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하는 논문을 쓰기도 했지만, 이철승 교수의 <불평등의 세대>에 이런 주장이 나온다. 한국의 세대는 30년대생, 60년대생이 장기 세대를 형성했다는 것. 30년대 전쟁 세대의 자장 속에 그 다음 20년이 포괄되어 있고, 60년대생 86세대의 자장 안에 70-80년대생의 다수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세대 30년 주기설 비슷하다. 그렇다면 다음 세대는 90년대생이 주축이 되어서 형성된다. 

 

장기 386 시대라는 진단에 경기를 일으키는 분들이 많은데, 86세대에 대한 선호와 관련없이, 장기 386 시대는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30년대생 이후 세대의 영향력이 그렇게 쉽게 없어지지 않은 것과 비슷하다. 

 

이 번 선거에서 60대 이상과 20대 남성의 연합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되었는데, 고연령층과 청년층의 세대 연합으로 86세대를 포위하자는 아이디어를 처음 낸 사람은 조갑제다. 20년 전의 일이다. 조갑제는 2002년에 당시 40년대생인 50대가 돈의 힘으로 자식뻘인 당시 70년대생인 20대를 "교육"시켜서 86세대인 30대를 고립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40대인 70년대생은 가장 강력한 민주당 지지 집단이니 조갑제의 기획이 원안대로 실현되지는 못했다. 

 

86, X, M, Z 등 10년 단위로 세대를 나누는 것은 의미없지만, 30년 장기 세대로 나누면 연령, 시대 효과와 독립적인 세대 순효과가 있다고 주장해볼 수도 있다. 세대 간 연대는 부모-자식 세대가 연대해서 삼촌-고모 세대를 고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조부모-손자 연대해서 조부모 입장에서 자식세대를 손자 입장에서 부모 세대를 고립시키는 것. 그리스 로마 신화의 크로노스 vs. 제우스부터 시작해서 권력은 부모-자식 간에 가장 나누기 어려운게 아니겠는가. 

 

진지하게 하는 주장 아니고, 그냥 재미있자고 한 얘기다. 

 

 

 

 

세대론만 얘기하면 나오는 약방의 감초, 만하임은 같은 세대 내부의 격차로 "세대 단위(unit)"라는 개념을 내세운다. 같은 객관적 세대에 위치해 있더라도 다른 세대 단위를 형성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19세기 초 독일의 낭만-보수파와 리버럴-합리주의파가 같은 세대 내의 다른 세대 단위라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20대에서 형성되고 있는 1번남 vs 2번남, 페미니즘 여성 대 공정원칙 남성은, 한국에서 같은 세대 위치 내 서로 다른 세대 단위가 등장한 것이 아닌가 싶다. 같은 연령 세대 내에서 서로 적대적이고 대립하는 세대 단위의 형성이다. 

 

한국에서 서로 대립하는, 비슷한 인구 규모의, 복수의 세대 단위가 형성되는 것은 현재의 20대가 근현대 역사상 처음이 아닐까 싶다. 윤석열-나경원-오세훈도 모두 86세대지만 이들은 86세대 내에서 하나의 세대 단위를 형성하지 못했다. 고립된 소수라 해야 마땅할 것이다. 86세대는 그 내부에서 적대적 성향을 가지는 두 개 이상의 단위가 형성된 것이 아니라, 새로운 하나의 커다란 세대가 있고, 고립된 자들은 이 전 세대와 자장 안에 포함되어 있었다. 이에 반해 현재의 20대는 성별이라는 생물학적 변수를 중심으로 두 개의 경쟁하고 대립하는 단위가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만하임의 세대론도 짧은 글이지만, 그 중에서 세대 단위의 형성은 더 짧다. 그 짧은 글에 여러 얘기가 나오지만, 그 중에서 세 가지가 생각난다. 하나는 고립되어 있던 이 전 세대 위치의 인물들이 새로운 태도 형성의 중핵으로 전개된다는 것이다. 인물도 중요하지만 고립된 전 세대 인물들이 가졌던 사상은 더욱 중요하다. 페미니즘도 능력주의도 현재 20대에게 갑자기 새로운 사상은 아니다. 만개하지 않았을 뿐 이전에도 존재했다. 이 전 세대 인물이 새로운 세대의 중핵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한국은 86세대를 형성한 노무현이 대표적 사례가 아닐까 싶다. 

 

다른 하나는 세대 단위를 형성하는 힘이다. 세대 단위 이해에서 아마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만하임의 표현을 빌리자면 "근본적으로 통합적인 태도와 구성적 원칙"이 있어야 한다. 어렵게 말했지만, 삶의 태도를 형성해 나가는 원칙이 되는 새로운 이데올로기적 세계관이 있어서 새로운 세대 단위가 형성된다. 공정과 능력주의로 대표되는 이십대 남성의 주장과 페미니즘으로 대표되는 20대 여성의 주장이 바로 이러한 세계관이리라. 86세대는 민주주의, 평화, 상식 등 선과악의 대립이었지 2개의 사상적 대립은 아니었다. 그러니 86세대의 내부는 대립하는 두 개 이상의 단위가 아니라 하나의 거대 세대단위와 주변화된 일부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에 반해 현재의 20대에서 형성되고 있는 두 개의 세대 단위는 "근본적으로 통합적인 태도와 삶을 구성하는 원칙"이 되는 대립하는 사상을 가지고 있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한국 근현대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마지막으로 소집단과 세대 단위의 관계를 만하임은 얘기한다. 한국에서 능력주의에 기반한 보수 세대 단위의 시작으로 일베를 꼽지 않을 수 없다. 인터넷의 퇴행적 놀이로 시작했던 집단이 내재한 잠재성을 실현해서 하나의 실제 세대로서 단위를 형성한 역사적 계기는 조국 사건과 인천공항 정규직화 사건이 아닐까 싶다. 페미니즘을 중심으로 한 다른 세대 단위는 맹아가 된 소집단이 없었다. 2016년 강남역 살인 사건으로 잠재성으로 펴져 있었다. 하지만 이 번 선거를 계기로 n번방을 추적했던 불꽃이 새로운 세대 단위의 구체적 표현을 제공하는 소집단이 되지 않았나 싶다.  

 

현상적으로 86세대가 노무현이라는 이 전 세대 인물을 핵으로 "근본적으로 통합적인 태도와 삶을 구성하는 원칙"을 가진 장기 세대를 형성했다면, 현재의 20대는 이준석과 박지현이라는 동세대 인물을 대표로 세계관이 다른 두 개 단위의 장기 세대를 형성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실제 그렇게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알겠지만. 

 

이렇게 보면 세대론은 세대 간 불평등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관의 등장과 세대 내 충돌을 이해하는 틀이 된다. 즉, 세대론이 지적기획에 기반한 사회변동론이 된다.

Posted by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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