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 종료와 더불어 탄핵 표결도 통과되어 가벼운 마음으로 겨울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몇 가지 감상이 있는데, 

 

첫 번째는 생각보다 적었던 국민의힘 국회의원의 탄핵 찬성 투표다. 2016년 박근혜 탄핵 당시에는 국민의힘의 전신인 새누리당 의원(128명)의 절반이 찬성했다. 이 번에는 108명 국민의힘 의원 중 12명만 찬성이다. 탄핵은 200명의 찬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기권이나 무효는 반대와 다를 바 없다. 

 

2024년의 윤석열 탄핵은 그 이유와 정당성에서 2016년 박근혜 탄핵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명확하고 중하다. 내란 2주만에 탄핵이 이루어졌다는 면에서 희망적이지만, 내란의 죄를 범했음에도 국민의힘 의원 중 10%만이 탄핵에 찬성했다는 면에서 놀랍다. 

 

한국 보수당은 삼당합당의 전통이 있었다. 민정당 계열 뿐만 아니라 민주화 운동을 했던 김영삼의 민주당 상도동 계열이 큰 분파를 차지했다. 박근혜 탄핵 시기의 민주당 계열 지도자가 김무성 아니었던가. 이 번 탄핵 투표 결과는 국민의힘이 더 이상 보수적 이념을 기치로 다양한 스펙트럼을 포괄하는 국민정당이 아니라 상당히 순혈적인 극우이념정당으로 바뀌었다는 징표가 아닌가 싶다. 

 

다른 한 편으로 이 번 탄핵 투표는 적어도 민주주의에 대한 공통된 인식을 가지고 여야 모두에 영향을 끼치던 86세대가 더 이상 한국 정치의 좌우 정당 모두에 영향을 끼치지는 못하게 되었다는 표식이 아닐까 싶다. 86 운동권 세대가 보수 정당에도 큰 영향을 끼치는 시대는 지나갔다. 

 

민주주의 운동을 했던 세대의 보수 영향력 쇠퇴는 민주주의 절차에 대한 광범위한 합의와 불가역성을 전제로 한다면 딱히 아쉬워할 일도 아니다. 하지만 이 번 탄핵 투표 결과는 그 전제가 성립하지 않는다는걸 의미한다. 한국에서 보수 정치가 크게 쪼그라들 가능성이 크지 않은걸 고려할 때, 앞으로 한국 정치가 어떤 세력에 의해서 분점될지 두려운 마음이 있다. 

 

 

 

첫 번째가 절망 편이라면 두 번째는 희망 편이다. 군수뇌부는 윤석열의 반란에 저항하지 않았지만, 그 아래 영관급 부터는 반란에 적어도 소극적으로는 저항했다. 한 사회가 법과 제도에 따라 운영이 되기 위해서는 이를 존중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광범위한 시민을 필요로 한다. 민주주의의 위기 앞에서 분연히 떨처일어나는 각성된 시민도 필요하지만, 일상 생활에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고 주어진 권한의 사용에 두려움이 없으며 타인의 역할과 권한을 존중하는 시민층이 필요하다. 말은 쉽지만 상부에서 압력을 가해질 때 이 원칙에 따라 행동하는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이 번 사태를 통해 한국 사회에서 그런 시민층이 존재한다는게 확인되었다. 

 

 

 

세 번째는 다시 확인된 청년 세대의 성별 분화다. 여의도 광장의 최대 인파가 20-30대 여성인데 반해 청년 남성의 수는 매우 적었다는 것은, 청년 세대의 정치적, 문화적 태도에서 성별 분화가 있을 뿐만 아니라, 사회 참여에서도 상당히 큰 분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일전의 포스팅에서 한국 사회 전반에서 대인 신뢰와 사회적 신뢰가 증가하고 있는데, 청년 남성에서만 오히려 하락하고 있다고 보여준 바 있다. 청년 남성의 "상대적" 신뢰 저하는 최근 코호트에서 생긴 새로운 현상이 아니라 2000년대 들어 전 코호트에 걸쳐 꾸준히 진행된 현상이다. 하지만 사회참여에서 성별 분화가 있다는 것은 이 번에 처음 확인된 것이 아닌가 싶다. 

 

태도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참여에서 성별 분화가 일어나면 앞으로 어떤 사회적 현상이 나타나는건지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사회변동을 이끄는 인구학적 동력에서 전인미답의 영역으로 들어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마지막으로 기관 신뢰도의 변화다. 아래 그래프는 KGSS를 이용해서 2003-07 대비 2018-23 기관별 지도자들의 신뢰도 변화다. 첫 번째 그래프는 신뢰도가 증가한 곳이고, 두 번째는 하락한 곳이다. 

 

 

 

여기서 드러내는 전반적 경향은 정부와 기업의 리더에 대한 신뢰도는 높아지고, 시민사회의 리더에 대한 신뢰도는 낮아진거다. 대부분의 정부 기관 신뢰도가 높아졌는데, 예외가 두 군데 있으니, 대법원과 군대다.  

 

이 번 윤석열 일당의 내란 사태는 한국사회에서 증가하고 있던 대통령실의 신뢰도에 충격을 가할 것이고, 군장성들에 대한 신뢰를 더욱 낮출 것이다. 앞으로 군은 시민의 신뢰를 어떻게 득할지 깊은 고민을 필요로 한다. 

 

지난 20년간 낮아진 시민사회에 대한 신뢰가 이 번 사건을 계기로 전환될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는다. 시위 문화가 응원봉과 K-pop으로 바뀐 건 이러한 변화를 반영하는 현상이 아닌가 싶다. 비어가고 있는 시민사회의 공간을 채울 수 있는 대안이 그것 밖에 없어서가 아닌지. 

 

 

 

Ps. 바로 위에 언급을 하긴 했지만, 응원봉과 K-pop 이 뭘 의미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승환은 그렇다치고, 아이유와 소녀시대는 되는데 싸이는 안되는 K-pop과 시위의 결합이 뭔지. 화염병에서 촛불로, 촛불에서 응원봉으로 변화하는데, 전자의 의미는 명확한데, 후자는 의미가 있는건지 아닌지도 잘 모르겠다.  

 

Pps. 내란이라는 큰 사건이 벌어지니 여러 분들의 분석이 빛을 발하더라. 계엄이 선포되고 무산된 직후 긴급 좌담회를 개최하고, 페북과 언론에서 맹활약한 박종희, 박원호 교수를 비롯한 정치학자들. 윤석열의 담화가 어떻게 사실과 어긋나는지 일목요연하게 분석한 이기은 선생의 팩트 체크. 뉴스타파의 기록생활인구 분석. 천관율 기자의 여전한 분석력과 글발. 슬로우 뉴스 이정환 기자의 요약 등등. 

 

Ppps. 이 전 포스팅의 신뢰도 변화 그래프를 보고 이상한 소리하는 분들이 몇 명 있던데, 나중에 그래프 그리는 법에 대해서 한 번 얘기하고자 한다. 

Posted by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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