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계몽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게된 계기는 주체사상 덕분이다.

80년대 대학시절, 즉자적 계급은 계몽이 덜 된 상태, 대자적 계급은 계몽이 된 상태 정도로 일천하게 인식하고, 한국에서 군부독재의 지속이 정보의 부족에 기인한다고 굳게 믿었드랬다. 5.18 광주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만 제대로 알리면 군부독재는 타도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사고를 무참히 깨뜨린 것이 황장엽 선생이 창조한 주체사상이다. 지금까지 읽었던 철학사조, 사회과학 이론 중에 가장 한심하다고 생각하는게 주체사상. 이런 식의 사변적인 사고방식은 학계에서 오래 전에 사라졌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기에 충분한 정보를 접하고, 충분히 교육받고, 충분히 많은 책을 읽고, 충분히 사고하고 고민했던 동지들, 동료 대학생들이 주체사상을 받아들이다니.

인간 이성의 진보가 유토피아를 가져올거라는 19세기적 미래주의적 사고가 1차 대전을 거쳐 깨져나갔던 역사적 경험을, 나 개인으로써는 나름 지성인이라고 믿었던 대학생들이 주체사상을 받아들이는 걸 보고 체험하였다고 할까. 계몽이 덜 되어서 혁명이 안일어나는게 아니란 걸 그 때 깨달았다.

그 주체사상을 창조한 황장엽씨가 훈장을 받고 국립현충원 안장이 거론된단다.

주체사상을 창조한 분에게 어울리는 상은 훈장과 국립현충원 안장이 아니라 노벨평화상이나 노벨경제학상이 아닐까? 그냥 노벨상 말고, 이그 노벨상.

예를 들면 올해 이그 노벨 평화상은 욕을 퍼붓는게 고통을 경감시킨다는 연구가 받았다. 툭하면 주체사상에 근거해 서울불바다 등의 욕설을 퍼붓는 북한 사회가 얼마나 인민의 고통을 효율적으로 경감시키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런 사회를 만드는 사상적 근간을 제공한 황장엽씨가 이 상을 못받을 이유가 없다.



ps. 노벨상은 망자에게는 수여되지 않는다. 하지만, 개인은 죽어도 사회적 생명은 죽지 않는다는 주체사상에 입각해, 황장엽 선생은 영생을 누리는 것이기에, 지금도 이그 노벨평화상을 황 선생에게 수여하기에 늦지 않았다. 훈장이 아니라 이그 노벨상을 황선생에게.
Posted by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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