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소스는 기억나지 않는데 2000년대 초반에 미국에서 네오콘이 아프칸, 이라크 점령할 때 읽었던 인구학 관련 글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앞으로 인구 고령화로 지상군 규모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물리적 점령이 불가능하다고. 심지어 중국도 점령이 가능한 병력 유지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현재 징병 대상을 대부분 징집하는 실질적 징병제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는 아래와 같다. 확실한거 아니고 대충 따져본거다. 나머지 국가는 명목적 징병제지만, 여러 이유로 징병 대상자의 대다수가 군복무를 하지 않아서 실질 징병제가 아니다.
- 미주: 쿠바, 콜롬비아
- 아시아: 남한, 북한, 베트남, 라오스
- 유럽: 핀란드, 오스트리아, 그리스, 터키, 스위스
- 중동: 시리아, 아르메니아, 이란, 이스라엘, 투르크메니스탄, 쿠웨이트, 카타르, 아랍에미레이트,
- 아프리카: 이집트, 에리트레아, 앙골라
이 중에서 남녀 모두를 징병하는 국가는 세 개다: 북한, 이스라엘, 에리트레아. 빠진 곳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어쨌든 남녀를 모두 실질적으로 징병하는 국가의 수가 매우 적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나마 이들 세 개 국가도 성별로 요구되는 복무기간이 다르다. 북한 여성도 징집 조건이 남성과 다르다.
전세계에서 남녀를 모두 어떠한 차별도 없이 공평하게 징집하는 국가는 최근에 읽은 글에 따르면 두 개다. 노르웨이와 스웨덴. 스웨덴은 남성만 의무징집하다가 2018년부터 남녀 공평하게 징집하기 시작했다. 스웨덴의 양성평등 징집 역사는 진보와 여성 측에서 여성의 군대 내 지위 획득을 요구하고, 남성이 이에 저항한 기록이다. 여성은 전투나 특정 지위에 맞지 않다고 거부했었다. 이렇게 되기까지 스웨덴은 50년 동안 논쟁했다. 웃기는건 2010년에 양성평등 징집법이 통과되었는데, 이 때 딱 징집을 중단했다. 평화시 징집 중단. 남자만 징집할 때는 스웨덴 남성의 최대 85%가 군복무를 했다. 2010년에 중단했던 징집을 2018년에 남녀 평등하게 다시 시작했는데, 2018년 징집 인원은 연간 4천명에 불과하다. 징집 대상의 5% 미만이다. 노르웨이도 말이 좋아 징집이지 안가면 그만이다.
그러니까 징집 대상 남녀 모두를 전투병 지원병 구분없이 동등하게 실질적으로 징집하는 국가는 전세계에 하나도 없다. 그나마 이스라엘과 북한이 가장 가까울려나. 그런데 이스라엘은 건국서부터 남녀 모두 징집했다. 남성 징집에서 양성평등 징집으로 바꾼 사례가 아니다. 북한이 작년인가에 처음 실시했고.
미국은 모병제지만, 법률적으로는 징병이 가능하다. 18-26세 남성은 드래프트에 등록해야 하고, 35세까지는 필요할 경우 군복무를 해야 한다. 사실상의 모병제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남성만 드래프트에 등록하는게 위헌이라는 소송이 있었다. 1980년대에는 합헌 판결이 났고 2019년에는 하위 법원에서 위헌판결이 났다가, 다시 뒤집어졌다. 대법원까지 갔는데, 대법원에서는 의회에서 검토 중이니 우리는 검토안한다고 2021년에 판결했다. 한마디로 결정을 미루었다. 징병 제도를 바꾸어도 실제로 징집하지 않고 행정 등록 대상만 바뀌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질질 끈다. 제 느낌적 느낌으로는 언젠가 남녀 모두가 드래프트에 등록하도록 법률이 개정되기는 할 것 같다.
제가 짐작하는 남녀 모두를 징병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원래 안했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군대는 남성 위주였는데, 남녀를 모두 징병할려면 추가해야 할 제도적 조건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훈련, 배치, 조직 구조, 시설, 배급 등등. 갑자기 절반의 사병이 여성이 되는 이행이 혼란 없이 진행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 군에서 선후임의 관계는 훈련, 노하우 전달, 암묵지 학습의 제도인데, 여군 내에서 이를 구축하는데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이다. 초기에 대규모 징집된 여성을 어떻게 훈련시키고 군인으로 만드는지 모르면 배워오면 되는데, 배울 수 있는 사례도 마땅치 않다.
여성 징병의 시작 연령이나 출생연도를 어떻게 할지도 고민이다. 이행 초기에 군대 내에서의 성희롱등 여성 인권 문제는 오히려 부차적일 것이다. 남성 징병에서 양성평등 징병으로의 이행은 상당히 큰 정치적 리스크를 짊어져야 한다. 어떤 정치세력이 무슨 이득이 있다고 리스크를 감수하고 이런 수고를 하겠는가. 점령을 염두에 둔 군사목적이 아니면 지상군 규모 유지의 필요성도 점점 떨어지는데. 차라리 징병제에서 모병제로 전환하는 정치, 경제, 사회적 비용이 싸게 먹힐거다.
한국은 통일이 헌법조항인데, 이는 유사시 대규모 지상군을 통한 점령을 필요로 한다. 이에 반해 징집 가능 인구는 줄어들고 있다. 그런 면에서 양성평등 징집의 실질적 필요성을 얘기할 수 있다. 북한에 이어 전세계에서 두 번째로 남성 징집에서 실질적 양성 징집으로 군역체제를 바꾼 국가가 될 수도 있을지. 하지만 방어가 아니라 통일을 위한 징병제 확대를 얘기하면 얼마나 먹힐지 모르겠다.
저도 뭔가를 알아서 하는 얘기는 전혀 아니고, 규범적 차원을 벗어나 따지기 시작하면 양성평등 징집이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는거다. 타 국가의 사례도 마땅치 않고. 그래서 이건 진지한 정책적 고려 대상이 되기 보다는 그냥 떡밥으로 머물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