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값 등록금

교육 2011. 6. 6. 00:26
필요하다는 사회적 합의는 있지만, 이게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사회과학에서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개념 중의 하나로 VOC라는게 있다. Variety of Capitalism. 옛날에는 자본주의가 발전하면 모든 국가의 사회제도가 우수한 제도 하나로 통합이 일어날 줄 알았는데, 각 사회가 다른 제도를 가지고도 비슷하게 발전하고 잘 살더라는 것.

이럴 수 있는 이유는 각 사회의 제도는 서로 모두 연결되어 있어서 독특한 제도들이 모두 유기적이기 때문. 유럽의 교육제도와 대학에서 가르치는 내용은 유럽의 노동시장 제도, 문화와 연결되어 있고, 미국의 교육제도는 미국 노동시장의 특징과 연결되어 있다는 거다. 미국 교육제도에서 노벨상이 더 나온다고 유럽 대학을 그런 식으로 바꾸면 죽도 밥도 안된다.

한국의 교육제도와 노동시장은 유럽보다는 미국과 비슷하다. 그러다보니 지난 10여년간 대학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한국은 미국 대학을 닮을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그런데 미국과 한국이 다른 점이 몇가지가 있다.

하나는 미국은 학생들이 공부를 안해서 걱정인 사회고, 한국은 너무 공부만 해서 걱정인 사회. 미국은 고교 졸업률과 대학 진학률이 낮아서, 한국은 높아서 걱정인 사회다. 대학등록금의 사회적 비용이 미국보다 훨씬 높다.

다른 하나는 미국은 기부금이 엄청난 사회다. 유럽에 비해 전체 GDP 대비 복지 지출이 낮지만, 기부금을 복지의 일종으로 치면 유럽과 큰 차이도 없다. 미국 대학에 기부되는 돈은 어머어마하다. 미국의 유명 사립대에서 저소득 가정의 자녀에게 등록금을 면제해줄 수 있는 원천은 이 돈이다. 한국 대학은 이 돈이 없다.

세 번째는 대학의 다양성. 미국도 아이비 리그의 파워는 엄청나지만, 저소득 자녀 뿐만 아니라 중산층의 경우, 주립대에 가도 나쁘지 않다. 아이비의 등록금이 너무 비싸서 거기는 돈 없으면 못간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주립대를 가도 개인의 능력에 대한 의심이 작다. 주립대학(한국으로 치면 국립대)을 지원하는 것만으로도 등록금을 낮출 수 있는 정책적 선택지가 미국은 있고, 한국은 없다.

네 번째는 대학원. 미국 주립 대학 교육의 수준은 한국보다 높지 않다. 하지만 미국은 이미 대학원 중심 사회가 되었다. 그리고 대학원 학비는 많은 경우 학교에서 지원해 준다. 한국은 대학원보다는 대학 중심 사회이기 때문에 국립대를 통한 등록금 지원이 사실상 유명무실하다.

그래서 하고 싶은 얘기가 뭐냐고?

대학 등록금을 해결할려면, 한국 대학의 미국 대학 따라하기를 중단해야 한다는 거다. 그렇다고 유럽 대학 체제로 바꾸는 것도 비현실적.

좀 섣부른 얘기일 수도 있지만, 한국의 대학이 미국과 같은 연구 중심 학교가 되기 어렵다. 연구보다는 교육에 중점을 두는 방식으로 대학 평가와 지원을 바꾸어야 한다. 세계 유수 대학과 경쟁할 수 있는 연구 중심 대학이 필요하면, 대학원을 육성하고, 그 대학원은 학부를 포기하도록 유도 해야 한다. 교육 중심 대학이 연구 중심 대학보다 비용이 훨씬 적게 든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반값 등록금 방안은 대학 지원 체제를 바꾸는 것. 싼 등록금으로 좋은 교육을 시키는 학교에 지원금을 주면, 대학은 등록금 인하 경쟁을 하고, 등록금 인하 경쟁에서 승리한 대학이 지원금도 받아서 더 등록금을 인하할 수 있다. 이 경쟁에서 탈락한 대학을 퇴출시키기도 쉬워진다.




ps. 정동영 의원 등이 주장하는 대학 등록금 폐지는 논의를 이끌어내는 충격요법으로는 의미가 있을지 모르나 정당이 제안할 수 있는 정책으로는 비현실적이다. 이걸 실현할려면 한국의 노동시장이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 혁명이나 전쟁, 대공황 등의 사회붕괴, 내지는 박정희, 전두환 급의 독재를 통하지 않고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정태인씨가 반값 등록금이 사회적 평등을 위배한다고 지적한 것은 일리가 있다.
Posted by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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