기 학우들보다는 덜 동의할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세습 중산층 사회》 도 떠오르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회적 이슈들이 계급의 대물림으로 환원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스칩니다.

    • 바이커 2021.11.11 11:31  댓글주소  수정/삭제

      흙수저 출신 명문대생 = 지위불일치(status inconsistency).

      관련된 주제에 대해 현재 작업 중인데 내년 중순 정도에 일부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8. JY 2021.11.12 23: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매번 잘 읽고 있습니다. 코멘트 마지막 문단이 정말 공감이 가네요. 페미니스트가 착한 사람이다란 결론 보가는 왜 그들에게 거의 악마의 이미지가 씌어졌는 지 설명하는 연구가 수행되면 좋겠네요.

    별개로 키워드 하나로 깊이있는 생각하나를 묶어버리는 방법은 정말 위험함에도 너무 널리 사용되고 있는 것 같아서 무섭네요.

  9. 익명 2021.12.24 11: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sovidence 2021.12.25 12: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당사자로서 충분히 그렇게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단어의 "함의"를 따지고 그에 어떤 음모론적 내용을 부과하는 것이 그리 생산적이거나 실체적 진실을 밝혀준다고 보지 않습니다. 단어의 생성 발전에 대해서 어떠한 전문가적 견해가 있는 것도 아니고요.

      오히려 독자적 분석 대상이 되면서, 실제 이미지가 더 나빠지고 사회적 토론의 대상이 된 것은 그 대상 자체니까요. 실체적 차이를 보여줄수록 그 단어에 붙을 수 있는 중의적 함의는 더 크게 퇴색될 것입니다.

    • 2021.12.29 21: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비밀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