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딘스키

기타 2009. 6. 7. 14:24
1)루트비히 힐베르자이머와 바실리 칸딘스키는 더 이상 교단에 서서는 안된다. 그들의 자리는 국가 사회주의 사상의 원칙을 확실히 지지하는 자들이 차지해야한다.

2)지금까지 시행되어 오던 교육 과정은 우리 국가의 내부 구조를 확립하려는 새 국가의 요구를 충족시키기에는 불충분하다. 그러므로 적절히 수정된 교육 과정이 프러시아 주 문화장관에게 제출되어야한다.

3)교수단은 시 공무원법의 요건을 충족시키게끔 질문서를 완성해서 제출해야한다.
바우하우스의 존속과 재개에 관한 결정은 이와같은 문제점의 극각적인 제거와 상기조건의 이행 여하에 따라 이루어질 것이다.

바우하우스를 해체한 나찌가 바우하우스 총장에게 보냈다는 편지의 내용이란다. 나찌에게 쫓겨난 칸딘스키는 프랑스가 건너가 거기서 죽었다. 칸딘스키는 러시아에서 태어났고, 모스코바 대학에서 법과 경제학을 공부했다. 법대 교수직을 오파받기도 했었다.

사회과학을 공부하던 그가 미술로 전향한 것은 나이 30이다. 이후 그는 "실기"를 하는 미술가일 뿐만 아니라 미술 "이론"가이기도 했다. 실기와 이론을 같이 해서 나찌가 싫어한건가?

명박정부의 유인촌 문화부에서 한예종에 요구하는게 나찌가 바우하우스에 한 짓과 다르지 않다는 비판이 많다.

칸딘스키는 추상표현주의로 분류된다. 운동권은 리얼리즘을 좋아해야 한다는 같잖은 강박관념도 예전에 있었다. 술먹고 떠드는 얘기로 칸딘스키와 같은 추상표현주의는 현실과 동떨어진 인간의 내면을 표현한다지만 결국은 체제유지의 수단이 되고 만다는 식이었다. 사람들 표현 좀 맘대로 하게 내버려 두는게 중요하다는 걸 그 때는 잘 몰랐다. 명박정부 하는 걸 보니 너무나 명확하지만. 

미술에 대해 쥐뿔도 모르지만, 몇 년 전 부터 추상표현주의나 미니멀리즘의 그림들이 내 컴퓨터의 바탕화면이나 스크린세이버의 슬라이드 쇼를 장식한다. 미술관을 가도 그들의 작품 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그 이전의 유명작이나 리얼리즘 작품 앞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길다. 비록 요즘은 오히려 리얼리즘에 점점 호감이 간다만...

아래 그림은 썰렁한 내 사무실 벽에 붙어있는 유일한 장식물, 칸딘스키의 1913년 작, Squares with Concentric Rings다.


Posted by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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