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대통령 선거 결과는 다들 예상하셨을 것. 화제는 20대 남성의 높은 김문수, 이준석 지지율인 듯. 아래 그래프에서 파란색이 이재명, 빨간색이 김문수, 주황색이 이준석이다. 이제 한국에서 가장 보수적이고, 가장 극우적인 집단은 70대+가 아니라 20대 남성이다 (소스는 요기).
여기저기서 한탄이 나오니, 늘상 그러했듯, 20대 남성 내부의 다양성을 근거로 20대 남성을 극우라든가 펨코/일베로 단순화해서 비난하지 말라는 주장도 나오는 중.
이 번 글은 왜 내부다양성 논리가 이제는 폐기해야할 허약한 논리인지 논하고자 한다.
거의 언급이 안되지만, 이철승 교수의 <불평등 세대>에 이런 논리가 나온다. 세대 내 불평등과 세대 간 불평등을 단순 비교해서 세대 내 불평등이 크다고 세대 간 불평등을 시대적 변화의 핵심으로 간주하지 않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된다는거다. 제가 세대 불평등의 가장 큰 비판자 중 한 명이었지만, 이 논리는 동의한다. 5년 전에 썼던 논문도 이 논리를 인정하고 통시적 변화에서 세대 간 불평등의 중요성을 본 것이다.
이철승 교수의 논리를 인정하지 않으면 거의 모든 집단 간 구분이 의미를 상실한다. 노동자와 자본가 모두 내부의 다양성이 큰데, 그렇다고 계급론이 의미가 없다는건가? 증가하는 (내지는 감소하는) 계급의 중요성이란, 설사 계급 내 다양성이 크더라도 계급 간 평균 격차의 통시적 변화에 대한 기술이다.
정치에서도 마찬가지다. 김문수가 좌파였던 시절의 노학연대는 노동자와 학생의 내부 다양성을 몰라서 하는 말인가? 현대 정치 분석에서 자주 사용되는 여러 인구 집단 간 coalitions은 모두 내부 다양성이 아니라, 다양성에 불구하고 드러나는 경향성에 대한 기술이다.
통시적 변화 뿐만이 아니다. 집단에 대한 기술도 마찬가지다. 거의 항상 집단 내 다양성이 집단 간 격차보다 크다. 집단 내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드러나는 집단 간 평균의 격차를 집단 간 차이로 기술하는 것이다. 집단의 특성을 말하는 사람들이 집단 내 다양성을 몰라서 그러는게 아니다. 내부 다양성이 크지 않은 대규모 집단은 없기 때문에, 집단 내 다양성 논리는 항상 옳다. 달리 말해, 내부 다양성 논리는 심지어 틀리지도 않는 논리다. 이 자체로 보면 검증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논리 자체가 안된다.
그렇다고 집단 내 다양성이 전혀 의미가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집단의 평균적 특성에 대한 기술과 다양성에 대한 강조가 경쟁할 때, 두 논리 중 어느 논리가 실제 행동과 결과 예측에 도움이 되는지 봐서, 다양성에 대한 기술이 결과 예측에 더 적합하면 집단에 대한 평균적 기술의 논리를 기각할 수 있다.
그럼 다양성에 대한 강조의 의미는 무엇인가? 다양성에 대한 기술이란, 다른 집단과 구분되는 특정 집단의 평균에 대한 기술이 일부 현상을 확대 과장한 것이고, 실제로는 다른 집단과 차이가 없다는 의미이다. 즉, 집단의 특성에 대한 기술의 안티테제로서 다양성 기술이 의미를 가진다. 영가설과 대립가설의 관계 비슷한거다.
사고 실험으로 두 논리를 이 번 선거에 적용해 보자. (a) 20대 남자는 극우/펨코/일베다. vs. (b) 20대 남성은 내부 다양성이 크다. (a)는 위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지만, (b)는 위 결과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오히려 (b)는 왜 70%의 20대 남성이 보수 내지는 극우적 선택을 하는지 예측하지 못한다. (b)의 논리는 20대 남성의 투표 성향이 다른 집단과 별로 다르지 않아야 한다. 위 그래프에서 보다시피 (b)의 논리는 지지받지 못한다. 영가설이 기각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파하는 다양성 논리는 물타기일 뿐이다.
현재 20대 남성에 대한 일반적 기술로 현재는 "극우/펨코/일베화 되었다"라는 기술이 있을 뿐이다.
이 기술에 대해서 3가지 대응, 내지는 연구가 가능하다.
(1) 그렇지 않다. 20대 남성은 다양하다. 위에서 말했듯, 다른 모든 집단도 다양하기 때문이 이 논리는 20대 남성이 다른 집단과 다르지 않다는 영가설이다. 지금까지의 선거와 여러 서베이 결과는 이 논리가 틀렸다는걸 드러낸다. 이제 파기해도 좋을 가설이지 않을까 싶다.
(2) 두 번째 대응은 극우/펨코/일베화가 아닌 다른 가설을 제기하는 것이다. 제가 과문해서 모르는 것일 수 있지만, 아직까지는 없는 듯 하다.
(3) 세 번째 대응은 극우/펨코/일베화의 "경향성"을 설명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방향이 있다. 하나는 경향성의 다양한 진화 내지는 행태를 추적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런 경향성이 왜 생겼는지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극우화 경향성의 인구학적, 계층적 다양성을 연구할 수 있다. 여기서 다양성은 20대의 다양성이 아니라, 20대 일베의 다양성이다. 아니면 김학준 선생의 <보통 일베들의 시대>처럼 웃음 코드가 어떻게 일베 코드가 되는지 담론적 분석도 가능하다.
이제 20대 남성에 대한 설명으로 다양성 논리를 넘어서야 하지 않겠나. 반복된 검증에서 계속 기각되었는데 왜 아직도 이 논리를 펴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