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에 관해 전문적 지식이 없기 때문에 그리 깊은 얘기를 할 수는 없지만, 상식적 수준의 얘기는 할 수 있다. 아마 며칠 전 짧은 포스팅에 발끈하는 분들도 추정컨데 대부분 외교에 대해서 전문적 지식과는 거리가 먼 분들일 거다. 너무 흥분하지 마시라.

내가 알기로 현대 외교의 기본은 상호주의다. 상호주의가 아닌 다른 방식의 외교는 지속성과 안정적 평화를 유지하는 측면에서 대부분 상호주의보다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 외교에서 평화를 유지하는 최선의 방책은 현재까지 알려진 것 중에서 상호주의가 가장 낫다는 의견이 지배적.

하지만 남북 관계는 정상적 외교 관계 만으로 파악할 수 없기에, 엄격한 상호주의를 적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 때문에 뭔가 다른 상호주의를 필요로 한다. 바로 몇 주 전, 민노당이 3대 세습에 대해 노코멘트 하는 것에 대해 남북을 정상적 외교 관계로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사람들이, 이제 와서 정상적인 외교의 기본인 상호주의는 절대 안된다고 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아마도 북의 포격으로 한가지 명확해 진 것이 있다면, 남북을 정상 외교로 봐야 한다는 인식이 얼마나 현실과 괴리되어 있던 생각인지를 드러낸 것이리라.

햇볕정책은 절대 상호주의가 아니라는 일부의 주장과 달리, 햇볕정책도 상호주의의 한 변종, "포괄적 상호주의"라는 이름으로 칭해진다. 내가 느끼는 햇볕정책의 문제는 상호성이 지나치게 박탈되어, 일방적 의존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남쪽 민간인을 사살함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지원을 지속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논리적 설득력도 그렇지만, 현실 정치에서 대 국민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남한이 상호주의에 기반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되는데, 돈과 평화를 바꾸는 상호주의 논리를 북이 따라야 할 이유가 없어진다.

당장 민주당 내에서도 햇볕정책에 상호주의를 추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사실 이 주장은 새로운 것도 아니다. 이 전에도 민주당 일각에서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좀 있었다고 알고 있다. 다음 대선에서 민주당이 상호주의 내용의 추가 없이 현재의 햇볕정책을 고수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얼마 전 명박정부도 의도적 무시 전략에서 약간 벗어나 "비대칭적 상호주의"라는 정책을 언급한 바 있다. 명박정부의 정책에 약간의 변화 요인이 있고, 북의 포격 직전에 이산가족면회 등의 남북관계 개선의 조짐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이 이처럼 민간인 포격이라는 패악을 저지른 이유는, 북의 이 번 포격의 목적이 남북, 북미관계의 돌파구 마련보다는 김정은 체제로의 이행에 더 맞춰져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심이 든다.

일반적으로 미국은 상대국의 사정이 명확하지 않을 때는 기다리는 정책을 쓰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북한의 권력이양 등 상황변화가 상당히 클리어하게 되기 전까지 손놓고 있는 정책(전략적 인내)을 고수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 본격적인 협상은 북의 상황이 명확히 될 때까지 아마 시간이 더 걸릴 것 같은데, 그 와중에 개발하는 핵무기를 어쩔거냐는...
Posted by sovidenc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