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번 대선이 인물이 아니라 정책 선거였다고, 링크된 글의 5번에 나오는 진단이다.
황당하다고 느끼실 분들도 있겠지만, 저는 동의한다. 이 번 대선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얘기한적이 한 번도 없는데, 해외 거주 관찰자로서 이 진단에 동의하는 이유에 대해서 얘기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대의제에서 정책 노선 선거는 사실 매우 피곤한 일이다. 아래 글, 이념적 일관성에서도 얘기했지만, 오래 단련된 정치인이나 사상가가 아니면 이념적 일관성을 유지하기 어렵다. 각각의 사안에 대한 정책적 판단은 골치아프고 힘들다. 사회과학자를 포함한 대부분의 전문가도 자기 분야만 안다. 이럴 때 어떤 인물에 대한 인상에 기반해서 투표하면 취득해야 할 정보량을 줄여줘서 효율적이다.
진영에 기반해서 투표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대략적인 지향점은 있는데, 각 정책에 대한 지식은 부족할 때 진영에 기반해서 투표하면 실패할 확률이 낮다.
물론 투표하는 이유가 정책적 선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집권 세력에 대한 불만의 표시도 한 의견이고 충분한 선택 이유다. 특정 정책에 대한 선호 때문에 스윙보트가 되는 것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고 싶은 얘기는, 이러한 스윙보트가 진영 기반 투표 대비 도덕적으로나 정책적으로 더 나은게 아니라는거다. 오히려 진영 기반 투표가 스윙보트보다 더 일관된 정책적 선호에 기반한다. 달리 말해, 도덕성 이슈가 아닌 정책 이슈에서는 진영논리가 평균적으로 더 낫다.
한국에서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말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열정, 책임감, 균형감각 중에서 후자의 두 개를 강조한다. 그런데 정치인의 첫번째 자질은 대의에 헌신하는 열정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정치인이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이 첫번째 자격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면서 이걸 우습게 안다. 마치 이 자격조건의 미달이 미덕인줄 착각한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마라!
이 번 선거에서 한국의 과거 어떤 선거보다 양당 후보 간 정책적 이질성이 크게 드러났다. 이전에는 이 번 선거 대비 이질성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다. 진보와 보수의 가장 큰 차이는 경제, 사회정책이라기보다는 권력 집행의 방식이었다. 이명박 정권 시절의 민주주의 후퇴는 심각했다. 국정원 직원이 댓글 알바로 활동하다 걸렸으니 오죽 했겠는가.
민주당이 퍼주기 복지 공약을 한다고 하지만, 박근혜 후보 시절에 가장 중요한 공약이 기초연금이었다. 2016년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 여의도 연구소에서 어떻게 페미니즘을 당내에서 정책적으로 구현할 것인지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토건의 기수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청계천을 복원할 때 친환경을 그 이유로 꼽았다. 외국의 보고서에서 가장 친환경 지도자로 가카가 선정되기도 했다.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 버스노선을 개편하고 욕먹고 있을 때, 노대통령이 어중간하게나마 옹호한 사실도 있다. 이민자를 처음으로 국회의원으로 추대한 것도 박근혜대통령이었다.
박근혜 대통령 시절에 연말정산 공제혜택을 줄여 세금을 인상할려고 했을 때, 당시 야당 대표였던 문재인 대통령이 결사 반대했던 것도 상기하길. 제가 기억하는 정치인 문재인의 가장 큰 삽질이 이거다. 광범위한 세원에 대한 과세로 복지국가를 앞당긴다는 원칙에 역행했다. 단기 정치 이득이 아니라 일관된 이념에 입각해서 판단했다면 취하지 못했을 노선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 누구보다 국방을 강화했다. 한국이 강고한 군사강국이 되었다. 동남아 정책을 보고있자면 새끼 제국주의자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립서비스가 아니라 힘에 기반한 평화 노선에 가장 충실했던게 문재인 정부다.
이렇게 정책적 격차가 크지 않으니 인물 위주의 선거, 권력행사 행태를 둘러싼 도덕성 위주의 선거가 된다. 그런데 정책이 실종된 인물 위주의 선거는 역설적으로 정책적 격차가 작아서 정책적으로 국론이 분열되지 않았다는 긍정적 의미다. 86세대의 기여 중 하나를 찾는다면 저는 이것을 꼽고 싶다. 여야 모두 정치 중심이 86 운동권 세대가 되면서 여야의 지향점이 상당히 비슷했다. 정책이 실종되고 도덕성 위주의 논리가 판을 치는게, 뒤집어 생각하면 국론 통일의 현상이다. 단단한 관료제에 기반한 국정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이런 국론 통일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이와 대비해서 운동권 출신 86세대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새로운 세대의 선호가 충돌한 이 번 대선이 얼마나 큰 정책적 분열을 드러냈는지 생각해보라. 한국에서 노동조건 악화와 복지 축소, 성별 평등 약화를 명시적으로 표명한 첫 정치세력의 등장이다. 권력 구사 행태에 정책적 격차가 더해졌다.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는 잘 모르겠다. 윤석열-오세훈으로 이어지면서 정책적으로 진영 격차가 확산되는 전기가 될지, 여전히 부족한 복지와 다양성 관련 정책에서 외국의 사례를 좌표로 삼아 앞으로도 비슷한 방향으로 변화할지.
조만간 핵심노동인구의 축소를 경험할 한국은 (1) 외국인 수용, (2) 여성의 사회 진출 확대, (3) 정년 연장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 번 선택은 이 세 가지와 모두 배치되지만, 위 세가지 노선 외의 길은 국가적 자살인데, 설마 그 길을 가랴 싶다.
마지막으로 최선의 정책은 "중산층에게 이득이 되는데 빈곤층이 묻어가는" 것이라는 얘기를 또 하고 싶다. 투표를 하는 중산층의 지지를 받는데, 그 혜택이 빈곤층에게도 돌아가야 한다.
여러 번 얘기했지만, 한국 불평등은 상위 1%, 10%의 상층이 차상층보다 훨씬 많이 버는 상위 불평등이 아니라 빈곤층 20%가 차하위층보다 심각하게 더 가난한 하위 불평등에 의해 특징지워진다. 문재인 정부는 하위 20%의 처지를 개선해서 빈곤을 줄이고, 불평등을 축소하는데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이 성과는 중상층의 소득이 늘지 않고, 부동산 문제가 악화되는 가운데 진행되었다. 이런 정책은 지속성을 담보하지 못한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최저임금 1만원을 지지하는양 떠들었지만, 막상 정책적으로 문제되니 그 누구도 나서서 옹호하지 않았다는걸 기억하라. 최하층은 정치적으로 조직되지 않는다.
Ps. 트럼프 대통령 시절에 그토록 제도로서의 정부 기관이 망가지고 혐오가 극심했지만, 의외로 인종 간 경제 격차는 상당히 줄었다. 흑인의 빈곤이 상당히 크게 감소했다. 백인 대비 감소폭이 더 크다. 흑인만 그런게 아니다. 히스패닉계, 아시안계, 기타 인종의 소득 증가율이 거의 전 분위에 걸쳐서 백인보다 더 높다. 최근 목도되는 소수 인종의 보수화에는 이러한 경제적 배경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