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초기에 노동자에 대한 고용주의 폭력은 일상적이었다. 자본주의적 조직 노동규율을 갖지 못한 노동자를 훈련시키는게 고용주의 큰 고민이었다. 예를 들면, 미국에서 아침에 집집마다 돌면서 노동자들을 잠에서 깨우는 직업도 있었다. 지각하는 노동자에게는 폭력도 가했다.

미국인들이 일본에 처음 들어와서 일본인들의 게으름을 탓하는 문서가 있고, 유럽인들이 남미에 침략해서 원주민들의 게으름을 비웃는 기록이 있다. 일본인들이 한반도에 들어와서도 마찬가지였다. 조선인들은 게을러서 안된다는 것. 개성에 들어간 한국의 기업이 북한 노동자들이 게을러서 고민이라는 기사가 난 것도 바로 얼마 전이다.

정해진 시간에 출근해서 정해진 시간이 되어야 퇴근하는 누구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개념"은 근대 이후의 자본주의 경제에서 상당히 폭력적으로 주입된 <제도>다. 자본주의적 노동윤리가 없는 "게으르고 말 안듣는" 노동자를 훈련시키기 위해서 물리적 폭력이나 제재를 가한 사례를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 암울한 시절을 지나 노동운동이 활발하게 된 이후에는 새로운 폭력이 등장한다. 미국, 유럽에서 고용주의 노동자에 대한 폭력이나 린치가 횡행했던 또 다른 기간은 노동운동이 활발했던 시절이다. 한국에서 현대가 노동운동가들을 대상으로 폭력과 린치를 휘두르듯, 미국에서도 폭력배들을 동원해 노동운동가들을 습격하는 일들이 많았다.



고용주의 폭력 사용이 횡행하던 이러한 시대를 지나 요즘은 많은 국가에서 고용주에 의한 직접적 물리적 폭력은 크게 줄었다. 대신 영어로는 bully라고 칭하는 언어 협박이 늘었다. 물리적 폭력은 주로 불만을 품은 노동자의 개인적 행동이나 총기난사 등으로 일어난다. 고용주의 물리적 폭력이 아니라 노동자의 상사나 동료 노동자에 대한 물리적 폭력이 더 문제가 되는 것. 이처럼 노동현장에서의 물리적 폭력의 역사는 <제도화된 폭력>에서 <개인의 폭력>으로 변화되어 왔다.



하지만 재벌2세 최철원의 노동자 폭행 사건은 우리나라는 아직도 노동현장에서 폭력이 제도화되어 있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박머시기 포철 회장님이 순시하면서 조인트를 깠다는 얘기는 잘 알려져 있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고용주의 폭행은 뉴스도 아니다. (노동현장은 아니었지만) 10대 그룹 회장님이 몸소 야구빠따를 드는 나라. 사장님, 회장님이 재떨이를 날린 에피소드 하나 쯤 없는 회사는 거의 없을 것이다.

다른 선진국과 달리 노동현장에서의 고용주에 의한 폭력이 사회적으로 만연한 이유가 우리나라 사람이 유난히 생물학적으로 더 폭력적이어서는 아닐테고, 아마도 학교, 군대, 드라마를 통해 폭력을 사회적 통제 제도의 하나로 학습을 하고 그 결과 다른 나라보다 훨씬 더 쉽게 폭력을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리라. 폭력이 informal rule로 제도화되고 있다는 것.

최철원의 폭력은 재벌의 사회적 기여(?)를 고려해 경감해 주는게 아니라 사회적 악영향을 고려해 가중 처벌해야 할 것이다. 최철원 개인에 대한 처벌은 물론이요, 물리적 폭력에 대한 사회적 감수성을 좀 높였으면 좋겠다.
Posted by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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